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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카페 가면 꼭 봐야하는 역대 일본 만화대상 수상작.jpg

2008년부터 시작된 매년 3월 치러지는 만화 시상식

전년도에 단행본 8권 이하로 출판된 만화가 후보이며, 대상 수상작은 이후 후보에서 제외

아래는 수상작 리스트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중간에 지뢰작 하나 있으니 주의할 것



2008

(이시즈카 신이치)


네팔, 북남미, 유럽... 전 세계의 거봉을 오르며 

고도의 산악기술과 산의 위대함, 사고의 비극을 아는 남자 사마자키 산포. 

일본 알프스로 돌아온 그 앞에 일어나는 비참한 사고들. 

지금 산포의, 산포만의 산악구조가 시작된다.



이하 순위

2위: 요츠바랑
3위: 바닷마을 다이어리
4위: 플라워 오브 라이프
5위: 너에게 닿기를
6위: 오오쿠
7위: 황국의 수호자
8위: 거침없이 한획
9위: 모야시몬
10위: 나츠메 우인장




2009

치하야후루

(스에츠구 유키)


초등학교 6학년인 치하야가 만난 소년은 후쿠이 현에서 온 전학생 아라타. 

어른스럽고 말이 없는 아라타였지만, 그에게는 의외의 특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인일수 경기 카루타. 

치하야는 누구보다도 빨리, 누구보다도 열심히 카드를 쳐내는 아라타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아라타가 주목한 것은 치하야의 뛰어난 ‘재능’이었다. 

거기에 같은 반의 타이치까지 가세해, 세 명의 소년소녀는 카루타의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하 순위

2위: 우주형제
3위: 3월의 라이온
4위: 심야식당
5위: 청춘소년매거진
6위: 세인트 영맨
7위: 거침없이 한획
8위: 엄마는 텐파리스트
9위: 토리코
10위: 부르잖아요, 아자젤 씨




2010

테르마이 로마이

(야마자키 마리)


그리스 아테네 유학파 출신의 촉망 받는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

아이디어 고갈로 인해 다니던 건축 사무소에서 쫓겨난 후 실의에 빠진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목욕탕 바닥에서 수수께끼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루시우스는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접한 목욕문화에 충격을 받는데…



이하 순위

2위: 우주형제
3위: 바쿠만
4위: 아이 앰 어 히어로
5위: 남자의 일생
6위: 벌레와 노래
7위: 해파리 공주
8위: 모테키
9위: 고교야구선수 자와씨
10위: 파란 불꽃




2011

3월의 라이온

(우미노 치카)


도쿄 시타마치에서 혼자 사는 17세의 프로 쇼기(일본 장기) 기사 키리야마 레이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사고로 가족을 잃고, 깊은 고독을 안은 채 살아가는 소년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쇼기를 잡고, 그로 인해 다시 고뇌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카리, 히나타, 모모 세 자매. 

밝고 상냥한 그녀들과 접하는 동안 레이에게도 변화가 찾아오는데…….



이하 순위

2위: 신부 이야기
3위: 아이 앰 어 히어로
4위: 하나씨의 간단요리
5위: 실연 쇼콜라티에
6위: 안녕이란 말도 없이
7위: 진격의 거인
8위: 째깍째깍
9위: 순백의 소리
10위: 드리프터즈




2012

은수저 Silver Spoon

(아라카와 히로무)


주인공 하이켄 유고는, 도시 출신으로 기숙사 학교에 오기 위해 오오에조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끝없이 광활한 대자연에 둘러싸인, 오오에조 농고의 여러 가지 모습들 속에서 당황하던 유고. 

그러나 서서히 익숙해져가며 사람으로 산다는 것, 가축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농가 출신 학생들과 함께 배워나게 되는데...



이하 순위

2위: 기가 도쿄 토이박스
3위: 노부나가 콘체르토
4위: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신쥬
5위: 25시의 바캉스
6위: 드리프터즈
7위: 그라제니
8위: 아이 앰 어 히어로
9위: 외천루
10위: 다카스기가의 도시락





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늘 햇살만 내리쬘 것 같은 소도시 카마쿠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사람들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려 깊은 이들이 등장한다.



이하 순위

공동 2위: 신부 이야기 /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4위: 하이스코어 걸
5위: 내 이야기
6위: 암살교실
7위: 쿠이 료코 작품집 :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8위: 인간 가면중
9위: 테라포마스
10위: 산적 다이어리








2014

신부 이야기

(모리 카오루)


끝없는 대지에서 살아가는 유목 정착민의 낮과 밤이 펼쳐지는 카스피 해 인근의 지방도시. 

아름다운 연상의 신부 아미르와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어린 신랑 카르르크는 부부가 된다.
다른 부족에서 시집온 아미르와 어린 신랑 카르르크의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 두 부부에게 다가오는 어두운 계획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하 순위

2위: 나만이 없는 거리
3위: 안녕 타마짱
4위: 일곱 개의 대죄
5위: 서랍의 테라리움
6위: 중쇄를 찍자!
7위: 원펀맨
8위: 아인
9위: 발버둥질 수족관
10위: 사카모토입니다만?







2015

그리고, 또 그리고

(히가시무라 아키코)


순정만화가가 꿈인 하야시 아키코는 미야자키에 사는 여고 3학년생. 

그림을 잘 그린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아온 그녀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 해 있다. 

그런 그녀의 꿈은 순정만화가이다.



