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0shelter
5,000+ Views

모든 무기는 각국 최적화 무기!

일본 목궁의 경우처럼 무기는 결국 사람이 쓰는거여서 사는 곳에 맞는 무기를 쓰게 되는데
그 나라의 전투교리도 무기선택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일본도의 경우를 보면 몸집에 비해 크고 길다
일본도가 저렇게 커진 이유로 일본산 철 문제가 꼽히기도 하는데

조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도를 대량으로 노획했지만
너무 길다고 갈아서 짧게 쓰거나 깨진다고 군인들한테 욕을 먹었고
나중에는 그냥 파묻어버리기도 한다
일본은 조선에 유통되는 은의 70%를 공급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로 은과 구리가 풍부한 땅이었지만
철만큼은 절망적일 정도로 부족했는데 품질 좋은 철광석이 너무 부족해서 모래에 섞여있고 불순물 많은 '사철'을 많이 사용했다
요즘와서는 사철도 잘 정제할 수 있음에도 경제성 문제로 좋은 철광석을 수입해서 쓰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울면서 사철을 두들길 수 밖에 없었다
일본 장인들도 바보가 아니고 일본의 철이 나쁘다는걸 아니까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는데
하나는 무기를 크게 만들어서 내구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일본 보병이 불안해 보일정도로 큰 검을 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장인들은 사철을 고르고 고른 다음 접쇠기술로 내구도 높은 일본도를 만들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장인 제작품이어서 소수한테 돌아갔지 일반보병들한테 보급되지는 못했다
(소수의 장인 제작품을 무기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
실제로 구일본제국군이 무기의 기본스펙을 장인 제작품으로 잡고 개발&생산했다가 실전에서 말아먹었다)

조선도 사철을 많이 사용했지만 철 생산의 30%는 제대로된 철광산에서 뽑아냈기에
무기에 쓰는 철만큼은 좋은걸 가져다 썼고 공급에 부족함은 없었던걸로 보인다
이순신 장군님이 난중일기에 철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시는데
장군님은 철과 구리 등 전쟁에 쓰는 금속을 죄다 '철'로 퉁쳐 쓰셨기에 구리는 부족했어도 철은 제대로 확보하신듯
다른 한편으로 일본도는 실제로 보병전에서 큰 효과가 있었고 실록에서도 일본도와 검술을 칭찬하는 부분이 나온다
用劍, 爲短兵之要. 日本, 浙江, 以此爲天下强兵.

"검을 쓰는 것은 단병전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중국 저장성)은 검을 잘 써서 천하의 강병을 이루었습니다."
중국도 왜구와의 싸움으로 일본도를 접하게 되고 중국식으로 복제하여 제식무기로 삼았다
하지만 조선은 일본도를 널리 받아들이지 않고 환도를 제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조선과 일본의 전투교리가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마병이 적었고 보병 중심의 교전이 많았다
큰 검이 활약할 공간이 많았고 검의 하드카운터인 기병대가 없으니 일본도가 널리 안착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은 건국부터 북방과 수백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왔고
적 기병대에 맞서 기병대와 수성에 유리한 사수를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졌다
정예병으로 근접보병부대인 팽배수를 육성하였으나 팽배수는 방패병이었기에 휴대가 쉬운 검을 선호하였다
기병, 사수, 방패병으로 이루어진 로스터를 굴리다보니
양손으로 잡고 휘둘러야하는 일본도가 발 붙일 곳이 없었다
더구나 임란 이후에는 조총 보급이 가속화되어서 보병의 70% 이상이 포수인 극단적인 사격진영으로 변하는데
(총들고 행군하는 것도 빡치는데 무거운 일본도까지 휴대하라고?)

전세계적으로 화약무기 보급이 증가하고 검은 호신용으로 소형화된걸보면 일본도를 포기하고 환도를 계속 쓴 조선의 방향성은 맞았던거 같다
일본 활은 조선과 유목활에 비해 사거리나 위력이 낮았지만 전국시대 사상자의 70%가 활로 인한 사상자였다는 점에서 두가지를 추론 할 수 있다

1) 일본 활은 일본 전장에서 충분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2) 당시 일본 보병 방어구는 미흡했다
전세계적으로 보병 갑옷은 싸고 질긴 면갑옷을 입는게 대세였으며
서양과 조선의 알보병도 최소한 면갑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기후 때문에 목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였으며
(목화의 원산지는 온난건조한 인도 고원인데 일본 기후는......)
당시 일본에 유통되는 면은 대부분 조선에서 수입해야하는 물건이었다
이러다보니 일본 보병은 면갑옷보다 화살 방호력이 낮은, 부분방호만 되는 철제흉갑을 입었다고 한다

환경적 차이와 함께 보병전 중심의 일본과 기병, 사수 중심의 조선은 무기의 목적이나 생김새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요즘 와서는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들을 연구하지 일본도 vs 조선 환도 이런건 지양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결국 각국이 채용한 무기는 각 나라의 환경적, 군사적 상황에 맞게 최적화된 무기라는게 맞을 것이다



그니까 아니 왜저래 싶지만 또 따져보면 그럴수밖에 없던 이유가...ㅋ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조선이 왜란에서 이긴 이유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일본군 장수들에 대한 평가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조선군 선봉부대 중에 하나였던 가토 기요마사는 유능한 행정관이자 장군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평정할때 후방에서 보급과 행정을 담당했을 정도로 능력있고 신뢰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후방에서 보급/행정하는 사람은 신뢰도 100 찍은 충신 중의 충신이 해야한다고 한다 안 그럼 조조 나간 사이에 통수 때린 진궁처럼 되니까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 반대파에 서서 배신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가토는 도요토미 가문에 끝까지 충성했으며 오직 그의 정적인 이시다 미츠나리의 제거만 목적으로 두었다. 오히려 도쿠가와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해칠 낌새를 읽자 히데요리를 자신의 영지에 대피시킬 계획과 경로까지 미리 짜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유능한 장군도 못 참는게 있었는데 마마 추운데스 조선 북방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던 일본인들한테 지형적합성 빨강을 띄우는 혹한의 땅이었던 것이다 북관전투(9월 ~ 2월)에서 조선 관군 + 의병 3000명이 가토의 2만 2천을 상대로 싸움이 가능했던 요인 중에 하나는 적응하기 힘든 조선의 추위였는데 일본군이 땔감을 채취하려고 할때마다 요격대와 북방의 궁기병을 보내 이를 막았고 일본군을 포위하면 그대로 치는게 아니라 하룻밤씩 기다렸다고 한다 추위대책 확실했던 조선군과 달리 밤이 지나갈때마다 동사자가 속출하고 나가떨어져서 아침에 들어가보면 아예 전멸해버린 일본군 목만 베어가는 경우도 종종 나왔다 일본군의 패배가 들릴때마다 일본군의 물자 부족(feat 이순신) 때문에 약탈에 시달리던 조선 토병들이 들고 일어나면서(공질이 폭발해서) 함경도가 통제불능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본에 투항한 조선 세력이 모두 제압당한다 결국 가토는 3000명 때문에 함경도가 통제불능에 빠지자 본대 2만 2천을 이끌고 이들을 요격하기로 한다 여태까지 기습과 물자차단, 매복으로 체급차이를 극복해왔던 조선군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는데 7배 더 많은 가토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로 한것이다 (북관대첩도) 조선군은 가토가 이끄는 일본군 주력에 맞서 3번이나 물고 늘어졌고 3번 다 패배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견디기 힘든 조선 북방의 추위는 점점 심해졌고 가토군은 전투는 계속 이기지만 추위와 보급 부족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마마 추운데스 처음부터 조선군은 훈련, 장비, 숫자가 모두 앞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이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초겨울 추위에도 픽픽 쓰러지던 일본군을 보며 늦겨울까지 시간을 벌면 이길 수 있다는 빅픽처를 그려놨고 마침내 조선군이 기다리던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자 가토는 함경도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정면 대결에서 3번이나 승리했지만 가토의 피해는 막심했다 2만 2천명 중 전사자는 8864명에 달했다 부대의 1/3이 전사한 것. 조선은 훨씬 적은 병력으로 일본군 본대를 몰아내고 함경도를 탈환함으로 전략적 목표를 완수했고 가토가 한양까지 스트레이트로 후퇴하면서 생긴 전력공백은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공략할때 유리한 요소가 되었다 (출처) 한국 겨울은 못버티지 약해빠진놈들
