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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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음 달에 실릴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 필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중 한 명의 시인은 요즘 가장 핫한 시인 중 한 명인데, 전과 다르게 의사소통에 다소 애를 먹었다. 한 넉 달 전에도 원고 관련으로 통화를 하다가 안부를 물었는데 그가 문득,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었다. 물론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는 일이 흉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그냥 지나칠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주위에도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물며 시인의 우울이란 놀라울 일도 아니어서, 또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한 내가 특별히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오늘 통화를 해보니 정서가 많이 불안해 보였다. 그 증거를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워졌다. 현재 밀려있는 원고들이 많아서 조금 미룰 수 있는지, 그리고 곧 시집이 나오는데 시집이 나온 뒤 시집에 실린 시를 발표할 수는 없어서 기간이 겹치지는 않을지, 또 시의 형식이 다소 실험적인데, 편집상 무리는 없는지, 뭐 이런 것들을 조율했는데, 설명이 부족한 것 같으면 재차 설명해주었고, 내가 당장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은 우선은 다시 검토해보자고도 얘기했다. 아주 힘겨운 통화를 마치고, 문득 걱정이 되었다. 꽤 오래전이지만 몇 번인가 모임에서 직접 본 적도 있고, 그때의 모습들은 지금처럼 불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보여준 모습들은 거의 무관한 나로서도 우려가 되었다.
나 역시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해도 좋을지, 단순한 우울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것들을 오래 겪어본 바로서, 또 당장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만 해도 그런 기분이 극심해져 운동도 하게 된 측면이 있는데, 그때 내가 자주 하던 말과 톤이,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보여지는 느낌들이 그에게서 자꾸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 같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무시해버릴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자꾸만 지난날의 내가 보여서.
거듭 말하지만 함께 시를 쓰는 동료라는 것 말고는 그의 삶에서 거의 무관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함부로 보탤 말도 없다. 함부로 보태서도 안 된다. 무관하고 사무적인 관계로서 그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고를 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조율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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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공원의 운동장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가 들어왔다. 운동장이 꽤 커 보이는데, 적혀있기로는 한 바퀴가 612m라고 한다. 한 바퀴를 걷고 한 바퀴를 뛰는 식으로 여덟 번을 돌았다. 2.4km 정도를 뛴 셈이다. 운동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석 달을 러닝머신에 의지해 뛰다 보니 체력이 많이 늘었다. 내일은 피티 30회가 되는 날이다. 마지막인 셈이다. 아마 조금 더 연장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는 코치님과 운동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올해는 무조건 운동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내년에는 내년 몫의 계획들이 있어서. 걷고 뛰면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방송을 들었는데, 최근 오스카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한 소개였다. 노마드의 삶을 다큐 형식으로 푼 영화인 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물리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노마드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 그러나 그것은 자유를 갈망해서가 아니라, 늘 지금 이곳을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릴 것을 알기에 먼저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둬야 할까. 나는 어디로든 가야 하므로 내게 부지런히 연료를 넣고 있는 거다. 내일도 쉼 없이 걷고 뛰어야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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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보았다. 가능성이 많은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하는데, 결정적인 순간들에 클리셰가 고개를 내밀어서 아쉬웠다. 그건 마치 예쁜 옷에 뚫린 몇몇 구멍들을 촌스럽고 조악한 무늬의 천 조각으로 엉성하게 덧대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겠지만, 장면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구성하도록 조금 더 고민을 거듭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영화를 구성하는 그 예쁜 요소들이 아쉬워서이다. 일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착오로 시작되는 서사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가능성을 품는다. 