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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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광주의 실제 영상들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
텅 비어있었다던 광주로 가는 길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군인들


겨우 통과하고 얼마가지 않아 만난 광주 시민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시위를 위해 모인 차량이 많아졌음


노래를 부르는 광주시민들
위르겐 힌츠페터는 필름 속 이 남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며칠 뒤 죽었다고 함.


외국에서 기자가 왔다고 하니 환호해주는 광주시민들





당시 광주의 모습

(피해자분들의 시신 사진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유가족들




위르겐 힌츠페터가 김사복씨에게 전하는 말




2차 출처 : 쭉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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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선배님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잡혀가고, 희생당할때, 저는 그들을 폭도라고 욕하였습니다. 그때도 기레기가있어서 그들을 폭도로 매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들께 죽을때까지 사죄합니다. 쥐꼬리만한 민주주의지만, 이 사회에 선물로 주시고 희생하신 그분들께 저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좀더 커진 쥐꼬리가 될수있다면.
네가 나를묻어야지 내가 너를묻다니...
결국 못만나고 돌아가셨...
노란옷 아주머니 사진보니 가슴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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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금 횡령한 공무원 최후.jpg
여기 홍순언이라는 조선시대 역관이 있음 (*역관이란? 통역 같은 역학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직) 중국 퉁저우(베이징 근처인가 봄 안중요하니까 넘어가자)기생집에서 놀다가 어떤 여자를 만남 홍순언은 기녀가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다고 함(우리는 백의민족이지만 중국에서는 흰색을 죽음의 색으로 꺼려서 장례때만 입는 걸로 알아.. 아님 말고ㅋ) 여자 "부모가 객사하여 장례 비용을 구해야하는데 돈이 없어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헉 그럴수가...안되겠다 내 300금을 주겠소 홍순언이 건넨 300금으로 여자는 무사히 부모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음 ....여기까지 보면 존나 아름다운 얘기지만 이 300금이 공금이었다는 문제만 빼면 완벽했을거임 참고로 당시 300금이면 쌀 60섬, 그러니까 쌀 8,640kg 어치였음. 여자가 불쌍하기로서니 공금에서 쌀 8톤어치 살 수 있는 돈을 빼돌렸다...? 완전 도라이죠 큰 금액을 삥땅친 죄로 홍순언은 옥에 갇힘 당연함. 그리고 이 시대의 왕=선조 조선의 왕들은 조선 건국을 한 태조 이후부터 계속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이 있었음 바로 종계변무 였음 종계변무 종가의 혈통에 관한 억울함을 사리를 따져 밝혀냄 지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나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이지, 남의 나라 역사 왜곡에도 도가 튼 건 아주 조상때부터 내려온 전통인지 짱깨들 책이었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를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한 문제를 수정해줄 것을 1394년(조선 개국)부터 1588년(선조 시절)까지 자그마치 2백 년 동안 계속해오고 있었음. 야 ㅅㅂ 진짜 도저히 안되겠다 이새끼들 바꿔준다고 2백년간 아가리만 털고 이제는 진짜 고쳐야겠음 역관들 니네 중에 누가 가라 누가 갈래? 아 참고로 이번에 가서도 못 고쳐오면 모가지 날아간다 ;;;;;;저번에 공금 횡령해서 옥에 갇힌 홍순언을 사면의 대가로 보내는 것이 어떠할까요 그렇게 홍순언은 중국으로 가게 됨 또 중국 퉁저우로 가게 되는데 퉁저우에 도착하자마자 으리으리한 잔치상이 차려지고 머 하여간 분위기 장난아님 근데 준비하던 사람들이 홍순언 님 언제 오냐고 묻는거임...? 게다가 명나라 고위 관료인 석성이 홍순언을 마중나옴 게다가 갑자기 홍순언에게로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석성의 아내인 류씨였음 헉쉬;; 님은 누구신데 저한테 절을 하시죠 은인께선 저를 오래되어 잊으셨습니까? 하며 울면서 젊을 적 홍순언이 건넨 300금을 받은 후 기생집을 나와 석성의 후처로 들어가게 된 얘기를 했음 일이 잘풀릴 운명이었는지 종계변무의 담당 부서였던 예부에서도 높은 관료가 바로 석성이었음; 그길로 바로 종계변무는 해결됨....ㅋ 야 장하다 홍순언 내 그대를 종2품 우림위장에 앉히겠노라 아니 전하;; 아무리 장해도 그렇지 역관은 종3품까지밖에 올라갈 수가 없는데요? 어 아냐 내맘대로 할거야 2백년간 골머리 앓은거 해결해 줬는데 뭘 못주겠냐 이렇게 홍순언이 선조의 신임을 얻고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이 터짐 야 나 중국 요동쪽으로 좀 도망가야겠다;; 홍순언 자네가 가서 나 좀 받아달라고 말 좀 잘해보게 그렇게 홍순언은 또 오랜만에 명나라로 가게 됨 명나라 황제에게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서 유린하고 있으니 지원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함 어쩌지ㅠ 저렇게 단호한데 어찌 설득한단 말이냐 님 걱정 ㄴㄴ 나 지금 국방부 장관임ㅋㅋ 내가 폐하께 말씀드려 보겠음 운 무슨 일이냐고 (명나라 황제임) 그래 내가 석성에게 듣자하니 지원군은 보내주겠음 근데 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는건 안되지; 선조 요동으로 오는건 반대임 이렇게 지원군도 잘 받아내서 돌아오게 됨. 홍순언 운 죽인다...🤔 홍순언은 임진왜란 내내 전장에서 통역을 하다가 68세의 나이로 죽게됨 선조는 그를 종1품으로 올리고 당릉군으로 봉군해주기까지 함... 