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wg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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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1일차.

6시15분 차를 운전하여 삼전동 집을 나설 때 비가 내렸다.
염곡동 사거리를 지나 강남순환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 연안부두까지 1시간 남짓 걸린 7시 13분에 도착했다.
강남순환고속도로 들어설 때 1,800원 + 나올 때 1,700원 + 제2경인 450원 = 3,950원의 통행료가 무료도로보다 15분을 앞당겼다.
7시50분 미끄러지듯 인천항을 빠져나와 인천대교 밑을 지나고 소청도의 하울의 성같은 통신탑이 보일 때까지 3시간 10분, 대청도까지 15분이었지만 화물이 많았는 지 대청도 선착장에서 꾸물대더니 백령도에 11시 50분에 도착했다.
힐링펜션 쥔장이 렌트카를 용기포선착장까지 가지고나와 타고 백령로를 따라 펜션까지 갔다.
1층 방 하나, 화장실 하나, 계단 위 다락방 하나, 거실 하나, 주방 하나로 10명은 숙박해도 되는 큰방이었다.
금요일밤이라 손님이 없어서 작은방 값인 7만원에 큰방을 준것이다.
아반떼를 타고 심청각 앞 콩깍지로 가서 짬뽕순두부와 굴순두부 각 8,000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심청각으로 갔다.
대인 1,000원이었지만 매표소 직원이 점심먹으러 갔는 지 공짜로 들어가 장산곶을 보고 주차했다.
심청이를 빠뜨렸던 인당수가 장산곶 앞이라면 엄청 많은 배들이 좌초했을텐데, 통일되면 보물선 발굴로 북적댈게 뻔하네.
콩돌해변을 먼저 보라는 펜션쥔장의 말에 따라 모래보다 크고 바둑돌보다 작고 길쭉한 쌀알같은 콩돌해변에서 맨발트래킹을 하고, 남포리 습곡을 찾다가 용틀임바위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까나리 여행사 버스가 있었다.
천안함 위령탑을 들르지 않고 두무진으로 직행하여 주차하고, 걸어서 왼쪽 산으로 가서 육지에서 두무진을 관광했다.
수직으로 줄선 바위들이 작은 장가계를 보는 듯했다.
30분이나 일찍 유람선 매표소에 가서 매표하고 오른쪽 끝 자갈밭에 앉아 두무진 나루를 아이쇼핑했다.
4시에 승선하여 4시20분 출항 두무진 유람선을 타고 선암대, 코끼리 바위, 부처바위, 심청이 타고온 잠수함을 보고 천안함위령탑 앞바다에서 배를 돌려오는데 40분이 걸렸다.
돌아오는 길 사자바위를 보러갔다가 방파제 옆으로 갈수도 없고 육지와 바위사이에 테트라포드로 막아놓아 경관을 버려놓아 실망했다.
저녁으로 조개구이 무한리필에 갔다.
인당 26,900원에 키조개, 백합, 피조개가 관족도 잘 안익고 전복과 꼬막을 몇개 먹다보니 입에 잘 안 맞아 바지락과 꼬막, 동막 한바가지 넣고 새우 두마리 섞어 안성탕면 끓여 먹었더니 육수가 천상의 맛이었다.