이동진 평론가 기준 21세기 최고의 한국 멜로영화 TOP 7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 처음보다 설레고 그때보다 행복해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 박동하, 중국 출장 첫날, 우연히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메이와 기적처럼 재회한다. 낯설음도 잠시, 둘은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간다. 키스도 했었고,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다는 동하와 키스는커녕, 자전거는 탈 줄도 모른다는 메이. 같은 시간에 대한 다른 기억을 떠 올리는 사이 둘은 점점 가까워 지고 이별 직전, 동하는 귀국을 하루 늦춘다. 너무나 소중한 하루. 첫데이트, 첫 키스,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은, 첫사랑의 느낌. 이 사랑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시절을 알고 온 걸까?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 ★★★☆ 호우시절(2009) - 낭창낭창 사뿐사뿐 허진호. 100% 성공률에 도전하는 ‘시라노;연애조작단’이 예측불허 의뢰인과 타깃녀를 만났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의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는 연애조작단이다. 때로는 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때로는 비밀 작전 수행처럼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으로 의뢰인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연애 에이전시. 그들의 신조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 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펙은 최고이나 연애는 꽝인 2% 부족한 의뢰인 상용(최다니엘 분)이 에이전시 대표인 병훈(엄태웅 분)과 그의 작전요원 민영(박신혜 분)을 찾아온다.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랑스런 외모의 희중(이민정 분). 그러나 그녀의 프로필을 본 순간, 병훈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시라노;연애조작단’은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 서툴고도 아름다웠던 젊은날에 보내는 아릿한 송가. 그녀 마음 속 첫사랑과 동거를 시작했다." | "나도 몰랐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26세의 와니(김희선 분)는 현재 6년 경력의 동화부 애니메이터. 성공보다는 일 자체를 사랑하는 와니는 원화부로 옮기는 문제를 망설이고 있다. 그녀를 사랑하는 27세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준하(주진모 분)는 춘천에 있는 와니의 집에서 지내면서, 첫 장편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데뷔가 늦어지더라도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꿈이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와니는 얼핏 차가워 보이지만 속 깊고 여린 성격. 뭔가에 열중하면 일상엔 서툴러지곤 한다. 낭만적이고 장난끼가 많지만 속 깊은 면이 매력인 준하는 그런 와니를 챙겨주면서 그녀 곁에 머물고 있다. 와니의 집 2층에는 잠겨진 방이 하나 있다. 그녀의 이복동생이자 첫사랑이었던 영민(조승우 분)의 방... 사랑을 깨닫는 순간 이별을 시작해야만 했었던 아픈 첫사랑을 와니는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 어느날, 영민의 귀국 소식이 전해져오고 영민에 대한 외사랑에 마음을 태웠던 소양(최강희 분)이 그 집에 찾아오면서 추억의 문도 열리고 만다. 기억은, 지금의 시간들에 상념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예기치 못한 순간, 첫사랑의 편린이 와니의 일상에 파고들고, 추억의 애틋함이 일으키는 그녀 마음의 미세한 파장을 이제 준하도 감지하게 되는데. ★★★☆ 와니와 준하(2001) -  (한줄 평 없음) 수감된 지 7년 만에 특별 휴가를 나온 여자 애나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남자 훈의 짧고 강렬한 사랑. 수인번호 2537번 애나. 7년째 수감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 쫓기듯 차에 탄 훈이 차비를 빌린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나랑 만나서 즐겁지 않은 손님은 처음이니까, 할인해 줄게요. 오늘 하루."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선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 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돌아가 버릴까?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2537번,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 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 만추(2010) -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백성희 분)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박인환 분), 고모(신신애 분)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상우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분)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은수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참고로 <봄날은 간다>를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 멜로의 최고 작품으로 꼽음 ★★★★★ 봄날은 간다(2001) - 허진호와 이영애와 유지태, 그들 각자의 최고작. 시도때도 없이 다가가는... 나는 참, 부지런한 스토커입니다 오직 한 남자만... (아는 여자) 눈높이 특이한 여자의 눈치코치 없는 러브 스토리 내겐 주사도, 첫사랑도, 내년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사랑을 찾고 있다 한 때 잘 나가던 투수였지만 현재는 프로야구 2군에 소속된 별볼일 없는 외야수 동치성. 애인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고받은 날, 설상가상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받는다. 실연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치성에게는 해당사항... 없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마음으로 단골 바를 찾아가 술 석잔에 엉망진창으로 취해버렸다. 눈떠보니 여관 방. 낯익은 바텐더는 그를 봉투에 담아왔다고 하며 그에게 주사가 없음을 알려준다. 참 이상한 여자다. 다음날 야구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지난 밤 남자의 이야기가 '필기 공주'의 사연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덧붙여지는 사랑 고백. '나를 아.는.여.자? 진짜 이상한 여자다...' 너무 오래돼서 그를 왜 좋아하는지 까먹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주업은 100% 당첨률의 라디오 사연 응모. 