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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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티샵에 가는 길에는 다른 피트니스 센터가 한 개 더 있는데, 그 앞에서는 한 여자가 매일같이 센터의 홍보 전단을 돌린다. 매일인지 평일에만인지는 사실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운동하러 가는 시간에는 항상 서서 전단을 돌린다. 여태껏 그 자리에 여자가 없었던 것을 못 봤다. 피티샵에 첫 등록을 하러 가던 한 달여 전부터 오늘까지도 빠짐없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 여자도 나를 알아보는지 내가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면 여자도 모른 채 하고 전단을 건네지 않기도 한다. 피티샵에 등록하러 가던 날, 나는 여자로부터 전단을 받았고, 짧은 상담과 등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좀 전에 받았다며 사양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받은 적이 없다. 여자가 전단을 내밀면 꾸벅 목례를 하며 거부, 아니 사양의 표시를 하며 지나갔다.
홍보 전단 속 센터의 직원인지, 알바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거기서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전단을 받아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내 착각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여자 또한 내가 매번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낯이 익었을 것이라 거의 확신한다. 실제로 그러한 느낌을 몇 번 받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뜬금없이 다시 전단을 받으려고 시도하는 것도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앞을 지나갈 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단을 돌리는 알바를 해봤던 나로서는 그 고생이 너무도 짐작되어 한때는 전단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받아주기도 했고, 특히나 전단을 돌리는 사람이 나이 든 어르신이거나 수치심을 겨우 참으며 서 있는 나이 어린 청년일 경우, 무조건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이고 요즘은 거부 의사를 밝히는 편인데, 그게 미안할 때도 없지 않다. 사실 센터 앞의 여자는 나이든 어르신도 아니거니와, 자신의 일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실함에 어쩐지 힘을 보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또 어쩌겠는가. 그것은 그녀의 일이고, 나는 불필요한 정보를 사양할 뿐이다. 동정까지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함부로, 괜스레 측은해하는 것도 실례일 것이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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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후에는 잠시 샐러드를 사러 나갔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조금 서러워졌다. 내내 비가 오다가 일요일에 이럴 건 뭐니. 온종일 속이 좋지 않아서 골골댔다. 누워서 글을 쓴다. 누워서 글을 쓴다니. 신인의 단편을 겨우 하나 읽었다. 오타가 서너 군데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랄지. 위생 관념이 형편없는 젊은 업주를 혼내는 백종원을 보며, 맞춤법이 형편없는 글을 보는 기분이 저런 걸까, 생각한다. 이건 기본 중에도 기본이에요. 시가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아주 오래전 문학 수업을 받을 때, 시를 정말 잘 쓰는데 맞춤법이 형편없는 사람이 있었다. 올바른 맞춤법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 쓰는 거였다. 그래도 중요한 자리에 시를 내야 할 때는 맞춤법을 그럭저럭 맞춰왔다. 알고 보니 그건 사전을 뒤적여, 겨우겨우 교정교열을 봐온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전적으로 독서 체험의 문제다. 많은 독서량이 반드시 맞춤법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또 독서량이 부족해도 맞춤법을 잘 틀리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뭐가 됐든 시를 쓰는 사람이 맞춤법을 모른다? 토씨 하나에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데 맞춤법을 무시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식재료 관리며 청소 관념 자체가 없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요리하겠다는 꼴이다. 맞춤법이 심각한데 시는 잘 쓰는 사람? 이미 어불성설이다. 백종원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기본. 그래, 기본은 중요하다 정말. 요리고 문학이고, 그런 뒤에나 할 얘기다. 저녁이다. 