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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의 설레발 프레스터 존의 전설

한국은 신기하게 몽골한테 침략받아 거의 속국상태까지 놓인 적이 있음에도 몽골에 대한 시선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반면에 러시아와 페르시아 지역 사람들은 칭기즈 칸을 거의 히틀러 보듯이 합니다.

ㄴ 우리는 순수 피정복국이라기 보다는 나중에 부마국이 되었잖음. 그리고 나중에는 쿠릴타이의 황금씨족 회의에도 참석하는 왕족으로 대우받는, 그냥 몽골 형제국처럼 되어버려서 ㄷㄷ


재미! 유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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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너무 양아치가있어서 중국쪽은 덜까는듯 근데 원나라는 중국인가 몽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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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길드, 도제, 그리고 장인
참고 : 왜 길드가 형성되었는가부터 이해해야 왜 이런 행태가 나타났는지 납득할 수 있죠. 도시의 길드는 독점으로써 일종의 보증자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익명성이 증가되고 품질을 보증할 중앙집권정부가 사라진 상태에서,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얻기란 매우 힘들었고, 물건의 품질 또한 믿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길드는 자신이 독점권을 가진 품목에 대해 일정 품질 이상 만들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집행할 권리를 가졌습니다. 도시의 길드는 무너지기 직전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그 구성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제가 학대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히려 길드는 '품질 관리'를 이유로 자신이 독점하는 산업 전체에 일정 시간 이상 하루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못박고 그것을 집행했습니다. 근대화는 길드의 이런 전근대적 보호장치를 깨부수고 법률을 만들지 않아 문제가 생깁니다. 도시의 길드는 도시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세부적인 행정은 각 분야의 수많은 위원회가 집행하였으나 원로(Alderman)와 시장을 비롯한 조언가들은 그 전문가들인 길드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 도시 길드의 도제가 되는 것은 자유로운 '시민'계급이 되기 위해 그나마 열린 루트 중 하나였습니다. 도시의 길드는 수많은 자선사업을 주관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도시 공동체에 기여했습니다. 그 외에도 길드는 자원자를 모아 치안을 유지하는등의 역할을 하죠. 길드가 중세 말이 되면 문제가 많아지는것은 사실이지만 길드의 독점적 체제에는 공과 과가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오랜만에 유익한 (남의 나라) 역사 공부!
20세기 미국과 베트남의 첫 만남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1월 11일, 미육군 항공대 제51 전투비행단 26비행대대 소속  루돌프 쇼(Rudolph C. Shaw) 중위는 P-51B 머스탱(기체번호 43-25244)을 몰고 동료들과 함께 중국 난닝시의 일본군 시설을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 후 귀환중이었다. 쇼의 기체는 대공포에 피격된 탓인지 연료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알렸지만 결국 엔진이 꺼졌고, 정글속으로 추락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쇼가 실종됐다고 적혔다.(USAF MACR 10632) 낙하산 탈출에 성공한 쇼는 정글 한복판에 남겨졌다. 