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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잡상] 그래픽 좋아진 디아블로 2가 인기있는 이유?
- 요즘 게임은 자동사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 유저 편의를 위한 시스템이 부족하면 버림받는다. - 너무 옛날 스타일의 단순함으로 성공을 기대해선 안 된다. - 시스템과 운영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실패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요즘 게임의 필요조건입니다. 게임이 재미있거나, 그래픽이 뛰어나거나, 캐릭터가 매력적이거나 하는 건 충분조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자동사냥도 없고, 인벤토리는 자동정리는커녕 테트리스 하듯 모양 맞춰 직접 배열해야 하고, 그나마 공간도 모자라서 드랍 아이템을 버려야 합니다. 전투는 너무 옛날 스타일로 화려한 액션은 없고 뭔가 투닥투닥하는 모양새입니다. 게다가 시스템은 2000년 초반을 방불케 합니다. 서버도 요즘 게임은 접속하지 않아도 알아서 성장하는 방치형이 있지만, 이 게임의 서버는 매번 다운되어 백섭이 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어? 그런데 이 게임 PC방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무슨 게임이냐고요? 이미 짐작했겠지만 <디아블로 2 레저렉션> 입니다. 업무가 끝나고, 아이를 재운 뒤에 시간 좀 내서 게임을 하려는데 서버가 터져서 접속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옛날 게임을 누가 왜 하는 거야? 하면서 망상을 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편집국장 #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2000년 6월 출시된 <디아블로 2>의 복각이라고 보면 됩니다. 변한 게 있다면 리마스터, 즉 게임의 해상도를 높이고 한글화를 했다는 정도죠. 물론 2000년 당시에도 PC방을 점령했고, 수많은 폐인을 양산했던 대표적인 인기 타이틀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21년이 지난 지금 그래픽이 좀 더 깔끔해졌다는 것 외엔 큰 변화 없는 이 불편한 게임의 인기는 당시 세대는 물론 지금의 세대에서도 먹히고 있습니다. 단순히 레트로(Retro)라고 보기에도, 복고(Revivalism)라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그렇다고 뉴트로(Newtro)라고 하기엔 변한 게 없습니다. 추억 마케팅이라고 보자면 납득할 수준입니다. 20년 전에 화제였던 소서 교복, 할배검 윈드포스 등의 단어가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발생했던 버그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완벽한 옛 추억의 소환입니다. 그런데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편한 추억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 안한 불편함 중에는 스태미너가 있어서 달리다 걸어야 하고, 자동이동도 없고, 퀘스트 마커도 없어서 말 그대로 노가다를 해야 합니다. 아이템 자동 줍기도 없죠. 아. 그나마 리저렉션으로 올라오면서 골드는 자동 줍기가 됩니다. 이 불편함을 하나도 아니고 시스템 자체가 불편함 덩어리인데 왜 이 게임을 우리는 서버가 왜 다운되어야 하냐고 불평하면서 기다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구세대인 제 나이 또래라면 모를까 요즘 유저들도 왜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걸까요? 서버 다운까지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할 줄을 몰랐습니다. 21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대로 구현될 지 말입니다. # 답은 이 안에 있다! ‘재미’ 그리고 부산물들… 지금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을 하는 층은 이상하게도 확실히 구분되어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추억 팔이를 위해 다시 플레이하는 중장년층과 말로만 들었던 <디아블로 2>를 경험하려는 사람으로요.  요약하면 21년 전에 <디아블로 2>를 했던, 그리고 지금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는 21년을 넘는 게임 플레이의 경험을 공유하게 됩니다. 라떼는 말이야 안다리엘과 메피스토를 그냥 슉슉슉!!!라고 하는 말을 이젠 요즘 세대도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21년 전 지겹게 했던 파밍을 지금 또 하게 될 줄을 몰랐는데... 재밌네요. 참고로 안 하는 사람은 PC방 등에서 접해보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자(시간이 없어서)와 게임이 불편해서 못하겠네 정도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확실한 공통된 이야기가 있는데 하는 사람은 하는 이유는 재밌어서이고, 안 하는 사람은 불편해서, 시간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지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안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점. 특히 <디아블로 3>보다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1년 전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그러데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은 왜 재미가 있는 걸까요? 아니 21년 전 클래식과 달라진 건 없으니 <다이블로 2>의 재미가 지금도 먹힌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요즘 (잘나가는) 게임과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을 비교해보면 될 듯합니다.  1.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은 PC 게임이다.(모바일게임이 아니다) 2. PC게임이지만 온라인게임은 아니다.(여럿이 하는 게임이 아니다) 3. 멀티플레이는 된다. 그러나 그 기반은 싱글 플레이다.(그렇다고 완전히 혼자 하는 게임도 아니다) 4. 경쟁이 없다.(버스가 있을지언정 다른 캐릭터와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래더 순위면 몰라도.) 5. 아이템은 모두 파밍을 해야 한다.(뽑기 그런 거 없다. 모든 건 드랍템이다.) 6. 패키지를 구입하면 더 이상 추가 요금은 없다(10연차 그런 거 없다) 7. 시간에 묶이지 않는다(이벤트, 숙제, 뒤처지는 경쟁이 없다. 