냉장고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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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쓴 글에 댓글을 다신 분이 있었고, 내가 그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며 오해를 하신 것 같다고 했는데, 자기 전 양치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오해가 아니라는 걸. 우선은 그분께 사과를 드린다. 사실 이래서 내가 간혹 내 글에 댓글이 달려도 가급적 반응을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왜냐면 괜히 사족을 더해 무언가를 변명하는 꼴이 되거나 오해를 더 키우는 경우가 있어서다. 바로 어제 상황처럼. 나의 댓글은 지웠다. ‘출간 전 교정도 보지 않느냐’는 지적의 댓글이 달린 것에 내가 다른 맥락만을 생각하고 오해했다. 오해는 그분이 아니라 내가 했다. 댓글을 다신 분이 주목한 곳은, 시를 잘 쓰는데 맞춤법을 모르는 학생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오타가 서너 군데 있는 신인의 단편소설 얘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말이 나왔으니, 교정교열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어제 내가 본 한 개의 단편소설 안에 오타가 서너 군데 발견된 것은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 올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들을 모은 <2021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소설이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국소설가협회’라고 되어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말 그대로 협회이지 정식 출판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협회 자체에서 내는 잡지들이 위주일 텐데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단행본 출판도 겸하는 형태일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곳이 꽤 된다. 굳이 말하자면 출판사이긴 하나, 잡지 발행이 위주이고 소규모의 단행본 출판을 겸하는 그런 곳. 내가 일하는 잡지사도 그런 형태에 가깝다. 알다시피 매년 1월 1일이면, 각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뽑아 내보낸다. 그리고 대개 1월 내에 각 신문사에서 뽑힌 작품들을 장르별로 묶어 책을 펴낸다. 시, 소설, 희곡 따로, 그리고 평론과 수필은 함께 묶어서 따로. 출간은 신문사와는 별개다. 그리고 장르마다 주관하는 출판사도 다 다르다. 신춘문예 당선시집 같은 경우, 오랫동안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가 맡아왔는데,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요 몇 년 사이 주요 일간지 당선 시인들이 보이콧을 하며 작품을 싣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여, 이 빠진 형태가 되다가 급기야 올해는 아예 출간이 불발되었다. 소설은 말 그대로 ‘한국소설가협회’, 희곡은 ‘월인’이라는 출판사, 그리고 평론과 수필은 검색해보니 ‘정은문화사’라는 출판사로 뜨는데, 평론과 수필은 아무래도 타 장르에 비해 인기가 없어서인지, 지속적인 출간이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정교열은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다. 완벽한 교정교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간의 이런 말들이 꼭 과장인 것만도 아닌 게, 교정교열 작업을 하다 보면 정말로, 재차 삼차 들여다봐도 틀린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교정교열은 결국 작가와 편집자의 공동 작업이다. 작가는 아무래도 자신의 원고를 너무 많이 들여다봐서, 어느 순간에는 원고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단계까지 다다르기도 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작가가 편집자에게 전적으로 교정교열을 맡겨버려도 문제가 된다. 교정교열이라는 것이 단순히 맞춤법과 띄어쓰기만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파악하여 글의 중심을 잡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원고를 쓴 작가와 원고의 외부자이자 첫 번째 독자로서의 편집자가 끊임없이 조율해가며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작가라고 해서 모두가 맞춤법에 통달한 자도 아니며, 어느 정도 올바른 맞춤법은 쓴다고 해도, 맞춤법과 의도치 않은 오타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니 완벽까지는 아니고 완벽에 가까운 교정교열은 다소 완벽주의 성향의 작가와 편집자가 이루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라면, 편집장을 포함해 보조 편집자가 몇몇 더 있을 것이니, 보는 눈이 많아 더 정확한 원고가 만들어질 테고.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같은 책의 경우, 서울의 주요 일간지를 포함해, 지방의 신춘문예를 진행한 거의 모든 신문사의 작품이 다 실려 있다. 그러니 개인의 작품집도 아니고, 특정 모임의 앤솔로지도 아니다. 