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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앞두고 여사친과 여행간다는 남친

이거면 여사친한테 감사합니다 큰절하고 결혼 깨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게다가 이 상태면 결혼을 한다 해도 평생 저 여사친이 붙어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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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도우셨습니다. 마지막 기회이니 똥 묻기 전에 손절하시길~
그여자가 일부러 저러네 못가지는거 깽판놓는거지. 성공v
@wens 크..나도 이생각했는데 한발 늦었다 ㅋㅋㅋ
이런 상황이 되면 얘는 아니다 하고 쿨하게 깨는게 맞는데 감정에 휘둘려서 미련도 못버리고 개성질만 내게 됨
남사친 결혼해서 죽고싶다는 뜻 아닌가?
지 버릇 개 못줌 결혼 해도 항상 피곤할거임 파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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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모가 사위에게 보낸 편지
방서방, 자네와 우리 집과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네. 이 세상에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처럼 찢어지는 것은 없다네. 병으로 보낸것도 아니고, 교통 사고로 보낸것도 아니고 더더욱 우울증으로 자살 한것도 아니고 악한 누명을 씌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들을 시켜,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집 지하실에 설치한 사설 감옥에서 잔인하게 몇달을 고문하다가, 가정을 지키며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내 딸을 네 아이들과 사설 앰블란스 파견 용역직원 여러명에게 벗겨진 채, 온 몸이 피멍 상처투성이로 맨발로 꽁꽁 묶어 내집에 내동댕이 친 뒤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음에 내몰린 딸을 둔 그런 어머니의 심정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네. 남편이 죽으면 집앞의 산이 뿌옇게 보이고, 자식이 죽으면 산 자체가 안보인다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소리도 안들리고 아무 것도 입에 넣을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숨마저 한숨 한숨 괴롭게 쉬고 있다네. 온몸의 뼈가 다 녹아 내리고, 온 살이 다 찢겨 나가는 느낌이네…단지, 감사한 것은 우리 딸은 가기 전에 하나님을 받아들여, 하나님 품안에서 잘 쉬고 있네. 나는 자네와 애들을 다 용서하고 싶네. 나는 딸을 잃었지만, 자네는 아내를 잃었고, 아이들은 에미를 잃은 것이니 말일쎄. 나는 솔직히 자네가 죄인으로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했네…그래서 아무말을 하지 않고 있으려했는데, 우리 딸이 가고 난 뒤의  자네와 아이들의 기가막힌 패륜적인 행동을 보니,  자네나 아이들의 속죄하는 마음을 기대했던 내가 잘 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네. 자네는 미란이가 친정 식구들 때문에 자살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닌다고 하던데…자네에게 남긴 유서에 그렇게 써있던가? 자네는 미란이가 자네에게 쓴 유서를 없애 버리고, 증인들의 입을 맞추면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렇지만, 미란이는 자네가 그럴 줄 알고, 유서의 복사본을 여럿 남겨 두었다네…자네가 유서를 없애고 자기의 죽음도 왜곡 각색해 버리는 또하나의 죄를 더 저지를 줄 미리 알고서 일세… 얼마 전에 지원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이 삥을 뜯는다’고 폭언을 퍼부었었지…나는 그 순간 그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알면서 모른척한다’면서 나에게 즉 자기 외할머니에게 계속해서 폭언을 퍼부었네. 나중에 그말이 무슨 말인가 물어보니, 폭력배들이 돈을 갈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지금, 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펜을 드네. 내 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자네가  앞으로의 죄인으로서의 회개하는 삶을 촉구하는 뜻이네… 용렬하고 비겁한 자네가 지금은 내 편지를 끝까지 읽을 용기가 없으리라고 보네. 그러나 걱정 말게 나는 자네가 내 편지를 끝까지 읽도록 몇번이고 계속 보낼 것이며 자네뿐 아니라 자네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계속 보낼걸세. 나는 이 세상에서 자네처럼 자기 아내에게 포악하고 잔인한 인간은 본 적이 없네. 30여년을 오로지 자네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내 딸을 병으로 보낸것도 아니고, 교통 사고로 보낸것도 아니고 더더욱 우울증으로 자살 한것도 아니고 그저 누명을 씌워 뒤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들을 시켜,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집 지하실에 설치한 사설 감옥에서 잔인하게 몇달을 고문한 뒤, 가정을 지키며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내 딸을  네 아이들과 사설 앰블란스 파견 용역직원 여러명에게 벗겨진 채, 온 몸이 피멍 상처투성이로 맨발로 꽁꽁 묶어 내집에 내동댕이 치듯 버리고, 그 다음 날에는 내딸이 30여년 애지 중지 쓰던 모든 물건들을 무슨 전염병에  감염된  물건인 듯 컨테이너에 내다 버리지 않았는가? 그런 상황에서 내 딸은 죽음으로 밖에 자네에게 항거하는 이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었겠으며 나 또한 이 한 맺힌 편지를 자네와 자네를 아는 모든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 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나? 30여년을 살면서 자식을 네명이나 낳아주고 길러준 아내를 그렇게 잔인하고 참혹하게 죽이다니, 자네가 그러고도 사람인가? 사람이 부부싸움을 하면 감정이 격해져서 순간적으로 살인도 할수 있지 그러나, 자네처럼 몇달을 집안에 자네 말 대로 ‘지옥경험을 시켜주겠다’고 지하실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친정 식구들을 비롯한 외부인과 연락을 끊도록 하며 철부지 자식들로 하여금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폭행을 매일 퍼붓도록 한 것이 인간이라고할수 있는가? 