아무 때나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8. 불편하긴 하지만 재미는 있다. 9. (인정하긴 싫지만)아이템 현금거래가 가능하고 거래 아이템이 전부 드랍템(혹은 골드)다. 10. PC방 혜택으로 매직 아이템 드랍찬스가 상승한다.(무려 25%) # 추억과 이름 값에 따른 유명세일까 아니면 사회적 현상일까? 결론적으로 따지면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의 인기는 뽑기 아이템이 없고, 더 이상 추가금이 없이 혼자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그리고 만인이 평등한 조건에서 플레이하는 PC게임이라는 이유가 나옵니다. 여기에 불편해도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하다 보면 대박 아이템을 주울 수도 있고 말이죠.  말을 길게 써서 그렇지 간단하게 말하면 ‘뽑기 없는 PC게임’인데 불편해도 재미있다는 말입니다. 뭐 심각한 분석도 아닌 잡스러운 생각 중의 가벼운 분석이니까 이런 망상 같은 결론도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100연차 돌리느라 돈이 없어 굶고 있는...(아닙니다.... 디아블로 2 리저렉션 시네마틱 중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제가 <디아블로 2 리저렉션>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추억 소환도, 아이템 거래를 통한 대박을 노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비용 걱정 없이 아무 때나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게임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서버가 계속 다운되고 백섭이 계속되면 이 인기도 곧 시들해질 듯합니다. 시스템이 불편해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 데 이마저 불편해지면 할 이유가 사라지니까요. 서버 접속 불가 메시지도 참 다양합니다... 한편 <디아블로 이모탈>이 모바일게임이거든요. 현재까지 파악된 정보로는 뽑기 아이템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모바일에서의 수익모델을 배틀패스와 추가 혜택을 주는 아이템으로 확정했다면 자연스럽게 <디아블로>라는 IP를 PC에서 모바일로 이동시키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확률형 뽑기 아이템이 없는 게임으로 말입니다. 21년 전 <디아블로 2>가 한국 게임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듯, 21년이 지난 지금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외산 게임이 시장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게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옛날 이런 아이템 하나 주우면 그냥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워존’ 새 안티치트에 일부 해커 “오히려 좋아”…이유는?
‘경쟁자는 사라지고 정교한 핵만 살아남을 것’ 액티비전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 적용할 새로운 안티 치트 시스템 ‘리코셰’(Ricochet)를 공개했다. 그런데 일부 핵 개발자들은 리코셰 도입에“오히려 좋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일까? 13일 액티비전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핵 사용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올린 뒤, 다음날 자체 개발 안티 치트 시스템 ‘리코셰’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액티비전이 말하는 ‘리코셰’의 최대 개선점은 커널 수준 드라이버 도입이다. OS의 작동 모드는 유저 모드와 커널 모드로 나뉜다. 기존 안티치트 소프트웨어는 여타 일반 소프트웨어와 같이 유저 모드에서 작동하며, 커널 수준에서 게임 코드를 조작하는 치트 프로그램은 감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액티비전은 새롭게 ‘리코셰’를 마련했다. PC에서 인가받지 않은 프로세스가 게임을 조작하는 경우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액티비전의 설명이다. 리코셰처럼 커널 수준 드라이버를 포함하는 안티치트 프로그램은 이미 많다. ‘이지 안티 치트’, ‘배틀아이’, 라이엇이 개발한 ‘뱅가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일부 핵 개발자들은 그런데 ‘리코셰’ 도입을 오히려 환영한다는 태도다. 핵 개발 조직 ‘팬텀 오버레이’(Phantom Overlay)는 사설 텔레그램 채널에서 구매자들에게 “핵 제작자들끼리 경쟁 구도가 사라지고, 그럴듯한 핵만 살아남는 결과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블리어(Zebleer)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팬텀 오버레이’ 소속 해커는 매체 마더보드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메시지의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현재 <콜 오브 듀티: 워존>의 ‘핵 시장’은 말도 안 되게 많은 핵 공급자들로 인해 포화 상태다. 이런 공급자는 대부분 UnknownCheats나 Guided Hacking과 같은 코드 공유 사이트에서 코드를 복사해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블리어는 리코셰가 이런 ‘초보’ 개발자들이 만든 경쟁 제품들을 제거하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면 결국에는 자신들을 포함한 ‘고급 핵’ 제작자들이 오히려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리코셰가 전반적 효과를 발휘할지 묻는다면 내 답은 ‘그렇다’이다. <콜 오브 듀티>가 현재 겪고 있는 이른바 ‘핵 문제’는 이제 사실상 종료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편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리코셰 팀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막기는 힘들 것이고, 사실 불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경계’ 상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리코셰 도입이 예고된 뒤 팬텀 오버레이는 핵 구매자들에게 “우리가 상황을 살피는 동안 한동안 게임 플레이를 자제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리코셰의 PC 커널 수준 드라이버는 올해 말 퍼시픽 업데이트와 함께 <콜 오브 듀티: 워존>에 먼저 도입된다. 이후에 <콜 오브 듀티: 뱅가드>에도 추가될 예정이다.
