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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뉴스] 초혼 부부 스펙 보니…男 175.3cm에 6,300만원, 女는

새 가정을 꾸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서로 간의 사랑과 배려와 공감이겠습니다만, 집값 등을 보면 상대방의 스펙, 특히 소득 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획 : 이성인 기자 / 그래픽 : 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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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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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라분 표본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셔야 합니다 ㅎㅎ
결혼정보회사 듀오 이 수박씨발라 쳐먹을 것들이 사회양극화 조장하고 개지랄이네 ᆢ 여가부랑 같이 사라져버려라
진짜 엉망진창이네 성의도 없고 노력도 없는 기사. 표본을 한 회사에서만 모집했네. 나도 내 주변 지인들 표본으로 조사해서 기사내면 평균이 되는건가 ㅋㅋㅋㅋ
평균적으로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긴 하지만 ㅋㅋㅋㅋㅋ 저긴 결혼 못해서 가는 끝자락에 찾는곳인데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저렇게 표본조사가 나온건 당연한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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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랭킹씨] ‘마음 편하고 피로 없는 직업’ 1위에 ○○○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업’을 갖고 살아갑니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편인 우리지만, 무수히 많은 직업의 행복도가 다 같을 리는 없겠지요. 그래서 들여다봤습니다. 어떤 직업의 ‘웰빙’ 수준이 높고 또 낮은지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한국의 직업정보’가 그 출처로, 각 직업 종사자들의 실제 생각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웰빙(well-being): WHO가 1946년에 건강을 정의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온전히 안녕한 상태 우선 큰 범주에서의 직업 분류로 살펴봤습니다. 한국표준직업분류를 보완, 현장에서 직업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한국고용직업분류(KECO*) 기반 조사입니다. * Korean Employment Classification of Occupations 나는 내 직업과 관련해 ▲즐겁고 기분이 좋음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 ▲활발하고 활기참 ▲피로가 없어 아침이 상쾌함 ▲일상이 흥미로운 일로 가득 이상 5개 문항에 대해, 각 6점 척도 <①그런 적 없다 ②가끔 그랬다 ③2주의 절반 미만 그랬다 ④2주의 절반 이상 그랬다 ⑤대부분 그랬다 ⑥항상 그랬다>로 측정(종합지수 최소 5점~최대 30점 범위). 전체 직군 종사자 17,143명 대상 조사 by 한국고용정보원(2019년 기준) 전체 10개의 직업군 중 웰빙 종합지수가 가장 높은 건 보건·의료직이었습니다. 해당 직군 종사자 1,178명이 매긴 평점은 18.63점. 이어 농림어업직(17.87점)과 교육·법률·사회복지·경찰·소방직 및 군인(17.43점), 경영·사무·금융·보험직(17.42점) 순이었는데요. 벌이가 괜찮거나, 자연친화적이거나,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분야의 웰빙 점수가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반면 건설·채굴직(16.36점)은 웰빙 종합지수가 제일 낮았지요. 다만 직업군 간 차이가 두드러지지지는 않았습니다. 직군을 보다 잘게 쪼개서 보면 어떨까요? 우선 웰빙 수준이 높은 직업들입니다. 전체 직업 중 웰빙 평점이 가장 높은 건 23.90점으로 유일하게 +23을 기록한 마술사였습니다. 2위는 자연 및 문화해설사(22.20점)의 차지. 1·2위 직업의 공통점으로는 ‘사람들한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분야’라는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어 안과 의사와 성우가 공동 3위(22.17점)로 조사됐는데요. 5위 치과 의사, 6위 철도기관차·전동차 정비원, 7위 음료 조리사, 8위 통역가 등 비교적 전문성이 확고한 직업의 종사자들이 웰빙 관련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반면 웰빙에 관한 한 썩 만족스럽지 못한 직업도 있을 텐데요. 일반기계 조립원과 세탁기계 조작원의 웰빙지수가 각각 11.50점과 11.70점으로 가장 낮았습니다. 이어 3위 유리제조 및 가공기조작원, 7위 생산기계 조작원, 9위 섬유 제조기계 조작원 등 주로 기계를 다루는 직업들의 (일할 때) 마음이 상대적으로 덜 편안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터. 이밖에 신용추심원과 놀이시설 종사원, 의상 디자이너와 구두 미화원도 종사자들에게는 웰빙과 담을 쌓은 직업으로 여겨지는 편이었습니다. ---------- 직업별 웰빙 종합지수, 잘 보셨나요? 여러분이 속한(속하고 싶은) 직군 또는 직업의 웰빙 평점은 어땠나요? 물론 남들이 매긴 ‘평균’보다는 ‘내가 느끼는’ 정도가 중요한 건 사실. 다만 현업에 있는 이들의 의견인 만큼, 웰빙을 중시한다면 직업(이직) 선택 시 참고할 필요가 있겠지요?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펌)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한 ‘집’에 살고있는 19살 학교 밖 청소년입니다. 저는 위에서 ‘집’ 이라는 단어를 강조했습니다. 