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jsdud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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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너 라는 단어 속에 잔가시가 많이 박혀있다. 사실 사람이라는 단어에, 관계라는 단어에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가시가 숨어있어서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이미 가시 돋힌 당신은 벌써 가시 박힌 당신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기도한다. 돋아난 가시에 찔려 눈물 흘리지 않기를.. 내가 아는 당신의 생은 분명히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인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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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긴 쪽지
어느 부부가 사소한 싸움이 큰 싸움이 되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글로 적기로 했습니다. ​ 그런데 남편은 다음날 출장을 가게 되었고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차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내일 아침 5시에 깨워 줘요’라고 쪽지를 주었습니다. ​ 이튿날, 남편이 아침 눈을 떠보니 벌써 7시가 훨씬 지나 있었습니다. 깨워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아내에게 화가 잔뜩 난 남편이 아내를 깨워서 따지려고 하는데 자신의 머리맡에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 “여보, 벌써 5시예요.” 대부분 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발단은 바로 ‘말’입니다. ​ 특히 친밀한 사이일수록 더 쉽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순간적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해지는 말은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분풀이기 때문에 결국 서로의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됩니다. ​ 그래서 ‘화해’의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현명한 화해를 통해서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어 보세요. ​ ​ # 오늘의 명언 당신의 적에게 늘 화해의 문을 열어놓아라. – 발타자르 그라시안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대화#말#부부싸움#화해#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5화
"......" 어색함. 들숨 날숨의 소리마저 들려오는 정적.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으로 오디오를 채워봅니다. "크흠, 흐읍 큼" 하지만, 영양가 없는 헛기침 몇번으로 풀릴 리 없었죠. 내 옅은 수를 알아챘는지, 엘베는 내 예측보다 반 템포씩 느리게 내려갑니다. 이제 고작 7층. 이대로 1층까지 견디기엔, 4.7km 해저 수압과도 같은 어색한 기류에 뭉개질 판입니다. 지금은 이겨낼 때다.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서윤: ".....해줄래?" 아, 내가 먼저 꺼내려고 했는데.. 그와중에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정확히 듣지도 못했습니다. 나: "응? 뭐라고 했어?" 서윤: "......" 서윤이가 다시 말해주길 기다려보지만,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나: "아직 그 동네 살아?" 서윤: "으응." 나: "아, 그렇구나." 애써 붙인 말이 맥없이 툭툭 끊깁니다. 이러다 없던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아요. 하필 또 사면이 거울로 되어있어서, 작은 손짓 하나까지 다 보입니다. 이제 2층이다. 조금만 더. 문이 열리기도 전에 문앞에 바짝 서있다, 재빨리 발을 내딛습니다. 그나저나 아까 서윤이가 뭐라고 한 걸까. 다시 물어볼까.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 하는데, 뒤에서 살포시 내 소매자락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혹시 서윤이도? 서윤이의 돌발 행동에 조마조마한 기대를 가지고 뒤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헛된 기대라는 것을 알아차렸죠. 고개를 숙인 채, 표정을 감추는 서윤이. 혹시나 낯부끄러운 말이라 쉽게 꺼내지 못하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소매를 잡은 서윤이의 가녀린 손 끝에서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밖으로 낼 수 없는 그녀의 속앓이가 얼마나 깊은지. 나: "괜찮아 서윤아, 말해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머뭇거리다,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서윤: "비밀로 해줄래..?" 되묻고 싶었습니다. '비밀'이라는 의미를. 하지만 서윤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나를 심연에 빠뜨렸고, 모든 상황을 되짚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전 회의에서, 또 엘레베이터 안에서. 같은 공간에 같은 고민을 겪는 줄 알았는데, 서윤이의 고뇌는, 우리의 재회가 아닌 내가 있음으로 일어날 앞으로의 상황들이었나 봅니다. 아, 아까 엘레베이터 안에서 못 들었던 말이 이거구나. 듣지 말 걸. 나: "다,당연하지. 그리고 시나리오에 큰 의미 두지마. 소재가 필요했을 뿐이야." 초라하다. 나 혼자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서윤: "미안해." 나: "서윤아, 미안할 게 뭐있어. 그나저나 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가봐야겠다." 죄책감에 휩쌓인 서윤이의 모습. 그녀가 풀 죽은 모습을 보일수록, 애써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는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집니다. 서윤: "정말 미안해, 오빠." 그만. 더이상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서윤이의 마지막 말에 귀를 닫은 채, 억지로 걸음을 떼어냅니다. 머리가 고장난 채, 상가를 빠져나와 얼마나 걸었을까요. 무엇이 내 발을 붙잡는지, 걸음을 멈추고 괜시리 뒤돌아 봅니다. ...... 저만치 멀어진 곳에 보이는 서윤이. 한 남자의 마중을 받으며 상가를 빠져나옵니다. 서윤이가 소중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 남자의 표정과 다정한 손길. 남자의 아늑한 품 아래, 평온해 보이는 그녀. 잠시동안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품에 있는 그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현실 같지가 않았어요. 따스한 노을빛 아래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그 남자와 서윤이. 아득해질 때쯤이었을까요. 나도 뒤돌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목적과 이상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걷다 근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부지런히 지나쳐가는 사람들. 경적을 울리며 급히 지나치는 버스. 복잡한 세상과 달리 내 눈과 귀는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딜 가야할지, 모든 사고가 멈춰있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늪에 빠져들던 찰나에, 지나가던 어린 아이가 실수로 손을 툭 건드렸어요. "아, 죄송합니다!" "......." 아, 내가 왜이러지. 가슴이 일렁입니다. 어린 아이의 사과 한마디가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시발 고작 그게 뭐라고 진짜. 기다렸다는 듯, 쉴 새 없는 울음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슬픔인지, 그 끝이 어디인지. 차라리 날이라도 울적하지, 이렇게 평온한 노을빛 아래 왜 나 혼자만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걸까. 내게 닥쳐오는 슬픔을 부정하고자 발버둥 칠 수록, 되려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헤집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멎을 것만 같아요. 목놓아 울부짖지 않고서야, 가슴이 맺힌 이 응어리를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스물아홉'을 기다려 온 걸까요. 혹여 서윤이가 내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한 선으로 짙게 칠해왔는데, 나는 선이 되기엔 너무 작은 점이었을까요. 