단순히 신춘문예라는 타이틀로만 묶인 전혀 연관 없는 당선자들의 소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가령 90년대에 유행하던 최신 가요 히트곡 모음집 같은, 조악하게 노래들을 모아 놓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신인들의 소설이 궁금하긴 하지만 각 신문사마다 신문을 구해 소설을 읽기가 번거로운 독자,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습작생, 문학 수업을 위해 일종의 교재가 필요한 강사 정도일까. 특정 독자층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가 수요의 마지노선인 책. 다시 말하지만 정식 출판사도 아니고, 그러니 편집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부재하며, 또한 편집자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형편이라 작가가 특별히 자신의 원고에 엄격하지 않은 이상, 틀린 맞춤법이나 오타는 군데군데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 표지도 정말 투박하고 조악하다. 사실상 어떤 출판사에서 나오느냐, 어떤 성격의 책이냐에 따라, 책의 퀄리티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보며, 웬만한 오타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이다. 우리가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조악한 최신 가요 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음질을 따지지는 않듯이. 뭐 어쨌든 한 개의 댓글에서 촉발되어 교정교열 현실을 돌아보았다.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소설과 서울 주요 일간지 및 지방 신문사의 신춘문예 현실에 관해서는 조금 나중에 얘기해보기로 한다.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현대 단편소설의 아버지,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이다. 사실 현대의 작가들이 쓰는 단편 소설은 거의 전부 안톤 체호프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수만큼이나 다양한 형태의 단편 내지는 엽편을 써낸 체호프. 그 이후에 나온 모든 단편들은 거칠게 나누자면 두 종류로 평가될 수 있다. 체호프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거나 체호프와 이런 점이 다르다고 평가를 받거나. 그만큼 체호프는 현대의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가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체호프의 소설을 읽는 동안 웃기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상황을 비트는 유머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 꽤 많은데, 예를 들면 단편선의 첫 작품 <관리의 죽음> 같은 경우 결말을 보고 예전에 유행하던 허무 개그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희극성은 체호프의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독자를 웃기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사의 진실이 녹아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다가 고백을 받는 순간 식어버리는 사랑, 과할 정도로 묘사되는 아름다움과 그것을 찬양하는 인간. 이런 장면들은 어이없는 실소와 희극성을 자아내지만 또 그것이 인간이 사는 현실이다.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며, 누군가에 대한 호감은 사소한 무언가를 계기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겉모습이란 고작 살가죽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인간은 홀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체호프는 가난한 집안에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대학에 다니면서 싸구려 잡지와 신문에 콩트, 유머 단편 등을 기고했다. 거기서 받는 적은 원고료라도 집안에 보태야 할 만큼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며 닥치는 대로 써 온 작품들에 담겨있던 유머가 뒤에 체호프가 본격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뒤에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썼던 글들로 인해 훈련된 희극성이 체호프의 작품 속에서 웃음과 함께 인간세상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러니한 느낌도 든다. 굉장히 짧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며 심지어 읽기에도 재미있는 작품을 여럿 써낸 작가가 바로 안톤 체호프다.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작가다. 안톤 체호프 단편선은 출판사마다 여러 종류의 책이 나와 있는데 각 출판사별로 담겨 있는 작품들의 목록이 조금씩 다르니 잘 비교해보고 사는 것이 좋다.(이번 리뷰는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썼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단편은 <관리의 죽음>, <티푸스> 그리고 <베로치카>다. 