물론 삶은 조개살이 안 익은 것도 없고 맛도 둘이 먹다 둘이 다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힐링편션로 돌아오니 저녁 7시, 울타리에 심은 앵두 몇개를 따먹고 잔디밭가에 심어진 알록달록한 톱풀과 금계국, 꽃양귀비, 노란 낮달맞이꽃, 검붉은 우단동자를 감상하다가 내일을 위하여 씻고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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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 괴벨스의 일기 中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읽고 또 다시 유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귀한 독일 인종이 물질주의 때문에 타락했고, 그 원인은 유대인이다. 독일 민족을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체임벌린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은 증권 자본주의고, 그 증권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믿었다. 괴벨스역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모두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고민이 생기면 모조리 민족 문제와 연관 시켰다. 이제 완전히 민족주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독일을 깊이 사랑하고 애국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심해졌다. 192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유대인 귀신들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악몽을 꾸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히틀러를 만난 뒤로 반종교주의자로 돌아선다.  -히틀러 덕에 출세하여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괴벨스는 그것을 두고 '구역질이 난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는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였고, 여자를 실컷 만나며 청년 시절의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부논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처음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이 일생의 목표였던 괴벨스는 히틀러를 열심히 졸라댔고, 결국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시민권을 상실했다. 나치는 자(제도기)를 사용해 유대인을 감별해냈다. -실제로 학살 집행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대학살 계획에 있어서 괴벨스 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유대인 낙인' 찍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학살하거나 고문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못나고 열등한 모습, 늘 도태되었던 모습,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저주했으며, 그것을 매우 증오했다.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일당은 '인종 대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돌격대가 침대에서 유대인을 끌어내 죽였고 1939년에는 유대인을 가축 트럭에 실어 수송하기 시작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3,5000명의 유대인을 색출해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 노인은 따로 모아서 모두 죽였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살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절름발이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그는 선전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천명의 선동가를 양성했고, 여러 종교 단체를 진압했으며,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바로 유대인 척결.  -현재까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뚜... 뚜... 뚜.... 삐이~"소리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사람들을 방송에 집중시키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다.  -그는 tv와 라디오를 정치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괴벨스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괴벨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 잔치도 베풀어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뛰어난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했다. 히틀러 역시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숭배했다. -괴벨스는 전쟁이 불리해질 수록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과 싸워야 한다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 학살이 서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 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나치 제국이 완전히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역시 그를 뒤따라가겠다고 하며 처자식과 함께 음독 자살을 했다. -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그래, 모두 데리고 가련다. - 1945년 괴벨스의 마지막 일기 中 출처
범고래와 유일하게 맞짱 뜨는 동물