그는 지도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봤지만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중국 남부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L'Indochine française) 북부 사이라고 생각됐다. 인도차이나는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상태였고, 행정을 담당하던 비시 프랑스 식민정부도 연합군 포로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노이 병원의 프랑스인 의사가 잡혀온 연합군 파일럿들을 고문했다는 기록이 존재함.) 그러던 중에 정글을 헤집고 현지인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중 일부는 총을 들고 있었고 복장은 평범한 농민이었다 쇼는 등짝에 붙은 블러드 칫(blood chit)을 보여주며 자신이 연합군 파일럿이라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은 글씨를 읽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만 쇼를 정중하게 대우하며 어디론가 데려갔다. 현지인들은 쇼를 데리고 끝도 없이 이어진 산길을 며칠 동안 걸었다. 쇼는 손짓 발짓 다해가며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냐고 물었으나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을 걸었을 무렵, 쇼는 마침내 그들의 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빼빼 마르고 수수한 옷차림에 긴 수염을 가진 노인이었다. 노인은 쇼를 보자마자 유창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시오? 어디서 오셨소?' 일주일만에 듣는 모국어에 쇼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 노인을 꽉 끌어안았다. 마치 고향 집의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었다. 쇼는 이곳이 인도차이나 북부이고, 그를 구해준 이들이 베트민(Viet Minh)라는 무장단체라는 설명을 들었다. 노인은 자신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쇼는 노인에게 자신을 중국 남부에 있는 미군기지까지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노인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승낙했다. 쇼는 베트민들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넘어 미군이 주둔한 쿤밍 비행장까지 갈 수 있었다. 기지에 도착하여 귀환을 보고한 쇼는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노인은 미군 장교들을 만나 자신들이 공산주의 계열 무장단체이며, 연합군과 공조하여 베트남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허나 미군들은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듣더니 안색이 변하더니 노인과 베트민들을 본체만체 했다. 그리고 쇼의 수속을 순식간에 처리하고선 바로 다음 비행기에 태워 보내버렸다. 쇼는 노인에게 작별인사조차 못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미군은 노인과 베트민 대원들에게 '이제 볼 일 끝났으면 기지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인은 미국인들의 무례한 행동에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왔던 길을 돌아 터덜터덜 돌아갔다. 그들은 그저 미군들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어준 것 자체에 만족하는 것 같아보였다. 이후 수개월이 지나 1945년 중순, 미국은 전략 사무국(OSS) 소속 아르키메데스 패티(Archimedes Patti) 요원을 보내 베트민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들은 뒤늦게서야 베트민이 우호적 조직이라고 판단했고, 낙하산으로 무기와 무전기를 투하해주었다. 