홍순언의 부고를 들은 석성도 명나라 황제에게 그의 죽음을 고하고 관직을 요청함 (대체 왜요) 안줄줄 알았는데 명나라 황제는 명나라 정3품 관직을 하사함 .....로 얘기가 끝났다면 좋았겠지? 명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병했을때 이미 명나라는 망조가 들었었음;; 그래서 안보낼라고 했는데 석성이 요청해서 보내준거 야, 임진왜란 7년동안 엄청난 병력과 전쟁비용을 들여서 우리나라 지금 망하게 생겼다; 니가 파병하자고 했지? 너 관직 내놔 그리고 너 참수시킬거임ㅇㅇ ㅠ... 모 당연한건지도 모르지... 여하튼... 석성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석성이 죽은 후에 계모인 류씨 부인(그 기생집에서 돈 준 그 사람임...)을 모시고 조선으로 망명해서 해주 석씨와 성주 석씨로 분적하고 뿌리를 내려 살고 있다고 해 공금을 횡령한 홍순언... 그러나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횡령을 해서인지(?) 본인은 일 잘 풀리고 서얼로서는 받지도 못할 파격적인 관직을 받았음 (근데 선조가 전쟁 공신으로는 인정 안했대...왜일까) 물론..홍순언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극적으로 표현한 석성은 죽었지만 말이야... 교훈: 공금 횡령하지 말자 개인적인 감정을 공적인 일에 쓰지 말자 출처
이방원이 죽기 전에 세종대왕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
내가 어제 꾼 꿈이 매우 생생해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너희 네 사람을 불러 꿈을 전하고 싶은 욕심이 지나쳐서 쓰러졌나봐. 이보다 더 좋은 꿈을 다시는 꿀 수 없을 것이야. 해서 과인은 이 꿈이 생전에 마지막 꿈이길 진실로 바라느니라. 전하... 어허, 주상은 아비가 마지막 꿈 이야기도 말하지 못하고 죽게 할 셈이십니까? 들려주십시오, 상왕 전하. 듣고 싶습니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흥겨운 가락이 흘러나오고,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는 곳에 서서,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다. 문자와 공자가 가진 대국의 문물을 동경했더니 대국의 앞날을 보여주는구나, 그리 생각했다. 헌데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더구나. 물었다. 글쎄, 꿈에 본 그곳이 대국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게야, 조선. 그 뿐이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의 재주를 부러워하고, 조선 사람들의 생각이 온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더구나. 그렇다, 조선이 곧 대국이었다! 주상이 격물지능을 열심히 한 까닭으로  조선이 그리도 번창한 것이다! 모두 이방원의 아들 이도를 가장 존승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구나. 아비가 아니라 내 아들, 우리 주상이 존승받는 것이 참으로 좋더구나... 아, 좋다. 좋구나 좋아... 드라마 장영실
대부업자가 경찰에 신고한 레전드 사건ㄷㄷ.jpg
2009년 3월 30일 법원에 이상한 경매물이 등장!! 2008타경 14403으로 충무공을 모시는 현충사 집터 등등.. 감정가 15억 내용을 보니 충무공 고택부지, 무예연습장, 충무공 장인, 장모, 셋째 아들 이면의 묘 등.. 갑자기 왜.. 국보급 보물들이 경매에 나오게 된 걸까? 그 이유는 충무공 15대 맏며느리 최씨의 만행이 큼 충무공 15대 맏며느리인 최씨는 15대 종손 이재국씨와 결혼을 하였지만 둘 사이 자식이 없어 맡며느리가 재산을 전부 상속했음 최씨는 남편 이재국씨가 2002년 사망 후 이순신 종가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함 하지만 사업이 족족 망하고, 사업을 하다 알게된 남자가 있는데 남자에게 위임장을 써 줌. 위임장의 내용은 자신의 재산을 한씨 (사업하다 알게 된 남자)가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내용 이 위임장을 받은 한씨 대부업체를 찾아가 180억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보물을 팔려고 시도함 자신을 대부업자라고 밝힌 전씨가 기자에게 제보함 최씨와 한씨가 충무공의 유물을 대부업자 전씨에게 팔아 넘기려고 함 경국 종친회 어른들이 열받아서 법원에 유물 가처분 신청서를 냄 종친회 어른들 말씀 종부노릇 한적 없음.. 결국 충무공 종친회 어른들 회의 결국 맡며느리 최씨는 족보에서 삭제 그리고 1차 경매에서 사는 사람이 없어 2차 경매를 들어감 다행히 경매에 나온 충무공 유물은 재경매를 통해 충무공 종친회 어른들 품으로 돌아감 아참! 그리고 제명된 최씨와 동업자 한씨는 사업자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구치소 수감중 ㅊㅊ 도탁스 모야 대부업자가 신고 ㅋㅋㅋㅋㅋㅋ 이순신장군의 위엄인가ㅋㅋ 대부업자도 이건 좀;;하고 넘어가는 클라스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기갑부대의 활약
우선 밑의 썰 대부분의 출처는 필리핀 국방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axDefense/posts/so-who-is-maj-maximo-young-ret-the-latest-recipient-of-the-south-korea-order-of-/991951714308819)의 게시물임을 밝힘. 자국 홍보용 SNS라는 특성상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율동전투 때의 활약 등은 이미 국군, 미군 자료와 교차검증되는 부분이고 출처로 자국 기록이 아닌 'US Army in the Korean War' 4권, 미군 기밀문서 'Army 12 November 1952', USACMH 발행 'The Korean War the Outbreak'등 외국 자료를 기재하고 있어서 적어도 난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함. 한국전쟁때 필리핀군은 10대대 전투단을 파병, 총 파병인원 7500여명을 보내 UN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군인을 보낸 군대였는데 특기할 사항은 이 10대대 전투단은 '기갑부대'였음. 그것도 필리핀에 있던 유일의 기갑부대.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 M4A1셔먼(75mm모델), M10 울버린 구축전차, M7 프리스트 자주포,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3 반궤도 장갑차등 기갑차량을 도합 500여대 가량 보유하고 있던 서류만 놓고보면 상당한 기갑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기갑차량들이 대부분 정비, 운용할 인원 없이 창고에 쳐박혀 있던 물건들이라는 점이었음. 