단순한 착오로 인해 아주 영리하게 확장되는 서사들이 종종 있고, 그중 수작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정도일 듯하다. 뭐 그 이후로, 특히 최근 그의 작품들은 <러브레터>를 만든 사람이 맞나 의심 들 정도로 안타까운 수준이지만. 여튼, 하지만 나는 용서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어떤 특별할 것 없는 드라마에 대한 인상적인 평을 본 적이 있는데, 크게 악한 인물이 없어서 좋더라, 요즘은 너무 잔인하고 악한 이야기들은 보기 힘들다는 식의 말이었다. 그렇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이 가끔은 필요하다. 순수한 어떤 것들. 순수를 가장한 엉성한 이야기들이나, 올바름을 흉내 내는 영악한 상업 논리 말고. 여튼, 영화를 보는 내내, 옛날이지만 너무 옛날은 아닌, 과거지만 너무 과거는 아닌, 그 근과거가 자꾸만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자꾸만 뭉클해져서 혼났다. 앞으로 계속 더 나이가 들면 그땐 정말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 감당해야 할까. 자꾸만 그 시절을 더 잘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아름다운 시절들에 회한이 남아서, 미치겠다. 어떻게 살아도 지난 시절은 안타깝고 눈부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이미 한 시절로 지나가 버리고 있는, 이 가혹한 시간들을 다 어떡해야 할까. 흘러가는 강물에 손을 넣고 하염없이 놓쳐버리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매 순간이 호시절인 것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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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이 쓴 <어른의 어휘력>을 읽고 있다. 저자는 문장을 이어나가며, 중간중간 재밌는 단어들을 소개하고 활용하는데 그중 유독 신선했던 것은 ‘잠포록하다’라는 말이었다. 이런 단어는 정말이지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예쁘다. 심지어 뜻조차도.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라는 뜻이다. 나는 볕 드는 맑은 날도 좋아하지만, 흐리고 궂지 않은 날도 좋아한다. 바람이 없고, 흐리지만 선명하며, 그래서 전에 없이 차분해지기도 하는 그런 날. 그게 바로 잠포록한 날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여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날씨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부연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날에 드디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었다. 잠포록한 날. 나는 잠포록한 날을 좋아한다. 오늘은 비가 올 듯 말 듯 날이 흐린데, 얼핏 잠포록한 날로도 보이지만 언제든 빗방울이 울컥 쏟아질 것 같기도 하고, 미약하나마 찬 기운을 얹은 바람이 느껴져 잠포록하다 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습작 시절에는 눈에 띄는 단어가 있으면 섣불리 시에 써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그건 단어를 내 것으로 채 만들지 못하고 쓴 것이라 영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잠포록한 날이 드문드문 찾아올 때 이름을 불러주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날을 소개하고, 그날의 이름을 소개하며 온전히 내 마음에 새겨지면, 어느 시구 사이에 이 예쁜 단어를 가만히 올려놓고 음미해보고 싶다.
한때 20대 이상의 커뮤니티를 휩쓸었던 작자 미상의 먹먹한 글 세 편 (스압주의)
1. 그 해 새벽 내가 살던 고향은 새벽이 유난히 짙었다. 동네 옆구리에 낀 바다가 새벽만 되면 해모(안개)를 짙게 끌어올렸다.  해모가 내려앉은 조용한 새벽의 동네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 녀석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새벽이 되면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 시덥지않은 놀이를 즐겼다.  하늘에 뜬 별을 누가 먼저 세나, 주차된 자동차들의 번호판에 숫자 7이 몇개나 있을까 같은.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새벽이 해모에 잡아먹히는 것이 싫었다.  나와 그녀석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빤스 한장만 걸치고 동네 절에서 찬물로 등목을 하며,  법당에 놓인 다과를 몰래 집어먹고 놀았다.  절 한 가운데에 위치한 아주 커다란 종이 있었는데, 햇볕이 뜨거운 날이면 그 안에 들어가 종 벽에 기대어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녀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동네 여기저기를 쏘다녔는데,  고모는 항상 그 모습을 보고 녀석과 놀지 말라고 나를 꾸지람 했다.  나는 오히려 그녀석의 다 떨어진 슬리퍼가 좋았다.  만약 녀석이 때깔 고운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면, 나는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내 신발은 항상 메이커가 없는 얇은 운동화 였으니까.  너희 엄마 창녀야? 그날은 처음으로 그 녀석에게 돌맹이로 얻어맞은 날이었다.  어느날 늦은 밤에 큰 상가 뒷골목에서 그 녀석 엄마를 본적이 있었다.  빨간 불빛이 새어나오는 유흥주점 앞에서 목욕탕에서나 쓰는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날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나도모르게 저 말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힘도 셌다.  돌맹이를 맞고 씩씩대는 나를 크게 넘어뜨리고 도망가는 녀석을 우리 오빠가 잡아다가 한바탕 패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 들어가 되려 오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곤 저녁밥을 먹고서 몰래 나가 아파트 입구에서 새벽이 될 때 까지 그녀석을 기다렸다.  그 때 나는 아홉살이었다.  나는 열아홉이 될 때 까지도 늘 같은 자리에서 그 녀석을 기다렸다.  십년이 넘도록 우리의 새벽은 여전히 짙었다.  우리는 항상 손을 잡고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온 몸에 해모를 묻혔다.