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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내가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오늘의 주인공은 강항(1576~1618)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 갔지만 알게 모르게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치고 간 사람이었다

강항은 임진왜란 도중인 1593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4년만에 형조 좌랑까지 올랐다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잠시 휴가를 얻어 고향인 영광에 내려와 있었는데 정유재란이 터지는 바람에 휴가가 쫑나고 군량수송임무를 수행했다

강항한테는 비교적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수군통제사가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원균이었다는 점.

칠천량 해전 패배의 여파로 일본군의 공세에 직면하게 된 강항은 간신히 영광으로 도망쳐 의병을 모았다
(?? : 님아 ㅈㅅ)

하지만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일본군의 공세 앞에 의병이 제대로 모일리가 없었고 기껏 모은 한줌의 의병도 도로 흩어졌다

이순신이 수군 통제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강항은 이순신에게 가려고 가족들과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강항이 문관 고위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군은 강항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일본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들었는데 아들과 딸이 죽었으며 병에 걸린 조카가 일본군에 의해 산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강항 본인도 가족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처음에는 일본 에미헤현에 감금되었는데 탈출 시도가 적발된 후 수도인 교토로 이송되었다

강항에게는 천만다행인게 교토에는 말이 통하는 지식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국적을 초월한 만남이 이때 성사된다
강항이 기록한 세이카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두뇌가 총명하고, 옛글을 잘 쓰며, 책을 많이 읽는 성품이 바른 사람으로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이카는 학구열이 높은 사람으로 성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아직 일본에 성리학이 제대로 전수되지않아 배움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조선에서 장원급제한 '성리학 마스터'가 고위직 포로로 끌려왔으니 그야말로 동경하던 아이돌이 옆집에 이사온 꼴이었다

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강항은 조선 정부의 시스템과 과거 제도, 여러가지 성리학 해석을 가르쳐주었고 세이카는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유학자로 갈아탔다

강항이 포로 생활로 힘들어할때 세이카는 강항에게 은전을 주어 생활비로 쓰게 하였으며 강항은 세이카에게 사서오경 일본식 해설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강항이 조선에 돌아갈 수 있게 힘을 써준 것도 세이카였다

임진왜란에서 드물디 드문 국경을 초월한 우정.

1600년 조선 땅을 밟은 강항은 한양에 올라가 일본에 대하여 자세한 보고를 올렸고 기록을 모아 '간양록'을 지었다

이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다 1618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도쿠가와가 일본을 재통일하고 군사적인 필요가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문신으로 바꾸기 위해 유학을 주입하는데 이때 후지와라 세이카를 불러 대학에서 유학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게 일본에 주자학과 성리학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은 도쿠가와의 개인유학 교사인 '시강'이 되었다

100년도 지나지않아 17세기 후반이 되면 조선 주요 수출품에 성리학 서적이 포함되고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오면 일본유학자들이 이들을 잡고 학문과 정치를 논했다 하니 전쟁포로였던 강항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마냥 작지만은 않았던거 같다
일본에는 강항 헌창비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여기에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어놓았다

피를 피로 씻는 임진왜란이었지만 강항과 세이카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구....

강항의 기록에는 재밌는게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이 일본보다 크다고 하는데 믿을만한 일본인(세이카)이 보여준 기록을 보니 일본이 우리보다 더 큰거 같아요"

"일본 군인들은 수백, 수십년 묵은 오래된 검(원문은 천년, 수백년)은 챙겨가는데 최근 만들어진 검은 안 좋다고 그냥 버려요"

"조선에서 돌아온 일본애들이 자기들은 한두걸음 칼싸움을 잘하는데 조선애들은 수백걸음 밖에서 활을 쏴서 힘들었다고 하네요"

"일본은 세금을 너무 거두어서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군인으로 끌려가는 애들은 충성심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따라다닐 뿐이니 이전에 항복한 왜인들을 잘 품어주었으면 좋았을것 같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신에 문제가 많고 지식인들 중에서는 알음알음 천하가 뒤집어졌다(신분제가 아작났다)라는 불만이 나오곤 해요"

등등

몇 안되는 고위직 포로의 신분으로 그 당시 일본 상황을 총망라한 보고서여서 당시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많다




