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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싫어하는 행위
다윗은 왕이 되고나서 한번은 자신의 궁전을 산책하다가 자기 궁전 앞에있는 집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봤음. 그 여인은 자신의 부하이자 군인중에서 하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그때가 목욕하던 순간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취향이여서 그런건지 ㅗㅜㅑ;;;;;; 해버린 다윗은 밧세바가 탐이나서 ntr을 시도하여 동침을 해버렸고. 아이가 생기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야가 자기 자식인줄 착각하게 하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해서 군인이였던 우리야를 불러 휴가라고 하면서 자기 마누라랑 동침을 하게 할려고했음.  그러나 뼛속까지 구닌이였던 우리야는 자기 전우들이 피땀흘리며 싸우는데 자기만 집에서 놀수는 없다고 거부. 이걸 들은 다윗은 결국에는 자신의 부하장군을 시켜서 전투의 최전선으로 우리야를 보내서 거의 강제로 전사하게 만들고 슬퍼하는 밧세바가 남편의 상을 다 치루자마자 자기 마누라로 삼았음.  "저런짓하지 말라고 십계명도 만들었는데 ㅅㅂ." 이걸 본 하나님은 당연히 극혐하여 이걸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가긴 그러므로 예언자를 보내서 왕을 꾸짓으니 그사람의 이름이 나단이였고 꾸짓은 내용은 이럼. "어이 다윗왕님." "예언자 어서오고." "그 이야기를 아십니까? 못된 부자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게 뭔데 하느님이 말한거라도 되냐." "이런 남자가 살았다고합니다. 예전에 어느 부자와 가난한이가 한동네에서 살았죠. 부자는 손님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면 예를 다해야하는데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있는 수많은 말과 양을 잡기 아까웠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가난한자의 하나뿐인 암양을 뺏어서 손님을 대접해줬고 가난한이는 유일한 재산을 잃고 나중에는 굶어 죽었다고합니다." "그거 참 간사하고 나쁜자로다. 자신의 넘치는 재물을  밖에다가 뿌리고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손님을 대접하는데 남의것을 빼앗다니! 내 나라에 그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벌을 받게 만들었을것이다." "그게 바로 너입니다." "뎃?" "너요 너 너 너 너 너 너이사람아 너 너 이 NTR충아 너!" 왕한테 눈깔에 힘 빡추고 혼낸게 상당히 인상적인데 다른 몆몆 그림은 저렇게까지는 안그렸을지라도 적어도 손가락질은 했음. 왕한테 이러는건 팔이 잘려도 용서못받을짓인데 나단은 바세바가 품고있는 다윗의 자식은 좋을일에 절대 못쓸것이라며 죽게될것이라고 저주를 부었고. 단도직입적으로다가 크게 혼이나서 혼이 빠진 다윗은 몆일내내 금식에 기도에 절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자식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고함. 하나님도 NTR충은 역시 극혐하신다.  (출처) 제우스는 NTR 겁나 해대던데 그리스 라인을 탔더라면...
2ch) 시모가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어렸을 때 죽은 시누이의 유품으로 복수했다.
이 사진이랑 본문은 전~~혀 상관없음 ㅇㅇ 걍 퍼옴 시모에게 한 통쾌한 복수. 시누이는 초등학생시절 병사. 시모는, 시누이가 살아있었다면 나와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이 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하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집안교육을 받은걸 까나?]. [내 딸이 였으면 분명히 훨씬 더 잘..]이라던가, [자기 취미생활 같은 거나 하고, 자기가 결혼한 며느리라는걸 알고는 있는 건가..] 같은 느낌으로 자잘한 느낌으로 싫은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다음에, 앗, 하는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고, 아마도 어렸을 적 죽은 아이와 나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시모가 남들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정말로 소중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 딸의 유품인 인형. 시누이가 입원하고 나서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는 인형. 시누이가 병사하고 나서 3년정도, 정신적으로 조금 병들어있던 시모가, 어디를 다니던 손에서 떼놓질 못했다는 인형이다. 아이가 가지고 놀았고, 그 후에는 시모가 항상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너덜너덜. 머리카락 부분은 완전히 떡이 졌고, 눈 부분은 얼마나 만져댔는지 닳고 닳아, 전체적으로 하얗게 떠있다. 몸이나 얼굴 부분은 손때로 인해 더럽고. 솔직히 말해서 표정도 어두워 보이는, 불길해 보이는 기분 나쁜 그런 인형.  시모도 인형이 그렇다는 것이 신경은 쓰이는 모양으로, 비누 같은 걸로 씻어보기도 하고 빗으로 빗어보기도 하고 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너덜너덜해 진 것은 그냥 그렇게 너덜너덜. 더럽고, 낡았고, 입히고 있는 옷도 너덜너덜. 공포영화에나 어울린다고, 그런 인형. 894: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34:53 0  하지만, 어쨌든 그 인형이 시모의 마음속에서는 죽은 시누이의 대신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으로, 그 너덜너덜한 인형을 손녀에게 내보이면서 [**란다. (죽은 시누이의 이름)친하게 지내주렴] 하고 가지고 오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 딸은 [무서워!]