이하 순위

2위: 아이는 알아주지 않아
3위: 목소리의 형태
4위: 나만이 없는 거리
5위: 블루 자이언트
6위: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7위: 이노센트
8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9위: 왕들의 바이킹
10위: 카사네






2016

골든 카무이

(노다 사토루)


러일전쟁을 통해 ‘불사신 스기모토’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전공을 자랑했던 스기모토는 

죽은 전우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과거 홋카이도 골드러시로 유명했던 곳에서 사금을 캐며 살아가고 있다.

사금 모으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때 스기모토는 누군가로부터 아이누족의 군자금 금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하 순위

2위: 던전밥
3위: 블루 자이언트
4위: 나만이 없는 거리
5위: 다다미 백만장 라비린스
6위: 파도여 들어다오
7위: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8위: 마치다군의 세계
9위: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10위: 오카자키에게 바친다








2017

히비키 ~소설가가 되는 방법~

(야나모토 미츠하루)


문예편집부 ‘목련’에 도착한 직필 투고원고 한 편. 

그 소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접해보지 못했을 만큼 엄청났지만, 작가명 아쿠이 히비키 외에는 아무런 연락처도 없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게 그 문제의 지뢰작

당시 대체 이게 왜 대상이냐고 일본에서도, 해외에서도 난리남


이하 순위

2위: 금의 나라 물의 나라
3위: 던전밥
4위: 아오아시
5위: 파도여 들어다오
6위: 약속의 네버랜드
7위: 골든골드
8위: 파이어 펀치
9위: 하이스코어 걸
10위: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2018

BEASTARS

(이타가키 파루)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공존하는 세계.
그곳에는 희망, 사랑, 불안이 가득하다.

체리톤 학원 연극부원 레고시는 늑대지만 무척이나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가 다양한 동물들과 청춘 가득한 나날을 보내는 동물 군상극이 지금 시작된다.



이하 순위

2위: 우리들 콘택티
3위: 나기의 휴식
4위: 던전밥
5위: 불멸의 그대에게
6위: 런웨이에서 웃어줘
7위: 고깔모자의 아틀리에
8위: 메이드 인 어비스
9위: 영상연에는 손대지 마!
10위: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2019

저 너머의 아스트라

(시노하라 켄타)


우주를 왕래하는 것이 당연해진 근미래. 

「행성 캠프」 여행을 떠난 카나타, 에리스 등 아홉 명의 고등학생은 

경험한 적 없는 우주여행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행성에 내려선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는 예상치 못한 사태란?!



이하 순위

2위: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3위: 블루 피리어드
4위: 위국일기
5위: 서던과 혜성의 소녀
6위: 북북서로 구름과 함께 가라
7위: 콘고지씨는 귀찮아
8위: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9위: 하쿠메이와 미코치
10위: 나기의 휴식





2020

블루 피리어드

(야마구치 츠바사)


우수한 성적, 뛰어난 처세술.
잘 노는 '불량아'로 통하면서 동시에 인망까지 두터운 리얼충 고교생이 하루아침에 그림 그리는 재미에 눈을 떴다
미대를 목표로 청춘을 불태우는 스포츠 근성 수험 이야기가 지금. 개막된다



이하 순위

2위: SPY × FAMILY
3위: 스킵과 로퍼
4위: 파도여 들어다오
5위: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6위: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7위: 빠졌어, 너에게
8위: 체인소 맨
9위: 마쿠 무스비
10위: 위국 일기






2021

장송의 프리렌

(야마다 카네히코 / 아베 츠카사)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 일행의 '그 뒤'. 

마법사 프리렌은 엘프이며, 다른 3명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녀가 '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느끼는 것과
남은 자들이 자아내는, 장송과 기도란

이야기는 '모험의 끝'에서 시작한다.


이하 순위


2위: 치(チ). -지구의 운동에 대해서-
3위: 가라오케 가자
4위: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5위: 최애의 아이
6위: 괴수 8호
7위: 여고의 별
8위: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9위: 구룡 제네릭 로맨스
10위: SPY × FAMILY


