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mum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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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가 본인의 외모 중 가장 컴플렉스라고 밝힌것


자기가 봐도 손 핏줄이 너무 징그럽게 튀어나와서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이랑 손을 잡거나 해야할때
너무 미안하다고 함


그래서 손 잡는 씬이 있을땐 핸드크림을 잊지 않고 꼭 바른다함


굳이굳이굳이 꼽은게 저거 아닐까욥 ㅜㅠㅠㅜㅜㅠㅜㅠㅠㅠㅠ
넘 넘 멋지고 매력적인데 무슨 말이야아아~~~ㅜㅠㅠㅠ
저런 손에 치이는 사람 여기 있다구요옵~~~~~ ^0^)/

출처 :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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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심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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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직전임 사랑하는 혜진이에게 항상 내 옆에서 큰 힘이 되어주는 자기야 이렇게 글로 자기에게 마음을 전하려고 하니 참 쑥스럽네 내 마음속엔 항상 자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우리가 처음 만남을 시작하면서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이겨내야 했던 자기, 운동선수인 나와 연기자인 자기의 위치, 우리를 둘러싼 여러가지 환경과 조건들 그런 결정이 참 어렵고 두려웠음에도 묵묵히 나를 위로하며 다독여주는 자기의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사실 사람들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는 자기를 보며 내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해 자기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자책도 많이 했어요 저는 그저 하나씩 하나씩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자기를 사랑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는 걸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으로 큰 힘이 되어줄게요 불안해하지 말아요 난 항상 옆에서 자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어떤 순간보다 또 그 어떤 날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또 추억들이 너무나 기대가 돼요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또 두려워도 항상 기도해주며 그리고 격려해주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 그 설렘과 행복함처럼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이겨내요 정말 부족한 저에게 천사같은 당신을허락하신 주님께 너무 감사드리며 묵묵히 등대같은 남편이 될게요 너무 고맙고 사랑하고 모든 미래를 나에게 맡겨주신 당신 그 믿음에 항상 보답하며 살아갈게요 너무너무 사랑해요 하나뿐인 남편이 저렇게 영상편지 끝나고 쩌렁쩌렁하게 한혜진!!! 부르면서 녹화장 나타남ㅋㅋㅋㅋㅋㅋ깜짝방문 목걸이 걸어주면서 한혜진한테 고마워요라고 하고 한혜진은 내가 고맙지 정말 행복해 라고 말하면서 프러포즈 끗~~~~ 근데 이 전에 이미 프러포즈 한번 했었다함 ㅋㅋㅋㅋ 문제시 월드컵 셔터내림 출처 오 사랑꾼이구먼 축구잘해.. 잘생겼어... 사랑꾼 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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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야밤에 술먹고 생각나서 써보는 이야기이고 내가 어릴때 겪은 일이야 얼마전 김주혁님의 기일이기도 해서 생각이 또 나네 서론이 기니깐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아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고 옆집 아저씨 같던 사람이라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 해보자면 나는 전라도에 살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였다 그당시 실업계 고등학교에는 기능반이라는 동아리같은게 있었는데 기능반이란 학교 수업도 안나가고 주말에도 안쉬고 저녁 12시까지 전공 기능훈련만 3년간 해서 전국기능올림픽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게 목표인 곳이었다 나도 고등학교 내내 추석 설날 빼고는 쉬어본적이 없고 학교에서 자고 일어나면서 하루종일 기능 훈련만 하고 살았으니깐 아무튼 그당시 2학년은 나랑 동기 2명뿐이였고 3학년은 대회가 끝나 취업을 하고 1학년 신입생도 없던 상황이었어(당시 11월 말) 보통 대회는 서울경기쪽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전지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다른학교에 가서 일주일간 타 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기능 훈련 방법이나 대회처럼 타이머 재놓고 훈련을 하기도 했지 12월~1월 6월~7월 이렇게 전지훈련이 일년에 두번정도 있었는데 1학년도, 3학년도 없는 시즌에 2학년들이 내년 시험을 위해 전지훈련을 많이 간단말이야 서울쪽으로 이번에도 일정이 잡혔는데 하필 그때 우리 담당 선생님은 결혼을 준비하고 계셔서 너무 바쁘셨고 전지훈련일정은 잡아야했으니 당시 나한테 민박집 예약권을 주면서 "선생님이 정말 미안한데 너무 바빠서 