아이들이 뭘 알아서 자기 에미를  ‘나가죽으라’고 몇 달을 폭언을 했겠으며 아파서 기절해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에미에게도 ‘저 년 쇼한다’고 했겠는가? 친정엄마인 내가 오면 기사고 아줌마고 다 쫓아낸다고 하여 난 가보지도 못하고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네. 병원에서 퇴원 때도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아, 퇴원 수속도 기사의 신용카드로 결제하였다며? 다 자네가 아이들에게 한 교묘한 거짓말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네는 그때 친구들과 주문진 별장으로 놀러갔다지? 자네 원하는대로 아이들이 요구한 대로 내 딸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으니 이제 속들이 시원하신가? 자네 그러고도 천벌이 두렵지 않은가?  하나님은 계시네…자네가 돈으로 권력으로 증인들을 겁박하고 유서를 공개하지 못하고 (아마 없애버렸겠지) 소위 언론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진실을 감추고 또 감추어도 하나님은 계시네...자네는 아내를 죽인 흉악한 살인자일 뿐 아니라 자네 자식들도 에미를 죽인 천하가 공분을 할 살모자들로 만들어 버렸네. 이미 에미를 죽인 놈들이라고 도저히 씻을수 없는 낙인이 찍혀버린 아들들은 앞으로 결혼을 어떻게 하겠는가? 자네와 같은 집안과 인연을 맺어도 괜찮다는 집안을 한번 잘 찾아보게 오죽하겠나 에미를 죽인 년이 되어 버린 딸들은 잘 살수 있겠는가? 그 시가 집안에서 우리 며느리 착하다고 귀여워하겠는가? 그 집안에 무슨 일 있을때마다 에미 죽인 년이 집안에 들어와 재수 없다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내가 어머니를 죽여서 이런일을 당한다 생각되지 않겠는가? 그게 다 누구 책임인가? 고스란히  방용훈, 바로 자네 책임이네. 자네가 유서를 은폐하고 아무리 요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도 소용없네…방용훈 자네가 살인자야. 증거를 없애는 놈 바로 그놈이 범인이야. CC티비의 기록을 없애고, 증인들 입을 맞추는 놈…바로 그 놈이 범인이야. 방용훈 이미 세상에서 용서받기에는 너무 악한 일을 저질러 버렸네: 하나님 이외에는 용서해줄 사람이 없네. 이게 경비, 기사, 가정부의 입만막으면 그대로 넘어갈 일인가? 신문사만 막으면 넘어갈일인가? 자네 주위에 데리고 다니는 변호사에게 물어보게. 자살교사가 무엇이고  존속상해치사가 무엇인지?  자네에게 쓴  내딸의 유서에 뭐라고 적혀 있던가? “왜 자기가 이런 일을 당해야하는지 알고나 죽자”는 최후의 애절한 절규가 절절히 흐르고 있지 않던가. 영혼을 가진 인간의 그 마지막 절규를 그렇게 무시하고도 자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교수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에게도 자기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게 인간의 도리이거늘 30여년 살아온 아내에게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참혹한 죽음으로 마구 내어 몬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악마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네. 설사 만에 하나 부부사이에 무슨 의혹이 있던지, 또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일을 내딸이 가령 저지렀다면 이혼을 하면 되는 것이지, 왜 폭력배 같은 놈들을 불러 거의 벗긴 상태로 꽁꽁 묶여서 온몸에 다 피멍이 들도록 폭행을 가하고  옷이 다 찢겨서 신도 못신은 채 꽁꽁 묶어 친정에 내다 던져 버린것이 대명 천지 대한민국 아니 아프리카의 토인국에서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지원이는 얼마전에 자기 남편에게 쓴 수법, 즉, 적당히 폭력배 같은 놈들을 동원하여서 사람 내동댕이 치는 수법을 발전시켜 자기 에미에게 사용했는데, 언제고 자네에게도 지원이가 그 간의 연습으로 더욱 숙달된 실력으로 더 심한 행위를 저지를 것이 눈에 선하네. 그 순간이 오면 자네도 미란이처럼 발가벗겨 묶여서 끌려 나갈걸세. 그때 자네가 할 말은 "내 죗값을 내가 드디어 받는구나" 하는말 뿐일세.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반듯이 그 자리에 내가 있도록 해주실걸세. 내 딸이 그렇게 난폭하게 끌려나가던 장면이 찍힌 씨씨티비도 증거 인멸을 위해 없앴다고 하던데, 자네가 발가벗겨 져서 끌려나가는 그 장면은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자세히 기록이 남겨져서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보면서 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면 안되는지 교훈을 영원히 받기를 원하네. 자네는 주위 사람에게 돈문제로 갑자기 충격을 주는 묘한 재주가 있더군 이번에 성오에게도 네 에미 때문에 물려줄 유산이 없다는 거짓말로 안그래도 판단력이 없는 성오를 분노시켜, 에미에게  물불 가리지 않고 폭행폭언을 가하도록 교묘한 수법을 썼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지원에게도 이혼 후 살수 있는 자금을 주려했는데 에미가 큰 돈을 날렸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거짓말로 머리 나쁜 지원이를 격분을 시켜서 에미에게 말도 못할 폭행과 폭언을 시키게 했으며  그 사건 와중에도 '어떤 경우에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던 지오에게 마저도 도대체 무슨 거짓말을 해서 결국은 에미에게 포악하게 굴게 했는지…  자네 참 그런 재주는 타고 났나보네. 자네는 아이들이 지금까지 미국과 서울에서 얼마나 엄청난 사고를 얼마나 많이 치며 살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내 딸이 자네 모르게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수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자네 모르게 동원했어야 했는지 상상조차 못할걸세. 자네는 최근 성오 음주 뺑소니 사고 한번을 처리하였지만, 아이들의 끝도한도 없는 사고들은 지난 30년간 자네 모르게 다 내 딸이 해결했다네. 자네 이번 사고 처리엔 얼마 들었나? 우리 딸은 그간 돈이 얼마나 들었다고 생각하나? 자네가 재벌 행세를 하면서 온갖 허세를 부리며 온갖 더러운 계집질을 하고 돌아다닐 적에 내 딸은 교육비 사고처리비를 꾸러 다니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아나? 평생에 돈을 떼인 적이 한 번도 없고 돈 문제에 그렇게 철저하다는 자네가 한번 계산해보게. 이 천하의 무정한 나쁜 놈아. 워낙 학력에 컴프렉스가 있는 자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능력이 안되도 한참 안되는 아이들을 명문대 보내려고 내 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는가? 