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ya
5,000+ Views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박한 결제 유도.jpg



정식판



무료판

작화만 다르고 대사, 스토리는 그대로


모야ㅋㅋㅋㅋㅋ 싱크빅 지리넼ㅋㅋ

중간중간 무료로 한 열 페이지마다 찐 작화 보여주면
눈 돌아가서 바로 결제각 ㅇㅇ
둘 다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을듯

만화 이름은 '나는 100만명의 목숨 위에 서있다' 하고 함
2 Comments
Suggested
Recent
왜 무료판이 더끌리냐
근데 너무 귀엽당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마약사범 2000명 검거한 경찰이...
마약 판매조직 타진 위해 잠복수사 하다가 들킬 위험에 의심을 피하려고 딱 한 번 필로폰 투약하고 바로 중독됨 ㅠㅠ 그 후 자살시도 2번에 징역만 5년 6개월을 사셨다고. 아래는 이인범씨가 쓰신 글임 - 전경수단장님! 마약 때문에 내 인생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저는 1989년 부산시경에 무도경찰로 입문하였습니다.  초임 형사로  제일 처음 다룬 사건이 바로 마약범을 검거 하는 것이 주된임무였습니다.  이것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것입니다. 그당시 보사부나 검찰 마약부에서 마약사범 검거 주력을 하였으나 경찰은 그다지 ...하지만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 되면서 민생침해 사범 검거로 인해 나는 내 전문 분야인 마약 수사관으로 더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1993년도 대구 일대 마약판매책 ㅇㅇㅇ를 검거하면서 하루만에 16명을 잡는 바람에 특진의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부산시경 산하에서 마약범 잡는 귀신 " 이인범"으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1997년 검찰 마약부에 1년간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것이 화근이 되었습다. 그해 5월 대구일대 마약판매책 ㅇㅇㅇ 과  마약 100그램 거래가 있다는 검사의 지휘에 의해  나는 위장 매수자로 (매수자 대신)  대구 두류공원에 몇명의 수사관들과 그를 검거키 위해 갔었습니다. 그당시 그는 마약사건으로 수배5건이 되어 있었고 5년동안 피해 다닐정도로 눈치와 조심성이 있는 치밀한 자입니다.  약속장소에서 약 1시간정도 기다렸는데 그는 내 주변을 돌면서 작업사실 관계를 인지 확인할수 있었지만  그전에 나는 어떤 의심이 갈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이내 그와 접선을 할수 있었습니다. 대구 두류공원앞소재 내가 서있는 노상에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섰습니다." 부산에서 오셨죠?" 라며 말하며 조수석에 타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를 검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마약 100 그램을 소지 하지 않고 왔을수 있다고 보고 차분하게 대처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 자리 에서 약100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수사관들이 잠복을 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 그런데  내생각과는 달리 빗나갔습니다. 나를 태운 차는 빠른 속력으로 어디론가 갔는데 그곳은 내가 전혀 모른곳입니다.  골목안 에 있는 모텔 이었습니다. 그는 그모텔을 잘 아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와 나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잠시후 그는 마약투약을 하면서 나에게 한잔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당황하여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 여기 대구에 나혼자 온것이 아니고 돈 2000 만원을 던진 선배분과 같이 왔으니 후배인 내가 한잔하면 도리가 아닌것같다" 라며 말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심 나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전혀 마약 투약하는 사람같이 안보였고 이것 때문에 여기 모텔에 확인키 위해 나를 데리고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약투약을 사양하자 그는 일어나면서 거래는 없는 것으로 하자는것입니다. 일종의 협박성 발언입니다. "순간 내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혼선이 왔습니다"... "여기서 그를 그냥 잡는다면.... 마약 100 그램은 압수 할수 없다..." 단순투약으로  검거 하는 것이 된다".  생각의 교차 상태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이러한 순간은 형사로서는  누구나 자존심 걸린 위기가  아닐수  없을것입니다. 그래 나는 결심 했다. 딱 한번한다고 뭐 달라지는것이 있겠냐 라고 생각후 그에게 내팔을 내 밀었습니다. "주사를 잘놓지 못해  ,,," 말이다. 마약을 투약하는순간 .....  긴장된 상태에서도 그 느낌은 최고 였다. 이를 확인한 그는 다시 나와서 내가 있던 두류공원앞 노상까지 데리고 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것이다. 5분쯤 지나자 그는 자신의 운전석 방석 밑에서 10 그램 짜리 마약 10 개를 내어 나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들고 있던 현금 2000 만원은 뒷 자리로 놓고...순간 나는 약간의 시간을 끌려고 했다.나를 찾아나간 수사관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마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도 하고 또 정확한 물량인지도 확인 했습니다. 더 이상 지체 할수 없기에 그  차안에서 나는 그를 검거 하려고 목을 잡려고 하는 순간 그는 문을 열고 도망치려 하자 다시 온 그 수사관들에게 검거 되었습니다. 그당시 차 드렁크에서 80 그램의 마약이 더 압수 되므로 총180 그램을 압수하는 큰 공적을 올린것입니다. . 나는 부산에 따로 내려 왔습니다. 내가 수사관인것을  알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수사관들은 내가 마약투약을 한지도 모릅니다. 필로폰의 맛을 아는 지금이었다면 국가에서 훈장을 준다고 해도 그럴리야 있었겠습니까 . 그 당시로서는  내가 투약하는것이 위장된 매수자로 물건을 압수할수 있다는 희생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물건을 확보하기 위한  완전한 수사라는  한 순간이 내인생을 몰락 시킨 동기였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가장 위대한 형사, 아니면 가장 어리썩은 형사 둘 중하나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물건을 압수해야 수사의 목적 달성이라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순간의 실수 였습니다. 역으로  나도  그들과 동등한  중독이라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필로폰! 필로폰!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 을때는 이렇게 심한 고통을 주는 물질인지 정말 모랐습니다. 필로폰  마약이 아닙니다. 독극물입니다.  3일간의 휴가를받고 부산에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긴장이 풀려서 인지 마약의 첫 느낌을 다시 ...세상에 이렇게 좋은지...그당시  단 한번의 마약투약으로, 그것도 내의지와 관계없이 접한 마약으로 내인생의 두갈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공직에서 파면후  네번의 마약투약 사건구속으로 옥살이 5년6개월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건 내 몸뚱아리뿐, 지난날의 아픔 기억과 상처 투성이뿐입니다. 이것이 나의 마약과의 인연입니다. ...정말 숨기고 싶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것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전경수 단장님! 이제 제 소망이 있다면 단약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용기와 사기를  불어 넣어주는 의존증극복지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더이상 나와같이 고통밭은 사람들이 없도록 마약의 무서움에 대한 메세지를 여기 저기 보내는 전도사 역활 입니다.  더이상 나같이 마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단약에 꼭 성공 하시길 빕니다. 저 역시도... (출처) 씁쓸하네요 마약은 진짜 무서운 거임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5.
