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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생애 두 번째로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다. 첫 번째는 중학교 시절에 처음 읽었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인데 읽고 나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트릭을 생각해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결말이었다.(사실 그 이전에 추리소설을 별로 읽은 적이 없어서 더 충격이 컸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명작은 명작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입문하고 싶다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해보는 걸 추천한다.) 그 뒤로 한동안 추리소설과는 멀어진 채 지내다 오랜만에 읽게 된 게 바로 이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봤었다. 그래서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시 손에 꼽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폭설로 도중에 멈춰버린 기차 안에서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것도 밀실에서. 그런데 하필 기차에는 위대한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타고 있었고 그는 명석한 두뇌로 승객들의 증언, 그리고 증거를 통해 놀랄만한 추리를 해 나간다. 폭설에 갇힌 열차 안에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승객 중에 범인이 있을 것이 자명한 상황. 푸아로의 추리를 따라 진범에 도달하는 과정이 소설의 전부다.

사실 추리 소설에서 중요한 건 명석한 두뇌의 탐정이 증거와 증언을 통해 놀라운 추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매우 뛰어난 추리소설이다. 먼저 모든 증언과 증거를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충분히 그것을 통해 진범을 추리해 볼 시간을 준다. 그러나 물론 대부분의 독자는 그것들에서 진실을 찾아내지 못한다. 혹 증거나 증언의 모순을 찾아내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뛰어난 논리력과 추리력,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의 궁금증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고 그때 우리의 회색 뇌세포,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해 단 하나의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추리를 보여준다. 결말의 추리에서 독자는 지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언들 사이의 숨겨진 다리를 찾아내고, 여러 증거와 증언들의 모순을 단번에 깨버리는 논리적 설명을 보여주며 결국 단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푸아로의 추리가 마치 논리 문제나 어려운 퍼즐을 해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추리소설의 목적을 탁월하게 구현하며 독자에게 즐거운 독서를 제공한다.

하나 더 이 소설의 장점을 꼽자면 캐릭터 구성 능력이다. 소설 속에는 객차의 승객 열두명과 차장들, 주인공 푸아로, 의사인 콘스탄틴, 그리고 기차 회사의 중역 부크가 등장한다. 보통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면 서로 헷갈리거나, 비중이 적은 인물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각 인물들의 외모, 성격, 나이, 국적 등이 전부 특색 있고 대부분의 인물이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말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만 봐도 어떤 인물이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인물이 각각의 매력을 가지도록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걸 해냈다. 추리와 진실의 놀라움과 별개로 이 소설이 가지는 또 하나의 놀라움이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국가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소설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과 서술 상에서 너무 많은 인물의 시점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의 시점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국가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대의 독자가 읽을 때 아쉬운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 독자가 읽을 때 인물의 시점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소설로써의 완성도를 조금 떨어트리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훌륭한 '추리'소설이자 추리'소설'이다. 추리의 재미와 놀라움도 확실히 잡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의 면모도 충분히 갖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추천하고 싶다.(물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추천한다.)