이후 베트민 대원들은 OSS의 게릴라전 교육을 받으며 현지에 추락한 연합군 파일럿을 구조하는 임무와 일본군 기지에 대한 소규모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한번은 노인이 풍토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선 미국에서 의약품을 공수해 보내주어 노인의 생명을 구했다. 두 단체의 협력은 몇개월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끊겼다.   루돌프 쇼 중위를 구해준 노인은 훗날 북베트남 민주공화국의 국부가 된 호치민(Ho Chi Minh)이었다. 호치민은 일본이 항복한 뒤 다시 돌아온 프랑스 식민정부를 상대로 무력투쟁을 이어갔다.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이었기 때문에 호치민과 베트민을 적으로 규정했다. 호치민은 여러방법을 통해 백악관에 "우린 당신들과 적인 아닌 친구가 되고 싶다" 친서를 보냈으나, 결국 전부 묵살 당했다고 한다. 호치민은 차선책으로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공에게 지원을 받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가 이끈 베트민은 훗날 북베트남 인민공화국의 전신이 됐다. OSS에게서 정글 게릴라전 전술을 배운 베트민 대원들은 훗날 1차 인도차이나전쟁, 그리고 더 나아가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 장교, 장군으로 활약했다. 미국은 이후 몇십년 동안 자신들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사실을 부정해야만 했다. 호치민과 베트민에게 구조된 루돌프 쇼는 이후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고향인 네바다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살았다. 그는 1944년 11월의 일을 절대 잊지 않았고 이때의 일을 일기로 남겼다. (출판은 안했다고 함.) 하지만 이후 반공정서와 베트남 전쟁으로 두 국가의 사이가 극악으로 치달아 그는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쿤밍으로 향하던 중 찍은 사진 1장, 호치민이 직접 서명한 빨간색 신분보장 카드와 그가 자신에게 준 편지 한장을 고이 간직했다. 이 물건들은 1995년 미국과 베트남의 국교가 재개 됐을 때 다시 세상에 공개됐다. 양측 정부는 이 일화를 들먹이며 우리들의 첫 만남은 매우 신사적이고 인류애가 넘쳤다고 주장했다. 2014년 이 서류들이 소더비 경매에 나오자, 베트남 외교부는 34375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이 서류들을 매입했다. 현재 이 서류들은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가 보관중이다. (출처) 영어를 잘해야 하는 거군
따닷하고 튼튼한 갑옷
보통 갑옷하면 이렇게 금속을 대량으로 쓴 반짝이는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금속 갑옷은 금속 가공 기술이 뒷받침해줘야 제대로 만들 수 있었고 가격도 비쌌으며, 강철을 대량으로 사용했기에 관리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금속 외에도 가죽이나 천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각자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는 천 갑옷, 그 중에서도 갬비슨을 araboza. 일단 천 갑옷의 역사가 꽤 길다 군대나 자원봉사로 제초 좀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금속제 도구로 풀을 내리쳐도 한번에 잘 잘리지 않고 오히려 날을 상하게 한다는걸 알고 있을거임 고대인들은 식물 섬유을 짜고 여러번 겹치는 방법으로 갑옷을 만들었는데 가벼우면서 어느정도 방호력을 가졌기에 그리스인들, 그리고 알렉산더가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이렇게 천을 여러겹 두르는것만으로는 방어력의 한계가 명백했고 가죽 가공 기술과 금속 기술이 발달하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 중세때 천 갑옷이 다시 재조명 받았는데 린넨을 여러겹 겹치고 솜과 양털, 옷조각을 넣어 부풀린 강화형 천갑옷이 등장했고 이 형태의 갑옷을 '갬비슨'이라고 불렀다 딱봐도 두툼한게 아주 깔깔이스럽다 갬비슨은 13세기정도에 전 유럽에 보급되었고 15세기에 