계속된 기부나,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특별한 사례비, 논문 대신 써주기 위해 몇차례나 얼마나 엄청난 돈이들어간 줄 아나? 학교나 선생님이나 재벌 집이라며 높은 기대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대로 지나갈 수 있었겠는가. 자네 자식들- 명문대 졸업시키려고 그렇게 무리해가면서 무지 애쓴 우리 딸에게 자네는 모진 학대와 누명을 씌워 집안에 사설 감옥까지 자네 말마따나 지옥 경험을 시켰으니…잘했네 아주 잘했네 친정 식구들한테 문 열어주면 그날로 끝장 낼거라고까지 가정부 경비들한테 협박하면서까지 자네 잘못이 탄로날까봐 무섭기는한 모양이였네. 이 벌레같은 미물보다 못한 천하의 악랄한 놈아. 내 딸이 죽었다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슬퍼하고 시체라도 찾으려 노력하기는 커녕 증거 인멸에만 급급한것이 도무지 인간의 영혼을 가진 정상적인 놈인가? 거기다 에미가 죽은 날, 친구들과 즐거이 포식을 하고 그 사진을 자랑스럽게 SNS에 올린 것은 도저희 이해할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네. 자식놈들이 그랬다면 그 괴수인 자네는 자축하는 축하주를 들었겠네~ 잘했네 아주 잘했어. 술맛은 좋던가.증거인멸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증인들 입을 막기 위해 그렇게 백방으로 손을 쓰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나 자네나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있었다던 얘기네…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무엇이 그렇게 숨길 것이 많았는가? 우리 딸을 죽인 것말고도 도대체 무슨죄를 그렇게 많이 지고 사시는가? 잔돈으로 증인들도 잘 구워삶고 입도 잘 막던데 그렇게 재주가 좋으면 내 딸도 한번 살려보게. 요사이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도 제대로 장례를 치룬다네. 양아치들도 사람을 죽이고 나선 제사를 제대로 지낸다네. 내딸은 집에서 기르던 동물만도 못하고 자네는 저질 양아치만도 못한거네- 30여년을 자네를 남편으로, 네 아이들의 에미로써 평생을 끝도 한도 없이 봉사하고 살아온 내 착한 딸이 그저 불쌍하고 자네가 그만큼 더 큰 천벌을 받을것이라는  생각외에는 별로 드는것이 없네. 내 딸도 하나님과 함께 자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사는 동안 얼마큼 더 더러운 짓을 하며 어떤 죄를 더 짓고 말로가 어떻게 처참할지 지켜 볼걸세 어디 한번 열심히 살아보게나 내 딸의 "도대체 뭘 잘못하기에 나를 죽이냐”는 절규가 언제나 계속 들려올걸세. 원래 하나님의 용서만을 건네며 아무 소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내려던 내가 지금 자네에게 이런 준엄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지금이라도 진정한 회개를 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 죄인으로서 겸허한 자세로 내 딸에게 평생 속죄하는 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자네와 자네 집안은 하늘의 큰 벌을 받을 것을 천지 신명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하는 바이네… 자네는 앞으로 오래 살기 바라네. 그래서 한번 비참한 말로를 반드시 겪기 바라네. 나는 이만큼 살았으니 이 세상에 별로 애착이 없지만 자네의 필연의 말로를 보기 위해 반드시 아주 아주 장수하면서 자네의 악행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그리고 자네 본인에게 시시때때로 늘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살려고 하네.  앞으로 자주보세. 내가 이제 남은 인생 유일한 목표를 하나 만들어 주어서 고맙네~자식들과 자네의 하수인들에게 온몸에 상처를 입은 것을 감추기 위해, 내 딸을 서둘러 화장해 버렸다고 들었네. 마지막 가는 길에 친정 식구들과 인사라도 한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옷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가야되는거 아닌가? 밥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장례식장에서 라도 한번 먹고 가야 되는건 아닌가? 사람들에게 왜 장례 절차가 필요하고 이별이 필요하고 고인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지 아나? 떠나가는 사람이 살아남은 자들을 보호하고 축복하기 위한 것이란다네. 떠나간 내딸이 자네나 남은 자식들을 무슨 수로 축복하겠는가? 착하디 착한 미란이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 짐승만도 못한 자식들을 부탁한다고 당부하였네. 자네는 그렇게 착한 미란이의 원혼이 두렵지도 않은가? 미란이의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알고나 죽자’는 절규가 들리지 않나? 지나가는 바람소리,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 그속에 내딸의 부르짖음이 들리지 않나? “알고나 죽자”고 울부짖던 소리가. 아주 아주 두렵지 않나?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겠나. 내딸이 억울하다며 하소연하기 위해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나. 내딸이 원을 풀어달라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잠인들 잘 수 있겠으며, 잔들 꿈속에서 더 두려울 걸세… 또한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엄혹한 세월과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네를 그냥 두겠는가? 자녀의 일생이 편안할거 같은가? 난 자네가 참으로 불쌍하네 앞으로 당할 고통과 두려움으로 제대로 잠이나 이룰 수 있겠는가? 정말 불쌍하네. 내 딸은 죽기전에 하나님을 받아들여 하나님 품 안에 잘 쉬고 있네. 내 딸을 위해 만든 지옥에는 인제 그리고 앞으로 자네와 아이들만 남았네.  천형으로 알게. 업보로 알고, 받아야할 벌의 수만분의 1도 안되는 것을 철저히 알게.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은 자네처럼 워낙 많이 뿌리는 놈들에는 적용이 안되는줄 잘 알고 있게. 자네가 회개한다는 결의, 죄인으로 속죄하며 살겠다는 결의를 확실히 보이지 않으면, 이 편지는 자네가 숨기려던 유서와 함께 형님댁을 포함, 모든 친척들, 자네가 알고 있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동안 내 뼈속깊이 간직하고 묻어둘려고 했던 모든 다른 이야기들과 함께 온 천하에 공개할 것이네. 내가 할일이 뭐 있겠는가? 잘 알아서 판단하게… 2016년 9월 11일 장모 부인 죽인지 4년만인 오늘 지병인 암으로 명을 달리했군요. 괴롭힌 만큼의 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워요. 명복은 당연히 빌지 않겠습니다...
