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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머나이저, '스탈렛2'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스탈렛2'
기존의 '스탈렛1'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어 찾아왔습니다.


4가지 세기
USB 충전
무게 70g
길이 11cm
너비 4cm



우머나이저 'Pleasure Air' 기술은
직접적인 접촉 없이 공기압으로만 클리토리스를 자극해
오르가즘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슬림한 디자인으로 한 손으로 편안하게 사용하세요.
작은 사이즈의 스탈렛2는 휴대하기도 편리합니다 : )





플레져랩 유튜브 > youtube.com/c/PleasureLabplslnet

플레져랩 공식 온라인몰 > plsl.net
젠틀랩 공식 온라인몰 > gentlelab.net
루비끄 공식 온라인몰 > lubiq.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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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6. 이쪽 모임 만들기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대학교에 복학했었다. 당시 나는 25살에 2학년이었고 11학번인 나는 15학번 후배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가까워지기엔 먼 당신들이었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고 지낼정도로까지 유지했다. 너무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고 (나도 원하지 않았다. 이정도 나이 차이면 분명 후배도 나를 대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며 나 역시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따로 생활하려했다) 너무 멀게 지내기엔 실험때문에 문제가 되므로.. 그렇게 학교를 혼자 다니게 되었다. 나의 긴 휴학의 대가였지만 생각보다 자유로워서 좋았다. 그러던중 학교에 LGBT관련 성소수자 동아리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덜컥 연락해서 가입까지 해버렸다. 평등함을 추구하는 동아리여서 회장직이나 임원직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나도 부서장을 하면서 면접보는 일을 했다. 나를 거쳐 동아리에 가입한 회원도 꽤 된다. 그 회원 중 하나가 머지 않은 미래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그는 H.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최악이었고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H. 이 H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할 예정이다. 어쨌든 H와 만나다가 6-7개월 가량? 만나다가 헤어지게 되었지만 헤어지기 한 달 전?즈음부터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인간관계의 권태기라 하는 관태기가 왔고 살짝 대인기피증도 오려고 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 불면증. 이로 인해 나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먹었다. 사람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도 왔었다. H와 헤어지던 날, 형용할 수 없는 쾌감과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동아리마저 탈퇴해야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은 커졌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모임만들기. 내 이름을 붙여 **팸 이라고 명명하고 모임을 만들기위해 어플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사진 이미지처럼 팸 원 모 집 24~29살 7명 규모 술/여행/영화/식사 연애목적 X 지속적인 패밀리 Line : ******* 나이대는 비슷했으면 했고, 너무 회원이 많아 관리가 어려운건 싫어서 한 두 테이블에 앉아 한 눈에 잘 들어오는 7명을 기준으로 했다. 술도 먹고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는 사이로 지내고 싶었고 연애는 원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모임 내에서 연애가 시작되면 언젠가 그게 문제가 되고 결국 누군가는 나가게 되므로 되도록이면 모임 내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을 했다(직접 하나하나 만나보며 면접봄). 연락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왔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했다. 40대 중반이라던지 번개를 찾는다던지 난교모임으로 착각한다던지.. 그런 사람들을 제하더라도 거의 3일만에 팸원을 다 구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반정도 직장인이 반정도였고 24살에서 28살까지. 좋았다. 그때는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시급 1만원짜리 인턴을 하고 있어서 여유롭게 생활할때였다. 덕분에 모임에 들어가는 지출이 부담스럽지 않아 모임장으로서 모임을 관리하기 좋았다.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보통 2주에 한 번 만나 술자리를 함께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많이 술을 마셨던 때가 아닌가 싶다. 여름방학 2달동안 정말 이쪽 술집에 많이 갔고 가는 날이면 1차 2차 술집 3차 노래방 4차 가라오케 5차 실내포장마차 어느정도 정해진 코스를 따라 4차, 5차까지 놀았다. 덕분에 아침해가 뜨면 첫차를 타고 집에 가는 영광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두 달 간 월40만원정도가 유흥비로 나갔지만 기분좋은 지출이었고, 방학이 끝나자마자 워터파크를 같이 간 일 외에는 만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정말 한 달에 한 번 볼까말까했다. 우려했던 일도 생겼었다. 팸 내 연애금지가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그런 규칙이 있다 한들, 사람들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억제하고 규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모임 내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고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대로 한 명이 먼저 나갔고 남은 한 명도 결국 나갔다. 이 문제로 사실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남은 멤버들은 다행이 잘 활동해주어 참 고마웠다. 가끔 집들이도 가고 생일파티도 하고 그냥 작게작게 만나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즉흥적으로 바다도 보러가서 조개구이도 먹고.. 이렇게 유지는 되는듯 했지만, 1년정도 되었을때 사실상 유령모임이 되어버려 단톡방에 공지하고 폭파했다. 이 모임을 만들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심리적으로 안정하게 해주었고 정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물론 모임장이었던 나는 지금도 멤버였던 친구들과 종종 연락하고 만나고 지낸다.  이 모든 시작은 H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H에게 고맙지는 않다.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다. H 빼고.