정점을 찍었음 재배가 가능한 아마로 만들기 때문에 가죽이나 금속보다 훨씬 가격이 낮았고, 제대로 만든다면 비슷한 두께의 가죽보다 찌르는 힘에 더 잘 저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살 방호가 높았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재질만 인공섬유로 바꾸면 방탄복과 유사해지는 구조 덕분이라고 하더라 금속 갑옷처럼 동물의 지방을 바른다거나, 가죽 갑옷처럼 약품처리한 후 음지에서 말려야하는 등등 다른 갑옷의 유지보수가 번거로운 반면에 갬비슨은 햇볕이 좋은날, 잘 말리는 것으로도 쉽게 관리할 수 있었고 파손되더라도 현장수리가 가능했다 또 상대적으로 가볍고 움직임이 편했기에 누구나 쉽게 입고 싸울 수 있었는데 여성들도 갬비슨 갑옷을 어렵지않게 착용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갬비슨은 모든 계층에게 사랑받았는데 기사들은 사슬 갑옷 아래에 갬비슨을 입어서 방호력을 늘렸고, 금속이 살과 마찰을 일으켜 상처가 나거나 짓무르는걸 막았다 금속 갑옷을 구입할 여유가 없는 일반 보병들은 아예 갬비슨만 입고 전투에 나서기도 했는데 철제 투구에 갬비슨을 입은 병사들의 모습은 중세 시대에 보편적인 보병들의 모습이었다 대충 이런 모습. 신분이 높은 사람도 가볍게 훈련하거나, 사냥을 나가거나, 스포츠를 즐길때 갬비슨을 즐겨 입곤했는데 이 때문에 화려한 갬비슨도 종종 볼 수 있었다 15세기 중후반에는 갑옷인 갬비슨이 일상복으로 쓰이기도 할 정도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세 문화를 어느정도 반영한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 배너로드에서는 갬비슨 갑옷을 전투복과 일상복 둘 다 쓰게 해놓은 걸로 고증해놓았다) (영국의 대제독 에드워드 클린톤이 착용한 고급 갬비슨의 모습) 금속갑옷과 함께 사용해 서로를 보완하고 그 자체로도 갑옷으로 쓰인 갬비슨은 더 이상 방호가 힘든 총기가 발달하면서 18세기가 되면 전장에서 사라졌다 갬비슨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조끼형태로 상의를 보호하는 것과 코트형태로 하의까지 보호하는 것 두가지로 나뉜다 보통 조끼형태는 다른 갑옷과 함께 입은 모델로 기병이나 중보병이 애용했으며 코트 형태는 갬비슨 단일 방어구로 착용할때 쓰이는 물건이고 주로 보병들이 애용했음 중세를 상징한게 사슬, 판금 갑옷이라면 중세를 지배한건 갬비슨 갑옷이어서 그 시대를 다루는 많은 매체에서 등장하는데 위에 잠깐 언급한거처럼 마운트 앤 블레이드에서 갑옷&평상복으로 나오고 위처에서는 '강베송'이라는 불어 발음으로 나온다 그리고 중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분들도 갬비슨을 입고 있음 (출처) 강베송이 겜비슨이었군 진짜 쓸모없지만 알아두면 재밌는 옛날 이야기 ㅋㅋ
마틴 루터도 이기지 못한 존재
마르틴 루터 아마 성당이나 교회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들어봤거나 하다 못해 종교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사람임. 마르틴 루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법관-사제 과정을 거치고 신학자로 승승장구하다가 당시 교황청의 막장 상황을 보다 못해 종교개혁 28조를 쓰고 이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함. 이후 교황청의 막장 상태에 공감이 가던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기 시작하고 이 여파가 커지면서  지금의 구교 - 신교로 분리하게 됨. (그 외 더 복잡한 일이 있지만 대강 정리하면 이럼) 근데 마르틴 루터 역시 능력 자체가 어마어마하던 사람이었음. 하나 하나 나열 하자면 1. 말빨이 어마어마함 - 머리도 워낙 똑똑했고 아는 것도 엄청 많았음  이걸 기반으로 그 당시 하늘을 찌르던 교회의 권위를 말로 발라버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말빨이 좋았음. 당시 난다 긴다 하는 신학자들도 루터를 이기지 못했을 정도였음. 루터를 재판에 회부한 사제들도 '어 뭐지, 루터 쟤 말 들어보면 교회가 잘못한 것 같은데'라고 흔들렸을 정도임  2. 글빨도 짱좋았음 - 본인 스스로 '나는 글을 짜내지 않아도 됨. 그냥 생각나는데로 쓰니 되더라' 하면서  어마어마한 글빨을 보여줌. 루터가 활동하던 1523년에 900여권의 출판물이 발간됐는데 그 중에 346편이 루터가 쓴 것이었음. 