소설 속 한 문장

"그렇다면 두 번째 추리를 내놓아야겠군요. 하지만 첫 번째 추리를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나중에라도 그것에 동의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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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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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미가 7권에선 또 뭘 먹으려나… https://vin.gl/p/4000804?isrc=copylink 7권도 초2가 먼저 뜯었어요… 저도 헥사타프 하나 갖고 있는데 텐트 바꾸고나선 통 쓸일이 없더라구요. 모카포트 올여름에 참 잘 썼습니다. 이렇게 길쭉한 비엔나도 있었군요… 구리코상은 여전히 달리고 있군요… 아, 요고요고 맛있겠는데요… 아, 멋지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도 그렇겠죠… 똑같죠^^ 마키네타가 뭐지? ㅎ 모카포트랑 같은 말이에요. 추석연휴에 모카포트 가지고 캠핑가려고 했는데 그냥 원두만 갈아서 가져가서 커피 내려 먹었는데도 넘 좋았습니다. 라따뚜이 닮은것 같아요… https://youtu.be/J7ibU7r3QZE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타키 렌타로의 '황성의 달', 한국노래 '황성옛터' 가 생각나네요. ㅋ 어제 집에서 만들어 먹어봤답니다. 완전 굿굿굿^^ 이거 채널 J 에서도 방송했더라구요^^ https://youtu.be/ESpbo-BPGzk 사요리가 좋아하는 타마키 코지 그리고 안전지대… https://youtu.be/4ZdZJMb2-Lo 후코치 카이호 씨가 최근 자주 듣는다는 카리스마닷컴^^ 이름은 그냥 어느산이라고만 나와있지만 코시노칸바이를 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의 '설국' 의 배경이었던 니가타 근처의 어느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ㅎ 니가타 3대 명주 중 하나가 코시노칸바이인데 마셔볼 기회가 없었네요. https://vin.gl/p/2807501?isrc=copylink 대신 쿠보타는 몇번 마셔볼 기회가 있었답니다. 어서와~~~
데미안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사실 필자는 고전 문학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물론 유명한 고전 몇 권 쯤은(돈키호테, 레미제라블, 구운몽 등) 읽어봤지만 사실 지금 시대의 소설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고전 문학을 한 번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까 하는 겉멋으로 집어든 게 바로 이 '데미안' 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아빠 미소를 지으며 읽게 될 줄이야. 데미안의 처음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상류층 집안의 독실한 크리스찬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싱클레어는 어느 날 집이 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 아이들이 서로 자신이 한 나쁜 짓거리를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데 그에 지고 싶지 않았던 싱클레어는 자신이 과수원에서 자루 가득 사과를 훔쳐냈다는 거짓말을 한다.(어릴 적에 한 나쁜 짓은 그 당시에는 마치 영웅적인 행동으로 또래에게 비춰지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런데 공립학교 학생들 중 우두머리 격이던 프란츠 크로머가 그 과수원 주인 아주머니가 과일을 훔친 사람을 알려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면서 싱클레어를 이르겠다고 하자 싱클레어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키고 가족들에게 알려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자신이 대신 돈을 줄테니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돈이 부족했던 싱클레어는 결국 자신이 한 거짓말에 묶여 크로머에게 돈이 부족하단 명목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자신이 한 거짓말로 인해 이제 영원히 자신은 이전의 착한 부모님의 아들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괴로워한다. 귀엽지 않은가? 요즘 시대로 바꿔보면 거짓말을 친구에게 들켜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거짓말을 하기 이전의 착한 부모님의 아들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고 후회하고 걱정하는 초등학생 이야기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물론 괴롭히는 친구 녀석은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싶다.) 거짓말 한 번에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착한 아들이 될 수 없다며 고뇌하는 어린 초등학생이라니. 읽으면서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생각보다 재밌는 소설의 시작은 고전 문학에 대한 거리감을 좀 줄여주었고 빠르게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전체적인 소설의 줄거리는 앞에서 말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똑같은 고뇌를 계속해나가며 성장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이다. 싱클레어는 점점 커가면서도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 나쁜 면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고민한다. 학교에서는 평화와 행복을 노래하는 선만이 올바르고 제대로 된 길이라고 가르치는데 자신 안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 질투, 나태, 반항심과 같은 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자신은 영원히 선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고민하는 싱클레어 앞에 어느날 나타난 데미안은 말한다. 선과 악은 원래 하나이고 뗄 수 없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있는 악한 면을 받아들이고 선과 악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라고. 그러한 데미안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압락사스라는 신이다. 소설 속에서 압락사스는 이렇게 묘사된다. "압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인 신이었다." 