부업으로 바텐더를 하고 있는 여자 한이연. 10여년 전, 치성과 이웃 사촌이 되던 날부터 그의 발자국을 세어가며 조금씩 계속된 사랑. 그런데 어제, 술도 못먹는 그 남자가 찾아와 갑자기 술을 달라고 했다. 그냥 만원어치만. 아니나 다를까 거푸 세 잔을 마시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할 수 없이 그를 여관으로 옮겼고 잠든 그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곁에 누워보았다. 하지만 미친듯 방망이질치는 내 심장 소리에 그 남자가 깰까봐 슬그머니 여관을 나왔다. 그 사람 옆에 더 있고 싶었는데... 그냥 나왔다. 다시 아침. 처음 모습 그대로 아직 잠들어있는 치성. 이 남자 주사도 없네. 부스스 눈을 뜨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한다. '어? 바텐더?' 그 남자와 나 사이, 39발자국 접근 완료. 이제 그냥 아.는.여.자. 로만 있을 수 없다! 난생 처음으로 그 남자와 눈맞은 기쁨을 라디오에 실어보냈다. 경품으로 날아온 휴대폰. 남자에게 건네며 전화번호 입수. 또 다른 프로에서 받은 식사권과 영화표로 데이트 신청도 성공. 어느새 그와 나 사이, 39발자국으로 좁혀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그냥 좀 '아는 여자' 말고 그 남자 가슴 속 특.별.한.여.자. 이고 싶다. ★★★★ 아는 여자(2004) - 낯 간지럽지 않게 순정을 말할 줄 아는 로맨틱코미디. 1983년 여름. 국문학과 82학번 서인우는 적극적이고 사랑스런 여자 82학번 인태희를 만난다. 자신의 우산 속에 당돌하게 뛰어들어온 여자 인태희. 비에 젖은 검은 머리,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당돌한 말투까지 인우의 마음은 온통 그녀로 가득 차 버린다. 그녀의 존재로 가슴 설레여하고, 그 사람의 손이 닿은 물건이면 무엇이든 소중하게 간직하며 사랑은 무르익어 간다. 그러나 그들에게 군입대라는 짧은 이별의 순간이 오고, 서로에게 짧은 이별이라 위로했던 그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데... 2000년 봄. 인우는 이제 어엿한 가장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태희를 잊지 못하는 그의 정수리 위로 다시 한번 소낙비가 내리고... 17년 전, 소나기가 쏟아지던 그 여름 자신의 우산 속에 갑작스레 뛰어들었던 태희처럼, 다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람.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그 사람에게서 인우는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번지 점프를 하다(2000) - (한줄 평 없음)
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1 초상화를 완성하는 동안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빅토리아 시대 부부, 1890년대 #2 베오그라드 근처 최전선까지 자신을 방문하러 온 아버지와 함께 잠든 세르비아 군인, 1914/1915 #3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아침, 동독 국경 수비대가 베를린 장벽 너머로 꽃을 건네고 있다, 1989 #4 도쿄의 국수 배달부, 1935년 #5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와 그녀의 아이, 1900년대 #6 제2차 세계 대전 중 부다페스트. 유대인들은ㄴ 도나우강변으로 끌려가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에 따른 후 총살 당했다. 지금은 60켤레의 철제 신발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강둑을 따라 늘어서 있다. Can Togay와 Gyula Pauer의 '다뉴브 산책로의 신발'. #7 1967년 7월 17일, 실수로 고압선을 만져 4000볼트의 전기에 감전돼 심정지가 온 동료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전기공. 동료의 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Champion은 사고에서 살아남았고 다음 주에도 출근했다고 한다. #8 2차 세계대전 중 부상 당한 개를 태운 동물 구급차 #9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기, 캘리포니아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 1918년 #10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뉴기니, 1970 #11 도르레를 이용해 강을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들. 모데나, 이탈리아, 1959년 #12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 철도 신호수 제임스 와이드(James Wide)가 애완동물이자 조수인 잭 개코원숭이와 함께 일하는 모습, 케이프 타운, 1880년대 James Wide는 1881년에 차크마 개코원숭이를 구입하여 휠체어를 밀고 감독 하에 철도 신호를 작동하도록 훈련했다. 개코원숭이는 하루 20센트, 매주 맥주 반 병을 받았고, 철도 회사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3 노예 남성이 3년간 다리에 착용하고 있던 사슬을 제거하는 영국 선원 이 노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왕립 해군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만 해안에서 노예 무역 기지를 탈출했다.⁣(1907) #14 1902년 프랑스의 나이프 그라인더, 그들은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누워서 일했고 온기를 위해 개를 다리에 앉혔다. #15 연구원이 한 번에 최대 8권의 책을 작업/읽을 수 있게 해주는 18세기 장치 #16 9/11 테러, 81층에서 걸어 내려가 1층에 막 도달한 순간 무너져내린 세계무역센터의 먼지 구름을 뒤집어쓴 여인 먼지의 여인 Marcy Borders는 2015년 8월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암이 그 날 흡입한 먼지 때문에 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9/11 피해자 보상 기금과 세계 무역 센터 건강 프로그램은 지난 18년 동안 2,000명 이상이 그날의 사고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17 2001년 9·11테러를 부시 대통령이 처음 알게 된 순간 #18 독일 베를린, 1985-2018 #19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한 10년 후 찍은 필리핀계 미국인 가족 사진, 1912 #20 2800년 된 키스 (출처) 먹먹하기도, 웃음이 지어지기도, 또 괜스레 뭉클해지기도 하는 역사적 순간들 :)
무기력 이기기 위한 청소 방법 체크리스트
🔹 스압 이 표는 무기력하고 청소가 자꾸 밀리거나  어디서부터 시작을 할까 고민 중인 덬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표를 공유하는 것임 여러번 보긴 했는데 오류 있다 싶으면 알려주면 감사 ❗이걸 한 번에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 아님 집안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24시간 계속 생김 애초에 이걸 다 하진 못 함 ㅈㄴ 힘듦 이걸 다 하면 대청소임 🔹 오늘 이걸 못했다?  그럼 내일 못한 것부터 해치워 나가면 됨 한 번에 다 하면 질려서 또 다시 밀리니까 하나씩 해보면 됨 절대 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함 절대 다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함 하다 보면 순서를 익히기 때문에 점점 보지 않아도 하게 될 수 있고 하고 나면 개운함 뿌듯함이 있음 그리고 설거지, 바닥쓸고닦기, 샤워 되도록 매일 밀리지 않는 게 좋음 🔹 내가 하는 방법 당일 청소할 수 있는 양을 하고 나서 다이어리 대용으로 씀 오늘 뭐 했지? 하면서 오늘 일과를 정리하고 체크만 하면 되는 체크리스트임  🔹 미안한데 파일은 없음 파일 업로드 방법도 모르고 파일은 올릴 생각이 없어서 이미지만 올림 출력용으로도 쓰는 덬들이 있을까 해서 1~3으로 나눴고 모바일용은 옆이 기니까 잘 안 보여서 10일 단위로 나눴음 ❗ 부탁이 있다면 이걸 언제 다 해 이거 보자마자 더 못하겠다 니가 무슨 무기력이냐 넌 무기력증이 아님 이 정도도 알아서 못 해? 