[넥슨컴퓨터박물관] 게임과 감각, 제 3편 컨트롤
볼앤패드부터 듀얼쇼크까지. 게임 컨트롤러 변천사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지난 연재기사 게임과 감각 제1편, 사운드 카드 게임과 감각 제2편, 그래픽스(Graphics)  시각과 청각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감각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눈은 모니터에 펼쳐진 세상을 받아들이고, 출력되는 사운드는 귀를 통해 공감각적인 효과를 불 일으킨다. 게임과 감각 연재 시리즈 전편에서는 이처럼 현실 속 감각을 더욱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사운드와 그래픽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는 피부에 닿는 감각을 ‘촉각’이라고 부른다. 피부에 존재하는 소체는 압력, 고통, 온도, 저항 등의 외부 자극의 접촉을 느끼고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촉각은 실제 대상과의 접촉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과 차이가 있다. 접촉을 전제로 하는 촉각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디지털 신호로 만들어진 게임 속 세상, 캐릭터, 그리고 행위를 실제와 똑같이 경험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게임 속에서 잔디 위를 뛰는 행위는 실제 플레이어의 발바닥이 닿는 것이 아닌, 캐릭터에게 잔디를 밟도록 컨트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똑같이 몸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직접 개입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입력장치를 사용한다. 그리고 입력장치를 통해 ‘컨트롤’을 관장하는 플레이어의 손은 가상과 현실을 잇는 유일한 접점이라 할 수 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2층 NCM 라이브러리 이처럼 게임 속 행위를 매개하는 ‘컨트롤’의 변화를 촉각과 함께 살펴보기 위해 이번 시리즈에서는 넥슨컴퓨터박물관 NCM 라이브러리에 전시 중인 1세대부터 8세대까지 콘솔 게임 컨트롤러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 이번 연재에서는 게임과 촉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컨트롤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관계로 위(Wii)나 스위치(Switch)에서 사용하는 모션 인식을 제외하였다.  # 스틱과 버튼으로 보는 게임 컨트롤러 변천사 게임의 가장 고유한 특성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게임에서 이를 가능하게 했던 장치가 바로 스틱과 버튼이었다. 시대마다, 그리고 게임 장르에 따라 그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기도 했지만, 스틱과 버튼은 1958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게임 컨트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스틱과 버튼은 인간의 움직임을 기계 움직임으로 변환하기 위한 효과적인 인터페이스(물리적 매개체)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해왔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컨트롤러, 1972 1972년 세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는 비행기의 컨트롤러를 모티브로 화면의 점을 움직일 수 있는 직사각형의 컨트롤러를 선보였다. 컨트롤러 양 끝에는 위치를 조정하는 3개의 컨트롤 노브가 있었고(왼쪽 2개, 오른쪽 1개), 상단 부분에는 게임을 리셋할 수 있는 작은 사각형의 푸시 버튼이 있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컨트롤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익숙한 컨트롤러와 다르게 손가락으로 노브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실제로 손을 통해 전달되는 촉각적인 만족감이 있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가정용 홈 퐁, 1974 그리고 같은 해, 볼앤패들(Ball and Paddle) 장르의 대표적인 게임이자, 휠과 버튼으로 컨트롤하는 게임 퐁(Pong)이 출시되었다. 공을 주고받는 게임 방식에 맞춰 개발된 패들 컨트롤러는 화면의 엑스축을 움직일 수 있는 원형 휠과 공을 발사하기 위한 하나의 버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휠을 돌리는 방식은 노브와 유사해 보이지만, 오히려 볼앤패들이라는 장르를 플레이하기 위한 직관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게임을 이전보다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었으며, 따라서 초기 아케이드와 콘솔을 대표하는 컨트롤러로 꼽힌다. 