호텔 예약해놨으니까 하루 미리가서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전지훈련하고 와라" 하면서 다녀오라하셨지 지금 이 선생님도 간간히 통화해서 안부 물어볼 정도로 좋은 선생님이다 문제는 내가 서울을 한번밖에 가본적이 없다는 점, 무려 중학교 수학여행때 빼고는 서울을 가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출발 당일 같은 기능반 동기는 식중독에 걸려서 짐까지 다 싸놓고도 올 수 없었지 그래서 나는 혼자 서울로  출발했어 학교->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서울터미널 가는데만 6시간 걸리는 엄청난 초 장거리에 그당시 옵티머스 1휴대폰 사용했엇는데 요금제도 29요금제라 버스에서 잠만 잤던 기억이 있다 1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9시쯤 도착해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선생님이 준 숙소 주소를 보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서울에는 8호선 넘게 있더라 엄청난 충격이었다 근데 문제는 나는 지금까지 학교가 항상 10분거리 이내로 있어서 버스도 별로 안타본 사람이었단 말이야 허둥지둥 길 찾다가 모르겠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역무원한테 물어보고..해서 2호선을 타야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걸 알았다 2호선 타서 한참을 가고있는데 가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옆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알고보니 반대로 탔더라 어떤 멍청한놈이 지하철을 거꾸로 타나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지하철이라곤 선생님이랑 딱 두번 타본 나에게는 지하철 입장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거꾸로 가다보니 시간은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밥도 햄버거로 대충 때운터라 배도 고프더라 근데 좀더 늦으면 아예 지하철을 못탈거 같아서 참고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당산역에 도착하니 다음으로 가는 열차가 안오더라.. 역무원 아저씨도 아까 학생이 타고 온차가 막차에요 하고 말씀하셔서 숙소 주소를 보여주면서 "여기로 가고싶은데 어떻게 가야해요?" 라고 물었는데 아저씨 말로는 완전 반대로 온거라고 하더라 그럼 택시타고 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서울은 엄청 추웠다 평생 따뜻한 남쪽에 살다가 서울에 교복만 걸치고 나왔는데 외투를 안챙겨 와서 너무 후회했었음 머리속으로 다른애들은 곧 방학식이라고 신났는데 나는 여기서 뭐하나 생각도 들고 그래서 택시타고 주소 보여주면 가겠지? 하고 택시를 잡았는데 주소를 보여주니까 "거기까진 안가요" 하고 휭 가버리더라 나는 택시가 어디까지 안가요 라는 말을 처음들어봐서 너무 충격이었어 아까 그 택시만 그러겠지 하고 2번정도를 더 시도해봤는데 전부 안가더라고  그래도 잡다보면 가는 택시가 있을거야.. 하면서 택시를 잡으니까 위아래 슥 보더니 3만원이요 이러는거야 문제는 내가 딱히 용돈을 챙겨온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버스표랑 5만원 준게 전부라 나도 별생각없이 5만원만 들고 왔는데 밥먹고 간식사먹고 지하철비로 이미 3만원 정도 쓴 상태여서 만팔천원 정도 있었지.. 그럼 제가 얼마밖에 없는데 최대한 가깝게 가주시면 안될까요 이런거라도 해봤어야 했는데 내가 또 소심왕이라 그런말은 또 못하고 앗..네 알겠습니다..하고 보낸 다음 피씨방이라도 가서 밤을 새야하나..하는데 문제는 또 교복을 입고옴 ㅋㅋㅋ 날씨도 추운데 갈곳도 없고 택시도 안잡히니 그냥 버스정류장같은곳에서 2시간정도 가만히 있엇다 휴대폰도 꺼지고 방법이 안보여서 새벽에 날 밝으면 피씨방 가서 검색좀 해보고 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내앞에서 suv한대가 멈춰 서더라 기억은 안나지만 트라젯같이 생긴 차였어 조수석 창문이 열리더니 왠 험상궃은 아저씨가 "거기서 뭐해요?" 물어보는거야 근데 나도 항상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가지고 "그냥 있어요" 이렇게 대답했지 근데 그 아저씨가 "내가 아까 저기서 30분동안 보고있엇는데 버스 끊겨서 그러는거 아니에요?" 물어보더라고 "저도 어차피 집에 가는길인데 가는길 맞으면 태워다 드릴게요" 했는데 내가 "아니 정말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하고 거절했다 저녁에 어두컴컴한데 차 한대가 서서 물어보니까 너무 무서워서 그런것도 있고 "그래요 그럼.. "하고 창문이 닫히는데 갑자기 뒷좌석 문이 열리면서 왠 아저씨가 "그러지 말고 타요 데려다 드릴게요" 이러면서 의자를 팡팡 치는데 안에서 나오는 열기가 너무 따뜻하더라 정말 괜찮아요..하면서 거절했는데(무서워서) 뜬금없이 "나 몰라요?" 물어보는거야 근데 나는 정말 몰랐어서 "모르겠는데요" 대답했지 아저씨는 웃으면서 앞 사람"승호야(가명) 우리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면서 네이버에 김주혁을 검색해보래 "..저 휴대폰 배터리 없어서 꺼졌는데.." 하니깐 본인이 직접 검색해서 보여주더라 ㅋㅋ "봐요 똑같이 생겼죠? 위험한 사람 아니니깐 얼른 타요 데려다줄게요" 이러는데 나도 춥고 워낙 인상이 선하게 생겨서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탔었어 "나 진짜 누군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아저씨 영화랑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데 프라하의 연인 알아요? 아 그건 모르나? " 생글생글 웃으면서 물어보니까 좀 안심되기도 하고 그때서야 긴장도 풀리더라 "아 더 열심히 해야겠네~ 이름이 뭐에요?" 웃으면서 물어보니까 나도 긴장풀려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름 좋네~ 이시간에 여기서 뭐해요??"