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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이 쓴 <어른의 어휘력>을 읽고 있다. 저자는 문장을 이어나가며, 중간중간 재밌는 단어들을 소개하고 활용하는데 그중 유독 신선했던 것은 ‘잠포록하다’라는 말이었다. 이런 단어는 정말이지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예쁘다. 심지어 뜻조차도.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라는 뜻이다. 나는 볕 드는 맑은 날도 좋아하지만, 흐리고 궂지 않은 날도 좋아한다. 바람이 없고, 흐리지만 선명하며, 그래서 전에 없이 차분해지기도 하는 그런 날. 그게 바로 잠포록한 날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여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날씨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부연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날에 드디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었다. 잠포록한 날. 나는 잠포록한 날을 좋아한다. 오늘은 비가 올 듯 말 듯 날이 흐린데, 얼핏 잠포록한 날로도 보이지만 언제든 빗방울이 울컥 쏟아질 것 같기도 하고, 미약하나마 찬 기운을 얹은 바람이 느껴져 잠포록하다 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습작 시절에는 눈에 띄는 단어가 있으면 섣불리 시에 써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그건 단어를 내 것으로 채 만들지 못하고 쓴 것이라 영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잠포록한 날이 드문드문 찾아올 때 이름을 불러주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날을 소개하고, 그날의 이름을 소개하며 온전히 내 마음에 새겨지면, 어느 시구 사이에 이 예쁜 단어를 가만히 올려놓고 음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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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 살리기]온봄달(6월) 토박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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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기 위해 맥주를 딴다. 일기엔 역시 맥주지. 넘버링 300 특집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9번까지 내려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이 넘버링이 과연 맞는지. 혹시나 내가 착각하여 일기를 빠뜨린 날은 없는지, 혹은 정말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하루에 두 번 일기를 쓴 날은 없는지. 그래서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올해 12월 31일에 다다라 일기를 쓰는데, 그날의 넘버링이 1이 아니라 2이거나, 혹은 0에서 -1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 일기가 내가 아닌 다른 분들에게 최소한 정확한 모래시계라도 되어줘야 할 텐데. 쓰는 나도 인지하기 힘든 터라, 잡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일기를 안 쓰고 넘어가는 날이나, 하루에 두 번 일기를 쓰는 상황을 목도하신다면 누구라도 제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최종 몸무게가 앞자리 수를 바꿔버리는 데까지 나아갔지만, 역시나 주말 동안 다시 어마어마하게 불어버렸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두렵지는 않은 게, 나는 주말 동안 반드시 살이 쪘다기보다는 부은 경향들이 있는 것이다. 내일부터 다시 식단 관리에 들어가고 운동 루틴에 들어가면 하루 이틀만에 정상 복귀 된다. 그것은 솔직히 쉽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내 인바디 곡선은 매주 화려한 물결을 탄다. 오르락내리락. 코치님도 말했지만, 매주 붓고, 다시 원상 복귀하는 그 역량이라면, 그 역량을 좀 더 밀어붙였다면 이미 두 배는 빠르게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거라고. 뭐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인생 길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빠르게 감량한 만큼 억눌린 욕망이 화려하게 폭발할 가능성도 높기에 나는 내 욕망과 어쩔 수 없는 밀당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주말에 꼬박꼬박 무너지는 것치고는 상당히 많은 감량을 했고, 몸 상태가 예전에 비하면 꼭 나쁘지도 않다. 근력이건, 모양새건. 조급할 것 없다 이거죠. 그리고 요즘은 확실히 조금 지쳤는데, 어서 다른 센터에 등록해서 이제는 혼자서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든다. 그만큼 이제 혼자 해도 상관없다는 자만은 아니고, 어차피 앞으로는 혼자 해야 되므로, 어서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다. 이제 월요일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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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오은영이 쓴 육아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여러 상황에서 아이에게 해줄 만 한 적합한 말들을 가르쳐준다. 나는 자식도 없는데. 모르겠다. 문득 궁금해졌다. 육아 관련 서적이지만 나이 불문하고 인간 보편에 적용될 만한 심리 서적으로 볼 수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제 두 챕터를 읽었을 뿐이다.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왜 저런 문제가 생겼을지 유추해보곤 하는데, 그런 응용 데이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문제들도 돌이켜보며 내가 왜 그런지, 혹은 오래전에 왜 그랬었는지 유추하기를 즐기며, 예상외로 납득할 만한 근거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고 싶다면 나 자신은 아주 좋은 실험 대상이다. 내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취약한 지점은 어떤 것인지, 나의 진짜 욕망은 무엇인지.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무턱대고 갑자기 육아 서적이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계기가 있었다. 책 욕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해봤을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여성분이 책을 읽고 있기에 무슨 책일까 하고 유심히 쳐다본 적이 있는데, 물론 대놓고는 아니지만, 간신히 표지를 보게 되었고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어쩌다 책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떤 책을 읽는지 호기심이 인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그 책이 내가 읽은 책일 경우, 뭐야, 그 책을 이제 읽는다고? 풋. 이러거나 반대로 내가 읽지 않은 책일 경우, 으 분하다, 나도 읽고 말 테다. 이러며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서 검색을 하기도 한다. 정신에 문제가 온 듯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거다. 또한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너무 유치한 책을 읽고 있을 경우, 저런 책은 줘도 안 읽는다. 싶기도 한데, 뭐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나 스스로가 괜한 책 욕심만 많은 초보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낯선 이들을 보면, 그가 고른 도서를 통해, 독서 취향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보곤 한다. 이 역시 어차피 지나갈 사람이니 일종의 상상 훈련을 해보는 것일 뿐이다. 책을 선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꼭 그의 독서 취향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육아 서적을 읽는 내가 아이의 양육자는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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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인즉슨 이랬다. 그날따라 A씨는 어쩐지 오늘은 운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사소한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했을 뿐,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건수를 만들어보기 위해, 몇몇 친구들에게 기웃거렸다. 