연애 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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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아내와 살다가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는 썰
여동생 아이디를 빌려 글을 씁니다. 제목 그대로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이혼을 원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한데 답답한 마음을 익명으로 털어라도 놓아야 살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제 아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희미한 명암만이 구분 가능한 정도로, 실명과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선천적 장애는 아니고, 아주 어릴때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때 사고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조금 절기도 하지만 이는 크게 보이지 않은 정도입니다. 결혼 전 아내는 장애인단체에서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제가 대학생일때 봉사활동을 갔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계속 친한 지인으로 지내다가 제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직장이 생겨 돈도 벌고 안정을 찾았으니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는 말로 대시를 하였고 1년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명 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정말 견딜 수 있는지, 아내의 장애와 그 인생을 본인의 것으로 짊어지고 갈 자신이 있는지만 묻고 제가 그렇다고 하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아내를 품어주었습니다. 오히려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참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사랑 하나로 극복하고 결혼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제가 아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결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연애 당시 아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 똑똑하고 당찬 사람이었고, 밝고 명랑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한 아내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각장애가 있다보니 집안의 모든 물건이 정확히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그 점에 대해 확실히 주의를 들었기에 조심하려 노력 또 노력하지만 한번씩 실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너무나 심하게 폭발을 합니다. 맨 처음 폭발했을때, 신혼생활 시작한지 일주일도 채 되기 전입니다. 항상 티슈를 두는 소파 귀퉁이에 손을 뻗었는데 티슈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막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제가 무슨 일이냐 묻자 티슈 두는 자리에 왜 티슈가 없냐며 저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쌍욕이었습니다. 개만도 못한 인간, 말귀를 못알아어으니 귓구멍을 찢어야겠다는 식의 정말 소름돋는 욕들을 공중에 질러댔습니다. 아내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봐서 저는 얼어붙어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티슈는 제가 옮긴 것이 아니고 소파 귀퉁이에 있던 것이 바닥에 떨어져있었습니다. 한시간에서 두시간 사이 정도? 욕을 하고 바닥에 발을 굴러대며 화를 주체하지 못한 아내가 간신히 진정이 된 후에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겠고, 아내는 이렇게 심하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으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이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주로 집안일은 제 담당입니다. 밥, 청소, 빨래, 쓰레기버리기 등등... 가끔 아내가 돕는 건 빨래개기, 이불개기, 간단한 집정리 정도입니다. 주방에는 불과 칼이 있으니 위험하다고 몇번의 사고가 있었다고 말하기에 제가 부엌일을 자처했고, 청소를 하려해도 간단히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는건 외에는 제가 맡았고, 빨래는 오염의 정도를 잘 구분하지 못해 힘들다 하기에 제가 담당하기로 하고, 큰 불만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너무 고맙다며 천사를 만났다며 행복해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걸 품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결혼 1년차... 하루하루 노예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연봉은 4천만원 초반입니다. 결혼 후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어 외벌이입니다. 8시반 출근이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7시쯤입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씻고 밥을 합니다. 제가 밥상을 다 차리면 아내를 불러 함께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7시반쯤 집을 나섭니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7시입니다. 다시 밥을 하고, 아내를 불러 함께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본격적인 집안일을 합니다. 격일로 하루는 청소, 하루는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고 장보고 온 재료들을 다듬습니다. 여기까지는 불만없습니다. 그리 살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일을 하는 내내 아내의 눈치를 봐야합니다. 뭐 하나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며 폭발합니다. 제가 차린 밥상에 앉기만 하고 밥을 먹는데 혹 국이 뜨겁다 느끼면 자신을 무시해서 너무 뜨거운 국을 내어 입을 데었다고 화를 냅니다. 반찬이 맘에 안들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내가 밥을 안한다고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내 입에 안맞는 음식을 먹이는 건 아닌지?라는 말도 하며 화를 냅니다.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늘 답답했습니다. 얼마 전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날 비오는 날이어서 저는 부침개에 막걸리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동료들이 전집에 간다기에 같이 갈까 싶었지만 그날따라 전화너머 아내 목소리가 너무 안좋기에 차마 말을 못꺼내고 일찍 집에 갔습니다. 집에서 해먹으려고 김치전 거리를 만들었고, 불 위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 상태였습니다. 