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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표팀 착용 축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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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혼다 골드 슈즈입니다
첫번째그렘 기운데 검은색 미즈노 죄표라해야하나 뭔지 가리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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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에 중국시인 '도연명 미술관'이 왜?
중국 시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모티브로 한 시가현의 '미호 미술관(MIHO MUSEUM) 전경. 작은 사진은 미술관 설계자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 일본 최대 호수 비와코 남쪽에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 이 산 기슭에 ‘미호 뮤지엄’(MIHO MUSEUM) 자리 잡아 도연명 ‘무릉도원’ 모티브...미술관 설계 중국계 건축가 별세 교토 인근 시가현(滋賀県)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 비파호)가 있다. 비와코 호수 남쪽 지방에는 여러 산들이 미니 알프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라고 부른다. 이 코난 알프스의 산중에 한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최고의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호 뮤지엄’(MIH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5월 17일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미호미술관(MIHO MUSEUM)을 설계한 건축가 I.M. 페이씨가 5월 16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I.M. 페이(I.M. Pei)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를 말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Louvre Pyramid)’는 알 것이다. 그걸 설계한 이가 이오밍 페이다. 중국 광저우 태생(1917년)인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마지막 모더니즘 건축가’로 불리며 1983년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터널과 다리를 지나면 신사모양의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photo=교토트래블닷컴(kyototravels.com) 그런 이오밍 페이는 일본에서는 미호 미술관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이 미술관은 주변을 둘러싼 자연 경관을 살리기 위해 건축 용적의 80%를 지하에 매설했다. 페이는 여기에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내는 유리 지붕을 설치, 밝은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했다. 그는 생전에 “내 작품의 열쇠는 빛(光)”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호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컨셉트에 있다. 다름아닌 무릉도원(桃源郷). 시가현 박물관협회에 따르면,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의 시집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브로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터널과 다리에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 미술관이 개관한 건 1997년 11월. 특이한 건 미술관을 만든 주체가 신주슈메이카이(神慈秀明会, 신자수명회)라는 종교단체라는 것. 이 단체를 이끌던 코야마 미호코(小山美秀子)라는 사람이 수집한 전 세계 국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코야마 미호코는 1987년 건축가 페이와 만나 미술관 구상에 착수(1991년), 1997년에 결실(개관)을 맺었다고 한다. 2017년 루이비통이 ‘크루즈 패션쇼’를 여기서 개최하면서 미호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5월 17일, 중국 언론을 인용 “페이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은 아들인 건축가 리 청 페이(Li Chung Pei)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 도호(東寶)
1930년대는 일본영화의 과도기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지만 일본은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의 경계에서 점차 국가에 순응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1930년대는 일제 식민지 영화에 대한 지배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 영화는 대중예술의 총아로서 상품처럼 국경을 넘어 소비되고 만들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식민지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조선, 대만, 만주를 지배함에 있어 일체(一體)를 지향했던 까닭에 일본 본토의 영화사들과 식민지 지배하의 영화사들간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본래 영화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자본과 기술에 영향을 받는다. 