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늘 어렸다. 그리고 우리는 늘 새벽이었다.  나른한 오후에 한수원 사택 옥상에 몰래 올라가 햇볕을 맞으며 선처럼 가만히 죽은 듯이 누워있을 때에도,  우리는 새벽이었다.  나는 가끔 우리가 혹시 남매는 아닐까 생각했었다. 녀석에게 그걸 말 했을 때 녀석은 크게 웃기만 했다.  나는 분명히 그 녀석이 속으로 '그래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고 믿었다.  고삼의 반틈을 그녀석과 새벽을 즐기는 것으로 보내고,  우리가 무얼 하며 돈을 벌어먹고 살지 고민하게 된 것은 여름의 한복판 이었다.  그해 여름엔 비가 많이 왔다. 어쩌면 올해 여름이 우리 인생일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그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은 노래를 하고 싶어했다.  솔직히 그녀석의 노랫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우리가 놀던 절에 가자고 졸랐다. 햇볕이 뜨거우니, 종 안으로 들어가자고.  그 녀석은 내가 알아 듣지 못하는 외국 노래를 계속해서 불렀다.  종 벽에 기대면 종의 반 허리 에도 안 닿던 우리 키가 10년 새에 종 끄트머리까지 부딪칠 정도로 자랐다.  우리는 무릎을 굽혀 불편한 모양새로 좁은 종 안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녀석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그녀석은 나의 제국이었다. 나는 녀석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했다.  녀석에게서 어떤 감정에 대한 대답을 한번도 듣진 못했지만  그녀석도 분명히 날 사랑하고 있을거라고 한번도 믿지 않은적이 없었다.  손을 잡고 새벽의 해모 속을 달리는게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우리는 그 후에도 이따금씩 새벽에 만났다.  하루는 동네 통닭집 오토바이를 몰래 훔쳐다가 바닷가를 밤새 달리기도 했고,  한벌뿐인 교복을 입은 채로 얕은 바다에 들어가 뻘에 박힌 조개를 주웠다.  용돈이 넉넉해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여유롭게 만나고,  비싼 레스토랑 음식을 먹으며 부모님 눈을 피해 여관방에 들락거리는 한수원 사택 애들보다는 우리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른살이 될 때 까지 서로 결혼을 못했다면 그땐 나랑 결혼하자.  졸업식을 앞둔 어느날에 내가 말했다.  나는 돈도 엄청 많고 화장실이 세개 있는 집에 사는 몸매 좋은 여자랑 결혼할거야. 서른이 되기 전에는 꼭.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죽고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졸업식날 까지 우리는 한번도 새벽에 만나지 않았다.  졸업을 하자마자 그녀석은 한수원에 취직했다. 보수가 꽤 많은 모양이었다.  내가 번화가로 일을 하러 나갈 때 마다 가끔씩 녀석을 마주쳤다.  옷도 좋은 옷을 걸치고 핸드폰도 고장나지 않은 최신 핸드폰을 가지고 다녔다.  적어도 녀석이 가난하게 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다음해에 호주로 떠났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 아버지가 나와 오빠를 데려갔다.  호주에 산지 3년이 지나도록 나는 한국어밖에 할 줄 몰랐다.  만일 그녀석이 열아홉때 종 안에서 불렀던 노래의 구절이 생각났다면, 영어를 좀 더 열심히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 동창의 동창을 건너 건너 받은 고등학교 동창회 소식에,  주저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연히 그녀석을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새벽이 없어진지 자그마치 5년이었다.  5년.  동창회의 밤이 깊어갈 수록 비만 줄기차게 내렸고, 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에서야 전해들은 이야기로 알았다. 내가 몇주 전 아침 호주인들과 답답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 녀석은 원자로 안에서 냉각수를 몸에 적시며 일했다.  그 녀석은 피폭(被曝)되었다.  호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녀석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새벽은 오늘도, 내일도 돌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의 관계가 시간이라면 우리는 새벽 세시였다.  하루 중 가장 어둡고 짙을 때 우리는 적어도 사랑은 아닐지라도 교감했다.  나는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석 처럼 불행 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함께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멍청한 기대도 한 적 없다. 그래도 이건 아냐.  내가 그 뒤로 그 녀석의 죽음 소식을 들을 때 까지 녀석을 한번도 찾아가지 못한 이유는,  우리는 새벽에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사랑을 하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제 영영 새벽을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래서 나도 아팠다.  누군가를 아픔으로 보듬고 슬픔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었다.  행복의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불행이 생기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 행복의 원칙이 태어날 때 부터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그녀석이었고, 녀석을 사랑한 나였다.  그 녀석은 피부가 뒤집어지고 머리털이 다 빠진채 암세포에 온몸을 잡아먹혀 죽어갔다.  그 녀석이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그 해 여름에 종 안에 들어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 노래를 불렀을 때라고 믿고싶다.  서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그 녀석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 어딘가에서 화장실이 세개 있는 집에 사는 몸매 좋은 여자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의 제국은 이제 군주가 없고, 새벽의 해모를 맞으며 뛰어다니는 고등학생도 없고,  종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없지만 내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아직도 종 안에서 그 해 새벽을 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발견했다. 