그날 아내가 또 폭발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여분의 휴지를 두는 곳을 더듬었는데 여분의 휴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채워넣는걸 잊은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수에 비해 너무 심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저는 불위에 후라이팬을 둔 상태로 뛰어가 휴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불 위에 후라이팬이 있는 상태여서 불안한 마음에 휴지를 얼른 주고 얼른 주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후라이팬을 체크하며 불을 조절하는데 갑자기 등뒤로 휴지가 날아왔습니다. 휴지는 후라이팬에 맞았고, 후라이팬이 뒤집어지며 뜨거운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발등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자신이 기분나빠있는데 충분히 사과하지않고 휴지만 냉큼 주고 돌아간 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고, 그래서 자신이 화가 났다고 합니다. 제가 화상을 입은 것도 저의 잘못으로 인해 파생된 일이므로 제 탓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습니다. 이제 도저히 당신과 한집에 살아가기가 힘들다, 이혼하자 했더니 집안의 모든 것을 부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아내를 피해 다른 방에서 잠을 자며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앞으로 아내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말에 마음 아프셨겠지만 믿고 허락해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여 차마 말씀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그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년만에 무너진 내 자신도 바보같고, 판단력 부족도 바보같았습니다. 여동생에게 상담했습니다. 그동안 그런 일들을 전혀 몰랐던 여동생은 많이 놀랐고 그리고 그날 여동생이 짚어줘서 알았는데 그 사이 제 머리에는 원형탈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의 스트레스를 이해한 동생이 여자대 여자로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집 저녁식사 자리에 여동생이 와서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여동생이 말꺼내기 힘든 일이지만 언니에게 부탁이 있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두 사람 누구 못지 않게 사랑하며 시작한 결혼생활인데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며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본인에게도 알려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여동생이라 편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 해결책을 찾고자 이야기했는데 시누질하는 거냐며 자신은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라며 아내는 소리를 지르고 친정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기를 붙들곤 이대로 못살겠다고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소리높여 울었습니다. 놀란 장인어른 장모님이 달려오셨고, 처형도 함께 왔습니다. (아내는 언니가 한분 계십니다) 아내가 전화하고 1시간 안에 모두 제 집에 모였습니다. 그때까지 아내는 거실에 앉아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쉬지않고 한자리에서 엄청난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는 아내를 보고 여동생은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모습, 제가 말하지도 않았고 보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결혼 전후로 우리 가족과 함께 했을때 아내 모습은 밝고 차분하였기 때문입니다. 처가댁식구들이 들어오자 아내는 나와 이혼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장모님과 처형이 감싸안으며 아무리 달래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형이 저에게 뭔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아내가 워낙 불붙듯 날뛰는 상황이라 대화가 되진 않았습니다. 결국 장모님과 처형이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장인어른만이 남아서 저와 10분정도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묻기에 그동안 아내의 폭언에 시달렸고, 며칠전엔 물건을 집어던져 기름에 화상까지 입었으며, 이것 또한 내 잘못이라며 사과조차 없다, 그동안 경제적인 일과 살림사는 것까지 내가 도맡아 하면서도 아내에게 뭐 하나 요구한적 없는데 정신적 학대까지 지속적으로 당하다보니 더이상 결혼을 유지할 길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장인어른은 한숨을 푹푹 쉬시며 일단 애가 진정이 안되었으니 애한테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야기 나누어야겠다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 제가 장인어른께 드리는 말씀까지 고스란히 보고 들은 여동생은 펑펑 울며 저의 이혼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결혼이란 건 한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평생 의지하며 살아가야하는 일인데 저는 이 사람과 정말 더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 아내는 친정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동안 잠잠하다가 처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 대신 사과한다며 저를 달래더니 제부가 와서 한번만 굽혀주면 애가 들어갈거라고 합니다.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카톡이 옵니다. 아내였습니다. (아내용 전용pc가 우리집과 처가댁에 한대씩 있습니다. 그 pc로 인터넷과 메신저를 사용할 줄 압니다.) 와서 무릎꿇고 싹싹 빌기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으름장이었습니다. 아내의 메시지가 제 폰에 들어왔다는 것조차 끔찍하여 당장 지우고 싶었지만, 이제 이혼을 생각하기에 다 증거가 될까 싶어 남겨두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정까지 다 떨어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죄스러운 마음으로 부모님께도 알렸고, 본격적으로 이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처가댁에서는 어떻게든 다시 붙이려고 노력하시는데 아내는 아직도 이따금 카톡 보내면서 이런다고 돌아갈줄 아냐고, 나는 니가 사죄하기 전까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앞뒤 안맞는 말을 구구절절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법원에 같이 가자는 말에는 답이 없습니다. 결국 합의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이혼소송을 준비하려 합니다, 법쪽으로는 전혀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 막막하지만 변호사부터 선임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조력자는 제 여동생입니다. 주위 모두가 이제 저를 욕합니다. 시각장애인인 불쌍한 아내를 버리는 남편쯤으로 매도를 하는데 제게 일어난 1년간 노예살이같던 신혼생활을 하나하나 알릴수도 없고 답답합니다. --- 몸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인 분이셨네요ㅠㅠ 1년 버틴 것도 대단해..