1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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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보 감사합니다 !
만화왕국답네‥
일본 목욕문화엔 그리스인도 충격받을만 하지
@donquixote87 남녀혼탕?‥🙄
@assgor900 목욕물 물려주기?
감사합니다!
뜻밖의 웃음코드가 빵 터지는 요츠바랑!과 작화가 너무도 이쁜 신부이야기는 아직도 재밋게 보고있어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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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3.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여기는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의 이목을 끄는 당시의 영웅호걸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영웅들 또한 후한 말의 난세가 만든 영웅들이며 난세와 영웅탄생의 시작은 바로 "황건적의 난"(黄巾之乱)이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접하는 삼국지 관련 매체들에서는 황건적의 난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난은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열광하는 영웅들의 일대기들과 비교 안될만큼 중요한 사안이며 어쨌건 후한이 결국 삼분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에, 오늘의 삼.이.높 세번째 주제로는 삼국지의 서막을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던 황건적의 난에 대해 다룬다. 1. 왜 "황"건적인거지??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저 문장은 황건적의 난의 일종의 슬로건같은건데, 중국 고대의 자연철학인 "오행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첨부된 사진을 보면 오행설에서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근원으로 '화, 수, 목, 금, 토' 라고 주장했다. (저기에 태양과 달을 넣어 일주일의 명칭이 된거다.) 마치 캡틴 플래닛을 소환하는 땅,불,바람,물,마음같은데 살짝 다르다. 아무튼 저 오행들은 서로 상생하기도, 또 서로 상극이기도 하는데... 황건적의 난의 슬로건은 저 중 상생설을 차용한 글귀이다. 잘 보면 가위바위보처럼 절대적인게 없고 서로서로 맞물려 먹고 먹히는 구조다. (첨부사진 2가 상생, 3이 상극) 오행에 의하면 중국의 한(漢)은 불(火)의 기운을 받아 이룩되고 흥한 왕조여서 그 다음의 세력은 응당 흙(土)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나 세력이라 생각했고, 바로 그 흙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 덧붙여, 불의 기운을 지닌 한나라의 상징컬러는 당근 빨간색이다.(그래서 장기에서도 한 쪽은 글씨가 레드!) 참고로 왜 한이 그럼 불의 기운이냐면.... 한이 건국 전, 진의 시황제의 꿈 속에서 커다란 태양이 자신을 들이받아 자신이 죽는 악몽을 꿨다는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저 꿈이 태양의 기운을 가진 이가 자신(진)을 제끼고 다음 황제(유방의 한)가 된다는 예지몽으로 받아들여 그렇다고.. (물론 본인에게는 흉몽) 이건 나도 정확한 학계 주장이 맞는지가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태양은 오행설에서 당근 '불'의 기운을 지닌 것으로 본다! 하여튼 저 오행설 중의 상생설 탓인지, 후한 이후 삼국시대가 열리고 삼국의 군주들이 저마다 제위에 오르며 썼던 연호에도 이게 반영되어, 후한을 멸망시킨 위의 첫 연호도 '황초(黃初)', 오의 경우도 손권이 왕을 칭하며 사용한 첫 연호가 '황무(黃武)', 다시 황제를 칭하며 쓴 첫 연호가 '황룡(黃龍)'이다. 반대로 한의 계승을 주장한 촉한의 마지막 연호는  '염흥(炎興)'이었다. 후한이라는 불(火)이 꺼져가며 작아진 불꽃(炎)이 다시 흥(興)하여 크게 불타오르리라는 거창한 뜻이였으나 결과는......... 쉽게 말해, 위와 오는 자기들이 후한의 다음 세력이란, 촉은 자기들이 말 그대로 후한을 잇는 세력이란 주장. 2. Who Is 장각? 황건적의 난에 있어 그 시발점이 된 "장각"의 존재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 허베이 성 싱타이 시 쥐루 현 출신의 종교가이자 도사였던 그는 역시 도사였던 "우길"이 그 개념과 교리를 정립한 "태평도"라는 종교를 사실상 창시하고 전파한 인물이다.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민심을 틈타, 주술이나 부적 등으로 병을 고치는 일종의 사이비 야매 수법으로 민심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일컫는 "플래시보 효과" 였을 듯. 보통 사이비교에서 저런 주술이니 부적 따위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대개 다 그렇듯, 플래시보가 겹쳐 나으면 내 덕, 못 고치면 니새끼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불경한 탓이 된다. 아무튼 그짓거리 하고 다니다, 그래도 또 난세는 난세라 그런게 꽤나 먹혔는지 일정 세력이 따르기 시작하자 결국 184년, 장보와 장량 두 동생들과 함께 대장노릇 하며 난을 일으킨다. 거의 중국의 양쯔강 이북 8주(유주, 병주, 기주, 연주, 서주, 청주, 사주, 예주)에 걸쳐 수만 여 명이 봉기했고 사실... 이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후한은 멸망이나 진배없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때부터 후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준했고 한황실도 통제력을 상실했다. 참고로 종교집단에 의한 황실타도의 난리가 일어난 것은 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이 때가 처음. 