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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훈족의 아틸라
훈=흉노 학설은 역사학계에서 거의 정설로 취급받는 학설임. 100퍼센트라 말할 근거가 없을 뿐이지 근거가 1. 한나라의 압력으로 북흉노가 몽골 초원에서 밀려나서 서진하고, 그 후에 유럽 동쪽에서 훈이 등장 2. 흉노는 예전부터 이란측 사서나 동유럽쪽 사서에도 등장하며, 거기서 '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3. 유목민족의 대이동 사례는 언제나 많았음. 예를 들어 흉노랑 같이 살던 월지라는 유목민족은 흉노의 압박에 밀려 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으로 대이동을 하다가 결국 인도에 정착해서 쿠샨 왕국을 건설 4. 흉노와 훈의 문화적 동질성이 있음. 유물로 구리솥이 발견되는 등 5. 훈은 분명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왔는데, 이때 아시아에 유목국가는 흉노밖에 없었고 무자게 거대했음 인종상 좀 다르다는 근거가 약간 있다고 들었는데, 흉노라는 이름은 민족이름이 아니라 국가이름이었음. 이를 생각하면 인종문제는 큰 문제 없음 (후대 국가가 전대 유명했던 제국의 이름을 따오는 사례는 굉장히많음. 라틴 민족의 로마제국의 이름을 딴 게르만족의 신성로마제국도 있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고려(=고구려)와 조선이란 국명이 두번씩 쓰였고) 우리나라에서 유목민족 관련 세계적 권위자가 정수일 선생과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 두명이 있는데, 두 분 모두 흉노=훈 가설은 정황상 거의 맞는 가설이라고 하심 (출처) 텍스트는 원본 출처의 댓글에서 가져왔습니다 거 참 흥미진진하군
조선시대 겸상의 위험성
재밌게 봤지만 제일 아래는 사실 와전된 거라고 해서 그것도 붙여봄 - 아버지에게 밥사발을 던지면 죄가 될까, 안 될까? 조선 중종 임금 때 아버지께 밥사발을 던진 백성이 있었다. 중종 13년인 1518년 사재 김정국이 황해감사로 나갔을 때 아비에게 밥사발을 던진 아들이 관가에 잡혀 온 일이 있어 시끄러웠다. 황해감사이던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내가 황해감사로 가 있을 때 연안(延安)에 백성 이동(李同)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 자는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와 말다툼이 일었는데 그만 아비에게 밥사발을 던져버렸다. 이웃사람이 이를 보고 아들을 잡아서 내가 있는 감영(監營)으로 보내왔다. 그런데 이 자가 추국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이다. 나는 죄수에게 ‘너의 죄는 사형이 마땅하다. 너는 부자간이 하늘과 땅의 위치요 임금과 신하의 자리란 것을 모르느냐? 아비가 없으면 어찌 네 몸뚱이가 있겠느냐? 따라서 부모를 잘 모시면 효자가 되고 욕하거나 구타하면 악역이 되는 것이다. 너는 밥사발로 아비를 때렸으니 땅이 하늘을 범한 것이나 다름없고 신하가 임금을 범한 것과 같다. 법에 비추어 사형이 당연한 고로 내가 너를 사형에 처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죄인이 말했다. "저는 아비에게 밥사발을 던진 것이 사형에 이르는 죄인지 몰랐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형죄인지 알았다면 추국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었을 일이지 제가 자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실상 아비의 소중함이 하늘과 땅의 관계인지는 몰랐습니다. 평소에도 아비와 서로 다투다가 욕을 하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아비의 자리가 이렇게 높고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관찰사님께서 저에게 벌을 주지 않으신다면 이후부터 마땅히 아비를 잘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정국은 ‘“가르치지 않고 형벌하는 것은 백성을 속이는 것이니 이는 바로 백성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비록 천성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어리석은 백성이 어찌 저절로 능히 깨우치리오. 옛적에 덕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질서를 잡고 춘추를 읽고 백성을 가르친 것은 진실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라고 말하고는 스스로를 반성하여 곤장을 쳐서 사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비로소 법을 집행하는데 외길로만 고집할 수 없음을 알았다”고 말이다. - 그냥 겸상하다가 밥그릇 던진 거였지만 어쨌든 꿀잼 ㅋ
히틀러의 최측근인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나치 전범