대못으로 날카롭게 긁어 놓은 녹슨 낙서 자국을 종 안에서.  '새벽으로 가자'  2. 그 애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게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밖았다. 그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애를 보았다. 그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년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1일 딸기를 먹었다. 9월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4일 생일이다. 그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애 아버지는 그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애는 왼쪽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 쌓인 것을 그냥 들고 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애의 얼굴 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의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의 소머리에 징을 내려치면서, 하루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배인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애는 술집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그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참에 생색도 내고. 그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애의 누나는 나이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그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나한텐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애가 좋았지만 그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3. 내가 열병처럼 앓았던 그 애 내 열일곱 살 때 그 애는 이미 내 우주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에게서만 나는 묘한 냄새 같은 것이 있다.  집의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사랑에 둘러싸여 자란 사람은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그런 동류의 냄새를 기막히게도 잘 맡아낸다.  항상 외로움에 둘러싸여 자란 그 애는 내 냄새를 그렇게 맡고 내게 다가왔었다.  그 애는 또래 애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도 항상 어딘가 혼자인 듯 겉도는 면이 있었다.  나름 성격도 밝고 여자 애건 남자 애건간에 그 특유의 싹싹함으로 손쉽게 구워삶는 타입이었지만  정작 집에는 항상 혼자 돌아가고  남들 다 있는 핸드폰 하나 없이 항상 주말을 혼자 나는 그런 아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애는 결코 가난한 집 자식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 낡은 지갑 안에는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들과 함께 꼬깃꼬깃 접힌 편의점 영수증 따위만 어지럽게 굴러다녔지만  그 아이 아버지는 이 지역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으며  그 애의 어머니는 중학교 선생님 출신으로 근처의 나름 이름있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소위 여사님이었고  두 살 차이나는 그 애의 여동생은 피아노 전공으로  근교의 학생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고 다닌 장래의 기대주였다.  그 애는 내게 혹은 친구들에게 그런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지역 외곽에 있는 그 으리으리한 3층 주택 대신에  학교 근처에 조그만 자취방을 얻어 살았다.  3평이 좀 안 되는 그 습기찬 방에서는 가끔씩 곱등이도 튀어나오고  소위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도 심심찮게 기어나와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 애는 그런 벌레 따위보다 자기 가족들을 더 무서워했다.  성적 학대는 아니야. 맞고 자란 것도 아니야.  그래도 나는 우리 집이 너무 외롭고 무서워.  다가오는 그 애와 어렵사리 친구가 되고  어느 누구도 사귀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그런 것과 다름없는 관계로 발전하며  나는 그 애의 자취방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가끔은 학원까지 빠져가며 두드렸던 문이지만  사실 그 안에 들어가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등을 돌아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그 애는 티비를 봤고  내가 그 애의 만화책들을 읽으며 낄낄대고 있으면 그 애는 내가 빨아 놓은 제 빨래들을 갰다.  어쩌다가는 동네 비디오방에서 오래된 DVD들을 잔뜩 빌려와 보기도 했고  그러던 도중에 서로에게 기대어 발바닥을 서로 맞춰 보고는 했다.  나는 그 방에서 그 애와 키스를 하고 마침내는 그 애와 잤다.  미성년이라는 죄의식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까지 어떤 성적 경험도 전무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거 같다.  성관계 혹은 순결에 대한 어떤 명확한 개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딱히 그것들이 무섭지 않았고  그냥 연인의 사랑에 있어서의 당연한 수순을 밟는다는 느낌으로 그 애에게 안겼다.  지금 돌아보면 올바른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후회는 않는다.  사랑했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억에 있다.  그 애가 내 처음이라는 게 좋았다. 