그리고 저런 거국적 정권타도 목표가 아닐지라도 어쨌건 "종교집단에 의한" 난도 황건적의 난이 최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장각 본인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그 해에 병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기세가 거셌고 장각의 두 동생의 리드도 있었으며 방대한 지역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한 난이여서 그 세가 장각이 죽었다하여 바로 사그라들진 않았다. 일단 당시는 대중매체도, 통신도 전무하다보니 장각의 사망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였고 이미 당시 난의 파워가 있다보니 관성에 의해 기세는 계속 유지되었다. 3. What Is 태평도? 자, 그럼 "태평도"는 또 뭐냐? 위에서 말했듯 일종의 종교였는데, 이 종교라는게... 카톨릭이나 불교, 이슬람과 개신교, 유대교 등등등등 처럼 뭔가 반드시 절대적인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멘탈적 근간이 되는 "유교" 역시 무슨 유교의 신이 존재해서 엑스멘 시리즈의 뮤턴트들처럼 초능력을 흩뿌리고 그래서 생긴 종교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만들고 정리한 여러 사상과 제약 등을 일컫는 "교리"가 생기고 이 교리를 따르고 받드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형성되는 것. 어찌 보면 사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회사동료였고 퇴사 후 거제도에 빙수집 차렸다가 거제 조선경기 망하며 같이 망한 정호형이 내세우는 이론들 중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피우는 것이다." "여자의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남자의 피임은 임신시킨 여자를 피하는 것" "일부다처제란 말처럼 처제도 내 여자다" 뭐 이딴 개소리들이 있는데, 이것도 누군가 '오.. 시발 진리다 +_+' 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고 저기에 맞춰 생각하고 생활하며...(....) 심지어 그런 찐따들이 늘어나고 지들끼리 저걸 전파하며 그러다보면 저 말같잖은 소리들을 교리 삼아 정호형을 교주로 여기는 종교가 탄생하는 것. 그런데 정호형 뭐 하고 사나? 번호도 바뀌었던데... 결국 깜빵 간건가.. 어쨌건 삼천포로 빠졌는데, 태평도 역시 종교고 그 기원은 이미 여러분도 한 두 번은 들었을 "도교"에서 비롯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우길이란 도사가 도교를 베이스로 자기가 음양과 오행관련 이론 등을 믹스해서 교리를 정립한 종교다. 황건적의 난이 중국을 씹창내고 각지의 호걸들과 제후들이 다시 그 황건적들을 씹창냈지만.. 하도 호된 엿을 잡수신 후한의 지도층들은 "태평도 = 황건적"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 후, 황건적과 무관한 태평교도들에게도 홀로코스트를 자행, 태평도가 탄압을 받기에 이르른다. 결국 태평도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게 되었지만 이 도교라는 종교가 갖는 파급력이 당시에는 꽤나 먹어줬던 모양이다. 당장 우리가 흔히 쓰는 도 닦는 "도사"라는 표현도 본래 도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또 거기 맞춰 생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였다. 결국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 구수히 들려주시던 배추도사와 무도사도.. 탈모인들을 좌절에 빠뜨린 머털도사도... 전우주 최강의 전사인 카카로트를 키워낸 명스승 무천도사도... 도교를 연마하시는 분들이였다!!!......는건 뻘소리고 아무튼 그렇게 우리네 일상 속 단어의 유래를 꿰찰만큼 영향력이 있던 종교라는 거다. 하여간 도교는 태평도처럼 여러 아류들이 생겨났는데 또 그 중 하나가 삼국지 속 유명인사 중 한 명인 한중의 "장로"가 이끌던 "오두미도"였는데 이는 추후 따로 설명! 4. 황건이 배출한 스타들. 중국 전역에서 수 만 여 명으로 스타트하여 전성기 때 대략 추산 20여 만 명에 이르던 황건적들답게 삼국지연의 속에는 어느 정도 난이 제압된 이후 그 출신 스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모두 다 나열할 수는 없으나 네임드들만 대충 거론해 보자면.... 관우의 사이드킥이던 주창, 역시 관우의 사이드킥 출신으로 훗날 촉의 주력 장군까지 올라갔던 요화, 관우의 사이드킥 합류 일보 직전, 조운의 한 창감으로 전락한 비운의 소시민 배원소, 관우의 오관육참 스테이지의 보스 중 하나던 변희, (뭐 이리 관우랑 엮이는 것들이 많나) 유비가 떠돌던 시절, 힘을 합쳐 조조세력과 잠시 맞다이 뜨던 여남의 유벽과 공도 콤비, 도겸의 지시를 받고 조조의 부친인 조숭을 호위하던 중 재물을 노려 조숭일행을 올킬하고 먹튀한 장개, 뭐 당연한 소리지만 장각, 장보, 장량의 삼형제 등등.. 그럼 그렇지, 이 중 반 가까이는 허구의 존재들이다. 주창, 배원소, 변희는 나관중이 지어낸 인물들이고 요화는 황건적 출신은 커녕 오히려 나름 명문가의 귀한 아드님을 나관중이 뭔 억한 심정인지 도적출신 떠돌이로 전락시킨 연의의 피해자 1... 장개도 사료에는 그냥 도겸군의 도위라는 계급의 하급 장교였다고만 나오지, 황건출신이란 언급 없다. 나머지 인물들 및 소설 속 등장하는 다른 황건출신들 역시 실존은 했으나 하지도 않은걸 했다 하거나, 반대로 한걸 안했다거나 스킵하는 등의 각색들을 당한 경우가 많다. 뭐 대개는 삼국지속 영웅들의 초창기에 경험치를 올려주는 잡몹 수준의 비중들이긴 하지만...ㅎ 5. 무엇을 원했나? 황건적의 난 이전에 저런 전국구급 대규모 난으로 진나라 말기에 있었던 "진승 & 오광의 난"이 있다. 이 또한 중국사 최초의 농민(서민)의 난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난이며 이 난의 모토는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법한 "왕후장상 따로있나, 못살겠다 갈아엎자" (박력있다ㅋㅋㅋ) 아무튼 저 난의 주동자나 모토나, 여러모로 신분 및 계급에 의한 차별과 부조리를 타파 위한 평등지향적 쿠데타였지만, 황건적의 난은 엇비슷해 보이긴 해도 근본이 다르다. 