나는 게이다 : 10. 부담스럽게 하지마시오
작년 12월에, 다시 혼자가 된 지 좀 지났을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대학원 입학전부터 미리 들어가서 연구실 생활을 하기도 했고 당장 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므로 깊은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그저 가끔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찾고 싶었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항상 있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멀어지고 떠나가고 잊혀지므로 다시 혼자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플을 다시 깔고 친구 탐색에 나섰다. 번개 쪽지는 가볍게 거절하고 인사엔 인사로 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결국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대화는 순식간에 끊긴다. 예전만큼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게 친구를 찾아야할까 의문이 시작될 무렵이면 신기하게 하나 둘은 연락이 이어진다.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게 하나 있다면 한국사람도 좋지만 외국인도 친구로 참 좋더라.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면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만 관계가 깊어지면 안된다. 깊은 관계일수록 심도있는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의 경우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로까지의 발전은 한국인에 국한되는게 나의 특징(?)이다. 12월 말에 연락하고 지내게 된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다. 흑인이기도 하고. 흑인 친구는 처음이라 그저 설레긴 했다. 친구로 지내기에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어쩌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어도 꽤나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더 좋았다. 애초에 나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연락을 시작한 목적이 처음에 연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연애 관계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친구가 필요했기에 충분했다. 투썸플레이스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이 보기에 외국인들은 다 똑같다고 느낄때가 많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리라. 나도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비주얼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바를 말했다. 영화배우같다고. 그냥 평범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분명한 것은 이 사람도 굳이 한국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게 너무 좋았다. 진짜 카페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한 듯 했다.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아마 그래서 도미노 피자인지 피자헛인지 미스터피자인지 미스터피자 같다. 미스터 피자에서 피자를 10분만에 먹고 나왔다. 나의 버스 막차 시간이 그랬고.. 가게 영업시간이 그랬다. 급하게 먹고 나와서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뭐랄까 외국인과 작별하는 인사는 포옹이 좋을까 하여 가볍게 포옹하고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부터 그와의 카톡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톡 빈도가 높아지고 연구실때문에 내가 답장을 못해도 카톡은 쌓이고 이런 질문했다가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엄청난 관심을 받다보니, 더 가까워지기 전에 꺼리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대전에 살고 솔로여서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는 없었고 그 날도 연구실을 가야했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와 만났다. 선물을 줬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을 좋아하서 뭘 좀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기쁘긴 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만나 식사를 함께했고 영화도 봤다. 어느날 갑작스레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풍기는 느낌과 뉘앙스에서 바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보다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이랑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건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자꾸 대답을 강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면 좋겠다고. 난 아직 어쨌거나 학생이고, 내가 자리잡을때까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돌아온 답변은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기다리겠다고, 지금처럼 일단 지내자고.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주는 애정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그만큼 되돌려줄 생각도 없기에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본 적도 없긴하다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난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그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세지에 답장을 하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지고 1차원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그럴수록 그도 섭섭해하리란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균형에 맞지 않을만큼 커져버리면 다른 한 쪽은 당황하게 되고 마음이 붕 떠버린다. 내가 지금 그렇게 떠버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걸.. 친구로 만난 이 만남은 친구로 지낼때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지만 일방향적으로 은근한 부담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또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만난다는게 얼마아 어려운 일인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만족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다가온다.