저게 바로 한류인가
K-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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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진정 역사죠. 개인에겐 환난의 시대였겠지만 지나오고 나니 큰 영향력의 시작이었더라는^^ 고맙습니다. 오늘 새로이 안 한일간 세계사에 감동이 훅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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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헬스장 관장이 알려드리는 피해야할 센터, 트레이너
<장문주의, 노잼주의>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에서 개인헬스장 운영중인 관장입니다. 요즘들어 이 업계에 양심터진, 직업윤리 개나줘버린, 미1친놈들이 너무나 많고, 도탁만봐도 소비자분들이 나름대로의 판별법은 가지고 계신 것 같지만 핵심에 짚지 못하는 판별법이 많은 것 같아 끄적여봅니다. (글의 특성상, 체내-영양관련 매커니즘, 전문용어는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이 업계에 발 디딘 밑바닥 시절부터, 대형센터 근무시절, 현재 제 센터 운영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것들은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센터 운영자의 입장에서, 이용객의 입장에서, 처음 둘러보러가거나 PT상담 받으러가는 분들이 많이들 참고해서 통수맞는 일이 없으셨으면하며, 가감없이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중간에 감정이 격해져 비속어가 많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보디빌딩 입상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는 참고되지 않습니다. ■ 피해야할 센터 1. 유선으로 회원권이던 PT던 금액 알려주지 않는 곳.(기본) 기본중 기본입니다. 10년전에는 저게 당연한거였고, 상담오면 방명록 이름 연락처 안적으면 상담 안하던때도 있었습니만... 근데 지금 2022년이잖아요? 이 미1친놈들이 안알려주는 이유야 뭐, 1. 인근센터에서 첩자 보내서 가격 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2. 어떻게든 얼굴보고 강매쳐서 매출올리기 둘 중 하나입니다. 뭐가됐던 정상적인 마인드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은 아니니 피하면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것도 안지키는데 뭘 얼마나 대단하게 직원셋팅, 관리할까요? 2. 더러운 곳(청결) 바닥에 먼지 굴러다니거나, 탈의실 들어가보세요.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탈의실 청소입니다. 회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탈의실 상태가 개판이면 전반적인센터 청결상태는 좋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직원들이야 뭐 미흡하게 할 수 있지만, 직원들이 미흡하게하면 관리자 본인이 직접 하던, 직원들을 조져서 잘 하게 만들던 일단 센터는 무조건 깨끗해야 합니다. 헬스는 건강해지려고 하는것이니까요. 3. 런닝머신 씹히는 곳.(시설관리) 위와 마찬가지로 센터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런닝머신입니다. 그런데, 런닝머신 켜고 발 딛을때마다 벨트가 잠깐잠깐씩, 뚝뚝. 멈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구 상태가 이렇다? 다른기구 안봐도 훤합니다. 시설관리가 아예 안되고 있는 센터입니다. 뒤도보지말고 다음에 다시온다하고 나가세요. 저도 일일이용권 끊고 하다가 화딱지나서 바로 나간적 한두번이 아닙니다. 좋고 비싼기구 깔아놓으면 뭐합니까? 관리를 해야 제 성능을내지... 4. 피크시간에 사람 없는 곳.(안정성) 현재 직장인들 대부분은 퇴근시간이 대동소이하고, 센터가 가장 붐비는 시간대는 19시~22시 입니다. 왠만하면 상담도 이 시간대에 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센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해당 시간대에 횡 하다? 괜찮은 센터인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회원권이 월 100만이 아닌이상 뭔가 하자가 있는 센터일 확률이 큽니다. 5. 불친절한 곳.(기분) 운영자의 입장에서보면 인포는 센터의 첫인상이며 얼굴입니다. 근데 인포직원이 불친절하다? 나머지 직원들은 얼마나 친절할지... ■ 피해야할 트레이너 드디어 메인입니다. 뭐 현직 트레이너분들도 계실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이 밑의 내용들이 불쾌하다해도 별로 미안하진 않으니 뒤로가시면 됩니다. 현재 체감상 트레이너 공급 과잉 상태입니다만, 제대로된 트레이너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력서는 많이와도 뽑을 사람이 없네요. 현재 트레이너 체감 비중. 10%-PT값 이상 해주는 트레이너 10%-PT값 평타는 나오는 트레이너 80%-이 새1끼들 박멸되기 바라며 쓰는 글 0. 초보 트레이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친구들이 80%라는건 아닙니다. 보통 센터에서 '3개월 회원권+PT10회 XX원' 묶어서 하는 프로모션 등록하면 이 친구들이 수업 진행합니다. 