아타리 2600 컨트롤러, 1977 1977년 아타리 2600(Atari 2600)과 함께 소개된 CX 시리즈 컨트롤러는 직관적인 스틱과 버튼 형태로 게임을 더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콘솔 게임기에 호환되었던 대표적인 초기 컨트롤러 중 하나였다. 볼앤패들에서 사용한 미세하게 노브를 돌리던 방식은 중앙의 스틱으로 변경되어 원하는 방향으로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적을 공격하는 실제 비행기의 컨트롤러와 같은 감각을 전달했다. CX 시리즈는 단순한 디자인과 더불어 당대 인기를 끌던 게임 방식 자체를 상징하는 컨트롤러로서 이제 막 성장하는 1970년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 앤 워치, 1984 출시 버전 그러나 점차 다양한 규칙과 방식이 적용된 게임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컨트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CX 시리즈의 인기도 점차 줄어들었다.  해답을 제시한 쪽은 닌텐도였다. 1980년, 닌텐도는 이후 등장하는 콘솔 게임 컨트롤 방식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십자키, D-Pad(Directional Pad)를 게임 앤 워치(Game and Watch)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그리고 D-Pad는 1983년 패밀리 컴퓨터(Family Computer)와 1989년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등 닌텐도가 선보인 후속 콘솔 게임기에 계속해서 등장했다.  패미컴과 NES 컨트롤러 P-Pad는 스틱이나 노브가 사라지고 모든 조작이 버튼화되었지만, 2차원 화면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빠르게 컨트롤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1980년대 게임 장르와 그에 따라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수는 1970년대보다 많아졌고, 컨트롤 또한 다양한 게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버튼 방식으로 변경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듀얼쇼크와 햅틱 플레이스테이션2 듀얼쇼크, 2000 1997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은 이전에 없었던 진동이라는 새로운 촉감을 손에 전달하는 컨트롤러, 두 개의 진동기를 의미하는 듀얼쇼크(DualShock)를 선보였다. 듀얼쇼크 내에는 두 개의 진동 모터가 컨트롤러 핸들 부분에 내장되었다.  아주 미세한 감각이었지만 ‘진동’은 컨트롤러를 잡는 촉감을 넘어 게임 속 행위와 시간의 간격을 맞춤으로써 내가 직접 행동한다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다. 또 왼쪽 진동 모터를 오른쪽보다 더 크고 강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진동 세기 조절을 통해 이전보다 다양한 촉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처럼 입력장치를 통한 피드백을 이용하여 촉각과 운동감, 저항을 느끼게 해주는 기술을 햅틱(Haptic)이라고 부른다. 햅틱은 게임 산업에 있어서 스틱과 버튼이라는 컨트롤의 촉각을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로 떠올랐다. 엑스박스, 엑스박스 360 컨트롤러 햅틱 기능은 엑스박스(Xbox) 시리즈의 컨트롤러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1년 출시한 엑스박스 컨트롤러에는 감압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실제 게임에서 활용도가 적어 후속 시리즈인 엑스박스 360(Xbox 360)에서는 트리거를 제외한 버튼의 감압 기능을 제외하기도 했다. 진동 피드백이 장착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게임의 몰입을 높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보다 FPS 장르 비중이 높았던 엑스박스는 FPS에 더 적합한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제외한 것이다. 엑스박스 원 컨트롤러 이후 등장한 엑스박스 원(Xbox One) 컨트롤러에는 양쪽 트리거에 진동을 느낄 수 있도록 임펄스 트리거(Impulse Trigger)가 추가되었고 때문에 FPS뿐만 아니라 레이싱 게임에 있어서 브레이크나 엑셀의 느낌을 손으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5 듀얼센스, 2020 그리고 2020년, 플레이스테이션 5(PlayStation 5)의 차세대 컨트롤러, 듀얼센스(Dual Sense)가 출시되었다. 듀얼센스 햅틱 기술과 이전 컨트롤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플레이 방식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감각과 적응형 트리거였다. 예를 들어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압력을 다르게 구성하고 따라서 캐릭터의 움직임마다 진동의 강도나 저항(당김)이 다르게 전달되게 했다. 