지금처럼 독해력이 높지도 않고 출판 기술이 좋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도 한 명이 한 나라의 출판물의 3분의 1을 책임진다는게 말이 안됨. 그리고 루터 혼자서 평생 쓴 카톨릭 관련 저서가 당시 독일 내에 있는 모든 카톨릭 저서보다 무려 다섯배 많았음.  그냥 루터가 '글아, 써져라 호잇!' 했는데 그게 한 나라의 모든 저서의 다섯배가 넘는 결과를 만들어버린것 3. 예술 능력도 탁월했음 40살이 넘어서 음악에 꽂히더니 그냥 숨쉬면서 일년 동안 42곡의 찬송가를 작곡했음. 몇몇 곡은 아직도 불려지고 있음. 하지만 본인은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어서 '음, 심심해서 써봤는데 님들이 부르던 태우던 맘대로 하세요' 하고 신경 안씀 4. 언어학의 마스터 - 이 분야의 갑 오브 갑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있었다면 독일에는 마르틴 루터가 있다. 성경을 독일어로 전체 번역했을 뿐 만 아니라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에 아주 능통했음. (그 어려운 성경을 한 나라의 언어로 통째로 번역하는 건 상식적으로 보통 일이 아님)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 루터는 성서에 언급된 지방에 가서  그쪽 사람들과 직접 대화해서 자문을 얻었을 정도임. 그러면서 성경에 있는 언어들을 독일어 뜻에 맞는 단어로 하나 하나 바꾸고 이걸 통해 독일어 전체에 새로운 단어들이 탄생함. 5. 특히 말로 까는 건 엄청 잘했음 교회를 말빨로 발라버렸을 정도로 말이 쌨던 루터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통했음.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에게는 '님 생긴 걸 보아하니 아기 잘낳게 생겼네요.(존나 계집애 처럼 생겼네)' 후원자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는 '님은 늙은 돼지 방귀 소리 듣고 배우세요' 자기 추종자들에게는 '내 이야기 하지 말고 성경 좀 봐 병신들아' 자기 나라 사람인 독일인들에게는 '님들 먹고 마시는거 밖에 모르는 짐승으로 소문난거 아시죠?' 등등 별의별 인용구와 다양한 단어들을 인용해서 다채롭고 화려하게 까기로 유명했음. 오죽했으면 동료가 '루터가 하루라도 좀 닥쳤으면 좋겠다'라고 평했을 정도임 즉 마르틴 루터는 신학 + 논리학 + 웅변능력 + 카리스마 + 깡 + 언어학 + 예술학 + 법학 등등 정말 유례 없는 시대의 먼치킨이었음. 하지만 교황청에게 빅엿을 날리고 난다긴다하는 사제들을 혓바닥으로 씹어 버리고 왕이고 나발이고 다채롭게 까버리는 루터마저 결코 이기지 못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아내 카테리나임. 카테리나와의 만남도 조금 골때리는데... "지참금을 주기 싫어서, 혹은 양육하기 싫다는 이유로 억지로 수녀원에 맡겨져서 평생 갇혀 사는 것은 말이 안된다!!! 수녀들도 자유롭게 살면서 사랑을 누릴 자유가 있다!!!" (실제로 루터는 이러면서 많은 수녀들이 탈출하게 도와줌) "음, 님 말이 맞는 것 같음 나도 우리 부모가 키우기 싫다고 수녀원 보냈거든. 근데 문제가 생김." "?  뭔데요" "남자가 없음. 그니까 님이 책임져" "???????" (카타리나가 16살 연하.....) "그래서 나랑 결혼 할꺼야, 말꺼야? 대답은 예 or 예로 대답해" "예?" "ㅇㅋ 수락했다?" .....자발적으로 수녀원을 탈출한 카타리나는 마르틴 루터에게 가서 책임지고 자신과 결혼하라고 회유를 가장한 설득과 협박을 했고 거기에 넘어간(???) 루터는 카타리나랑 결혼함.  루터는 수도사처럼 그냥 혼자 살고 싶어했다고 함.... 그리고 결혼 직후  마르틴 루터가 개빡치는 일이 생김. "여보" "왜" "알브레히트 추기경이란 사람에게 혹시 돈 받았어?" "ㅇㅇ 그양반이 결혼 축의금이라면서 줬는데?" "미쳤냐!!!!! 그 양반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면죄부를 판 인간이잖아!!!!!" 알브레히트 추기경은 면죄부를 팔아서 교회의 타락과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숙적 of 숙적이었음. 그런 추기경이 돈을 줬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함정이나 견제의 목적으로 충분히 봐도 문제가 되는 일이었음....  "내가 알았겠냐?" "아 됐고,  빨리 그 돈 다시 보내!!!" "싫은데? 이미 돈 썻엉 ㅋ." "하..... 