잔잔해야 할 저녁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고 나서야, 내게 오는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또 한번, 혼자만의 초라한 이별을 겪고, 눈물 젖은 걸음으로 제자리에 돌아갑니다. ****** 날이 저물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청승이라도 떠는 듯, 집 근처 포장마차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안주로 시킨 잔치국수가 잔뜩 불어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시간이 흘렀나 보네요. 둔해진 혀가 현재 내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아, 집에 어떻게 가지. ♬♪♬♪♬ 전화가 울립니다. 취기 때문에 흐려진 시야를 다잡고, 찡긋 구부린 눈으로 확인합니다. '은비♡' 얘는 이 시간에 잠도 안자나. 나: [여보세요.] 은비: [술 마셨어? 오빠 너, 어디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은비가 온다는 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누가 됐든 옆에 있어주길 바랬거든요. 떨어지는 빗줄기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냅니다. '토닥 토닥' 술기운에 귀가 이상해졌는지, 나를 위로 해주는 소리로 들리네요. 주책맞게 이게 뭐 하는 건지 참.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젖은 우산을 접으며 은비가 들어옵니다. 늦은 시간 급하게 나왔는지, 끈나시에 살이 비치는 얇은 흰색 가디건을 걸치고 왔네요. 나를 확인하곤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은비: "얼마나 마신 거야! 으휴 술냄새." 나: "은비, 안녕." 뭐가 그리 반가운지, 헤벌레 웃음이 피어납니다. 맞은 편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는 서윤이. 은비: "혼자 청승맞게 뭐하고 있어. 무슨 일 있니?" 나: "일은 무슨. 그냥, 빗소리가 좋잖냐." 괜스레 웃어보입니다. 한참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뭔가 짐작 한 듯. 은비: "괜찮아, 괜찮아." 애써 미소를 띤 내 표정이 구슬퍼 보였는지, 연민 섞인 눈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네요. 또 멋대로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가 가슴에 닿을 듯 파묻습니다. 은비: "괜찮아, 이리와." 소리없는 울먹임에 사정없이 몸이 떨려왔습니다. 쓰다듬던 은비의 손은, 점차 빈틈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은비의 포근한 온기가 만신창이가 된 내 심신을 뒤덮어주었고, 그제서야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가슴에 파묻힌 채 점점 안정을 되찾았고, 여전히 내가 안쓰러운지,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내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포근했습니다. 술기운 때문인지 이대로 조금만 더, 은비의 품에 머무르고 싶었어요. ...... 이후론 과음을 한 탓인지, 기억이 없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있긴 있었는데, 음... ****** 다음 날 아침. 숙취가 없는 편이라, 생각보다 개운하게 눈을 떴습니다. 분명 듣기 좋은 물소리에 깬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그나저나 어제 집에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은비는 집에 잘 들어갔을까. 갈증을 풀기위해, 냉장고로 향하려는데... 화장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급히 신발장을 확인하니, 29년 인생, 단 한번도 소유해본 적 없는 신발입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사이즈, 230? 화장실 문 앞에는 내 집에 존재할 수 없는 끈나시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날 법한 짧은 트레이닝 바지가 놓여있습니다. 기억의 퍼즐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미 영멸한지 오래입니다. '덜컥' 화장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활짝 열리기 까지 1.5초정도의 시간이 있다. 이대로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황을 모면할까. 만약 힘조절 실패로, 침대로 던진 내몸의 무게로 인해 '덜컹'하는 소리가 난다면 어떡하지. 1.5초 안에 임무를 수행하기엔, 몸도 마음도 역부족. ...... 화장실 문이 활짝 열립니다. 뜨거운 수증기가 문밖으로 피어오르고, 나체로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고개를 반대 쪽으로 휙 돌립니다. 문밖으로 완전히 나온듯 한 마루바닥 소리. 그리고 나를 발견한 듯 놀란 의성어가 들립니다. 익숙한 목소리. 은비: "일어났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나: "야! 빨리 옷 안입어?" 왜 내가 더 다급한거지. 오히려 은비는 태연해 보입니다. 은비: "자고있을 줄 알았지, 바보야." 일시정지 한 채, 은비가 옷을 입기만 기다립니다. 하지만 동공만은 일시정지에 실패. 은비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엔 냉장고가 있습니다. 무광을 띤 냉장고지만, 손잡이 만큼은 손거울과 맞먹는 반사율을 자랑하죠. 가만있어 동공아. ...... 호흡을 멈춘 채, 빛의 속도로 냉장고 손잡이를 훑어보고 다시 정면을 응시합니다. 슥슥. 다행히 타올을 걸치고 있네요. 근데, 우리 집엔 몸에 휘감을 샤워타올이 없는데? 긴장감과 궁금증이 증폭됩니다. 하지만 난 이성적인 남자.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꼭 감습니다. 따듯한 수증기를 타고 풍겨오는 내음. 그 어떤 냄새보다 깨끗하고 싱그러운 향이 전해집니다. 꼭 감은 두눈으로, 풍겨오는 내음을 막을 도리가 없죠. 정말 좋은 향이 전해질 때, 기억이 번뜩 깨면서 눈이 휘둥그레 질 때 있잖아요? 샤워를 막 끝내고 나온 은비의 향은 내 눈을 멋대로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조금 더 노골적으로 손잡이를 보게했죠. 짧디 짧은 하얀 수건을 가로 방향으로,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쪽을 모두 휘감아 놓았네요. 충분한 볼륨을 뽐내면서, 얼마나 체구가 가녀리면 수건 하나로 몸이 둘러질까요. 1cm만 위 아래로 이동되어도 적나라게 보일 것만 같은. 옷을 입을 채비가 끝났는지, 감아 놨던 수건을 망설임 없이 풀어냅니다. 은비: "나 이제 옷 입는다. 볼려면 봐라." 이 자식 자꾸 쓸데없는 말을.. 나: "까,까불지마라." 최소한의 이성의 끈을 붙잡고, 냉장고 손잡이에 미련을 버립니다. 남자로서 참기힘든 갈망을 이겨내고, 의미없는 장식용 피규어를 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피규어는 아주 당당하게 은비쪽을 바라보고 있네요. 젠장. 잠시 후, 수건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냅니다. 그녀의 물기를 다 흡수했는지, 제법 둔탁하게.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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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며 다시 사랑의 여러 양상을 생각하게 된다. 이성애자인 극 중 최한결이 자신과 동성이라고 알고 있는 고은찬을 향한 사랑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지금 시대에 이런 드라마가 나온다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최한결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지금 역시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진행 중이지만, 2007년 당시라면 성적 지향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졌을 때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동성애냐 이성애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집중돼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인 최한결 스스로가 본인의 성적 지향이 알고 보니 동성애였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니고, 고은찬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됐는데 그의 성별이 그냥 남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만)인 것일 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설정이 결코 드라마, 소설에서나 가능한 판타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성애자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이다. 뭐 아무래도 나는 모든 상황(고은찬이 사실은 여성이라는 사실, 그래봤자 어차피 드라마 설정이라는 자각 등등)을 알고 있는 시청자의 위치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사랑의 형태가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닐 거다. 