두 번째나 세 번째가 아니고  그 때까지 고요하게 지켜왔던 내 처녀성을 그 애가 앗아감으로서  내가 세운 그 아이 기억의 묘비에 한 줄 더 적어넣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어떤 관념적인 첫 번째가 아니라  몸을 섞음으로서 그 애가 정말 실체적인 기억이 되어 내 몸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게 좋았다.  그 애는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고  열일곱 겨울에 학교 숙직들의 샤워실 수건걸이에 고요히 목을 맸다.  1.6미터도 채 안 되는 그 높이에서 180을 웃도는 그 애가 그 낮은 곳에 목을 매며 얼마나 발악을 했을지  난 가끔 그 고통의 순간을 상상하고 또 곱씹어 보고는 한다.  어떤 말도 남기고 떠나지 않았지만  난 그 애 가족들도 끝내 밝혀내지 못했던 그 애의 자살 원인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그건 그 애가 처음 내게 다가왔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같은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외로운 냄새. 오직 느낌으로만 알아챌 수 있는 것들.  그 애는 또래 애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도 항상 어딘가 혼자인 듯 겉도는 면이 있었다.  기억에는 영속성이라는 게 있어  나는 그 애가 떠난 뒤 몇 년이 지나고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났어도  아직 제대로 남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상실의 고통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갔다 믿었어도  비슷한 향수 냄새를 맡거나 툭 튀어나온 목의 결후같은 걸 바라보다가 보면  그 사소한 요소들이 바늘처럼 내 기억의 주머니를 툭 터뜨려  나로 하여금 그 이성과 그 애의 얼굴을 겹쳐보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 내가 누군가를 또다시 사랑하는 게 무서운 건  내가 열일곱 살에서 영원히 멈추어버린 그 아이를 아직껏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이 트라우마를 똑바로 직시하고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는 이상  열일곱 겨울에 못박혀 있는 내 어떤 부분이 영원토록 성인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나 역시 알기 때문이다.  나와 어떤 관계의 종결점도 맺지 않고 그렇게 사라져버린 그 애 때문에  어딘가 정착할 듯 말 듯 애매하게 떠돌고 있던 그 애와 나의 관계성이 결국은 그 모호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앞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정착하려는 내 무의식적인 부분을 일부러 붙잡아 그 열일곱에 속박해 두려 하고 있음을  몸만 어른이 된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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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상대가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너무 극단적이라 어떤 얘길 해도 모든 것이 그쪽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 어떤 얘길 해도 어차피 그쪽으로 흘러갈 테니까. 그렇다면 어떤 대화의 시도도 거의 무의미하며, 그러므로 대화는 곧 단절된다. 뭐 그런 가치는 정치적 이념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흔치는 않지만 문학, 특히 시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지향하는 그 극단적인 가치가 다름 아닌 바로 '나'라면. 나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라면. 참 난감할 것이다. 그 난감한 사람 중 하나가 역시 부모라는 존재이다. 엄마를 떠올리자면 뭐 거의 그런 식이지만, 오늘 역시 그랬다. 가족 식사를 마치고, 엄마의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최근에 출간된 박완서의 에세이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다른 장르도 아닌 문학이라니. 나는 엄마가 문학 도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 웬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그건 순수하게 엄마가 문학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답은 그러했다. 생일 선물로 직장 동료에게 받은 거라며, 안 읽었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런 의도의 말을 한 게 아니다. 신간 한 권 구해서 읽는 게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엄마는 내게 자신의 것은 다 주고 싶다. 언제부턴가는 엄마의 물건 중 생소한 것이 보여도 그것에 대해 묻기가 조심스럽다. 돌아올 말은 뻔하니까. 가지고 싶으면 가져가라. 해준 음식을 먹을 때 칭찬하기도 두렵다. 싸줄 테니 가져갈래? 가져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곤란할 뿐이다. 뭐 뻔한 말이 돌아올 것을 역시 뻔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말한다. 맛있다. 그래도 그것이 부모의 기쁨인 것을 잘 아니, 퉁명스레 대하기도 어렵고, 내내 거절하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엄마와의 대화는 힘들다. 부모와 순수하게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뭐 그렇지 않고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한 부모자식들도 많겠지만, 우리 집안의 문제로만 따지자면 대화의 부재가 곧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것은 엄마의 잘못만도 아니고,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결국 해결책은 많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 뿐이다. 역시 가장 어려운 관계는 부모자식이다. 언젠가 어버이날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시도하는 모든 것이 불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불효가 될지라도 관계를 위한 많은 시도가 있어야 결국 친밀감을 형성하고, 미약한 효라도 끌어낼 것이다. 오월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달이다.
