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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 리버풀은 더 쌔질 거야, 왜냐하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클롭의 리버풀. ⓒ리버풀 페이스북 [청춘스포츠 3기 이종현] 독일에서 건너온 중년 남성은 유쾌했다. 매주 경기장에서 어퍼컷을 날렸으며 얼굴을 붉혔고 때론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하자 아이같이 뛰었고 너무 감격에 젖은 나머지 안경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리버풀이 이제 좀 리버풀다워진 것엔 이 남자의 역할이 컸다. 3년 6개월간 반신반의했던 로저스와 달리 클롭은 7개월 만에 안필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도 클롭에게 혼쭐났다. 그가 잉글랜드로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이젠 이것 하난 확실해졌다. ‘이제 누구도 함부로 리버풀을 무시하지 못할걸?’ #Intro : 등장 도르트문트를 세계의 강호로 탈바꿈시킨 클롭은 마지막 시즌 소속팀과 아름답지 못한(?) 이별을 했다. 클롭식 헤비메탈 축구의 마법이 풀리자 한 때 분데스리가 강등권에 머물렀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던 DFB-포칼에서도 준우승. 마지막 시즌을 무관으로 보낸 클롭은 도르트문트와 이별을 고하고 휴식을 택했다.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가 시작되고 로저스의 리버풀은 언제나 그랬듯 롤러코스터와 같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리그 개막과 함께 두 경기 연속 1-0 승리를 거둘 때만 해도 혹시나 했던 기대는 웨스트햄에 0-3 패배, 자존심이 걸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노스웨스트더비에서 1-3으로 패배하며 ‘그러면 그렇지’로 바뀌었다. 로저스는 리그 8라운드 머지사이드 더비(vs 에버튼, 1-1무)를 마지막으로 1950년대 이후 단 하나의 트로피도 없이 떠난 구단 최초의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떠났다. 리버풀은 재빠르게 노란색 물이 빠지고 있던 클롭과 접촉했다. 운명의 시작이었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내 ⓒ리버풀 페이스북 #노멀원의 ‘거대한 존재’ 클롭은 부임과 함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게겐 프레싱을 리버풀에 주입시켰다. 초반엔 삐그덕 됐던 게 사실이지만 선수들의 몸에 익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잡히는 곳엔 언제나 붉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많았다. 상대팀 선수들은 당혹스러워했고 손사래 쳤다. 클롭이 부임한 이후 세 번째 경기 상대는 첼시. 아무리 올 시즌 해롱해롱했던 첼시지만, 그래도 상대는 무려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클롭은 11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무자비한 공격력으로 3-1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한 번 무리뉴를 시름에 빠트렸다. 리그 13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 4-1승을 거뒀고 27라운드 홈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더블(한 시즌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둠)을 기록했다. 예전의 리버풀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결과였다. 노리치엔 5-4로, 아스톤 빌라를 6-0을 꺾으며 클롭 축구의 정착을 알렸다. 판타스틱 클롭. 클롭의 존재는 단기 토너먼트 대회인 리그컵과 유로파리그 더욱 빛났다. 클롭의 특유의 전술과 터치라인에서 보여주는 파이팅 넘치는 모습은 선수들에 동기부여가 됐다. 그로 인해 고비 때마다 잊혔던 ‘리버풀 정신’이 되살아났다. 리그컵에선 라이벌 맨유를 격파했고 유로파리그에선 “자손들에게 역사에 남을 만한 경기를 보여주자”라는 명언과 함께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기적을 만들었다. 