그간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여러 형태의 ‘사랑’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중 하나인 폴리아모리를 알게 된 뒤로는 어떤 한 여자를 위해, 혹은 어떤 한 남자를 위해 목숨 걸고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웃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건 그냥 이성애와 비(非) 다자(多者) 연애라는 하나의 좁은 형태에 국한된 일이기 때문이다. 통념에 길들여진 것일 뿐 유례없는 숭고함 같은 것은 아니므로. 또한 오로지 정상적인 형태라고 각인된 이성애가 스스로를 권력화하는 일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를 이제는 알기도 하고. 폴리아모리를 전적으로 이해하지도 않고,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도 여전히 의문은 들지만(실제로 폴리아모리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많은 모순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형태에서 분명히 배울 점은 있다. 비(非) 독점 다자 연애라고 흔히 정의되는 폴리아모리를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다자 연애로만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폴리아모리 정의의 방점은 ‘비 독점’에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문어발식으로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비 독점이기에 다자 연애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독점하지 않으니 상대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동시에 사랑해도 괜찮다는 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지 상대만을 사랑할지는 전적으로 내 권한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상대를 독점하지 않는 것이고, 나 역시 상대에게 독점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권력화하니 동성애를 차별하는 일이 생긴다. 이성애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성애만이 가능한 사랑의 형태는 아니라는 거다.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통념이 결국 상대방을 옥죄고, 구속하는 명분이 돼버리는 일도 많다. 나는 폴리아모리가 사랑의 형태라기보다는 건강한 사랑의 방식을 위한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하여 폴리아모리를 응원하는 편이다. 물론 그것을 편의로 악용하는 사례는 예외다. 아주 원론적인 얘기지만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둘러싼 아주 오래전에 끝나버린 명제일 테고, 15년이나 된 드라마를 이제야 보면서 치는, 늦어도 한참 늦은 뒷북이겠지만.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6화
'툭'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건. 고작 수건 따위가 내는 소리일 뿐인데 그 짧은 순간, 샤워실 안의 정경이 멋대로 그려집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내맡기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며 씻어내리는 모습부터, 샤워를 끝내고 상체가 훤히 비치는 거울을 마주한 채, 매혹적으로 물기를 닦는 모습까지. 야릇한 망상이 활개를 핍니다. 이 쓰레기 머리야, 그만좀 해. 정신이 채 들기도 전에, 속옷을 입는 듯 살갗과 란제리 원단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스윽, 스윽'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현악기보다 아름답고도 위태로운 연주 소리로 들리네요. 은비: "옳지, 잘 참는다." 아, 몸의 모든 성근육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움찔거립니다. 나: "다,다 입었냐?" 은비: "아니, 아직 위에는 안입었어." '꿀꺽' 팬티를 입는 것 보다 다소 격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내 시야에 보이지 않던 은비의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요. 소리없이 침을 삼키며, 시야를 왼쪽 아래로 조금 내려봅니다. ...... 노란빛 스탠드 조명을 배경으로, 속옷을 입는 은비의 그림자가 행위 예술을 하듯,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요염하게 움직입니다. 그 어떤 무용도 이토록 위태롭고 치명적인 선은 없을텐데. 애간장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해요. 고작 거뭇한 그림자지만, 상상만으로 이미 은비를 낱낱이 느낀 것 같습니다. 마저 속옷을 다 입은 듯, 손을 뒤로 하여 속옷을 채웁니다. '뚝' 은비: "다 입었다." 나: "마,마저 다 입어라.." 어제 입었던 끈나시와 허벅지가 훤히 들어나는 짧은 트레이닝 하의를 마저 입는 은비. 은비: "이제 뒤돌아도 돼." 여자와 한 공간에 있어본 적 없는 숫총각처럼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나: "어,어. 분명 옷을 다 입고 있는데, 왜 시선을 못 맞추겠지. 괜찮아, 진정하자. 난 은비에게 어떠한 사심도 없잖아. 은비: "부끄러워하는 거봐, 귀엽게." 나: "부,부끄럽긴 뭘."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조롱하듯 초밀착하여 희롱하는 은비. 손사래 치며, 외면할수록 더 바짝 붙어 이리저리 품속으로 들어옵니다. 은비: "왜 못봐? 왜애? 응?" 가릴 것 없이 모든 신체 부위가 맞닿습니다. 나: "뭐,뭐가. 아,아무렇지 않은데." 은비: "오, 진짜?" 물러터진 경계가 허물자,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내 발위에 자신의 발을 올리며 대롱대롱 내 걸음을 따라합니다. 은비: "우와, 오빠 복근 장난없다!" 물기 덜마른 촉촉한 머리칼이 뜨거워진 내 몸을 살금살금 건드리며, 손으론 내 복부를 더듬습니다. 아,위험하다. 나: "아, 뭐해, 저리가." 그녀의 골반 근처와 내 하체의 어딘가가 선명하게 맞닿았습니다. 분명 서로가 자세히 느껴질만큼 생생한 촉감으로.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내 몸에 꽉 붙어 이리저리 흔들며 장난치는 은비. 정말 이 이상은 안돼. 내 몸의 추태를 들킬 거 같다. 나: "아, 그만해. 너 진짜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이럴래?" 은비를 뿌리치고, 성급하게 어디든 앉을 곳을 찾습니다. 동선 상 가장 가까운 곳인 침대에 앉아, 자연스레 양 허벅지 위에 베개를 올려놓습니다. 휴. 은비: "우리 사이에 위험할 일이 남았나?"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답이 정해진 듯한 질문을 날립니다. 나: "그,그게 무슨 말이야. 장난치면 혼난다." 은비: "어제 기억 안나? 오빠가 어제 침대에서 나한테 했던 거?" 머리가 지난 기억의 흔적을 짜내려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 모함이다. 이성적인 내가 그럴 리 없어. 반사적으로 팬티 안의 감촉을 확인합니다. 일종의 습도라던지, 농축이라던지. ...... 까마득한 기억은, 거짓과 사실을 뒤바꿀 만큼, 사실도 거짓으로 혼돈할 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으깨버립니다. ... 정말 내가? 나: "미,미안하다. 진짜 기억이 안나." 침대 옆에 나란히 앉은 은비가, 참다 못해 터진 듯 호탕하게 웃어버립니다. 은비: "아, 웃겨. 진짜 놀릴 맛 난다, 오빠. 너무 좋아." 쪼그만한 게 몇번씩이나 날 가지고 놀아? 나: "너 진짜 죽을래? 나 진짜 화났어. 빨리 나가 너." 은비: "어제 얼마나 힘들게 오빠 집까지 데려왔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내쫓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저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왔을라나. 내가 주사가 없어서 망정이지, 휴. 나: "대신 앞으로 그런 장난치지마. 그럼 별일 없던 거 맞지?" 은비는 골똘히 눈을 굴리며 지난 밤을 생각하네요. 은비: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 나: "뭐? 그럼?" 은비: "글쎄, 말해주기 싫은데. 내 소원 들어주면 말해주지롱." 내가 또 이런 허수에 당할 듯 싶으냐. 어림없지. 음... 나: "알겠으니까, 빨리 말해." 은비: "아싸! 안지키기만 해, 죽어 아주. 어제 잠들기 전까지 서윤인가 뭔가 하는 여자애만 종일 불렀어. 그리고 나한테 '서윤아' 하면서 막 안기고 보듬고 그랬어 오빠가. 나: "또 거짓말이지 너." 은비: "오빠, 너 마음대로 생각해라." 잔뜩 심통이 나있는 듯한 은비의 표정. 은비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요.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며 본인에게 그랬다니, 은비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미안해지네요. 나: "미안해. 그냥 잠꼬대 였을텐데. 너한테 함부로 행동해서 미안하다." 한동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있습니다. 화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렵기만 해요.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구나! 나: "이거 먹고 화 풀어주라. 서윤... 아, 아니 은비야.."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망했다. 