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to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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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행복동화

?????????????
중세는 대체...
zato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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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실제로 중세때는 귀족이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하면 부인과 자식은 귀족 대우를 못 받고 상속권도 없음
정이 뚝 떨어졌....
중세스럽네요ㅋㅋ
저건 첨 보는듯. 워낙 깨는 이야기들을 보다보니 저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고 보게되는 내 자신을 새삼스레 알게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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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문명 아틀란티스의 유력한 후보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처음 언급한 아틀란티스. 물론 당대에도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말이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허무맹랑하다'고 비판했고 플루타크 영웅전을 쓴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도 신뢰성에 의문을 표함 심지어 기원전 3세기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소실되기 이전)에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는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고대의 문서들이 소실되기 이전 시대 학자들조차도 아틀란티스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던 것 하지만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너무나 구체적인 묘사에다가 자기 가문 출신 어른인 솔론이 이집트에서 들은 것이라며 조상의 이름을 내걸고 사실이라 주장했다는 점,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을 정도로 평소에도 허구를 창작하는 걸 싫어했다는 점 때문에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또 찜찜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플라톤의 묘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가운데에 있는 중앙섬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의 운하 3개가 둘러진 동심원 형태의 구조를 취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 짤과 같은 상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아틀란티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존에 추정됐던 장소로는 에게해 산토리니섬, 북해 도거랜드, 모로코 수스마사 등이 있었는데 2018년에 들어와서 새롭고 강력한 후보지가 등장한다.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국가 모리타니에 있는 '사하라의 눈' (또는 리차트 구조라고 불림) 이 바로 그것이다. 직경이 약 50km에 달하는 거대한 동심원 모양의 지형이지만 너무 크다보니 평지에서는 흔하디 흔한 모래사막의 언덕으로만 보여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고해상도 인공위성 사진을 얻게 되면서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 이상적인 지형과 유사한 곳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모래언덕으로만 보인다 이곳은 현재 분쟁지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고 고고학자고 출입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면 중앙섬을 중심으로한 동심원 구조의 지형 크기와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평야가 있다는 묘사가 일치한다는 것 (리차트 중심부 크기가 약 24km 인데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 크기는 23.495km) 사하라 사막이 자전축의 변화로 사막화가 진행된 시점이 약 5천 년 전이므로 아틀란티스가 멸망했다는 9천 년 전에는 (현재 우리 시점을 기준으로는 1만 1천 년 전) 사하라의 눈이 사막이 아니라 녹지대였다는 것, 모리타니 사막에서 고래 화석이 발견되어 이곳이 한때는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적이 있었다는 것 등등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사하라의 눈을 아틀란티스로 가정한 상상도 도탁스 펌
조선시대 후궁 중에서 제일 집안이 좋았을 걸로 추정되는 명문가 출신 후궁