즉 인간 안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가 선을 대표하는 신을 섬긴다면 악을 대표하는 악마도 섬기거나 혹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신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야 저러한 사상이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소설이 나온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절대 선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그 가치관을 뒤흔드는 메시지를 가진 소설이 바로 '데미안'이었기에 이 소설은 위대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전혀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예술은 언제나 가장 위대한 것으로 추앙받거나 가장 더러운 것으로 핍박받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읽은 고전 문학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고전이 왜 고전이라 불리는지, 그것이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한 번쯤 그 시대의 시대상을 생각하며 읽어본다면 '데미안'이 왜 아직도 젊은이들의 필독서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재미는 덤이다.) 주관적인 별점 : 4.8개 (재미 있는 고전 문학. 이 말로 충분할 듯 하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
'국가부도의 날' 관전포인트, 영화 솔직후기/리뷰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오늘부로 모든 시험이 종료됐습니다ㅎㅎ 당분 간은 영화 많이 보고 후기 남길 수 있겠어요~~어예 시험끝나자마자 바로 영화관 뛰어가서 혼영한 후기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당 오늘의 영화는 '국가부도의 날'입니다. 사실 제가 태어난 후 3년 후에 있었던 일이기에 저는 자세한 사건을 모르기에 항상 궁금하기만 했었는데요. 자세하고 정확하진 않을 수 있으나 영화로나마 그때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품은 개봉하고나서 사실왜곡이라는 비판도 받았죠. 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기에 뭐라 말씀도 못 드리고 어디가 잘못됐다 정확히 알지도 못합니다만 문학적 허용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보긴 했습니다.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의 허구와 소설은 감안을 해야겠어요ㅠ 영화 자체의 관전포인트를 위주로 리뷰를 쓰려해요! 저는 작품을 볼 때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 장면마다의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하는 성격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은 국가가 부도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는 고위관리자들의 '무능력'입니다. 이건 뭐 블랙코미디도 아니고 노골적이고도 해학적으로 그들의 무능력을 그려냈습니다.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의 부족한 실무능력은 사실도 저러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합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실제모습은 차이가 있으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피해야겠죠? 두 번째 관전포인트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입니다. 요즘 이슈를 신경쓰는 영화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능력과 여성들이 받은 무시를 작품에 넣는 추세입니다. 이 작품도 그러한데요. 특히나 여성의 대표로서 이번엔 김혜수 씨가 활약했습니다. 연기도 너무 잘하고 너무 멋있더군요. 영화 내내 집중해서 봤습니다. 정말 보는 내내 화가 났던 것은 여성을 20세기 후반이었음에도 여성을 사회적 참여자로 인지를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실제는 더 심각했었을 수도 있겠는데요, 남성의 과도한 비하와 편파적인 시선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분통을 사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관전포인트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한 가장의 책임감입니다. 가장이 누구든 그 때의 빚을 감당하기에는 누구나 버거운 현실이었죠. 자살률이 그 당시 전년도 대비 42%의 상승은 그때의 국가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수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착하고 착실하게 살아도 벌을 받아야 하는 비탄스러운 현실에 난간에 몸을 맡기려는 충동은 무거움을 견뎌야 하는 가장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푼돈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돈이 한 순간에 종잇조각이 됐다면, 가족을 부양할 전재산이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사라진다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나요? 영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설득을 잘 시켰습니다. 유독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누군가는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미소를 지을 때 누군가는 아무 잘못도 없이 맞이한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극 중 한 가족의 가장은 가족들을 신경쓰며 자살을 고민한 그 순간까지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ㅠㅠ 지금은 평범했던 일상도 그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의심'의 덕목을 강조합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평범한 지금 이 순간마저도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순간은 또 오고 있으며 위기란 항상 우리 곁에 상주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극 중 김헤수 씨의 명언처럼 말입니다. 두번의 같은 패배는 없어야겠죠? 같은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같은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때와 다름을, 이제는 순진하게 당하지 않음을 보여줄 단계입니다. 영화에 비해 아쉬운 흥행이 안타깝네요ㅠㅠ엉엉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었습니다.