물어보길래 버스타고왔는데 지하철을 잘못타서 방황하고있었다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주소를 보여줬더니 "어우 완전 한참 돌아서 잘못왔네~~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다가 국밥집  앞에서 내리더니 "언능 내려 밥 안먹었지? " 따뜻한 국밥이랑 순대도 시켜주고 자기는 배 안고프다면서 먹는거 구경하면서 순대만 몇개 집어먹더라 그리고 본인을 계속 확인시키고 싶은 눈치였어 자꾸 영화포스터 보여주면서 이건 알아? 이건?? 아 이건 어차피 모르겠구나 이건 나중에 나이먹고 꼭 봐~~ 그리고는 자기 어릴때 이야기도 좀 하구 "이야 서울을 그래도 혼자오네 젊음이 좋아~~" 하는 둥 그냥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을 심어주더라구 밥 다먹고 나니까 새벽 3시40분인가 그쯤 다시 차에 타서 어디 호텔같은데 들어가더니 "형이 너 가는곳까지 데려다주는건 힘들거 같아 미안해, 대신 여기서 자고 아침에 저기 바로앞에 정류장 보이지? 저기서 버스타고 가면 1시간이면 갈꺼야 내일은 길 잃어버리지 말고 잘 도착해야된다?" 하면서 자기 지갑에 있는 만원 3장을 주면서 "나중에 갚아야한다~" 이러고는 종이에 싸인 하나 해주고 "나중에 메달 따면 형이 맛있는거  또 사줄게" 얼굴에 피곤함이 보이는데도 내가 엘레베이터 탈때까지 손흔들어 주고 가더라 아직도 그 웃으면서 손흔들던 모습이 기억이 나곤 해 나중에서야 검색해보고 아 진짜 연예인이 맞았네 하고 김주혁 나온 영화들을 다 보곤 했었어 1박2일에 나오는거도 보니깐 괜히 반갑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많이 했었지 일부러 1박2일 챙겨서 보기도 하고 주변사람들한테 같이 보자고도 하고 물론 대회때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순위 발표할때까지도 혹시나 김주혁아저씨가 왔나..?하고 두리번두리번 하기도 했었다 우연히 겪은 짧은 만남이였지만 그 사람이 베푼 호의,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고 추운날에 새벽에 밖에 돌아다니다 보면 괜히 김주혁배우님이 생각난다 얼마전에 김주혁배우님 기일이였는데 내가 산소 찾아가거나 그러진 않았고.. 그냥 생각이 나서 한번 글 써본다 그곳에선 편하셨으면 좋겠다 왜 콧물이 나오지 감기 걸렸나ㅠㅠ
일본방송에서 카라한테 코타츠 부심 부리다가 털림
카라가 한창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일본방송 토크 주제 "겨울을 즐기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일본 연예인들이 코타츠 이야기를 한다 코타츠 안에 들어가 귤을 먹는다 함 코타츠가 뭔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잠깐 설명 코타츠는 일본 가정에 필수로 있는 난방기구 요로코롬 생김 --?  한번 들어가면 나오디 않게 된다는둥 안정감이 있다는둥 계속 극찬함 그러다 갑자기 카라한테 한국에도 코타츠가 있냐고 물어봄 (한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선진국 일본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을거라는 듯) 한국에도 코타츠가 있나요? 라고 한류스타 나올 때 자주 물어봄 "역시 한국은 코타츠가 없군..."이라며 일본애들이 우월감을 느낄려는 찰나에 카라 한승연이 한국의 집은 바닥전체가 따뜻해진다고 똑부러지게 말하기 시작함 (일본은 대부분 코타츠안에만 따뜻하고 코타츠 벗어나면 집안인데도 추움. 서양은 카페트 문화라 역시 겨울에 바닥은 보통 차가움) 갑자기 놀라는 일본인들.. 한국은 바닥전체가 따뜻해진다고???? 한승연이 다시 한국은 바닥 전체가 따뜻하다고 확인사살 시켜줌 일본도 안 되는걸 한국이 가능하다니... 놀라면서 표정관리 안되는 일본인들... 혹시 전기장판 말하는가 아닐까 싶어 다시 물어봄 한국은 보일러가 있어요^^ 일본인들 표정관리 실패.. 다들 놀라는 분위기 당황한 일본인들.. 한국은 빈부격차가 심하다는데 부자만 보일러는 쓰는게 아닐까 싶어, 보일러가 한국에서 일반적인거냐고 물어봄 (일본은 애초에 바닥을 데우는 온돌문화가 아님. 그리고 지진 때문에 바닥난방 보일러가 가능하게 집을 지으려면 엄청 비싸서 대부분 없음. 애초에 가정집에 있는 보일러는 목욕용임.) 카라: 헤헤 ^^ 당황한 일본인들 결국 이야기 마무리하며 정신승리 '그렇지만' 한국의 겨울은 많이 춥지 않나요? 그래 춥다 추워 (하지만 실내는 한국이 더 따뜻함 ^^)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반도 온돌문화의 우수성.. 실제로 미국 건축가가 한국의 온돌문화를 보고 충격받은 일화가 있음 미국인이 미국에 가지고 가고 싶은 한국의 것 중 하나가 온돌 온돌 문화유산 신청하려니까 중국애들이 온돌 원조가 중국의 Kang이라고 주장 중 네이버블로그펌
미국 학부모들에게 BTS란?
Cos ah ah I’m the stars tonight 오늘 내 기분은 별들 속에 있는 것 같아 So watch me bring the fire and set the night alight 내 안의 불꽃들로 이 밤을 찬란히 밝히는걸 지켜봐 Shoes on get up in the morn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Cup of milk let’s rock and roll 우유 한 모금 마시고 이제 한 번 시작해 볼까 King Kong kick the drum rolling on like a rolling stone 킹콩이 가슴을 치듯 드럼을 크게 쳐봐 Sing song when I’m walking home 집으로 걸어가며 노래를 불러 Jump up to the top LeBron 정상까지 뛰어 오르는 거야, 르브론 제임스처럼 Ding dong call me on my phone 딩동, 나에게 전화해 Ice tea and a game of ping pong 아이스티 한 잔과 탁구 한판 어때? - Dynamite There's always something that's standing in the way 항상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지 But if you don't let it faze ya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You'll know just how to break 어떻게 이겨내는지 넌 알게 될 거야 Just keep the right vibe yeah 그냥 좋은 분위기 그대로  'Cause there's no looking back 뒤돌아 볼 일은 없으니까 There ain't no one to prove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없어 We don't got this on lock yeah 그냥 부딪혀 보는 거야 - Permission to Dance 나를 밝혀주는 건 너란 사랑으로 수 놓아진 별 내 우주의 넌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주는 걸 너는 내 별이자 나의 우주니까 지금 이 시련도 결국엔 잠시니까 너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밝게만 빛나줘 우리는 너를 따라 이 긴 밤을 수놓을 거야 -My Universe 가사 건전 그 자체 ㅜㅜ 심지어 자존감 지키미 아닌가욥? 