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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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법잡] 미란다 법칙의 미란다는 누구일까?


헐 법조인이거나 정치인이거나 그럴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니네여??
마지막 결말까지 충격,,,
미란다씨,... 당신은 이름을 남기긴 남겼는데...,,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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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때문에 생긴 법에 자기가 당했죠! 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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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거르는 세 가지 체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사는 마을에 남의 얘기하기를 좋아해 여기저기 헛소문을 퍼트리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나무 밑에서 쉬는데 마침 그의 앞을 지나가던 청년이 소크라테스를 발견하곤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소크라테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윗마을에 사는 필립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세요? 착한 줄로만 알았던 그 친구가 글쎄…” ​ 이때 소크라테스는 청년의 말문을 막고 되물었습니다.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세 가지 체에 걸러보세. 첫 번째 체는 사실이라는 체라네. 자네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증거가 확실하나?” ​ 그러자 청년은 머뭇거리며 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 소크라테스는 다시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두 번째 체는 선이라네. 자네가 하려는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면 최소한 좋은 내용인가?” ​ 청년은 이번에도 머뭇거리며 답했습니다. “별로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 소크라테스는 이제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체로 다시 한번 걸러보세. 자네 이야기가 꼭 필요한 것인가?” ​ 청년은 이 질문에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 “그렇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도 아니면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요즘은 말뿐만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 그중 ‘댓글’은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하지만 익명성이란 가려진 얼굴 뒤로 더 쉽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 따라서 성급하게 말을 하거나 댓글을 남기기 전에 늘 3가지 체에 한번 걸러보시기 바랍니다. ​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상대에게 유익이 되는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 꼭 필요한 이야기인지 걸러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말을 할 때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말하고 들을 때는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배우도록 하라. – 루이스 맨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말#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반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반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한국의 뿌리깊은 유교사상인 장유유서에 기인한다." 이렇게 알고 계신 분 많죠? #예의 . . . 실제로 유교가 가장 꽃피던 조선시대에도 없던 개념입니다. 소학이나 동몽선습 등 유교 고전에는 5살 많은 사람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친구처럼 지낸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조선 유교문화의 본거지라 할수 있는 안동에서 나고 자란 윤학준 씨가 양반문화에 대해 쓴 책에는 상팔하팔이라 하여 위아래로 8살 차이까지는 마음만 통하면 친구를 맺을수 있다고 나옵니다. 실제로 경남 밀양의 양반가 막내딸이셨던 어머니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하지말고 나이가 10살 터울 이상이 나거든 어른으로 깍듯이 대해야된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 . 그럼 이렇게 이상한... 한 살만 많아도 극성맞게 나이를 찾아먹는 풍습은 어디서 기인한걸까요? 바로 일제시대의 잔재입니다. 모리 아리노리라는 일제의 문부대신이 사범학교령으로 군대제도를 학교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이런 못된 습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 . . 요즘 애 키우는 부모들도 어린 애들에게 동갑내기 아이를 만나면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라."라고 가르칩니다. 동갑이면 친구라는 개념도 오싹하긴 했어요. 왜 친구죠? 사람 소개하면서 "동갑인데 친구 해라."라거나... 처음 봤는데 "내가 나이가 많으니 형이라고 불러라."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 . . 나이가 많아도 뜻이 통하면 친구이고 나이가 어려도 뜻이 통하면 친구이고 나이가 같아도 통하지 않으면 그냥 남입니다. . . . 제 사고방식은 오래 전부터 그랬는데요. 제가 미친 놈인 줄 알았습니다. 형이라고 부르라는 사람에게... "차차 친해지면 그 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집니다. 특히나 술자리에서요. 늘 까칠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더랬습니다. 이제보니 전 전통적 관습을 잘 지키고 살면서 일제의 잔재를 거부했던 거였어요. 더 성숙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스토리뉴스 #더] 퇴근하고 좋은 데 간다는 김 대리, 어딘가 봤더니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시대.