<우주보다 낯설고 먼> 김연경
<우주보다 낯설고 먼> / 김연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공간을 이동할 수는 있지만 시간을 이동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의 이동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과거는 우주보다 낯설고 멀다. 우주에 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과거에 도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 우리의 정신이 과거에 닿는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물리적 과거 자체는 아니다. 그것들은 과거가 내 몸과 정신에 남긴 흔적과 잔향에 가깝다. 어떤 사소한 것을 계기로 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것들은 불쑥 깨어나 도달할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현실이 힘들고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주보다 낯설고 먼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너무나도 쉽게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깊숙이. 우리 집은 아들만 셋이다.(아들 셋을 키운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크고 나서 우리가 어릴 때 했던 짓들을 생각해보면 세 명 다 무사히 성인이 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중에서도 장남인 나는 그나마 얌전했고 부모님 말을 잘 듣는 편이었으며 공부도 잘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나를 학원에 보내고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치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네가 잘돼야 동생들도 다 잘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다. 어찌어찌 좋은 성적을 유지해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열심히 대학원 생활을 하는 중이다. 나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부모님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동생들이 자연히 잘 될 만큼 충분히 잘됐다고 생각하고 계실까? 넉넉하지 않은 집의 삼 형제 중 장남으로 살아온 나는 소설 속에서 연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시작하자마자 과거로 쑥 끌려들어 갔다. 삼 남매(삼 형제보다는 그나마 낫지 않을까.) 중 장녀인 연수는 두 동생들을 돌보는 믿음직스러운 맏이이며 공부도 잘한다. 책을 좋아하고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우며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는 연수. 내 어릴 때와 너무 똑같아서 놀라울 정도였다. 공부에 욕심이 있는 것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도, 어른스러운 척하는 아이인 것도,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엄마이자 아빠가 되어 동생들의 손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는 것도 어릴 때의 내 모습이었다. 아빠가 매일 술을 마셨던 것도,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잘 사는 집 아이들과 그 집 책장에 꽂혀있던 수많은 책들이 부러웠던 것도 모두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는 연수가 집에서 늘 맡았던 냄새를 잘 알고 있다.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집의 그 쿰쿰하면서도 손에 잡힐 듯한 묵직한 냄새를.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곰팡이가 핀 벽지와 낮게 깔려있는 축축한 공기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신발과 가로등이 켜지면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번지던 별 모양의 주홍색 불빛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연수도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주보다 낯설고 먼>은 넉넉하지 않은 한 가정의 과거를 시작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묘사한다. 너무나도 충실한 묘사는 독자들이 사실은 갈 수 없는 과거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소설 속에 그려진 과거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하며 보편적이다. 그것이 <우주보다 낯설고 먼>이 우주보다 낯설고 먼 과거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 비결이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충실한 재현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장르고 작가는 늘 유혹에 시달린다. 놀라운 사건을 넣고 싶다거나 충격적인 비밀 혹은 반전을 만들고 싶다거나 대단한 철학을 논하고 싶다거나 하는 유혹들에. 그러나 이 소설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작가는 그러한 유혹들을 버텨내고 과거의 보편적인 한 가정의 모습을 따라가며 자세히 기록하고 꼼꼼히 재현하는 것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사건의 해결 혹은 반전의 충격에 매몰되거나 철학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부담 없이 각자 자신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들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고는 스스로에게 각자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나.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는 연수, 연희, 형우 삼 남매에게 각각의 흉터를 남겼다. 나에게도 과거가 남긴 흉터가 있다. 오른쪽 허벅지에 길게 그어진 흉터가 하나 있고 눈썹에도 짧은 흉터가 하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눈썹의 일부가 자라지 않는다. 흉터, 상처, 고통, 슬픔, 기쁨...... 그동안 내가 겪어온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좋은 것만 추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부 안고 가는 수밖에. 나는 항상 그렇게 자라 왔다. 소설 속 한 문장 연희는 엄마 목을 한 번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이불 한 채가 고스란히 썩어버린 음침한 반지하 방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기도 했다.