두 대회 모두 결승에 올랐다. 정작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클롭은 첫 시즌 자신의 축구를 리버풀에 정착시켰고, 무엇보다 극성맞은 안필드 팬들은 클롭과 사랑에 빠졌다. 7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버풀에 경험이란 자산을 주는 클롭 ⓒ리버풀 페이스북 #육성의 대가 납시오 ‘노멀원’은 본래 많은 이적료를 지불해 선수들을 영입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유소년 선수를 적극 활용하고 저평가 받는 선수들은 값싸게 영입해 육성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올 시즌 옆 동네 새로 부임하는 ‘스페셜 원’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도르트문트 시절 유소년 출신인 괴체는 클롭 체제하에 ‘포텐’이 터졌고 레반도프스키는 레흐 포즈난(폴란드)이라는 ‘듣보잡 팀’에서 도르트문트로 헐값에 넘어와 월드 클래스가 됐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오바메양과 이웃 라이벌 팀에서 온 훔멜츠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건 모두 클롭 덕분이다. 클롭은 전 세계 구석구석에 있는 유망주를 꿰뚫고 품었다. 리버풀엔 역시 능력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다. 어린 수비수 조 고메즈와 플래너건, 미드필더 셰이 오조, 조단 로시터, 공격수 대니 잉스, 오리기, 아이브 등. 선수 육성의 대가 클롭이 군침 흘릴만한 자원들은 오늘도 멜우드(리버풀 트레이닝 센터)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클롭의 리버풀 부임 발표 후 얼마나 기대가 됐던지 아이브는 “클롭 밑에서 레반도프스키처럼 성장하고파"라고 밝히기도 했다. 클롭의 선수 육성 능력은 이미 바다 건너 잉글랜드에도 유명했다. 혹시 위에 언급한 선수 중 클롭의 지도아래 월드클래스로 성장할 선수가 있을지 모른다. 내부의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는 클롭의 지도방식은 ‘퍼기의 아이들’로 황금세대를 구축한 맨유의 퍼거슨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실제 지난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구단주가 선수 보강을 제안했지만 “우리 팀에 문제가 있다면 전력이 아니라 집중력 이외의 요소일 것이다. 영입하는 선수가 더 잘할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란 말과 함께 거절했다. 클롭은 육성에 있어서는 확고한 신념은 가진 인물이다. 리버풀 선수들은 발전하고 있다 ⓒ리버풀 페이스북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니까 지난 시즌 클롭은 리그가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나 리버풀에 도착했다. 원하는 선수 구성과 전술, 낯선 도시(클롭이 독일을 벗어나 지휘봉을 잡은 게 처음이었다)와 날씨. 무엇 하나 클롭에게 호의적인 여건은 없었다. 그래도 클롭은 성과를 냈다. 그간 ‘먹튀’ 오명에 빠진 피르미누를 살려냈고, 평범했던 오리기는 리버풀의 미래로 떠올랐다. 클롭은 이제 게겐 프레싱을 좀 더 가다듬을 시간을 얻었고 부족했던 스쿼드를 살찌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클롭은 이미 골키퍼 카리우스(1993년생), 수비수 조엘 마팁(1991년생), 미드필더 그루이치(1996년생)를 영입하며 새 시즌에 대한 준비에 나섰다. 클롭 부임 후 첫 번째 풀 시즌인 2016/17시즌 땐 리버풀은 유럽클럽대항전에 나서지 못한다. 클롭은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고 지난 시즌 결승까지 오른 경험을 바탕으로 단기 토너먼트(FA컵과 리그컵)에서 운영을 묘를 발휘할 수 있다. 클롭과 경험을 보유한 리버풀이 2년 차를 맞아 게겐 프레싱이란 옷을 입고 더 강해질 테니 우승을 기대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클롭은 부임 후 기자회견에서 "4년 내에 우승 트로피를 따내겠다. 만약 내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다음엔 스위스로 가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 성과를 보면 클롭의 말이 진짜에 가까울지 아닐지 조금은 윤곽이 나타나지 않을까. 