하면서 울 곤했다. 손녀를 울리고,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혼났지만, 항상 그러고 나면 시모는 나나 우리 딸에게 조금씩 조금씩 싫은 소리를 하곤 했다. 계속 참고는 있었지만, 이제 좀 적당히 하지. 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마침 시부모님이 3박4일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그 참에, 시모가 그렇게 아끼던 너덜너덜하고 더러운 그 인형으로 복수를 해줬다. 원래 형체도 못 알아보게끔. 아~ 통쾌해! 그 인형 너덜하고 더럽고 무서워서, 보기만 해도 정말 싫었었거든. 여행에서 돌아온 시모 절규..ㅋ 인형을 붙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다 아내가 한 거야] 라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울면서 [고마워.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라고 사과 하기 시작했다. 어떠냐! 당했지! ㅋㅋ 사실 나의 취미는 인형 만들기. 제법 오랫동안 한 취미라서,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해도, 꽤 잘한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총동원해서, 너덜너덜했던 인형을 재생시켜봤다 895: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35:22 0 머리카락은, 비슷한 색의 섬유를 사와서 심고, 손때 등으로 더러워진 부분은 긁어내고 재 도장. 하도 만져대서 하얗게 떠버린 곳은 파스텔 등으로 얕게 오버메이크. 마지막으론, 당시 앨범을 참고 삼아서, 시누이가 가장 좋아했던 옷을 인형사이즈로 만들어 입혀보았다. 나 자신이 워낙 인형을 좋아해서, 그 인형 자체가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조금 관리하면 훨씬 나아질 텐데. 하고. 아무튼 열심히 해본 보람이 있어서, 못 알아볼 정도로 깨끗해진 그 인형은, 어두웠던 표정마저 밝게 웃고 있는 표정으로 바뀐 듯 보였다. 시어머니는 정말로 기뻐하면서, 사실 계속 인형이 더러운 게 신경 쓰였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몰랐었다고 말했다.  인형이 더러워지면, 딸(시누이)에 대한 생각도 왠지 낡아지는 것 같았다고.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도, 손녀가 생겼을 때도 기쁘긴 했지만 모두가 점점 어렸을 때 죽어버린 내 딸(시누이)를 잊어가는 것 같아 슬펐던 다는 것도. 또, 나와 시누이는 미묘하게 닮은 구석도 있어서, 오히려 그것이 더 슬퍼, 그냥 못된 마음이 들어 싫은 소리를 하게 된 것. 사실은 괜한 심술이다 라는 것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과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일, 등을 울면서 말해주셨다.  나도, 시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던 그런 일들을 들으면서 결국 같이 울고 말았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고 나선, 내 취미생활에 싫은 소리도 하지 않게 되었고, 가끔 시댁으로 놀러 가면 굉장히 기뻐하는것 까지는 아니어도, 조용히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놓으신다던가, 아직은 좀 어색하긴 해도 나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게 되었다. 덤으로, 전에 시댁에 방문했을 때, 인형은 인형 의자에 앉아, 역시 인형사이즈의 곰 인형을 안고 있었다. 그리곤, 시어머니는 부끄러운 듯 조용히, [저기.. 이 인형 옷 직접 만든 것 맞니?..저기 그래서 ..나도 좀 만들어 보고 싶은데..]라고 물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인형 옷에 대한 책을 빌려드릴 예정이다. 뭐, 조금씩이지만 사이 좋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결과는 다 좋은 것 같긴 해도, 시모가 아꼈던 인형을 내 마음대로 건든 것이 나쁜 의미에서 복수 라면 복수 일까나. 897: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39:19 0 GJ![i] 뭔가 울고 말았다 나는 그런 쪽(오래된 인형이라던가, 혼이 깃든다 이런 거)에 약해서 읽으면서 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잘됐다, 잘됐어. 899: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40:42 0 > 너덜너덜하고 더러운 그 인형으로 복수를 해줬다. 원래 형체도 못 알아보게끔. 이라고 했을 땐, 우와.. 이건 좀 너무한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반전이 있었군. 。・゚・(ノ∀`)・゚・。 아~주 잘했어~ 901: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41:32 0 >>893 GJ!! 착한 며느리네.・゚・(ノД`)・゚・。 시어머니도 기뻐해서 기쁘다. 904: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42:48 0 인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893같은 사람 따위、이제부터 계속 좋은 시어머니랑 행복 해져버려라! 905: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43:01 O ( ;∀;)좋은 이야기였다. 910: 名無しさん@HOME 2008/05/01(木) 21:45:45 0 ㅠ.ㅠ 전반부에 계속 너덜너덜 하다던가 더럽다던가 기분 나쁘다 라고 하는걸 보고, 이거 이거 뒷 맛이 안 좋은 이야기로 끝나겠는데..라고 좀 조마조마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굿잡! 365: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06:03 0 전에 시모에게, 죽은 시누이의 인형으로 복수한 이야기를 썼던 사람입니다. 