50대 악마에 5년간 성폭행 당한 20대 여성의 ‘지옥같은 삶’
지난달 27일 경찰서로 뛰어 들어온 한 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범벅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형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박은경(가명·27) 씨는 “저를… 저를…죽이려 해요”라며 1시간 가까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형사들의 설득에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스피커폰으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년 8개월 동안 성폭행을 당했지만 도저히 신고할 엄두를 못 냈던 그 사람, 이경수(가명·55)였다. 신고 후 일주일 만인 6일.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우윳빛 피부에 단아한 외모였다. 대학 시절 그녀의 꿈은 스튜어디스였다. 5년 전 항공사 면접을 앞두고 찍은 이력서 사진은 이제 경찰서 조사 서류에 붙어 있었다. 담당형사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정말 티 없이 맑은 아가씨였네”라며 혀를 찼다. 지난 5년간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 ‘친절한 아저씨’와의 만남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6년 여름. 박 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한 지역축제에서 영어통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던 이 씨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참 성실하네. 수양딸 삼고 싶어.” 박 씨는 “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딱 봐도 할아버지였다”고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동네 주민의 호의려니 생각한 박 씨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었다. 박 씨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는 걸 파악한 이 씨는 “대기업 임원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이 씨는 갑자기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잠그더니 17cm 회칼을 꺼냈다. 성폭행을 한 뒤엔 휴대전화로 촬영한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하면 네 엄마 아빠한테 사진 보내고 몰살해버리겠다”고 말했다. 단 하루의 악몽이길 바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박 씨가 취업 준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연락을 피하자 이 씨는 고시원 앞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 씨는 그 와중에도 토익 점수를 만점 가까이로 올리고 회계관리사 등 7개의 자격증도 땄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박 씨는 고향에 있는 초봉 3500만 원의 유명 공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 못 다니게 하겠다”며 박 씨를 협박해 휴일마다 자기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면 방 안에 있는 비상탈출용 완강기 줄로 목을 조르며 “목숨으로 사랑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또 “같이 죽자”며 각자 한 손씩 손수건으로 묶은 뒤 저수지로 끌고 들어가 익사 직전까지 갔다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살려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애원했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매번 신고할 용기를 꺾었다. 직장 동료들은 금요일이 되면 화색이 돌았지만 박 씨는 목요일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회사에 안 가는 공휴일,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달력을 펼쳤는데 그달에 공휴일이 많으면 정말 죽고 싶었어요.” 평일에도 자유는 없었다. 오전 8시와 점심 식사 후 낮 12시 반, 퇴근 무렵인 오후 5시 반, 자기 전인 오후 9시 반, 휴대전화에선 알람이 울렸다. 하루 4차례 중 한 번이라도 전화를 빼먹으면 그녀의 집까지 달려와 밤새 괴롭혔기 때문이다. ○ 그렇게 당하면서 왜 신고도 못 했냐고요? 지옥이 시작된 지 1년쯤 되던 날, 박 씨는 단짝 친구에게서 자신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라면 신고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친구가 먼저 신고를 하자 경찰은 범인을 체포해 피해여성 8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의 진술 요청에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며 거부했다. 결국 범인은 징역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박 씨는 이 씨를 경찰에 신고해도 잠깐 잡혀 있다 다시 나와 반드시 보복할 것이란 생각에 또 용기를 접었다. 이 씨는 종종 자신의 동창 모임에 박 씨를 데리고 갔다. 그러곤 “내 마누라야. 영계랑 사는 게 부럽지”라고 자랑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을 느꼈다. 하루는 이 씨의 ‘50년 친구’라는 사람이 조용히 박 씨를 불렀다. “앞길이 창창한 처녀가 왜 이러고 사니. 내가 네 아버지라면 지금 당장 저놈을 죽여버릴 거야.” 박 씨가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신고해요”라고 하자 그는 “그럼 이렇게 계속 살래?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해서 잠시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잖아”라고 했다. 그 사람 말처럼 박 씨도 수없이 신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단념하게 만드는 건 ‘엄마’였다. 박 씨가 대학 1학년 때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경남의 한 소도시에서 홀로 살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박 씨는 매달 생활비와 한약을 지어 보냈다. “대학 수석 졸업하고 좋은 데 취직한 효녀라고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셨어요. 근데 제 상황을 아시면…제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 얘기를….” 박 씨는 내내 침착하게 과거를 얘기했지만 엄마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메었다. 