하여 일본은 이들 3곳의 식민지에 영화산업의 기초를 닦아주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전쟁 이후 영화산업을 이어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왜냐하면 일본영화산업과 식민지 토착영화자본의 형성은 필연적이었고 국책영화들을 통해 근대 대중문화의 형성은 물론 보다 더 효율적인 문화적 지배도 가능할 것이라고 일본 스스로가 믿었기 때문이다. ‘만주사변’(1931)이후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도쿄·나치독일연맹조약(1936)에 서약을 하면서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의 경계에서 극단적 민족주의가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면서 기존 친마르크스주의 예술가와 작가, 예술가들이 연행되고 검열이 강화되던 시기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 인물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그는 암살되었고 그의 대표 서적인 ‘게공선’(1929)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일본의 노동문학으로서 ‘게잡이 공선’의 잔혹한 노동과 학대에 대하여 폭로하는데, 두 번째 파업으로 비로소 어부들은 ‘동물’에서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주의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훗날 감독 겸 배우인 야마무라 소(山村聰)에 의해서 우여곡절 끝에 각색되어 ‘해공선’(1953)으로 다시 2009년에 ‘게어선(Kanikosen, 蟹工船)’으로 사부(SaBu)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절 일본영화는 민족주의 정치를 위해 헌신하는 영화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영화사가 바로 ‘도호(東寶)’다. 1932년 8월 12일 주식회사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으로 시작한 도호의 역사는 처음에는 영화와 연극배급회사로 출발했는데 제3의 대형 영화사이면서, 현재는 한큐한신홀딩스(한큐 전철, 한신 전기철도), H2O 리테일링과 함께 한큐한신도호그룹의 핵심 기업으로 우리에게는 ‘도라에몽 시리즈’나 ‘짱구는 못말려’시리즈 등으로 친숙하다. 도에이, 쇼치쿠와 함께 일본 3대 영화 배급사 중 하나로 아직도 활발하며 도쿄도 치요다구 유라쿠쵸에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소재를 다루지 않고 보수주의로 유명한 이 회사는 1930년에 설립한 토키연구소인 PCL(사진 화학 연구소, Photo ChemicalLaboratory, 통칭 : PCL, 후에 소니 PCL이 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 출신이 바로 세계적인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그의 평생 지기이자 ‘고질라’ 시리즈로 유명한 혼다 이시로(本多猪四郎)이다. PCL은 일본 최초로 프로듀서 시스템을 채택해 가족적, 봉건적, 인맥 위주의 영화제작을 일체 거부하고 자유롭고 현대적인 경영방침을 정했다. 때문에 암울한 시대가 시작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미술이론가 다키구치 슈조(瀧口修造, 1903-1979)부터 훗날 SONY를 일으킨 이부카 마사루(いぶかまさる) 등 다양한 부류들이 모여들었는데, 좌익이나 전위예술운동에 관한 청년들의 치외법권적 대피소의 양상까지 보인다. PCL은 에노모토 겐이치(榎本健一)의 희극에서부터 지다이게키(현대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도호는 사내에 영화기획, 제작을 담당하는 부서를 뒀다. 사원 프로듀서는 기본적으로 유명한 원작을 대상으로 기획을 했으며 원작에 대한 정보는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부터 각 출판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기적으로 정보제공을 받는다. 이렇게 작성된 기획안은 사내에서의 기획 회의를 거쳐 승인을 받게 되고 기획개발에 들어간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작가를 정하고 섭외하고 진행하는 것 또한 기획을 한 사원 프로듀서가 맡는다. PCL은 전용 배급 영화관이 없이 출발하여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1937년 간사이(關西) 사설 철도의 대주주이자 다카라즈카(寶塚) 가극단의 소녀 가극 경영자인 고바야시 이치조(小林 一三) 의 산하에 있으면서 도호(東寶)로 개명, 흥행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소했다. 이후 SONY PCL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그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군부(軍部)와 적극적으로 유대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사업상 우위에 서게 된다. 게다가 특성상 도피처 역할을 한 까닭에 만주영화협회(약칭 滿映)가 만주국의 수도 신경(新京 : 지금의 長春)에 설립되어 국책영화에 착수하게 될 때 시류적 면에서나 인맥이 모두 도호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인력을 파견했으며 활발한 공동제작을 했다. 