지난번 삼.이.높.4에서 중국의 삼국시대 당시 위세를 떨치던 소수민족들에 대해 다루다 분량이 길어지며 일부 민족들을 이월시켰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나머지 썰을 푸는 시간ㅎㅎ 본문에 앞서, 정말 기약없이 다음편이 늦어진 점에 대한 사죄의 말씀을 고개 숙여 전한다는... T-T 생애 가장 바쁜 삶을 살다보니 진정 도저히 시간적, 정신적, 체력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_-;;) 아무튼 그래서 사과는 다시 차차 드리기로 하고 저번에 못 다룬 소수민족들인 선비, 저, 무릉만과 남만에 대해! 그럼 거두절미, 바로 본론 Go Go~~~ 선비(鮮卑) 이름만 들어보면 맨날 진지하고 엄숙한 선비충같은 부류들 같이 느껴지지만 이미 한자부터 다른, 그냥 발음만 같은... 우리가 떠올리는 그 선비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종족들!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에서 내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일대에 걸쳐 중세시대에 번성했던 '동호'라 일컬어지던 유목민들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전투민족인 흉노들에게 대대적으로 작살나며 내이멍구 동부의 선비산이라는 산 일대로 쫓겨 정착한 이들이 "선비족"이다. 참고로 오환족들도 저 동호 무리들 중 일부가 '다싱안링산맥'의 한 봉우리인 오환산 일대로 쫓겨가 무리지은데서 이름이 붙은 케이스이므로 선비와 오환은 그 뿌리가 같다는게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ㅎ 막상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 삼국시대 ~ 진나라 때까지는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던 종족들은 아니였다. 일단 무엇보다 흉노에게 여러 차례 발린 적이 있는데다, 중원의 근간인 한족들과 조우하려면 흉노의 영향력이 큰 지역들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천적인 흉노까지 스킵하며 한족들에 겐세이 줄만큼 수나 파워가 강한 애들은 아니였... 그러다 흉노들이 남북으로 갈리며 약화, 여기에 선비들의 거주지역과 한족들의 거주지역 중간에 있던 북흉노들이 위와 진에 털려 위용을 잃으면서부터 두각을 드러내, 진나라도 점점 나가리의 뉘앙스를 풍기자 땅따먹기하러 쏟아져 내려왔고 이때부터 "오호십육국시대"가 개막된다.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본 배경되는 후한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진으로 중국이 재통일 될 때까지 별 영향 못 미치고 북동쪽에 처박혀 있던 쭈구리들였던 것.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그닥 특색이 모호했던지라.. 당나라가 들어설 무렵에는 흐지부지 없어진 종족들이다. 덧붙이자면... 흉노나 한족들에게는 쭈구리였던 얘들이지만, 우리측의 부여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던 이들이였다.. 부여는 내내 이 선비충들에게 시달림을 면치 못하다 고구려가 건국되고도 한동안 시달림이 지속.. 후에 그 대단한 "광개토태왕"이 요동일대에서 갈아마신 후에야 악연을 끊었다. 저(氐) 위에서 언급한 오호십육국시대의 오호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였음에도 그닥 기록이 별로 없는 종족이다. (참고로 오호는 흉노, 선비, 강, 저, 갈) 이들은 위와 촉 사이의 서량의 남서에서 익주의 북서인 무도일대에 자리잡은 종족들이였고 앞서 설명했던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이 유목민족들이였던데 반해 이들은 강족처럼 정착민족들이여서 농업과 임업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강족들과 거주지가 인접 또는 겹쳤는데, 강족들이 숫적우위에 더 와일드하다보니 많이 뭍힌 감이 없지 않고, 삼국지연의나 기타 창작물들에서는 그냥 죄다 강족으로 싸잡히는 비애도 있다... 당장 마초 & 한수가 조조를 씹어먹으러 서량의 세력들을 죄다 싹쓸어 올 때 그들의 주력이 강족전사들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지만 강족과 저족의 비율이 7:3 가량 되어, 저족들의 비중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음에도 나관중은 그냥 무시하고 다 강족처리 했다. 한편... 기록이 부족하다는건 그만큼 기록자인 한족들 입장에서 별 임팩트를 못 느꼈다는 소리. 사실, 동북쪽의 소수민족들은 넓디 넓은 벌판에서 수 많은 가축 때를 휘몰아 쏘다니며 늘 말을 타고 또 원래 저런 벌판은 물도, 식량도 넉넉치 않으며 대체로 육식위주다보니 아무래도 더 거칠었던 반면... 서쪽의 소수민족들은 그럴 벌판이 없는 산악지형에 거주하며 수렵, 채집생활도 하긴 했으나 역시 식량의 주요루트는 농사였던 관계로 채식비율도 더 높고 식량수급이 아무래도 떠돌이 유목들보다는 나았기에 좀 덜 거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저 당시에 "말"이 갖는 기동력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파괴력이 어마무시했기에 대부분 1인 2마 이상인 유목민들이 말보다 농사짓는 소와 더 가까운 산악민족들보다는 공격력이 앞설 수 밖에 없었을거 같다. 현세에 이르러, 우리회사만 봐도... 늘 사무실에 정착해 자기자리에서 농사짓듯 모니터만 보고 밥도 식당밥, 도시락 먹는 내근직들보다는 맨날 이리저리 차 타고 거래처와 클라이언트 찾아 떠돌며 편의점에서 MSG와 나트륨 범벅인 백종원 CU도시락이 주식인 영업직 인간들이 더 거칠고 개새끼들이 많다.. (나도 그 개새끼들 중 한 마리인건 함정) 무릉만(武陵蠻) 삼국지의 자타공인 바퀴벌레 종족들이다.... 삼국시대 당시에 만약 핵전쟁이 났어도 쥐, 바퀴벌레와 함께 절대 멸종 안했을거 같은 한족들 입장에서는 진심 진저리 넌더리 났을 종족들인데, 이들의 포지션을 현대로 옮겨와 보자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긴시간 우주제일 천조국을 엿 먹인 탈레반과 비슷하고 역시 몇 십년 전 천조국을 학 떼게 만든 베트콩과도 비슷하다. 이름만 봐도 어디 사는지 드러나는 이들은 말 그대로 형주의 "무릉"일대에 퍼져 살았다. 삼국지를 연의나 게임으로만 접한 분들 입장에서는 여태 언급된 소수민족들은 아직 소개안한 남만족과 더불어 거의 중국의 변두리에 살았다지만 무릉만들이 사는 무릉은 중국의 한복판인데 뭔 소수민족??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도 그럴만한게, 중국이 원체 넓고 큰데다 그 넓은 땅이 전부 평야도 아니고 도심지도 아니다.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인간 적고, 인프라가 꽝이라 미개척지, 오지가 많던 1,900여 년 전 중국은 말할 거 없어, 당시의 형주는 비교적 인구도 많고 인프라와 교통이 발달한 강릉, 강하, 장사 정도까진 꽤 살기 괜찮은 곳이였지만 무릉은 그냥 완전 험준한 협곡 투성이의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오지로서... 여러분들 영화 '아바타' 다들 봤나? 거기의 파랗고 길쭉한 나비족들 사는 판도라와 엇비슷한 그런 환경이였다. 무릉만들의 전술은 바로 저 거지같은 험지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였고... 이 전술 덕에 한족들의 끊임없는 토벌릴레이 속에서도 종족의 근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유표는 손 놓고 없는셈치는 땅이였고, 삼국이 정립되어 가는 와중에 오에서 황개, 반준, 여대, 보즐 등등이 수차례 토벌에 성공은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겁 주고 주의만 시킨 수준일뿐, 이들의 세력존폐를 위협할 수준의 데미지를 주는데는 실패했다. 쉽게 말해, 그냥 이들로 하여금 지들 영역에서만 짱 박혀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게 하고 한족의 영역으로 나오지 않게끔 억제만 한 수준이였던 것. 당장 역사를 조금만 더 올라가보면, 이들의 존재는 한족의 애물단지같은 위치였고, 하다하다 안되자, 소수민족 토벌의 달인인 마원(마초의 조상) 까지 고령임에도 출병시킬만큼이였다. 허나 소수민족 상대로 킬 수가 수두룩 하던 그 마원조차도 무릉만들 상대로는 지지부진하다 끝내 전장에서 병사한다. 무릉만들도 순수혈통 단일민족은 아니고 그 일대에 퍼져 사는 여러 종족들을 싸잡아 일컫는 호칭이였는데 무릉만들 중 일부는 식인풍습도 있었던 듯... 뭐... 저걸로도 무릉만들 수준이 어땠는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삼국지 매니아분들에게 있어서, 무릉만의 슈퍼스타는 역시 "사마가"인데, 사마가의 등장은 유비가 관, 장 두 아우 사망에 있어 만악의 근원인 오를 정벌하고자 이릉대전을 개전함에, 촉에 협조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시 걸핏하면 자기들 족치려는 오를 극혐하던 무릉만들에게, 승전시에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촉한의 특산물인 최고급 비단을 잔뜩 챙겨 무릉만들을 설득했던 결과였다. 당시, 비단 싸들고 무릉만들과 협상하러 나섰던 촉한의 네고시에이터는 바로 백미 "마량"이였는데... 당시 자치권도 자치권이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일단 마량을 필두 삼은 촉한의 협상단이 가져간 비단을 본 무릉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다고 한다. 하긴, 그도 그럴게.. 여러분들도 맨날 동네시장 신발가게에서 아티스나 슈퍼카미트만 사신다가 옆동네에서 에어조던 시리즈별로 다 갖고 오며 도와달라면 눈 뒤집힐 듯. (아티스나 슈퍼카미트 알면 무조건 아재 당첨) 허나,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릉대전에서 촉이 대박살이 나며 따라갔던 무릉만들도 무시 못할 피해를 입었다... 참고로 여느 소수민족들이 그렇듯, 무릉만들도, "We Are The 무릉만!" 이라며 하나로 뭉쳐진 단일세력이 아닌, 여러 크고 작은 부족들의 연합 비슷한 것이였고 여러분들이 아는 사마가는 연의의 표현처럼 무릉만들의 왕이 아니라, 그런 여러 무릉만들의 부족들 중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 중 하나였다. 남만은 분량도 좀 될 것 같고 아무래도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삼국지 매니아분들이 더욱 궁금해하며 흥미 가지실 것같은 종족이라 차라리 따로 다루는 게 나을 듯 싶다는 생각에 따로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들.. 제가 연재를 늦게 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진짜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수준의 텀이 생기고야 말았네요... T-T 하지만 저 역시 뒹굴고 노느라 연재가 미뤄진 것은 절대 아니였어요. 저도 좋아서, 즐거움과 보람에 시간내서 글 쓰는데 장시간 못 그러니 참 답답했습니다. 그 와중에 재촉없이 묵묵히 기다려주신 분들, 애정과 관심 담아 재촉해주신 분들... 모두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 긴시간 동안 연재 없음에도 팔로워는 줄지 않아서 기뻤다는 ㅎㅎ 아무튼 다시 연재에 힘쓰겠습니다!