영빈 김씨  숙종의 후궁 보통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빈 등장 전까지 장희빈의 최대 라이벌 후궁으로 나옴 숙종 시대에 무려 영의정이었던 김수항의 증손녀임 할아버지는 참판(지금으로 치면 차관)이라는 소박한(?) 벼슬이었지만 이건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안동김씨 문정공파의 당주였기 때문이고 조부의 형제들인 김수흥과 김수항은 둘 다 영의정을 지냄 외가로 가도 그녀의 집안은 어마어마한데  외할머니는 광해군의 정비 유씨집안의 증손녀, 외숙모는 정명공주의 손녀, 둘째 이모부는 숙안공주의 외아들, 넷째 이모부는 정명공주의 손자, 다섯째 이모부는 숙종의 사촌형이 되는 등 왕족들과도 인척으로 줄줄이 사돈을 맺고있는 명문가 걍 한줄로 요약 하자면 중전인 인현왕후보다도 일개 후궁인 그녀의 집안이 더 좋을 정도 장희빈 어머니가 입궁할때 탔던 가마를 부순 사건(옥교사건)에서 신하들이 '천한 후궁의 어미 따위가 으~디서 가마를 타고 입궁합니까? 당연히 부쉈어야했음 ㅇㅇ'이라고 하자 숙종은 '김귀인(이당시엔 아직 빈 아님)의 어미도 가마 타고 잘만 입궁하더만...'하고 반박하자 신하들이 내세운 것도 '김귀인의 집안은 대대로 정승판서를 배출한 초명문가인데 어떻게 역관집안 따위랑 같음?'이라는 논리 이렇게 대단한 집안이면 비슷한 명문가로 시집가서 정경부인으로 살았을법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는 17세라는 노처녀 나이(조선시대 기준)까지 시집을 보내지 않고 대기하다가 숙종의 후궁인 종2품 '숙의'로 입궁시켜버림 정비로 들어간 인현왕후가 숙종의 사랑을 받지못해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자 그녀를 장희빈 견제용 후궁으로 보내기로 했기 때문 하지만 후궁치고는 너무 대단한 집안 때문인지  왕실에서는 그녀와의 혼인 예물을 무려 공주에 준하는 급으로 준비했으며 심지어 중전인 인현왕후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예우로 선물이 들어오는 물의까지 발생했다고 함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가문은 중전 가문보다도 더 집안이 좋음) 집안의 의도대로 그녀는 장희빈을 엄~청 싫어했던것으로 보임 애초에 저런 가문의 아가씨로 금지옥엽처럼 자라다가 입궁한 그녀에게 중인 출신인 장희빈이 같은 후궁은커녕 같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을지도 의문 (장희빈 집안도 양반만 아닐뿐, 지금으로 치면 재벌가 수준의 상당한 집안인데도 ㅇㅇ) 그녀는 숙안공주의 아들이기도 한 이모부 홍치상과 짜고 '장희빈의 어미는 원래 천한 종이었고 이조판서 조사석 집에서 일하다가 그 댁 주인인 조사석과 통정했다'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익명의 서신으로 만들어 뿌리고 퍼트림 숙종은 유언비어를 날조한 숙안공주의 아들 홍치상은 교수형에 처하고 같이 공모한 그녀는 폐서인시켜 궁 밖으로 내쫓음 숙종은 당연히 그녀도 죽이고 싶었지만 당시 온갖 로얄패밀리와 상류층들이  그녀의 집안과 얽혀있었던만큼 무겁게 벌하는건 불가능하다는걸 숙종도 잘 알고 있었음 어쨌든 이렇게 폐서인으로 생을 마감하는듯 했으나..... 장희빈이 쫓겨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며 그녀도 다시 궁으로 컴백 문제는 그녀가 숙종의 총애를 받지못하는 정도를 넘어 숙종이 그녀를 거의 증오에 가까운 수준으로 싫어했다는 점임 숙종은 '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이젠 궁인(누가봐도 그녀를 가리키는)까지 별 음흉한 소문을 지어내며 나댄다'며 저격했으며 그녀를 내쫓을때도 무고 및 명예훼손, 청탁, 뇌물죄, 기밀유출죄, (왕을)사찰한 죄 등 온갖 죄목을 붙여 쫓아냄 다시 궁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죽어도 '빈' 품계를 주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  거의 말년 다 되어서야 마지못해 빈으로 삼음 또한 인현왕후가 '내가 죽으면 김 귀인을 새 중전으로 맞아달라'고 죽어가며 부탁했지만 (애초에 숙빈 최씨는 무수리설까지 나돌만큼 출신이 천했던만큼 중전 자리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였음) 빈으로 삼는것도 끔찍하게 싫어하던 숙종이 그녀가 중전이 되는꼴을 두고봤을리가 만무 숙종은 보란듯이 '이제 후궁은 두번다시 절대 중전이 되지 못한다'는 법을 만들어서  인현왕후가 죽은 뒤 다들 내심 새 중전이 될거라 생각하던 그녀를 보란듯이 견제함 그래서였는지 숙종 사후에 사가로 나갈때도 거처가 너무 허름해서  장희빈의 아들인 새 임금 경종이 돈을 내려줄 정도 또한 숙빈의 아들인 연잉군(훗날의 영조)도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는데 이는 그녀가 숙빈과 엄청 친했기 때문이라고 함 ㅇㅇ 1995년판 드라마 장희빈에서도 처음엔 숙빈을 '천한 무수리것'이라고 개무시하다가 숙빈이 막강한 총애를 받아 자신보다 위인 '빈' 품계까지 오르자  뒤늦게 살랑거리며 친하게 지내며 숙빈코인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함 출처 역대 중전들이랑 비교해봐도 이만큼 집안 좋은 사람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ㄷㄷ
역사속 기괴한 가면들