일본에서 활동하기 부자연스러워진 좌익, 우익, 군인 출신들이 기회의 땅이라는 만주로 찾아와 계몽영화와 오락영화를 제작했으며 전후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八路軍)이 공산당 최초의 스튜디오로 삼아 중공(중국공산당)영화의 기초를 닦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들이 귀국하여 ‘도에이(東映)’의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도호의 역할은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의 경계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 다시 PCL로 돌아가서, 맨 처음 두각을 드러낸 것은 기무라 소토지(木村莊十二)로 훗날 조선 경성촬영소의 이규환 감독과 함께 춘향전을 같이 함으로써 우리 영화사에도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군국주의가 뒤덮기 전 최후의 경향주의 영화인 ‘강 건너의 청춘(1933)’, ‘남매(1936)’등을 발표하게 된다.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나루세 미키오(なるせみきお)로, 쇼치쿠에서 ‘오즈 야스지로는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해고 당하자 이적하여 기량을 펼쳐 나가게 되는데 걸작 중에 걸작인 ‘아내여, 장미처럼(妻よ薔薇のやうに, Wife! Be Like A Rose!, 1935)’을 연출하여 뉴욕에서 일반에게 최초로 공개된 일본영화의 기록을 남긴다. 또 한 사람인 이시다 다미조(石田民三)는 ‘꽃은 져 버리고(1936)’를 통해 막부 말기 교토의 유흥거리를 무대로 활동하는 게이샤의 관점으로 외부의 정치적 변동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기술하였듯 도피처 역할을 담당한 만큼 좌익 계열의 영화인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노동쟁의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가 하면 1948년부터는 영화제작을 중단하고 1947년부터 이 회사의 재정지원을 받아온 신도호(新東寶 )영화사에서 만든 영화를 배급하는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조선인 영화제작자본과 일본인 자본과의 연관성에 있어서도 도호는 중요하다. 1935년 조선인 영화업자들이 세운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畵協會)와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는 30년대 후반의 조선영화제작을 이끈 주요한 영화제작회사로 이 중 고려영화협회는 일본의 영화배급회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이들 회사의 도움으로 제작한 영화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설립도 일본영화산업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살펴보게 되면 중요인물인 이재명(李載明)이 도호의 전신인 PCL에서 근무한 바 있었다. 도호는 조선 영화사와 일본 영화사에 동시에 기록되는 영화사인 셈이다.<이훈구 시나리오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 마쓰이 타다미쓰
<글, 그림=유환석(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한 달에 1회 꼴로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일본 경영자를 고르고, 그들의 어록(명언)을 다시 선택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 경영자들이 의외로 많은 경영철학과 경영에 대한 말을 남겼다는 거다. 반면, 한국의 창업주들이 남긴 경영철학이나 그들의 말과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후대는 그것조차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는 듯하다. 실로, 아쉬운 일이다. 남의 나라 경영자들의 경영철학을 소개하면서 ‘타산지석 지혜’로 삼는 이 작업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설이 길었다. 오늘은 송정충삼(松井忠三)이라는 경영자를 골랐다. 한자로 봐서는, 소나무 우물가 집안의 충직한 셋째 아들쯤 되지 않을까. 이름은 마쓰이 타다미쓰. 우리가 잘 아는 무인양품(MUJI)을 운영하는 회사 ‘양품계획’의 회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ᐅ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本田宗一郎: 1906~1991) ᐅ마쓰시타전기(현재의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 ᐅ도시바 사장 출신 도코 도시오(土光敏夫:1896~1988) ᐅ일본항공(JAL) 회장 출신 하나무라 니하치로(花村仁八郎: 1908~1997)는 모두 고인들이다. 헌데, 이번 회에서는 처음으로 생존해 있는 경영자쪽으로 마음이 갔다. 그런 마쓰이 타다미쓰는 194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71세다. 그 역시 많은 어록을 남기고 있는데, 우리가 되새겨 볼 만한 말은 바로 ‘실행의 힘’이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전략이 이류라도 실행력이 일류인 회사는 ‘전략은 일류인데 실행력이 이류인’ 회사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企業で一番大事なのは実行力。戦略が二流でも実行力が一流の会社は、戦略が一流でも実行力が二流の会社よりも圧倒的に強い。) 마쓰이 타다미쓰는 전략보다 실행력을 우위에 두고 있다. 전쟁에 나갈 때는 무기와 더불어 전략(戦略)이 필수다. 한자 ‘략’(略)은 간략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스리다는 뜻도 갖고 있다. 이런 전략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전쟁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 일게다. 전략과 실행력 중에서 뭐가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하긴 곤란하다. 각자, 각 기업마다 처한 상황과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일터. 