소설 속 한 문장 그리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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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치즈라면과 참치김밥. 이 집이 이 근방 로컬 맛집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얼마 전부터 가끔 찾게 되었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의 가게였다. 남편은 주로 주방을 담당하고, 홀과 김밥 말기 정도는 아내가 담당하는 형태의. 라면은 아직 나오기 전이고, 동료와 나는 홀 담당 사장님이 말아준 김밥을 먼저 먹고 있었다. 나는 출입구를 등지고 식사 중이었는데, 손님 한 명이 들어온 것 같았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앳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돌솥비빔밥 하나 주세요. 우렁찬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서빙을 담당하는 사장님은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아예 제대로 듣지를 못해서 네? 하고 재차 물어봤다면 좋았겠지만, 잘못 알아들은 메뉴를 대며 확인했다. 쫄볶이 한 개요? 젊은 여자 손님은 아뇨, 돌솥비빔밥이요, 했다. 나는 처음부터 알아들었기에 이번에도 다시 분명하게 들었다. 돌솥비빔밥이라고. 그러나 서빙 담당 사장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확인 차원에서 쫄볶이 하나요? 하고 되물었지만, 예, 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고 뭐라고 다시 대답을 하니, 이번에도 쫄볶이 한 개요? 라고 차마 묻지는 못하고, 잠시 침묵한 채로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쫄볶이라고 한 거 같은데, 쫄볶이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쫄볶이인 걸,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영영 침묵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네? 하고 다시 물었다. 여자 손님은 다시 말했다. 돌솥비빔밥 하나요. 물론 이번에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심지어 내 앞의 동료도 들은 듯이 회심의 미소 같은 것을 짓고 있었다. 뭔가가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듯. 세상에. 사장님은 이번에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쫄볶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그녀의 남편은 주방에서 동료와 나의 라면을 끓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하필 가게에는 여자 손님을 제외하고는 동료와 나뿐이었고, 오지랖이라거나 뭐 그런 것이 넓은 그런 종류의 다른 손님은 없었다.  잠시 나라도 대신 다시 말해주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그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까 생각하며 망설이는 사이, 홀 담당 사장님은 기지 비슷한 것을 발휘했다. 그녀는 확신에 차 여자 손님에게 말했다. 아아, 쫄볶이 포장이요? 홀 담당 사장님이 뱉은 방금 그 말에는 아주 여러 가지의 의미가 함축된 느낌이 있었다. 그래,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냐, 나는 너의 말을 아주 잘 알아들었지만 쫄볶이 뒤에 포장이라는 단어 하나를 못 알아들어서 이 사달이 난 것뿐이야. 나는 손님의 말에 아주 경청을 잘 하고, 실수 따윈 잘 하지 않지. 난 말귀를 못 알아 먹는 사오정이 아니라고. 봐, 내 말투에 확신이 들어차 있는 게 바로 그걸 증명하는 거야. 근데 이번에도 잘못 들은 거면 어떡하지? 설령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도 의도는 아니니 이해하길 바라, 정도의 의미가 들어 있는 듯한 대사와 말투로 느껴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홀 담당 사장님은 연속된 실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쫄볶이가 아니라는 걸. 쫄볶이 포장은 더더구나 아니라는 걸. 여자 손님은 쫄볶이를 시킨 적도 없거니와, 홀에서 먹고 갈 거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어째서 신은 홀 서빙 담당 사장님에게 이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련을 주는지. 우선 두 단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았다. 돌솥비빔밥. 쫄볶이하나. 발음되는 대로 적어보자면, 돌쏘삐빔빱. 쫄뽀끼하나. 돌쏘삐 쫄뽀끼 아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여자 손님은 인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가 더 당황하여, 벌서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침착을 잃지 않고 말했다. 아뇨, 돌솥비빔밥이요. 먹고 갈 거예요. 정말 안타깝지만 홀 담당 사장님은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했고, 기어코 피날레를 장식했다. ...네? 가여워라. 되묻는 사장님의 말에는 거의 필사적인 자조가 담겨있는듯 했다.  