아니면 가격표에서 단가 낮게 책정된 금액, 매니저나 팀장이 상담 후 PT금액때문에 고민하면 금액 낮춰주고 이 친구들 추천해드리는게 보통입니다. 이 친구들은 케바케가 심합니다. 여기서 나눠지는 것이, 1. 누가봐도 초보인데 경력있는척 하려한다. 80% 들어가려는 후보자라 보시면 됩니다. 2. 본인도 초보고 아직배우는 입장이지만, 존1나게 열심히 알려드릴 자신 있다.    솔직하게 오픈하고, 티칭욕구 뿜뿜. 1은 미1친놈이니까 거르시면 되고, 2의 친구와 의지 만땅 회원님이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로 인해 경력 이상의 결과들 뽑아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후술할 내용에 앞서 특이케이스를 설명드린것이며, 이 친구들에 대한 내용은 더 작성하기 조심스러워서 이만 적겠습니다. 1. 식단부터 들이미는 트레이너 프로필 촬영이나, 급한 웨딩사진등 특수상황 제외. 보통 센터 방문하시는분들 남녀노소 불문. 80% 이상 회원님들의 운동목적이 다이어트입니다. 운동 초보자 분들이겠구요. 지금 PT알아보시려는 분들도 다이어트 목적인 경우가 상당하겠죠. 정상적인 트레이너라면 식단은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근육 활성화도 제대로 안됐고 근육 사용법도 모르는 사람한테 식단하라고하는건 진짜 도1라이 인거에요. 평상시 몸을 안쓰던 분은 평범한 가정식 먹으면서 '정상적인 트레이너 만나면' 운동만 잘 해도, 건강하게 빠집니다. (1일1닭조지기, 1일1피자조지기, 1일1술 등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진짜요.. 이건 아님요..) 막 매일와서 운동 3시간씩 하고 이런게 아니라, 주4회 1시간 이상만 해도 빠져요. 자, 그럼 처음부터 식단을 들이미는 이유가 뭘까요? 나는 운동으로 체지방 감소시켜줄 자신 없으니 식단 하라는거죠. 운동 ㅈ같이 가르쳐도 덜먹게하면 빠지니까요. 안빠지면? 회원한테 뭐 먹었는지 다그치고 지가 정해진 식단에서 어긋난거 있으면 그런거 먹으니까 살이 안빠지죠. 라고 회원한테 책임 돌릴꺼니까요. 아다리 딱딱 맞아떨어지죠? 평생 식단하면서 살 거 아니라면, 언젠가 일반식 드실 날이 오겠죠? 기초대사량 박살난 상태서 일반식드시면, 요요 아시죠 요요? 네 걔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 그 선생님한테 PT받을때는 빠졌었는데..' 라는 생각이 잠시라도 드는 순간 이미 게임 끝난겁니다. 죄송합니다만 호구잡히셨네요. 정신차리세요. 그양반이 PT해줘서 빼준게 아니라 님이 덜먹어서 빠진거에요. 이런놈들은 믿고 거르세요. 2. 머신운동만 주구장창 가르치는 트레이너 어느 센터 어딜가던 기구는 다 깔려있습니다. 센터에 머신 왜 있고, 왜 쓰는지 아세요? 1. 아, 센터니까 있어야 된다고 2. 웨이트 숙련자가 프리웨이트 후 자극 못 넣은곳들    추가적으로 쑤셔넣기위해 3. 거동 자체에 불편함이 있어서, 프리웨이트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축과 궤도가 정해져있는 머신이라는 틀에 들어가서라도 운동을 수행해야 할 경우. 1은 센터의 입장이니까 제외하고, 2,3에 해당하는 분들 제외한 일반적인 운동 초보분들, 하루종일 직장에서 앉아서 일하다가 헬스장와서도 앉아서 운동하면 효과가 좋을까요? 머신 운동은 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뭐 효율이 아니라 운동한 느낌을 원하시는 거면 머신 메인으로 잡으셔도 무방해요. 머신뺑뺑이 돌리려는 놈한테도 물어보세요. 너는 머신운동 조져서 몸만든거냐고 그러면 뭐 초보는 머신부터 마스터 한 후에, 프리웨이트해야된다 라는 개소리할꺼에요. 자~ 여기서 상위 1번 식단항목이랑 연계가되요. 평소 몸 안쓰던 사람은 머신이고 프리웨이트고 나발이고 덜먹고 뭐라도 하면 일단 빠져요. 머신으로 한 10세션 소진시키고, 아마 끝나갈때쯤되면 이제 프리웨이트 해야된다고 더 끊으라고 할 꺼에요. 아니면 효과 나고있으니 지금 더해야된다면서 머신뺑이돌리던가. 뭐 여성분들같은 경우는 대충 덜먹게해서 말리고, 수분조절해서 말려서 체지방 떨구면, 운동 개못해도 프로필 촬영 가능하긴 합니다만, 건강이랑은 다른문제겠죠? 머신운동을 메인으로 잡는 놈들은 왜 그럴까요? 1. 아, 웨이트 가르치기 자신없다고~ 2. 기구 그냥 사용법알려주고 옆에서 뭐 더더 정도해주고 숫자세면 편함 3. 웨이트는 티칭이 힘듦 상담받으러가서 세션별 커리큘럼 어떻게 되냐고 꼭 물어보세요. 3. 운동 해본적 없는데 분할운동 들이미는 트레이너 기본적으로 생활체육은 보디빌딩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모두 건강을 위해 보디빌딩을 수행하는 것이며, 여러분의 아는 의미에서의 보디빌딩을 위해 운동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여기엔 순서라는게 있어요. 하다못해 라면 끓이는데도 순서라는게 있는데, 몸의 상태, 강도등은 고려하지 않고 운동 종류만 많게 해서 운동하면 효과가 나올까요? 제가 라면끓일건데 불켜고, 면넣고, 스프넣고, 어느정도 익히다가 물넣어서 조리 완성! 하면 맛있을까요?  똑같습니다 아직 스퀏, 데드, 맨땅서 팔굽혀펴기도 못하는데, 밀리터리프레스니, 비하인드넥프레스니, 원 암 로우니, 런지니... 이런 3대운동의 파생운동을 한다고해서 얼마나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 놈들은, 아는거라곤 운동 종류밖에 없어서 대충 겉핥기 지식으로 여러가지 운동 중구난방식으로 티칭하는, 보디빌딩의 기본적인 흐름조차 이해하지 못하고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또, 처음하시는분들은 여러가지 운동 자세 '흉내낼 줄 알게 되니' 운동 막 잘하는 것 같고, 이거 계속 하면 몸 좋아질 것 같고 그렇죠. 좋아지긴해요 한 10년정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하면 확실히 좋아지긴 할꺼에요. 4. 