골든위크 연휴 때에 다시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시댁에 갔을 때, 왜인지 3만엔의 상품권이 들어있는 봉투를 시어머니에게 받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어머니의 날 선물을 드리려고 온 건데, 제가 어떻게 받겠어요]라고 말하자 그 상품권은 무려 시아버지께서 주시는 것 이라고. 시아버지는 손녀(우리 딸)이 그 인형을 무서워했을 때, 남편과 같이 시모를 혼내면서 [그런 지저분한 옛날인형 같은 거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씀하시곤 하셨고, 딱히 인형을 만진다거나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인형에 별 관심이 없으시구나 라고 생각 했었지만, 사실 항상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딸의 유품이니까, 소중하게 대해야지 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시모가 인형에 집착하고, 무엇보다도 점점 불길한 모습으로 낡아져 가는 인형을 어떻게 대해야 될지 곤란하셨다고 합니다. 병으로 죽어버린 딸이, 가장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물건을 [무섭다]라고 생각해버리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어쨌든 남자로서의 프라이드 같은 걸로 인해, 시모가 가끔 인형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면, 무시해버리곤 하셨다 합니다. 그것이 시모의 마음속에서는 시아버지에 대한 불신감으로 변하고, 결국 부부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다고. 저번에, 제가 깔끔하게 고친 인형을 보고, 무섭다고 느낀 감정이 조금 사라진 시아버지가, 인형가게에서 인형사이즈의 의자와 곰 인형을 사왔다고 합니다. 그 일로 인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사이도 조금씩이나마 다시 좋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뭔가, 시부모님 분위기가 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라고 느낀 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시아버지는 옛날부터 완고한 시골 남자 같은 느낌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인형을 고쳤을 때도 미동도 없으셨고, 저에게도 고맙다고 한마디 해주시지 않으셨었지만, 마음속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계셨구나..하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돈이나 이런 게 아니라 무언가를 사서 주고 싶어했지만, 무엇을 사야 좋아할지 전혀 감을 못 잡은 모양이야.]라고 시어머니가 말해주셔서, 벅찬 마음에 일단 그냥 상품권을 받기로 했습니다. 366: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06:29 0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조금 불가사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인형을 깨끗하게 고친고 시어머니에게 드린 뒤, 꿈을 꾸었습니다 단발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나와선, 무엇인가 저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마워요], [안심했어요]라는 등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곤, 하얀 원피스의 치마 끝을 양손으로 잡고는, 머리를 꾸벅 숙이며 공주님이 하는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잠에서 깬 저는, 죽은 시누이의 사진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죽은 시누이라고 금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감 0.     영적인 현상은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거겠지 ㅋ]라고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이번에, 별 생각 없이 그 꿈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시부모님이 그 자리에서 굳었습니다. 그러더니 시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고, 시어머니는 갑자기 울면서 쓰러지셨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죽은 시누이는 그때, 초등학교2학년. 인형으로 특히 공주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거나 감사를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스커트의 양쪽 끝을 잡고, 머리를 살짝 숙이는 공주님 인사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그 아이는 계속 걱정해주고 있었던 거구나..]라며 눈물 맺힌 눈으로 말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아무리 영감이 제로인 저로서도, 세상에는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367: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07:01 0 다시 시어머니 이야기 입니다만, 크게는 아니어도 작은 일로 계속 싫은 소리를 한다던가, 솔직히 좋아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이 그것이 변한 것이 약2년전의 이야기 입니다. 제가 몸 상태가 좀 안 좋았을 때, 뭐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시댁으로 갔을 때 시어머니가 눈치를 챘습니다. [얼굴 색이 안 좋은데..