장각한테 누가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아니고, 장각도 어디에 딱 꼬집어서 '아, 저희 황건은 XX를 위한 서민집회입니다! 박ㄹ혜 하야!!' 했던건 아니다보니 역시 여러 정황근거들 통한 훗날 사학자들의 추측이긴 하지만, 여러 근거들과 장씨 3형제의 행태를 볼 때.... 결국 그들의 파이널은 유씨의 한 황실을 엘리시킨 후, 장씨들의 새 황실을 만들려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들고 일어난 백성들 역시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무능한 한 황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분노하여 '장각이나 태평도가 어떤진 잘 몰라도 일단 한은 뻑큐!'라며 분기한 것이 대부분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단 황실의 몰락과 그로 인한 권신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그런 황실의 레인지에서 벗어난 지방 제후들의 마구잡이식 백성 프레스, 설상가상의 갖은 대규모 자연재해... 이런 이유들로 전염병과 기아의 확산, 그에 따른 엄청난 인구감소... 위의 이유들에서 비롯된 1차 산업 붕괴로 인한 경제파탄, 높아지는 범죄율과 반비례하는 치안.. 이건 뭐 그야말로 헬, 그 자체. 막장궁지에 다다른 백성(농민)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마침 가려운 곳 긁어주는 태평도와 인간 사이다 장각의 쇼에 넘어가게 되었던 것. 당시 백성들은 당연히 지적수준들도 낮고 정치에 관한 성숙한 의식과 식견들도 없다보니 냉철한 판단도 없었고... 6. gg........ 기세 좋게 번져 오른 황건적의 난. 그러나 여러 한계들로 인해 결국은 실패하여,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들은 황건혁명, 황건운동 등으로 들었겠지만 승자의 편인 역사 탓에 끝내 "난"으로 명명되고 말았다. 패인 1. 장각의 부재. 일단 장각은 이 모든 사태의 주동핵심이였다. 그런 장각이 난의 시작해에 병사함으로 인한 컨트롤타워와 구심점의 부재는 실로 치명적이였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없이 대회를 치렀어도 과연 그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해본다면 뻔하다. 황건적은 정규군대 아닌, 그냥 농사짓고 생선잡고 장사하던 평백성들... 그것도 대개 굶주림에 지쳐있던, 무기 한 번 안잡아보고 전투 한 번 못치뤄본 평민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지휘자의 리딩이 중요했는데, 역시 군지휘관도 아니라 지휘통솔력이 검증안된 장각이 살아 이끌었어도 어떨지 모를 와중에 어쨌건 황건적들의 정신적 지주인 장각의 부재는 매우 컸다. 패인 2. 전투력. 위의 언급대로 황건적의 9할 이상이 그냥 백성들... 아무리 후한이 괴멸직전의 상태였다한들,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의 지방을 이끄는 제후들은 제법 상당한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로마군과 게르만족들의 전투,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에스파냐 콩키스타도르들과의 전투, 동학군v일본군, 광주민주화항쟁 등등 아무리 숫자 많고 기세 등등해도 체계적 군율로 통제되며 훈련된 정규군을 이기긴 매우 버겁고 벅차다. 일반 백성들이 그저 숫자 많고 기세만 높다하여 제대로 통솔도 안되는 와중에 싸움이 될 리 없고, 개개인의 전투력과 무장수준도 형편 없었으며, 또 저런 급조된 오합지졸들은 약간만 전세가 불리해지면 나 살자고 도망치다 자기들끼리 밟히고 치여 죽기 바쁘다. 패인 3. 명분. 황건적들도 쪽수가 불고 세가 오르자 결국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긴 매한가지였다. 일단 기강이 없어 제대로 된 컨트롤도 안되고 정규훈련이나 교육도 부재하니 무슨 최소한의 기본적 윤리나 규율도 없었고... 당장 배는 고픈데, 병참체계가 있길 한가, 지원시스템이 있길 하나.. 결국은 도적질이 답. 그러다보니 황건에 가담 않은 다수의 백성들의 인심도 잃고,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삥 뜯는 세력이 늘었을 뿐. 그렇게 명분을 잃다보니 백성들의 지원과 후원도 줄고, 가담자들 역시 실망과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여 이탈하고.. 저런 쿠데타나 혁명 등의 봉기는 구성원들의 집결과 응집을 위해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을 잃은 봉기는 그냥 끈 떨어진 연이 될 뿐. 정말 확실분명한 대의명분이 있고 또 그게 유지 되었다면... 유비, 조조, 손견, 원소, 동탁, 마등, 공손찬 등의 숱한 히어로들은 아마,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둘러멨을지 모른다. 이번 삼.이.높.3의 주제인 황건적의 난은 삼국지에 대한 칼럼을 다루려면 결코 생략해선 안될, 오히려 반드시 거론하고 가야할 주제라 생각해서 쓰게 되었는데... 오우, 막상 쓰려다보니 지금까지 써온 주제들에 비해 제가 아는 부분, 기억 나는 부분이 적더라구요...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자료들 다 찾고 뒤적이며 저도 공부해서 쓰느라 좀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었어요 T-T 다들 쉽게 이해가 갈지, 지루하고 두서 없어 노잼은 아닐런지 가장 걱정되는 카드가 될 듯 합니다. 쓰기는 제일 고생해서 썼는데...ㅎㅎ 아무튼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팔로우, 좋아요, 클립과 댓글들이 이런 힘듦과 시간할애를 아깝지 않게끔 해줍니다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제 동생이 자기 시어머니를 때리고 고소당할 위기입니다.