카디비 왑같이 매콤 그 자체인 노래들 듣다가 방탄 노래 들으면 여름성경학교 느낌일 것 같네용 ㅎㅎㅎㅎㅎㅎ 실제로 카디비도 딸에게 방탄 노래 들려준다고..ㅎㅎ><
중세 봉건 기사에 대한 오해들
현재까지 합의된 사실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모두 1066년 이전에 '봉건제도'의 기본 요소인 종속적 토지보유권, 영주권, 군사적 봉사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형태의 토지보유권과 군사적 의무들과 함께 공존했다는 것이다. 즉 잉글랜드의 '봉건제'는 12세기 글랜빌의 법률서와 13세기 초 브랙턴의 법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노르만 정복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진행된 점진적인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중세의 두 번째 미신인 '봉건 기사'의 미신으로 안내한다. 찰스 오만이 정립한 이 미신은 말을 탄 봉건 기사들과 성채를 중세 전성기의 전쟁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오만에 따르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와 14세기의 '보병 혁명' 사이에, 군사전술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진정한 병법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서부 유럽에서 거의 소멸했다. 요새 축성과 공성 기술은 중세시대에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분야였지만, 동시대의 다른 군사사학자들처럼 그 역시 야전을 전쟁의 핵심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별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근대적인 의미의 상비군도, 직업군인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전략적인 목표가 없거나 거의 없는 소규모 기병대 사이의 무질서한 교전으로 전락했다. 이 시대는 기사도와 용기와 명예가 규율과 훈련을 대체해버린, 군인이 아닌 전사들의 시대였다. 중세 지휘관들의 아마추어성을 감안하면, 중세 전쟁에서 야전이 드물었던 것은 어떤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리가 없었다. 원인은 지휘관들이 명확한 전략적 목적이 없고 정찰병도 없이 길을 헤매느라 서로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야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군대의 지휘관이 상대 지휘관에게 공식적으로 도전장을 보내서 전투를 벌일 시간과 장소를 합의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전투가 벌어지면, 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제대로 된 지휘 계통, 제식, 규율의 부재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전술만을 이끌어냈다. 지휘관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직접 혼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군사들을 지휘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매번 똑같은 전술이 반복되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난 양측 기병대는 400야드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보고 섰다. 하나의 기병대는 옆이나 앞뒤로 늘어선 2-3개의 '바타유'로 구성된다. 바타유는 서로 다른 영주들의 깃발 아래에서 복무하며 각자 자신의 영주만을 지휘관으로 인정한 봉건 기사들이 임시로 모여서 만들어진 3-4열 두께의 기병 전열로, 사실상 이 시대의 군대가 가진 유일한 전술체계였다. 도시나 마을에서 징집된 보병 부대도 있었지만, 그들은 기사들보다 무장이 빈약하고, 훈련상태는 더 형편없었다. 이 보병들은 야전에서의 군사적 가치는 거의 없었지만 적지에서의 단순한 파괴행위나 공성전에서 유용했다. 오만이 정립한 이 모델에서 전투의 핵심은 등자를 단단히 딛고 창대를 겨드랑이에 끼운 기사들의 돌격이었다. 돌격과 충돌 이후, 전투는 무질서한 혼전으로 전락하여, 특정한 군사적 임무보다는 개인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사들 간의 개별 결투가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직속 영주에 대한 봉건적 의무에 따라 참전했고, 기사도의 영광과 전리품에 대한 욕망에 강하게 이끌렸다. 봉건 기사들은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시했고, 명예는 용기를 증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예는 또한 부대 내부에서의 경쟁과 질투로 이어졌고, 절제되지 않는 용기는 전투에서의 만용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투의 결과는 병력수와 전투기술 뿐 아니라 운에도 달려 있었다. 