근본적으로 미군이 필리핀에서 쓰다가 회수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서 필리핀에 남게된 잉여물자들이었고 이걸 운용할만한 숙련된 정비병과 전차병, 인프라는 필리핀에 매우 소수만 있어서 필리핀은 1950년 시점에서 10대대 전투단 단 하나의 기갑부대만을 운용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29대의 셔먼 전차와 10대의 스튜어트 경전차 소수의 m101 105mm 자주박격포만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함. 하지만 필리핀은 6.25 개전 직후 곧바로 식량 및 농기구, 비료등을 한국에 지원해준 걸로 모자라 유일한 기갑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한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했음. 필리핀이 안정되어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 1946년 독립 이래 내부적으로 이미 한국보다 먼저 개판이 나서 친미정권에 반기를 든 공산 반군 후클발라합, 남부 이슬람 무장단체등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2~3개로 쪼개질 판국이었는데도 기갑차량 운용능력을 가진 유일한 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파병할 것을 결정한 것임. 개전 3개월이 채 안된 1950년 9월 15일에 부대는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김. 부대는 총 16대의 셔먼 전차와 1대의 울버린 구축전차를 운용할 예정이었는데 병력이 출발하기 이전에 "미리 유엔군에 장비를 보내놓고, 도착하면 다시 받아 싸우자!"라는 생각에 기갑차량들을 먼저 부산항에 보냄. 그리고 따로 병력이 출발함. 근데 막상 9월에 필리핀군이 부산에 도착하자 필리핀군은 차량을 못받음(???). 그래서 필리핀군은 명색이 기갑부대인데 인천상륙작전 이전까지 그냥 기갑차량 없이 보병으로 싸웠다고 함. 필리핀 국방부 페북에 따르면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괴되었다고도 하고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17대의 기갑챠량의 행방은 오리무중임. 아무튼 그래도 필리핀군은 부산과 대구에서 기갑없는 기갑부대, 사실상 보병부대로서라도 열심히 싸웠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미군에게 필리핀군이 가진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요청을 넣어 다시 채피 경전차와 셔먼 중형전차등을 받아 기갑부대로서 구색을 갖추는데 성공함. 1950년 11월 미우동에선 비가 내려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진창이 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채피 전차를 운용해 북한군을 격퇴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1년 4월 20일 임진강 인근에선 2대의 미군 M26 퍼싱 전차가 수렁에 빠져 기동불능이 되는 사태가 발생, 중공군은 포격을 가한 후 다수의 보병들을 보내 퍼싱 전차를 노획하려 했는데 이때 10대대 전투단의 전차들이 달려와 중공군을 격퇴하고 미군 전차병들이 성공적으로 퍼싱 전차를 회수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함. 하지만 가장 유명한건 1951년 4월 22일 벌어진 율동전투. 율동에서 900명의 필리핀 10대대 전투단 병력이 거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중공군 44사단 병력이 공격을 개시, 근처에 있던 미군 부대가 모두 후퇴하면서 필리핀군이 지키던 거점은 쿠르스크마냥 툭 튀어나온 형태가 되어버림. 중공군은 4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립되고 통신도 끊긴 필리핀군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필리핀군은 소수의 채피 전차로 이 공격을 격퇴하고 거점을 지키는데 성공함. 필리핀군은 1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중공군은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음. 전선이 답 없이 밀리면서 필리핀군도 결국 후퇴하지만 필리핀군 덕분에 미군은 후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음. 콘라도 디 얍 대위 막시모 영 소령 이 과정에서 콘라도 디 얍(Conrado D. Yap) 대위와 막시모 영(Maximo Young) 예비역 소령이 뛰어난 활약으로 2018년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음. 콘라도 디 얍 대위는 퇴각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돌격을 감행, 중공군을 패퇴시키며 부상자들을 구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은 전사함. 막시모 영 예비역 소령은 이때 채피 경전차의 전차장이었는데 2차대전때 일본군에 맞서싸우고, 한국전쟁때 공산군에 맞서싸우고, 베트남 전쟁때도 참전해 세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음. (올해 2022년 1월 작고) 앞서 말했듯이 율동전투때의 활약은 미군 기록으로도 검증된 사항이고 맥아더도 900명의 병력으로 4만명의 중공군을 막아낸 율동의 필리핀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바 있고 퍼싱 전차 구출작전 당시에도 이 과정을 지켜본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필리핀군을 극찬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군 10대대 전투단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분전해 싸운 부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음. 군사갤러리 나쿠로이님 펌
조선시대 후궁 중에서 제일 집안이 좋았을 걸로 추정되는 명문가 출신 후궁