저렇게까지 쓰면서 해야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힘빠지게 할 거면 댓글 대신 뒤로 가주면 좋겠음 이건 노력해 보려고 시작하려는 사람을 위해 따로 정리해서 만든 것임 모바일용 🔹 방 3개 기준으로 썼고 있을법한 가전제품이나 자취 물품은 거의 넣었는데 혹시나 없거나 필요한 리스트가 더 있으면 마지막 3번 기타 비워져 있는 공간에 적고 쓰면 됨 🔹 베개는 자기 전에 기초도 바르고 침 흘리거나 머리 두피때문에 금방 지저분해져서 여러개 두고 바꿔주는 게 좋음 이불도 이불 종류에 맞게 빨래 방법을 찾아서 빨래 주기를 정해주면 됨  나는 베개는 1주 베개솜은 옷걸이에 걸거나 건조대에 얹어서 햇빛에 소독하고 / 이불은 2주에 한 번 교체 세탁함 🔹 머리빗은 계속 머리카락이나 먼지 각질이 빗에 끼는데 이걸 자주 정리 안 하면 기껏 깨끗해진 두피에 좋지 않으니 쓰면 정리를 해주는 게 좋음 🔹 옷은 최대한 바닥에 버려두지 말고 옷무덤X 건조대에 옷 널어놓고 방치해서 거기서 입으려고 꺼내지 말고 개서 넣고 옷걸이에 걸어둠 🔹 신발장, 냉장고, 세탁기 겉면, 운동기구 등등 생각보다 먼지는 금방 쌓임 먼지털이개 하나 사두고 털어주고 닦아주면 좋음 🔹 냉장고에 식재료 뭐 있는지 자꾸 까먹으면 다이소에 흰색 냉장고 자석 보드 있음 그거 붙여놓고 메모하거나 식재료 써두면 도움이 됨 🔹 장보고 담아온 비닐이나 썼던 깨끗한 비닐은 씻어두고 장볼 때 다시 가져가서 흙있는 채소들 등등 담아오면 좋고 큰 비닐은 재활용 버릴 때 활용하면 좋음 🔹 청소할 때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락스 청소 할 땐 꼭 환기를 하면서 해야 함 꼭 사용 방법을 꼭 잘 읽고 청소 해야 함 락스는 단독으로 찬물로 써야 함 많이 쓰지 않아도 됨 (뜨거운물로 하면 염소가스 나와서 위험함) 🔹 설거지할 땐 기름기 있는 거 / 컵 분리 시켜 불려놓고 빈 통에 주방 세제 1L에 세제 1ml ~ 2ml를 풀어서 하면(세제에도 나와있음) 세제 절약 환경 오염도 그으나마 적고 그냥 수세미에 짰을 때보단 거품이 적을지언정 짜서 했을 때보다 훨씬 뽀득뽀득하게 씻김 해보셈 나는 수세미 설거지용 컵용 싱크대 청소용을 씀 🔹 조미료 액상 재료 중에 뒷면을 보면 냉장 보관 실온 보관이 다 다름 설명서를 잘 읽고 실온 냉장보관 해야 함 🔹 화장실 칫솔 거치대 같은 건 습기 때문에 생각보다 곰팡이가 잘 낌 다 쓴 칫솔로 닦아주면 좋음 아님 인터넷에서 구매하거나 다이소에 청소솔 종류별로 파니까 참고해서 종류별로 쓰면 좋음 샤워하고 물기 내리는 스퀴지로 물기 제거하고 나오면 조금이나마 빨리 건조됨 🔹 재활용 배달용기나 플라스틱 음식이나 이물질 있으면 세척해서 배출 쓰레기 버리는 방법을 모르겠으면 덬이 살고 있는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음식물, 일반, 재활용쓰레기 배출 방법 나와 있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무색패트병이나 우유팩 깨끗하게 세척해서 모아서 가져가면 종량제봉투로 바꿔주기도 함 그건 지역홈피나 주민센터 참고 종류별 버리는 방법을 모르겠다? 어플 '내 손안에 분리배출' 참고하면 좋음 헷갈리면 어플 Q&A 들어가서 검색 추천 내가 참고했던 락스 화장실 청소 영상 세상엔 여러 일로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고 무기력함이 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나도 생각보다 무서운 게 무기력인 걸 알게 됐음 내 경험상 기본 청소라도 해야 의욕도 좀 생겼고 몸,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에 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함 1%라도 도움이 되면 다행이라 생각함 봐줘서 고맙고 다들 화이팅임 출처
임용 2번 합격한 사람의 공부, 시험 관련 꿀팁
~줄글주의~ 공부할 때 좋은 꿀팁이 많아 퍼왔어요 도움이 되길 바라며~ 출처는 맨밑에 ! 글 쓰기 전에 먼저 이야기 하자면, 제목을 저렇게 붙이긴 했지만 세상에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수도 없이 많다는거 잘 알고 있음. 그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미 잘 해왔으니 굳이 읽을 필요 없음.  중등 임용이 아니라 초등 임용을 2번 합격함. (나 같은 경우가 아주 많긴함 ㅋㅋ)  임고 현역 때 티오가 엄청 줄어드는 바람에 도지역으로 응시해서 합격했고, 현직으로 몇 년 일하다가 가정 사정으로 인해 지역 이동을 해야 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두 번째 임용을 봤고, 광역시에 합격했음.    물론 초등 임용이 다른 시험들에 비해 경쟁률이 낮긴 하지만, 교대 4학년, 재수생, n수생 까지 다 보는 시험이라 허수도 없는 편이고 두 번째 임용시험에서는 가산점 (임용 경력이 없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가산점과 지역 가산점이 있음) 도 하나도 못 받았지만, 경쟁률이 높았던 광역시에 합격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성취였음. 나 잘났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뿌듯했다는 의미야 ..^^  공부에 왕도란 없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래도 아예 잘못된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거나, 갈피를 못 잡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써볼게.  <이 글은 읽으면 좋을 사람들> -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 사람 -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노력한 것에 비해 항상 시험 점수가 좋지 않은 사람 - 공부에 집중 하기가 힘든 사람  -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  <본론 : 공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수업 (강의)를 집중해서 듣기   학교 수업이든, 인강이든 상관 없어. 수업을 최대한 집중해서 듣는 것이 모든 것의 바탕이야. 솔직히 최상위권 학생이나, 정말 정말 공부 머리가 좋은 소수의 사람들은 혼자서도 공부 할 수 있긴 함.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사 (강사)의 설명을 최대한 집중해서 듣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야. 수업 안들으면 혼자서 1.5배 이상으로 노력해야하니까 이왕 시간 쓰는거 집중해서 듣기 위해 노력하자!  2. 자신의 언어로 풀어서 완벽하게 이해하기.   열심히 들은 강의 내용을 나의 언어로 받아들여서 완전히 씹어먹을 수 있어야 함.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직접 설명해보거나, 남에게 가르쳐보는거야. 사람을 상대로 하면 좋긴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으로라도, 자기 스스로 설명해보면 좋음.  3. 이해한 내용을 보기 쉽게 깔끔히 정리하기.    아무리 좋은 옷이 많아도 옷장에 쑤셔박아 두거나 바닥에 뱀 허물 처럼 벗어두면 보기도 안좋고, 필요한 옷을 빨리 찾기도 힘들겠지? 학습 내용도 옷을 정리하는 것 처럼 보기 좋게 정리해두면 머리 속에서 함께 정리가 되고 기억도 오래 가며, 나중에 복습 효율도 엄청나게 올려줌.  4. 3번을 바탕으로 엑기스만 뽑아서 <단권화> 작업 하기    거창하게 '단권화' 라고 했지만,,, 그냥 자기가 정리해놓은 자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어려운 것, 내가 가장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을 모아서 한번 더 정리된 자료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돼. 사실 3번만 잘 해놓아도 되지만, 단권화까지 한다면 공부가 몇 배로 많이 되긴 해. (정리를 다시 한 번 더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거나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면 개인 판단에 따라 생략해도 ㄱㅊ.) 5. 그날의 공부 내용을 머리 속으로 되내어보기    이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건 샤워하면서, 밥 먹으면서, 걸어다니면서, 틈만 나면 아웃풋 연습을 하는 거임. 지금까지의 과정이 인풋이었다면, 시험은 아웃풋이 필요하므로 일상 속에서 항상 아웃풋에 익숙해지게 해야해. 나 같은 경우에는 두 번째 임용 준비할 때 퇴근하면 밥 사먹고 도서관으로 직행해서 공부했었는데, 공부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하면서 항상 그 날에 뭐 공부했는지를 쭉~ 생각해봤었어. 책의 목차처럼 큰 주제부터 하나 하나 떠올려보고, 디테일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으면 씻고 나와서 다시 확인해보고 그랬음.  6. 각 잡고 백지 쓰기   공부한 내용을 모조리 백지에 적어보는거임. 이때 못 쓰는 내용은, 내가 공부했지만 내 머리에는 없는거야. ㅋㅋㅋ 백지 쓰기도 너무 많이 하면 시간 잡아먹고, 손도 엄청 아프기 때문에 개인 취향에 따라 키보드로 타이핑 하는 것도 좋음.  (토익 공부 같은 것은 굳이 백지 쓰기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암기를 요하는 종류의 시험은 백지 쓰기 효과 진짜 좋음!)  7. 백지 쓰기에서 부족했던 내용을 보충하기   이 과정은 3,4를 잘 해놨다면 전혀 어렵지 않음. 아웃풋 결과를 보고, 부족했던 인풋을 다시 해주고 백지를 다시 채워넣는 과정에서 또 아웃풋 연습이 되는 것!  8. 위의 과정을 반복하며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 맞추기  양질의 인풋 + 익숙한 아웃풋 => 시험 합격, 고득점임!! 시험의 왕도는 없다지만 이건 뭐 공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음!  9. 인풋과 아웃풋에 어느정도 자신이 생겼다면 문제 풀이 하기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연습, 자신의 레벨 확인을 할 수 있음. 하지만 중요한건 문제 풀이 자체가 아니라 그 전까지의 과정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임.  10. 문제 풀며 일희일비 하지 말기   맞았다고 자만한다? 응 그 문제 실제 시험에 안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   틀렸다고 좌절한다? 틀린 김에 몰랐던걸 알아갈 기회가 생긴거야~     문제 푸는건 실전 감각 키우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모의고사를 포함해서 모든 문제풀이는 공부라기보다는 트레이닝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돼! 11. 문제 풀이는 정~말 꼼꼼히 하기   문제를 많이 푸는 것 보다는, 풀이를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도움 됨. 그냥 100문제 푸는 것 보다, 30문제를 풀더라도 꼼꼼히 풀이하면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확실히 공부가 되는거야. 맞았네~ 틀렸네~ 끝! 이렇게 넘어갈게 아니라 내가 왜 맞았는지, 왜 틀렸는지를 끈질기게 분석해야해. 1번에서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문제 풀이 만큼은 문제풀의 강의나 선생님 설명에 의지할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진돗개마냥 끝까지 물고 늘어지길 추천해. 내가 70%쯤 아는데 운 좋게 맞춘 문제도 있고, 90%를 알고도 결정적인 것 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틀린 문제가 있을거임.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이 1타 강사보다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거야. 풀이를 꼼꼼히 안 한다면 수박 겉핥기식 공부밖에 되지 않음을 명심하자.  <번외: 그 밖에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이나 팁> * 모르는 것은 꼭 짚고 넘어가자 - 나는 학창시절에도 따로 질문만 적어두는 메모지가 있었어. 공부 하다가, 수업을 듣다가, 모르는게 생기는 즉시 빨리 메모해두고 나중에 스스로 해결하거나, 그게 어려울 경우에는 내가 이해될 때 까지 질문 하고 도움을 구했음. '엥...? 이게 무슨 소리지?' 또는 '아, 이거 뭐였더라?' 하는게 있으면 꼭 적어두고 해결하자. 안적어두면 금방 잊어버리고, 그렇게 놓친 나의 빈틈은 나중에 실전에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길 수도 있다....ㅠ * 집중하기가 어렵다면 뽀모도로 공부법!! - 일정 시간동안 학습과 휴식을 번갈아서 하는 거야.   뽀모도로 검색하면 관련 어플 많이 뜨니까 아무거나 다운 받아서 쓰면 됨.    나는 시작이 엄청 어려운 스타일이고, 핸드폰, 인터넷 등 중독도 심한 편이라 끈기 있게 공부 하기 힘들었음. 그런데 뽀모도로를 알고나서부터는 훨씬 나아졌어!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40분 공부, 10분 휴식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게 힘들어서 25분 빡세게 공부, 5분 맘대로 놀기 했음 ㅋㅋ 이렇게 하면 일단 타이머 울리면 공부 시작하고, 중간에 진짜 놀고싶다가도 아 .... 그래도 휴식 타임에 해야지 ㅠㅠ 쫌만 더 참자.... 이렇게 할 수 있었어. 25분이라는 시간도 생각보다 엄청 길기 때문에, 집중만 한다면 꽤나 많이 공부할 수 있었음!    가끔 삘 받아서 25분이 넘었는데도 흐름 끊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2번째 서클을 곧바로 이어서 하고 나중에 쉴 때 10분 쉬고 이런 식으로 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스터디 타이머 쓰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던 시간은 알아도, 풀 집중한 시간은 알기가 어려운데 뽀모도로 타이머를 쓰면 하루에 몇 서클을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학습 시간 파악하기에도 효과적이었어! 나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9서클만 해도 진짜 힘들더라고 ㅠㅠ 225분 (22*9)이면 4시간도 안 한건데도 그만큼 풀 집중으로 공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음.... 그래도 효율이 진짜 짱 좋음!  * 독서를 취미로 해보자   인문학 서적 등 좋은 책들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 자기가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서 읽어봐. 재미있는 소설이 얼~마나 많게요? ^^ 독서는 산책, 음악 감상 등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에 엄청나게 효과가 좋은 활동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 우리가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책이 엄청 싫어서라기 보다는 책보다 재미있는 다른 것들이 더 많아서잖아? 핸드폰 사용 시간을 과감하게 줄인다면, 책도 엄청 재미있어져 ㅋㅋ 책을 읽으면 배경 지식도 많이 쌓이고, 문해력도 좋아지기 때문에 여러 모로 너무 좋다고 생각해. 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엄청 즐겼고, 고등학교 때도 야자시간에 책읽다가 엎드려서 자는 바람에 감독 선생님한테 책으로 맞아본 적도 있음...ㅎㅎ 그래서 그런지 국어는 공부를 해 본적이 없이 항상 1등급만 나왔음. 그리고 다른 과목도 모두 글을 해석하는 것 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독서는 최고의 공부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  * 삼성노트 등 자신에게 맞는 어플이나 전자기기 사용해서 공부하기    나는 여전히 활자는 종이로 봐야 최고야~~ 종이로 해야 공부지~~~하는 쪽에 더 가깝긴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신기술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나는 위의 공부법에서 3번 공부 내용 정리하기 할 때 내가 쓰는 갤럭시 폰에 기본으로 있는 노트 어플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정리해두곤 했어. 이렇게 하면 나중에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도 바로 검색해서 찾아보기가 편하더라!  * 인터넷, 커뮤니티 등 줄이는 방법    헤비 더쿠 유저인 내가 활용하는 방법이야.... 인터넷을 아예 끊어내지 못하겠거든, 보는 게시판의 종류와 페이지 수를 정해두는 것이 도움이 돼. 예를 들어 스퀘어에는 하루 종~~일 엄청난 수의 글이 올라오지만 핫게에 올라가는 글은 그 중에서 일부잖아? 스퀘어를 계속 보고 있으면 끝이 없지만, 핫게에 글만 보겠다고 정해두면 훨씬 조절하기가 쉬움.    그리고, 무한 알고리즘의 덫에 빠지기 쉬운 유튜브의 경우! 나는 일단 영상을 바로 보지 않고 '나중에 볼 영상' 에 추가해뒀어. 그리고 내가 쉬는 시간이나 놀 때 보기도 했음. 그리고 영상 하나 볼 때 마다 스쿼트 20개 하기를 마음먹고 (학교나 밖에서는 불가능하겠지?ㅋㅋ) 진짜 그렇게 했음 ㅋㅋ 보고 싶은 영상 보면서 스쿼트 딱 20개만 하고, 그 다음 영상 볼 때도 다시 20개 했음. 영상 한 4~5개만 봐도 더 하기 싫어지더라 ^^  *눈 앞의 일에 집중하며 불안감이나 자괴감 떨치기    공부를 안해서 스트레스 받고, 오히려 공부 하면 괜찮아지는 느낌 받아본 적 있니? 공부가 드럽게 안되서 놀고 있으면 자괴감이 들어서 더 힘들고, 공부 안했으니까 불합격 할까봐 (시험 점수 안나올까봐) 불안하고, 불안해서 공부가 더 잘 안되고.... 이런 악순환의 굴레에서 헤매던 때가 있었어. 첫 임용 시험 때 이런 자괴감과 불안감이 너무 심했는데 이럴 때 답은 그냥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더라.