병원 가봤니?] [아니요. 조금 안 좋기는 한데 바쁘기도 하고 해서요..]라고 말하자마자 [안돼! 아무리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걸로 목숨이 위험 할 수 도 있는 거야! 지금이라도 일단 병원에 가렴!] 라고 말씀하셔서 병원에 가보자, 빙고. 병명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수술과 입원이 필요한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저의 얼굴색과 손발이 조금 부어있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 라고 생각하신 듯 합니다. 항상 트집을 잡아대며 싫은 소리를 하시곤 해서, 나를 싫어하시는 가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입원해 있을 때 손녀(우리 딸)을 돌봐주신다거나, 집안 일을 해주시고, 제 병수발마저 최선을 다해서 해주시기도 하고, 의사에게도 [우리 며느리를, 정말, 정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고개 숙여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나를 맘속 깊은 곳에서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고 나서는, 다시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무엇인가 계기가 있으면, 친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이번 복수를 계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장문, 실례했습니다. 369: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16:07 0 눈에서 눈물이. 분명, 지금 남편하고 만난 것도 무언가의 인연일지도. 잘됐네 잘됐어. 같은 느낌. 정말 좋은 이야기였다. 모두 행복하게 지내길. 370: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19:41 O 뭔가 마음이 따뜻해진 느낌. 그쪽 덕분에 시부모님 모두 구해진 거랑 같은 거네. 항상 모두 사이 좋게 지내길 빌게. 373: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30:38 0 >>366 조금 울었다. 아무튼 근데 이 글 오컬트판[ii]에 복사해서 옮겨도 될까? 377: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16:46:19 0 읽으면서 뭔가 정화된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글 써줘서 감사합니다. 여 튼, 결혼하고 몇 년째에 일어난 일이야? 425: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23:06:31 0 먼저, 오컬트적인 내용이 되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저 자신은, 영감 같은 건 전혀 없기도 하고, 사실 믿지 않는 쪽이긴 합니다만. 시부모님이 저의 꿈 이야기에 놀라시기도 하시고, 또 그렇게 기뻐하셨기 때문에, 안 적기도 뭐해, 그냥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적어보았습니다. >>373 오컬트 판 말씀 말입니다만 결국 영이나 유령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꿈인데다가, 제 자신은 그냥 조금 희한한 일이 있었네.. 정도라서 오컬트판에 잘 어울리나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음대로 하셔도 되요. >>377  결혼하고 6년째에 일어난 일입니다. 2년전까지는 시어머니 하고는 잘 안 맞는구나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약 4년정도는 데면데면한 관계였었습니다. 그리고, 상품권으로는, 조금 더 보태서 새로운 재봉틀을 사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던 재봉틀이 고장이 나버려서, 새로운 걸 장만해서 나의 인형과 시어머니의 인형의 옷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누이의 옛 앨범에는, 지금 봐도 귀여운 디자인의 옷이 많아서, 창작욕구를 자극 하곤 합니다. 새로운 재봉틀이 도착하면 열심히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인형과, 시어머니의 인형, 그리고 우리 딸에게 커플룩?페어룩? 을 만들어 입히고 싶은 게 지금 가지고 있는 목표입니다. 429: 名無しさん@HOME 2008/05/06(火) 23:38:48 0 얼마나 또 시모를 울리려는거야 ㅋㅋ 431: 名無しさん@HOME 2008/05/07(水) 00:23:20 0 이걸 기회로 시어머니도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되면 좋겠네. 재봉 같은 섬세한 손기술을 취미로 하면 치매방지에도 도움이 되고, 둘이 공통의 취미를 가지게 되면 훨씬 더 즐거워 질 테니깐. 432: 名無しさん@HOME 2008/05/07(水) 01:06:47 O >>425 좋은 목표다. 힘내! 모야 이거 좀 눈물나네 초반에 형체도 못 알아보게 복수했다고 하길래 어; 이건 좀 에반데;; 너무하네;;;; 라고 생각했다가 밑에 보고 울컥함;; 며느리 잘 뒀네 ㅇㅇ 성격 개쩌는듯 ㅠ 근데 인형 이미지 없어서 좀 아쉽다 궁금함
900년 전 송나라의 거리를 함께 걸어요 ! ( 초스압 )