그 효심이 박 씨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씨는 그녀가 연락을 피할 때마다 그녀의 엄마가 사는 도시로 내려가 해당 지역번호인 0××가 찍히도록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네 엄마 집 앞인데 쇠망치로 대가리를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씨는 늘 회칼과 손잡이 부분에 붕대가 감긴 30cm 길이의 무거운 쇠망치를 가지고 다녔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공기총도 수시로 꺼내 겨누곤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박 씨는 “제발 엄마는 건드리지 마라” 하고 사정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만난 날 밤이면 박 씨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손잡이 붕대가 누렇게 된 쇠망치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박 씨를 만나기 전 이 씨에겐 강간치상 등 6번의 전과가 있었다. 이 씨는 이혼한 전처와 그 이혼을 도와준 처남을 죽이겠다며 칼로 협박하다 2008년 7월 다시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 가면서 “미행 붙여놨으니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면회와 편지를 꼬박꼬박 하지 않으면 나와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박 씨에겐 빈말이 아니었다. 이 씨는 전처와 처남을 죽이기 위해 공기총과 청산가리를 구하러 갈 때마다 박 씨를 데리고 다녔다. “너도 반항하면 이걸로 죽는다”며 겁을 줬다. 결국 이 씨가 수감된 10개월 동안 그녀는 매달 2, 3차례 면회를 가고 매주 2통씩 편지를 써야 했다. 이 씨는 철저하고 집요했다. 교도관이 배치된 감옥 면회장에선 박 씨를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출소하던 날 “저번에 보니까 가방도 없이 왔던데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있다가 슬쩍 와가지고 가식을 떠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박 씨는 고막이 터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에 “기다리자…” 2009년 5월 출소한 이 씨는 “나를 감옥에 보낸 전처와 처남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당뇨로 체중이 20kg 이상 줄고 이도 대부분 빠졌지만 살인 계획에만 몰두했다. 주말에 그의 집에 가면 일주일 동안 혼자 끼적인 메모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최대한 악랄하고 결단력 있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공기총 사격 연습을 해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과 캡슐에 담은 청산가리를 보여줬다. 박 씨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 언제든 말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아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신고도 못하고 직접 죽이지도 못하니 박 씨는 그가 자살하겠다고 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여름까지’라던 ‘그날’은 그해 말, 이듬해 여름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 무렵 이 씨는 화투에 몰두했고 박 씨에게서 도박 자금으로 4000만 원을 뜯어 갔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이었지만 이 씨가 화투를 치러 가 있을 땐 잠깐이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차라리 나았다. 그가 해수욕장 인근 도박장에 있는 동안 박 씨는 여행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큰 소리로 웃으면서 물놀이하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도박장에서 파출소까지는 불과 150m 거리였다. 이 씨가 “이번 계획은 진짜”라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박 씨는 조심스럽게 이 씨에게 말을 꺼냈다. “2월이 다 가는데 언제 정리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씨는 “넌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곤 회칼과 쇠망치를 가져왔다. 떨리는 손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공기총도 꺼냈다. 이 씨는 숫돌에 칼을 갈며 “그동안 아주 가식을 떨었구나. 오늘 너부터 죽인다.” 읊조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박 씨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 씨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허벅지에 이미 한 대를 맞은 박 씨는 망치를 든 이 씨의 손을 잡았다. 혹시나 칼로 바꿔 잡을까 봐 20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흉기를 내려놓은 이 씨는 “저수지로 죽으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그는 대문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쳤다. 목이 돌아간 강아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저수지를 100여 m 앞두고 차 옆자리에 있던 이 씨가 담배를 사겠다며 내렸다. 앉았던 자리에는 쇠망치와 회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씨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본 박 씨는 핸들을 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쫓아올까 봐 신호도 무시하고 10여 분을 무작정 달렸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박 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 씨의 위치를 파악해 도착한 곳은 평소 그가 고스톱을 치던 민박집이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살펴보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도망친 박 씨가 경찰에 신고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신고는 했지만… 경찰 신고 후 그가 없는 첫 주말. 박 씨는 친구를 만났다. 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그놈 목소리. 그는 아직 곁에 있다. 이 씨가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악몽을 매일 꾸고 초인종이나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미친 듯 뛴다. 공포의 끈질김. 악몽 속에선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박 씨는 “출소하면 어떻게든 나와 가족들을 찾아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을 갈까 했지만 혼자 도망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박 씨는 4년째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경찰서에 있을 수 있잖아요.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고.” 잃어버린 5년의 세월도 엄마에게 털어놓을 생각이다. 출소에 대비해 거처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피눈물을 흘리시겠지만 결국 얘기하게 될 것을…. 누군가 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공포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현실이 소설보다 영화보다 무섭죠 너무 무서운 일이 현실이었다니ㅠㅠㅠㅠ 지금은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ㅠㅠㅠㅠㅠ