동료와 나는 육성으로 뱉진 않았지만 한마음으로, 여리지만 단호한 여자 손님의 마지막 일격 같은 대답에 힘을 실어 보냈다. 아, 물론 동료도 그랬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치자. 돌. 솥. 비. 빔. 밥. 이요. 아. 드디어 알아들은 홀 담당 사장님의 장탄식이 이어졌다. 나는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그사이에 나온 감격의 면발 흡입을 이어갔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본 가게의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쫄볶이가 아닌 돌솥비빔밥을 먹는 여자와 테이블을 정리하는 사장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주방에서 분주한 또 다른 사장님.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봄이었다.
피땀눈물이 서린 라탄 공예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그저 라탄 전등갓이 갖고 싶었을 뿐이에요. 머리 맡에 두고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조명, 그리고 그 조명을 라탄으로 씌우고 싶었을 뿐. 이왕이면 직접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라탄 전등갓 만들기 키트를 주문한 게 시작이었던 거죠. 그리고 요것이 도착한 키트! 둘이서 만들면 더 좋으니까 직장 동료를 불러 함께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어시간 정도가 흐르고 완성! 중간에 조금 어긋난 부분이 있지만 뭐 처음치고 괜찮쥬? 바라던대로 머리맡에 두고 잘 사용중인데 음. 생각보다 라탄이 많이 남은 거예요. 전등갓 하나 만들기 키트라더니 두 개를 만들어도 됐을 정도로 넉넉하게 보내주시다니 아 넉넉한 인심! 그럼 우짜겠노 뭘 더 만들어야지 하고 만든 것이 티코스터. 오른쪽이 두 번째, 왼쪽이 세 번째 라탄 결과물인디(전등갓 포함) 역시 할수록 늘쥬? 물론 손에 익어서의 문제라기 보단 라탄이 어떤 건 무르고 어떤 건 딱딱하기 때문에 잘 골라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발생한 현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 그것도 실력의 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경험치, 관록 뭐 그런 거. 코스터는 염색도 하기로 합니다. 온통 좋아하는 것들로 블랜딩되어 아껴 마시느라 상미기한을 넘겨 버렸고, 그렇게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무려 십년을 가지고 있던 자넷의 크리스마스티로 염색을 했어요. 어차피 찻물이 들 게 분명한 티코스터니까 미리 물들여 버리는 거죠. 끓는 홍찻물에 팔팔팔! 어휴 향이 너무 좋더라고요. 염색한 것과 안한 것의 차이.jpg 태닝이 아주 예쁘게 됐죠? 블랙티 태닝이라니! 그러고도 라탄이 많이 남아서 다른 모양의 코스터도 도전합니다. 요번에는 냄비나 티팟 받침으로 쓰려고 좀 크게 만들어 봤습니다. 역시나 추후 물들 것이 분명하므로 또 크리스마스티에 퐁당 빠뜨려서 염색을 해줬습니당. 좁은 방이 온통 크리스마스티 향으로 가득. 십년 전 아끼느라 즐기지 못한 향을 이제야 만끽했네요... 그렇게 완성된 티코스터 모음.jpg 위 다섯 개가 홍찻물로 염색한 것, 가장 아래 유독 뽀얀 아이가 염색하지 않은 아이예요. 원래 뽀얀 걸 더 좋아하는디 라탄은 염색한 게 더 맘에 들구... 아니 근데 이렇게 만들었는데도 라탄이 또 남았지 뭐예요. 참 나. 어쩌겠어요 또 만들어야지. 거미거미!!! 이번에는 바구니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욕심 좀 내서 크게 만들어 봐야지 했는데 역시 초보라 소요될 라탄 양을 가늠하지 못하여 여기서 가진 라탄이 다 떨어져 버릴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냄비 받침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테이블 매트로 쓰기에는 너무 작은 애매한 크기라 여기서 받침으로 마무리하기도 좀 그래서 라탄 환심을 또 주문하고 만 거죠. 키트가 아니라 라탄 환심만 사려니까 대용량을 주문해야 했고 배송비가 아까워서 에라 모르겠다 하나 더 담지 뭐 했더니 우왕 라탄 부자가 되어버렸넹! 그렇게 완성된 바구니에 코스터들을 담아 봤습니당 뿌듯 바구니도 염색하고 싶은뎅 큰 그릇이 없어서 염색을 아직 몬했어유. 조만간 염색하고 말리다. 암튼 라탄이 너무 많이 남았으니까 뭘 또 만들어야 하잖아요. 바구니가 생각보다 일찍 완성돼서(새벽이었는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새벽이라 일찍이라고 생각한 걸까) 바로 이어서 다른 걸 만들기로 한 거죠. 이번에는 빗살무늬 토기처럼 생긴 캔들 홀더!!!!!!! 만들다가 지문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고개를 드니 어라 왜 밖이 밝은 걸까요.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건 마치 마피아 게임. 아무튼 완성했고, 여섯시간 가량을 물에 젖은 라탄을 만지고 힘을 주느라 손이 퉁퉁 부르트고 상처나고 피도 나고... 아니 저 빗살무늬토기 닮은 애 마무리를 하는데 라탄에 자꾸 빨간 얼룩이 보이는 거예요. 어라 이건 불량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내 손가락에서 나고 있는 피가 묻은 거였고..^^.. 이야말로 제 피땀이 서린 빗살무늬토기... 그래서 당분간은 라탄을 멀리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손가락이 너무 아프거든요. 지문이 진짜로 사라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흑흑 그치만 상처가 다 아물어서 손가락이 더이상 아프지 않게 되면 전등갓을 몇 개 더 만들어 보려고요. 