여러분들의 오해 막 입상경력 화려하고, 자격증 많고 그런 사람들한테 배우면 님들 몸 좋아질 것 같죠? 저렇게 될 것 같죠?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본인 운동 잘하는거랑, 남을 가르치는거랑은 완전 별개문제에요. 운동에 대한 접근 방법 부터가 달라져요. 여태껏 이바닥에 있으면서 본인 운동은 잘하는데, 회원님들은 못가르치는 분들 수두룩 빽빽하게봤어요. 보통 그분들은 중량 이빠이 들게 하죠. 지식이야 당연히 많이 알죠. 그런데 프리웨이트 티칭이라는게, 회원의 해당 운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문제점을얼마나 빠르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세를 수정시켜서 올바른 자극을 넣되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에요. 여기서 가장 필요한게 뭘까요? 바로 여러분들에대한 보는 눈과 관심과 집중. 아무리 많이알아도 여러분에게 관심이 많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될 수 밖에 없어요. 보통 보디빌딩 하시는 분들은 본인 몸에 관심이 가장 많죠. 다 그렇다는 일반화는 아닙니다. 그리고 자격증? 돈내고 교육받으면 따는 민간자격증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아무쪼록 피할건 피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도탁스펌
초고대문명 아틀란티스의 유력한 후보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처음 언급한 아틀란티스. 물론 당대에도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말이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허무맹랑하다'고 비판했고 플루타크 영웅전을 쓴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도 신뢰성에 의문을 표함 심지어 기원전 3세기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소실되기 이전)에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는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고대의 문서들이 소실되기 이전 시대 학자들조차도 아틀란티스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던 것 하지만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너무나 구체적인 묘사에다가 자기 가문 출신 어른인 솔론이 이집트에서 들은 것이라며 조상의 이름을 내걸고 사실이라 주장했다는 점,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을 정도로 평소에도 허구를 창작하는 걸 싫어했다는 점 때문에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또 찜찜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플라톤의 묘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가운데에 있는 중앙섬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의 운하 3개가 둘러진 동심원 형태의 구조를 취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 짤과 같은 상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아틀란티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존에 추정됐던 장소로는 에게해 산토리니섬, 북해 도거랜드, 모로코 수스마사 등이 있었는데 2018년에 들어와서 새롭고 강력한 후보지가 등장한다.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국가 모리타니에 있는 '사하라의 눈' (또는 리차트 구조라고 불림) 이 바로 그것이다. 직경이 약 50km에 달하는 거대한 동심원 모양의 지형이지만 너무 크다보니 평지에서는 흔하디 흔한 모래사막의 언덕으로만 보여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고해상도 인공위성 사진을 얻게 되면서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 이상적인 지형과 유사한 곳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모래언덕으로만 보인다 이곳은 현재 분쟁지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고 고고학자고 출입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면 중앙섬을 중심으로한 동심원 구조의 지형 크기와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평야가 있다는 묘사가 일치한다는 것 (리차트 중심부 크기가 약 24km 인데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 크기는 23.495km) 사하라 사막이 자전축의 변화로 사막화가 진행된 시점이 약 5천 년 전이므로 아틀란티스가 멸망했다는 9천 년 전에는 (현재 우리 시점을 기준으로는 1만 1천 년 전) 사하라의 눈이 사막이 아니라 녹지대였다는 것, 모리타니 사막에서 고래 화석이 발견되어 이곳이 한때는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적이 있었다는 것 등등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사하라의 눈을 아틀란티스로 가정한 상상도 도탁스 펌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기갑부대의 활약