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정보통신기술이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그에 따른 디지털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화를 위해서는 개발자가 필요하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IT 인력 비중 변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41.3%가 ‘IT 인력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평균 32% 정도 IT 인력이 증가했다. 기업들이 말하는 IT 인력의 대부분은 역시 개발자다. 관련 비즈니스 모델과 업무량이 늘면서 기업들은 더 많은 개발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45.7%에 달하는 기업이 IT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개발자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을 때 상품의 가격은 올라간다. 인력 시장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상품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과거 개발자의 이미지는 ‘박봉’과 ‘야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스스로 3D 업종이라 말하는 개발자도 부지기수였다.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 지금은 다르다. 기업들이 서로 개발자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업들은 개발자를 새로 뽑는 것에 더해 지금 회사에 소속된 개발 인재를 지켜야 하는 과제 역시 안고 있다. 이에 개발자를 두고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게임업계에서 개발자들의 연봉 인상 러시가 이어졌다. 내로라하는 IT 공룡들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연봉에 보너스,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 돈과 관련해 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동원되고 있다. 개발자의 처우가 바뀐 것은 최근이지만 개발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2015년 7월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를 위한 인재 양성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듬해부터 순차적으로 초중고교의 정규 수업에 소프트웨어 과정이 추가된 것. 이에 강남을 중심으로 사교육 시장에 ‘코딩 열풍’이 불었고, 코딩 학원, 코딩 유치원, 코딩 캠프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학생들(이라 쓰고 학부모라 읽는다) 사이에서 불던 코딩 열풍은 최근 개발자들의 몸값 상승 바람을 타고 직장인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의 ‘데이터∙개발 클래스’ 카테고리 강의 수는 지난해 5월 5개에 불과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강의만 40개 이상이 열려 있고, 수강생 수도 8배가량 증가했다. IT 교육을 제공하는 IT 인재 양성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의 올해 1분기 교육 지원자 수도 전년 대비 약 5배 늘었다. 오프라인 학원들도 퇴근 후 개발을 배우기 위해 모여든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매일 퇴근 후 어디론가 급히 향하던 옆자리 동료가 알고 보니 먼저 학원을 다니고 있더라는 얘기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모든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직업도 유행이 있어서 반짝 인기를 얻다가 이내 관심에서 멀어진 직업들도 많았다. 그리고는 언제 잊혔었냐는 듯 다시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불고 있는 개발자 열풍은 반짝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엔 결이 다르다. 우리 삶 구석구석 디지털이 접목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개발자들은 점점 더 귀하신 몸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당장 오늘부터 좋은 곳에 간다며 사라지던 김 대리를 따라 학원을 다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구성 : 이석희 기자 seo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낙타의 사막 생존 전략
낙타는 느리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기로 소문난 동물입니다. 그런 낙타에게서 ‘지혜’를 찾는다는 것이 매우 생소하지만, 사실 낙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참 많습니다. ​ 180만 년 전 빙하기 시대, 낙타는 수천만 년 동안 살아온 초원을 버리고 사막에 터를 잡습니다. ​ 먹힐 염려도 없지만 먹을 것도 없는, 즉 생물이 살기에 최악의 조건만 있는 사막에서 낙타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 먼저 낙타의 첫 번째 생존 전략은 정공법입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자 동굴로 피하거나 등을 돌리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낙타는 태양을 마주 봅니다. ​ 태양을 직접 바라보면 당장 얼굴은 뜨겁지만 몸에 그늘을 만들어 오히려 시원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 두 번째 생존 전략은 저돌성입니다. 낙타는 양식이 풍족하지 않은 사막에서 가시덤불, 다른 동물의 뼈까지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여기에 함유된 수분을 온몸 구석구석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하루 최대 200ℓ의 물을 마실 정도로 정격용량을 늘렸고 뿐만 아니라,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소변도 농축해서 배출한다고 합니다. ​ 마지막 생존 전략은 진중함입니다. 냉혹한 추위와 살인적인 더위가 반복되는 사막에서 열 손실을 막기 위해 여분의 지방은 혹에 몰아넣었으며, 사막에서 함부로 달리지 않았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달리는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른 척했습니다. 