영빈 김씨  숙종의 후궁 보통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빈 등장 전까지 장희빈의 최대 라이벌 후궁으로 나옴 숙종 시대에 무려 영의정이었던 김수항의 증손녀임 할아버지는 참판(지금으로 치면 차관)이라는 소박한(?) 벼슬이었지만 이건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안동김씨 문정공파의 당주였기 때문이고 조부의 형제들인 김수흥과 김수항은 둘 다 영의정을 지냄 외가로 가도 그녀의 집안은 어마어마한데  외할머니는 광해군의 정비 유씨집안의 증손녀, 외숙모는 정명공주의 손녀, 둘째 이모부는 숙안공주의 외아들, 넷째 이모부는 정명공주의 손자, 다섯째 이모부는 숙종의 사촌형이 되는 등 왕족들과도 인척으로 줄줄이 사돈을 맺고있는 명문가 걍 한줄로 요약 하자면 중전인 인현왕후보다도 일개 후궁인 그녀의 집안이 더 좋을 정도 장희빈 어머니가 입궁할때 탔던 가마를 부순 사건(옥교사건)에서 신하들이 '천한 후궁의 어미 따위가 으~디서 가마를 타고 입궁합니까? 당연히 부쉈어야했음 ㅇㅇ'이라고 하자 숙종은 '김귀인(이당시엔 아직 빈 아님)의 어미도 가마 타고 잘만 입궁하더만...'하고 반박하자 신하들이 내세운 것도 '김귀인의 집안은 대대로 정승판서를 배출한 초명문가인데 어떻게 역관집안 따위랑 같음?'이라는 논리 이렇게 대단한 집안이면 비슷한 명문가로 시집가서 정경부인으로 살았을법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는 17세라는 노처녀 나이(조선시대 기준)까지 시집을 보내지 않고 대기하다가 숙종의 후궁인 종2품 '숙의'로 입궁시켜버림 정비로 들어간 인현왕후가 숙종의 사랑을 받지못해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자 그녀를 장희빈 견제용 후궁으로 보내기로 했기 때문 하지만 후궁치고는 너무 대단한 집안 때문인지  왕실에서는 그녀와의 혼인 예물을 무려 공주에 준하는 급으로 준비했으며 심지어 중전인 인현왕후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예우로 선물이 들어오는 물의까지 발생했다고 함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가문은 중전 가문보다도 더 집안이 좋음) 집안의 의도대로 그녀는 장희빈을 엄~청 싫어했던것으로 보임 애초에 저런 가문의 아가씨로 금지옥엽처럼 자라다가 입궁한 그녀에게 중인 출신인 장희빈이 같은 후궁은커녕 같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을지도 의문 (장희빈 집안도 양반만 아닐뿐, 지금으로 치면 재벌가 수준의 상당한 집안인데도 ㅇㅇ) 그녀는 숙안공주의 아들이기도 한 이모부 홍치상과 짜고 '장희빈의 어미는 원래 천한 종이었고 이조판서 조사석 집에서 일하다가 그 댁 주인인 조사석과 통정했다'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익명의 서신으로 만들어 뿌리고 퍼트림 숙종은 유언비어를 날조한 숙안공주의 아들 홍치상은 교수형에 처하고 같이 공모한 그녀는 폐서인시켜 궁 밖으로 내쫓음 숙종은 당연히 그녀도 죽이고 싶었지만 당시 온갖 로얄패밀리와 상류층들이  그녀의 집안과 얽혀있었던만큼 무겁게 벌하는건 불가능하다는걸 숙종도 잘 알고 있었음 어쨌든 이렇게 폐서인으로 생을 마감하는듯 했으나..... 장희빈이 쫓겨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며 그녀도 다시 궁으로 컴백 문제는 그녀가 숙종의 총애를 받지못하는 정도를 넘어 숙종이 그녀를 거의 증오에 가까운 수준으로 싫어했다는 점임 숙종은 '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이젠 궁인(누가봐도 그녀를 가리키는)까지 별 음흉한 소문을 지어내며 나댄다'며 저격했으며 그녀를 내쫓을때도 무고 및 명예훼손, 청탁, 뇌물죄, 기밀유출죄, (왕을)사찰한 죄 등 온갖 죄목을 붙여 쫓아냄 다시 궁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죽어도 '빈' 품계를 주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  거의 말년 다 되어서야 마지못해 빈으로 삼음 또한 인현왕후가 '내가 죽으면 김 귀인을 새 중전으로 맞아달라'고 죽어가며 부탁했지만 (애초에 숙빈 최씨는 무수리설까지 나돌만큼 출신이 천했던만큼 중전 자리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였음) 빈으로 삼는것도 끔찍하게 싫어하던 숙종이 그녀가 중전이 되는꼴을 두고봤을리가 만무 숙종은 보란듯이 '이제 후궁은 두번다시 절대 중전이 되지 못한다'는 법을 만들어서  인현왕후가 죽은 뒤 다들 내심 새 중전이 될거라 생각하던 그녀를 보란듯이 견제함 그래서였는지 숙종 사후에 사가로 나갈때도 거처가 너무 허름해서  장희빈의 아들인 새 임금 경종이 돈을 내려줄 정도 또한 숙빈의 아들인 연잉군(훗날의 영조)도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는데 이는 그녀가 숙빈과 엄청 친했기 때문이라고 함 ㅇㅇ 1995년판 드라마 장희빈에서도 처음엔 숙빈을 '천한 무수리것'이라고 개무시하다가 숙빈이 막강한 총애를 받아 자신보다 위인 '빈' 품계까지 오르자  뒤늦게 살랑거리며 친하게 지내며 숙빈코인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함 출처 역대 중전들이랑 비교해봐도 이만큼 집안 좋은 사람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ㄷㄷ
최근 난리 난 백제왕의 무덤..jpg
백제의 금마저에 해당되는 전라북도 익산에는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대왕릉과 소왕릉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큰 무덤이 알려져 있었다. 쌍릉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덤들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뺏기고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자 일본인들 입장에선 자국 왕의 무덤도 아니니 식민지 왕의 무덤이니 거칠것 없이 연구를 진행해 1917년에 무덤을 파헤쳤다 이때 수습된 사람의 어금니 몇개와 목관의 잔편, 그리고 목관 장신구 몇점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었다. 그러다 2016년에 국립전주박물관은 어금니를 조사해 이것은 여성의 것이니 쌍릉의 주인은 왕이 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무덤의 진짜 주인은 누군가 논란이 일어났다 2009년에 미륵사지 서탑을 보수공사 하다가 금제 사리봉안기가 발견 됐다 이때 발견 된 두장의 문서들은 학계를 뒤집어 엎어 버렸다 내용은 이렇다 "백제의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며 639년 사택적덕의 따님이 대왕(무왕)의 건강회복을 위해 사리를 봉안했다" 이는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이고, 두 분의 발원에 의해서 미륵사가 조영되었다는 <삼국유사> 에 기초한 13세기 이래의 정설이 붕괴 된 것이다 삼국시대때 역사서 중 고구려의 역사서 유기 100권과 신집5권 백제의 역사서 서기 등은 당군이 불살라 버리고 신라의 역사서 국사는 실종 상태기 때문에 삼국시대 종말 이후 300~400년 후에 