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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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성폭력 대처법

밝은 대낮에 무기 없이 찝적대는 정도라면 강하게 거부감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인적 드문 밤, 아니 낮이라도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면 우선은 시키는대로 따를 수밖에 없겠죠.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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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들은 성기를 거세하는 가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제일 확실한 방법이 있는 데 시행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일단은 살고봐야지 살아야 처벌이 의미가 있죠
변태 많이 만났고 고함도 치고 경찰신고도 해봤고 처벌도 시켜봤는데요. 크게 피해입은건 아니지만 하도 많이 만나서 내 인생 참 더럽네 라고 생각도 했었거든요. 만만하게 생겼나 싶고. 변태를 보거나 성추행피해를 당하면 큰소리를 쳐야한다고 생각했고요. 근데 얼마전에 깨달았어요. 나는 운이 좋았구나. 어두운 밤에 정말 내몸을 건드리려고 거칠게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본적은 없었던 거에요. 정말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수 있을까, 살아서 빠져나올수 있을까 싶어요. 저분 말씀대로 일단 살아남는게 제일 중요한거 같아요. 목숨을 잃는거 보다는요 ㅠㅠ
일벌백계. 본보기가 이제는 필요하다. 범죄를 저지르면 고통속에서 평생을 살아 가는 것을 보여주어야 범죄가 줄어들것이다. ㅆㅃ 범죄자들을 위한 나라 대한민국. 범죄자들의 인권을 피해자들보다 더많이 지켜주는 나라. 대 한 민 국
영화 beleave me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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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혐주의) 인천에서 있었던 엽기적인 살인사건
▲ 왜 범행을 저질렀나=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강릉으로 가던 중 강씨가 짝사랑하던 여자의 남자친구와 숨진 오씨가 목소리와 행동거지가 비슷하다며 오씨를 폭행한 뒤 납치했고 이후 오씨가 탈출을 시도하자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또 강씨가 경찰 조사 중 “카드빚에 시달려 세상에 불만을 품었다”며 “신고가 두려워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카드빚도 엽기행각의 원인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 가좌동 살인사건 전과자 출신 강모씨와 김모씨는 자가용 영업 운전기사 오모씨를 옛 애인 남자친구와 닮았다며 극심한 폭행 후 테이프로 얼굴을 모두 감아버리는 엽기적인 수법에 의해 오모씨는 사망. 그 뒤 시신은 자기 집으로 옮겨옴 옮겨놓은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놓은 후 채팅앱으로 여성 이모씨를 유인 집에 감금 5회에 걸쳐 성폭행 성폭행 후 여자를 묶어둔 채 바로 옆에서 시신을 꺼내 토막 내기 시작함 여성은 공포에 질렸으나 살려면 같이 토막을 내라고 강요해 여성도 시신을 토막 내는데 참여 범인들은 시신 토막 후 인증사진까지 찍음 여성이 범행에 동참해서 신고를 못 한다고 생각해 풀어줬으나 여성의 신고로 범인 검거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토막 난 시신은 저 봉투에 담겨 있었음 주범 강모씨는 무기징역, 공범은 꼴랑 징역 7년 ㅊㅊ 이종 ㅁㅊ 7년? 돌았냐 진짜 지금은 멀쩡히 돌아다니겠네 ㅡㅡ 그리고 저 인간들 토막낸 시체랑 나흘이나 같이 있었다고 함
전주 단독주택 괴담
초등학교 때 이사를 하고 전라북도 전주의 모래내시장 뒷편에 있는 2층짜리 주택에서 겪었던 일이다. 2층은 우리가족, 1층에는 집주인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고 반지하에는 젊은 아가씨가 거주하고 있어서 총 3세대가 살고 있던 단독 주택이었다. 두 명의 언니와 한방을 썼는데 어느 날 부터 세 명 다 악몽을 꾸게 되었다 둘째 언니 꿈 먼저 둘째 언니가 꾼 악몽은 현관에 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걸 보고 가 봤더니 어떤 여자애가 목을 매달고 있는 꿈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큰 언니가 얘기 좀 들어 달라고 나와 둘째 언니를 깨웠다  큰 언니 꿈 첫째 언니가 꾼 악몽은 우리방 옷장이랑 창문 사이 빈틈에 어떤 남자아이가 쪼그려 앉아 있길래 어쩌다가 밤새 떠들고 놀다가 그 남자아이가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였다. 그 얘기를 들은 그날 밤 나는 가장 독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나의 꿈 엄마가 부엌 식탁에서 큰 고깃덩어리를 칼로 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그 칼을 뺏어서 엄마를 죽이는 꿈이었다. 꿈을 꾸고 난 후 큰 언니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어젯 밤에 꾼 꿈 내용이 기억이 난다면 기겁을 하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너 거기에 왜 숨어있어?" "아빠가... 날 찾아서요" 아빠가 엄마를 찌르는 걸 보고 얘도 너무 무서워서 옷장이랑 창문 사이 빈틈에 숨어 있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누나가 목을 매단 거 같다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말해주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우리 세 자매 모두 꿈이 연결된게 너무 이상해서 엄마한테 이 얘기를 했다 엄마는 불안했는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스님한테 전화를 걸어 얘기를 나누시고 우리 집에 오기로 약속을 잡으셨다 그런데 그날 밤, 집주인 할머니가 마당에 주저앉아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라며 통곡을 하고 계셨다 알고보니 집주인 할머니 꿈에 큰 아들이 하얀 밧줄을 메고 찾아왔는데 밥을 달라길래 밥을 주었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은 큰 아들은 "역시 우리 엄마 밥이 제일 맛있네 밥 잘 먹었습니다 먼저 가볼게요"라며 말하면서 집을 떠났다 아들 뒷 모습을 보니 어깨에 있던 밧줄로 관을 끌고 가고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너무 놀래서 벌떡 일어나는데 따르릉 며느리 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머니 어떻해요? 