비록 같은 진동 장치라고 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게임 속 감각을 경험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게임의 모든 컨트롤이 플레이어의 손안에서 버튼과 스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손안에서 버튼을 누르고, 당기고, 반응하는데에 따르는 미세한 변화가 감각을 집중 시켜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요인이 됐다. # 촉각 슈트의 가능성?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 중에서 게임 속 촉각이 전달되는 슈트를 입은 주인공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가상에서 발생하는 접촉을 전자극으로 변환 시켜 몸에 전달해, 게임 속 촉각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슈트가 등장했다. 먼 미래에나 등장할 수 있는 상상 속 기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기술 발전은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컨트롤 슈트의 프로토타입으로 생각될 만큼 게임 속 촉각 기능 구현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예로 테슬라 슈트(Tesla Suit)나 햅틱 슈트(Tact Suit)가 있다. 특히, 테슬라 슈트는 52개 채널의 전기 자극 장치를 부착하여 플레이어가 바람, 열, 통증, 물 등을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되는 중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판매용 버전의 가격이 약 3,600달러를 넘는다는 가격 문제뿐만 아니라, 실제 게임상에서의 감각이 현실에 영향을 줄 때 생기는 문제 등 상용화에 대한 많은 논제를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가상세계 속 경험을 더욱 현실과 비슷하게 재현하기 위한 기술 발전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 SF 영화가 아닌, 미래를 예견한 영화로 다시금 회자될 날이 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듯이 우리에게 있어서 게임과 가장 밀접한 촉각은 '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컨트롤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가상 속 게임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감각이 유일하게 '손의 촉각' 뿐이라는 점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게임 고유의 재미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소니, 고소해봐"라던 PS5 주변기기 업체, 결국 백기 투항
문제는 PS5의 커스텀 플레이트 "소니, 고소해 봐"(Go ahead, sue us) 스마트폰 케이스로 유명한 미국 제조업체 '디브랜드'(dbrand)는 16일, 공식 레딧 게시글을 통해 자사에서 판매하던 PS5 커스텀 플레이트의 판매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니가 공식적으로 로펌을 통해 해당 커스텀 플레이트의 판매가 "지식재산권 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PS5 기기 양 쪽에 위치한 플레이트는 공식 분해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부터 유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아 왔다. 분해가 쉬웠기 때문. 실제로 2020년 11월 PS5 출시와 맞추어 "CustomizeMyPlates"라는 도메인을 등록한 회사가 전용 커스텀 플레이트를 공개하고 예약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소니는 공식적 협의 없이 커스텀 플레이트를 제조해 판매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소니는 해당 사이트에 연락해 커스텀 플레이트 판매는 소니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계속해서 커스텀 플레이트를 판매하면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결국 예약 판매된 커스텀 플레이트는 전부 환불됐다. 본체 양 면에 붙어 있는 플레이트. 간단하게 교체할 수 있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를 받았다. 다만 소니는 이를 공식적으로는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다 (출처 : CustomizeMyPlates) 디브랜드는 이런 소니의 행동에 반기를 들었다. 앞선 소식을 접했음에도 2021년 2월 커스텀 플레이트 판매를 발표한 것. 