옛날 톡톡 유명했던 일화.. 후..
안녕하세요 20대 중반 여자입니다. 제가 톡한지 얼마 안돼서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지만너무 속상하고 어디다 풀데도 없어서아는 동생 아이디 빌려서 이렇게 씁니다.혹시라도 아는사람 나올까봐 동생아이디 빌린거니까동생 아는분은 오해하지말고 봐주세요.. 4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습니다.아니 있었습니다.근데 요근래 낌새가 이상하더라고요.. 발렌타인 때 초콜렛줘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도 없고영화보러가자 그랬더니 다른사람이랑 이미 봤다고 싫다그러고.. 너무 속상해서 전 언니에게 울면서 남친이 나한테 정이 떨어진거같다며 상담까지 했죠. 지금 생각하니 언니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우스웠을거같지만 전 정말 속상해서 언니에게 다 털어놨어요. 근데 10일쯤인가 남친이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조금 낌새가 이상해서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우리 4년동안 사겼는데 안믿겼죠.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연인이기도 하지만 베스트 프랜드였거든요. 이렇게 쉽게 끝낼 순 없어서 붙잡고 울고불고 했는데... 집에 와서 언니에게 엉엉 울며불며 미친듯이 울자 달래주던우리 착한 천사표 언니!! 헤어지고 몇일 후 밥먹고 멍하니 앉아있는데언니가 슬며시 오더니 "언니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넌 언니 편이지?" 라더라고요.. 전 당연히 하나뿐인 언니인데 그럼 뭔짓을 해도 용서할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응" 이라면서 우리 언니를 보는데 언니가 제 남친이랑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다더라구요 서로? 하하... 그러면서 절 붙들고 울고 불고"언니가 미안해 근데 우리 둘이 너무 사랑해.." 감정이 싹튼지는 3달이 넘었다더라고요. 그 말하고 언니는 제 전 남친이랑 술마신다고 나가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 웃음밖에 안나오더군요. 그렇게 어이없게 있는데 마침 아빠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전 무슨 정신에 어떤 얘길 했는지도 생각안나지만.. 아빠는 남자친구 얼굴을 알거든요.. 집에 몇번 놀러왔고 오래사겼으니까.. 아빠랑 얘기를 하는데 말도 안나오고 아빠부르면서 우니까 깜짝놀라서 **(남친이름)때문에 우냐고, 그 나쁜놈보다 더 좋은 놈 만날꺼라고, 너 버리고 간 여자도 분명 거지같을꺼라고 나를 위로해주길래 가만히 있다가 제가 "그 여자가 우리언니래. 3달전부터 좋은감정 가지고 만나고 있었대. 나 어떻게 하지 아빠 내 맘알지" 이러면서 울었어요.. 아버지 가만히 있으시다가 니 언니 지금 어디있냐고 물어서 울면서 "지금 남자친구랑 같이 술마시고 있어." 라고 말하니까 일단 저보고 너 지금 이상한 생각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길래 계속 "내가 못나서 내가 못나서" 하고 막 울었네요.. 아빤 저보고 니가 못난게 뭐냐고 지금 일단 진정하고 아빠엄마가 집으로 갈께 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오시는 도중에 아마 언니에게 전화하셨겠죠. 그날 엄마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저를 앉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엄마아빠도 어이가 없는지 한숨만 쉬시는데 초인종이 울려서 일단 모두 나가보니 언니가 아닌 남친이 왔더라구요. 절보고 일을 어떻게 이렇게 크게 만들수 있냐면서 중얼거리는걸 아버지가 듣고 소리를 지르는데언니가 울었는지 눈 빨개져서 남친에게 이끌려 오더군요. 그때 순간 너무 속상해서 아무리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 집에 내 앞에 어떻게 남친을 데려올수 있는지 그래서 서러워서 울었어요. 친구들이 이럴 때일수록 머리쓰고 교묘하게 잘해야한다는 말도 기억안나고 그냥 서러워서 울고 꺼지라고 욕하니까 언니도 같이 울면서 사랑하는데 어떡하냐고 사람 마음이 맘대로되는게 아니라고 우는데 그냥 뭐라고 해야할 말도 없어서 그냥 입밖으로 나오는 욕을 그대로 했어요. 그러니까 남친이 언니편을 들더라구요. 지가 뭘 잘했다고 나한테 그러는지 소리지르면서 자기가 먼저 마음이 가서 그런거니까 언니 욕하지 말라고. 그런 얘길 하는도중에 아빠가 일단 남자친구를 보냈어요. 꼴도보기싫으니까 당장 꺼지라는식으로. 그리고 남친따라 같이 가려는 언니를 집안으로 불렀는데, 언니가 죽어도 남자친구랑 못 헤어지겠다그러네요. 그래놓고 둘 사이를 허락해 줄 때까지 금식을 한다나 뭘한다나.. 웃기는게 저를 제 3자로 만들어 놓고 그저 부모님에게만 허락받으려고 안달인거예요. 듣고있기 뭣같아서 내 생각은 안하냐고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진짜 미안한데 일단 너는 잠시 뒤에있다 이야기 하면 안돼겠니?" 이해가 가나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안가는 상황이라 말도 안나왔죠. 엄마가 우리는 제 3자라고.. 동생한테 용서부터 구하라고 화내니까 그제서야 중얼중얼 변명하던데 다 쓰기도 구질구질하네요. 아빠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고, 한 발자국만 나가면 너 내 딸아니라고 하는데 저한테 울고불고 제 방에서 지랄떠는거 하루간 무시했더니 A4용지에 뭐라뭐라 써놓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래도 가족이라고 연락도 없이 안들어 오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이제 기분편하냐고 독하다는식의 문자를 보내네요.그래도 딸이라고 계속 안들어오는 언니 때문에 걱정인지 아버지는 모르겠고 어머니가 은근슬쩍 눈치를 주네요. 용서하라는게 아니라 일단 니가 먼저 전화를 해보라는 식으로 언질하시는거 보니까. 참 이렇게 글 쓰는것 보니 두서도 없네요. 계속 언니는 전남친이랑 집을 나갔고, 엄마는 은근슬쩍 연락해보라고 저를 찌르고 아빠는 화가나서 아무말도 안하고. 집안이 살얼음판..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정말 저도 속상해 죽고싶어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거짓말과 불륜이예요. 아빠가 단단히 화난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주변 친구랑 또 언니친구 한 명은 이 이야기의 전부를 알고 있어서 주변에는 이미 소문이 조금 돈 모양인데 주변에 소문이 어떻게 퍼져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언니한테 온 문자보여주고 너무 화가나서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거기서 그만 말하라고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아빠가 왜그러냐고 해서 이야기 하니까 엄마보고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나보고도 일단 진정하라고... 제가 너무 흥분해서 절보고 지금 뭐라뭐라 하시는데, 아빠도 언니 걱정이 더 먼저인것같아요.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이 상황이 지금 제가 냉정을 유지하고 진정할 상황인가요?정말 서러워서 살기싫어요. 맨날 저만 악역이고 피해를 보더라도다 받아줘야 하는 상황으로 만드는 이 집안 꼴이 싫어요. 