만들어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는 그 당시 유물이 진짜 역사에 가깝다는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발견 된 사리에 들어있던 문서들로 인해 무왕의 마누라가 사실은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적덕의 따님이고 이분에 의해 639년 서탑에 사리봉안이 이뤄졌다는 것 자연히 쌍릉의 주인이 선화공주인지 사택왕후인지도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결국 미륵사 창건과 쌍릉의 피장자를 둘러싼 대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재발굴조사에 들어갔다. 2018년 3월에 다시 무덤의 문을 열고 발굴을 시작했는데 이때 저 유골함이 발견 됐다 그리고 2018년 7월 17일 학자들이 모여 조사했던 최종결과가 발표 됐다 당시 저 유골을 조사하고 발표했던 사람들은 고고학, 역사학, 법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분야의 전문가등 모두가 모였었다 <등뼈조각> 결과는 이렇다 이 뼛조각들은 여러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것이며 키가 161~170㎝ 정도로서 상당히 큰 편인 60대 이상의 남성 생전에 낙상한 결과 골반뼈에 골절이 생겨 후유증을 앓은 사실 늙어서는 ‘광범위 특발성 뼈과다증’(DISH, Diffuse Idiopathic Skeletal Hyperostosis)에 걸려 척추에 극심한 통증을 안고 살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병은 인대가 골화(뼈처럼 되는 현상)되는 희귀질병으로서 50살 이상의 남성에게 발병할 가능성이 높으며 원인이 분명치 않으나 어패류를 장기간 다량 섭취한 결과로 생길 수 있다는 것이였다 법의학자들은 종전 연구에서 어금니를 여성의 것으로 본 주장에 반대하고 연령이 많은 점은 분명하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고고학 전공자들이 가세하였다 대왕릉의 규모는 왕릉급임이 분명하고 그 연대는 7세기 전반 무렵으로 비정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모든 의견을 종합해 보자 1. 7세기 전반에 사망한 평균 이상으로 큰 키의 60대 남성 2. 고급스러운 음식을 장기간 섭취한 결과 발생한 질병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으로 장기간 투병한 병력 3. 익산이란 신도시에 있는 왕릉에 묻힌 남자 단 한명의 인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익산 쌍릉의 진짜 주인은 선화공주도 사택왕후도 아닌 바로 백제 무왕이였다 참가자들은 뼛조각으로 1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후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무왕 앞에서 고개 숙여 예를 표했고 다음날 오전 모든 언론에서 ‘백제 무왕의 무덤 확인’이란 제목의 기사가 일제히 보도되어 이 사건은 2018년도 고고학, 고대사 연구의 최대 성과로 평가되었다 사실 백제왕의 무덤으로 거의 확실시 추정되는 무덤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바로 석촌동 고분군 3호다 이 무덤은 고구려와 똑같은 돌무지 양식의 무덤이고 무덤의 주인은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으로 추정 중이다 발굴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다 인골 연구를 통하여 특정 인물의 신원을 정확히 밝힌 무왕의 경우는 매우 기적같은 경우며 이렇게 운이 좋은 경우는 드물다 예로 무령왕릉만 해도 발견 당시 저 상자속에 유골은 이미 썩어 없어져 아무것도 없었다 한 박물관의 억지 주장이 화근이 되어 시작 된 무덤 주인 논쟁 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무덤을 재발굴 하던중 유골이 발견되었고 유골을 확인한 결과 백제 무왕으로 확인되며 무령왕에 이은 두번째 백제 왕릉으로 확인 되었다 출처
역사속 기괴한 가면들
흑인 흙 가면 (dirty eater mask) 16~19 세기에 신대륙으로 잡혀온 흑인들에게는 흙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지역으로 부터 유례한 이 전통은 아프리카 지역에 널리 퍼져서 여러가지  맛의 흙을 모아서 거래하는 시장이 생길정도였다는데... 하지만 흑인 노예들의 주인장님들은 흙을 먹는게 여러 질병을 초래한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서 저런 마스크를 씌운체로 들판에서 일을 시켰다고.... 로울리 여사의 미인 가면 (toilet mask) 여성들의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이용한 사기는 19세기에도 성행했다 저 가면을 착용한체로 잠만자도 미백효과와 주름, 잡티제거 까지된다고 선전한 로울리 여사는 저 과학적인(?) 발명품을 특허까지 냈다고 한다. 마스크 팩의 시초쯤 되는건가? 스플래터 가면 (splatter mask) 1차 세계대전중 북부 프랑스 캉브레 전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탱크가 사용된 전투) 영국군 탱크 조종사들이 쓴 보호가면. 가벼운 총격에도 탱크안에 대갈못 (rivets) 이나 페인트 조각이 얼굴에 튀었기 때문에 가죽과 쇠사슬로 만든 가면으로 얼굴을 보호했다 유아용 방독면 (baby gas mask) 1차 대전중 화학폭탄들의 위험으로부터 영아들을 지키기 위해 발명됬음. 굉장히 거추장 스러운 저 유아용 방독면은 옆에 달려있는 수동 펌프로 공기를 주입 시켜줘야된다고 한다 폭격이 떨어지는 비상사태중에는 무용지물일듯..... 알렉산더 페덴의 가면 (Alexander Peden's mask) 1661년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를 금지하자 장로교 목사였던 페덴은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도망생활중 얻은 아이디어는 바로 위에있는 저 가면을 쓰고 다니는것... 지금보면 참 허접한 저가면을 쓴채로 10년을 넘게 도망다녔다니다가 결국엔 잡혔다 무협지에 나오는 인피가면이 저런거였다보다... 수치의 가면 (mask of shame) 17~18세기 독일에서는 저 가면을 씌우는 형벌이 존재했다고 한다. 남의 험담이나  야한 농담등의 사회상규를 어기는 실례를 범한 죄인들은 저 가면을 쓰는 치욕을 받았다 페스트 의사 가면 (plague doctor mask) 중세 유럽에 전염병이 퍼지는 도시에는 저 가면을 쓴 의사들이 나타났다. 당시엔 페스트가 냄새로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저 새의 부리같은 가면에는 라벤다나 민트등의  다른 향신료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유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페스트 의사 출신임 비자드 가면 (visard mask) 16세기 유럽 여성들이 쓰고다녔던 벨벳이나 비단으로 만든 검정색 가면. 햇볕으로 부터 얼굴을 보호하고 뭔가 신비한 기운을 나타내기 위해 귀족여성 들이 썼는데 저가면은 입쪽에 달린 구슬을 깨물어서 고정시켰다니 아마도 잔소리를 듣기 싫었던 남편이 개발하신듯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는, 혹은 불쾌해지는 영화 추천.jpg