도라에몽 아빠 에피소드 레전드.jpg
아빠가 밤늦게 들어왔는데 술떡이 됨 술 취해서 난동 피우는 아빠 그 덕에 깬 도라에몽과 진구 진구 :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엄마 : 어머 깨웠구나. 여보 제발 정신 차려요~ 애들이 보고 있잖아요! 술 버릇이 심해지는 아빠 엄마 : 이제 나도 몰라요!  엄마 : 너희도 다시 올라가서 자. 빨리! 도라에몽: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진구 : 응... 아빠 일어나 봐요.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아빠 : 에잉 시끄러워! 애 주제에 어른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도라에몽 : 이제 어쩌지? 진구 : 아 그래! 어리다고 뭐라고 하셨으니 더 큰 어른을 부르자! 아빠의 엄마. 할머니를 보면 아무 말도 못 하실 거 아냐! (노진구의 할머니는 진구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도라에몽 : 그렇네! 아빠를 (타임머신으로) 옮기자 과거로 아빠 배달 완료! 진구: 할머니를 불러오자! 진구: 근데 뭐라고 말씀드리지..? 진구 : 할머니... 저 그게요... 할머니 : 진구냐? 날 보러 또 와줬구나 진구 : ...! 기억하고 계셨군요 할머니 : 우리 손주를 어떻게 잊을꼬 진구 : 할머니!!!! 도라에몽 : 진구야~ 진구 : 아, 맞다! 진구 :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실은, 아빠도 같이 왔어요. 할머니 : 뭐? 네 아빠도 같이 왔다고? 진구 : 엄청 취하셔서 난리도 아니에요! 진구 : 봐요~! 할머니가 마구 혼내주세요! 할머니 : 석구야~ 어서 일어나거라 아빠 : 너 누구야!  아빠 : 난 이 집에 가장 이란 말이.. 어? 아빠 : ? 아빠 : 어머니 어째서.. 할머니 : 조금 야단을 쳐야겠다 싶어서 할머니 : 잘 지내는거 같구나 아빠: 그럼요! 할머니 : 우리 아들 잘하고 있니? 아빠 : 당연하죠~! 난 한 가정에 가장이라고요! 할머니 : 그렇구나~ 하지만... 할머니 : 뭐든지 다 혼자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아빠 : 엄마!!!!!! 할머니 : 아이고 우리 아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울음이 터지셨나 아빠 : 부장님이요...! 엄청 못된 부장님인데 날 매일 못살게 굴어요! 할머니 :  그랬어? 힘들었겠구나 진구: 아빠?! 도라에몽: 조금만 있게 해드리자 도라에몽 : 어른은 좀 불쌍한 거 같아 진구 : 그건 왜? 도라에몽 : 그야, 자기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많이 의지하고 어리광 부릴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진구 : 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 도라에몽 : 아빠도 분명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거야. 그래도 매일 힘을 내시는 거지 진구: 응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울다 지쳐 잠든 아빠 다시 현재로 돌아온 후. 다음날 아침 아빠: 고마워요. 어제는 미안했어요. 취해버린 바람에... 엄마: 괜찮아요~ 아빠 : 오랜만에 어머니 꿈을 꿨어요 옛 생각이 나더군요... 아빠: 그럼 갔다 올게요! 다시 돌아온 아빠 아이들은 공감 못하는데, 어른들이 보고 울었다는 에피소드.
진수 승조 (陳壽 承祚) A.D.233 ~ 297
어찌보면... 이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사실상 삼국지의 가장 중요인물을 이제서야 다루게 되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삼국지정사(三國志正史)의 저자 "진수"다. 사실, 수천 여 년 이상을 자랑하는 유구한 중국문명.. 심지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함께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역사는 여간 장대한게 아니며 그 중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 말 ~ 삼국시대는 고작 한 세기 밖에 안되는.. 이리 말하면 좀 뭐하지만, 말 그대로 "찰나" 에 불과하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중국 본토는 물론 타이완과 동남아시아 및 중화권을 넘어 여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길고 긴 중국역사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기이자 큰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시대로 만들어 낸 것의 시작은 바로 진수의 공적인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토 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 뭔 개소리여, 삼국지는 나관중이지! ' ' 난 이문열꺼만 봤구만 뭔 소리? ' ' 오레노산코쿠지와요코야마미쓰테루상노산코쿠지데스 ' 다 맞다. 모두 옳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인기의 삼국지가 있게 된 가장 큰 공은 누가 뭐래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인 "나관중(羅貫中)" 및 나관중 이전에 삼국지정사의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들을 연구하여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裴松之)", 그 밖에도 현대에 와서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평역본과 흥미로운 미디어믹스들을 양산해낸 많은 이들이 오늘의 삼국지가 누리는 인기와 명성을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연계물들 역시 애초에 진수가 삼국지를 집필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정사는 나관중의 연의가 창작되고 이게 또 인기대폭발하며 아주아주 근래에 그리 일컫는거지, 지금도 중국에 가서 '삼국지'라 하면 그냥 정사를 말하며 삼국지연의만 따로 연의라고 한다. 이는 마치 짜장면과 짜파게티를 구분할 때 짜장면을 가리켜 굳이 '정통짜장면'이라 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사는 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엮은 거라 제법 많은 편수로 이루어져 있고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에 각 서들은 여러 인물들 위주의 열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의만 줄기차게 읽다 환상을 품고 접하면 그야말로 모든 불면증을 치료할만큼 노잼.. 아니, 핵노잼이다. (일단 구해보기조차 버겁다..,) 다시 진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는 당시로는 파서군(巴西郡) 안한면(安漢縣) 출신이며 오늘날 중국 쓰촨성의 난충 시에서 북쪽으로 50~60km가량 더 가면 그쯤이 대략 진수의 고향 위치다. 참고로 이 동네는 중국내에서 일조량이 매우 적은 곳 중 하나인데, 여름 기준으로 오전 8시쯤 일출, 오후 5시쯤이면 일몰로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이 동네 5성급 호텔 일반객실의 평균가가 우리돈 ₩ 50,000. 쯤이라는데 매우 싸다! 내가 예전 여친과 자주 가던 캘리포니아모텔의 1박이 ₩ 40,000. 주말 피크타임에 가서 일반실 없다고하면 어쩔 수 없이 가는 디럭스룸이 ₩ 50,000.이였는데... 대신 디럭스룸은 일회용품을 그냥 줘서 실제로는 ₩ 9,000. 더 비싼 셈이다. 여튼 진수의 고향을 보면 알겠지만 촉한(蜀漢)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제법 학문에 밝았다고 하며 그 덕에 초주의 휘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고 초주가 1:1 과외를 해준 건 아닐거고 당시 트렌드상, 아마 초주가 가르치는 여러 문하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지연의나 코에이의 게임에서 잉여노쓸모로 나와 그렇지, 초주는 촉한의 당대최고의 학자들 중 한 명이였고 명성이 대단했기에 그런 초주의 문하생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참고로 초주는 "도참설(圖讖說)" 이라는 일종의 예언과 관련된 이론의 신봉자인 촉한판 노스트라다무스였다..;;; 본인도 똘망진데다 스승인 초주빨이 겹쳐 꽤 일찍 벼슬에 나섰지만 원래 책만 후비는 애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생활은 잘 못 했는지... 당시 실세였던 환관 황호를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다 좌천 세 번에 파면 한 번을 먹었다. 보드게임 하다 주사위 잘못 던지면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이런거 여러 번 걸리는거랑 비슷한 사회생활을 했다..... 내내 이렇듯 정권실세에게 개김질 하다 파면크리 먹고 백수생활 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량처럼 살 때 촉한은 위나라가 낳은 클리프행어 등애의 손에 멸국을 맞고 검각에서 버티던 강유마저 종회에게 항복하며 진수는 집에서 노는 사이, 국적이 촉한에서 위로 바뀐다. 그리고 여전히 노는 동안 사마염이 위를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하며 백수진수의 국적은 위에서 진으로 또 한 번 바뀐다. 이런 복잡한 귀화사를 가진 진수는 진사람이 되서야 장화라는 한 문관이 한 때 꽤 날렸던 그의 학문을 아까워해 천거해주며 다시 벼슬아치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솔직히... 