혼전 도중 총지휘관인 왕이나 백작의 죽음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었고, 승리가 갑작스러운 패배로 뒤바뀔 수 있었다. 위의 내용들을 기술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세 지휘관들의 능력을 나폴레옹 시대의 지휘관들과 비교해본 오만은 그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봉건 기사 시대의 군대의 수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직설적이고 잔인했다: "결집하기 어렵고,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하고, 짧은 복무 기간이 끝나자마자 부대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봉건 군대는 군인으로서의 자질의 총체적인 결여를 보여준다." 보병은 중세 시대 내내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오만이 봉건 기사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묘사한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는 사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 전투였다. 노르망디의 사생아 공작 윌리엄(훗날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기병대는 잉글랜드군을 강력한 방어 진지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거짓 후퇴 전술을 써야 했다. 롬바르디아 동맹의 시 민병대 보병들은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기병대의 공격에 맞서 동맹을 상징하는 전투 깃발을 단 카로초 수레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중세 시대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보병이 기사보다 훨씬 많았다. 카롤루스 제국 시대부터 14세기 초까지의 전투들에 대한 베르부르겐의 연구는 유능한 중세 군사 지휘관들이 정교한 전술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음을 입증했다. 그들을 또한 군대에 규율을 확립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군대는 살라딘의 궁기병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레반트 해안을 따라 84마일을 행군했다. 보병, 기병, 함대의 협동 작전의 성공적인 사례인 이 전투 행군은 아르수프 전투에서의 승리 이상으로 인상적인 군사적 업적이었다. 리처드는 군대를 직사각형의 행군 대열로 배치했다. 전위와 후위에는 최고의 기병대인 성전기사단과 구호기사단이 배치되었다. 수송대와 말들은 양쪽으로 늘어선 갑옷 입은 보병들로 보호되었다. 이 행군은 휴식일을 가지면서 의도적으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리처드는 함대가 군대에 물과 식량을 전달하고 부상자들을 실어갈 수 있도록 항구들을 장악했다. 아르수프에서 벌어진 전투는 사실 리처드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 전투는 후위의 구호기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조급해져서 살라딘의 군대에 돌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본 리처드는 다른 기사들에게도 돌격을 명령했다. 몇 주 동안 반복된 공격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군대가 갑자기 돌격해오자 살라딘의 궁기병들은 깜짝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리처드가 군대에게 무슬림들을 추격하는 대신 계속 야파로 행군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군대가 완전히 '봉건적'이거나 일차원적인 전투 부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 유럽 군대의 다차원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세 전성기의 군대들에는 보병이 기병대보다 많았다. 또한, 기사들은 스스로 기병이라고 생각했지만, 필요할 때 그들은 말에서 내린 다음 보병대 안에서 훈련되고 잘 무장한 등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기사들을 근대적 병과 구분법인 '기병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보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중요한 요새 수비 임무까지 무시해야 한다. 중세에 일반적이었던 전투 회피 전략은 오만이 상상한 봉건적 지휘관들과 기사들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불명예스럽고 비겁한 행위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길링엄에 따르면 사자심왕 리처드 같은 중세의 훌륭한 군사 지휘관들은 냉정하게 전투의 비용과 이익을 평가한(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한) 합리적 행위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군사교리는 군사서를 읽어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길링엄은 중세 전성기에 유행한 군사교리가 로마제국 말기의 군사저술가 베게티우스의 조언과 일치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베게티우스식 전략'이라고 불렀다. 오만이 책을 쓴 시기에는 12세기 후반의 서유럽 귀족들이 대부분 문맹이었으며 오직 전투 기술만을 교육받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학자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12-13세기의 기사들은 전사로서의 기술뿐 아니라 궁정인으로서의 기술도 배웠다. 그들은 오만이 상상했던 일차원적인 전사들이 아니었다. 