송나라 북송 시절 장택단이라는 사람이 송의 수도였던 개봉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작품. 아주 유명한 작품인데 그냥 봐도 긴 편인데, 세세하게 보면 당시 개봉의 풍경과 생활상을 너무나도 오밀조밀하게 잘 그려두었습니다. 그래서 고화질 짤로 확대해서 보면 참 재미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인데... 늘어놓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무언가 설법을 하는 도사를 모여서 보는 사람들 가마 모는 사람들과 낙타에 짐을 채워서 가는 사람들 아래서는 사람 한명이 옮기다가 실수로 떨어뜨리고 옆에서 그걸 흚겨 보는 장면. 강가에서 펼쳐지는 무대와 뒤쪽을 통해 '백스테이지' 에 물건을 전달하는 사람 가게에 앉아있는 여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남자 술집에 사람들 들어가고, 왼쪽 아래서는 근처에서 뭘 파는 사람이 다리 꼬고 앉아 있고, 술집에는 창이 보이는 2층 자리가 있고, 이 창가 쪽의 '베란다' 에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매화나무 같은걸 깔아두었습니다. 큼지막한 돌다리로 사람들 지나가고, 그 돌다리 좌우로 노점상들이 줄지어 늘어진 광경. 그리고 수로를 통해 물자를 보급하는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강가 근처에서 소를 타고, 염소와 함께 짐 위에 오리를 싣고 태평하게 가는 사람. 옆에서 키우면서 바로바로 고기도 잡습니다. 강이 보이는 전경 근처의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 턱을 괴고 기대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옆에서 뭘 들고가는 하얀속 옷 입은 사람은 음식 가져다주는 점소이 쯤 되는듯? 오른쪽엔 물가 쪽의 언저리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모습. 적당히 구경거리로 싸움박질 같은걸 하는걸 사람들이 구경하는 모습 여기는 그냥 진짜 길거리 싸움이 나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쪽에서는 높으신 분이 참가해서 군대를 사열시키고 무예 경연 같은걸 하고 있어서 다들 구경 나온 모습 여기서는 신발 장수에게 신발 사려고 한번 시착해보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빨래해서 걸어놓고 한 쪽에선 생활에 쓸 물을 길어갑니다. 길 가다 조정 관리들끼리 만나서 서로 잘 가시라고 인사하는 모습 한쪽에서는 낚시도 하는데 미리 넣어둔 그물을 걷는 모습도 보입니다. 느릿느릿하게 가는 마차 뒤쪽에 애 한명이 앉아 있자 소독차 따라가는 애들마냥 좋다고 따라오는 아이들 두 사람이 들어서 가는 인력거가 있는데 택시 정류장 느낌인지 일 없는 인력거가 나란히 있고 그걸 모는 듯한 사람들도 일이 없으니 앉아 있습니다. 아래쪽엔 수레 타고 가는 여자가 있고, 그 뒤에 기르는 멍멍이를 묶어서 계속 따라오게 하네요. 이 송나라 시대 개봉 거리의 모습에 대해서는 동경몽화록이라는 책이 있고, 여기에 이 청명상하도가 있어서 정말 그림처럼 디테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후대에서 옛 시대 의복이라던지 생활상을 재현해서 그릴때 엄청난 참고를 했고... 가끔 심심할떄는 이거 고화질로 해놓고 확대해서 하나하나씩 보기만 해도 재미나더군요. 출처ㅣ에펨코리아
바르셀로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는 인물
안토니 가우디 (1852~1926)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현재까지도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리고 있는 인물 바르셀로나의 상징 바르셀로나를 가는 것은 가우디를 여행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높은 인물 가우디가 만든 것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를 넘어 전세계 성당을 대표하는 건축물 1883년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만들고 있음 가우디 100주기를 맞이하는 2026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엘 공원 진짜 가우디를 알고 싶으면 가장 추천하는 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곳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까사 밀라 바르셀로나 신도시 계획 당시 세워진 5층 건물 구불구불한 외관이 가장 큰 특징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까사 바트요 바다를 형상화한 작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까사 비센스 가우디가 설계한 최초의 집 바르셀로나의 현대 건축물의 첫 시작이라고 평가받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콜로니아 구엘 성당 노동자 주거단지를 짓는 것이 목표였는데 후에 바뀐 곳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엘 궁전 가우디가 동반자였던 구엘을 위해 지은 첫 건물 지붕에는 12개의 굴뚝이 있는데 각자 모양이 다르고, 가우디의 트레이드 마크인 채색된 세라믹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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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 온돌로 난방을 하는 국가 였음. 2. 온돌 난방은 마른 나무인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해서 나무 소비가 엄청난 난방방식 이었음. 3. 한반도 기후도 나무가 크는데 장애가 됨 4. 한반도는 가을부터 봄까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서, 수시로 일어나는 산불에 산이 홀라당 타버리는 일이 계속 생김 5. 한국의 난방 방식은 변함이 없어서 해방 이후에도 지리산과 개마고원같이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에 제대로된 숲이 사라져 갔음 6. 6.25전쟁이 터지자 그나마 남아있는 산림도 파괴되어버려 당시 유엔 보고서는 한국의 산림은 복구될 수 없다고 보고하였음 7. 당시 월드뱅크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나무를 심는 자금을 지원했었음. 8. 하지만, 개도국들은 나무를 심는 자금을 돈으로 주면 삥땅을 처먹어버리고, 돈 대신 묘목으로 주면 대충 심고 관리를 안해 나무가 죽지읺고 뿌리를 내리는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 상황이었음. 9. 625전쟁으로 산림이 폐허가 된 한국에도 월드뱅크의 지원자금이 나옴. 10. 