인성 자체는 그닥이였던 듯 싶다. 촉한시절 임관동기였던 자와 술자리 계산문제로 다툰 후 원수지간 되었는데 진수가 재임관 후 마침 그 자도 다른 이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오려는걸 진수가 혼신의 뒤끝으로 막았고... 당시 촉한출신 벼슬아치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모두 진수와 사이가 다들 별로였다. 꼭 그렇다고 어디 나와 있는건 아니지만.. 아마도 진수는 저런 직장내 왕따도 당하고, 별 다른 공적이 없으니 인사고과가 별로라 승진도 잘 안되어 그랬는지... 그 후부터 촉한의 이런저런 자료와 기록들을 모으고 엮어서 역사서 저술이라는 히키코모리나 해낼 법한 일을 해내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가 된다! T-T 진수가 만약 직장동료들과 막 사이 원만하고 일도 열라 잘 해서 제갈량처럼 온갖 거 다 떠맡고 그랬으면 그렇게 한가롭게 자료 모아서 역사서 만들 생각도 안했을거고 여유도 없었을거다. 물론 진수 본인의 삶이야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겠지만 그야 내알바 아니고, 따당하는 일못인 덕에 우리가 오늘도 삼국지를 볼 수 있는 것. 물론, 내가 반 년이나 쉬다 이제 와서 다시 이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가 결코 직장내 왕따 및 인사고과 하위자여서가 아님을 명시한다. 이렇듯, 인성이 별로인 진수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한창 위와 촉의 기록을 모으던 터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오나라까지 망하며, 거기서 유입된 오출신 학자들과 공동으로 오의 역사기록들까지 합쳐 엮으며 삼국지는 완전체가 되었고 보통 당시에는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음에도 진수의 삼국지는 이미 당대에도 여러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본인도 내 길은 이거다 싶었는지 더욱 삼국지 편찬에 집중... 심지어 본인을 재임관 하도록 추천해준 장화가 다시 더 높은 직위에 천거하자 장화의 반대파에서 태클이 들어왔는데, 진수는 그걸 핑계 삼아 승진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반대파의 집요한 태클에 또 다시 파면 당하여 백수가 되고 만다. 허나 그간 정력을 다해 삼국지를 짓고 또 어머니도 여의고 게다가 정치적인 태클도 워낙 심히 받다 기어이 파면까지 되며 그가 받은 스트레스도 적잖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안되어 본인도 병을 얻고 사망하고 만다..... 그가 죽자, 그가 지은 삼국지를 읽었던 학자와 고위관리들은 그와 그 책을 잊지 못하여 당시 천자에게 상서를 올려 진수가 지은 삼국지가 겁나 명작이니 그냥 저렇게 없어지는건 아니될 말이라며 애원했고 이에 천자도 사람들을 진수의 집으로 보내 이들로 하여금 인간복사기가 되라는 어명을 내려 이렇게 수작업으로 베껴진 삼국지는 세상의 빛을 본다. 위에서 말했듯 그 분량이 대단하지만.... 근 100년의 역사를 엮은 것치고는 간소한 부분도 많았다. 그런 아쉬움에 훗날 송나라의 3대 황제인 유의륭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기록과 자료 및 민담 등을 걸러 주석을 달게 하였으니 이 때 주석을 달았던 것이 배송지다. 일부 떠도는 소문에... 제갈량에게 처형 당한 촉한의 장수인 진식이 진수의 부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픽션! 그냥 픽션도 아니고 개픽션!! 저 진수가 지은 삼국지정사에 의하면 진식은 3차 북벌 당시 참전했다는 기록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그리고 연의에서 진식이 처형되는 4차 북벌 자체가 나관중이 지어낸 뻥인데다, 그 연의가 맞다셈쳐도 연의 속 진식의 사망시점이 230년이니... 233년생인 진수가 3년 전 사망한 진식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현대에서나 가능한 냉동정자보관 기술만이 정답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 긴 시간 피나는 노력과 정성으로 온갖 자료들을 끌어모아 역사서를 저술하는데 자기 부친의 기록만 하필 부실한 것도 말이 안된다. 여튼 그가 촉한출신에 위를 거쳐 진의 신하가 된 관계로 당시부터도 명서라는 호평과는 별개로 기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및 이에 대한 가십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서에 좋은 기록으로 넣어줄테니 뇌물을 요구했다던가 (그런데 이건 나였으면 진짜 이랬을 듯.ㅎㅎㅎ) 사마가문에 대한 비판이 유독 없다거나 등등... 특히 이 사마가문의 비판관련 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애초에 진수도 결국 사람인지라 현 정권의 시초 및 그 가문 사람을 객관성있게 표현할 깡은 없었다는 주장과 또 하나는 위에 진수 사망 후 인간복사기들이 가서 진수가 쓴 삼국지를 베끼는 과정에서 누락 시켰다는 주장이다. 뭐 그런데 이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니.. 혹여 독자분들 중 근시일내로 안타깝게 운명하시는 분이 저승가서 진수를 만나거든 물어본 후 내 꿈에 나타나서 알려 주시기로 하자. 여튼 당시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출신이나 정치성향에 따라 어땠는지는 모르나 현대에 와서는 그의 저술방향에 있어 두드러지는 편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 받고 있다. . . . 가장 마지막이 7월 2일에 올린 노숙편이니 그날부터 거의 만 반 년만에 올리네요...ㅎㅎ (하필 컴백편 주인공이 노잼 진수...;;;) 제가 4월에 이직을 했는데, 새 회사가 제가 지금껏 살며 다닌 그 어떤 회사들보다 일이 더 많고 어렵네요.. 맨날 일에 치이다 집 와서도 일하고 새벽 3~4시에 자고 제가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 중인데 그것도 벅차고 가장 큰 이유는 빙글의 인터페이스가 제 입장에서는 좀 직관적이지 않고 불편하더라구요.,.. 사실 여러 번 썼다 말았다를 반복 했었어요. 그렇게 저도 삶에 치여 잊고 살았는데, 간간히 뜨는 알림에 들여다 보면 꽤 긴 시간 놓고 있음에도 저와 제 글을 잊지 않아 주시고 돌아오라는 기다린다는 댓글 남겨 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완전 진짜 마음 울컥 했습니다....T-T 제 바쁜 삶이 달라지진 않다보니 꾸준한 연재는 약속 드릴 수 없지만(뭐 이건 전에도 그러긴 했죠ㅋ) 그래도 텀이 길지언정, 예전처럼 많은 분들이 봐주시지 않는다해도 연재는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사실 이 6개월도 제가 글을 안쓰겠다 마음 먹은 건 아니였고 어쩌다 저쩌다보니 진짜 시간이 쏜살처럼 간거예요ㅋ 아무튼 이제 솔크도 지났고 곧 새해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날 추우니 감기들 조심하세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긴 휴재에 대해 사과 드리며 그럼에도 여태 기다려 주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제 글 때문에 빙글 안지운다는 분들과 돌아오라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차피 노총각이라 주말에 시간이 남으니 최대한 빨리 연재 해보려 노력할께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공손찬 백규 (公孫瓚 伯圭) A.D.? ~ 199
삼국지를 워낙에 좋아해서 여기다 시간 들여가며 이런 글까지 쓸 정도다보니 나름 삼국지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여러 자료들을 지금까지 보고 듣고 하다보면 그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떠나 참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 '이 사람은 왜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이 인물은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한걸까' '그는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건가'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오늘 다룰 인물 "공손찬"이다. 아마 게임이건 만화건 애니매이션이건 책이건... 소설인 연의를 읽었건, 정사를 읽었건..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특히 삼국지연의를 읽은 분들은 더더욱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데, 일단 연의에서의 그는 워낙 초반부에 등장하고 별 다른 임팩트도 없는, 드래곤볼을 예로 들자면 손오공이 어린 시절에 등장해서 잠깐 오공을 애먹이지만 얼마 못 가서 즈려밟히는 '타오파이파이' 정도의 취급... (혹시 누군지 모르면 포털사이트 검색 Go) 그나마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를 즐기는 분들이 보다 고난도의 천하통일에 도전할 때나 선택할 인물. 하지만 역사 속에서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엑스트라급은 아니였음을 오늘 글을 통해 밝혀 보겠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나오듯 실제로도 당대의 이름 높던 학자인 '노식'의 문하에서 유비와 함께 공부한 동문이고 그 때의 인연으로 유비가 공손찬이 막장테크 타기 전까지 공손찬의 객장으로 있기도 했다. 이쪽도 생전의 라이벌이던 원소처럼 적자가 아니지만 얼자였던 원소보다는 사알짝 나은 '서자'였는데 뭐 우리가 보기에는 도찐개찐... 