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이 최악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해. '아.... 조금만 더 했으면 됐을 것 같은데....ㅠ' 이런 상태가 최악이지 않을까?   두 번째 임용 시험 때는 퇴근 후 공부하며 절대적인 학습 시간도 부족했고, 가산점까지 받지 못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첫 번째 임용 준비할 때 보다 심적으로 힘든 것이 없어서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 다들 공부하며 멘탈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면, 다른건 다 잊고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하자! 억지로라도 시작하면 오히려 훨씬 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최대한 짧은 시간에 수험 생활 끝장낸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나중에 어떤 결과가 있든 시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야.    가끔은 하루 종일 놀거나 해도 괜찮아! 그 뒤까지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시간 날릴 바에야, 공부도 확실히, 쉬거나 노는 것도 확실히 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공부했으면 좋겠어.  <맺는 말>   와.... 이렇게 길어질줄은 진짜 몰랐네. 물론 배우는 즐거움이 있기야 하겠지만, 시험을 준비하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나 포함 ㅋㅋ) 아마 있다면... 그 분들은 학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공부가 지루하고 어려우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위의 방법들을 실천해본 결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 대비 만족할만한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    내 글이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모두들 미련 없이 노력하고, 원하는 결과 얻기를 바랄게!  출처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당시 조상님들의 레전드 드립 모음
창씨개명 당하는 와중에도 드립을 참지 못했던 조상님 모음집 1. 이누쿠소 구라에(犬糞倉衛, 견분창위): 개똥이나 처먹어라 라는 뜻 -> 퇴짜 맞음 2. 이누코 구마소(犬子熊孫, 견자웅손): 단군의 자손이 개자식이 되었다는 뜻 -> 퇴짜 맞음 3. '전병하(田炳夏)'라는 이름을 가진 한 농부는 자신의 이름에 농(農)을 붙여 '전농병하(田農炳夏)'라고 신고했다. 이를 일본어로 읽으면 '덴노 헤이카'.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천황'과 같다. -> 끌려가서 심문 받음 4.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裕仁): 발음이 '미친놈이야 히로히토(천황 이름)' + 쇼와 덴노의 황태자 책봉 이전 칭호와 이름을 합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천황을 조롱하는 의미까지 담음. -> 고딩이었다고 전해짐. 5. 미나미 다로(南太郞→미나미 가의 큰 아들라는 뜻): 당시의 조선 총독의 이름이 미나미 지로("미나미 가의 둘째 아들"라는 뜻)인 것에 착안. 내가 총독의 형이다 라는 뜻. 6. 덴노조쿠 미나고로시로(天皇族 皆殺郞, 천황족개살랑): 천황 집안 다 죽인다는 뜻에 일본식 이름에 흔히 붙이는 '로'만 붙임. 이렇게 해도 되냐고 총독부에 직접 엽서를 보냄. 7. 쇼와 보타로(昭和 亡太郞, 소화망태랑):  쇼와 망해라는 뜻에 일본식 맏이의 이름에 흔히 붙이는 '타로'만 붙임. 이렇게 해도 되냐고 총독부에 직접 엽서를 보냄. 8. (세로 드립) 구로다 규이치(玄田牛一): 이는 畜生을 파자한 것으로 세로로 써서 읽으면 딱 축생이다. 한자로 번역하면 그냥 짐승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어로 발음하면 "칙쇼우.." 번역하면 "씨발, 좆같다"같은 욕으로 사용. ->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인 신불출의 실화 9. 에하라 노하라(江原野原): 추임새인 '에헤라 노아라'와 발음이 비슷 -> 이것도 신불출의 실화 (그 외) 닉넴 걍 막 짓는 타입의 유저들 청산백수(靑山白水), 산천초목(山川草木) 엄이섭야(嚴珥燮也) --> 그냥 자기 이름에 '야'만 붙임 ㅋㅋ (경상남도 양산군 금융조합 직원 엄이섭(嚴珥燮)) (출처) 1. 창씨개명거부운동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한눈에 보는 교과서 한국사 만화 근현대사 상》143쪽 출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총독부에 직접 엽서까지 보내시다니 ㅋㅋㅋㅋㅋ 아니 목숨까지 걸고 드립을 치시냐구요 ㅋㅋㅋㅋㅋ
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3
광복절이네요. 대한독립만세! 외치고 시작합니다. #36 1917년 전기 충전 자동차 #37 히로시마 원폭 진원지에서 1,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한 3세 소년의 세발자전거, 1945 #38 1968년 경마장에서 영국 여왕과 남편 #39 부모와 함께 있는 2살짜리 엘비스 프레슬리, 1937 #40 1945년 5월 베를린 전투 중 베를린의 폐허를 걷는 여성 #41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사, 1934 #42 탈락된 에펠탑 디자인들 #43 1945년 12월 21일 주인이 죽은 날 조지 S. 패튼 장군의 애완견 #44 1983년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한 남자 메흐메트 아그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45 1910년, 미국에서는 아이를 소포로 부치려는 부모들이 많았다. 1913년에 도입됨 사진은 오하이오의 Jesse와 Mathilda의 8개월 된 아들 James. 제임스는 소포를 통해 할머니에게 보내졌다. 철도 티켓보다 저렴한 15c만 들이면 됐던 것. 보험은 50달러였다. 그리고 1920년부터 우체국은 더이상 어린이를 배달하지 않기로 했다. #46 1948년 "어린이 4명 팝니다." 1948년 8월 5일 인디애나 주 발파라이소의 The Vidette-Messenger에 실린 사진. 임신한 엄마가 아이들을 팔려고 내놓은 후 부끄러워 사진 작가에게 얼굴을 숨길 때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며 약간 혼란스러워 보인다. "시카고의 어느 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For Sale' 표지판은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Ray Chalifoux 부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댈 곳이 없는 무직 석탄 트럭 운전사와 그의 아내는 네 자녀를 팔기로 결정합니다. Lucille Chalifoux 부인은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안 카메라 위에서 고개를 돌립니다. 맨 위 계단에는 Lana(6세)와 Rae(5세)가 있습니다. 아래에는 Milton(4세)과 Sue Ellen(2세)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돈을 받았다고 비난했으며, 이는 이야기의 일부였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자녀를 파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년 만에 모든 어린이 사진과 당시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가 다른 집에 팔렸습니다." #47 Moko 얼굴 문신이 있는 미라 머리(Mokomokai) 미라를 만들기 위해 뇌와 눈을 제거하고 두개골의 모든 구멍을 아마 섬유와 잇몸으로 막았다. 그런 다음 머리를 오븐에서 찐 후 불에 태우고 며칠 동안 햇볕에 둔다. 그 후 머리는 상어 오일로 수분을 공급한다. - 마오리 문화 - #48 런던의 '노커 업'(1929). 알람 시계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막대기로 문과 창문을 두드려 클라이언트를 깨움으로써 돈을 벌었다. #49 1900년대 뉴욕시. (컬러링) #50 1936년에 만들어진 보조개 만드는 기계 (출처) 그러니까 이건 광복절 특집 시리즈였습니다. 전쟁 그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완벽한 거짓이다.