흥행가도, '엑시트'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에요~ 오늘도 1일 1영화 하고 왔습니다. 드디어 최근 영화 중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을 보고 왔어요. 괜히 입소문을 타고 흥행가도를 달리는 게 아니더군요. 자세한 리뷰는 지금 바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재난이든 오락이든 모두 합격, 영화 '엑시트'입니다. 홍보영상이나 예고편을 봤을 때는 그닥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요. 개봉 후 첫 날부터 반응이 뜨겁더니 이제는 순위가 부동으로 1위입니다. 과연 마케팅인지 사실인지 확인을 위해 제가 또 직접 영화관을 다녀왔죠. 700만 이상 이미 흥행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싶습니다. (제가 뭐라고) 700만 이상은 넘기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저도 어지간한 확신이 없다면 예상하진 않는데요. 사실 천만영화 후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영화관 사정에 따라 달라질 거 같기에 낮춘 수치입니다. 근간은 오락영화이고 코미디기 때문에 온가족이 보기에 적절합니다. 그런데 재난이라는 장르가 겹치면서 시너지가 폭발했습니다. 자칫 짬뽕이 될 위기였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심플하고 명료하다 작품은 기발한 연출과 영리한 기획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정말 긴장감이 계속되고 손에 땀이 날 정도인데 중간중간 유머는 놓치지 않습니다. 부자연스럽게 섞인 불순물이 아닌 어느 하나 빠뜨리기 아쉬운 재료로 제 역할을 다 해냅니다.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윤아라는 배우가 스크린에서는 아직 생소하고 낯섭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잘 녹아들었고 부담 없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조정석의 연기는 말할 필요 없이 대단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예민한 신파적인 부분도 없고 억지 감동도 뺏으며 스피드웨건도 없죠. 한 마디로 심플하고 명료한데 모든 게 이해됩니다. 쉽고 재밌는 작품이죠. 진정한 런닝맨 영화 중후반부터는 쉴틈 없이 달립니다. 하지만 달리는 것도 이어지면 지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선을 잘 지켰습니다. 계속 달리는데 루즈하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하이킹도 하고 문제도 생기고 유머도 섞으면서 반복되는 패턴이 질리지 않게 요리했으니까요. 감독은 관객이 어느 부분에서 긴장하는지 어떻게 몰입되는지 어떤 부분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모습입니다. 초반에는 소소하게 웃기다가 중반으로 넘어가며 급격한 변주를 주고 후반부에 깔끔한 마무리까지 오랜만에 짜임새 있는 구성의 한국영화입니다.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는 데는 정말 이유가 있습니다. 1시간 40분의 위기탈출넘버원 어느 교육영상도 이토록 재밌고 몰입감있게 재난메뉴얼을 보여주진 못했을 겁니다. 부분마다 실제를 바탕으로 한 구조방법들이 나타나고 그걸 유머로 섞어 관객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웃다가 지나보면 머리에 남는 힌트들이 나중에 정말 위급상황에 사용될지 모릅니다. 현재사회의 이슈, 한국의 정서, 재난메뉴얼까지 알차게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만두도 속을 많이 넣다보면 터지기 마련인데 적절하게 푸짐한 만두가 빚어진 느낌이네요.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재밌게 봤습니다. 여러분도 여름방학에 가족들과 같이 영화 '엑시트' 한 편 어떠신가요?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화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의 제목을 보면 기후변화 관련 판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책의 원래 제목인 “The Rule of Five”가 더 책의 내용에 적절하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판매를 위해서는 기후를 내세우는 편이 더 낫긴 나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노니, 이 책은 미국 대법원을 아주 재미있게 그리는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판결의 본안이 의미하는 바는 거대하다. 덕분에 정부 기관들이 환경 규제 관련 기준을 제정해야 하는 전례를 이룩했기 때문이며, 미국이 한 번 물꼬를 틀면 심지어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를 포함하여 전세계 어지간한 나라들 모두 기준을 만들게 마련이다. 즉, 한국어판 제목 또한 그렇게 거짓말은 아니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대법원 상고를 위해 진정인측이 사용한 방법이다. 분명 환경 관련 소송이고, 환경청(EPA)이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서 상고까지 하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들은 본안이 환경 문제가 아닌 듯이 행동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워낙 특정 사건의 특정 쟁점을 맨 처음 언급하는 곳이 되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이용한 것이다. 이 사건이 어째서 대법원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대법관들의 이목을 끌려면 쟁점을 바꿔야 했다.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 “어느 정부 기관에 의회가 부여한 권한의 행사를, 그 기관이 미루기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민간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환경 문제에 왜 저런 문장을 강조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은 아마도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저렇게 던져 놓아야, 대법관들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행정부와 법원의 관계를 파고드는(법원의 해석에 따라 행정기관의 재량권이 조정된다!)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고가 이뤄졌다. 결론은 물론 해피엔딩이지만, 그 과정도 너무나 재밌다. 각자 성향이 다른 대법관들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 그리고 구두변론시 대법관들이 던지는 미끼와 함정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그런 것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의 결론은, 독자가 무엇에 관심을 가질지 캐치하고, 강조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교훈이다. 이 책이 모두를 위한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해당될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일기를 쓸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뭘 좋아할지 골라내는 선구안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싹하지만 볼수록 빠져드는 소설 추천