제 동생이 자기 시어머니를 폭행했습니다. 혹시라도 법정싸움까지 가거나.. 아니 그냥 고소라도 당하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여기에 우선 글을 남겨 봅니다. 둘째 조카가 최근에 많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앓다 지나가는 장염인줄 알았는데 며칠은 밥을 못 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아이가 기력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열흘이 넘게 입원했다가 퇴원했고 회복 단계라서 죽이나 부드러운 계란찜 같은 음식 먹으면서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제 동생도 워킹맘이라 여름휴가 때 쉬지도 못하고 둘째 옆에 꼭 붙어 있었고 연차를 계속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보니 제부도 바통터치하듯 연차 써 열심히 도왔습니다. 특히 제 동생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첫째 조카 집에서 엄마 공백 느껴지지 않게 잘 케어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필 방학이라 1학년인 첫째가 학교도 가질 않으니 낮에는 할머니집에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부는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첫째 돌봤습니다. 어차피 방학이라 첫째 할머니 집에 며칠 맡기면 제부도 좀 편하고 너랑 번갈아가면서 병원에서 보호자 자리 지킬 수 있으니 괜찮지 않겠냐 했는데 첫째 조카가 할머니 엄청 싫어한답니다... 그래서 아빠든 엄마든 데리러만 가면 10분도 못 앉아 있게 하고 집에 가자고 엄청 떼쓴다구요.. 그런 애를 할머니집에서 며칠을 지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저야 조카보다 제 동생 몸 축나는 게 더 걱정이니 울던 뒤집어지던 맡기라 하고 싶었지만 첫째가 할머니 싫어하는 이유를 듣고는 맡기라는 말이 잘 안나오더라구요.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입니다. 경상도 촌구석에서 살다 아들 결혼하고 나중에 외롭게 혼자 죽을까봐 무서워 서울 올라와 아들집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는데, 그렇게 아들, 딸 손주 차별이 심하답니다. 그런데 조카 남매의 우애가 정말 좋습니다. 어린애들이 어디서 그렇게 배려와 양보를 배웠는지 완전 첫째는 동생 바보고, 둘째는 오빠 바봅니다. 맛있는 반찬하면 할머니는 손자만 먹으라고 계속 밀어주고, 손자는 동생 먹으라고 반은 덜어서 동생주는데, 그래서 동생이 좋다고 먹으려고 하면 할머니가 밥 먹고 있는 아직 학교도 안간 손녀 뒷통수를 때린답니다. 그래서 할머니 내 동생 왜 때리냐고 첫째가 씩씩 거리면서 화내면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너 먹으라며 또 고기 반찬 첫째한테 밀어준답니다. 이게 잠깐 제 동생 내외가 지방에 친한친구 부친상 가느라 애들 할머니 댁에 맡겼을 때 일어난 일이래요. 집에 가자마자 첫째가 먼저 뛰어와서 할머니가 동생 때렸다고. 동생은 잘못한거 하나도 없는데 때렸다고 자기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화내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두 아이가 다 할머니 댁에 가는 게 싫겠죠. 그래서 처음엔 남매 둘다 가기 싫음 가지 말라고 안 보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애들 할머니가 집에 쳐들어오더랍니다. 오는 사람 문전박대 할 수도 없어 들어오시라고 하면 또 첫째만 물고 빨고 대놓고 차별한대요. 둘째가 유치원 방과후로 발레를 하는데 발레 연습복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면 등짝이 빨갛게 올라오도록 때리고 기지배가 남사시러운 옷 입고 부끄러운지도 모른다며 욕하길래 놀래서 울지도 못하는 둘째 끌어안고 당장 나가시라고 제 동생이 소리 지르며 쫓아내려니까 갑자기 첫째 아이를 끌고 다신 안 온다는 식으로 나가려 하더랍니다. 근데 그때 첫째가 자기 손 잡고 있는 할머니 손을 물었습니다... 내 동생 때리지 말라고. 우리집에 오지 말라고. 그 일로 충격 좀 쎄게 받았는지 제 동생한테 그 할마시가 눈치 좀 보면서도 둘째 얘기는 일절 안하고 첫째 손주 보고 싶다고, 한번 들르라고 그렇게 귀찮게 군대요. 계속 딸아이한테 트라우마가 될 상황을 만들어 줄 수는 없고 애 할머니는 계속 아이 보고 싶다 하고.. 제부 방패막이 삼아 봤더니 그 할망구가 어디서 술마시고 집 앞에 한밤중에 와서 행패 부리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답니다. 아이 초등학교도 이제 들어갔는데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들도 할머니 보고 싶단 소리 안하고, 그 집 두 부부도 그냥 없는 셈 치고 한 3개월 살았는데... 이번에 둘째 조카 아프면서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소원 이뤄주는 셈 첫째 맡긴거죠. 제가 전업주부면 며칠 데려다가 봐 줬을텐데 저도 일을 해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희 친정 엄마는 KTX로도 4시간은 걸리는 곳에 사시거든요. 그리고 오빠네 손주들 거의 전담으로 키워주고 계셔서 올라와 계시기도 힘드시구요.. 결국 제 동생이 둘째 학교 들어갈 때 쯤 쓰려고 남겨 두었던 2개월 가량의 육아휴직을 지금 꺼내 썼습니다. 둘째 퇴원은 했는데 집에서 계속 죽 먹여가며 한동안은 케어해야하고 자기가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가 아픈 것 같다며 자책감에 빠져서 결국 남은 육아휴직을 써서 아이 곁에 있어주기로 한거죠. 첫째는 남은 방학기간동안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다니 신났고, 둘째도 병원 분위기 보다 집에 있으니 훨씬 빨리 회복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통화하면서 들으니 동생 목소리가 많이 지쳐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나아지는 상황이라니 저도 다행이다.. 했구요. 그런데 어제 광복절이라고 엄마 아빠 둘 다 집에서 쉬니 조카들 좋아서 난리겠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녁때 쯤 동생한테 전화가 와서는 대성통곡을 하는겁니다. 전 둘째 또 상태 안 좋아진 줄 알고 놀랐는데 하는 말이.. 자기가 시어머니를 때렸대요. 아니 때린게 아니라 정말 많이 팼대요. 뺨 올려붙이고 넘어뜨리고 발로 밟고 차고 했다고. 앞뒤 설명 없이 그저 시어머니를 팼다고 하면서 우니까 저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우선 진정하라고 했지만 도무지 진정할 기미가 없었고.. 