몽이 동생 라운이
몽이를 보내고 매일매일 눈물바람하며 밥도 못먹고 급기야 살까지 빠지신....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동생을 데려오기로 예전부터도 몽이 가면 난 못견딜거 같으니 바로 새 강아지를 들여야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번엔 유기견을 데려올까 하여 포인핸드도 깔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했는데 생각만큼 쉬운일이 아니었다 집근처엔 보호소도 없을뿐더러 내가 차가 없다보니 남양주나 포천 이런곳에 갈 수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유기견은 거의 중대형견이다 보니 코딱지만한 원룸에선 불가능하다는 나의 결론으로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샵에서... 아무리 예전같은 불법공장은 사라졌다 해도 어째튼 맘이 좀 그렇긴 했다 그나저나 요즘 강아지 분양가가 왜이럼? 원래 그랬음? 너무 비싸다 ㅠㅠ 몽이가 말티푸로 추정이 되었기에 키워보니 말티푸가 좋아서 이번에도 말티푸를 알아봤다 사실 믹스니까 분양가도 좀 저렴하겠거니 싶어서 아니 그런데 왜 믹스임에도 말티랑 푸들이랑 같은 가격이며 비숑보다도 비싼것인지 아하하 요즘 말티푸 인기가 급상승하여 그렇다 하는데 허허 역시 울 몽이는 시대를 앞서가는 힙쟁이였어^^ 암튼 인터넷으로 먼저보고 실물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나마 버스타고 전철타고 택시타고 갈만한 거리로 선택하여 가봤다 인터넷으로 본 아이는 이아이였다 흰색도 아닌것이 갈색도 아닌것이 참 오묘해보였기에... 앙증맞죠? 아 그런데말입니다 실제로 가서보니 쟈보다 그 옆에 있는 갈색아이가 더 눈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오잉? 너 좀 이뿌다.... 아 저요? 헤헤 그렇게 한 십여분을 들여다 보고 안아도 보고 한 후 샵을 나섰고 지인들에게 위 사진을 뿌리며 데려올까 말까 를 삼일간 토론한 끝에.... 갈색아이는 몽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성은 브요 이름은 라운이 네 단순합니다 갈색이라 라운이 ㅋ 그렇게 집으로 온 라운이는 원래부터 여기 살았던 애마냥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오줌도 싸고... 밥도 먹고 똥도싸고 그러더니 아무데나 퍽 쓰러져 자고 몽이가 쓰던 도넛방석 알맹이 꺼내주니 너무 잘자요 울타리안에 켄넬이랑 방석이랑 노즈워크까지 다 만들어 줬구만.... 밥먹을때 말고는 잘 안들어가고 죙일 방안을 휘젓고 다니네요 몽이때 "손"도 못해보고 사회성 제로였어서 이번엔 교육 빡씨게 시켜보리라 마음먹고 유튜브 밤새보며 공부했는데.... 씨알도 안맥히고 울타리는 이미 포기 (조만간 당근행일듯) 배변도 지맘대로 아하하하 (이틀새 휴지 하나 다써감) 하루 죙일 나만 졸졸졸 쫓아 다녀서 몇번 밟을뻔하고 내 발에 치여 탁자에 부딪치고 ㅜㅜ 너무 오랜만에 꼬물이를 키울라니 이상하네요 몽이도 이랬었나 싶은게... 근데.... 라운이가 있다고 몽이가 생각 안나는건 절대 아니네요 ㅠㅠ 라운이 뛰노는거 보면서 또 울고있는 나 ㅠㅠ 암튼 꼬물이 건강하게 잘 키워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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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피티 30회를 마친 날이었고, 오늘은 20회를 연장하기로 마음먹고 등록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주에는 코치님에게, 연장하기 전에 일주일 정도 쉬고 싶다고 전했다. 코치님은 그건 나의 마음이니 자유라고 했지만, 결코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운동복도 모두 싸 온 뒤 샵에 가는 길에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되는 거야? 죽을 때 후회하지는 않겠어? 조금은 흐트러지고 싶었던 그 마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까지 쉬지도 않고 운동을? 그쯤 되자 나는 친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고, 만나자고 강력하게 제안했다. 다행히 그는 오늘 시간이 된다고 했다. 나는 샵에 올라가 오늘 하루는 인간적으로 쉬고 싶다고 말하려 했지만 차마 그러진 않고, 약속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약속이 생겼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지. 그 약속을 내가 만든 게 문제일 뿐. 여튼 오늘은 우선 결제만 하고 내일부터 다시 파이팅하겠다고 선언했다. 코치님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래 오늘 하루만, 딱 하루만. 30회를 끝낸 기념으로 내게 하루 휴가를. 미식가인 동생은 새로 생긴 양갈비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오랜만에 평일에 맛보는 기쁨이었다. 맥주도 한잔했다. 우리는 전에 종종 가곤 했던 카페에 갔고, 1인 1조각케이크를 질렀다. 그래, 이런 것이 삶이다. 주중에 술을 마시는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주중에 어쩌다 술을 마실 수도 있는 삶 말이다.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나는 과연 이 양자택일의 삶에서 어떤 것이 더 후회 남지 않은 삶이었다고 느낄 수 있을까. 늘 배고프지만 철저한 식단 관리와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사는 것? 아니면 몸은 비대하지만 언제라도 원할 때 먹고 마시는 것? 내가 임종을 맞고 있는 순간으로 날아가 물어볼 수도 없고. 물론 이제 나는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다만, 정말 궁금해지는 것이다. 건강을 제외하고 본다면, 과연 그렇게 멋진 몸으로 산다 한들, 후회가 안 남을까. 과연 정말 그럴까. 우선은 열심히 관리하다가 가끔은 주중에도 무너지는 삶을 택하는 것이 낫겠지. 언제라도 먹고 마시다가 가끔 운동하는 삶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테니. 내일부터 다시 파이팅이다.