숨도 쉬지 않는 듯, 미동없는 은비의 뒷모습에서 전쟁의 서막이 피부로 와닿습니다. 나를 휙 돌아보는 은비. 금방이라도 분노에 찬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눈망울. 아랫 입술을 잔뜩 모은 채,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은비: "나 신은비라고! 서윤인가 뭔가 하는 애가 아니라고 나는! 진짜 자존심 상해." 분노와 서러움이 뒤섞인 은비의 표정. 나: "아, 미안하다. 내가 아직..." 은비: "왜 오빠 너는 서윤인가 뭔가 걔만 생각하고 걔만 부르냐고! 아, 울기 싫은데 진짜." 나: "......" 여기저기 놓인 짐을 휙휙 급하게 낚아채고, 현관으로 나서는 은비. 설움이 멈추지 않는지, 입고 왔던 가디건을 얼굴에 품고 훌쩍이며 집 밖으로 나갑니다. 다급하게 엉거주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뒤따라 갑니다. 얼마나 빨리 내려갔는지, 주택 계단을 벗어나 골목을 내려가고 있는 은비가 보입니다. 두손을 입가에 대고 힘차게 은비를 부르려다, 목에서 턱 하고 막혔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이게 맞는 걸까. 괜한 행동으로 불을 지피는 건 아닐까. 곁에 둘수록 은비의 상실감은 더욱 커질테고, 그것에 비례하게 나 또한 미안함에 편치 못할텐데. 모았던 두손은 맥없이 툭 떨어지고, 깊은 한숨과 함께 복잡한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올라갑니다. 왜 유독 은비를 향한 행동은 갖가지 이유와 근거가 필요할까요. 아직은 이 불편함을 정의할 수가 없네요. ****** 오디션 심사 2시간 전. 무거운 마음으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원래라면 기대에 부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게 채비했겠지만, 어제 하루 사이에 각기 다른 두 여자의 파동으로, 여파가 극심한 탓에 차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오디션 당일인데, 컨디션도 의욕도 반토막입니다. 어제 공원에서 얼마나 울어 재꼈으면, 목이 칼칼한 게 쉰 목소리가 나오네요. 그래도 오늘이 영화에 일조하는 것도 마지막이고, 더이상... 서윤이를 볼 일도 없을 테고. 미련없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일거양득이겠죠. 억지 화이팅을 가득 불어넣고 오디션장에 들어갑니다. 홍감독: "어, 김작가 왔네." 나: "안녕하십니까." 홍감독: "아직 캐스팅 디렉터랑 안왔으니까, 미리 배우 프로필 보고 참고해." 두터운 파일을 건내받고, 품에 꼭 쥔 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생각보다 조촐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스테이지를 생각했는데, 대학로 소극장 느낌에 가깝네요. 빈의자에 앉아 받은 프로필을 열어봅니다. 우와, 오늘 이 배우 실물 영접하는 거야?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하드캐리한 배우잖아. 미쳤다, 미쳤어. 로코물의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배우도 있네요. 나이가 조금 있어서 걸맞진 않아보이는데..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배우도 있어요. SNS에서 벨런스 게임에 항상 등장하던데, 빚이 30억이어도 다 갚아주고 만날 수 있다는 그 배우. 헛웃음이 나오네요. 내가 이런 배우들 앞에 앉아 심사를 하는 꼴이라니. 정작 월세 살이에 확연한 미래도 없는 나하고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 텐데. '철컥' 문이 열리더니 홍감독과 함께 캐스팅 디렉터와 기타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이 들어옵니다. 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안녕하세요. 홍감독님께 말씀 들었어요." 홍감독: "자자, 슬슬 시작하지. 시간 다 됐지?" 스텝으로 보이는 분이, 심사 테이블 바로 옆에 두 대의 카메라를 거치해줍니다. 아마 영상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거겠죠. 한마디로 카메라 빨. 우와 '알렉사 미니LF' 엄청 비싼 카메라로 아는데, 역시.. 홍감독의 손짓에 오디션이 시작되고, 첫번째 배우가 들어옵니다. 티끌도 놓치지 않기 위해 초집중 상태로 배우를 탐색합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역시 베테랑인 걸까요. 정돈 안된 거뭇한 수염 곳곳에 나있는 허연 수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연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카메를 휙 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듯 배우에게 시선을 끊고 다음 프로필을 봅니다. 다음으로 들어온 배우. 이번엔 두 분 다 유심히 보는 듯 했지만, 대사를 뱉기 전, 호흡에서 이미 아웃입니다. 모든 감정의 시작은 호흡이라고 하죠. 어느새 30명가량의 배우들이 속전속결로 나가떨어집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배우가 들어옵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남자사용설명서'의 그 배우죠. 두 분 다 눈을 떼지 못하고, 배우의 연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흡족한 웃음을 짓는 두 감독. 홍감독: "잘 봤고요. 다음 거 해보시죠." 다음은 '지정 연기' 입니다. 한마디로 직접 지정해준 연기를 선보여야 하죠. 사실 '지정 연기'는 연극 영화과 대학 입시에서나 보는 것인데 이번엔 홍감독이 특별히 지시했다고 합니다. 홍감독의 애착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죠. 바로 '스물아홉의 우린'에서 중요 장면 중 하나인 서윤이와 나의 이별 씬. ...... 눈을 지긋이 감으며 감정에 몰입하는 배우. 심호흡을 크게 내쉬더니, 준비가 끝난 듯 보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7화
우리의 이별씬. 서윤이와 헤어지던 날. 애석하게도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들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그녀의 매마른 가슴에 단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결국, 등 뒤에 꽃을 숨긴 채 차마 건내주지 못했지만요. 그날은 유독 방 안에 서린 침묵이 두려웠습니다. 꽤나 오래 전부터 암묵적인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마침표가 오늘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눈치 없는 척 그녀를 맞이했고, 묘하게 지쳐보이는 서윤이의 눈동자는 자꾸만 우리의 끝을 앞당기는 것만 같아, 초조한 마음에 괜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지막이 나를 불렀어요.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는 듯 애처롭게. 불안을 예기한 듯 매초마다 감기는 눈꺼풀로 서윤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서윤이의 어깨 너머로 선반 위에 있는 투명한 꽃병이 보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 외로이 시들어 버린 꽃.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 너무 늦었구나, 내가. ...... 처음 서윤이이게 저 꽃을 선물했던 날이 생생해요. 무뚝뚝 하기만 했던 나에게 받은 꽃이라며 조심스레 유리병에 옮겨 담고, 뭐가 그리 애중한지 웃음꽃이 만개 했었는데.. 시들어 버린 꽃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알게되었죠. 우리에게 남은 생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때 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번져왔습니다. 더 시들기 전에 더 예쁜 꽃을 가져다 줄 걸. 그 꽃에 담긴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속으로 삼키지 말 걸. ...... 그렇게 둘은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숨죽였습니다. 암담한 침묵이 우리를 집어 삼킬 때 쯤, 이슬진 눈을 뒤로 하고, 밝게 웃으며 서윤이에게 말을 건냈어요. '이제 저 시든 꽃 좀 버려. 남은 향도 없겠다, 바보야.'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아는지, 서윤이의 연민 섞인 눈에서 닦을 새도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럼에도 난 웃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가득 차있는 서윤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으니까요. 그간 우리의 추억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정말 어찌나 소중했는지, 어찌나 사랑했는지. 끝이구나, 정말로. '그만 좀 울어, 자꾸 우니까 못 가겠잖아. 웃는 얼굴 좀 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등 뒤에 숨긴 작은 꽃송이는 전달되지 못한 채,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큰 심호흡을 내뱉고, 곧이어 배우의 연기가 시작됩니다. 지정해준 대사엔 별다른 지문이 없기 때문에 배우 스스로의 분석이 필요했을 겁니다. 서서히 붉어지는 눈가와 코끝. 숨죽인 가운데 첫 음을 뗍니다. "......" 숨죽여 속으로 삼키고 싶은 말을 억지로 토해내듯, 대사 마디마다 아픔이 느껴집니다. 