당시 디브랜드는 "소니, 고소해 봐"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하지만 10월 경 소니의 정식 항의를 받자 커스텀 플레이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디브랜드는 소니가 주장한 지식재산권 개념이 모호하다며 장문의 게시글을 통해 소니의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 예로 디브랜드의 커스텀 플레이트에는 소니의 듀얼쇼크 버튼을 패러디한 모양이 새겨져 있다. 디브랜드는 "소니는 우리의 이 기호가 소니의 트레이드마크를 침해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 <오징어게임>은 어떻게 이 문제를 피해 갔는가?"라고 언급했다.  <오징어게임>이 소니의 듀얼쇼크 버튼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굳이 따지면 <오징어게임>의 로고도 소니의 버튼 모양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에 자신들에게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억지라는 논리로 추측된다. 마지막으로 디브랜드는 "우리는 소니의 요구에 복종하기로 했다. 일단은"이라며 향후 커스텀 플레이트 판매를 재개할 여지를 남겼다.  디브랜드 커스텀 플레이트에 사용된 로고(우) (출처 : 레딧)
스위치 다시 켜라!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역대급 업데이트 예고
동물의 숲 다이렉트에서 공개, 업데이트 예정일은 11월 5일 <동물의 숲> 시리즈 팬이라면 다시 닌텐도 스위치를 손에 잡을 때가 왔다.  10월 15일, 닌텐도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 다이렉트'를 통해 <모동숲>의 신규 업데이트와 새로운 DLC를 예고했다. 해당 발표에 따르면 이번 업데이트가 <모동숲>의 마지막 콘텐츠 업데이트가 될 예정이다. 업데이트는 본편 무료 업데이트와 신규 DLC 두 갈래로 나뉜다. # 신규 콘텐츠 대거 추가된 무료 업데이트 내용 먼저 9월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언급되었던 대로 커피를 내려주는 '마스터'가 등장한다. 마스터의 '카페 비둘기 둥지'는 박물관에 있으며 200벨에 커피를 판매한다. 마스터의 카페에서는 섬에서 사는 동물 주민을 만날 수 있으며, 아미보 카드를 사용해 특정한 손님을 초대할 수도 있다. 멀티플레이를 통해 단체로 카페를 방문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카파 뱃사공인 '갑돌'도 돌아온다. 갑돌이 부르는 뱃노래도 그대로 등장하며, 갑돌의 배를 타고 랜덤한 섬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식물이 등장하는 섬이나, 다른 계절, 다른 시간대의 섬을 탐험할 수 있을 예정이다. (출처 : 한국닌텐도) (출처 : 한국닌텐도) 파니엘의 섬에는 다양한 가게가 모이는 광장이 추가된다. 광장은 모금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광장에는 섬에 랜덤하게 방문하던 행상이 가게를 연다. 가령 리포의 가게에서는 플레이어가 리폼할 수 없었던 상점 판매 가구를 리폼할 수 있다. 섬 광장에서는 그룹 체조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버튼 조작은 물론, 조이콘을 사용해 실제로 몸을 움직여 체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섬의 주민 대표라면 이제 '섬의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지런한 섬 조례'를 제정하면 섬의 주민 모두가 아침 일찍부터 활동한다. 상점 판매 가구도 이제 리폼 가능하다 (출처 : 한국닌텐도) 여울을 통해 섬의 조례를 지정할 수 있다 (출처 : 한국닌텐도) 마이 홈 서비스도 더욱 충실해졌다. 새로운 외관이 추가되어 섬 경관에 맞추어 집을 바꿀 수 있으며, 수납 확장 공간도 5,000개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마일로 교환할 수 있는 아이템도 늘어났다. 먼저 새로운 레시피가 추가되어 다양한 요리를 제조할 수 있으며, '인테리어 PRO 자격증'을 취득해 방에 각종 신규 조명을 설치할 수 있다. 벽지도 벽마다 개별로 설정해 보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9종류의 울타리도 새로이 추가돼 보다 섬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 있으며, 다리와 비탈길도 각각 10개까지 증설할 수 있다. 일부 울타리는 리폼도 가능하다. 간이 창고를 설치해 섬의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물건을 수납할 수 있으며, 주머니의 벨이 부족하면 ATM 기기에서 벨을 인출할 수도 있다. 카메라 앱도 개편된다. 이제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거나, 삼각대 카메라로 자신도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에 맞추어 리액션과 커스터마이징 요소도 대거 추가된다. 외에도 여러 생활 요소가 추가된다. 매주 토요일마다 마을 광장에서 라이브를 여는 K.K의 신곡이 12 가지 추가되며, 너굴 상점의 신규 가구, 토용, 신규 주민이 추가될 계획이다. 토용 (출처 : 한국닌텐도) 신규 주민도 추가된다. 아직 정식 번역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출처 : 한국닌텐도) # 주민이 원하는 휴양지 만드는 DLC '해피 홈 파라다이스' 신규 DLC <해피 홈 파라다이스>에 대한 정보도 공개됐다. 