얘기 아빠가 지금..." 큰 아들이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큰 아들 시신은 전주의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까 서둘러 집 주인 할머니댁으로 오겠다는 전화였다 그래서 집 주인 할머니는 자기가 꾼 꿈 때문에 아들이 죽은 것 같다면 대성 통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로 집 주인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데려가셔서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집 주인 할머니는 며느리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 주인 할머니가 탈진한 사이에 꿈을 꾸셨는데 잠에서 깨어 소리를 지르셨다. 이번에는 며느리와 7살 손녀딸이 어깨에 관을 끌고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밥 좀 주세요" 집 주인 할머니는 들어오면은 죽게 될 것을 생각하시고 안 된다 들어오지 말라면 문을 지키셨는데 문이 열리고 말았다. 계속 밥 달라는 소리에 집 주인 할머니는 밥을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부엌으로 달려가 밥과 반찬을 다 버리고 있는데 며느리와 7살 손녀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밥을 가져와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밥을 다 먹은 며느리와 7살 손녀딸은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이제 갈게요" 라며 말한 뒤 집을 나섰다 집 주인 할머니는 큰 아들과 똑같은 꿈에 불안해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주인과 어떤 사이세요?" "제가 시어머니인데요?" 낯선 남자가 한 말은 서둘러 전주로 오던 며느리와 손녀딸이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엄마는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전화한 거 보니 무슨 일이 단단히 났구먼 기다려" 스님은 진안에서 전주까지 단숨에 달려오셔서 마당을 둘러보셨다 "내가 너무 늦게 왔구먼" 그리곤 스님은 2층 집부터 보일러실, 옥상 등 샅샅이 훑어보시더니 갑자기 엄마한테 물어보셨다 "저기는 누가 살아?" "어디요?" "저기 반지하" "저기 아가씨 한 명 사는 걸로 아는데요 왜요? 어제는 안 들어온 거 같은데요" 스님이 그 얘기를 듣고 대뜸 그 아가씨 집 문을 열어봐야겠다면 막무가내로 반지하로 내려가셔서 문을 두드리셨다 아무 대답이 없어지만 스님은 멈추지 않고 계속 두드리시더니 결국 현관 문고리를 여셨다 안에 들어가자 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올라와서 구역질이 났다 스님은 집을 둘러봤는데 엉망진창인 집 안은 보시더니 헛 웃음이 썩인 한 숨을 쉬셨다 "집 주인 할머니 오시거든 이거 설명해 드리고 이 집 정리하라고 그래" 안에 뭐가 있기에 저러시지 왜 이러지 궁금해서 엄마가 가봤더니 새까맣게 썩은 사과와 곰팡이가 낀 배 한 알이 보였다 그리고 스님이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키셨다. 거기엔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거꾸로 탁 꽂혀있었다 "신이 화가났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 집 여자가 신을 제대로 안 모셨다고 그러니 탈이 날 수밖에 이 신은 지금 자기 위에 사는 것들이 밉고 싫어서 독을 품었어 너네 가족이 이 집에 제일 늦게 들어와서 화를 면한 거야". 반지하 아가씨는 집주인 몰래 신당을 차렸던 것이었다 장례 후 이 얘기를 들은 집 주인 할머니는 반지하 아가씨에게 연락을 했는데 한참 동안 받질 않다가 겨우 연락이 닿게 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반지하 아가씨는 다름 아닌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반지하 아가씨는 신병을 앓기 시작해 몇 년을 고생을 했는데 무속인이 되기 싫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신당을 차리면 나아진다는 속설에 신당을 차렸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무서워지자 신당을 버려둔 채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는 거였다. 집 주인 할머니는 다시 온 반지하 아가씨를 보자마자 내쫓았는데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여자의 목소리 같지 않은 그 반지하 아가씨가 한말... "날 쫓아 낸다고 끝이 날 것 같아?" 사람 목소리가 아닌 귀신의 목소리 같았다... 이후 집을 빼고 이사를 갔다 당시 그 동네에 살았던 친구가 얘기해줬는데 이사 온 지 일주도 안 돼서 강도가들어서 경찰오고 구급차 난리나서 절대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와 제작진은 예전 집을 나섰는데 아직도 그 집이 있고 그 집에 진짜 무속인이 살고 있었다 (출처) 신당을 공동주택에 차리면 어떡하나요 정말... 물론 신내림을 받은 아가씨도 아무 죄는 없지만 그래도 영문도 모르고 당한 윗집 사람들은 무슨 죈가요 어휴
흥미롭고 무서운 안동 귀신나무 이야기.jpg