<어떤 작위의 세계> 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 정영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어떤 작위의 세계>. 처음 읽어보는 정영문 작가의 소설인데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으며 어딘가에서 책 제목을 들어본 듯한 느낌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민음사 유튜브에서 편집자가 추천하는 책으로 꼽았던 기억이 났고, 혹시 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그 기억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나를 조종해 제주도의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찌 됐든 읽는 동안 즐거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이니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의식이 날 조종한 결과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책에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가득한데 어떤 것은 두세 줄에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한 문단 전체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거의 한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기에 분명히 한 문장을 읽고 있음에도 문장의 끝 부분쯤에 가서는 문장의 앞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문장의 앞부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만큼, 이 소설이 읽기 쉬운 소설이라고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읽기 엄청나게 어렵다고 할 수도 없기에 읽기 어렵긴 하지만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은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의 서사(사실 서사나 플롯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 들곤 했다)보다는 작가가 왜 이런 두서없고 난잡하고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이토록 길고 지난한 문장들로 표현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는데, 그것은 곧 인간이 그러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생각은 꽤나 그럴듯한 생각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애초에 어떤 합리적인 존재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의 생각이 두서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느껴졌고, 그렇기에 인간이 하는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긴 이 소설이 이토록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그 어떤 질서도 엿보이지 않는 문장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 인간의 그러한 사고 과정을 그대로 투영한 이 소설은 곧 인간의 존재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어떤 근거도 없다는 사실을 인간의 사고 과정의 언어화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렇듯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근거 없이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사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주어지는 무료한 시간들을 두려워하고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내야 맞는 것인지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그 두려움과 괴로움을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 자신의 삶 전체가 커다란 무의미이자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가져오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위로 주인공은 글쓰기, 소설 쓰기를 택하는 것으로 내게는 생각되었는데, 재밌는 것은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계속해서 글을 쓰는지 주인공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며, 나는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이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오는 로캉탱과 겹쳐 보였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로캉탱은 소설을 쓰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한 시도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떤 작위의 세계>의 주인공은 그러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나는 이 주인공을 약간 아둔한 로캉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더 재미있었던 것은 이 소설에 정어리라는 단어가 꽤나 자주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 소설을 읽는 중 정어리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계기인 민음사 유튜브에서 이 책을 추천한 편집자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 편집자가 정영문 작가의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 생각나며 어쩌면 정영문 작가는 예전에 자신의 소설 수업을 들었으며 지금은 편집자가 된 그 사람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성이 정인 그 사람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것이 어린 시절 유치하게 이름으로 별명을 짓던 때를 떠올리게 해 그 별명이 머릿속에 깊게 남았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정영문이니 어린 시절 자신 몰래 자신을 정어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정영문 작가에게 그 편집자와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바람에 정어리라는 단어가 이토록 자주 소설에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책을 읽다 