어쨌건 집안도 원소의 원가에는 댈 바 아니긴 해도 나름 괜찮은 집안의 은수저출신. 공손찬의 집안은 대대로 유주일대의 태수를 지내던 가문이였는데, 원소네가 일전 원소칼럼에서 소개했듯 중앙정부 고위관직자 집안이라면 공손가문은 군수집안쯤? 이걸 보고 혹자는 'ㅋㅋㅋ군수 나부랭ㅋㅋ'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여러분들이 군수를 몰라 하는 소리다. 군수는 3급 공무원이며 군으로 치면 준장(★)에 준하는 정말 높은 자리다. 아무튼 저런 집안 출신이지만 서자인 관계로 지분을 이어받지 못한 Mr.공손은 첫 사회생활을 유주의 말단관리로 시작하는데, 이 때 맡은 업무는 각종 공문서를 필사, 즉 베껴 쓰는 일이였다. 당시는 복사기도 없고 이메일, 팩스 뭐 그런거 다 없으니 공무에 있어 이리저리 나가고 들어오는 문서들을 누군가 직접 보고 필사를 했는데, 그 일을 했다. 인간복사기로서 공손찬은 꽤 유능하여 문서들을 취합 후 요점을 추려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하여, 그가 정리한 문서는 누가 봐도 업무현안이 눈에 잘 들어왔는데, 게다가 공손찬은 말도 조리있게 잘 했고 인물도 좋은데다 "목소리도 좋았다"고 한다. 이런 점들이 소문나며 어느 태수가 그를 점 찍어 사위삼고, 그 후 그를 노식에게 유학시키는 등 이때부터 공손찬의 포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헌데 어느 날 저 공손찬의 장인되는 태수가 비리죄목으로 파직당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저 당시가 워낙 나라꼴 개판이라 털어 먼지 안나는 태수가 몇이나 있겠냐만... 저 때는 매관매직도 흔했는데 이를테면 A : 저 이거 받으시고 저 벼슬 좀 ㅎㅎ 고위관리 : 오~ 1억전?!! 뭐 하고 싶은데? A : 영릉태수요! >_< 고위관리 : 콜! 조또마떼! (영릉태수 공석 시 발탁, 헌데 기존 태수 재직인 경우...) 고위관리 : 영릉태수 이놈개새끼, 2억전 세금 바쳐. 영릉태수 : 아.... (2억전 입금 시 유임 및 A에게는 다른 자리 물색! 미입금시....) 영릉태수 : 제가 2억전이 어디 있어요... 고위관리 : 넌 디졌어 (뭐가 되건 털어 난 먼지로 파직 또는 처벌, 그 자리에 A) 저런 경우가 적잖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당시 이런저런 지방의 한 자리를 했던 이들은 위로 올려 보낼 세금(명목의 뇌물)을 채우고자, 또 저런 썩은 정부 휘하에서 일하다보니 본인도 썩어 대체로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하는 일이 다반사. 아무튼, 공손찬의 장인인 태수 '유기'(유표아들 아님)가 당시 일남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본인 또한 자기를 알아보고 키워준 은혜를 갚고자 유배가는 장인을 따라가기로 하고 살아 돌아오진 못할거란 생각에 본인의 "셀프 장례식"을 올리고 유배길을 따라나서는데... 위의 저 유배지 일남, 바로 지금의 베트남이다... 지금 아무 세계지도나 펴고 당시의 유주라 불리던 중국의 베이징 동북부 아무곳이나 찍고 거기서 베트남까지의 거리를 찍어보면 ㅎㄷㄷ... 심지어 그 당시의 베트남은 '오지 Of The 오지'였으며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던 유배령이였거늘, 공손찬은 은혜와 의리로 그곳을 죽는 각오로 따랐던 것. 다행히 유배 가는 도중 뭔 일인지 또 사면이 되는 덕에 공손찬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면되지 못했다면 대단한 의리남아인 공손찬을 삼국지 게임에서 선택 못할 뻔.-_-;; 고향으로 돌아와 그전의 평판 덕에 다시 벼슬길에 오른 공손찬은 그때부터 포텐이 만개하며 당시 유주 인근의 소수민족들 중 가장 세력 크던 "오환족"의 학살자로 이름 얻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오환족들의 분노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이 실로 잔인했는데, 공손찬은 단순히 '접경지역의 이민족을 축출한다' 이상의.. 몹시 뒤틀린 인종관을 갖고 오환족은 모조리 박멸하여 그 씨를 말려야 한다는 한족중심의 인종차별론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오환족의 투항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으며, 애어른이나 남녀노소없이 오환은 물론, 그 2세나 3세의 혼혈에게조차 가차 없었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반 후한 백성들의 원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오환 및 그 일대 소수민족에 대한 홀로코스트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한족 우월주의가 당연시되던 여타 한족의 입장에서조차 이해를 얻기 힘들만큼 극심했다. 강족들을 토벌하기도 했으나, 그들과 결탁하기도 했던 동탁, 마등, 한수, 마초 등등이나 흑산적 및 오환족들과는 밀당을 통해 견제와 화친을 번갈던 원소나 조조, 무릉만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훗날의 유비 등 아무리 소수민족을 오랑캐 취급하며 천대했던 당시라도 무조건 다 싸잡아 죽인다기보다는 필요시에는 협력대상으로 봤던 경우도 많았거늘... 공손찬은 이들에 대해 철저한 배척 및 멸종을 도모했고 당연히 오환들도 공손찬에 대한 항복 역시 항전의 끝과 다름없는 죽음뿐이란 것을 알고는 최소한 싸우다 죽자는 결론을 택하며 후한 백성들 역시 오환족들의 침략 또는 병사로 차출되는 등의 피해가 나날이 늘어갔다. 심지어 공손찬은 소수민족들과의 전투에서는 앞장서서 무쌍난무를 찍었고 결국 그의 군사적 재능과 이 오환족 제노사이드가 결합하여 후한의 동북부지역은 어쨌건 가장 소수민족의 평탄화가 잘 된 지역이 된다... 종종 연의 내에 등장하던 공손찬의 "백마장사"라는 닉네임과 그에 따른 업적이 이 소수민족 학살로 얻어진 것이다. 결국 어찌보면 단순히 치안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가치관에 따른 삐뚤어진 행태의 결과. 이러던 어느 날, 유주자사(쉽게 말해 우리의 도지사 개념)로 한실종친이자 인망 높고 덕이 있기로 소문난 "유우"가 부임해오며 공손찬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는데... 유우는 군사일변도의 공손찬 플랜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을 표출하며 막대한 군비지출을 최소화하고 그 여유분 + 중앙 재정지원을 그간 숱한 전투에 황폐화된 농지개간 및 유랑민들의 정착지원 등의 복지와 지하자원 개발로 인한 산업다각화 및 재정확대, 오환과의 화친 및 교류와 교역의 증대를 통한 경제구조 변혁 등 다분야에 걸쳐 진짜 유주를 위한 각종 계획들을 내세워 추진했는데.. 공손찬은 위에 언급한 자신의 뒤틀린 인종관 + 그런 위기감 조성을 통한 군비확장 및 국방비 사유로 자신의 세력과 야망을 키우던 터에 유우의 저런 정책들은 일절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우와 공손찬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공손찬이라면 치를 떨던 오환들도 유우측으로 투항 및 교섭을 시도했다. 이미 드높던 덕망이 이 때 더 높아지며 백성들의 칭송이 줄 이어, 후에 반동탁 전선 측의 맹주인 원소가 그를 새 천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런 원소가 주도하던 '반동탁 연합에도 불참'한다. 하여간 이때부터 유우와 공손찬은 거의 각자노선을 걸으며 갈라선다. 이후 공손찬은 잠시 오환족 박멸을 미뤄두고 하북을 휘젓기 시작하는데, 삼국지연의에는 묘사가 안되나 공손찬의 용병술, 군지휘능력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이들 중 가히 TOP10에 들만한 수준이다. 일단 먼저 말한 오환족 박멸 역시 마찬가지로, 원소나 조조같은 강자들이 오환이나 선비족, 흉노같은 북방 소수민족들을 괜히 회유하고 화친하려 든 게 아니다. 그만큼 버거웠던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허나 공손찬은 이런 이들을 거의 지워버리다시피 했으며, 191년에는 비록 훈련없는 오합지졸이라고는 하나 무려 30만(삼국지 특유의 뻥이 아닌 역사기록에 의함)의 황건적 잔당이... 현 대한국군의 절반 가량의 저 대병력이 유주에 침공하자, 겨우 고작 2만의 병력만으로 저들을 궤멸에 가깝게 타격한다. 솔직히 저 열 다섯 배의 전력차는 진짜 황건적이 모두 맨손이였어도 버거울 지경이거늘.. 공손찬은 해냈다. 심지어 유우와의 대립이 극에 달에 결국 공손찬의 군사행동에 수시로 겐세이 놓던 유우와 공손찬은 다이를 붙게 되며 이때도 무려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고작 겨우 "100명"만 선발해 지휘부까지 뛰쳐 들어가 와해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렇듯 당시의 공손찬은 원소가 제대로 득세 전까지는 당시 전 중국을 통틀어도 맞상대로 당해낼 재간이 없던 최강의 세력이였다. 공손찬군은 병력 수는 물론, 각종 장비와 물자도 상당히 최신이였으며 유독 기병대에 집착을 했던 공손찬의 고집 때문에 전 중국에서 가장 많고 잘 훈련된 기마군단을 거느리고 있기도 했다. 비록 우리가 알만한 네임드 장수나 모사는 없었으나 공손찬은 오로지 자신의 무력과 지휘력 및 전술능력으로 커버업 하고도 남았으며 기마군단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평야지역이 넓던 유주와 요동 일대의 정복자가 되어 심지어 당시의 원소조차 공손찬의 이름을 들으면 쫄지 않을 수가 없던 상황.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갖고 서출의 그가 오로지 맨주먹으로 하북을 주름잡으며 소수민족과 한족 통틀어 무적으로 이름을 날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서서히 그에게는 그림자가 들고 있었으니...... 1. 과격함. 그의 정복 및 전투방식은 심히 거칠고 잔인했다. 소수민족들 상대로는 항복 or 항전 여부 무관하게 모조리 죽였으며 사로 잡힌 이들은 곱게 죽이지도 않고 온갖 모질고 잔인한 방법을 통해 죽였으며, 그렇다고 관할지내의 백성들에게 선심을 베푼 것도 아니다. 