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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셴카의 아들

주말동안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루카셴카 벨라루스 대통령이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소치 근해에서 푸틴이 개인 요트를 제공했고, 여기에 루카셴카를 초대했던 것. 당연히? 라이언에어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같이 연행된 러시아인(라만 프라타세비치의 여자친구) 처우에 대한 논의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시원시원하게 벨라루스에 대한 신규 차관 제공을 약속.

둘은 서로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푸틴 입장에서는 약화됐지만 약화됐기에 더 소중한 존재가 루카셴카이고, 루카셴카로서도 정권 유지를 위해 푸틴의 도움이 절실한 것인데... 사진을 자세히 보시라. 셋이 밥을 먹는데 중간에 웬 잘생긴 젊은이가 한 명 앉아 있다.

바로 저 젊은이가 루카셴카의 아들이자,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빅토르 루카셴카의 동생인 미칼라이 루카셴카/니콜라이 루카셴코(Мікалай Лукашэнка / Николай Лукашенко, 2004년생)이다. 얘가 또 사연이 있는데, 루카셴카의 아들이기는 해도 정식 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은 아니다. 미칼라이가 큰형인 빅토르의 배다른 동생이기 때문이다.

원래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랑 결혼하여 세기의 로맨스(...)남이었던 루카셴카는 대통령에 오른 이후, 부인과 결별했다고 알려졌다(공식 발표는 당연히 없습니다?). 별거한지는 30년이 넘었으며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들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 싫어서"였다. 그러면 미칼라이는? 루카셴카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던 자기 주치의랑 사귀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라는 루머가 있다. 거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정리합시다? 루카셴카는 원래의/지금도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둘이 있습니다. 빅토르(75년생)와 드미트리(80년생).

루카셴카가 관계를 가졌던 이리나 아벨스카야에게도 아들 둘이 있습니다. 드미트리와 미칼라이(04년생), 이중 미칼라이가 바로 루카셴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다만 루카셴카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또 하나 있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루머.
그런데 말입니다. 후계로 유력한 것은 맏아들인 빅토르이기는 하지만 루카셴카가 자꾸 막내아들 포지션인 미칼라이를 싸고도는 정황이 있어서 향후 10-20년 사이 벨라루스 후계 구도도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그 증거가 바로 이 푸틴과의 식사 사진이다. 아들의 미래를 잘봐주라는 말이 분명 나왔을 듯.
분위기는 완전, "GOODBYE, MR BOND!"

PS. 공유한 링크는 호도르콥스키 커뮤니케이션 센터인데, 기억하시나 모르겠다. 호도르콥스키(Михаил Борисович Ходорковский)는 푸틴이 대통령에 오르자마자 소탕했던 올리가르히/재벌 중 한 명으로서, 푸틴이 결국은 사면(...이라 쓰고 추방이라 읽는다)시켜줬었다. 현재는 런던에서 반-푸틴 활동을 열심히 하는 중.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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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장기집권 북한이랑 똑 같구만
@newscom0416 벨라루스의 다른 명칭이 바로... 유럽의 북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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