테오도어 모렐 히틀러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던 최측근이자 히틀러의 주치의였다. 히틀러가 얼마나 신뢰했냐면 자기 최측근중 하나인 카를이 '저새끼 돌팔이에요'라고 하자 바로 카를을 좌천시켜버렸으며 평소에도 자기부하들 전부를 의심해서 좌천시키거나 견제했는데 테오도어만은 무한신뢰하면서 심지어 독일이 패망하자 테오도어에게 '자네 집으로 돌아가라'하면서 따로 탈출시켜줬을정도 테오도어는 독일 패망 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나치당에 있으면서 전혀,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치소속 의사들은 독가스 실험등 천인공노할 인체실험을 많이 햇는데 테오도어는 이런일에 일체 관여안했으며 심지어 당원들끼리 암투를 벌이는 정치싸움에도 일절 관여안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히틀러의 건강만 챙기는, 의사로서의 본분만 다했었기 때문이다 이랬기 때문에 히틀러조차도 무한한 신뢰를 보였던것 하지만 사람됨과 별개로 진짜로 돌팔이는 맞았다고 한다. 아래는 테오도어가 만성두통, 치통 및 고통을 호소하는 히틀러에게 매번 처방해주던 약의 목록이다 브롬화칼룸(현대에서는 애완동물약으로 쓰이는것) 마전자(신경흥분제,사용하면 위가 상하는 부작용있음) 아트로핀(독가스해독제) 나트륨바트피탈(수면제,쇼크부작용있음) 시네프린(식욕억제제,신경부작용있음) 캐모마일 테스토스테톤 페르페나진(조헌병치료제, 부작용으로 파킨슨병 증상이 일어날수있음) 카페인(주사기로 직접 주입함) 벨라도나(마약성분있음) 대장균 코카인&아드레날린(이걸 안약으로 처방함) 임페타민 메스임페타민(현대의 마약) ..... 보시다시피 거의 독살수준의 처방을 해왔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히틀러를 독살시키기 위한 연합군의 스파이라는 말도 들었다. 테오도어는 전범재판에서 처벌을 받지 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집에서 죽는데 유언은 "그 친구들(생체실험을 했던 나치동료들)이 불쌍하구만..난 침대에서 죽는데..." (출처) 이정도면 아돌프가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고용한 거 아님?
대의를 위한 희생 레전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0년간 꾸준히 세계랭킹 TOP10 안에 있었던 한국 탁구계의 레전드 김택수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실력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함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돌연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선수 때문임 평소 후배 탁구선수 유승민의 잠재력을 눈 여겨 보고 있던 김택수는 유승민이야 말로 자신보다도 올림픽 금메달의 가능성이 더 큰 선수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유승민에게 자신의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바로 옆에서 그를 돕기위해서 자그마치 국가대표 선발전 1위로 따낸 자신의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유승민 선수의 전담 코치가 되기를 자청함 마침내 유승민의 전담 코치가 된 김택수는 당시 상대전적 0승6패로 유승민의 절대 천적이었던 중국의 왕하오와 결승에서 만날 것임을 미리 예측하고 밤낮으로 왕하오에 대한 분석을 하고 맞춤 전략을 준비함 그 결과는? 유승민은 생에 처음으로 왕하오를 잡고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부문의 금메달을 획득함 당시 유승민 만큼은 아니지만, 스스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유승민을 전담 코치했던 김택수 코치의 미담도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고 스포츠계의 아름다운 사제지간 하면 아직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콤비임 (출처) 오 진짜 멋있네요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하다
디지털 풍화 레전드
"노란 우유소녀 신드롬" Yellow milkmaid syndrome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우유를 따르는 소녀 ' 미술을 잘 몰라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을 그림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다른 여러 그림처럼 이 그림도 이미지 파일로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고 원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버전들이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 어쩌다 생겼는지 모르지만 색깔이 누렇게 뜬 저화질 버전이 인터넷에 등장함 사실 원본 그림은 전혀 저렇게 안 생겼고 보존도 잘 됐지만 왠지 옛날 명화니까 저럴 거 같잖아? 사람들은 서서히 이 그림이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고 인터넷에 엄청 퍼져 검색하면 저 그림만 넘쳐나는 현상이 발생함 그러다가 사람들이 궁금해서 미술관에 저 그림을 보러가게 됨 당연히 그 오래된 누런 그림을 보러 두근거리면서 갔는데 멀쩡한 그림이 눈앞에 있는 거임 ???? 그걸 보고 아 인터넷 그림이 잘못된거구나 하고 깨달았을까? ㄴ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미술관이 가짜 그림을 걸어놨다!" "진짜를 걸어놓아라!" 하고 항의하기 시작함 작품이 걸려있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괜히 욕먹고 이게 뭐임??? 하면서 조사를 해봄 당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그림 이미지는 10000개 정도의 버전이 있었는데 그 중 거의 전부가 그 누렇게 뜬 버전이었다고 함(오른쪽 아래) 이 사건은 미술관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저작권 문제가 있더라도 잘못된 정보로 '오염'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에 제대로 된 고화질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함 대표적인 예가 구글 아트 앤 컬쳐 같은 사이트임(https://artsandculture.google.com/) (출처) 너무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것처럼 만들어놔서 실물을 넘어서 버린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