공손찬의 병사들은 유주일대의 그 어떤 도적떼보다 약탈과 겁탈이 잦다고 악명이 떨쳐져 있었다. 2. 몰인정. 그는 부하들에게도, 병사들에게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도, 다른 군주들에게도, 당연히 적세력에게도... 오직 자기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성취에 소모되는 도구 또는 그에 방해되는 장애물로만 여겼다. 응당 그런 사람냄새 나지 않는 그에게 인재가 몰릴 리 없고 있는 인재조차 떠나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공손찬은 그 부덕함으로 조운, 전예 및 유비 등의 특급인재들을 얻고도 놓친다. 그가 성공가도를 달릴 때야 그렇다셈쳐도 그가 위기를 맞자, 그의 휘하세력들은 이탈에 가속이 붙어 더욱 비참한 몰락을 부채질 하는 계기가 된다. 3. 고집. 그는 말 했듯이 '서자'였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실력, 운으로 성공을 쟁취했는데, 동서고금 막론하고 이런 이들은 자신이 옳고 맞다 여기는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그도 모자라 남을 무시하는 경향도 강하고 이런 부류들이 대개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독단적인 아집부리기다. 공손찬 역시 이를 극복하지 못한체, 오로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고집대로만 처리했다. 역시 이런 이들 아래로는 자신의 뜻과 재주를 펼칠 수 없기에 인재가 모이거나 성장할 수 없다... 4. 별종. 공손찬은 각종 다양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였음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물론, 삼국지속 영웅들이 응당 평범한 이들이 아님은 맞으나, 공손찬은 좀 희한한 면이 많은 이였다. 유별나던 인종차별적 면모도 그렇거니와, 장인어른의 유배지를 따라가며 굳이 자신의 장례를 스스로 치른 점, 게다가 공손찬은 놀랍게도 참모나 책사에 점술인, 상인, 건축가 등등.. 일절 군사, 행정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을 단지 자신과 코드 맞고 복종하며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채용했다.... 저런 여러 큰 결점들 탓에... 그 놀랍고 빛나는 군사적 재능을 토대로 후한의 동북일대를 독차지 하고도 결국 당시로서 자신보다 모로 보나 뒤쳐지고 모자르던 원소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만다. 당시 원소는 객관적 전력으로는 공손찬에 댈 바가 아닌 걸 파악했기에 정면승부를 피하고 공손찬의 전력을 싸우지 않고 약화시키는 전법을 쓰는데, 예전 원소의 칼럼에서 말했듯 원소는 정치정략의 고수였는데 이를 십분 활용! 인심을 잃은 공손찬의 영지였던 유주일대를 비롯, 여기저기 사람을 보내 공손찬의 직간접적 세력권이던 요동, 기주 북부일대, 청주와 병주 등에 공손찬에 대한 네거티브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린다. 공손찬을 적대시하는 이들 및 세력들을 적극 포섭했으며, 공손찬에게서 전향해 오는 인재들은 더욱 크게 포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공손찬의 세력권에는 그간 공손찬의 폭정 탓에 더욱 그에 대한 비방과 괴담이 날개를 달고 퍼졌으며 공손찬을 따르던 적잖은 이들이 타세력으로 전향 및 하야하는 등 이탈자들이 줄을 이었다. 공손찬세력의 레임덕은 곧 군기강해이로도 이어져 군자금 및 관련 장비나 물자의 횡령도 횡행했으며 일부 장수들은 군마를 빼돌려 파는 일도 생겨났고 병사들도 더욱 백성들을 심히 약탈하게 되었으며 나날이 공손찬의 세력은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저물어가던 공손찬... 이런 와해작업이 무르익었다 판단한 원소군의 총공세에 공손찬세력은 언제 그리 강했냐는 듯 무너져 내렸으며, 그 강하다는 공손찬군의 기마군단 역시 이에 대한 자부심에 변화없던 전술 탓에.. 대기마군단용 요격전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원소군에 의해 박살나고 만다. 세가 기울자 공손찬은 수 많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노역에 동원해 지은 최강의 방어요새인 "역경"으로 피신.. 여기에서 짱 박힌 체, 히키코모리처럼 허송세월을 보낸다. 이 부분 또한 실로 안타까운게, 이 역경은 당시의 냉병기로만 무장된 재래전력으로는 사실상 수년 이상의 시간으로도 함락이 쉽지 않은 요새였고, 기세가 꺾여 그럴 뿐 적잖은 병력과 그 병력들이 수 년간 먹을 식량도 비축되어 있었으며 내부에 둔전이 가능할 정도의 농토도 있는 등. 거의 이 역경이란 요새는 당시의 건축토목술의 정점을 찍는 요새로 만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월마리아같은 거대장벽에 둘러쌓인 궁극의 방어요새였던 것. 아무튼 공손찬은 이 요새에 거북이처럼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았다. 원소군의 입장에서도 공손찬의 장기전은 반갑지 않았다. 어쨌건 자신의 본거지를 비우고 나온 원정이 길어지면 자신의 거점을 호시탐탐 노리던 조조나 흑산적들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병참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섣불리 퇴각하다 역경내에서 별 다른 손실없이 진치던 공손찬군이 쏟아져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기 때문. 그런 이유들로 심지어 원소는 오히려 공손찬에게 먼저 화친을 제의하기도 했으나, 싸울 생각도 없었으면서도 공손찬은 제 고집에 화친에는 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대치가 계속 된 와중... 안그래도 희한한 괴짜 공손찬은 정신이상에 가까운 기행을 보이는데, 역경루라는 역경내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서 지내던 공손찬은 그 누각에 두터운 철문을 달아 안에서 잠그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7세 이하의 아이만을 드나들게 하였으며 각종 서류와 공문서들과 식료품과 생필품도 이런 아이들이 셔틀을 맡았고 급한 보고사항은 밖에서 누각으로 소리치면 공손찬의 대답을 다시 누각내의 시종들이 소리쳐 대답하는 심히 박ㄹ혜스러운 행태를 보이기 시작.... 게다가 잠깐 밖으로 군사를 출격시켜 긴 대치에 루즈해있던 원소군을 기습하다 포위 당하자, 어서 구원병을 보내자는 부하들의 요청에, '저들을 구하면 모두 구원병을 믿고 열심히 싸우지 않을거다'라며 그들의 전멸을 방관한다... 이를 계기로 안그래도 저물어 가던 공손찬의 세력은 급속도로 와해되며 탈영병과 이탈자들이 늘어갔고 제 아무리 우주방어요새라도 농성병력이 없다면 함락은 시간문제.... 끝내 원소군이 방어를 뚫고 내부로 진입하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효웅 중의 하나던 공손찬은 가족들을 모두 죽인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원소는 조정에 보고를 올린다는 표면적 이유, 조조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내면적 이유로 공손찬의 참수된 머리를 보내는데, 당시의 조조와 조정 대신들 모두 공손찬의 패전을 믿지 못하다 그 잘려진 머리를 보고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훗날, 그런 공손찬을 무찌르고 그의 세력을 흡수하여 하북최강의 대세력으로 거듭난 원소가 훨씬 작고 약한 조조에 의해 몰락을 맞을 때 못지 않게 이 때의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했음은 전중국 최고의 이슈였다. 이렇듯,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도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집으로 가득차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불통의 인재는 어떤 끝을 보는지를 공손찬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무에 밝고 행정에 뛰어나며 바른 말이나 쓴소리 하는 전문가들을 배제한 체, 그저 자신과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들을 비선실세로 삼았던 점.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을 일방통보하며 고집과 불통으로 귀를 닫았던 점. 당시 비록 인구가 많진 않았어도 비교적 타지역에 비해 이른 개발덕에 꽤나 자리 잡히고 안정된 터전을 차지하고도 자신의 부덕으로 이를 황폐화시킨 점. 화친과 교류를 했더라면 충분히 윈윈하고 자신의 세를 더욱 키울 수 있던 상대를 오로지 적으로만 삼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대립을 했던 점. 자신의 병사들이 적들 틈에 죽어가고 있음에 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말같잖은 이유로 방관하여 모두 죽도록 방치한 점. 왜곡된 가치관 탓에 주변의 인심을 잃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그로 인해 적잖이 떠나간 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위기에 홀로 외부와 단절하여 틀어박혀 골든타임을 놓친 점. 수 많은 그의 문제점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누군가와 놀랄만치 닮았다. 이렇듯, 자신의 역량과 장점들이 충분히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만 했음에도 이들을 잘못쓰게 되면 그 끝은 비참한 말로뿐이라는 것도.... 누군가와 닮았던 안타까운 영웅 공손찬편을 마친다.