잘 짜여진 전략이라면 실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애매한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말인즉슨, 현명한 경영자라면 판단을 잘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전략보다 실행력을 우위에 둔 마쓰이 타다미쓰의 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 살아오면서 전략만 짜다, 또는 계획만 세우다 꼬꾸라지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실행해 보지 않으면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 실패는 실행해 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다. 그런 실패는 과연 ‘쓸모없는 경험’일까, 아니다. 마쓰이 타다미쓰의 또 다른 어록을 ‘덤’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 향후 어떻게 될까 따위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하나, 말할 수 있다면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人間万事塞翁が馬。将来どうなるかなんて誰にもわからないが、たったひとつ、言えることがあるとすれば、人生に無駄な経験などひとつもないということだ。) 정리하자면, 실행=쓸데 있는 경험. 실행력>전략. 일단 한번 해보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승강전 이승우 어시스트가 나오기까지의 과정
EPL을 시작으로 차차 유럽 주요 리그들이 종료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리그가 종료됐는데요. 이탈리아 2부에서는 승격을 위한 승강전이 한창입니다. 특히 베로나는 승강전 막차를 탔지만 첫단추를 아주 잘 꿰며 준결승에 진출했습니다. 특히 이승우 선수가 중요한 경기에서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승리에 보탬이 됐는데요. 2:1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어시스트했습니다. 돌파도 센스있었고 특히 파찌니를 보고 올린 크로스가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사실 더 의미있는건 이 크로스까지 올라가기의 과정이었습니다. 어시스트가 나오기 전까지 이승우는 오른쪽을 집요하게 팠습니다. 또한 연장 후반전 2:1로 앞서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여 상대 코너플래그쪽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끌려는 움직임을 보여줬죠. 이승우가 몸싸움이 그렇게 좋지는 않으므로 코너플래그쪽에서 코너킥을 얻으려는 움직임을 계속 가져가는걸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공격권 하나하나가 소중한 페루자였기 때문에 편안하게 코너킥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승우 어시스트 장면에서 수비는 제대로 된 블로킹을 하지 않았고 이를 노린 이승우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그대로 파찌니 머리에 걸리고 말았죠. 큰그림 오졌죠? 사실 이승우 선수에게 아직까지 기대를 가지고 있는건 바로 이런 축구 센스때문 일 것입니다. 이런 센스와 승부처에 강한 승부사 기질 덕분에 국대에서도 중요한 경기에 쏠쏠하게 활약했죠. 최근 들어 선발보다는 교체로 나와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많이 하고 있는데 확실히 교체로 들어왔을때 더 파괴력이 있어보이긴 합니다. 사실 선발로 나서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슈퍼서브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거 같아요.
박.지.성 국가대표 TOP5 골!!!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접전을 펼치며 조 2위로 월드컵 예선을 마쳤습니다. 이제 남은 5경기에서 지금의 순위를 지켜야 2018 러시아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유독 박지성 선수가 생각나는 한 해였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주장으로 활약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을 상대로 2골이나 넣으며 이란을 탈락 시켰죠~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레전드 박지성의 대표팀 TOP5 골!!! 먼저 박지성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 시켰던 그 골!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프랑스와의 평가전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엔트리 탈락 1순위였던 박지성은 잉글랜드전 헤딩골로 언론들을 잠재우더니 이어진 98 프랑스월드컵 우승팀 프랑스와의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환상적인 동점골을 기록합니다! 이 골로 박지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죠. 2002.5.26 두 번째 골은 너무나도 유명한 골이죠. 바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골입니다. 이 골로 당시 FIFA랭킹 5위인 포르투갈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89년, 91년 청소년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멤버들이 모여 월드컵 우승을 바라봤던 멤버들이죠. 결국 박지성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은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4강 신화를 이룹니다! 2002.6.14 세 번째 골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이었습니다. 당시 맨유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영국에서 곧바로 이란으로 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죠. 