처음에 한국도 삥땅 의혹을 받았음. 11. 월드뱅크의 식목 지원자금으로 묘목을 사는게 아니라 석탄과 시멘트 탄광을 개발한 것임 12. 월드뱅크가 삥땅이라고 ㅈㄹ했지만, 한국의 설명을 듣고는 납득을 해버림. 13. 장작으로 난방을 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 한국에 나무를 심기만 해서는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땔감이나 기둥이 된다.나무대신 땔감과 건출자재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공해 줘야 한다는 논리 였음. 14. 탄광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목재 가옥은 시멘트 양옥으로 대체되기 시작함. 15. 두번째 한 일은 화전민을 없애는 것이었음. 16. 그나마 나무들이 있는 깊은 숲속에는 화전민들이 일부러 불을 질러 나무를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지어 먹고살고 있었음. 17. 화전민들을 산 밑으로 이주시킴. 18. 화전민들에게도 있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자극하고, 먹고 살 일거리를 마련해 줌. 19. 어린 자식들까지 교육도 안시키고 화전민으로 키울거냐는 말이 화전민들에게 먹힘. 20. 화전민 정착촌을 근사한 양옥으로 지어주고, 그 곳에 학교를 만들어 줌. 21. 화전민 여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묘목 키우는 농장에 일군으로 고용했고, 남자는 벌을 치는 양봉을 할 수 있게 지원했으며, 산에 있고 싶으면 산을 지키는 산지기로 채용해주고 임금을 줌. 22. 도시에 살고싶다는 화전민이 있으면, 환경미화원으로 고용해서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주며 화전민을 줄여나감. 23. 당시 숲이 많은 강원도에만 3만명의 화전민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을 이렇게 정리함. 24. 이렇게 사전정비를 한 후 나무를 심기 시작함. 25. 공무원들을 활용했음. 26. 당시에도 공무원들은 해당 지역 출신들이 읍사무소, 면사무소를 장악하고 있어 묘목을 주고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민관이 한통속이 되어 제대로 정부 지시가 작동이 안되었음. 27. 교차 검사가 신의 한수 였음. 28. 경상도 공무원은 전라도로, 전라도 공무원은 경상도로 보내는등 타 지역으로 보내서 교차 검사를 하게 함. 29. 여기에 공무원들간에 경쟁을 붙임. 30. 묘목이 심어서 죽지않고 제대로 자라나는 활착율이 높은 지역의 공무원들에게는 특진과 성과급을 줬고, 낮은 지역의 공무원들은 성과평가를 까버림. 30. 자기가 속한 지자체가 성과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타지역 점수를 까내려야 함. 어설프게 술한잔 접대받고 타지역 점수를 잘 주면 자기 조직 평가가 망가지기때문에 공무원들이 눈에 불을 킴. 31. 이렇게 깐깐하게 검사를 하다보니, 활착율 100%라는 숫자가 나옴. 32. 월드뱅크는 활착율 100%라는 숫자를 믿지 않았음. 개도국들 평균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데, 묘목 하나도 안죽이고 100% 다 키운다는 활착율은 사기라고 평가함. 33. 그런데 활착율 100%는 사실이었음. 34. 묘목을 공급할때 이동 과정이나 심는 과정에서 묘목이 죽는것을 감안해서 110%를 보통 공급했음. 35. 곰무원들은 110%의 묘목을 받으면 100%를 일단 지정된 장소에 심고, 남은 10%를 다른 곳에 심어서 키움. 36. 타지역 공무원들이 활착율을 점검하러 오는 시기가 되면, 나무를 심은곳에 다시 가서 말라죽거나 비실비실하는 나무가 있으면 딴곳에 짱박아 심은 나무로 교체를 해버림. 37. 해픙과 돌산으로 나무가 자랄수 없는곳으로 간주받던 포항시까지 녹화사업이 완료될 정도였음. 38. 포항 영일구의 경우 흙도 없이 암반층만 노출된 상태로 풀도 자라기 힘든 지역임. 이 가파른 암반층에 허리에 줄을 묶고 인부들이 올라가서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퇴적암반이 풍화되게 한 뒤 거름을 섞어 나무를 심고 가물면 물을 길어다 주고 매년 비료를 주는 생고생 끝에 산림이 복원됨 39. 당시 아카시나무 같은 외래종을 심어서 욕을 먹었으나, 아까시나무는 수명이 짧은 나무라 산림환경이 조성된후 자연적으로 죽으며 떡갈나무등 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는 중임 40. 당시 녹화사업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산림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과정의 성격으로 당시의 척박한 토질환경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 41. 60년대에 메마른 토양에서 잘 자라는 큰 키나무는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 아카시나무 정도밖에 없었고, 아카시나무의 경우 뿌리혹박테리아의 질소고정으로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나무였음 42. 외래종을 심어 생태계 교란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외래종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말라죽고 자생 활엽수림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자연스럽게 산림 복원이 이뤄지게 됨 43. 최초 계획도 1차는 아카시나무등 생명력이 강한 픔종, 2차는 소나무등 중형목, 3차는 경제성이 좋은 대형종으로 10년씩 3차로 미리 게획된 초장기 프로젝트 였음 44. 하지만 정치적인 일로 인해 2차까지만 진행되었음 45. 여튼 198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 라고 보고서를 발간함 한줄요약. 1970년대까지 한국 산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었음. 100억 그루 이상 묘목을 심어 40년을 키워 울창한 한국 산이 됨. ㅊㅊ 더쿠 모야 대박신기함 ㅋㅋㅋ 교차검사 대박 머리 개 좋은듯 ㅇㅇ 역시 극한의 효율 민족 아니겠음?