<마더>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오프닝-엔딩 조응이 예술임. 원빈도 내 생각보다 거슬리는 점 없었고, 김혜자야 말할 필요 없고.. 진구 천우희 송새벽 곽도원 등등 연기 구멍 없는 출연진 존좋!! <도그빌> 초대받지 않은 손님, 온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진짜 개 같은 마을... 그리고 개 같은 러닝타임...3시간.. 연출이며 장치가 상당히 실험적이라 호불호 많이 갈리니 주의! <사울의 아들> 시체 처리반으로 일하던 남자 앞에 오늘,아들의 주검이 도착했다. 촬영 구도와 전개 모두 숨이 막힌다...ㄹㅇ 두 번은 못 봐 <아메리칸 크라임> "서커스로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안정감을 느끼던 곳으로. 빌 목사님이 이러셨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느님께서는 항상 계획이 있으시다고. 지금도 난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찾고 있습니다." <라스트 홈> 단 한 명만 방주에 타는 거야! 나머진 물 밑으로 가라 앉는 거지! 미국 모기지론 사태를 바탕으로 함. 너무 현실적이라 불편하다는 평. 주연 배우들 연기력에 멱살 끌려 가는 느낌이었음 긴장감 오져.. <유 돈 노우 잭> 자비의 천사인가 살인자인가?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한 번쯤은 눈여겨 볼만 함.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운명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두 형제의 사랑과 선택! 운명의 바람=아일랜드 독립전쟁 실제로 주연 킬리언 머피가 아일랜드 태생. 초반부 영국 군이 자행하던 짓거리가 옆 동네 누구누구랑 존똑이라 지켜보기 힘들었음 ㅠㅠ <타인의 삶>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다. 엔딩이 여운에 참 남던 작품. <네버 렛 미 고> 이토록 아픈데, 이토록 사랑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건가요?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지만 특이하게도 시대상이 과거라는 점. 영상미 낭낭해서 넣었지만 개취로 원작 도서가 나았음. 저자가 노벨 문학상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 거업나 가슴 먹먹한 내용이야ㅠㅠㅠㅠㅠㅠ 후반으로 향할수록 눈물 질질 흘림... <복수는 나의 것> “딱 필요한 돈만 받고 돌려주는 거야. 이건 착한 유괴야...”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밀양> 모든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와 지 맘도 잘 모르는 속물 같은 남자.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연, 그들은 함께 찾을 수 있을까? 사랑… 시작할 수 있을까? 신과 구원을 겨냥하는 작품. 교회씬에서 치를 떨었다 증말 ㅠㅠ <킬링 디어>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과 그에게 다가온 소년 마틴.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질수록 스티븐과 그의 아내의 이상적인 삶은 완벽하게 무너지는데…"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배리 키오건의 연기가 인상적임. 눈빛부터 살짝 맛이 간 또라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주더라..존무 ㄷㄷ 출처 킬링디어 진짜.. 기분 묘해지니까 주의하세요!
야!!! 문화재!! 너는 대한민국의 <<<국보 및 보물>>>에서 탈락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화재가 일종의 스포츠라면 최상위 리그는 국보임. 문화재는 무수하게 많지만 당연 모두가 국보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문화재중에서도 특별한 소수만이 깐깐한 심사를 거친 후에야 국보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종의 이유로 인해 국보에서 탈퇴 당하는 문화재들이 있음. 오늘은 그런 비운의 문화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함. 1. 주작 때는 1992년 여름. 한산도 앞바다에서 건져진 별황자 총통 하나에 온 대한민국이 들썩거림. 이 별황자총통을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총통의 몸통에 적힌 글자였는데,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음. 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 귀함(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 한산도....? 거북선....? 눈 감고 봐도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 그것도 거북선의 뮤울;;;;; 기록으로만 전할 뿐 파편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거북선과 연관된 유일한 유물이었기에 학계 및 온 대한민국이 난리가 남. 별황자총통은 문화재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고, 이런 인기에 힘입어 발굴된지 불과 17일의 최단기간에, 무려 만장일치로 국보 274호에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어 냄. 이게 얼마나 빠른 결정이었냐면 누가 봐도 국보 문화재인 무령왕릉 유물들도 국보가 되기까지 3년이나 걸렸고, 천마총 금관도 5년 연습생 생활 끝에 국보로 데뷔함. 별황자총통이 얼마나 특별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임. 그러나 4년이 지난 1996년, 뜻밖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폭로가 터짐. 광주지검은 당시 문화재 보호 지역에서 피조개를 재취하기 위해 뇌물을 뿌리다 걸린 수산업자 홍모씨를 조사하는 중이었음. 