클롭과 사랑에 빠진 안필드의 팬들 ⓒ리버풀 페이스북 #우승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승팀의 필수조건은 약팀에게도 강하고 강팀에게도 강해야 한다. 승점을 뺏기면 안 된다. 그게 어렵다. 그래서 우승팀은 한 팀이고 모든 팬들에 찬사를 받는다. 또 다른 강팀의 조건은 홈에서 필승, 원정에서 최대한 승점을 확보하는 팀이다. 올 시즌 클롭의 리버풀은 홈에서 특히 강했다. 클롭 부임 이후 모든 대횔 통틀어 홈에서 27경기를 치렀는데 단 2패(15승 10무)를 기록했다. 유로파리그와 리그컵에서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홈에서의 성적이었다. 열성적인 안필드 팬들의 존재와 클롭의 매직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리버풀 정신’이 살아나자 원정팀에게 안필드는 지옥의 장소가 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퍼거슨과 무리뉴 역시 소속팀을 이끌고 홈에선 70%에 육박한 승률을 기록했다. 홈에서 성적이 뒷받침 돼야 우승을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시즌 리버풀이 치를 경기 중 절반은 홈에서 열린다. 자연스레 리버풀의 높은 순위를 기대할 만 한다. 일단 최소한 반타작은 할 테니깐.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 모두 뜻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만큼 앞으로의 클롭과 함께할 리버풀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동떨어진 보이진 않는다. We Make Sports Media, 청춘스포츠 ⓒ청춘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신의 마지막 경기 후 새벽 1시에 이니에스타가 있던곳
나의 유년시절부터 성년까지 함께 보냈던 집을 떠나는 기분 느껴보신적 있나요? 아마 이사를 좀 더디게 다니고 대학도 집근처로 다니게 되면서 자취도 안해보신 분들은 나중에 결혼하실때 이런 기분을 좀 느끼실 지도 모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오늘 이니에스타는 느꼈을 겁니다. 아마 그냥 오랫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난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 깊은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입니다. 이니에스타는 장장 20년 가까이 자신의 인생을 내걸었던 캄프누에서 오늘 마지막 경기를 가졌습니다. 레전드들은 떠나는 모습도 어찌나 멋있는지 이니에스타는 자신의 팔에 감겨져있던 주장 완장을 메시에게 건내주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바르셀로나 마지막 경기를 덤덤히 끝냈습니다. 몇만명이나 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난다는건 정말 축복받은 일일 것입니다. 평생동안 관중들이 꽉 들어차지도 않은 경기장에서 은퇴를 맞이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그런점에서 이니에스타는 행복한 마지막인거 같습니다. 분명 이니에스타도 행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람 마음이 언제나 한가지로만 설명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니에스타는 모두가 떠난 경기장에 한참동안 남아있었습니다ㅠㅠㅠㅠ 이 영상이 찍힌 시간이 스페인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였다고 합니다. 맨발로 앉아 핸드폰하고 있는걸 보니 진짜 집에 있는거 같은데요.. 근데 이게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습니다ㅠㅠㅠ 분명 저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인거 같은데 어째 슬픈 느낌이에요. 텅비어버린 캄프누에서 이니에스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이 이곳에서 넣었던 최고의 골장면들을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없는 바르셀로나를 상상했을까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인거 같습니다. 제가 본 어떤 레전드 사진 중에서도 가장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사진인거 같아요.