언니는 계속 술퍼먹고'일 이렇게 만드니까 좋냐 독한년' 이렇게 문자하고 언니가 보낸 문자를 받고 충격이였어요. "독한년" 이라니- 평소 다정하고 상냥하던 언니였기에 정말 배신감밖에 안느껴지더군요. 한편으론 착한언니를 가로채간 그 놈이 미워요. 이젠 언니가 제 착하고 상냥하고 절 보듬어주던 언니가 맞는지 그것도 모르겠고요.. 문자를 보여주고 제가 힘들어하니 엄마의 채근거리는건 일단 일단락되었지만.. 문열고 일단 밥부터 먹으라는거 무시하고 소리지르면서 울어대며 부모님 가슴에 피멍들게 했지만 그 전에 제가 미친년이고 불효녀라도 제가 못살 것 같아서 밥 생각도 안나고 그러네요. 게다가 엄마가 언니한테 전화한 것 같던데 언니 남자친구 자취방에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언니가 제 친언니가 맞는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젠 지치고 학이 떼이네요. 차라리 둘이 모텔에 들어있다는게 덜 충격적이였을텐데 자취방에 있네요. 정말 언니가 제 정신일까 정말 무슨생각인지 묻고 싶어요. 진짜 왜 저러는거야 도대체.. 지금은 언니랑 전 남친 얼굴 꼴이 보기싫어서 어떻게 이 상황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평생 얼굴 안보고 살수도 없는 일이고 또 이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묻어가겠지요. 답답하네요. 일단 친한 친구들하고 언니랑 제 얘기를 아는 언니에게 얘기는 다 해놨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이 글도 정말 힘들게 썼어요.. 제가 지금 제정신인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어요.. 살고싶지않아요.. 이젠. 언니 만큼은 믿었는데.. 4년 동안 저하고 전 남친 하고 사귀는거 다 보고 들은 언닌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 그래도 익명으로라도 글 쓸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기분은 나아지는것 같지만 정말.. 생각할수록 가슴이 막막하네요.. 차라리 언니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오랜만에 읽어보는데도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 동생이 입양아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어휴.. 저러고도 잘 살거라고 생각하나.. 어디선가 "인과응보란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분명 꼭 벌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무서운 기억
대학이 집과 떨어진 곳이라서 자취 생활을 현재 4년째 하고 있는데 이 일은 2년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원룸에 오토락이 거의 대부분 설치 되어 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열쇠로 문을 잠그는 원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룸의 특징상 대부분이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서 집에 오면 문단속에 철저했는데 저도 집에 오면 항상 문부터 잠그는게 일이었습니다. 한날은  시험을 친다고 밤을 세서 낮에 잠깐 낮잠을 한두시간 자서 그런지 새벽 3시가 되었는데도 잠이 안와서 침대에 누워서 딩굴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원룸의 3층에 살고 있었는데(사실상 원룸의 일층은 주차장이라서 높이는 4층) 워낙 방음이 안되어서 밤늦게 조용하면 일층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 그런곳이었습니다. 이때도 누가 집으로 오는지 일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사는 원룸은 대학교 근처라 그런지 늦은 시간에도 술마시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은지라 (저도 역시 그럼 학생중 하나였고 말이죠..) 별 생각없이 누가 늦게까지 놀다가 이제야 들어오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발자국 소리가 일층(사실상 이층)에서 멈추더니 문 손잡이소리가 들리더군요 '철컥' 하고 말이죠 그리고 문이 잠겨있는지 문이 더이상 열리지 않고 부딪치는 소리가 '쿵' 하고 났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발소리가 들리더니 '철컥............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이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누가 술에 취해서 자기집을 제대로 못 찾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근데 들어 보니 발소리가 술에 취한것 취고는 너무 일정하다는 생각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중 걸국 그소리는 일층에있는 방의 수인 4개 만큼 2번의 소리가 더 났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뚜벅뚜벅뚜벅..........철컥.....쿵.......' 하고 말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별생각이 없었는데 발소리가 이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이때 부터 저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술이 취해도 자기집 층수까지 착각하지는 잘 않으니깐 말입니다. 게다가 발자국 소리가 취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일정했고 말이죠. 이 발자국은 2층에 올라와서도 일층과 똑같았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하는 4번의 서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3층에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이때 부터 저는 점점 무서운 생각에 이불을 꼭지고 눈을 감았습니다. 제가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발자국은 점점 제가 있는곳 까지 조금씩 다가오는게 느껴졌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결국 발자국은 제가있는 3층의 제집까지 왔고 제집 문고리까지 돌렸습니다. '철컥' 하지만 문이 잠겨있는 관계로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발자국은 다음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결국은 제가 있는 건물의 12개의 문이다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고리를 돌리고 한동안 조용하더니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발소리는 결국 일층을 지나서 제 귀에 안들릴 만큼 멀어져 갔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12개의 문중 하나라도 잠겨있지않고 열려있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상상하면 지금도 등뒤로 소름이 돋곤합니다. (출처 : 짱공유) 귀신도 귀신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진짜 무서운 것 같아요 저 때 만약 누군가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집에 있었다거나 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ㅠㅠㅠㅠ
벽지 안쪽 확인 해본 사람?