그런데 이 홍모씨가, "황동환 대령(별황자총통 발굴 책임자)에게도 뇌물을 줬는데, 국보 별황자총통은 가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는 말을 한 것임. 이에 검찰은 은밀하게 황 대령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 냄져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음. 황동환 대령 : 아ㅋㅋㅋㅋㅋ 그 소문ㅋㅋㅋ 나도 그런 소문 듣긴 했는데, 우리 해군 이미지도 있고 하니까 그냥 좀 덮읍시다. (별황자총통은 해군 주도로 발굴됨.) 국보가 뭔 이불도 아닌데 덮긴 뭘 덮자는 말임?? 이 미심쩍은 태도는 검찰의 수사 욕구를 더욱 자극할 뿐, 아무런 해명이 되지 못했고 결국 두 달이 지난 후 대령은 모든 사실을 실토했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황자총통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가짜였음. 애초에 총통 본체부터 조선시대 물건이 아니라 현대에 만든 가짜 총통에 인공적으로 약품을 부어 부식시킨 물건이었으니 말 다 한 셈임. 심지어 별황자총통의 미심쩍은 점은 이것만이 아니었음. 일단 별황자총통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인 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 이 문구부터 존나 수상쩍었음. 화포의 문구에선 거북선을 배 함자를 써서 '귀함'이라고 칭했는데, 군사용 배에 함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근래의 어투라고 함. 조선 시대에는 군사용 배, 민간 배 할 것 없이 모두 배 '선' 자를 사용했고, 실제로 실록 등의 기록을 봐도 모두 '龜船' 이라는 단어를 쓰지 '龜艦'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별황자총통 뿐이었음...ㅋ 뿐만 아니라 과학 조사 결과, 별황자총통에는 아연 성분이 8%나 검출되었는데 아연은 불에 매우 약한 금속임. 불에 약한 아연을 8%나 화포에 처넣는다고...? 적군에게 보내는 트로이의 목마가 아닌 이상 이딴 식으로 무기를 제작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임? 심지어 문화재청은 이와 같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만인에게 빡침을 안김. 화포 무기에 아연을 섞는 멍청한 조상은 없지만 뻔하게 수상한 물건을 만장일치로 국보 시켜주는 멍청한 후손은 있었다는 것이 블랙코미디.... 결국 문화재 위원회는 4년만에 별황자총통의 국보 지정을 철회하고 국보 274호는 영구결번으로 남게 됨. 마지막으로 다시 빡치는 tmi 하나. 이 물건을 국보로 지정할 때 심의 과정에 참여한 문화재 위원회 중 군사유물 전문가는 1명도 없었다는 것.... 존나 뭘 믿고 국보 지정한 거임? 2.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국보 제 278호 이형 원종공신녹권부함임. 대체 저게 뭔 소린가 하면 쉽게 말해서 공신 임명장이라는 소리임. 조선 초기 태종 시절, 이형이라는 사람에게 태종이 내린 공신 임명장&보관함이 나란히 국보가 되었다는 말임. 조선 전기 공신에 대한 대우와 공신록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 당당하게 국보로 선발됨. 그런데 이게 왜 국보에서 쫓겨났느냐.... 여기에는 무척이나 슬픈 사연이 있음... 우리가 잘 아는 올록볼록한 인성의 철퇴같은 이방원에겐 모두 두 종류의 공신이 있었음. 하나는 좌명공신이요, 다른 하나는 원종공신임.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냐면 좌명공신은 정공신, 즉 찐공신들이 받은 공신직임. 방원이의 철퇴메이트 하면 딱 떠오르는 하륜, 이숙번, 이지란 등이 바로 이 좌명 공신을 받음. 누가 봐도 아, 저 사람은 이방원을 위해 철퇴의 짜릿한 손맛 좀 많이 봤구나! 심은 사람들 47명이 좌명공신에 임명 됨. 그럼 원종공신은 무엇이냐? 쉽게 말해 명예 공신직, 짭공신이라고 생각하면 됨. 좌명공신 시켜주기엔 급이 딸리는데, 그렇다고 공신 안 시켜주면 삐질 것 같은 애매한 애들... 그런 애들이 원종 공신이 됨. 이제 좀 감이 오지....?ㅎㅎㅎㅎㅎ 2006년에 찐공신증인 ‘마천목 좌명공신녹권’이 보물 1469호로 새롭게 지정된 것임. 심지어 태종이 발급한 47개의 찐공신증 중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물건... 근데 이렇게 하고 보니 행태가 뭔가 미묘했던 거임. 찐공신증이 보물인데 짭공신증이 국보라니 에어팟을 두고 차이팟을 국보 시키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지난 2010년, 문화재 위원회는 고심 끝에 이형의 짭공신증을 국보에서 보물로 강등시킴. 그딴 식으로 굴지 마라 인간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3. 짭인 듯 짭은 아니지만 결국은 짭인 너 이번엔 국보가 아니라 보물 이야기임. 보물 제1173호였던 남은유서분재기가 그 주인공임. 사실 보물 1173호는 남은유서와 남재왕지라는 임명서가 한 쌍이지만 귀찮으니 남은유서만 말함. 어차피 탈락된 이유는 같거든 일단 남은유서분재기가 뭔지 먼저 설명하겠음. 조선 초기 남은이라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면 됨. 참고로 남은 죽인 사람 저기 위에 방원이ㅎ 뭐 내용은 딱 유서 내용임. 자식들아 나 죽는다... 제사 꼬박꼬박 지내주렴... 전답은 누가 가지고 노비는 누가 가지고 금 허리띠 은병은 대대손손 물려줘라... 이런 내용이 전부임. 그래도 조선 초기의 유산 상속 방식을 알 수 있는 귀한 물건인 것은 맞아서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전부터 꾸준히 원본이 아니라는 논란에 시달려왔음.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수서(手書)라는 단어였는데, 손으 쓴 글, 즉 손수 적었다는 뜻임. 근데 이 수서라는 단어는 중종 이후에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고, 남은이 살던 조선 전기에는 자필(自筆) 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 문제였음. 학자들은 별황자총통처럼 악의적 주작은 아니고, 남은의 후손들이 원본을 필사한 물건으로 추측하고 있음. 원본을 필사하는 도중에 몇 글자 오타를 냈다고 보는 것임. 그래서 전체적인 골자는 원본이 맞긴 한데 어쨌건 원본이 아니기는 아닌... 그런 애매한 물건이 되어 벌임... 그래서 남은유서분재기는 2010년 보물에서 강퇴당하고 일개 골동품 1로 돌아감. 학술적 가치가 풍부한 건 맞아서 좀 안타까운 경우라고 함. 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여기에는 한때 보물 5호였던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속함. 