오늘 엘 클라시코 유일하게 훈훈한 장면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꽤 까다로운 경기였습니다. 엘 클라시코가 주는 무게감과 바르셀로나의 무패우승 모두를 감당해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였습니다. 게다가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대비해 핵심 선수들의 부상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경기는 굉장히 치열했고 퇴장까지 나올 정도로 양팀의 신경전과 육탄전이 경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경기 후에도 이어진 각종 논란거리 때문에 우리는 중요한 한가지를 소홀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니에스타의 마지막 엘 클라시코였습니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니에스타는 중국으로의 이적이 확정됐습니다. 고로 그의 커리어 마지막 엘 클라시코가 바로 이번 엘 클라시코였던 것이죠. 2:2로 끝난 경기에다 오심까지 줄을 이어 논란거리와 감정싸움만 남기고 있는 이번 엘 클라시코이지만 유일하게 훈훈했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미디어업체인 Movistar+의 카메라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지단과 바르셀로나의 주장 이니에스타가 포옹을 하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비단 엘 클라시코에 나서는 두 팀이기 이전에 지단이라는 레전드와 또 다른 레전드 이니에스타의 포옹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지단은 경기전 이니에스타와 인사를 하기 위해 5분 동안 터널에서 이니에스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5분 기다린 끝에 위와 같은 사진이 완성된거죠. 실상 이번 엘클라시코의 유일한 훈훈한 장면이 아닌가 싶네요 ㅋㅋ 이런 훈훈한 장면을 뒤로 두고 이니에스타는 경기 내내 싸움 말리느라 고생만 했습니다 ㅠㅠㅠ 사비도 가고 이제는 이니에스타까지.. 세월이 흘러버린게 확실히 느껴지네요. 중국에서도 부상 당하지 않고 커리어 마무리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땐 그랬지 (3) 주제 무리뉴 (MU)
그땐 그랬지는 명장, 졸장 상관없는 선출 감독들이 감독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2016년, 맨유의 지휘봉을 잡는다 # W E L C O M E JOSE 05-06 시즌에 맨유가 첼시를 턱밑까지 추격하자 "내가 두려워 하는건 오직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게 뭐가 있나?" "나는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두렵다." -주제 무리뉴 사실 무리뉴는 별볼일없는 선수였습니다. 말 그대로 '듣보잡'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였지만 애석하게도 자신이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있었습니다. 1987년, 무리뉴는 선수 생활을 돌연 은퇴해버립니다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 넷.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면, 일류 감독이 된다."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한 무리뉴는 체육 교사, 통역관 등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내며 단기간에 탑 클래스, 슈퍼 퀼리티의 축구 감독, SPECIAL ONE이 됩니다. 맨 앞 줄, 우측에 한 선수가 빛나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면서 94경기 13골을 기록. 포르투갈 2부리그에서의 기록입니다. (1) 바비롭슨의 통역관 무리뉴는 축구 선수를 조기은퇴한 후, 어머니의 의사를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합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등록을 취소합니다. (벵거는 경제학 석사입니다) 이 때 등록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큰 자금력을 바탕으로 팀을 완성해나가는 무리뉴의 축구가 체계적으로 자금을 조절하는 벵거의 아스날처럼 바뀌었을라나요? 결국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습니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합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故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너 인마, 통역 좀 하더라? 마음에 들어쓰 (2)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무리뉴가 담당 통역관이 된 이유도 제목처럼 그의 통역에 반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롭슨은 그의 전술적 역량에 감탄합니다.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됩니다. 여담으로 지단도 안첼로티를 보좌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하네요. "바르샤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무리뉴, 1997년 우승 축하연에서 바르셀로나 수석코치 (3)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제 2의 자아(또는 혀리뉴) 덕분인지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히 성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바로 그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됩니다. FC 바르셀로나 수석 코치 커리어를 끝으로 코치 생활을 마감하고  유프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SL 벤피카에 부임하면서 첫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죠.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밌네요.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크루이프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는데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에서 곧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 맨유 감독은 어떠십니까? 붙박이 퍼거슨이 있잖아. 갈 수 있을 것 같나? 미래의 자네라면 갈 수 있겠어? 못가죠? 우승 및 중요한 업적들 UF 레이리아 01-02 전반기 3위 수성 FC 포르투 01-02 후반기 리그 3위 기록 02-03 포르투갈 리그, 포르투갈 컵, UEFA 유로파리그 우승. 미니트레블 03-04 포르투갈 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첼시 04-05 EPL, 리그컵 우승 05-06 EPL, 커뮤니티 실드 우승 06-07 리그컵, FA컵 우승 인테르 09-10 코파 이탈리아, Seria A,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레블 레알 마드리드 10-11 코파 델 레이 우승 11-12 수페르코파, 라 리가 우승 첼시 14-15 EPL 우승 무리뉴 너란 남자. 우승 경력이 많아서 찾기 힘들었다 :'( 무리뉴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으시다면 곧 쓰게 될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