흑인 흙 가면 (dirty eater mask) 16~19 세기에 신대륙으로 잡혀온 흑인들에게는 흙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지역으로 부터 유례한 이 전통은 아프리카 지역에 널리 퍼져서 여러가지  맛의 흙을 모아서 거래하는 시장이 생길정도였다는데... 하지만 흑인 노예들의 주인장님들은 흙을 먹는게 여러 질병을 초래한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서 저런 마스크를 씌운체로 들판에서 일을 시켰다고.... 로울리 여사의 미인 가면 (toilet mask) 여성들의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이용한 사기는 19세기에도 성행했다 저 가면을 착용한체로 잠만자도 미백효과와 주름, 잡티제거 까지된다고 선전한 로울리 여사는 저 과학적인(?) 발명품을 특허까지 냈다고 한다. 마스크 팩의 시초쯤 되는건가? 스플래터 가면 (splatter mask) 1차 세계대전중 북부 프랑스 캉브레 전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탱크가 사용된 전투) 영국군 탱크 조종사들이 쓴 보호가면. 가벼운 총격에도 탱크안에 대갈못 (rivets) 이나 페인트 조각이 얼굴에 튀었기 때문에 가죽과 쇠사슬로 만든 가면으로 얼굴을 보호했다 유아용 방독면 (baby gas mask) 1차 대전중 화학폭탄들의 위험으로부터 영아들을 지키기 위해 발명됬음. 굉장히 거추장 스러운 저 유아용 방독면은 옆에 달려있는 수동 펌프로 공기를 주입 시켜줘야된다고 한다 폭격이 떨어지는 비상사태중에는 무용지물일듯..... 알렉산더 페덴의 가면 (Alexander Peden's mask) 1661년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를 금지하자 장로교 목사였던 페덴은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도망생활중 얻은 아이디어는 바로 위에있는 저 가면을 쓰고 다니는것... 지금보면 참 허접한 저가면을 쓴채로 10년을 넘게 도망다녔다니다가 결국엔 잡혔다 무협지에 나오는 인피가면이 저런거였다보다... 수치의 가면 (mask of shame) 17~18세기 독일에서는 저 가면을 씌우는 형벌이 존재했다고 한다. 남의 험담이나  야한 농담등의 사회상규를 어기는 실례를 범한 죄인들은 저 가면을 쓰는 치욕을 받았다 페스트 의사 가면 (plague doctor mask) 중세 유럽에 전염병이 퍼지는 도시에는 저 가면을 쓴 의사들이 나타났다. 당시엔 페스트가 냄새로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저 새의 부리같은 가면에는 라벤다나 민트등의  다른 향신료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유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페스트 의사 출신임 비자드 가면 (visard mask) 16세기 유럽 여성들이 쓰고다녔던 벨벳이나 비단으로 만든 검정색 가면. 햇볕으로 부터 얼굴을 보호하고 뭔가 신비한 기운을 나타내기 위해 귀족여성 들이 썼는데 저가면은 입쪽에 달린 구슬을 깨물어서 고정시켰다니 아마도 잔소리를 듣기 싫었던 남편이 개발하신듯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는, 혹은 불쾌해지는 영화 추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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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죽기 전에 세종대왕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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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기갑부대의 활약
우선 밑의 썰 대부분의 출처는 필리핀 국방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axDefense/posts/so-who-is-maj-maximo-young-ret-the-latest-recipient-of-the-south-korea-order-of-/991951714308819)의 게시물임을 밝힘. 자국 홍보용 SNS라는 특성상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율동전투 때의 활약 등은 이미 국군, 미군 자료와 교차검증되는 부분이고 출처로 자국 기록이 아닌 'US Army in the Korean War' 4권, 미군 기밀문서 'Army 12 November 1952', USACMH 발행 'The Korean War the Outbreak'등 외국 자료를 기재하고 있어서 적어도 난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함. 한국전쟁때 필리핀군은 10대대 전투단을 파병, 총 파병인원 7500여명을 보내 UN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군인을 보낸 군대였는데 특기할 사항은 이 10대대 전투단은 '기갑부대'였음. 그것도 필리핀에 있던 유일의 기갑부대.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 M4A1셔먼(75mm모델), M10 울버린 구축전차, M7 프리스트 자주포,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3 반궤도 장갑차등 기갑차량을 도합 500여대 가량 보유하고 있던 서류만 놓고보면 상당한 기갑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기갑차량들이 대부분 정비, 운용할 인원 없이 창고에 쳐박혀 있던 물건들이라는 점이었음. 근본적으로 미군이 필리핀에서 쓰다가 회수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서 필리핀에 남게된 잉여물자들이었고 이걸 운용할만한 숙련된 정비병과 전차병, 인프라는 필리핀에 매우 소수만 있어서 필리핀은 1950년 시점에서 10대대 전투단 단 하나의 기갑부대만을 운용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29대의 셔먼 전차와 10대의 스튜어트 경전차 소수의 m101 105mm 자주박격포만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함. 