낙타는 최대 시속 60km까지도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낙타는 죽음 대신 진화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낙타만의 생존 전략을 통해 지금까지도 사막의 배라 불리며 중요한 운송수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 이처럼 우리도 인생의 위기 앞에서 굴복할지 강해질지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때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사람과 환경마다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전략은 위기를 인식하고 버티는 것입니다. ​ 위기는 두려운 것이지만 역으로 성장의 원동력임을 기억하며 도약의 기회로 만드세요. ​ ​ # 오늘의 명언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말은 점점 속력이 둔해지지만, 낙타를 부리는 사람은 여행지까지 줄기차게 걸어간다. – 사디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생존전략#살아남기#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내가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오늘의 주인공은 강항(1576~1618)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 갔지만 알게 모르게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치고 간 사람이었다 강항은 임진왜란 도중인 1593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4년만에 형조 좌랑까지 올랐다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잠시 휴가를 얻어 고향인 영광에 내려와 있었는데 정유재란이 터지는 바람에 휴가가 쫑나고 군량수송임무를 수행했다 강항한테는 비교적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수군통제사가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원균이었다는 점. 칠천량 해전 패배의 여파로 일본군의 공세에 직면하게 된 강항은 간신히 영광으로 도망쳐 의병을 모았다 (?? : 님아 ㅈㅅ) 하지만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일본군의 공세 앞에 의병이 제대로 모일리가 없었고 기껏 모은 한줌의 의병도 도로 흩어졌다 이순신이 수군 통제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강항은 이순신에게 가려고 가족들과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강항이 문관 고위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군은 강항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일본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들었는데 아들과 딸이 죽었으며 병에 걸린 조카가 일본군에 의해 산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강항 본인도 가족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처음에는 일본 에미헤현에 감금되었는데 탈출 시도가 적발된 후 수도인 교토로 이송되었다 강항에게는 천만다행인게 교토에는 말이 통하는 지식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국적을 초월한 만남이 이때 성사된다 강항이 기록한 세이카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두뇌가 총명하고, 옛글을 잘 쓰며, 책을 많이 읽는 성품이 바른 사람으로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이카는 학구열이 높은 사람으로 성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아직 일본에 성리학이 제대로 전수되지않아 배움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조선에서 장원급제한 '성리학 마스터'가 고위직 포로로 끌려왔으니 그야말로 동경하던 아이돌이 옆집에 이사온 꼴이었다 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강항은 조선 정부의 시스템과 과거 제도, 여러가지 성리학 해석을 가르쳐주었고 세이카는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유학자로 갈아탔다 강항이 포로 생활로 힘들어할때 세이카는 강항에게 은전을 주어 생활비로 쓰게 하였으며 강항은 세이카에게 사서오경 일본식 해설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강항이 조선에 돌아갈 수 있게 힘을 써준 것도 세이카였다 임진왜란에서 드물디 드문 국경을 초월한 우정. 1600년 조선 땅을 밟은 강항은 한양에 올라가 일본에 대하여 자세한 보고를 올렸고 기록을 모아 '간양록'을 지었다 이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다 1618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도쿠가와가 일본을 재통일하고 군사적인 필요가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문신으로 바꾸기 위해 유학을 주입하는데 이때 후지와라 세이카를 불러 대학에서 유학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게 일본에 주자학과 성리학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은 도쿠가와의 개인유학 교사인 '시강'이 되었다 100년도 지나지않아 17세기 후반이 되면 조선 주요 수출품에 성리학 서적이 포함되고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오면 일본유학자들이 이들을 잡고 학문과 정치를 논했다 하니 전쟁포로였던 강항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마냥 작지만은 않았던거 같다 일본에는 강항 헌창비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여기에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어놓았다 피를 피로 씻는 임진왜란이었지만 강항과 세이카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구.... 강항의 기록에는 재밌는게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이 일본보다 크다고 하는데 믿을만한 일본인(세이카)이 보여준 기록을 보니 일본이 우리보다 더 큰거 같아요" "일본 군인들은 수백, 수십년 묵은 오래된 검(원문은 천년, 수백년)은 챙겨가는데 최근 만들어진 검은 안 좋다고 그냥 버려요" "조선에서 돌아온 일본애들이 자기들은 한두걸음 칼싸움을 잘하는데 조선애들은 수백걸음 밖에서 활을 쏴서 힘들었다고 하네요" "일본은 세금을 너무 거두어서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군인으로 끌려가는 애들은 충성심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따라다닐 뿐이니 이전에 항복한 왜인들을 잘 품어주었으면 좋았을것 같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신에 문제가 많고 지식인들 중에서는 알음알음 천하가 뒤집어졌다(신분제가 아작났다)라는 불만이 나오곤 해요" 등등 몇 안되는 고위직 포로의 신분으로 그 당시 일본 상황을 총망라한 보고서여서 당시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많다 (출처) 저게 바로 한류인가 K-성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