이게 연하라고 오냐오냐 봐줬더니.... 야, 내가 누군지 모르냐? 나 루터야. 교황이고 왕이고 다 까는 루터! 내가 여자라고 봐줄.......!!!" 그렇게 세기의 먼치킨은 아내와 첫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고 아내인 카테리나가 남편인 마르틴 루터를 개쳐발랐다고 한다. 부부싸움에서 이긴 카타리나는 축의금을 그냥 기분 좋게 살림에 보태썼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인생 최초의 대패를 경험한 마르틴 루터는 개삐져서 내가 다음에 결혼하게 된다면 돌로 순종적인 여자를 조각해서 결혼할거임  이라고 투덜댔다고 전해진다.  (덧) 그래도 둘은 금슬은 좋아서 마르틴 루터는 종종 카타리나를 '나는 경건한 하인, 카타리나는 나의 여왕님' 이라고 치켜 세우거나 '나는 당신이 있는 집의 꼭대기만 봐도 행복하니, 이런 남자에게 굴복하지 말라'라고 당부하거나 '나는 아론, 카타리나가 모세' 라면서 성경 인용을 하거나 '프랑스를 다 준다고 해도 카타리나랑 바꾸지 않겠다!!라는 말도 자주했다고 함. (출처) 사랑은 마틴루터킹도 두손 두발 들게 했다 오 사랑
하느님도 싫어하는 행위
다윗은 왕이 되고나서 한번은 자신의 궁전을 산책하다가 자기 궁전 앞에있는 집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봤음. 그 여인은 자신의 부하이자 군인중에서 하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그때가 목욕하던 순간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취향이여서 그런건지 ㅗㅜㅑ;;;;;; 해버린 다윗은 밧세바가 탐이나서 ntr을 시도하여 동침을 해버렸고. 아이가 생기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야가 자기 자식인줄 착각하게 하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해서 군인이였던 우리야를 불러 휴가라고 하면서 자기 마누라랑 동침을 하게 할려고했음.  그러나 뼛속까지 구닌이였던 우리야는 자기 전우들이 피땀흘리며 싸우는데 자기만 집에서 놀수는 없다고 거부. 이걸 들은 다윗은 결국에는 자신의 부하장군을 시켜서 전투의 최전선으로 우리야를 보내서 거의 강제로 전사하게 만들고 슬퍼하는 밧세바가 남편의 상을 다 치루자마자 자기 마누라로 삼았음.  "저런짓하지 말라고 십계명도 만들었는데 ㅅㅂ." 이걸 본 하나님은 당연히 극혐하여 이걸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가긴 그러므로 예언자를 보내서 왕을 꾸짓으니 그사람의 이름이 나단이였고 꾸짓은 내용은 이럼. "어이 다윗왕님." "예언자 어서오고." "그 이야기를 아십니까? 못된 부자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게 뭔데 하느님이 말한거라도 되냐." "이런 남자가 살았다고합니다. 예전에 어느 부자와 가난한이가 한동네에서 살았죠. 부자는 손님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면 예를 다해야하는데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있는 수많은 말과 양을 잡기 아까웠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가난한자의 하나뿐인 암양을 뺏어서 손님을 대접해줬고 가난한이는 유일한 재산을 잃고 나중에는 굶어 죽었다고합니다." "그거 참 간사하고 나쁜자로다. 자신의 넘치는 재물을  밖에다가 뿌리고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손님을 대접하는데 남의것을 빼앗다니! 내 나라에 그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벌을 받게 만들었을것이다." "그게 바로 너입니다." "뎃?" "너요 너 너 너 너 너 너이사람아 너 너 이 NTR충아 너!" 왕한테 눈깔에 힘 빡추고 혼낸게 상당히 인상적인데 다른 몆몆 그림은 저렇게까지는 안그렸을지라도 적어도 손가락질은 했음. 왕한테 이러는건 팔이 잘려도 용서못받을짓인데 나단은 바세바가 품고있는 다윗의 자식은 좋을일에 절대 못쓸것이라며 죽게될것이라고 저주를 부었고. 단도직입적으로다가 크게 혼이나서 혼이 빠진 다윗은 몆일내내 금식에 기도에 절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자식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고함. 하나님도 NTR충은 역시 극혐하신다.  (출처) 제우스는 NTR 겁나 해대던데 그리스 라인을 탔더라면...