네쿠남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35분 기성용의 프리킥이 골키퍼 손에 맞고 나오자 다이빙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역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무 5패로 단 한번의 승리도 없는 대한민국이 이란 원정에서 따내온 귀중한 승점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한 박지성 덕분에 북한이 월드컵에 나가고 이란이 탈락했죠~ 2009.2.11 네 번째 골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입니다~일본도 월드컵 직전 국내에서 가지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는데 박지성의 전반 5분 선제골로 결국 0-2 패배를 당했네요. 당시 경기 전 박지성을 바라보던 일본 선수들의 존경스러운 표정이 기억나에요.(맨유의 위엄) 이날 경기서 박지성은 나카토모를 끝까지 쫓아가 태클을 시도해 투지의 아이콘임을 보여줬죠~또한, 골을 넣고 일본 관중을 바라보며 산책 세레머니를 보여줘 화제가 됐었습니다~ 2010.5.24 마지막 골은 박지성의 A매치 마지막 골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차전에서 나온 추가골이었죠~유럽예선을 잘 치르고 온 그리스를 상대로 2-0으로 달아나는 추가골을 넣었는데 박지성에게 볼 수 없었던 개인 플레이 골이었습니다. 집중력 좋게 상대 수비의 공을 가로채 두 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네요~1차전에서 첫 승을 올린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죠~(16강에서 수아레스가 박지성에게 유니폼을 교환하러 뛰어오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2010.6.12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로 넣은 13골 모두 소중하지만, 재미로 5골을 선정해본 만큼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좋아요 한 번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비즈니스북 한 줄/ 돈이 열리는 나무
30년 간 수많은 실패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바 있는 일본의 저명한 경영평론가이자 컨설턴트. 책은 1940년생 저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하를 키워 자신도 성장한다’ 등 20여 권이 넘는 경영서적을 펴낸 사이토 구니유키(斎藤之幸)라는 사람입니다. 이번 ‘비즈니스북 한 줄’은 그의 책 ‘바보사장의 머릿속’을 골랐습니다. 책엔 ‘지금껏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꾸로 읽는 사장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①저자: 사이토 구니우키(斎藤之幸) ②출판사: 더숲 ③옮긴이 및 출판년도: 천재정, 2009년 10년 전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이지만, 효용 가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영인의 자세와 관련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조차 모르면 삼류 경영인,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알면 이류 경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비로소 일류 경영인.’ 저자 사이토 구니우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아는 일류 경영인’의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중시합니다. 책 제목(‘바보사장의 머릿속’)을 빗대어 말한다면, 바보사장은 ‘돈이 열리는 나무’인 인재를 말라 죽게 한다는 겁니다. 저자는 “‘돈 버는 비결’에만 관심을 둔 사장은 ‘돈이 열리는 나무’의 근간인 사람을 시들게 하면서 돈이 안 열린다고 투덜거린다”며 “그런 사장은 ‘인재 활용의 비결’을 중시하는 경영인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수많은 성공 사례와 더 많은 실패 사례를 보며 깨달았다”는 사이토 구니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사람을 알고, 사람을 기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의 의욕을 이끌어내서 있는 힘껏 행동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삼류 경영인으로 끝날지, 일류 경영인으로 끝날지는 속된 말로 ‘한 끗’ 차이가 아닐까요. 저자의 마지막 멘트를 기억해 두면 어떨까요. “사람보다 돈을 좋아하는 사장의 뜰에는 ‘돈이 열리는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온 국민이 1명의 축구선수에 열광하던 시절 ㄷㄷㄷ
지금은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박지성은 한국 축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죠.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온 국민이 박지성이라는 이름에 열광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엔 박지성의 전설적인 플레이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전설의 시작.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터트린 골입니다.'벼락 같은 골'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렸던 멋진 골이었죠 ㄷㄷ 이때만 해도 박지성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21살의 무명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골 이후 박지성의 커리어는 180도 달라집니다. 