하지만 필리핀은 6.25 개전 직후 곧바로 식량 및 농기구, 비료등을 한국에 지원해준 걸로 모자라 유일한 기갑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한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했음. 필리핀이 안정되어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 1946년 독립 이래 내부적으로 이미 한국보다 먼저 개판이 나서 친미정권에 반기를 든 공산 반군 후클발라합, 남부 이슬람 무장단체등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2~3개로 쪼개질 판국이었는데도 기갑차량 운용능력을 가진 유일한 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파병할 것을 결정한 것임. 개전 3개월이 채 안된 1950년 9월 15일에 부대는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김. 부대는 총 16대의 셔먼 전차와 1대의 울버린 구축전차를 운용할 예정이었는데 병력이 출발하기 이전에 "미리 유엔군에 장비를 보내놓고, 도착하면 다시 받아 싸우자!"라는 생각에 기갑차량들을 먼저 부산항에 보냄. 그리고 따로 병력이 출발함. 근데 막상 9월에 필리핀군이 부산에 도착하자 필리핀군은 차량을 못받음(???). 그래서 필리핀군은 명색이 기갑부대인데 인천상륙작전 이전까지 그냥 기갑차량 없이 보병으로 싸웠다고 함. 필리핀 국방부 페북에 따르면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괴되었다고도 하고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17대의 기갑챠량의 행방은 오리무중임. 아무튼 그래도 필리핀군은 부산과 대구에서 기갑없는 기갑부대, 사실상 보병부대로서라도 열심히 싸웠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미군에게 필리핀군이 가진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요청을 넣어 다시 채피 경전차와 셔먼 중형전차등을 받아 기갑부대로서 구색을 갖추는데 성공함. 1950년 11월 미우동에선 비가 내려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진창이 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채피 전차를 운용해 북한군을 격퇴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1년 4월 20일 임진강 인근에선 2대의 미군 M26 퍼싱 전차가 수렁에 빠져 기동불능이 되는 사태가 발생, 중공군은 포격을 가한 후 다수의 보병들을 보내 퍼싱 전차를 노획하려 했는데 이때 10대대 전투단의 전차들이 달려와 중공군을 격퇴하고 미군 전차병들이 성공적으로 퍼싱 전차를 회수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함. 하지만 가장 유명한건 1951년 4월 22일 벌어진 율동전투. 율동에서 900명의 필리핀 10대대 전투단 병력이 거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중공군 44사단 병력이 공격을 개시, 근처에 있던 미군 부대가 모두 후퇴하면서 필리핀군이 지키던 거점은 쿠르스크마냥 툭 튀어나온 형태가 되어버림. 중공군은 4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립되고 통신도 끊긴 필리핀군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필리핀군은 소수의 채피 전차로 이 공격을 격퇴하고 거점을 지키는데 성공함. 필리핀군은 1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중공군은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음. 전선이 답 없이 밀리면서 필리핀군도 결국 후퇴하지만 필리핀군 덕분에 미군은 후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음. 콘라도 디 얍 대위 막시모 영 소령 이 과정에서 콘라도 디 얍(Conrado D. Yap) 대위와 막시모 영(Maximo Young) 예비역 소령이 뛰어난 활약으로 2018년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음. 콘라도 디 얍 대위는 퇴각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돌격을 감행, 중공군을 패퇴시키며 부상자들을 구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은 전사함. 막시모 영 예비역 소령은 이때 채피 경전차의 전차장이었는데 2차대전때 일본군에 맞서싸우고, 한국전쟁때 공산군에 맞서싸우고, 베트남 전쟁때도 참전해 세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음. (올해 2022년 1월 작고) 앞서 말했듯이 율동전투때의 활약은 미군 기록으로도 검증된 사항이고 맥아더도 900명의 병력으로 4만명의 중공군을 막아낸 율동의 필리핀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바 있고 퍼싱 전차 구출작전 당시에도 이 과정을 지켜본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필리핀군을 극찬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군 10대대 전투단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분전해 싸운 부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음. 군사갤러리 나쿠로이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