세속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12세기 후반경의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다. 'De Re Militari'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Epitoma rei militaris'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가장 많이 필사된 문헌 중 하나다. 또한 라틴어에서 세속어로도 자주 번역되었고, 적어도 몇몇 군사 지휘관들이 필사본을 소유했다는 증거가 있다. 길링엄은 전쟁에 대한 중세 지휘관들의 인식과 접근법이 베게티우스의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사자심왕 리처드는 어느 대주교의 부족한 라틴어 실력을 조롱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학식이 높고 라틴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심지어 라틴어로 된 베게티우스의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급된 임금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사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는 보병들보다 훨씬 우월했으며, 중세의 예술과 문학의 전쟁 묘사에서도 기사가 중심이 되고 보병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심지어 야전에서도 말에 탄 기사들이 방어 진형을 이룬 규율 잡힌 보병들을 상대로 반드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 내내 가장 효과적인 군대는 궁병과 창병의 지원을 받는 기마 돌격대로 구성된 혼합 전술 부대였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오만은 전투부대로서의 기사의 몰락과 보병의 부상이라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반대로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헤이스팅스 전투에 대한 스티븐 모릴로의 세밀한 연구는 이 전투가 이후 300년 동안 지속된 보병에 대한 봉건 기사의 우월성을 확립했다는 오만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반면에 맬컴 베일은 '14세기 보병 혁명'이 기사를 쓸모없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후에, 15세기에 와서 갑옷과 무기와 전술의 발전으로 중기병대가 전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길링엄의 '베게티우스식 전략' 이론은 미국의 사학자 찰스 홀리스터가 처음 제시한 역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다른 지역들보다 봉건적이었던 중세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다는 역설. 앞에서 본 것처럼, 적어도 1086년부터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봉건적 군역을 대가로 왕에게 하사받은 봉토로써 토지를 보유했다. 이전까지는 이를 근거로, 국왕군으로 복무한 기사들의 대부분은 봉건적 의무에 따라 소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홀리스터는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저서 "The Military Organization of Norman England"와 여러 논문들을 통해 그는 일명 '봉토 보유를 대가로 의무 지워진 기사의 군역이 노르만 왕조의 잉글랜드 왕들이 군대를 모집하는 주된 방식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봉건제의 아이러니'를 증명했다. 이후 많은 역사학자들이 11세기부터 15세기 초까지 잉글랜드 국왕군의 주력이 왕실 가신단 기사들이었음을 밝혀내면서, 봉건적 군역이 실제로 중시되었다는 가설은 더욱 약화되었다. 수십 명의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왕의 야전군이나 요새 수비대에서 정예부대로 활동할 뿐 아니라 소규모 작전에서 독립적인 부대로 운용되기도 한 전문 상비군이었다. 직접수봉자(tenant-in-chief)들이 잉글랜드 왕에게 진 봉건적 군역은 13세기 동안 급격히 축소되었다. 1166년 헨리 2세는 이론상 봉건적 군역에 따라 기사 5000명을 소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72년 그의 증손자인 에드워드 1세는 평신도 귀족들에게서 기사 3-500명, 주교와 수도원장들에게서 기사 132명을 소집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100년 사이에 봉건적 군역의 90%가 사라졌다.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군사들의 질도 하락해서, 기사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무장도 빈약한 기마 서전트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졌다. 1277년 에드워드는 웨일즈 전쟁에서 봉건적 군역으로 기사 228명과 서전트 294명을 소집해서 40일 동안 무보수로 복무시켰다. 1303년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 원정에 데려간 국왕군 7500명 중에는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기사 15명과 서전트 267명이 있었다. 13세기 잉글랜드 왕들은 남작들에게 보낸 소환장에서 '왕에 대한 충성과 사랑으로' 각자 지위에 맞는 숫자의 기사들과 그밖의 병사들을 데리고 왕의 전쟁에 참가할 것을 요청했다. 