슬픔을 딛고, 애써 침착하게 안녕을 고하는 듯 하지만 그 속에 애절한 포효가 들려옵니다. 끝끝내 터져버린 울음.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과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모든 대사가 뭉개집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사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의 감정이 모든 걸 대변했으니까요.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웃어야만 했죠. 속은 갈기 갈기 찢겨도, 그래야만 했어요.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여운이 살아있는 듯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한동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 이후로 또 다시 속전속결로 배우들이 떨어져 나가고, 고작 서너 명의 '지정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읊조리듯 애써 덤덤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 시린 한기가 가슴을 도려낸 듯, 울부 짖으며 표현하는 배우. 온전한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전하듯 표현하는 배우. 정말이지 모든 배우가 감명깊은 연기를 선보였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우리를 고스란히 그려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 생각보다 긴 시간 끝에 오디션이 끝났습니다. 얼추 추린 듯, 해당 배우들의 프로필을 단상에 올려놓습니다. 홍감독: "이렇게 셋 정도." 캐스팅 디렉터: " 저는 얘 말고, 마지막으로 했던 얘로 해서 셋이요." 홍감독: "김작가는 어때." 나: "예 뭐, 워낙 연기가 다들 훌륭하셔서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열띤 토론을 하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저 불난 장에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이네요. 언제쯤 결정나려나, A4 용지 빈 곳에 의미없는 동그라미와 네모를 홀린 듯 그리고 있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웅얼웅얼 뭉개져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한 2,3여분 지난 거 같은데... "......." "저기, 김작가님?"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습니다. 잠시만 방금 날 부른 거 같은데. 홍감독: "김작가, 어이 김작가!!!" 나: "아, 네!" 홍감독: "장난하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 "아, 죄송합니다." 홍감독: "어때, 김작가는. 느낌 오는 얘 있어?" 나: "......" 원래 내가 자격지심이 있었나.. 이분들과 나의 격차를 알기에 작은 의견 하나 뱉는 것 조차 괜한 눈치가 보입니다. 홍감독: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봐." 그래, 시원하게 뱉자. 나: "어, 같은 이별이라도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통증은 다 다르잖아요. 오로지 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텐데, 그 고유의 색이 너무 연하지 않나.. 유심히 눈동자를 굴리며 되짚어 보는 두 감독. "글쎄,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봐요." 나: "마지막 그 순간에도 웃지..않았을까요. 피눈물이 흐를 만큼 괴로움과 비통함이 솟구치지만, 제가 만약 극 중 남자라면 그 위에 밝게 덧칠한 웃음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홍감독: "이유는?" 나: "글쎄요.. 두렵다고 할까요. 만남의 끝이 눈물에 젖어있다면 그간 남녀가 쌓아온 추억과 이야기 마저 슬픈 기억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아요. 실은 엄청나게 행복했으면서도요. 깊게 생각에 잠긴 듯한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멍하니 극 중 상황에 본인들을 대입하는 듯 합니다. '피식' 홍감독의 입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홍감독: "그래, 슬픔 위에 웃음을 덧칠한다라.." 나: "자신의 가엾음은 뒤로 할만큼, 온전하게 좋아한 여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기도 하고..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유심히 듣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립니다. '허허~' 홍감독: "너 왜 이제와서 이런 말하는 거야? 초장부터 말을 하던가, 사람 민망하게 말이야. 콱!" 나: "예? 아, 죄송합니다." 급작스레 성을 내시니 영문 모를 사과를 했지만, 곧 알게되었죠. 내 말이 비수가 되어, 그들이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따끔하게 찔렀다는 걸. 히히 통쾌해라. "......" 너무 크게 한방을 먹였나..? 갑자기 무거워진 오디션장.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기류. 머쓱함에 고개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홍감독은 어떤 고뇌를 하는지 팬을 휘리릭 휘리릭 돌리기만 반복합니다. 그러다 나를 휙 보고, 다시 고뇌에 빠집니다. 또 다시 나를 휙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뭐,뭐야? 왜 자꾸 날 쳐다보는 거지. 홍감독: "저기, 기,김작가. 저 단단한 사람이 왜 더듬으며 날 부르는 거지? 징조가 좋지않다. 나: "네?" 홍감독: "잠깐만 저 앞에 나가봐. 뭐, 의자랑 정리도 해야되니까.. 올라간 김에 저기 기준선에 한 번 서봐." 갑자기 왜요? 정말 왜요? 캐스팅 디렉터 역시 물음표가 만개한 표정으로 홍감독을 봅니다. 나: "예? 저긴 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손짓으로 휙휙 무대를 가르키며 대신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경직된 팔 다리로 벨런스를 잃은 채, 무대에 오릅니다. 무대에 선 나를 힐끔 힐끔 보더니 ,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귓속말로 대화를 나눕니다. 아니, 이 사람들 무슨 작당을 벌이려고. 홍감독: "저기 카메라 좀 한 번 봐봐." 나: "아니, 감독님 카메라는 또 왜..?" '똑똑' 반대편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끼이익'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이리저리 확인 후, 들어오는 조감독이 보입니다. 홍감독의 지시가 있었는 듯, 얇은 용지 몇장을 건내줍니다. 그리고 자리에 내가 없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무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조감독: "엥 김작가님, 왜 거기 계세요?" 홍감독: "조용히 혀라." 눈치 없는 철부지 조감독은, 홍감독의 암묵적인 협박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억양을 보아 저 말은 곧 '입 닥치고 나가' 일텐데. 조감독: "아, 알겠다. 김작가님이 직접 보여주려는 거구나! 역시 작가님,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건가." 뭐야, 내가 연극영화과 전공인 걸 어떻게 알지? 대학 졸업하고 어디 말해본 적이 없는데. 나: "예? 보여주긴 뭘..." 차마 말을 다 하기 전에 불쑥 홍감독이 튀어나옵니다. 홍감독: "뭐? 김작가, 연기 전공이라고? 맞아?"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리 듯,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 듯한 홍감독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나: "아,네. 맞긴 한데.." 조감독: "나무 엔터에 아는 후배가 있는데, 김작가님 대학 동기라고 하더라고요. 소문이 자자하셨다는데, 중대에 햄릿이라고." 대학 동기들은 졸업 후에 담 쌓고 지냈는데, 누구지. 그나저나 저 눈치없는 조감독은 실실 웃고 있네요. 내 흑역사를 감히.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 "감독님? 잘못된 정보인 것 같습니다. 절대 아니에요." 홍감독: "김작가, 머리 좀 까볼래?" 나: "머리는 또 왜.." 저 앞에 내 행동을 숨죽여 기다리는 조감독, 홍감독, 디렉터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 하, 끝내 소심하게 살짝 앞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 뭐야 저 알 수 없는 표정들은. 아, 집가고 싶다. 멍한 정적이 이어지다 눈칫밥 없는 조감독이 먼저 입을 엽니다. 조감독: "부럽다, 작가님." 캐스팅 디렉터: "잘 생겼네, 우리 작가님. 맑으면서도 울적한 묘한 분위기도 좋고" 조감독: "왜 연영과 졸업하고 배우 쪽으로 안가셨어요? 한자리는 꿰차셨을텐데. 아, 글재주가 더 좋았나?" 부끄럽다. 숨고싶다. 학창 시절에 아주 가끔 저런 말을 들으면, 호다닥 자리를 피하거나 주제를 돌리곤 했었는데. 여기서 도망갈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나: "아닙니다.. 저 이제 내려가도 되죠..?" 할 말이 남은 듯이 연달아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내는 홍감독. 홍감독: "음, 보여줘." 