우선 밑의 썰 대부분의 출처는 필리핀 국방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axDefense/posts/so-who-is-maj-maximo-young-ret-the-latest-recipient-of-the-south-korea-order-of-/991951714308819)의 게시물임을 밝힘. 자국 홍보용 SNS라는 특성상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율동전투 때의 활약 등은 이미 국군, 미군 자료와 교차검증되는 부분이고 출처로 자국 기록이 아닌 'US Army in the Korean War' 4권, 미군 기밀문서 'Army 12 November 1952', USACMH 발행 'The Korean War the Outbreak'등 외국 자료를 기재하고 있어서 적어도 난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함. 한국전쟁때 필리핀군은 10대대 전투단을 파병, 총 파병인원 7500여명을 보내 UN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군인을 보낸 군대였는데 특기할 사항은 이 10대대 전투단은 '기갑부대'였음. 그것도 필리핀에 있던 유일의 기갑부대.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 M4A1셔먼(75mm모델), M10 울버린 구축전차, M7 프리스트 자주포,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3 반궤도 장갑차등 기갑차량을 도합 500여대 가량 보유하고 있던 서류만 놓고보면 상당한 기갑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기갑차량들이 대부분 정비, 운용할 인원 없이 창고에 쳐박혀 있던 물건들이라는 점이었음. 근본적으로 미군이 필리핀에서 쓰다가 회수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서 필리핀에 남게된 잉여물자들이었고 이걸 운용할만한 숙련된 정비병과 전차병, 인프라는 필리핀에 매우 소수만 있어서 필리핀은 1950년 시점에서 10대대 전투단 단 하나의 기갑부대만을 운용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29대의 셔먼 전차와 10대의 스튜어트 경전차 소수의 m101 105mm 자주박격포만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함. 하지만 필리핀은 6.25 개전 직후 곧바로 식량 및 농기구, 비료등을 한국에 지원해준 걸로 모자라 유일한 기갑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한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했음. 필리핀이 안정되어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 1946년 독립 이래 내부적으로 이미 한국보다 먼저 개판이 나서 친미정권에 반기를 든 공산 반군 후클발라합, 남부 이슬람 무장단체등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2~3개로 쪼개질 판국이었는데도 기갑차량 운용능력을 가진 유일한 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파병할 것을 결정한 것임. 개전 3개월이 채 안된 1950년 9월 15일에 부대는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김. 부대는 총 16대의 셔먼 전차와 1대의 울버린 구축전차를 운용할 예정이었는데 병력이 출발하기 이전에 "미리 유엔군에 장비를 보내놓고, 도착하면 다시 받아 싸우자!"라는 생각에 기갑차량들을 먼저 부산항에 보냄. 그리고 따로 병력이 출발함. 근데 막상 9월에 필리핀군이 부산에 도착하자 필리핀군은 차량을 못받음(???). 그래서 필리핀군은 명색이 기갑부대인데 인천상륙작전 이전까지 그냥 기갑차량 없이 보병으로 싸웠다고 함. 필리핀 국방부 페북에 따르면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괴되었다고도 하고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17대의 기갑챠량의 행방은 오리무중임. 아무튼 그래도 필리핀군은 부산과 대구에서 기갑없는 기갑부대, 사실상 보병부대로서라도 열심히 싸웠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미군에게 필리핀군이 가진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요청을 넣어 다시 채피 경전차와 셔먼 중형전차등을 받아 기갑부대로서 구색을 갖추는데 성공함. 1950년 11월 미우동에선 비가 내려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진창이 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채피 전차를 운용해 북한군을 격퇴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1년 4월 20일 임진강 인근에선 2대의 미군 M26 퍼싱 전차가 수렁에 빠져 기동불능이 되는 사태가 발생, 중공군은 포격을 가한 후 다수의 보병들을 보내 퍼싱 전차를 노획하려 했는데 이때 10대대 전투단의 전차들이 달려와 중공군을 격퇴하고 미군 전차병들이 성공적으로 퍼싱 전차를 회수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함. 하지만 가장 유명한건 1951년 4월 22일 벌어진 율동전투. 