한국의 미 (in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 특별 전시만 소개하기엔 상설전시 또한 훌륭하여 따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다방면으로 매력적인 곳이며, 역사를 좋아하거나 배우는 이들에겐 놀이터 그 자체일겁니다. 2층 :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의 전시 조선의 국왕과 궁궐, 왕실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입니다. 왕의 초상화부터 옥쇄, 대표 유물, 방의 내부 및 용포 등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글씨도 볼 수 있는데(어필각석), 힘 있고 정갈한 필체에 감탄하였습니다. 여러 왕의 글씨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궁중 물품'이기에 화려하고 섬세하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왕과 그 주변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층 : 대한제국실과 어차 순종 황제와 황후가 타던 자동차(어차)입니다. 뒤 모니터를 통해 어차의 움직임을 볼 수 있으며, 이 공간에서는 황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를 전후하여 전면에서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 있었으며, 일본 미국 유럽을 통해 전기 철도 우편 등의 신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왕실 가족의 사진 및 영상, 각종 가구 및 설명에 대해 보고 들으며 그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하 1층 : 조선 왕실의 예술과 의례 그리고 과학 문화의 역사 마지막 상설 전시를 보러 지하로 내려가는데 보인 이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고종 중건 경복궁(좌)과 일제 강점기의 경복궁(우) 그리고 육조거리 모습을 재현한 모형입니다. 앞에 있는 망원경으로 여기 저기 둘러보는데, 섬세함에 놀라고 그때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궁중 서화실에서는 요지연도, 신선도를 비롯하여 연잎 모양 큰 벼루, 궁궐의 장식 그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 제일 좋았던 건,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궁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아래 사계절을 눈에 담으니, 아 정말 좋더군요. 고궁박물관 만세입니다. 왕실 의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의례를 치를 때는 절차마다 연주되는 음악부터 기물, 음식, 복식에 이르기까지 각종 형식을 제도에 맞춰 행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이건 군영의 중앙을 나타내는 청룡기인데, 실제로보니 생각보다 더 커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군사 신호 체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 문화 공간에서 앙부일부 시뮬레이션과 큰 돌에 새겨진 천문도도 놀라웠지만, 제일 감탄했던 것은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입니다. 파수호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수호로 들어가 살대가 떠오르면 부력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해지고, 쇠구슬이 떨어지면서 동판 한쪽을 치면 동력이 전해져 나무로 된 인형 3구가 종과 북 징을 쳐서 시보장치를 움직인다. 나무인형 둘레에는 12신을 배치하여 1시부터 12시의 시각을 알리도록 하였다. 진짜 원리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국뽕에 취하는 거 아닙니까. 와! 저는 자격루를 보며 다시 한번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ps.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는 지식백과 내용에 주먹을 꽉 쥡니다. 애국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던 에드워드 카의 말에 따르면, 오랜만에 진중한 대화를 나눈 셈입니다. (미래적인, 애국심, 역사...) 빛을 완전히 잃기 전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문을 나설 때 무언가 달라져있음을 느끼실 겁니다. *국립고궁박물관(https://www.gogung.go.kr/) 홈페이지에서 VR을 통해 상설전시를 간접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게 버림받은 민족, 몽족(Hmong)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에는 울창한 정글과 더불어 해발 수백미터를 기본으로하는 산악지대가 펼쳐져있다. 험난한 산세가 쳔혜의 국경선이 되어 라오스와 베트남을 가로지른다. 이 지역 산 속에는 몽족(Hmong)이라고 하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중국 남부에 사는 묘족(苗)의 일파로, 인도차이나 반도 산악지대를 따라 퍼져있었다. 라오스와 베트남에서는 몽족들을 moi(야만인)라고 부르며 차별했다. 특히 베트남 왕조들은 이들의 토지를 빼았고 탄압했으며, 몽족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힘들게 살아갔다.  19세기 인도차이나를 식민지화한 프랑스는 이들을 '산악인'이라는 뜻의 몽타냐드(Montagnard)로 불렀다. 1960년, 남북으로 나뉜 베트남은 냉전의 대리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은 물론이고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공산화 될 위험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가본 적 조차 없는 북부 산악지대는 극소수의 특수부대만으로 커버하기엔 너무나도 광대했다.  이에 미국정부는 '현지세력을 포섭하여 이들을 이용해 게릴라전을 펼친다'는 전략을 택했다. (Hamlet Program) 당시도 몽족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모두에게서 과거 조상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차별 받으며 살고 있었다. 미군은 산악지역 곳곳에 미육군 특수전단(통칭, '그린베레') 대원들을 보냈다. 깊은 오지에 있는 몽족마을을 찾아간 그린베레 대원들이 한 일은 매우 평범했다. 