참전은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왕의 총애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귀족 집안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따라서 13세기 말이 되면 남작들은 봉건적 군역보다 더 많은 수의 맨앳암즈(기사와 기마 서전트)들을 데려왔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봉건적 군역이 유지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에 의한 소집은 132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13세기 후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들은 신하들의 봉건적 군역을 기꺼이 면제해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13세기초부터,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그 이전부터 이미 봉건적 군역이 국왕군을 위한 중기병의 주요 공급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2세기 초반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기사 봉토 제도의 공식적인 명분이었을지 몰라도, 왕의 입장에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재정적 수입이었다. 1100년경부터 현금 지불로 군역을 대신하는, 방패세(scutage)라고 불리는 제도가 일반화되면서, 국왕군에 합류할 것을 명하는 소환장마저도 수입원이 되었다. 앙주 왕조의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와 존은 봉건 소집군보다는 용병을 더 선호했다. 그들은 직접수봉자들에게 봉건적 군역 대신 방패세를 낼 것을 강요해서 용병들에게 지불할 임금을 마련했다. 12-13세기의 군주들은 봉건적 군역의 중대한 결함과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왕실 가신단 기사와 용병들을 더 선호했다. 우선 봉건적 군역의 의무가 왕국의 방어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외국 원정에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조차 없었다. 의무 복무 기간인 40일이 지나면 임금을 받고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기사들은 모두 떠날 것이다. 남작들이 의무대로 정확한 숫자의 기사들을 데려올 것이라는 보장이나, 그 기사들이 제대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사자심왕 리처드가 1189년 죽어가는 아버지 헨리 2세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이나, 이중봉신들이 포함된 군주들 간의 영토 분쟁 같은 내전 상황에서, 봉건적 군역의 의무를 진 봉신들은 한 대군주에 대한 봉건적 군역의 의무와, 그것을 이행한 대가로 다른 대군주에게 봉토를 압류당할 가능성 사이에서 손익을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왕실 가신단 기사들과 용병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용병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12-13세기의 용병들은 적어도 고용주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고용주들은 용병들에게 정해진 임금을 제공하는 동안에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다. 상비군에 가장 가까운, 잘 무장하고, 잘 훈련되고, 규율 있는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국왕군의 단단한 등뼈를 이루었다. 용병 부대의 보병들은 12-14세기의 전쟁의 핵심 요소인 황폐화 전술과 공성전에 매우 적합했다. 방패세로 얻은 수입을 통해 노르만 왕조 잉글랜드의 왕들은 봉건 소집군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융통성 있는 군인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Richard P. Abels, "The Myths of Feudalism and the Feudal Knight", Seven Myths of Military History. 군사갤러리 prevot님 펌
11년째 연기 쉬고 있는 원빈이 '거절'한 레전드 작품 6편
영화 '아저씨' 이후로 11년째 연기 활동을 안 하고 있는 배우 원빈이 그간 거절했던 작품 리스트가 화려하다. 원빈은 여러 차례 차기작을 선정하려 했으나 조율 단계에서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천만 영화인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하정우가 맡았던 강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강림 역을 제의받은 바 있다. 하지만 원빈은 고민 끝에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생각해 최종 고사했다. 또 그는 전국을 '말입니다' 열풍에 빠지게 한 KBS2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가 맡았던 특전사 대위 유시진 역을 제안받았다. 제작진은 군복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섭외 시도를 했지만, 원빈은 캐릭터가 군인이라는 특성상 삭발을 해야 했고 장기간 해외 촬영과 100% 사전제작이라는 점 등이 부담스러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좀비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쓴 '부산행'의 시나리오도 원빈을 거쳐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지옥의 섬이라 불린 군함도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군함도' 측도 원빈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이외에도 원빈은 MBC '더킹 투하츠',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의 섭외 요청을 고사한 바 있다. 출처: https://m.insight.co.kr/news/352098 그 외 불발 된 작품 부산행 군함도 더킹 투 하츠 그 겨울 바람이 분다 ㅠ.ㅠ 제발 작품 좀 찍어주세요오...........