기대되지 않습니까? 나의 피땀눈물이 서린 전등갓... 그 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더 아윌비백 P.S. 전등갓 땡겨서 켜고 끄는 것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유우머 호이! 며칠 전엔 빗살무늬토기st. 만들다가 아침을 맞고 오늘은 이 카드 쓰다가 아침을 맞은 것도 유우머 쓰다가 오류나서 사진이 다 사라지고 텍스트로 대체돼서 텍스트가 두 번씩 반복되는 사진 없는 카드가 돼버려서 다시 쓰느라ㅜㅜ 혹시 저같은 분 또 계신가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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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소한 시 한 편의 초고를 완성해야 했다. 바로 다음 주가 마감이니까. 시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 내일부터지만 예정대로 여행이 잡혀 있어서. 이전에 쓰다 만 시를 퇴고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정면 승부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운동을 하러 뒷산을 오르며 시를 써야 한다 시를 써야 한다 내내 다짐하는데, 비눗방울을 날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날이 얼마나 좋은지 비눗방울이 터지지도 않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며, 떠오르는 문장들이 생겼다. 걸으면서 메모했다. 그러다가 문장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 바람에, 잠시 벤치에 앉아 시라기보다는 떠오르는 단상들을 바로바로 적어두었다. 운동을 마치고 와서는 그것들을 토대로, 이전에 메모해둔 여러 단어와 문장들을 동원해 시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 초고를 토대로 다시 며칠간 고심하며 퇴고를 해보려 한다. 그와 동시에 첫 시집과는 결이 다른 일종의 스타일을 나름대로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메모의 힘이란. 시는 쓰지는 못해도 늘 메모는 이래저래 해두는데, 역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전부터 내가 메모장을 뒤져 시를 쓰다 보면 꼭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몇 년 전까지 유행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예능 프로그램. 셰프들이 연예인의 냉장고를 뒤져 그 안의 재료들을 활용해 요리를 선보이는 것처럼, 시인들이 사람들의 메모장을 뒤져 그 안에 담긴 단어나 문장들을 가지고 시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냉장고와 메모장은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냉장고야 생필품이지만, 메모장은 모두가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사실 이 비슷한 기획은 어딘가에서 진행됐던 걸로 안다. 독자들의 간략한 사연을 받아, 시인들이 시를 써주는 것.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 달라질 뿐 같은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사람마다 특별히 자주 쓰는 어휘나, 그가 인상적으로 기억해 메모해둔 구절이나 단상 같은 것을 가지고, 완전히 색다르게 조립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당신이 가진 어휘로 내가 시를 써보는 것이다. 메모장을 부탁해.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최근의 내 시 작업이 다소 그런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일정한 말버릇이 있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아주 보석 같은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단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혹은 흔히 쓰지만 너무나 흔해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거기에 주목한다. 그것들을 콜라주 하듯이, 혹은 테트리스 하듯이, 배치를 바꿔 아귀를 맞추는 작업을 좋아한다. 오늘 쓴 시의 초고도 그런 작업 형태로 이어졌다. 나는 언제나 기시감에 주목한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게 하는 것. 시에서 기시감을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익숙한 단어와 말들을 전혀 새롭게 배치해보는 것이다. 뭐 이러한 시작 방법이 시 장르에 이제껏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방식에서 결을 조금 달리해서 활용해보고 싶다. 어쩌면 이것은, DJ가 기존의 여러 음악을 가지고 샘플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다음 시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작업을 한번 밀어붙일 수 있는 곳까지 밀어 붙여보고 싶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성취의 척도 또한 내가 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