북극과 가까운 배링해는 고래들의 양식장 같은 곳임 배링해는 태평양 고래들이 1년치를 먹어도 남을 갑각류와 플랑크톤이 있음 고래들은 새끼를 위해 따뜻한 남태평양에서 육아를 하고 새끼가 어느정도 자라면 배링해로 이동함 배링해를 가기 위해선 태평양과 배링해를 마치 자연 방조재 마냥 갈라놓은 알류산 열도를 통과해야 하는데 유일한 통로는 '유니맥 패스'라는 해역 임 하지만 유니맥 패스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지구최강의 포식자 범고래가 가로막고 있음 힘들게 태평양을 건너 지칠대로 지친 고래들이 유니맥 패스에서 범고래의 공격을 받으면 거의 당해낼 방법이 없음 범고래의 타겟은 새끼고래인데 사진처럼 바다위로 못뜨게 해서 익사시킴 유니맥 패스를 지나는 새끼고래 50%가 범고래 공격을 받아 죽음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어미를 잃고 혼자서 유니맥 패스에 온 새끼 귀신고래 한마리가 있었음.. 전문가들은 어미가 범고래의 공격을 받았거나.. 힘든 여정에 체력이 고갈되어 죽은 것으로 추정  만약 어미도 없는 상태에서 범고래에 걸리기라도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음 (촬영팀 조차 무사히 해역을 통과 했으면 하는 바램) 하지만 범고래 무리는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타나서 새끼 귀신고래 쪽으로 달려옴 결국 범고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새끼 귀신고래.. 지구최강포식자 앞에 새끼고래가 살아날 확률은 0% 그런데.... 멀리서 큰 괴음을 울리며 거대한 대형고래 무리가 새끼고래가 공격받는 곳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옴 그 대형고래의 정체는 범고래보다 크기나 힘이 몇배나 큰 '혹등고래'  기적처럼 나타난 혹등고래들은 새끼 귀신고래를 구하려고 범고래들과 패싸움을 붙음 30년동안 고래를 연구 했다는 전문가는 혹등고래가 거의 유일하게 범고래를 무서워 하지 않고... 범고래로 부터 다른 동물을 구해 줬다는 얘기는 몇번 들은적은 있지만... 진짜 혹등고래가 종족이 다른 귀신고래새끼를 구하려고 내눈 앞에서 범고래와 싸우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고..... 그리고 현존하는 지구최강 포식자라는 '범고래찡' 도망감 ㅋㅋ 전문가도 30년동안 처음 본 광경 이라고 함 혹등고래 2마리는 성이 안풀렸는지 도망가는 범고래 뒤를 계속 쫓아감 기사에 사진은 범고래로 부터 물범을 구하는 혹동고래를 촬영한 것임... 물범을 구하기 위해 범고래가 포기할때까지 지느러미사이에 물범을 잡은채 배영으로 20분 이상 있었다고 함 전문가는 혹등고래가 무슨 이유 때문에 다른 동물을 구하려 하는지는 알수 없다고 함.. 혹등고래 자체가 아직 베일에 쌓인 동물이라 함
삶이라는 아이러니.jpg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두 사람은 시위대와 경찰로 다시 만나게 된다 괴벨스의 결혼식과 해방 후 부셴발트 수용소에서 발견된 수천개의 반지들 베트남전쟁에서 네이팜탄 투하를 지켜보는 군인과 네이팜탄을 피해 도망가는 어린아이들 1945년, 패전 소식을 듣는 독일군과 수용소행 열차에서 해방된 유태인들 911테러의 사상자는 삼천명에 달하고, 그 중 이백명 가량은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다. 참사 10주년 기념관을 맞아 개관한 기념관에서 오열하는 로버트 페라사. 이 사람의 아들은 사건 당시 북측 타워 104층에 머물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장례식장, 8살의 크리스찬 골츠니스키.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군의관 테리 구롤라와 딸의 재회. 1942년, 네덜란드의 은신처에서 밖을 내다보는 안네 프랑크 종전 후 은신처였던 네덜란드의 다락방으로 돌아온 오토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쓴 딸 아넬리스를 비롯한 은신처 식구들은 모두 죽었고, 오토 프랑크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브룩클린의 레스토랑에서 암살된 마피아 보스 조 마세리아. 죽는 순간 그가 쥐고 있었던 스페이드 에이스의 의미는 힘, 그리고 죽음. 출항을 기다리는 타이타닉 호, 그리고... 순서대로 고베 폭격/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그리고 일왕의 패전선언이 있었고 이 사진은 일본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맥아더 장군 1985년 스웨덴, 집회중인 네오나치의 머리를 핸드백으로 가격하는 다누타 다니엘손. 폴란드계 유태인이고 이 사람의 어머니가 아우슈비츠 생존자라고. 다니엘손은 지병이었던 정신적 문제로 결국 자살하고 말았고, 다니엘손이 때린 네오나치남 Seppo Seluska는.. 같은해 유태인 동성애자를 고문하고 살해해서 수감됨..... 1996년, KKK 반대 시위 도중 백인우월주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을 시위대가 폭행하기 시작했고, 시위 참여자인 케샤 토마스가 그를 온 몸으로 감싸 보호했다. 이 사진으로 케샤 토마스 역시 인종운동의 아이콘이 되었음. 출처
서울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황화코스모스 만개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들꽃마루 #서울황화코스모스 #서울올림픽공원 #서울가볼만한곳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토요일 주말 날씨가 참 좋았는데요. 어디로 여행 다녀오셨나요. 요즘 하늘 하늘이 높고 푸르러서 정말 사진 찍으면 쨍하고 이쁜데요. 가을 사진 멋지게 담기 바랍니다. 오늘 소개하는 곳은 서울 꽃구경할 수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황화코스모스가 만발해서 잠깐 다녀왔는데요. 주말 가볼만한곳으로 서울 가을 나들이하기 좋은 곳입니다. 서울 데이트코스로 최고입니다.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지로 추천해요. 혼자 여행갔다가 길벗들을 만나 즐거운 사진 찍기를 했습니다. 커플은 물론 여여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7팀에게 사진을 찍어 드리면서 다양한 포토존에서 사진 연출하느라 서로 웃고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현재 올림픽공원에는 들꽃마루의 황화코스모스와 장미광장의 장미꽃 그리고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핑크뮬리도 조금씩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따로 소개해드릴게요. * 댓글 서울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황화코스모스 꽃터널을 링크를 눌러 확인하세요. * 서울 꽃구경 가을 나들이 들꽃마루 황화코스모스 영상도 감상해요. #서울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들꽃마루 #들꽃마루황화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올림픽공원코스모스 #올림픽공원황화코스모스 #서울핫플레이스 #요즘가볼만한곳 #서울사진찍기좋은곳 #가을나들이 #서울여행 #서울데이트 #서울나들이 #가을꽃 #꽃구경 #서울구경 #서울여행지 #가을여행지 #가을에가볼만한곳 #가을가볼만한곳 #9월가볼만한곳 #10월가볼만한곳 #자전거여행 #서울여행 #서울놀곳 #서울출사지 #서울사진찍기좋은곳 #서울주말데이트 #주말에가볼만한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