결국 미안하다며 전화를 동생이 먼저 끊었어요. 다시해도 안받길래 제부한테 전화했더니 나중에 다시 전화드리겠다며 제부도 바로 끊었구요. 그리고 오늘 아침이 돼서야 제가 너무 걱정이 돼서 전화 했더니 동생이 하는 소리가 둘째 아파서 한동안 몸고생 맘고생 하다가 간만에 온 휴일인데 또 아침부터 전화통 불나게 첫째 데리고 들르라고 시어머니가 전화를 해댔답니다. 그동안 꽤 오래 끼고 있었으면서. 할머니 집 가잔 소리도 안했는데 첫째가 할머니랑 통화하는 거 눈치 채더니 안간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고 오늘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하고 전화 끊었대요. 자기가 둘째 챙기는 동안 시어머니가 첫째 돌본 건 사실이니 모진 얘긴 못했구요. 근데 할머니집 가기 싫단 소린 해도 할머니가 싫다 같은 얘긴 안하던 첫째가 할머니가 너무 싫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정확히 “끔찍해” 라는 말을 썼대요. 그래서 제부가 할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살짝 무섭게 말했는데 첫째가 하는 말이 할머니 집에 있을 때 할머니가 둘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뭐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하얘졌는데 무슨 얘긴지 듣기나 해보자고 앞뒤 상황을 말해 보라니까 그냥 할머니가 뉴스 보면서 저 여자애처럼 동생도 죽었으면 좋겠다 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자기 볼을 꼬집었다고. 아무리 들어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가다 보니 제 동생은 직접 어머님한테 물어보러 가겠다며 자리 박차고 일어났고 제부는 아직 기력 안돌아온 둘째 데리고 이 더운 날 이동하는 것도 어렵고 첫째도 소리지르면서 할머니집 안간다고 하는 상황인지라 바로 제 동생을 쫓아 나가지 못했대요. 그래서 집에 가서 시어머니 보자마자 인사고 뭐고 생략하고 첫째한테 둘째가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물으니까 도통 무슨 소리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는 얼굴을 하길래 뉴스보면서 첫째한테 둘째 죽었으면 좋겠다 하셨다면서요?? 했더니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어린이집 버스에서 폭염에 죽은 여자아이에 관한 뉴스 나오는데 그때 그냥 노친네 노망나서 한소리니까 신경쓰지 말라 했더랍니다. 그래서 진짜 자기 눈 뒤집히는 꼴 보고 싶냐고 그게 노망이 아니라 악귀가 쓰였다고 해도 할 소리냐고 소릴 질렀더니 그날 낮에 첫째가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울었다. 기지배가 어디서 뭐 이상한 걸 주워 먹고 탈이 생겼는 진 모르겠지만 너네가 둘 다 기지배한테 붙어서 장손은 신경도 안 쓰니 첫째가 안쓰러워서 한 말이지 진짜 죽으라고 자기가 한말이겠냐며 너무 당당하게 지껄이더래요. 그래도 그때까지도 말로 그냥 다시는 첫째도 볼 생각 마시고 인연 끊고 살자고 이사를 가던 오던 어디서 사시던 상관없고 죽을 날 받아 놓으시면 그때 상주 노릇은 할 테니 연락 주시라고 하고 가려는데 뒷통수에다 대고 그 미친 할망구가 한다는 소리가 결국 어디 쓸데도 없는 가시나 하나 낳더니 친손주랑 할머니 사이에 천륜을 끊는다며 내가 이러니 죽으라 소리가 안나오겠냐고 둘째만 없었으면 어디 첫째가 자기한테 씩씩 댈 일이나 있었겠냐며 그래서 차라리 뒈지라고 했다고. 이번에 앓아누운 김에 아주 그냥 골로 갔어야 됐다 했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기억 안 난대요. 그냥 무작정 팼대요. 너나 죽으라면서 소리도 안 지르고 그냥 조용히 패기만 열심히 팼대요. 그러고 있는 남편이 와서 말렸다면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할망구 무슨 말 하는지 녹음할 생각도 못했고 신랑이 자기 잡아 뜯어 낼 때도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패던 중이었다면서요. 그 노친네는 노인폭력으로 신고하고 이혼시킬거라고 하면서 근처 응급실에 나죽네 하면서 실려갔다가 입원하실 정도의 외상 아니라면서 입원 거부당했는데 계속 입원시키라고 안 그럼 죽는다고 진상 부리다가 또 쫓겨났고... 동네에 나일롱 환자들 많이 가는 정형외과 입원했대요. 어제 오후 내내 노친네 입원하겠다고 난리치니 꼭 입원하셔서 진단서 떼 오라고 제부한테 시켜서 입원시켰댑니다. 그러고 다 저녁에나 신랑이 집에 오자마자 이혼하자 하길래 너네 엄마 맞는거 보니까 안쓰러웠냐고 난 내 딸 죽어 버렸으면 하는 미친년 팬 거라 전혀 미안하지 않으니 그래 이혼하자 했더니... 그게 아니라 자기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노친네랑 애들을 안 만나게 할 방법이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그냥 자기가 이혼하고 노친네 옆에 붙어서 애들 건들지 말라고 하고 자기 혼자 엄마랑 같이 늙다 죽는 게 나을 거 같다면서 못난 아빠라 미안하다고 울더랍니다... 결론적으로는 첫째한테는 미안하지만 올 가을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이사 가는 곳을 어머니께 절대 알리지 않고 앞으로 엄마 없는 듯이 사는 거에 동의했대요 제부도. 만약 어머님이 찾아오면 그 순간 이혼하는 거고 만약 이번에 때린 걸로 재판이라도 해야 하면 그 외에는 얼굴 볼일 없어야 하는 걸로 각서까지 쓰구요. 제부도 정말... 본인이 외동이라 이렇게 아들 딸 차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애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왕래하고 안 살거라고, 자기도 질렸고 기회 줄만큼 줬다고 각오는 제대로 했다고는 합니다. 진단서는 전치 3주 나왔는데... 정말로 시어머니가 제 동생 고소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 소리 듣고 가만있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싶은데 녹음한 것도 없으니 증거도 없고... 이 소릴 듣고 있으니 이미 제 동생은 멘탈이 가루가 된 지경이라 뭐라도 돕고 싶어서요. ㅊㅊ 아니 내가 대체 뭘 본 거야;; 미쳤나봐요.... 제목만 보고는 아무리 그래도 노인을 때리면 어떡해 했는데 이건 뭐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는 난데도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데요.....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엄청난 우주의 구성