이들은 간단한 진료와 진통제를 주는 의료봉사를 했다. 아이들에게는 C-레이션에 든 사탕과 과자를 주었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몽족들에게 미군들은 말 그대로 '자비로운 천사'와 다름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나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는 키 큰 백인들'에 대한 소문은 곧 다른 몽족 마을에도 퍼졌다. 그린베레 대원들은 곧 몽족들에게 형제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정부는 몽족 추장들에게 '자신들을 도와주면 합당한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몽족들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도 했다. 몽족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자신들을 처음으로 인간대접 해준 미국인들에게 고마워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미군들은 해발 940m에 있는 롱창(long Cheng)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CIA는 이곳을 게릴라전 전진기지로 썼다. 공항이 완성되자 몽족들을 훈련 시키기 위한 캠프도 세워졌다. 미군은 몽족들에게 학교, 병원, 은행 같은 복지 인프라를 제공했다. 미국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몽족은 당시 어린아이 노인을 포함한 남성의 약 60% 정도가 베트남전에 참가해 북 베트남 후방 지역의 교란과 베트콩의 보급로 차단, 미군 포로 구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이 한창일 때 몽족은 약 6만명 가량의 병력을 보유했었다. 몽족 민간인들은 부대에서 미군들의 부대에서 일을 하며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몽족에게 롱창은 미군이 만들어 준 낙원이었다. 그 밖에서 산악지대 곳곳에는 몽족들로 구성된 전술기지가 퍼져서 북베트남군과 싸우는 훌륭한 요새가 되어주었다. 그린베레들은 몽족이 가진 특성을 눈 여겨 보았다. 이들은 체구가 베트남인들보다 작았으나 고산지대에 살던 덕택에 지구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에게 차별받던 탓에 독기만 남은 악바리 성질이 있었다. 몽족들은 미군 특수부대의 훌륭한 보조병이 되어주었다. 싸우자 하는 의지도 확실했고, 그 어려운 훈련도 군말 없이 잘 따라왔다. 미군들은 몽족 부대를 남베트남군보다 훨씬 신뢰하며 믿을 수 있다고 여겼다. 미군들을 이들을 '야드(Yards)'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자신들을 차별하던 베트남인들에게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기자, 몽족들은 아주 원수진듯 맹렬하게 싸웠다. 심지어 포로로 잡은 베트콩 간부가 욕을 하자,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은 이런 몽족의 습성을 어느 정도 묵인 해주었다. 이는 남베트남 정규군과도 마찬가지라서, 서로 총을 쏘지만 않았을 뿐 툭하면 패싸움을 했다. 사이공의 남베트남 정부는 몽족의 자치권을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1972년,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수렁에서 발을 빼고 싶어했다. 그리고 파리 강화협정에 따라 미군은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항상 비행기로 붐비던 롱창 역시 버려졌다. 미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몽족의 짧은 전성기는 그렇게 끝났다. 1975년, 남베트남은 패망했고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결말 지어졌다. 그리고 미국의 개를 자처했던 몽족들은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됐다. 북베트남군은 라오스정부와 협력하여 산악지대로 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다. 몽족들은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숫자와 장비가 더 많은 북베트남을 이길 순 없었다.  유일하게 몽족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 것은 그들과 제일 가까이 지냈던 그린베레, SOG 같은 특수부대들이었다. 같이 싸웠던 전우들을 버리기 싫었던 그들은 미국방부에게 몽족들을 도와야한다고 주장했다. 남베트남이 패망한지 열흘이 지난 1975년 5월 11일, 미국이 보낸 최후의 수송기 편대가 롱창에 착륙했다. 미국정부는 몽족 고위인사와 장교 같은 소수의 인원만 망명을 허락했으나 인근에 사는 수많은 몽족 민간인들이 이 동앗줄을 붙잡기 위해 몰려왔다. 약 3천명 가량의 몽족이 비행기에 탈 수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남겨졌다. 북베트남에게 항복한 몽족들의 최후는 처절했다. 남성들은 총살 당했고 아이와 여성들은  재교육을 위해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만명의 몽족들이 북베트남의 박해를 피해 태국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태국정부는 몽족난민을 골치거리로 생각했고, 겨우 죽음을 피한 사람들도 난민캠프에서 절망적인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로도 수만명의 몽족난민이 미국, 프랑스, 유럽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도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았으며, 베트남계하고는 말조차 섞지 않았다. 베트남과 라오스의 정글에는 현재도 수천명의 몽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수십년간 베트남과 라오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정글을 떠돌며 현재까지도 비참하게 살고 있다.  인권단체들의 항의에도 베트남과 라오스 정부는 이들이 반군이라며 주기적으로 소탕을 하고 있다, 영화 '그랜토리노'에서 주인공 마을에 사는 아시아인들이 바로 이렇게 망명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몽족 난민들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속 커츠대령은 자신을 따르는 산악민족들을 규합하여 정글 속에 작은 왕국을 세웠다. 이 또한 몽족과 그린베레의 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