나: "뭘요?" 홍감독: "보여달라고, 딱 한번만." 엄청난 결의를 다진 듯 한 홍감독의 눈빛이 날 쏘아붙입니다. 나: "아니, 감독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홍감독: "그 이별 장면. 거두절미하고 딱 한 번만." 나: "아니요 감독님. 저 졸업하고 한 번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감도 다 잃었고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감독: "김작가, 내가 지금 골이 막 흔들려. 어떤 배우가 와도 이 영화의 감성을 못 담을 거 같아." 나: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홍감독과 나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집니다. 홍감독: "알겠어.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볼테니까, 참고 정도만 하게. 부탁 좀 하자. 혹시 또 모르지, 제작 참여 기회가 올 수도." 제법 달콤한 발언이지만.. 서윤이도 마음에 걸리고.. 모두가 나를 기다리는 이 압박감.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저들에게 사형 집행을 당한다. 나: "하.. 진짜 아닌데 이거." 홍감독: "30분 후에 보자고. 부담갖지 말고 준비 하고 있어." 자리를 비워주는 하이애나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멍하니 상황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을 떠올리자..
당신이 그 인물이 되라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을 위해 힘썼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희망조차 짓밟힌 일본강점기에도 ‘대한 사람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며 많은 청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참교육자로도 대표됩니다. ​ 어느 날 안창호 선생님은 청년들에게 강의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한 청년이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인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말했습니다. ​ “저는 시대를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계몽되어서 민족을 이끌고 일깨울만한 지도자가 어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 말을 들은 안창호 선생님은 정색하며 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 “자네는 정말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네를 비롯한 청년들이 인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네. 자네는 민족을 이끌만한 인물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하였으며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그리고 인물이 없음을 불평과 탄식하기 전에 먼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해 보게.” 소인(小人)은 탓을 남에게 던지고, 대인(大人)은 탓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 삶을 살다 보면 불평, 불만할 상황이 많지만 그럴 때 남 탓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남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길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꾸어라.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당신 마음을 바꾸어라. 그리고 불평하지 마라. – 마야 앤젤루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불평#불만#남의탓#현명함#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습니다
17세의 한국 탁구 최연소 국가대표와 58세의 룩셈부르크 최고령 국가대표선수의 맞대결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펼쳐졌습니다. ​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한국 여자 탁구의 에이스이자 미래로 떠오른 탁구 신동 신유빈 선수와 올림픽만 5번째 출전하는 니 시아리안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 사실 이 두 선수의 만남은 처음이 아닙니다. 4년 전, 스웨덴에서 두 선수는 처음 만나 대결을 펼쳤고 그때는 니 시아리안 선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이러한 사연으로 이 경기는 시작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 7세트까지 진행되는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졌으며 결국 승리는 41세의 나이 차이와 이전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신유빈 선수에게 돌아갔습니다. ​ 그러나 승패를 떠나서 두 선수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경기는 보는 이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 특히 탁구는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이 중요한 종목임에도 58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예리한 실력을 보여준 백전노장 니 시아리안 선수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 신유빈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니 시아리안 선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희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어려운 상대였지만, 그래도 같이 풀어나가면서 좋은 경기를 했던 거 같아요.” ​ 그리고 니 시아리안 선수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신유빈 선수와 정말 좋은 경기를 했고, 다시 만났는데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네요. 그녀는 새로운 스타입니다.” 비록 경기에서 졌지만, 니 시아리안 선수는 자신과 신유빈 선수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습니다. 계속 도전하세요. 즐기면서 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 생각과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이는 숫자일 뿐, 더 이상 한계가 되지 않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뭔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하는 사람이 있다. – 애런 코헨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젊음#건강한생각#건강한삶#나이#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고구마로 전하는 마음
제 아이는 고구마와 사탕을 아주 좋아하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데 간혹 생각 이상의 행동으로 저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남편은 결혼 후에 병을 얻어서 몸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아픈 남편 병간호와 아이까지 키우면서 직장생활까지 하고 있습니다. ​ 어느 날은 야근이 있어서 늦게 귀가를 했습니다. 보통이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이가 뛰어와 반겼겠지만 늦은 시간 탓에 남편도 아들도 자고 있는지 집 안이 깜깜하더군요. ​ 외투를 벗어 내려놓고는 거실 불을 켰습니다. 여기저기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 옷 등을 치우려는데 식탁 위에 웬 쟁반이 놓여 있더군요. ​ ‘아들 녀석이 또 음식을 먹다 남겨 놓았나?’ ​ 그런데 이 쟁반 위에… 군 고구마 한 개, 사탕 두 개, 우유 한 잔, 그리고 하얀 종이가 놓여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삐뚤삐뚤 서툴게 쓴 아들의 편지였습니다. ​ ‘엄마, 직장 다니느라 힘들죠. 아프지 마세요. 이것 먹고 힘내세요. 엄마 사랑해요.’ ​ 저를 위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남겨두었다는 것이 너무 기특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부모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을 통해 사랑의 표현과 새로운 세상을 배웁니다. ​ 이처럼 자녀의 존재는 부모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아이와 함께 부모도 성장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따뜻한 추억일 것이다. – 존 스미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자식교육#자식#사랑#배움#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토박이말 살리기]1-66 뒤울이