가끔씩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책을 읽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쓸데없는 생각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재미가 아예 없지는 않으니 조금 재미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리뷰는 <어떤 작위의 세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설 속 한 문장 결국 나는 아무런 느낌도 일으키지 않는, 다시 말해 막막함과 불편함을 절감할 정도로만 느낌을 불러일으킬 뿐, 다른 느낌은 주지 않는 요세미티의 풍경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마음을 끌지 않는지를 절감했고, 돌멩이 몇 개를 비탈을 굴러가게 하면 막막하고 불편한 기분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막막함과 불편함을 느끼며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초여름 장마에 읽기를 바라는 시집
제목처럼 초여름 장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시집 추천글을 들고 왔어요. 기재된 모든 시집은 순수문학이에요. 조금 더 대중적인 글을 찾는다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ㅠㅠ) ** k=keyword 1. 포개놓은 접시처럼 단단하면서도 위태로운 장미의 꽃잎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겨누었는데 폭격이 시작된다 봄은 전방위적으로 와서 무작위로 쓸려내려간다 세계는 피의 정원 권총을 장미로 장식한다고 해서 총구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총구를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심장과 총구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미 꽃다발에서 권총을 꺼내 누군가의 심장을 겨누는 시절은 갔다 -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널 사랑해 두 손을 모아 장미꽃을 바치며 널 사랑해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권총과 장미 中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K  그득한 슬픔의 아름다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속 세계는 무척 파랗고 그만큼 냉혹해요. 아무리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무거운 슬픔이 드러난 문장이 많아요.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선 또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이미지 묘사가 뚜렷해 장면이 절로 눈앞에 그려지곤 했어요. 느낌보단 주로 장면을 묘사해요. 그래선지 대체로 한편당 길이가 길어요.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K 흐르는 고요함 오늘 추천한 다른 시집들과는 달리 조금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집이에요.  감정의 과잉을 나타낸다기 보단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시인만의 따뜻한 방식으로 포용하는 느낌. [황인찬의 시는 '도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애초에 그 어떤 감정의 너울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격양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여 한탄하는 일도 없다. 그저 너를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볼 뿐이다. 작품해설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박상수] 3.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쿰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청혼 中 「조이와의 키스」 , 배수연 K 음울한 동화 시집에선 '조이' 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자주 등장해요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적인 분위기의 표현이 많아요 문장이 파격적이라 입문용으로는 조금 힘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낭만적이기도 해요. 구체적인 사랑을 묘사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 에 시를 적었어- ,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 4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칼, 사춘기3 中 「사춘기」 , 김행숙 K 떠들썩한 미숙함 김행숙 시인의 첫 시집. 처음의 들뜸과 미숙함, 약간의 과도함이 잘 드러난 작품. 마치 처음 맞이한 사춘기처럼. 제목처럼 사춘기思春期 를 써낸 시가 많아요. 발칙하고 미숙한. 간혹 유령이 등장하는 시도 있는데,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발상이 간혹 있어 흥미로웠어요. 5 열두 시간과 열두 시간이 똑같았다. 사랑은 어둠을 좋아했으므로 사랑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 낮 中 「에코의 초상」 , 김행숙 K 짙은 사색의 흔적, 삼켜버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사랑 / [김행숙은 시쓰기를 “삶의 운동, 사랑의 행위”이라 말하며, “이 말썽 많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써오고 있다”고 한다.] 사춘기와 에코의 초상의 출판 년도 차는 11년 정도인데, 그 시간의 간극에서 작가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에코의 초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그리고 죽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 '사랑'에 관해서도 긴 관찰을 통해 이야기해요. 미숙하고 옛 분위기가 드러난 문체의 시를 읽고 싶다면 사춘기를, 인간과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을 원한다면 에코의 초상을 읽어보길 권할게요. :) 출처ㅣ쭉빵, 프리저브드 플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