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terrible
6 years ago1,000+ Views
에밀리 브론테의 대표작 <폭풍의 언덕> 그리고, 아직 소극장에서 상영중인 <폭풍의 언덕>을 모두 봤습니다. 1847년도에 나온 <폭풍의 언덕>이, 2012년도에 어떻게 다시 영화로 창조되었는지, 또 어떤 의미가 추가되었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우선적으로 <폭풍의 언덕>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부랑자인 히스클리프를, 워더링 하이츠라는 농장주인인 언쇼가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 집에서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딸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집니다. 언쇼와 그의 가족은 히스클리프를 학대하지만 오직 캐서린만이 히스클리프를 인간적으로 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캐서린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자, 히스클리프는 그 농장을 떠납니다. 농장을 떠나 돈을 번 히스클리픈는 자신을 학대한 언쇼 가족과, 캐서린과 결혼한 남자에게 복수를 시작합니다. 영화도, 소설과 무척이나 비슷한 이야기전개가 펼쳐집니다만... 한가지 굉장히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히스클리프가, 흑인입니다! 원작에서는 단지 부랑자였던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바꿈으로, 영화는 원작과 굉장히 많이 달라지는데요, 언쇼 가족이 히스클리프를 학대하는 그 이유도, 흑인이라는 이유가 되어버리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하는 이유도, 히스클리프를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 됩니다. 저로서는 조금 혼란스러웠는데요... 사랑의 순수함이 점점 폭력성을 더해지며, 광기어린 사랑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보인 원작과는 달리, 광기어린 세상 속에서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변해버린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19세기 말 내지 20세기 초, 영국에서 자행되었던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영화로 달라진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그 의미가 달라지죠- 폭풍같은 사랑으로 쑥대밭이 되는 마을의 의미가 아닌, 인종차별의 폭풍으로 가득한 마을의 의미가 되어버리죠;; 영화는 내내 히스클리프의 감정을 따라갑니다. 히스클리프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그 감정이 인종차별로 무산되어버리는 아픔. 자신의 사랑을 다시 이어보려고 하지만, 인종차별로 시작된 그의 고통은 계속 커지기만 하죠... ...흠.. 저로서는 작품의 깊이가 무척 얕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도 영화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조명한 것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인종차별의 의미가 있든 없든간에, 히스클리프의 집착은 변함없기 때문이죠. 특이하게도 이 영화... 요즘 나오는 영화들의 화면 비율과는 다릅니다. 대개의 영화가 16:9 내지 2.58:1의 비율을 가진 것과 달리, <폭풍의 언덕>은 4:3의 비율로 진행됩니다. 마치, 90년대 이전의 영화와도 같은 비율입니다. 이 이야기가 고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폭풍의 언덕, 그 자체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양 옆보다 위 아래를 강조하려 한 것일 수도 있지요. 영화는 내내 조용합니다. 음악도 없어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따라서, 원작이 가지고 있던 파괴력이 조금은 차분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캐스팅하며 나타나는 파급력에, 차분한 연출을 선보이며 그 파급력을 조절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작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영화도 꽤 흥미롭게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
kidterr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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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오오 그렇군요!!화면비율까지..책도 다시 읽고 영화도 보고 싶네요!!+_+
6 years ago·Reply
@donnakdw 강력 추천합니다 ㅎㅎ
5 years ago·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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