현재 저는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친 오빠에게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저희 집이 리모델링 공사를 할 때 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 성추행은 점점 이어지고 대담 해져서 성폭행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선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왜 거절을 못하였나?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저희 집 배경을 설명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은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그래서 저와 오빠는 다른 남매보다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렸던 저를 정서적으로 키워준 것은 부모님이 아닌 오빠였으니까요. 그래서 서로 껴안는 등의 스킨십이 많았습니다. 공사를 하고 있을 때 저희는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잠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당시 전 오빠와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지만 오빠는 뒤에서 절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자주 있었기에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오빠의 손이 제 가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 때 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빠가 갑자기 왜그러는걸까 , 실수로 만졌겠지. 내가 여기서 뿌리치거나 화를내면 오빠랑 어색해지려나’ 등 여러 생각들을 했고, 결국 저는 조용히 계속 자는 척 행동했습니다. 그게 제가 기억하는 첫번째 추행입니다. 그 뒤로도 수십 번 오빠로 부터 추행을 당해왔습니다. 그 뒤 어떻게 추행이 폭행으로 바뀐 건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기억하는 것은 저희 오빠와 제 관계에선 한번도 콘돔 등의 피임도구를 쓰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빠와 같은 공간에 머무르게 되어 오빠와 있던 일이 떠올라 불편해서 방으로 피하고 들어갈 때면 오빠는 계속 제 방으로 따라 들어왔습니다. 방 문을 잠그고 싶었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방 문을 잠그고 있는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방 문 손잡이가 없던 상태였으니까요. 그 외에도 저는 많은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거절하는데도 오빠가 저의 바지를 벗기고 억지로 삽입하던 날.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오빠가 억지로 관계를 맺은 후 제 얼굴에 사정을 해서 눈이 충혈된 채로 학원을 갔던 날. 자다가 인기척에 눈을 뜨면 저를 만지며 보고있는 오빠의 풀린 눈. 여전히 저는 잠에서 깰 때 두려워합니다. 오빠의 그 눈이 제게는 너무 생생해서. 그리고 저는 재작년 여름에 신고해서 현재 재판 진행중입니다.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제가 이렇게 청원 글을 쓰는 이유는 수사가 진행중이고, 검찰로 넘어간 상황에서도 오빠는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올해 2월에도 오빠로부터 추행이 있었고 전 화를 냈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답답한 제가 손목을 긋자 ‘주양육자’ 이신 아빠가 제 뺨을 두차례 내리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정신과 입원을 했고 오빠와 접근금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와 같이 살고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던 저는 2월 말 자살기도를 했으며 실패했고 또 다시 정신과에 입원을 했지만 미성년자이기에 퇴원을 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아빠는 제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퇴원 조건으로 내세우셨습니다. 그렇게 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가끔 제가 가진 스트레스를 알면서도 그걸 건드리곤 합니다. 아빠에게 오빠의 그런 점이 싫다고 말씀드린적이 한 번 있는데 돌아온 답은 “네가 오빠한테 살갑게 대하지 않아서 그렇다. 오빠 한번 안아주고 그래라.” 였습니다. 부모님은 현재 가해자인 오빠 편에 서서 사설 변호사를 여럿 선임하여 재판을 준비 중이며, 전 국선 변호사 한 분과 재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요. 또한, 저는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중요한 사안은 부모님에게 연락이 보내지고 있습니다. 접근금지 신청이 되었지만 저는 왜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며, 나가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더 이상 남매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음에도 살가움을 요구하는 부모님 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걸까요? 이 사건이 공론화가 되지 않으면 처참하게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 나가야하기에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고 청원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 공유가 되어 사건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자기들 마음 편하자고 피해자가 참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항상 놀랍니다. 가족인 경우 더 심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