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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장마에 읽기를 바라는 시집



제목처럼 초여름 장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시집 추천글을 들고 왔어요.
기재된 모든 시집은 순수문학이에요. 조금 더 대중적인 글을 찾는다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ㅠㅠ)

** k=keyword




1.

포개놓은 접시처럼 단단하면서도 위태로운 장미의 꽃잎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겨누었는데
폭격이 시작된다
봄은 전방위적으로 와서 무작위로 쓸려내려간다

세계는 피의 정원
권총을 장미로 장식한다고 해서 총구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총구를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심장과 총구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미 꽃다발에서 권총을 꺼내 누군가의 심장을 겨누는 시절은 갔다

-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널 사랑해
두 손을 모아 장미꽃을 바치며 널 사랑해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권총과 장미 中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K  그득한 슬픔의 아름다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속 세계는 무척 파랗고 그만큼 냉혹해요.
아무리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무거운 슬픔이 드러난 문장이 많아요.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선 또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이미지 묘사가 뚜렷해 장면이 절로 눈앞에 그려지곤 했어요.

느낌보단 주로 장면을 묘사해요. 그래선지 대체로 한편당 길이가 길어요.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K 흐르는 고요함


오늘 추천한 다른 시집들과는 달리 조금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집이에요.
 감정의 과잉을 나타낸다기 보단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시인만의 따뜻한 방식으로 포용하는 느낌.


[황인찬의 시는 '도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애초에 그 어떤 감정의 너울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격양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여 한탄하는 일도 없다. 그저 너를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볼 뿐이다. 작품해설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박상수]





3.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쿰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청혼 中


「조이와의 키스」

, 배수연


K 음울한 동화



시집에선 '조이' 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자주 등장해요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적인 분위기의 표현이 많아요
문장이 파격적이라 입문용으로는 조금 힘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낭만적이기도 해요. 구체적인 사랑을 묘사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
에 시를 적었어-
,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




4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칼, 사춘기3 中



「사춘기」

, 김행숙


K 떠들썩한 미숙함

김행숙 시인의 첫 시집. 처음의 들뜸과 미숙함, 약간의 과도함이 잘 드러난 작품. 마치 처음 맞이한 사춘기처럼.

제목처럼 사춘기思春期 를 써낸 시가 많아요. 발칙하고 미숙한.
간혹 유령이 등장하는 시도 있는데,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발상이 간혹 있어 흥미로웠어요.




5
열두 시간과 열두 시간이 똑같았다. 사랑은 어둠을
좋아했으므로 사랑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

낮 中


「에코의 초상」

, 김행숙


K 짙은 사색의 흔적, 삼켜버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사랑


/

[김행숙은 시쓰기를 “삶의 운동, 사랑의 행위”이라 말하며, “이 말썽 많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써오고 있다”고 한다.]


사춘기와 에코의 초상의 출판 년도 차는 11년 정도인데,
그 시간의 간극에서 작가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에코의 초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그리고 죽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 '사랑'에 관해서도 긴 관찰을 통해 이야기해요.


미숙하고 옛 분위기가 드러난 문체의 시를 읽고 싶다면 사춘기를,
인간과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을 원한다면 에코의 초상을 읽어보길 권할게요.


:)



출처ㅣ쭉빵, 프리저브드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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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종이 동물원>, 꽤 두꺼운 켄 리우의 단편집이다. 총 열네 편의 소설이 들어있으며 열네 편 전부 SF 혹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들이다. 작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켄 리우는 중국인이다.(물론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소설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 중, 일을 서로 떼 놓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한국,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나 원리 같은 것도 그다지 없어서 한국 독자가 처음 SF 소설을 읽을 때 추천할 만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국)의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몰입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두껍긴 하지만 단편집이라서 시간 날 때 한편씩 읽기 딱 좋다) 켄 리우의 소설은 지난번에 리뷰했던 테드 창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이 소설을 빙자한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면 켄 리우의 소설은 Science "Fiction"이다. 켄 리우의 소설 속에서 과학은 Fiction의 설정이자 배경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배경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라고 할 수 있다. 켄 리우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Science가 아니라 Fiction이므로 <종이 동물원>에 실린 소설들에는 SF가 아닌 소설도 많다. 심지어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부터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다른 수록작들도 마찬가지다. <상태 변화>는 현대 판타지이고 <파자점술사>는 중국의 전통적 주술 문화, 파자점이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며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중국의 요괴와 SF적 요소가 뒤섞여 매력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게 켄 리우라는 작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SF 작가도 아니고 판타지 작가도 아니며 장르문학 작가라고 한정 짓기도 꺼림칙하다. 그는 장르의 경계나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SF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SF를, 판타지적인 배경이 필요하다면 판타지를, 역사나 신화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거리낌 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정통 SF 소설만을 애정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에 오히려 실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의 소설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개인적으로 켄 리우라는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그의 삶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많은 혼란과 의문이 그의 청소년기를 뒤덮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미국인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렇듯 수많은 의문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내가 어디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집단의 일원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작가가 된 켄 리우는 마찬가지 생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소설이 SF인지, 판타지인지, 역사나 신화 소설인지가 아니라 내가 쓰는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들을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저 문장이 켄 리우의 소설들에 새로움과 놀라움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구분이 사라질 때,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쳐질 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모노노아와레>를, 환상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사냥을 하길>과 <송사와 원숭이 왕>, <파자점술사>를, 소설 속 드라마를 느끼고픈 이들에게는 <종이 동물원>과 <레귤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권하고 싶다. 만약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소설집 전체를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나가길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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