모국어를 빼앗긴 피점령국의 슬픔과 고통을 아이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이야기는 거짓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국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우리말을 빼앗긴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로 큰 감동을 주었지요.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날조된 이야기입니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소년 프란츠는 들판에서 노는 것이 더 신나 맨날 학교를 빠지던 아싸(아웃사이더) 어린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만에 뭔 바람이 들었는지 학교에 갔는데 엄숙한 분위기에 놀랍니다. 웬일로 선생님은 정장 차림이었고, 교실 뒷자리에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앉아 있었거든요. 선생님은 부드럽고 무거운 목소리로 오늘 수업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해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북부 독일왕국)에 빼앗김에 따라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당하고 대신 독일어만 가르치게 되었다는 겁니다. 프란츠는 그동안 프랑스어 공부에 게으름을 피운 자신을 마음 속으로 자책합니다. 선생님이 “국어를 굳건히 지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는 순간, 학교의 괘종시계는 12시를 알리고 프로이센 병사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쓰고는 수업이 끝났음을 알립니다. 불량 소년 프란츠는 크게 뉘우치며 조국을 잃은 슬픔 속에서 프랑스어를 지키겠노라 맹세합니다. 그러나 이 당시 실상은 180도 달랐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낀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지역에는 중세 내내 게르만 소국들이 있었습니 다. 이후 석탄과 철광 등 풍부한 지하자원이 묻힌 알짜배기 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프로이센(북부 독일)과 프랑스 간 영역 다툼 끝에 주민 다수가 게르만족임에도 파워가 셌던 프랑스 땅으로 넘어갔지요. 지금도 프랑스 철광석의 90%는 이 지역에서 채굴되고 있어요.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해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임을 선포하면서, 그간 프랑스에 빼앗겼던 알자스-로렌 지역이 다시 독일 땅이 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프랑스 지배를 벗어나 게르만 동족 품에 돌아가 독일어를 배우게 되어 환호했을 겁니다. 소설 속 아이 이름도 프란츠(Franz), 즉 독일식 이름이에요. 그러니 알고 보면 불량 소년이라서 학교에 안 간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 수업이 싫어서 안 들어간 애국 독일 소년이라 마지막 수업 때 드디어 학교에 간 거지요.  한편 제1차 세계대전 때는 48년 만에 다시 프랑스가 이 지역을 점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는 다시 독일이 자기네 땅으로 편입했지만, 2차대전 후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되어 철저히 독일어 공부를 금지합니다. 하지만 해당 주민들의 독일어 교육 요구가 끊임없이 일어나 1982년에야 독일어 공부(소위 ‘알자스어’라고 부름)를 허용한 상태입니다. 일본의 우리말 금지 정책보다 더 지독했던 거예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주범으로 전 유럽인들에게 찍혀 찍소리 못하고 있지만, 독일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소설이 출간된 시기는 보불전쟁에서 패한 지 2년 후인 1873년이니, 알퐁스 도데가 프랑스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독일 품으로 되돌아간 알자스-로렌 지방 사람들이 지금도 프랑스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자기네들끼리 우쭈쭈한 겁니다. 이를 우리나라에 대입해보면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하여 조선 땅을 떠난 뒤, 한 일본 소설가가 조선인들이 일본을 그리워하며 일본말을 소중히 지키고 있을 거라고 판타지 소설을 쓴 것인데,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학교에서 지금껏 감동 소설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우리말 우리글 편-
대한민국에서 학교 9개가 모여있는 유일한 학교단지
1. 성남중앙초등학교 2. 성일중학교 3. 성일정보고등학교 4. 성일고등학교 5. 동광중학교 6. 동광고등학교 7. 성남여자고등학교 8. 성남중학교 9. 성남고등학교 저는 학창시절을 이 곳에서 보내서 익숙했는데 막상 지금와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니 이런 곳이 있냐면서 많이 놀라더라구요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특이하고 신기한 곳이란 걸 새삼 깨달아 썰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1. 등교, 하교 시간 정말 많은 학생들의 유동인구가 발생합니다 9개의 학교 모두 지리상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8시 30분 쯤 되면 온 길위에 각기다른 교복을 입은 많은 학생들이 모두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장관을 볼수있죠 하교할 때도 마찬가지로 5시 쯤에는 학교 주변 모든 버스와 길들이 학생들로 채워집니다. 2. 운동장 사용 성일중학교, 성일정보고등학교, 성일고등학교. 이 세 학교는 모두 한 운동장을 사용합니다 많은 수의 학생이 한 운동장을 사용하는 만큼 점심시간에는 운동장 반대편에 있는 급식실 까지 운동장을 모두 전력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 모두 밥을 먹고 난뒤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놀기도하며 여학생들은 운동장의 트랙을 회전초밥 처럼 계속 빙빙돌며 얘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죠 바로 체육수업이 겹칠 때 입니다. 여학생들은 별로 운동을 하지 않고 체육시간을 대화에 소비하는 만큼 다른학교 학생들과 트러블은 없지만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려하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당연히 중학교 친구들은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는 위치이지만 같은 나이 대인 성일고와 성일정보고 학생들은 기싸움을 많이 벌였던 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 꼽주기, 상대 공 일부러 멀리 차기 등등 3. 끝까지 가는 인연 이름이 같은 것에서 눈치 채셨듯이 동광, 성일은 모두 한 교육재단 밑에있는 사립학교들 입니다 같은 재단을 둔 학교들이 서로 붙어있으니 선생님들 마저도 졸업하면 또 같이 따라오시는 경우도 많으며 중학교 때 없어진 선생님을 졸업하면 볼 수 있는 일도 생깁니다 또한 중학교에서도 같은 재단의 학교들로의 진학을 추천하여 같은 중학교 출신의 학생들이 많습니다 4. 매점 고등학교의 꽃인 매점이 이 구역에서는 모든 학교 공용 매점입니다. 1번 매점은 성일중과 성일고 사이에 있으며 주로 성일고매점으로 불립니다. 2번 매점은 운동장 옆에 있지만 성일정보고와 가까와 정보고 매점으로 불립니다 학생 수가 많다시피 매점을 이용하는 학생들 역시 정말 많습니다. 아침에 졸린 학생들은 1교시에 자서 2교시 쉬는시간 쯤 모두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매점으로 향합니다 그 시간에 매점은 마치 블랙 프라이데이를 방불케할정도의 인파가 일어나 뭐 하나를 사먹으려면 쉬는시간 전체를 기다려야합니다. 5. 빨갱이와 스머프 이것은 성일중학교와 성일고등학교의 별명인데요, 각 학교의 하복들이 심하게 한 색깔만을 띄고 디자인이 심하게 구려서 나온 별명입니다 사진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재밌는 것은 1Km내에 학교가 4개가 더있다는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게 어떻게보면 또 재밌었네요ㅎㅎ 여러분들의 학교는 어떤 구조였는지 댓글 달아주세요! 지구촌갤러리 먼치즈님 펌