가난한 집안에서 빨리 철 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pann
엄마가 하시는 치킨집에 알바생이 두명 있다. 한명은 평범한 집안, 한명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알바생은 이 좁은 동네의 가게 사장님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어머니가 작은 가게를 하시고 형편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무리하게 일을 한다는 것 평범한 집안 알바생은 가족끼리 여행 다니고 외식하는게 일상이다. 사장님 ㅇㅇ식당 가보셨어요? 어제 부모님이랑 갔다 왔는데 거기 진짜 맛있어요 아빠가 사주셨는데 어때요? 예쁘죠? 그 평범한 얘기들에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얘기들에 나는 웃지 못한다. 사장님 월급 절반 가불 받을 수 있을까요? 동생 학원비가 밀렸어요 어머니가 일하다가 다치셔서 병원에 가셨대요 떨면서 말하는 친구를 데리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지쳐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고 언제나 씩씩했던 아니 씩씩하려고 했던 그 아이는 내 앞에서 울었다. 병원비는 내가 냈다.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며 꼭 갚겠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드님이 일을 잘해줘서 저희가 더 고맙다고, 항상 도움 받고 있으니 천천히 갚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 애는 자기가 갚겠다고 했다. 이번달 월급도 가불 받아간 애가 어떻게 갚을건데~ 장난스럽게 묻자 그 애는 일을 더 하겠다고 했다. 학교도 졸업 안한애가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더 늘리겠다는건지 나는 더이상 웃지 못했다. 중3때 전단지로 첫 알바 시작해서 그 이후로 번 돈은 모두 집에 가져다줬다고 한다.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힘든게 더 싫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어릴때부터 엄마가 고생하는걸 봤다고, 빨리 어른이 되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단다. 신메뉴가 나올때면 그 친구의 여동생을 가게로 불러낸다. 맛 평가를 부탁한다는 핑계로 치킨을 먹인다. 평소에 집에 한마리씩 가져가라고 해도 안가져가니까 이런 핑계로 불러낼 수 밖에 없다. 그 애 동생은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동생은 가게에 올때면 오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뭘 거들겠다고 나선다. 오빠는 그런 동생에게 절대 일 시키지 않는다. 한번은 둘이 수학여행 문제로 싸우기도 했다. 오빠는 돈 걱정말고 수학여행 보내줄테니 가라고 하고, 동생은 재미없다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오빠는 그래도 가야한다고 했고, 동생은 "오빠도 수학여행 안갔잖아!" 라고 했다. 그 애는 멋쩍은 얼굴을 했다. 엄마는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고 싶어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동정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됐다. 애들이 상처받을까봐. 고민끝에 남자친구랑 큰 오빠를 불렀다. 주말 중 하루 날 잡아서 친구들이랑 우리 가게에서 모임 하면 안돼? 서비스 많이 주겠다며 꼬셨다. 남자친구는 고맙게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회사 사람들까지 데려왔다. 그 친구는 쉬는 날이었지만 단체 손님이 있다고 와달라고 했다. 폭풍같은 5시간이 지나고 돌아가는 그 친구에게 20만원을 주며 오늘 고생한 보너스라고, 너 안왔으면 큰일 날뻔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10만원은 여동생 수학여행가는데 예쁜 옷 한벌 사주라고 따로 챙겨줬다. 안받겠다고 극구사양하길래 안받으면 해고 시키겠다고 협박 했더니 마지못해 받아갔다. 동생이 나에게 항상 챙겨줘서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아이들 나이에 나는 아침마다 밥 한술 먹이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지 않으면 삐지기도 했고 용돈을 올려 달라고 시위하기도 했다. 학원을 몰래 빠지기도 했고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알바하겠다고 나서다 병원비가 더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애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또 가끔은 슬퍼진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조금은 철 없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는건 아니다. 감히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의 삶을 동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슬퍼진다.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할게 아니라 태어나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출처 : 네이트판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빨리 커 버리죠.. 무조건적인 동정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애쓰는 배려가 진정 참어른이시네요..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사장님같은 좋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