노숙 자경 (魯肅 子敬) A.D.172 ~ 217
이 칼럼을 시작하며 대략 스무 명 가량의 인물들을 다뤘지만 거의 매번 붙는 수식어가 바로 "연의의 피해자"라는 타이틀. 피해자가 있으면 반대로 수혜자도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의도치 않게 피해자들만 줄줄이 다루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 역시 비록 그 피해가 앞선 다른 이들에 비해 경미하기는 하나, 그래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인 인물. 바로 "노숙"이다. 적벽대전 앞두고 항복론자들이 대다수였던 오에서 가장 앞장서서 항전을 외쳤고, 유비세력과 오의 연합에 있어 일등공신에, 주유 사후 오의 군권을 총괄했던 그의 숨겨진 그리고 연의의 각색 전의 본모습에 대해 알아보자! 양주 임회군 동성현.. 오늘날 중국의 안후이성 딩위안 출신이며, 없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양주의 대호족 출신 금수저였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오냐자식이였으며 대대로 있는 집 아들내미라 마음의 여유가 넘쳐나다보니 재산을 들여 인근의 빈자들을 돕고 베풀며 뜻 통하는 명사들과 사교나 하며 근심없이 살던 양반이였다. 정사의 노숙전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이미지와 달리 체격이 제법 큰 편이였던 것으로 보이며, 난세에 걸맞는 스킬을 보유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려서부터 궁술, 마술, 검술 등을 익히고 가난하지만 힘 좀 쓰던 장정들을 어깨로 고용하여 적잖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주유와의 인연도 이때 맺었으며, 당시 이미 공직에 있던 주유가 군량을 좀 협찬 받으러 노숙을 찾아가자 아예 곳간을 들어내다시피 퍼줬고 이에 뻑간 주유와 비즈니스를 넘은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고...ㅎ 이래저래 재산과 명성을 다갖춘 노숙을 가장 먼저 리쿠르팅한 것은 역시 당시에 상당한 유력군주였던 "원술".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노숙이지만 원술의 하는 꼬라지를 보니 얘는 아니다 싶었고 당시는 무슨 사직서내고 마음대로 퇴사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였어서 원술의 스타일상, 그냥 그만둔다하면 뒤끝작렬이 예상되었던터라... 노숙은 일가친척 다 이끌고 짐을 싸서 '도망'을 친다. 그럼 그렇지, 빡친 원술은 애들을 풀어서 도망치는 노숙을 잡아오게 하였는데, 추격대와 마주친 노숙은 이들을 설득하는 한 편, 방패를 세워놓고 활로 이 방패를 꿰뚫는 슈퍼파월을 보여주며, 호락호락 잡혀가진 않겠다는 경고를 했고, 설득도 설득이지만 그 궁술을 보고 쫄아붙은 추격대는 그대로 되돌아 가버렸다. (벌써 이 대목부터 노숙이 문약한 선비가 아님이 드러남) 이러고 도망가서 의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과다협찬을 받고 베프를 먹은 '주유'였다. 이 때, 주유는 자신이 모시던 "손책"과 노숙의 미팅을 주선, 손책도 노숙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헤드헌팅을 하려던 때 노숙의 사실상 부모님에 진배없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 노숙은 할머니의 장례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와중에 노숙의 친구였던 "유엽"이 마침 인근에서 세력을 키우던 '정보'(여러분이 아는 그 정보 아님)가 인재를 구한다니까 같이 가보자는 청을 받고 가려는데 (그냥 별 생각없이 아무나 섬기고 보는 스타일인가....) 그 소식 듣고 찾아온 주유의 설득에 당시 손책이 막 죽고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어버버하고 있던 "손권"을 섬기게 된다. (아무나 섬기는거 맞는 듯...-_-;;) 이 면접(?)에서 손권에게 노숙은 "천하이분지계"라는 테마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여기에 감명받은 손권은 바로 노숙을 임용한 뒤 최측근에 두고 쓰게 된다. 당시 노숙의 프레젠테이션의 거국적 스케일은 아직 미성년자요, 아버지를 여읜지 그리 오래지 않아, 사실상 아버지 역할하던 형까지 잃고 난 후 자기 혼자 어떻게 세력을 굴려야할지 가늠을 못 잡던 손권에게는 실로 파격적이였으며, 심지어 훗날 천하의 남쪽을 평정 후 천자의 자리까지 나가시라는 노숙의 우쭈쭈가 가미되어 손권은 기분이 째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손권의 평생 겐세이맨이였던 "장소"는 노숙이 아직 손권을 곁에서 바로 보필하기엔 젊어서 경험도 적고 태도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노숙의 임용을 반대했는데 그럼 그렇지, 손권은 장소의 말을 그냥 씹고 노숙을 중용했다. 보통 한 세력의 우두머리를 섬기기 전에는 그 휘하의 실세들과도 접견하는 시간을 갖는데, 손권의 당시 오른팔인 주유와 왼팔인 장소를 조우하던 자리에서 주유와는 그닥 코드가 안맞던 장소였던지라 주유가 왠 젊은 놈 하나 데려와서 주군 측근에 바로 꽂을라치니 장소가 노숙에게 시비를 좀 걸었나본데, 노숙 역시 손권 다음 No.2인 주유가 하도 설득을 해서 온건데, 왠 꼰대가 태클을 거니 그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던 모양...ㅋㅋ 이때부터 장소와 노숙은 서로를 태클거는 상호태클지간으로 둘의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노숙이 오에서 펼친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친유비정책". 당시만 해도 유비는 자체 세력은 별 볼일 없이 유표에게 의지하다 유표가 죽고, 유표의 뒤를 이은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선언하여 형주의 반조조파였던 유표의 장남 유기와 결탁한 상태였는데.... 노숙은 비록 유비세력이 당장은 부실하지만 그 강대한 원소도 조조에게 작살나고 중원의 큰 세력이던 형주의 유씨집안도 조조에게 꿇은 상황에서, 천자를 등에 엎고 승상이라는 위엄을 지녔던 조조를 도리여 역적으로 몰며 대항하는 유일한 세력이며, 당시 천자인 헌제가 직접 족보를 뒤적여 한실의 종친임을 인정 및 좌장군이라는 결코 낮지 않는 공식직함도 파준 "명분"에 주목했다. 그런 유비와 손을 잡으면 유비가 가진 포텐과 명분을 빌려 조조와도 맞서고, 조조와 맞서는 것은 후한조정과의 맞다이를 의미하여 사실상 역적이 되지만, 유비가 지닌 명분 덕에 오히려 역적을 도모하는 정의파로 이미지 세탁이 되기 때문. 사실 유비의 이 메리트는 상당해서, 비록 한실종친이라고는 해도 서민출신에 세력도 별 거 없던 유비가 공손찬, 원소, 유표, 조조 등의 당시 내로라하던 강자들의 환영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저 중 공손찬은 그런 유비가 지닌 명분보다 유비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유비를 서포트 해주긴 했지만 당시같은 난세에 인격이 꽝이던 공손찬이 단지 그저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비를 도왔을리는 없었기에... 당시 오 내부에서 이런 유비의 전략적 가치를 그리 크게 평가하는 이는 사실상 전무했다. 어쨌건 유비의 군세 자체는 당장 오에 있어 큰 전술적 가치가 없을만큼 대단치 못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건 유비의 군사력만을 놓고 보는 한정적인 '전술적' 시야에서 그런 것이고, 그 외나 그 이후의 여러모로 넓고 멀리 바라보는 "전략적" 시야에서는 유비가 지닌 가치와 그 활용도가 대단했는데, 오에서는 이런 유비의 전략적인 요소를 뚫어보는 정치적 대국안을 지닌 이가 없었다는 뜻. 노숙은 손권에게 자신과 손권이 봐야 하고 가야 하는 길은 당장의 강동수성이 아닌, 장강 이남의 세력을 규합하여 강북을 평정한 조조와 대치하며 나아가 제위에 오르는 길임을 인지시켰고 그 시작점에서 시작하는 사업이 바로 친유비정책이였던 것. 노숙은 진정으로 손권을 위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자였고 유비에 대한 부분도 오로지 자기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가 여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 전혀 절대 유비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였고.. 이는 내 예전회사의 김이사에게 사람들이 들러붙어 온갖 설탕발림을 쳐바르는 이유가 회식 때마다 누구도 말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와서 술빨, 안주빨 다 극대화 시키고 노래방 가자고 진상 부려서 다음날 출근할 사람들 새벽 4시까지 집 못가게 해놓고는 이사씩이나 쳐되는게 법카로 1원 아니, 1전 한 번 긁는거 없이 시발새끼 담배도 심지어 애들꺼 달래서 피우는 그 새끼를 사랑해서가 아닌, 그 새끼가 인사고과 평점을 메기는 나쁜놈의 새끼라 어쩔 수 없음과 같다. 노숙이 이러한 친유비정책을 진행하며 가장 주안점으로 삼은 것은 손권세력과 유비세력을 서로 상호의존관계로 만들어 이와 잇몸이 되게끔 유비의 세력을 어느 정도 성장시키는 것이였는데, 이러한 투자를 위해 노숙은 철저하고 꼼꼼히 유비를 패트롤 하기 시작 했으며, 유표의 사망 당시 조문을 구실로 유비를 첫 대면한 것을 시작으로 심지어 유비가 조조에게 작살나서 허겁지겁 쫓기는 상황의 장판파까지 가서 유비를 살피며 손권과의 동맹을 제시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이런 노숙의 모든 선견지명과 노력이 다 짤리고 그냥 제갈량이 손권 단물 빼먹으려 뭣도 없는 주제에 허세로 혼자 유-손 동맹을 결성시키는 듯 나오지만 사실은 이렇듯 노숙의 선노력에, 이를 합당하다 여긴 양측의 초천재인 제갈량과 주유의 납득. 