어느 소련인의 전설적인 뺑끼짓.Soviet
(그가 실린 프라우드 신문) 1940년 겨울 전쟁이 한창이던 소련 필란드군의 분투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한 소련은, “발렌틴 프루긴”라는 젊은 장병이 필란드군의 방어선을 뚫고 적들의 토치카들을 단신으로 박살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때 확인해보니 이미 적기 훈장은 물론, 노몬환 전투 당시 종군기자로 파견된 공적까지 있어 레닌 훈장까지 받은 유망한 청년임을 알아차린 소련은 그야말로 죽 쑤고 있던 전황에서 “선전용 영웅”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에 소련은 유례없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그에게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인 소비에트 연방영웅 훈장을 수여함과 동시에 진급시켜주었다. 여기까지 보면 어느 바른생활 사나이의 인생 승리 스토리로 볼 수 있지만, 문젠 이게 죄다 구라였다. 실상은 이렇다. 일단 발렌틴은 어릴 적부터 사기, 절도 등등 각종 범죄 행위 때문에 두 번이나 교도소에 갔다 온 범죄자였고 애초에 원래 이름도 발렌틴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고루벤코”였다. 여기서 고루벤코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당시 소련에선 감방 한 번 갔다는 것도 사회적 폐급 낙인이였는데 두 번째 감방행은 그야말로 구제불능 쓰레기 취급이었다. 이에 고루벤코는 감방을 탈옥, 본인의 장기인 사기를 이용해 “발렌틴 프루긴”이란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신분 세탁 이후 직장을 얻은 곳이 “타스”, 소련의 국영 언론사이다. 여기서 그는 군대 부문 취재 기자로 일했는데 이때 기회가 찾아온다. NKVD로부터 노몬환 전투를 취재해주면 당신의 승진을 책임지겠다는 것. ...라는 건 구라다. 애초에 그는 NKVD로부터 연락받은 적도 없었고 노몬환으로 취재를 가지도 않았다. 자, 그럼 어떻게 레닌 훈장을 받았느냐? 첫 번째, NKVD의 편지인 것처럼 위조해서 “거기 프루긴이란 유망한 기자가 있다던데 노몬환 취재 부탁드림 ㅇㅇ” 두 번째, 그 편지를 타스 신문사로 발송 세 번째, NKVD의 부탁을 거절할리 없는 국영 언론사인 이상 프루긴에겐 극동 취재 명령이 떨어진다. 네 번째, 어짜피 위조한 편지에 의한 명령인 만큼 프루긴은 본인 자택에서 뺑끼치다가 “위험한 취재”를 마치고 복귀 마지막, 야호 레닌 훈장이다. 이게 바로 레닌 훈장의 수여 배경이다. 는 또 구라다. 애초에 폰 명령서인 만큼 수여받은 적도 없다. 훈장은 그냥 본인 어머니 집에 있던 걸 훔쳐와서 옷에 달고 다닌 것이다. 쨋든 이렇게 훈장 수집을 통해 프루긴의 유명세는 날로 늘어갔고 그를 대하는 대우 또한 높아지자 고등하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프루긴은 처음으로 먹고 살자고 시작한 사기극에서 벗어나 대담한 대사기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1939년 겨울전쟁이 터지자 프루긴은 이를 기회로 여긴다. 전쟁은 영웅을 낳고 그 영웅은 인생이 쫙 펴지기 때문. 이에 프루긴은 39사단 소속으로 신분증을 위증한다. 처음엔 장교 신분증을 위조하려고 했지만, 일반 병사 영웅 스토리가 잘 먹힐 것 같아서 평범한 장병으로 위조한 후 위에서 언급한 전공을 위조해서 또 그런 전공을 담은 군 보고서를 위조하고 그 위조한 보고서를 군대 명의로 신문사에 보내는 편지를 위조해서 프라우다 신문에 올리게 된다. 그럼 이 새끼 그동안 뭐했냐고? 그냥 모스크바의 친구집에서 술먹고 놀았다. 애초에 전선으로 간 적도, 핀란드는 커녕 레닌그라드 근처로도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5개년 계획을 전후로 급격히 비대해진 소련 관료체계의 허술함과 암울한 전황에 어떻게든 영웅이 고팠던 군부와 정부의 조급함으로 인해 끝내 1940년 4월 22일, 남들 전선에서 피똥싸고 있을 때 친구집에서 꿀빤 프루긴이 소비에트 연방영웅 훈장을 수여받는 최고의 명예를 누린다. 그러나 꼬리가 너무 길면 밟히는 법, 수상함을 느낀 NKVD의 조사로 프루긴의 구라가 들통났고 이에 꼭지가 돈 정부는 프루긴이 체포된지 얼마 안된 1940년 11월, 곧바로 교수형으로 명을 끊어버린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사기로 먹고 살았던 발렌틴 프루, 아니 블라디미르 고루벤코. 정말 전설적인 뺑기가 아닐 수 없다. 끝 ㅊㅊ 디씨 모야 이게 되넼ㅋㅋㅋㅋㅋㅋ 간도 크다 뭔 정신이랴 (노몬환=할힌골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