[토박이말 살리기]1-66 뒤울이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뒤울이'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북풍'과 같은 말이라고 했지만 보기월은 없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북새풍', '북풍'을 비슷한 말이라고 했지만 보기월은 없었습니다. 다만 '북풍'을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 "북풍이 몰아치다."는 보기가 있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그날따라 북풍이 세차게 몰아쳐서 날씨가 유난히 추웠다."는 보기월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풍'을 써야 할 때 '뒤울이'를 떠올려 써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북풍'과 비슷한 말로 '뒤울이' 말고도 '뒤바람', '댑바람'이 있다는 것도 알아 두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뒤'가 북쪽을 가리키게 되었는지는 옛날부터 우리가 남쪽을 보고 집을 지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풍'을 가리켜 '앞바람'이라고도 하지요. '남풍'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 '마파람'은 '마주 부는 바람'이라는 뜻의 '맞바람'이 바뀌어 된 말이라는 풀이가 있다는 것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더위달 스무아흐레 낫날(2021년 7월 29일 목요일)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뒤울이 #북풍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끝’
2020 도쿄올림픽이 한창인 가운데, 네티즌들 사이에서 최고의 유행어로 손꼽히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 선수의 ‘끝’입니다. ​ 한국 양궁의 3관왕 여부가 달린 지난 7월 26일,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이전 세트를 다 이긴 한국 선수들은 3세트에서 무승부 이상의 성적만 내면 금메달이 확정이었습니다. ​ 3세트의 첫 세 발은 대만과 한국이 나란히 모두 9점을 쏜 상황이었고, 이후 한국 선수들은 김우진 선수가 9점, 김제덕 선수가 10점을 쐈고, 대만은 10점, 9점, 9점을 쐈습니다. ​ 이제 마지막 주자인 오진혁 선수가 9점 이상을 내면 금메달을 확정 지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 마흔이 훌쩍 넘은 베테랑 오진혁 선수는 그렇게 마지막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외쳤습니다. ​ “끝” ​ 화살은 그대로 10점을 명중했고, 경기는 끝났습니다. 한국이 이번 대회 3번째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오진혁 선수는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 순간을 말했습니다. ​ “그때 제가 ‘끝’이라고 한 게 맞습니다. 양궁 선수들은 쏘는 순간 10점을 맞히는 느낌이 납니다. 마지막 화살을 쏠 때는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 오진혁 선수에게는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입니다. 오랜 훈련으로 현재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 4개 중 3개가 끊어진 상태이며 이마저도 80% 정도 파열됐습니다. ​ 그러나 양궁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진통제로 버티며 올림픽에 출전하였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남자 최고령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오진혁 선수. ​ “이제 저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는데, 어린 선수들과 있다 보니 나이를 잘 못 느낍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안 해서 못하는 것이지,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오진혁 선수가 활이 날아가는 마지막 순간에 무심히 내뱉은 말, ‘끝’ ‘끝’이라는 말이 이토록 격조 있고, 멋지게 들릴 수 있을까요? ​ 선수로서는 많은 나이와 아픈 몸… 숱한 악조건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코로나19로 지친 대한민국에 커다란 힘과 용기를 준 오진혁 선수와 남자 올림픽 대표 양궁 선수들… 그리고 지금도 국위 선양을 위해 멋지게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선수를 응원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부지런히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라.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것이다. – 노만 V. 필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실패#시련#노력#보상#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4화
서윤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어, 꽁꽁 얼어붙은 눈이 햇볕에 서서히 녹아들 듯 점차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둘만이 느낄 수 있는 고요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은 왠지 모르게 아늑했습니다. 마치 그리운 서로가, 그간 잘 지냈냐는 안부를 대신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그저 서로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홍감독: "뭘 그리 뻔히 보고있어. 둘이 아는 사이인가?" 홍감독의 물음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서윤이가 보입니다. 나: "그럴리가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윤: "안녕하세요..." 파도가 몰아쳐도 서윤이를 지켜줄 방파제가 되고 싶고, 온갖 비바람과 오물이 튀어도 대신 맞아줄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홍감독: "그래? 아님 됐고. 슬슬 시작하지." 떨떠름한 분위기 속, 초점없는 눈으로 생각에 잠긴 서윤이가 보입니다. 불청객의 난입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두꺼운 콘티가 하나씩 앞에 놓여지고, 홍감독님의 주관으로 회의가 진행됩니다. 다들 콘티와 시나리오를 유심히 읽고 있네요. 시계 초침 소리와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원래 회의가 이렇게 진행되는 건가? 5분여간 지났을까요. 제작부로 보이는 관계자가 입을 엽니다. "몇번을 봐도 이 시나라오는 참.." 그러자 옆에 있던 분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순간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앞에서.. "뭐가 이리 세세해. 덕분에 장소 섭외 고민은 할 필요도 없겠네." 좋은 의미인가? 어리둥절 할 찰나에 홍감독님이 정곡을 찌릅니다. 홍감독: "김작가, 이거 본인 이야기 맞지?" 달아오른 열기가 서서히 얼굴 전체를 덮어옵니다. 안돼, 티내지마 얼굴아. 나: "아.. 아닌데요?" 홍감독: "아니긴 무슨. 본인 이야기 아니고서야 이렇게 글이 나오겠어?" 나: "아.. 아닌데.." 홍감독: "그나저나 진득하게 좋아했나봐. 궁금하네 그 여자." 눈을 마주치면 혹여 들킬까, 붉어진 얼굴로 저 아래까지 시선을 떨굽니다. 데칼코마니처럼 나와 같은 자세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서윤이. 오직 둘만 아는 진실이 우리를 작아지게 만듭니다. 열띤 회의가 진행되지만, 공황이라도 온 듯 단 한 음절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서윤이도 콘티에 시선을 두고있지만, 페이지가 멈춰있는 것을 보아 나와 같은 상태인 것 같네요. 그렇게 제3자에 의해서 우리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이어 우리의 첫만남이 이루어진 씬에 대해 논하기 시작합니다. 멍하니 얘기를 흘려보내다, 따끔한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안돼! 홍감독: "다시 봐도 강렬하네 첫만남이. 그럼 이것도 김작가 이야기?"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습니다. 나체로 거리에 내놓인다면 지금 딱 이 느낌일 것 같습니다. 나: "아, 아, 아닌데요, 정말 아니에요. 진짜로." 이유인 즉슨, 우리는 첫만남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선을 넘었습니다. 단연코 가벼운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날은 마치 판타지 세상에 빠진 듯 했어요. 강원도 속초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조용한 안식을 얻고 마음의 여유를 주기위한 곳이었죠. 복잡해진 머리를 풀 겸 방문했고, 서윤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리러 온 것을. 우연치 않게 창을 마주하는 긴 테이블에, 두칸 정도 띄고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5월의 햇살은 따듯했고, 그 빛줄기는 서윤이의 얼굴을 더욱 하얗게 애태웠습니다. 빛을 받은 눈동자는 연푸른 갈색을 띄웠고, 그 선명한 눈동자는 나를 끌어들였습니다. 