그리고 이 재사 셋이 논리를 모아 손권을 설득한 결과. 결국 이 동맹의 시너지는 둘을 합친 것보다도 최소 5배 가까이 더 많고 경험많은 대군단을 거느린 조조군세를 불싸르게 되며 사실상 조조는 이날 이후로 장강 이남을 포기하고 유종의 항복으로 얻은 형주의 장강 이남도 잃게 된다. 이후 적벽대승의 지분으로 유비는 형주의 장사, 영릉, 무릉, 계양 및 남군의 공안까지 다스리는데 손권의 허가를 얻어내는데 여기서도 손권을 강하게 설득한 것이 노숙. 삼국지연의 속 노숙은 제갈량에게 놀아나고, 주유에겐 갈굼 당하며, 손권의 눈치를 보는 뭔가 강동의 빵셔틀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열라 기 쎈 주유, 손권에게 당장은 좀 손해여도 훗날을 위한 투자임을 인지시켜 유비에 대한 지원을 설득하고 또 이런 유비에 대한 서포트를 발판으로 손권을 황제로 만들려는 거국적 스케일의 정치가였던 것. 주유 사후, 주유의 간언 및 손권의 의지로 노숙은 오의 군권전체를 통솔하며 실질적인 오의 서열 2위가 되고 이 때 각 군영들을 시찰하며, 평소 글도 모르는 잡나부랭이 취급하며 무시하던 "여몽"이 니미 도리여 자기도 못 보는 부분까지 캐치해가며 자기를 가르치려들자, 그 유명한 오하아몽 & 괄목상대 사자성어가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여몽편에서 다루기로.... 하여간 이때껏, 스스로 문무겸전이여서 장소처럼 매가리도 없는게 쥐뿔 글 좀 읽었다고 앵기는 것들, 이전 여몽처럼 무슨 대가리도 근육일 것 같은 힘만 쎈 무식종자들을 모두 무시하던 노숙이였으나 이 일을 계기로 여몽과 급친해진다. 이 와중에..... 노숙의 작품이던 유-손동맹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하니 이는 바로 "유비의 익주정벌"... 일전에 주유와 감녕의 주도로 유장은 좆밥이고 형주도 비록 유비에게 임대주긴 했어도 실상 우리땅이니 이제 천하이분지계의 마지막 퍼즐은 익주를 먹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당시 손권은 익주와 맞닿은 형주의 유비에게 이를 이야기하자 당시 유비는 유장이 자신과 종친이고... 그 땅은 오에서 멀며.. 험한 산악지대에... 들어가는 길목도 좁아 대군과 물자의 수송이 어렵고... 예로부터 장거리원정이 성공한 예가 드물고... 니들 거기 갔을 때 조조의 빈집털이는 어쩔 것이며.... 등등등등등등의 이유로 손권의 익주행을 반대했는데 당근 이는 제갈량과 유비 역시 자신들의 천하삼분지계의 마지막 퍼즐을 익주로 정해서였다. 아무튼 그때는 유비의 반대도 있고 하필 주동자인 주유도 죽어서 흐지부지 되었건만 그때 그렇게 거품물고 반대하던 그 유비가 익주를 따먹었다니까 손권은 빡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렇듯 유비는 익주를 먹으면서 자기의 본진인 형주는 관우를 남겨 수비케 한다. 이 때부터 관우는 명줄을 재촉하는 한편, 본인 스스로의 정치역량이 얼마나 후달리며... 또 본인 스스로 한 방면의 주둔 수비사령관으로서 얼마나 부족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관우가 어땠는지는 훗날 관우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로...ㅎ 아무튼 당시 형주와 오의 접경지역에서는 빈번한 충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마다 노숙은 자기선에서 우호적으로 재량껏 처신했지만 그 도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참다 못해 관우에게 독대를 요청하고 관우도 이에 응해, 둘의 접견이 성사된다. 연의에서는 관우의 호기와 노숙의 호구의 대비로 표현하나, 실상은 절대 달랐...아니, 틀리다. 이 당시 관우와 노숙은 서로의 경호병력은 물리치고 단둘이 오로지 칼 한 자루씩만 차고서 만나 논쟁을 펼치는데, 물론 당시 장비와 함께 "만인지적" 칭호의 유이한 그레이트 관우는 맨몸이라한들 노숙이 칼 아닌 총을 차고 나갔어도 그런 노숙의 허리를 뒤로 접을만큼의 위력을 지닌 사나이긴 했으나 노숙 또한 풍체가 작지 않고 힘과 패기가 없는 이가 아니였기에 전혀 쪼는 기색없이 관우를 만나 언성을 높이며 따박따박 할 말을 한다. 숙 : 니네형 익주 먹었으니 형주 돌려줘. 우 : 뭔소리냐... 숙 : 땅없어서 가여워 빌려준거잖아. 돌려줘. 우 : 우리형이 가엽다니!!! 숙 : 조조한테 작살나 쫓겨온거 우리가 땅 빌려준거임. 그런데 익주도 생겼으니 꽁으로 빌리던 형주 줘. 우 : 우리 없었으면 니들도 못 먹을 땅이였어. 숙 : 하아.. 주유가 거의 다 차린거, 밥숟갈만 얹었잖아. 그럼 저번에 익주는 형제의 땅이라 우리보고 치면 안된다더니 남인 우린 못 하게 하고 형제라는 너희 형은 왜 그랬음? 그리고 형주 다 내놓을 거 없이 계약상 우리에게 빌린 지역만 달라는데 뭐 문제 있음?? 우 : 천하는 덕 있는 자의 땅이거든!!?! 숙 : 오호라? 그럼 지금 제일 넓은 땅 가진 조조는 니미, 니네형과 우리 마스터보다 덕이 더 많아 땅부자 되신거임? 그럼 그 전 너희형은 덕이 부족해서 땅이 없었다 갑자기 덕폭탄 맞음? 아니 그리고 관우 니는 세상에 땅크기로 사람덕을 측정하는 덕투력측정기였음!??! 와.. 세상이 관우를 의사랬는데 이거 뭐 그냥 복덕방 아저씨였네.. 대실망 우 :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숙 : 그게 아니면?? 우 : 날씨가 좋군! 숙 : 뭐래는거야 이 수염쟁이가... 땅내놔! 우 : 씨팔 형한테 말해!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결국.... 오는 익주의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강력 컴플레인을 걸고 유비측은 자신들이 실효지배 하고 있으나 영유권을 주장하는 오에 장사, 강하, 계양 세 군을 되돌려 주게 된다. 사실, 유비측 입장에서도 노숙의 저 논리에 마냥 데꿀멍되버릴만큼 명분 없는게 전혀 절대 아니였으나 늘 춘추를 지니고 다니신다는 관운장께서는 그저 폼으로 춘추좌씨전을 갖고 다니신건지, 매번 첫 페이지만 읽다 잠드셨는지는 모르나... 노숙의 어거지에 제대로된 대꾸 몇 마디 못 해보고 리타이어 되버리는게 바로 정사! 아무튼 다 떠나서 이번은 노숙편이니만큼 노숙이 주인공이니, 노숙입장에서 보자면 그 무력깡패인 관우와 독대하고도 일절 위축없이 자기주장을 내세워 관우를 그로기상태로 몰아간 그의 패기와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부잣집 금수저에 어려서부터 베풂을 좋아했다고는 하나,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는 검소했고 스스로에게 있어서 상당히 엄격했던 사람이였다. 다만, 남에게도 엄격했던거 같다... 기록을 보면 거의 활자중독에 가까운 사람이였는지, 시국이 안좋고 격무에 시달릴 때조차 책을 읽었다. 주량이 약한건 아니였던듯 보이나 필요해서가 아니면 좀처럼 입에 대지는 않았던거 같다. 본인이 인정할만하다 싶으면 스스로를 낮추며 공경하는 자세로 대했으나 그렇지 않다면 단호박이였다. 그리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나 당장 그러한 이미지들의 결실인 첨부던 일러스트들만 보더라도 그냥 문관필이지만, 일반 행정관련 내정을 본 적이 없는 군무만 봐왔던 인물로, 전장에도 수 차례 출전하며 야전경험도 적잖았던 사람이였다. 주유 사후에 대도독을 맡으며 오의 No.2였으나... 안타깝게도 장수하진 못 했다. 사망원인으로는 과로에 의한 급성사와 위암설이 있으나 둘 다 유력하진 않다. 언변이 워낙 좋았다고 하는데, 말을 길고 화려하게 하진 않았지만 할 말만 조리있게 딱딱 짚어 하는 스타일이였다. 오와 손권의 미래전략에 있어 오의 마지막 진보주의자였다. 주유와 노숙만이 진정한 오의 팽창주의자였기에 오의 물리적 확장을 추구하며 그와 관련된 전략들을 제시하며 준비했었으나 그 후의 여몽과 육손 등은 물론 훌륭한 인재들이긴 했어도 오세력의 유지와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을뿐 사실상 오의 대외진출에는 소극적이였다. 물론, 훗날 제갈각이 있긴 하나 주유 & 노숙과는 조금 다른 사례이기도 하고... 사실상 노숙의 사망과 함께 오는 천하이분지계나 노숙이 주장하던 개념의 천하패권은 물건너 간 셈이다. 물론, 천하이분은 아니여도 삼분은 했다지만 이는 위와 촉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오의 의지와는 별개로 형성된 것에, 손권이 제위에 오른 부분 역시 천하의 패권을 쥐고 기성국가의 권한을 이양받으며 제위에 오른 조비나 그 기성국가의 명맥을 이어 부흥을 꾀하고 기성국가를 패망시킨 국가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제위에 오른 유비의 그것에 비해... 딱히 세가 커진 것도, 명분도 없는 그냥 날치가 뛰니 짱뚱어도 뛰는 식의 미투제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한 친유비정책은 단기적으로야 오에 손실 또는 이익의 저하를 가져오긴 했으나 바로 그 전략덕에 오는 물론 유비세력 역시 초반의 그 엄청난 기세로 남하하는 조조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것. 노숙 사후와 맞물려, 유손동맹이 와해되고 관우의 사망이 겹치며 이는 또 이릉대전으로 옮아가는 와중에.... 훗날 제갈량의 고군분투로 촉오동맹이 재건되기까지 안그래도 둘이 합쳐 위에 못 미치는 촉과 오는 서로간의 싸움으로 적잖은 국력을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노숙은 어느 조직에나 있진 않지만, 어느 조직에나 필요한 "미래와 성장"을 내다보는 진취적인 인물이였다. 열 명, 백 명의 현상유지자들보다 이런 한 두 명의 진보주의자들이 있을 때 그 조직은 나중을 준비하고 또 그 나중을 준비하고자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되며 투자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투자의 불확실성은 어쩔 수 없는 리스크지만 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뛰어난 컨설턴트가 필요한데, 오와 손가에게 있어 바로 그 마지막 컨설턴트였던 노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