다른 각도에서 봐도 너무 멋집니다. 대포알 같은 슛이 정확하게 골문 구석을 향해 날라갑니다 ㄷㄷ 아마 한국 축구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이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가, 너무나 중요했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저렇게 침착하게 골을 넣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박지성 본인도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골일 겁니다. 월드컵 이후 일본을 거쳐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한 박지성. 처음엔 유럽축구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전했지만, 결국 아인트호벤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됩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터트린 이 골은 박지성 커리어 뿐만 아니라 PSV 아인트호벤 구단 역사에도 남을 만한 멋진 골이었죠. 결국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박지성. 풍부한 활동량과 과감한 플레이로 맨유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던 박지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공을 빼앗긴 후에도 끝까지 쫓아가서 백태클로 다시 공격권을 가져오는 박지성. ㄷㄷ 이런 선수 하나만 있어도 엄청 든든하죠! 이번에도 태클로 공을 가로채고 직접 역습을 시도하는 박지성 ㄷㄷㄷ 뭐랄까요 정말 날랜 황소 같습니다 크으! 박지성은 뛰어난 득점원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트리며 맨유 팬들을 열광하게 했죠! 울버햄튼전에서 92분에 터트린 이 극장골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박지성은 맨유의 라이벌이었던 아스널, 리버풀, 첼시 상대로도 멋진 골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리버풀전에서 터트린 이 헤딩골도 정말 일품이었죠. ㄷㄷㄷ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디디에 드록바에게 실점한 뒤에 곧바로 박지성이 직접 골을 터트리며 올드 트래포드를 들썩거리게 만들었습니다. 너무나 극적이고 멋있는 골이었습니다 ㅜㅜ 가까이서 본 첼시전 골. 박지성은 세레모니도 너무 멋있는 선수였습니다 ㅎㅎ 이 골은 아마 한일전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혼자 중앙에서부터 박스까지 돌진에서 골을 넣어버렸죠.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순간 ㄷㄷㄷ 이날 소위 말하는 '국뽕'을 치사량 이상으로 맞으신 분이 엄청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ㅋㅋㅋㅋ 우리를 더 취하게 만들었던 것은 골을 넣은 이후의 세레모니였죠.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을 스윽 바라보는 '산책 세레모니'! 전혀 자극적인 동작으로 이렇게 세레모니를 멋지게 할 수 있다니 ㅜㅜ 역시 갓지성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도 박지성 영상을 종종 찾아보곤 한답니다. 정말 행복했고 그리운 시절입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열대야 속 맥주한잔, 후쿠오카#3
톡쏘는 하이볼 한 잔 캐널시티의 분수쇼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마침 맥주 한 잔도 생각나는겸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캐널시티에서 돈키호테가는 방향에 가득 들어선 식당중 아무데나 하나를 잡아 들어갔다. 공손히 건네받은 메뉴판을 펼쳤을 때 바로 보이는 메뉴가 하이볼이었다. 산토리와 짐빔 하이볼 두 종류였는데 짐빔 하이볼은 먹어본적이 없어서 짐빔 하이볼로 선택했다. 한모금 마신 짐빔 하이볼은 먹어봤던 산토리 하이볼보다는 강한 맛이었다. 부드러운 탄산의 톡 쏘는 성질머리에 은은하게 풍겨오는 산토리 위스키 향이 흘러들어오는 산토리 하이볼과는 다르게 짐빔 하이볼은 짐빔 위스키향이 강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강한 향 덕분인지 탄산의 톡 쏘는 목넘김도 한 성질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산토리 하이볼이 더 마음에 들었다. 달밤의 캐널시티 캐널시티 내부에는 지역 축제가 있는지 화려했다. 무사들이나 일본성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니 꽤나 큰 축제인가보다. 조형물 뒤로 건물의 불이 꺼지면서 높게 솟아오른 화려한 분수 한 발과 함께 분수쇼가 시작했다. 건물의 벽면 전체가 스크린처럼 되었다. 고질라와 같은 괴물이 도시를 침범하는 스토리의 분수쇼로 일정을 잘 맞추면 원피스 스토리의 분수쇼도 한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조명아래 높고 낮게, 가늘고 넓게 펼쳐지는 분수의 물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냉정한 현실의 분수쇼 분수쇼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스크린에 나오는 괴물을 공격해볼 수도 있다. 단순히 분수쇼를 바라만 보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있게 해두었다. 한 5분간 지속된 공격에도 지치지 않는 어린아이들과 꿋꿋하게 버티는 괴물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공격 성공의 게이지가 시원하게 올라가지 못하고 찔끔찔끔 내려오더니 결국 졌다. 보통 이런건 나중에 이겨서 정의구현(?) 하는 줄 알았더니 현실은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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