명암 진 콧대는 그녀의 이목을 더욱 부각시켰고, 아른하게 빛나는 그녀의 은은한 연분홍빛 입술은 어떠한 채도로, 명도로도 표현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한 채로, 훔쳐보기를 한 두시간 지났을까요. 따스한 햇살은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나 봅니다. 하늘은 빛을 닫고, 가랑비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녀는 만지고 싶은 듯 손가락을 맞대었죠. 마치 그녀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빗줄기에 위안을 받는 걸까요. 숙연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니,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어떠한 언행도 용납해줄 것 같았습니다. 따스하게 손을 건냈고,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니지, 더 정확히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볼 때 부터죠. 그렇게 우리는 복잡한 '성인'이라는 겉옷을 벗고, 어린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우산 하나를 챙기고 비를 맞으러 밖으로 향했습니다. 토닥토닥 우산 위로 빗소리가 떨어지고, 우산이라는 작은 그늘 아래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무턱대고 걷다보니 속초 앞바다에 도착했고, 인적없는 아주 고요한 바다였죠. 우리는 그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나봅니다. 찰나의 고민도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우산까지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모든 근심을 싹둑 잘라내었죠. 차갑게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마음에 젖어든 불순물을 씻겨내렸습니다. 발가락 틈사이로 헤집고 들어오는 질퍽한 모래 마저 간질간질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내가 알고있던 행복이란 것은 모두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6살 짜리 해맑은 웃음으로 얼마나 뛰어다녔을까요. 하늘은 적막해졌고, 해변가 끄트머리에 있는 큰 바위더미들 앞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바위 틈에 잠시 몸을 숨겨 앉았고, 바다에 비친 푸른 달빛이 보일 듯 말듯 서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쁜 숨소리가 진정되고, 남아있던 웃음도 달아났습니다. 묘한 정적이 이어졌고, 그녀는 마치 첫사랑의 두근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내 목젖은 가만있질 못하고 자꾸만 침을 삼켜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젖어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죠. 하얀 티를 입고 있었던 그녀의 검정색 속옷이 천 조각 위로 너무나 적나라게 보였어요. 퍼래진 입술로 떨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가여웠고 그녀를 품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습니다. "......" 고요한 파도 선율에 홀린 듯,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았고, 낯선 손길에 잔뜩 경직된 채로, 가만히 멈춰있는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그녀의 코를 맞대었고, 이어 천천히 고개를 틀어 내려왔습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아슬아슬한 거리. 그녀의 차가운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개었습니다. 마주한 입술 사이로 미끌어져 내려오는 빗방울이, 투명한 맛과 함께 서로의 입안을 더욱 촉촉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주었어요. 서로의 혀는 부드럽게 뒤엉켰고, 다시금 가쁜 숨소리를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하얀 티 안으로 흐르는 물방울. 물방울을 따라 시선은 하얀 티 안으로 향했고, 검은색 속옷 가운데 하얗게 옹골진 그녀의 가슴이 보였습니다. 마치 속옷을 벗어도 지금 보이는 예쁜 형태 그대로일 것 같은. 심장과 머리가 일렁일 정도의 자극이 이어졌습니다. 나란히 앉아있던 나는, 무릎을 꾼 채 상체를 일으켰고, 앉아있던 그녀의 고개를 뒤로 휙 져쳐 입맞춤을 이어갔어요. 그리고 물방울을 따라, 아주 천천히 그녀의 티 안으로 손이 홀려들어갔습니다. 내 손길은 그녀의 속옷 안까지 침범했고, 속옷에 닿을 그녀의 가슴이 고스란히 내 손아귀로 대신해서 촉감이 전해졌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숨소리와 함께 나를 꼭 껴안았고, 이어 그녀의 허리춤을 받쳐들었고, 헐렁이는 플리츠 스커트 속으로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허벅지를 시작으로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깊은 곳에 가까워질수록 살결은 점점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선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골반. 그 근처에 위태로이 걸쳐있는 실크 느낌의 속옷. 갈고리 처럼 걸친 내 손가락을 따라, 서서히 말려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벗겨져 내려올수록 점점 더 나를 꽉 껴앉는 그녀. 잔뜩 겁을 먹은 듯한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소중했고, 윤활제 처럼 나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품을 준비를 끝마쳤어요. 그렇게 그녀는 어두운 모래사장의 적막 속에 나에게 몸을 맡겼고, 차갑게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더욱 본연적인 아름다운 육체의 선을 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생생할 만큼, 가히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판타지 세상에 있다온 듯 합니다. 그녀를 하얗게 애태웠던 따스한 햇살. 그녀의 사연을 물고 온, 창에 맺힌 물방울. 우리를 씻겨 내려준 가랑비. 우리를 간지럽히던 질퍽이는 모래사장. 우리의 안위를 보살펴준 바위더미. 우리의 내면을 들춰준 적막한 파도 선율. 모든 게 완벽했죠. 물론, 시나리오엔 이렇게 세밀하게 쓰여지진 않았지만요. 음, 나도 모르게 회상이 깊어져 버렸네요. 여튼! 지금은 참아주십쇼. 아니, 마음껏 꺼내도 되니 제발 서윤이 앞에서는 꺼내지 말아주세요. 어디 개구멍이라도 없을까요. 아니 쥐구멍이라도. 홍감독: "한 번 읽었을 때 느꼈던건데 말이야, 정말 서윤씨 캐스팅 잘했어." 서윤: "네, 네?" 홍감독 : "김작가가 묘사한 거나, 분위기나 서윤씨라 해도 믿겠어." 물컵을 들고 홀짝이던 서윤이가 놀랐는지, 콜록 콜록! 연달아 헛기침을 합니다. 홍감독: "김작가, 안그래? 아주 찰떡이야." 기침에 전염이라도 된 듯, 급작스럽게 나도 목이 턱 막힙니다. 이런, 컥 컥. 서윤: "자, 잠시 화장실 좀..." 붉어진 귀를 한 서윤이가 자리를 비우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홍감독의 부름에 담배를 태우러 테라스로 향합니다. 홍감독: "내일 잘 부탁해. 꼭 맞는 배우를 찾아야 영화가 산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네요. 그 꼭 맞는 사람 여기 있는데... 나: "네네." 휴식 시간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가 끝이 납니다. 인사가 오가고, 미팅실을 빠져 나옵니다. 다 같이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서윤이는 보이지 않네요. 지금은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요. 낯부끄러워서리... 엘레베이터가 도착하고, 꾸깃 꾸깃 다 같이 탑승합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삐삐삐! 이런, 인원 초과로 닫히지가 않네요. 눈치껏 재빠르게 내리고, 감독님들께 먼저 내려가시라 인사를 드립니다. 곧이어 옆 엘레베이터가 도착하고, 1층을 누른 뒤 구석에 기대어 섭니다. 숨 막히는 분위기가 끝이 나고, 회의 동안 뱉지 못했던 깊은 숨을 뱉어냅니다. 스읍 후~ 엘레베이터 문이 닫힙니다. 별 생각없이 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거의 다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네요. ...... 문이 열리며 서서히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 아... 서윤아... 놀란 듯한 서윤이는, 제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동동거립니다. 괜한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탑승하지 않을 사유를 찾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있을리가요. 나: "타, 서윤아." 결국 함께 탑승한 채, 문이 닫힙니다. 서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 벽에 바싹 붙어 같은 곳을 응시합니다. 일정한 템포로 내려가는 층수. 9층..  8층.. 부디 이 정막을... 서윤: "......"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