1. 지구 너무 잘 아니 설명생략 2. 태양계 우리 지구가 속해있는 곳 3. 카이퍼 벨트 & 오르트 구름 태양계를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예상하고 있는 가상의 천체집단 4. 우리 은하 지름 약 10만 광년 그렇게 거대한 태양조차도 우리 은하에만 5~6천억개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됨 그런데 우리 은하도 아주 작은 은하에 속하며, 바로 이웃 은하라는 안드로메다 은하에는 항성만 1조개가 넘개 존재할 것으로 예상 5. 국부 은하군 우리 은하, 안드로메다 은하같은 은하들이 약 50여개가 모여 구성되어 있는 은하군 가장 작은 은하 무리를 은하군이라고 부름 그 중 우리가 속해있는 곳이 국부 은하군 (우리 은하군은 30여개로 구성되어 있음) 우리 은하가 속한 국부 은하군은 지름만 약 500만 광년 그런데 이 국부 은하군은 은하군들 사이에서도 작은 은하군으로 분류됨 스테판 오중주라고 불리는 밀집은하군 6. 은하단 수백~수천여개의 은하들이 중력으로 묶인 곳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35억광년 내에서만 약 20개에 가까운 은하단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 처녀자리 초은하단 우리 은하가 속해있는 초은하단 국부 은하군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때로 국부 초은하단이라고 불림 처녀자리 초은하단에만 약 5만여개에 가까운 은하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 예전에는 처녀자리 초은하단이라고 표현했는데, 2014년 이 처녀자리 초은하단은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으로 편입됨 8.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저 처녀자리 초은하단조차도 이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일부일 뿐 초은하단이 여러개가 모인 곳이 바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즉, 지구, 태양, 태양계, 오르트구름, 우리 은하, 국부 은하군, 처녀자리 초은하단을 포함한 집합체 당연히 우주에는 이런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이 여러개 존재함 대표적으로 섀플리 초은하단 바다뱀자리-센타우루스자리 초은하단 물고기자리-고래자리 초은하단 히페리온 원시 초은하단 같은 것들이 있음 9. 슬론장성 우주의 거대한 벽 관측 가능한 우주 지름의 약 1/60에 해당됨 대표적으로 우주에서 가장 무겁고 거대하다고 알려진 헤라클레스자리-북쪽왕관자리 장성도 이런 유형 10. 우주 필라멘트 우주 거대가락이라고 불리는 곳 우리 지구부터 장성들까지 전부를 포함하고 있으며, 크기는 약 930억 광년으로 추정됨 일부의 학자들은 이 필라멘트조차도 우주의 아주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음 (출처) 요즘 우주 여행을 다녀오는 슈퍼리치들이 생기고 있으니(사실 우주여행이라기엔 그저 성층권을 벗어난 것 뿐이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죠.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이렇게나 방대한데 실제 우주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망망함이겠죠. 셀 수 없이 많을 여러 종의 생명체들이 있을텐데 죽기 전 한 번은 만날 수 있을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디아더스의 귀신과 사람의 공존처럼 어쩌면 우리와 어떤 외계 생명체는 다른 물질로 만들어져 서로를 인식하지 못 한 채로 공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일본 유명 만화가/평론가들이 극찬하고, 몇 시간 째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단편 만화...jpg
(보면서 들으면 좋은 노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함) 체인소맨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신작 단편 만화 <Look Back> 연출, 감정선, 기승전결 완벽하다고 극찬받고 있음 그리고 오피셜은 없지만 쿄애니 방화 사건 2주기 헌정 단편이 확실해서 (어제가 2주기, 후지노+쿄모토=후지모토, 쿄(京)모토=쿄(京)애니, 후지모토 타츠키는 인터뷰에서 '좋아해서 몇 번이고 돌려보는 애니'로 쿄애니 작품들을 꼽은 적 있음) 쿄애니 방화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많이들 말하고 있음 + 다른 글에 있던 댓글 인용함... 쿄모토는 후지노가 이끌지 않았어도 결국 그림을 동경해 방 밖으로 나왔을거지만 후지노가 만화를 계속 그리던 이유는 쿄모토 하나 였다는거... 하지만 쿄모토가 죽어도 인생은 계속되니 후지노도 멈추지 않고 만화를 그리는 미래를 이어 가는거야 + 좋은 해석 댓글이 있어서 인용! 내 개인적 해석이지만 만화적 연출로 평행세계랑 잠시 이어진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그 평행세계 부분이 말하고자하는건....후지노는 쿄모토가 본인이 아니었으면 방 안에 틀여박혀서 그림 그리는 것도 포기하고 안 나왔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쿄모토는 후지노가 아니었어도 방 밖을 나와 미대를 갔을거고, 오히려 반대로 본인(후지노)이 쿄모토가 있었기에 가볍게 생각하던 그림에 열중하게 됐고 흥미를 잃어가던 만화를 포기하지않고 계속 그릴 수 있었다는걸 깨달은거지.. 본문에 추가된 댓에서도 말하듯이 비록 쿄모토는 죽었지만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준 원동력은 사라지지않으니 그 힘으로 또 계속 만화를 그려가는거...ㅠ 출처ㅣ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