율동에서 900명의 필리핀 10대대 전투단 병력이 거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중공군 44사단 병력이 공격을 개시, 근처에 있던 미군 부대가 모두 후퇴하면서 필리핀군이 지키던 거점은 쿠르스크마냥 툭 튀어나온 형태가 되어버림. 중공군은 4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립되고 통신도 끊긴 필리핀군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필리핀군은 소수의 채피 전차로 이 공격을 격퇴하고 거점을 지키는데 성공함. 필리핀군은 1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중공군은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음. 전선이 답 없이 밀리면서 필리핀군도 결국 후퇴하지만 필리핀군 덕분에 미군은 후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음. 콘라도 디 얍 대위 막시모 영 소령 이 과정에서 콘라도 디 얍(Conrado D. Yap) 대위와 막시모 영(Maximo Young) 예비역 소령이 뛰어난 활약으로 2018년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음. 콘라도 디 얍 대위는 퇴각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돌격을 감행, 중공군을 패퇴시키며 부상자들을 구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은 전사함. 막시모 영 예비역 소령은 이때 채피 경전차의 전차장이었는데 2차대전때 일본군에 맞서싸우고, 한국전쟁때 공산군에 맞서싸우고, 베트남 전쟁때도 참전해 세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음. (올해 2022년 1월 작고) 앞서 말했듯이 율동전투때의 활약은 미군 기록으로도 검증된 사항이고 맥아더도 900명의 병력으로 4만명의 중공군을 막아낸 율동의 필리핀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바 있고 퍼싱 전차 구출작전 당시에도 이 과정을 지켜본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필리핀군을 극찬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군 10대대 전투단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분전해 싸운 부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음. 군사갤러리 나쿠로이님 펌
방치된 마그네슘에 23살 청년 전신 화상.news
건물 밖으로 불길이 치솟는가 싶더니 흰 연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잠시 뒤, 한 남성이 고통스러운 듯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릅니다. 이 남성은 경기 양주시에 있는 의료제품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던 23살 A씨입니다. A씨는 이 사고로 온몸에 2도와 3도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A씨가 일하던 업체는 작업 후 남은 마그네슘 가루를 바로 옆 화단에 묻어왔습니다. 사고 당시 A씨는 공장 문 앞에 불붙은 막대가 있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화단으로 옮겼는데 전날 내린 비로 젖어 있던 화단 안 마그네슘과 불이 만나 폭발이 일어난 겁니다. 마그네슘은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법에서도 2류 위험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마그네슘을 땅에 묻는 것 자체가 특이한 사례라 불법성 여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업체가 사고 전 이런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관리 감독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 가족의 주장입니다. 업체 대표는 사과한다면서도 안전 교육을 충분히 했고 특수 소화기도 배치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너무 적은 양이라 사고 위험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업체 대표 : 사람이 다쳤으니까 관리가 부족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희가 한쪽에다가 모아두는데 양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전문 업체를 거치는 등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기물관리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최돈묵 /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 : 아무리 소량이라도 전문업체가 하면 문제는 없는데 잘못해서 방치를 한다든지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게 그런 문제점들이 생겨요.] A씨 가족은 업체 관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소방관을 꿈꾸던 20대 청년의 청춘은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ㅊㅊ 이종 모야 마그네슘을 저렇게...? 아니 양이 적고 많고가 중요해?? 미쳤다 진짜 사고가 터져서 사람이 저지경이 됐는데 양이 많지 않다 씨부릴 수 있나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