책을 처음 읽는 사람이나, 다시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소설을 추천하게 됩니다. 특별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고, 이렇게 하라거나 저렇게 해야 한다며 부담을 주지도 않으면서 책 읽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죠. 오늘은 오싹하지만 이야기에 빠져드는 소설을 추천합니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소설로 적으면 장편 소설 몇 편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도 거짓이나 허풍이라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충격적인 과거가 있다면 세상에 이야기 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감추고 싶을까요.  이 책은 충격적인 과거를 감추고 서점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에게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펼쳐지는 진실게임을 담고 있습니다. 비극이란 비극이 일어난 시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되는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뎌지거나 감추거나 참으며 살아가고 극복하거나 해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간접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kvVDP8  소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그 중 하나는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지나간 과거의 풍경과 사람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됩니다.  이 작품은 북극을 항해하는 포경선 ‘볼런티어’ 호의 항해 중 일어난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꿍꿍이를 품고 배에 오른 사람들과 도망칠 곳 없는 북극해 한 가운데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독특한 인물들의 성격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죠.  어떤 이야기는 너무 지독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내용이 메시지를 해치기도 하죠. 하지만 적절히 절제된 잔혹함은 인물을 두드러지게 하고, 이야기의 매력을 더할 수 있음을 느끼실 겁니다. 얼어붙은 바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fhGFFb 대부분의 소설 속 사건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죠. 사소한 실수, 말, 행동처럼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 소설은 ‘택시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현실 속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높은 몰입도와 흡입력을 지니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여운이 제법 길 겁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과 미움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미움을 조절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관계의 전제는 상호작용입니다. 일방적인 태도를 관계라고 하지는 않죠. 무수한 우연 속에서 운명과 마주할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자세히 보기 >> https://goo.gl/c4DoYF  일자리를 구하려고 할 때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새로운 걸 배우고, 자격을 취득하며, 운동을 하고, 무수한 이력서를 쓰고 또 쓸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일반적’인 선택이 아니라 아주 ‘엉뚱한’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소설은 일자리를 구하던 한 실직자가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한 계획을 실행하면서 시작됩니다. 몇 번이나 점검하고 확인했지만 계획이 완벽하게 실행되지는 않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한 한 남자의 운명은 어디로 향할까요.  실직은 과거나 현재나 커다란 위협이 됩니다. 생계는 물론이고 자녀의 교육과 일상의 즐거움을 제한당하는 비자발적 절제의 원흉이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를 살해함으로써 자리를 찾으려 하는 시도를 정당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액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etWiic  미국에서 2초에 한 권씩 팔린 소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이야기. 이런 수식어가 붙은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작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독자들이 안타까움과 함께 아쉬움을 느꼈죠. ‘이만한 작품을 또 어디서 만나게 될까’라면서요.  이 책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실종된 한 소녀의 사건을 계기로 만난 미카엘과 리스베트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단순한 실종인 줄 알았던 사건이 실제로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었음이 밝혀지며 독자를 빠져나갈 수 없는 미스터리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드문 경험이지만 책 읽기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와 만날 때가 있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이야기의 결말에 닿기 전까지는 잠도 안 오는 그런 경험이요. 전에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야 말로 그런 경험을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3tBFpy 책이 주는 효용은 다양합니다. 지식을 주기도 하고, 사고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내면을 성숙하게 돕기도 하죠. 그런 효용도 좋지만 역시 책은 재밌을 때 읽고 싶어지고, 더 찾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오래 전해진 고전의 묵직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조금 가볍더라도 놓칠 수 없게 하는 순수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추천책 정기배송 자세히 보기 >> https://goo.gl/WLkw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