핵심 콘텐츠는 동물 주민이 원하는 휴양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주인공은 너굴의 소개를 받아 휴앵지 개발 사무소 '파라다이스 플래닝'에서 별장 만들기를 담당하게 된다. 파라다이스 플래닝에는 다양한 꿈을 안고 있는 동물이 찾아온다. 가령 메이첼은 "곰 인형에 둘러싸인 생활"을 꿈꾸고 있다. 플레이어는 다양한 테마를 가진 섬 중 하나에서 알맞은 장소를 골라 별장을 지어줄 수 있으며, 손님이 요청한 가구를 배치해 이를 꾸밀 수 있다. 별장을 만드는 경험을 쌓아 나갈수록 인테리어 기술도 늘어난다. 방의 크기를 조절하고 칸막이, 카운터, 기둥, 환경음을 설치해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가구 꾸미기' 기능으로 가구를 열심히 닦아 새로운 인상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사무소에서 받은 급여를 통해 희귀한 가구를 구매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출처 : 한국닌텐도) 방 크기를 넒히고, 칸막이와 기둥을 활용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출처 : 한국닌텐도) 이렇게 만든 별장은 사진으로 촬영해 카탈로그에 기록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코디네이터와 시공 사례를 공유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 플래닝에서 일하며 얻은 기술은 본편과도 연계된다. 칸막이, 카운터, 기둥, 조명, 환경음 모두를 플레이어의 집에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베테랑 코디네이터가 되면 본 섬의 주민들에게 리모델링을 제안하는 것도 가능하다. <해피 홈 파라다이스>는 11월 5일 발매되며, 10월 29일부터 예약 주문을 받는다. 공개된 가격은 25,000원이다. 닌텐도 스위치 익스펜션 팩에 가입한 유저는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출처 : 한국닌텐도)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닌텐도의 실수? 싫어요 세례 받는 '스위치 익스팬션 팩'
"좋아요보다 싫어요가 많은 닌텐도의 동영상이 또 하나 생겼다" 15일, 닌텐도는 공식 채널을 통해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익스팬션 팩'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익스팬션 팩은 기존 닌텐도 스위치에서 서비스하던 '닌텐도 온라인'의 확장판으로, 가격이 올라간 대신 더 다양한 게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18일 기준 동영상의 좋아요는 1.5만, 싫어요는 5.5만이다. (출처 : 닌텐도) 해외 닌텐도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닌텐도 온라인은 '닌텐도 스위치'의 온라인 서비스다. 해당 서비스를 구독해야 스위치에서 멀티플레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닌텐도 온라인에 '엑스박스 게임 패스'나 '플레이스테이션 나우'와 같은 연계형 게임 구독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익스팬션 팩은 구독형 게임 서비스가 강세를 보이는 최신 트렌드에 맞추어, 닌텐도 온라인에도 유료 게임 구독 서비스를 연계해 보다 수익 범위를 확대하려는 닌텐도의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 꺼내든 카드가 문제였다. 익스팬션 팩의 핵심은 "닌텐도 64, 세가 제네시스" 시절 게임을 스위치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신 게임과는 관련이 적다. 익스팬션 팩에 포함될 것이라 예고된 최신 게임은 <모동숲>의 DLC <해피 홈 파라다이스>가 전부다. 고전 게임을 현세대기에서 구동하는 만큼 상태 저장 시스템과 4인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가격에 비해선 다소 아쉽다. 출시 때 지원하는 고전 게임도 23종이 전부다. 게다가 북미 기준 '닌텐도 온라인'의 12개월 구독 가격은 20달러지만, 익스팬션 팩을 포함하면 50달러로 껑충 뛴다. 메리트가 낮게 느껴질 수밖에 없거니와, 가격 변동폭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 해외 웹진 '닌텐도 라이프'의 익스팬션 팩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도 "완전 바가지야!"라는 평가가 1위를 차지했다.  닌텐도가 현재 받는 부정적 평가를 뒤집기 위해선 "더욱 비싼 값을 지불할 합리적인 메리트"를 게이머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닌텐도 스위치 익스팬션 팩은 10월 25일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다. 한국 가격은 개인 플랜 12개월 39,000원, 패밀리 플랜 12개월 74,900원이다.  완전 바가지야! (An absolute rip-off!) (출처 : 닌텐도 라이프) 익스팬션 팩의 국내 서비스 책정가. 해외보다 인상률이 낮다 (출처 : 한국닌텐도)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기자수첩] 메타버스, 멈춰!