삼층석탑은 193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됨. 그러던 1997년 문화재관리국은 일제가 지정한 국문화재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연대가 고려 중기 것으로, 다른 석탑들에 비해 최신 물건인데다 조형미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물 자격을 박탈당함. 지금은 그냥 경기도 문화재로 사는 중. 5. 문화재가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가슴 아픈 사연의 문화재들이 해당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바로 화재 등으로 소실된 문화재들이 여기 속하기 때문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낙산사 동종임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종이 아버지 세조의 극락왕생을 위해 만들었다는 낙산사 동종은 보존 상태도 훌륭하고 조형도 좋아 보물로 지정되었음. 보존 상태가 얼마나 좋았는지 소실되기 직전까지도 실제 타종에 이용되엇다고 함. 그러나 2005년 4월4일 강원도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낙산사로 번졌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종각의 재질이 목재템이라 더 크게 탔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낙산사 동종은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는 새로 만든 종이 자리에 세워져 있지만 복원품은 보물이 될 수 없다는 문화재청의 규정에 따라 보물 479호는 영구 결번으로 남음...ㅠㅠ 여기서 예리한 사람들은 떠올린 문화재가 하나 있을거야. 그렇다면 숭례문은...? 불에 타서 복원한 것도 같은데 숭례문은 국보의 자격이 있나? 이에 관해서 문화재청은 1층 누각은 전소가 아니라 10%의 손실만 입었을 뿐이기에 자격을 박탈할 이유는 없다고 본 것 같음.(낙산사 동종은 진짜 심각하게 훼손되었음.) 글쎄 논란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국보 1호가 결번이면 너무 슬플것 같음..... 6. 일 똑바로 안 하지 보물 제341호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은 대한민국 보물들 중에 가장 짧은 이력을 가지고 있음. 1963년 1월21일 보물로 지정된 이후, 단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1963년 1월21일 보물에서 해제 되었기 때문임. 어째서? 짭이어서? 놉. 진품임. 이유는 존나 황당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국보 제116호랑 중복 지정이어어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개합니다!! 국보 제116호인 청자 상감 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입니다! 보물 제341호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과는 동일 문화재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국보가 된 날짜는 1962년 12월 20일로 보물로 지정된 1963년 1월21일과 한 달 차이밖에 안 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화재청놈들이 이미 한 달 전에 국보로 뽑아놓고는 또 보물로 지정했다가 급히 정신차리고 취소했다는 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음. 아마 쉬쉬하고 묻어버렸겠지...ㅋ 아무래도 이 청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두 번 지정하고 싶었나 봄. 완전 대한민국 국보 면접 프리패스상 아님? 보물로도 뽑히고 국보로도 뽑혔으니 사실상 대한민국의 1등 문화재가 아닐까... 출처 오매.. 신선하네.... 재밌다 ㅋㅋ 이런일이..!
국내 폐질환 권위자의 외로운 죽음
결핵,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셨던 故고원중 교수님이고, 이 분은 201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 권위자인데다가 수도권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근무하셨던 고인의 특성 상 기존 환자+신환을 엄청 많이 보고 있었지만, 해당 분야(결핵,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를 전공으로 하는 의사가 이분 한 명이었다고 함 주 80시간 이상, 주말까지 끼면 보통 주 100시간을 일했다고.. 병원은 외부엔 우리 병원이 이 분야 최고다, 국내 최고 or 세계 최고라고 홍보를 했지만 실상 병원 내 그 분야 전공은 한 명뿐 고인은 병원장과 호흡기내과 과장에게 사정하고 사정해서 같은 전공을 하는 임상강사 한 명이 추가 해줌 근데 병원에선 “니네 전공 T.O로 들어온거 아니라고 암병원 T.O로 데려온거니 감염 줄이고 폐암 진료 해”라고 했다고 함 아끼는 후배 겨우 데려왔더니 그 후배는 본인 전공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병원 등살에 폐암 진료 비중만 계속 커지고 있어서 죄책감과 후배에 대한 미안함에 사직하기로 결정 원치 않았지만 또 주최한 환송회 안 간다고 하면 준비해놨는데 안 왔다고 하면서 뒷말 나올거 같아서 참석 10분, 20분이 지나서야 한 둘씩 나타났고 환송회와는 맞지 않게 앞에 몇 마디만 고인분 관련 얘기였고 그 뒤론 본인들 여행 다니는 얘기 등만 했음 환송회 사회자 하기로 했던 사람은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해서 행사도 늦게 시작 고인에게 감사패만 주고 수고했다, 감사했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뜬금없이 다른 행정직원 환송회를 해줌 그리고 해당 병원에서는 직원이 사망하는 경우 1개월 이내에 추모식을 여는 게 일반적인데 고인 사망 시에는 병원 측에서 추모식 관련 일언반구도 없어서 유족의 요청에 의해 사망 후 4개월이 지나서야 추모식을 해줌 유족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했는데 추모식 직전 병원에서는 유족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고인보다 진료 더 많이 봤다는 말까지 했다고.. 이분은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 국제 전문가로 SCI급 논문만 180여편이고, SCI(E)급 논문도 130여편이나 된다고 디씨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