나는 게이다 : 7. 커밍아웃 스토리
요즘엔 확실이 예전에 비해 이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 내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첫 커밍아웃. 고3 수능이 끝난 시점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사친에게 고백했다. 약속을 잡은 시점부터 말해겠노라 다짐하고 발걸음을 나섰지만, 생각대로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파인트인지 쿼터였는지 싱글이었는지 먹었던 아이스크림 종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긴장되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하려던 말을 잊은건 아니지만 입밖으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무렵,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갈라지기 직전에 이야기했다. "나 게이야." 심장이 터질듯하면서도 발화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저 말을 툭 던지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듣고 미소짓던 친구. 문자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친구. 덕분에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즐겁게했지만 앞으로도 더 가깝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지금도 연락 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주변 친구 20명정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모두 잘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차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말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도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친구들에게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남달랐던 경험이 있다. 바로 친 형에게 말한 것. 형과 나는 1살 차이로 유일한 형제로 남들이 그러하듯 어릴때부터 많이 싸웠다. 하지만 형이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대화가 엄청 줄어버렸고 사이가 좀 멀어졌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형이 군대를 가면서부터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말수도 늘고 장난도 치고, 또 형이라고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드물게 같은 버스를 타면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는척 하지 말라고 장난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26살 가을 어느날,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에 둘이 같이 술먹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형이 무언가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왜 술을 먹자고 하는걸까?' 살면서 형이 먼저 같이 술 먹자고 한 것이 애초에 처음이었으니까 별 생각 다 하게 되었다.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버린건지. 많은 생각을 품고 긴장하면서 컬투치킨으로 갔다. 형이 먼저와 앉아 있었고, 여기 맛있다며 미리 시켜놨다고 했다. 나의 첫마디는 왜 갑자기 술먹자고 한거냐고. 이러는거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였다. 형이 대답하길 그도 이런 적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으로 같이 마셔보고 싶었다는게 전부였다.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했다. 형은 모르지만 아빠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해주면 진짜냐고 충격도 받고..ㅋㅋ (원래 형이 아빠엄마랑 대화가 많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 나는 갑자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다보니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어릴때부터 니네 형제는 여자 안만나냐고 둘이 무슨 게이형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얼마전에 이런저런 사유로 만나기 시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난 이미 헤어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세지보면 답이 나오므로.. 형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맞아." 형이 놀란 눈으로 "뭐?"  했다가 한 번 더 "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지금은 내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애매하지만 남자 좋아한다"고. 형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어쨌거나 형제니까 날 때리거나 상종을 안한다거나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봤다. 형은 "타이밍 좋게 잘 말했네." 라고 말했고ㅠ우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형도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유해지고 생각이 넓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만 아빠 엄마에게는 당장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친가족 중에 비밀을 터놓고나니 정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고 전보다 편해졌다. 아마 적지 않은 이쪽 사람들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주변에서 잘 받아들이고 잘 지내주어 생각보다 끝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는 게이다 : 14. 너에게 보내는 시(1)
종종 생각나는 표현들을 글로, 시로 남기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글이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해요. 갑자기 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생각나기도 하며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기도 해요. 그동안 적어왔던 글들 중에서 사랑의 감정을 진하게 담아두었던 글들을 하나 둘씩 풀어보려고 해요. 대상이 동일인물이 아니더라도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너에게 보내는 시(1) 1. 공명 너를 향한 나의 외침이 그대에게까지 미치지 않더라도 이 떨림이 이 진동이 공명이 되어 그대를 강렬하게 흔들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외침이 그대를 흔들 수 있다면 그 흔들리는 손길로 날 어루만져 주길 지금 이 순간, 그래서 난 같은 속도로 같은 힘으로 다시 외친다 이과 감성이 많이 남아있어서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감정의 표현을 자연현상이나 과학적인 현상으로 비유할때 정말 이해가 가기 쉬운 것들이 많아요. 2. 눈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대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지요?.."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 눈물 흘리게 해줄래요?" "그만 울어요. 눈 붇겠어요." 사랑은 눈물을 타고 흘러 서로의 마음을 마르지 않게 적신다. 중학생 때, 미술시간에 나무작품을 만들며 새겨 넣었던 문구를 본 너는, 꽤 오래된 나의 말에 답변을 해주었어.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지만 너는 답변을 해주었고, 꽤나 인상적이었어.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