기웃거렸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말을 자꾸 뱅뱅 돌렸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먼저 만남을 잡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말의 자존심이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먼저 제안하지는 못하겠지만,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약속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참, 어쩔 수 없군. 운동을 해야 되는데 말야. 친구와의 약속도 중요하지, 암.   뭐 이런 식으로. 그러나 소위 낚이는 놈이, 아니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오늘따라 유독 바쁜지 조만간 보자는 말만 전해왔을 뿐이다. A씨는 그냥 조용히 집에 가서 시체처럼 누울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운동을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의지가 너무 없었던 탓인지 체력적으로도 마니 달리는 느낌이었고, 무언가를 너무 하기 싫을 때는 몸조차도 그에 동의하듯 따라주지 않는 것이 인간의 섭리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겨우겨우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에 들어갔지만 운동복을 벗는 것조차 힘들었다. 전날 트레이너가 A씨의 삼두근을 집중적으로 운동시킨 것이 화근이었는데, 근육통을 완화시키고자 오늘 그것을 복습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악화된 것만 같았다. 마치 두 팔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두근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고작 삼두근이. 집에 돌아온 A씨는 너무나 고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무언가를 하기 싫어서 이렇다기에는 하기 싫은 것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이어졌다. 가령 그런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이 없는데, 뭔가가 하기 싫다. 하기 싫은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일기 쓰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것조차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빨래를 돌리며, 일기는 잠시 누워서 간략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니까 그렇게 기절해버린 거다. 잠이 든 게 아니다. 이것은 기절한 것이다. A씨는 생각했고,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시 사십 분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일기를 넘기지는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절해있기로 했다. 죽은 척하는 병사처럼. 죽은 척하기는 너무나 쉬웠다. 거의 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다시 눈을 떴다. 주위가 고요했다. 이 고요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A씨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 이런. 이럴 수가. 내 몸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의지박약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내 몸이 갑자기 왜 이러나. A씨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아 맞다, 빨래. 아악. A씨는 조용하게 비명을 질렀다. 고요의 정체는 오래전 끝난 빨래였다. A씨는 몇 시간이나 방치된 빨래를 널며, 다시 빨아야 하나, 일단은 널자, 그러고 있었다. A씨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신은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는가. A씨는 죄가 없다. A씨는 문득 서러워져 빨래를 널다 말고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자신의 삼두근을 붙잡고. 아니, 그 전에 기절하느라, 기절 상태가 하루를 문득 넘기느라 전날 쓰지 못한 일기에 대한 변명을 적었다. A씨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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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게 있어서 운동을 가기 전에 편의점에 잠깐 들렀다. 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편의점 사장님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물건을 들고 계산대로 가자, 사장님은 전화를 끊었다. 분명히 끊었다. 사장님은 내 물건을 계산하면서, 문득 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보이스피싱 같은 거 안 당할 줄 알았어요. 사장님은 조금 전까지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손님일 뿐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니 어지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사장님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딸내미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하니까, 무슨 나는 당황한 거지.  멈칫했다. 사장님은 분명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고, 나는 무슨 대꾸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 혹시 송금을 하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방금 딸에게 확인 전화를 해봤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네요, 하고 대꾸해줬다. 그리고는, 조심하셔야죠, 하고 덧붙였다. 이 정도까지 대꾸를 해줬다면, 상식적으로 네, 안녕히 가세요 라던가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손님한테 별말을 다 하네요, 안녕히 가세요 라던가 뭐 그런 말이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은 그렇게 뒷걸음질 치며 편의점을 나가려는 나를 그저 빤히 쳐다보며, 알 수 없게도 어머 어머, 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웬 어머 어머? 당황스러움을 채 떨치지 못해서 그랬던 걸까. 편의점을 나와 피티샵에 올라가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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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계획하고 있던 것들이 무산됐다. 아, 술이나 마실까. 집에 냄새가 배는 것이 싫어서 거의 음식을 해 먹지 않는 편인데, 이번 주말은 간단하게나마 뭘 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결심했어. 지적재산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아이디어를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 보상도 없을 것이 뻔하지만 친한 사람이니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놓으면 그게 마치 공공재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심지어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군다. 하다못해, 자판기도 동전이나 지폐를 넣어야 뭐라도 내어준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도 동전이나 지폐를 넣으라는 말이 아니다. 속앓이하는 걸 알면 그런 요구를 할 때는 조금 신중해졌으면 한다는 거다. 그 사람이 어떻든 말든, 아니 속앓이한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상대방의 에너지를 그렇게 지속적으로 뺏어가는 건 정말 사려 깊지 못한 거다. 상대에게 그런 현실을 말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해주면 요즘 스트레스를 받아서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대학 시절에 저명한 시인이었던 시 수업 교수님은 학생들의 시를 지도할 때 대안을 제시하며 어떤 아이디어를 문득문득 다 내어주고, 또 그런 누설의 고충을 본인의 시에 쓰기도 했는데, 엄밀히 말해서 교수님은 그게 곧 직업이니 가능한 거다. 습관적으로 남의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도 엄연히 갈취다. 요식업을 하는 친구의 식당을 제집인 양 드나들며 무전취식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남의 선의를 악용하는 것은 정말 나쁘다. 그러나 잘못에 대한 무지는 더 나쁘다. 그래, 요구해도 내어주지 않으면 그만이지. 뻔뻔한 당신이 죄인인가, 모질지 못한 내가 죄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