사실 벽지는 빛깔만 이쁘면 됐지, 무슨 상관이겠어. 그런데 나한테는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 오늘따라 문뜩 떠오르네. 그때는 내가 새내기였던 14년도였어. 집이 조금 멀기도 하고 자취 한 번 해보고 싶어서 2월 초부터 열심히 원룸가를 돌아다녔어. 그런데 집을 구한다는게 썩 쉬운일이 아니더라구. 월세가 싸면 대학이랑 멀고. 대학이랑 가까우면 비싸고. 가까운데 월세가 싸면 벌래가 나오더라. '이러다가 영락없이 1시간짜리 통학하겠네' 싶을 무렵, B원룸을 찾았어. 월세는 20만원밖에 안됐고, 학교하고는 어찌나 가까운지 비비탄총을 쏘면 강의실까지 닿을 것 같았어. 벌래? 도배까지 새로 싹 해서 그렇게 깔끔한데 나올리가 있나.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방만 유난히 도배를 새로 했더라고. 그 당시의 나는 호구처럼 순삭간에 싸인했고, 짐을 풀었지. 그때에도 꿈자리가 조금 뒤숭숭하거나, 깨고나면 몸이 찌뿌둥하긴 했어. 특히 술 마시고 들어온 날은 다음날 내가 반죽음이 되어있더라고. 숙취가 심했거니 하고 무시하긴 했지만 말이야. 진짜 문제는 개강총회날에 일어났어. 나는 유난히 들떠서 평소 주량보다 조금 많이 마셨었지. 그래도 정신머리는 붙어있어서, 용캐도 집까지 걸어들어왔어. 그런데 문을 연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나오는거야. 난 처음엔 술때문인줄 알았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었지. 혹시 심령사진 본 사람있어? 그냥 분위기만 무서운 사진 말고. 보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고 사진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사진 말이야. 내 방 안을 보는 순간 그런 경험을 했어. 방 전체가 일그러져 보이고, 서있으려는 다리가 자꾸 풀리는거야. 그리고 조금씩 짙어지는 역한 냄새가 있었어.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해. 비릿하면서도 냉장고에 오래 방치된 살코기 같은? 하지만 피냄새는 아니었어.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 술? 그딴건 진작에 깨버렸지. 나는 뒷걸음질 쳐서 원룸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까치를 꺼내 물었지. 그때는 팔리아멘트를 피웠는데, 호흡이 다급하니까 망할게 엄청 안 빨리더라고. 그렇게 한 개피 태우고 내 방으로 올라갔는데, 여전히 그 염병할 냄새가 나더라. 무슨 깡이었는지는 몰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어. 처음 가진 내 집이라서 그랬나봐. 그리고 코를 킁킁거렸어. 증거를 찾고 싶었어. 분명 내가 짬을 안 버려서 냄새가 나는 걸 꺼라고 생각했어. 만약 그런게 아니면... 진짜 귀신이 있다는뜻이잖아. 미칠 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 냄새는 사방에서 나는거야. 정확히는 벽에서 나고 있었어. 사방의 벽에서. 나도 미쳤지, 부엌에서 칼 하나를 가져와서 책장 뒤편의 벽지에 칼질을 했어. 분명 이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거든.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어. 시맨트 바닥이니까 회색일줄 알았는데, 뭔가 붉은 면이 있더라고.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 '아, 이게 원인이구나.' 그래서 칼질을 조금 더 넓게 해봤어 그땐 뭐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 '시발 벽지 까짓거 물어주면 되지' 싶더라고. 그런대 그 붉은 색이 그냥 면이 아니라 한자더라? 무슨 한잔지는 모르겠는데, 뭐 한자 생긴거 뻔하잖아. 벽면이 부적인 것처럼 붉게 적혀있었어. 또 손이 떨리더라고. 하필 칼을 들고 있으니까 오죽하겠어. 나는 미친놈처럼 벽 한 면에 붙은 벽지를 칼로 뜯어냈어. 그러고 나서 보니 벽면 전체에 빼곡하게 붉은 한자가 적혀있었어. '아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칼 떨어뜨리고 뛰쳐나왔어.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 그날 밤은 과방에서 보냈어. 다음 날 주인 아줌마한테 연락했지, 방 뺀다고. 그 씨발년은 다 알면서도 나한테 세놨더라. 깽판칠려다가 도배값은 지가 낸다고 해서 말았어. 뭐... 그 후부터는 졸업할 때까지 통학했지. 다시는 모르는 벽에 기대서 자고 싶지 않더라. 지금은 직장때문에 어쩔 수 없어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주인 몰래 벽지 살짝 뜯어서 확인해보고 계약했어. 그때처럼 한자가 붉게 세겨진 원룸은 거의 없더라 ㅋㅋ 근데 있긴 했어. 출처) 마지막 줄 너무 무섭잖아요 있긴 했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 이사갈 때 벽지 조금씩 뜯어봐야 하나요................
신입사원의 할머니 전화를 매일 받아주는 부장님
(아래에 모바일 배려 있음) 이제 5개월 차에 접어든 신입의 할머님 한 분께서 거의 매일 전화를 하십니다. 우리 손자 잘 부탁한다고...ㅜㅜ 치매를 앓고 계시다는데 우리 손자 잘 부탁한다는 말씀은 잊지 않고 하시네요. 처음에는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하셔서 신입이 매번 여기저기 죄송하다고 사과하러 다니드라구요. 그래서 따로 불러서 사정을 들어보니 할머님이 치매이신데 신입이 졸업한 학교에도 전화하고 여기저기 전화하신다고...ㅜㅜ 취직하고 수첩에 전화번호 적어드렸는데 괜히 적어드렸나 보다고 죄송하다고 하드만요. 그렇게 마음이 아픈 와중에도 내 손자 잘부탁한다는 말은 잊지 않으시는 할머님이 얼마나 감사하냐며... 회사번호를 제 자리 번호로 다시 적어두라고 했습니다. 전화는 제가 받겠다고...  내가 어르신들 상대는 좀 한다며..ㅋㅋㅋ 그렇게 4개월 정도 거의 매일 통화를 했지요. (신기한게 주말에는 전화가 안옴) 이제는 어쩌다 전화가 없으면 걱정됩니다.ㅎ 늦게까지 전화가 없으면 제가 전화드리기도 하는데... 기억을 못하시더라구요.ㅜㅜ 심지어 제가 회의 중이거나 업무때문에 전화를 못받았을 때 다시 전화를 드려도 기억을 못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손자분 회사 선배에요. 손자분이 일은 너~무 잘해서요~ 그러냐며 아주 좋아할실 때도 있고, 손자가 직장을 다니는 줄도 모르실 때가 있죠. 아마도 그런 날에는 신입이 졸업한 학교에 전화하셨을 겁니다. 그러고는 다음날 또 전화 옴. 우리 손자 잘부탁한다고... 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네요. 우리 손자 잘부탁한다고...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내 새끼 사랑하는 마음은 잃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시는 것 같아 좀 걱정이네요. 할머니 건강하셔~ 나 속상할라그래~ ----- 너무 훈훈하고 슬프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