해부 극장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22학번, 이들은 생각했다. 마침 대학을 창설하고 의대를 활성화시키려면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실습이 많이 필요하다. 즉, 해부를 할 특별한 교실이 필요하다는 결론. 이때가 1222년이며, 파도바 대학은 (최초는 아니지만) 정말 초창기 세워진 대학다운 대학이었다. 그래서 사진과 같은 일종의 “극장”이 생겨난다. 지금도 수술실을 operating theater라 부를 때가 있는데(물론 operating room이 더 일반적일 것이다), 극장이라는 명사가 붙는 까닭이 있다. 다만 “교실”이 이런 극장화된 것은 300여년이 지난 후인 1593년부터이다. 어째서 300년씩이나? 기록에 따르면 전설의 22학번들도 분명 해부를 실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부용 시체를 구하기가 녹록지 않았고, (불법까진 아니었지만) 시각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해부 극장(!)은 임시 구조물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이게 흥행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입장료 수입도 있을 테고, 일단 대중이 이런 쇼를 좋아했다. 천주교 입장에서도 하느님의 신비를 직접 보여주기에 해부학 쇼만큼 좋은 것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교육적인 목적이 강화됐기 때문에 해부 실습은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파도바 대학교의 해부실(Teatro Anatomico, 참조 2)이 그 시작입니다. 사진은 7월 말 베네치아의 프라다 재단에서 촬영한 것으로서, 프라다 재단의 전시회 이름 자체가 HUMAN BRAINS(참조 1)이다. 이 전시회가 일반적인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회가 아님부터 알려야겠는데, 인간의 두뇌 및 정신과 관련된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관련된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이다. 미술관이 통상적인 개념의 미술만을 전시할 이유가 없다는 고민이 담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두 사진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사진은 200여명이 관람 가능한 6층짜리 파도바 대학교 의대의 원형 해부 극장 모형이다. 둘로 갈라진 객석을 합치면 완성되는 형태인데, 1층에는 학장과 시 고위관계자들(한 번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도 직접 구경했다고 한다, 참조 3), 귀족들이 착석 가능했고, 학생들은 2층부터 앉을 수 있었다. 아마 고학번부터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두세 층이면 관계자 모두가 앉을 수 있잖았을까? 나머지는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경쟁이 낳은 또 다른 해부실이랄 수 있을 텐데, 파도바 대학이 만들었으니, 파도바 대학을 배출한 볼로냐 대학이 빠질 수 없다 이겁니다. 이 사각형의 해부실이 바로 볼로냐 대학의 해부실이었다. 1637년에 세워졌으며, 차별화를 위해 파도바 대학교와는 달리 사각형으로 지어졌고, 여러 유명인사들(갈레아누스, 히포크라테스 등등)의 흉상과 함께 그유명한 Memento Mori라는 글귀가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부 극장 시설이 이탈리아에만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방식 쇼로 둔갑한 곳은 아무래도 네덜란드일 테고(참조 4), 네덜란드에서는 흥을 돋구기 위해 해부 실습을 할 때, 라이브 콘서트도 개최됐다(참조 3). 파리와 런던, 웁살라, 마드리드, 베를린은 당연하거니와 미국에도 퍼졌다(참조 5). 이런 식으로 "수술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 출처는 참조 7번 기사. 위에서 언급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해부 극장은 수술 극장으로도 이어졌는데, 해부에서 수술로의 전환은 해부 극장 자체의 쇠퇴로도 이어진다. 이제 대중용 극장이 아닌, 실무 외과의사의 프리젠테이션(참조 6) 및 교육의 의미만 남는 것이다. 19세기 들어가면 해부 말고도 많은 볼거리는 물론 미디어가 출연한다. 대중이 굳이 시체만 보러갈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이름, ‘극장’만은 수술실 명칭에 남았다. 20세기 초까지는 그런 극장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으나 점차로 수술 장면은 그냥 사진과 영상 기록만 남기고, 위생상 이유와 함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교육과 해부학 실습은 별도의 방에서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참조 7). 한국의 경우는? 예전 사진들을 보면 수술 극장이었던 형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연세대 의학박물관(동은의학박물관)에는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주말 특집이었습니다. ---------- 참조 1. HUMAN BRAINS : https://www.fondazioneprada.org/project/human-brains-it-begins-with-an-idea/ 2. https://www.unipd.it/teatro-anatomico 3. 1968년 미국 국립 의학도서관의 논문을 보시라. Old anatomical theatres and what took place therein.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033863/ 4. 해부학의 라이벌, 빌도와 라위스(2019년 8월 25일): https://www.vingle.net/posts/2661779 5. 토마스 제퍼슨이 버지니아 대학교 설립 계획을 세울 때, 해부 실습 극장 도안도 그렸었다. Drawing 4를 보시라. Thomas Jefferson's Plan for the University of Virginia: Lessons from the Lawn (Teaching with Historic Places) Drawing of the University of Virginia with several buildings facing open square. https://www.nps.gov/articles/thomas-jefferson-s-plan-for-the-university-of-virginia-lessons-from-the-lawn-teaching-with-historic-places.htm 6. 몇 번 언급한바 있는 드라마, The Knick의 의사들이 수술하기에 앞서, 수술극장에서 장황하게, 수술을 어떻게 하겠노라 강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The Knick (2014) 시즌 1(2014년 10월 20일): https://link.medium.com/O7ybA0Rx24 The Knick (2015) 시즌 2(2016년 1월 2일): https://medium.com/@minbok/the-knick-2015-%EC%8B%9C%EC%A6%8C-2-3064a20b7bdb 7. Inside the Operating Theater: Early Surgery as Spectacle(2015년 12월 9일): https://daily.jstor.org/inside-the-operating-theater-surgery-as-specta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