국감에도 등장한 메타버스... 모르면 토론 뒤에 하자 얼마 전 백신 2차 접종 14일 경과를 기념하며 경주에 다녀왔다. 연휴를 맞은 불국사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기자의 눈에는 해설 팻말마다 조그맣게 붙은 QR코드가 눈에 띄었다. 어딜 가나 요구받는 'QR 체크인'이 지쳐서 그랬던 걸까? 코드에 태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불국사는 '신라 건축 기술의 정수', '불국정토를 향한 당대인의 이상'과 같은 설명을 빼놓고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QR코드만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호기심이 동해 여행 내내 경관을 찍던 카메라로 이따금씩 QR코드를 읽혀봤는데, 훼손이 심해서 인식이 되지 않거나 성공해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관람객들이 QR코드를 외면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2012년, 문화재청은 문화재 1만 3,540건에 대한 QR코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사례는 그해 정부 민원행정개선 대상을 수상했다. 시각장애인이 QR코드를 읽을 때 나오는 음성정보를 통해 문화유산을 탐사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소외계층 문화유산 관람 사업의 집행과 참여가 저조하다고 비판했다. 이런 성격의 콘텐츠는 늘 존재하는 편이 낫다고 믿지만, 한 번 적용에 그치고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으레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불국사의 위용은 대단했지만 QR코드는 Quick Response가 되지 않았다. # 메타버스에 2조 6,000억 원... 멈춰! 지난 7월, 정부는 '한국판 뉴딜 2.0'에 메타버스 산업 육성을 추가하고 국비 2조 6000억 원을 들이겠다고 밝혔다. 근데 무엇이 메타버스인가? 견문이 부족한 기자는 메타버스가 게임과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메타버스에 이렇게 많은 공적 자원을 투여하는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누가 와서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 게임 하는 사람들이 메타버스 하려고 한다니 토론이 필요하다'라고 답하곤 한다. 바로 이번 국감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왔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14일 게임물관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메타버스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는 게임인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규철 신임 게임물관리위원장은 "국회 입법조사처가 메타버스는 게임이 아닌 플랫폼이라 의견을 냈다"면서도 "<마인크래프트>는 8년 전 게임으로 분류했고, <로블록스>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인 구글이 게임으로 분류했다. <제페토>는 암호화폐가 등장해 사행성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제페토>는 자신들은 게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무엇은 게임이고 무엇은 게임이 아니다. 김 위원장도 "메타버스의 성격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정리를 마치고 뉴딜 예산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1933년 뉴딜은 테네시강의 댐과 발전소 건설로 시작했는데,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메타버스에는 좌표가 없는 느낌이다. '차세대 먹거리'가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가 없는데 배고프니 먹고 보자고 밥상부터 차려서 될 일인가? 오랜 기간 야외에 방치되어 더이상 인식되지 않는 QR코드 사례를 떠올려보기 바란다. 매년 가을 열리는 국정감사는 사회 여러 의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 그 돈을 들였는데 K-VR 콘텐츠가 있었던가? 이번 국감의 최고 화제는 단연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리니지W>일 것이다. 밸브가 만든 잘 빠진 VR 어드벤처가 시연될 때, 문화체육관광부는 '실감형 콘텐츠 지원 2019년에 556억, 2020년에 490억을 편성했다'고 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년에도 콘진원은 20억 원의 세금을 들여 VR 게임을 지원했지만, 나온 결과물은 무엇인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아케이드와 체험관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VR로 보는 독립운동가', '실감형 농촌 체험' 등이 나랏돈을 들여가며 만들어졌지만,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개의 게임 장면을 본 황희 장관은 "XR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보는 개념에서 체험하는 개념으로 개발을 고민하고 있다, 영화와 실감형 기술이 게임하고 통합되는 시장으로 갈 것이다, 메타버스 등을 내년 예산에 반영해서 추진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따졌다. 어딘가에 돈이 몰리면, 그것을 받으려는 이들도 함께 쏠린다. 그 어디가 어딘지 몰라도 정부의 지원 기조는 실감형 콘텐츠에서 메타버스가 됐다. 생존이 절실한 회사들이 공공의 부조를 받아서 대책을 마련하려는 의도는 알 것 같다. 그러나 향유자와 호흡하지 않는 결과물은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어제는 실감형 콘텐츠를 제작하다가 내일은 메타버스를 준비하는 모습은 과연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 메타버스 이전엔 VR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오징어게임>처럼 세계를 호령하는 K-VR 콘텐츠 같은 건 아직 나오지 않았다. 훗날 걸출한 작품이 나와서 기자의 오늘 언설을 부끄러워할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2020 가상현실 게임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연간 매출액 10억 원 미만인 VR 관련 회사가 68.7%로 나타났고 이 중 ‘1억 원 이상 3억 원 미만’이 2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00억 원 이상 매출 기업은 전체 조사대상 중 6.3%, 4개 업체에 불과했다. # 메타버스는 도(道)가 아니다. 작금의 메타버스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도덕경> 1장이 떠오른다. 노장사상의 고전인 <도덕경>은 "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라는 선언에서 출발한다. 무릇 도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개념이기 때문에 '道'라는 글자 안에 차마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도덕경>의 '도' 같은 것에 2조 6,000억 원이나 쓰지 않는다. 메타버스는 다르다. 메타버스는 유물론적 개념이어야 하고, 그 말인즉 사회에서 통용되는 타당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게임이고 메타버스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용하다는 주장도 경계한다. 게임과 메타버스를 희미하게 구분한 상태에서 메타버스를 향해 펼쳐진 공적, 기업적 투자가 수포가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기업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