회화나무, 당산나무 또는 선비 나무라고 (양반들이나 학자 집안에서 많이 키웠다고 함) 불리는 이 안동나무는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인 임청각 앞에 심어진 나무였음 (고려 시절부터 존재했단 말도 있음) 이곳은 도박으로 탕진해가는 척하며 뒤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파락호 김용환 선생과 민족시인 이육사 시인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지역이었음 독립운동가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서 결의도 맺고 그랬다고 함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임청각을 허물고,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기 위해 대부분의 건물을 허물고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음 그런데 인부가 나무를 도끼로 내려 찍으려 하자,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인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에도 그 나무를 베려고 했던 인부들이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꺼려하였고 일본놈들도 지들이 나무를 직접 베기에는 찝찝한 거임 그래서 당시 나무를 베면 5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내걸고 또 다른 인부가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했음 근데 이 인부도 나무를 베던 중 집으로 잠시 쉬러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 사람들은 또다시 술렁거리고 금액은 100만 원까지 오르고 한 남자가 또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나섬 근데 이 남자가 나무를 베다가 나머지는 내일 하려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날 출근을 안 하는 거임 그래서 집을 찾아가 봤더니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죽어있음 이유는 알 수 없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나무는 베야겠고 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함 굿하다가 무당이 작두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함 소문은 더 안 좋아짐 결국 일본놈들은 금액을 200만 원까지 올려보았지만 역시나 베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족족 죽어 나가고 일본놈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함 이후 마을에서는 이 나무는 영령이 깃든 나무로 숭배받게 됨 또한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철도를 마치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철도가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함 (임청각의 건물과 귀신 나무는 철도를 감싸는 듯한 형태로 일본이 만든 철도를 옥죄는 형태) 이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이육사의 생터가 있던 마을 및 수많은 자연마을이 수몰당하게 됨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났던 수많은 마을이 수몰되는 사건이 생김 그리고 안동댐 건설과 경제개발 계획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또 나무를 베려는 시도가 있게 됨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나무를 베려 하자 근처 안동댐에서 건설을 하던 인부들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고, 나무를 밀어버리려던 불도저의 삽이 갑자기 빠지는 등 괴이한 사건이 발생함 결국 현장 관계자들 역시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함 그리고 이 나무를 구경하러 안동에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함 이후 안동나무는 도로를 조금 침범한 위치에 오래 유지되는데 이 나무 위치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고 함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오토바이 사망 사건도 나고..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밑동만 남겨두고 잘려버림 밤새 시청에서 작업했단 말도 있고 나무에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하러 할아버지가 새벽에 나무를 잘라버린 후 무서워서 굿을 했다는 말도 있고 기독교 측에서 잘라버렸단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많음 근데 밑동만 남은 나무에서 새싹이 남 여기서 안동 사람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림 교통에 방해가 되는 나무를 베어야 한다 vs 역사가 있는 나무인데 놔둬라 그렇게 나무에 펜스를 쳐두고 대립하던 중 다음 날 보니까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완전히 죽어버린 거임 알고 보니 한 대학생들이 나무를 못 보고 차로 치어서 사고가 났다고 함 그 후로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나무가 있던 자리에 아예 시멘트를 깔아서 안동나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대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별 탈 없이 지냈다고 들은 듯..) 1차ㅊㅊ 루리웹 / 사진 내가 더 추가함 ㅇㅇ 근데 저렇게 오래되고 썰도 많은 나무면 도로 저쪽으로 깔지 말지; 관광명소로 만들거나 옮겨서 오래 보존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저런 고목들은 고사지내고 어명이요~~~ 하면서 베어야된다고 하던디 예의 좀 지키지 그랬냐 글구 저 큰 나무를 대체 왜 못보고 사고가 나는 거지 저렇게 큰데 ㅇㅇ
사망사고로 인해 폐쇄된 미국의 좁은 동굴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Nutty putty' 동굴은 험난한 온수 동굴로써 매우 비좁고 깊으나 많은 탐험가들이 찾던 동굴이었다. 동굴의 크기는 성인 남성이 간신히 통과가 가능할 만큼 비좁은데 (▲ 사고 전 John Jones의 사진) 사건은 2009년 버지니아대 의과대학에 재학중이었던 'John Jones'가 일행과 함께 해당 동굴의 탐험 중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갈만한 좁은 구멍에 몸이 거꾸로 끼이면서 벌어졌다. 위로 나 있는 좁은 구멍을 타고 오르는 순간, 그의 몸이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가 사고를 당한 곳의 구조는 낙타의 혹처럼, 불룩한 지점을 넘으면 곧바로 지하로 곤두박질 치는 구조였던 것이다. (구조 작전 당시 지하로 내려간 구조대원이 촬영한 사진) 위의 지도는 동굴내에서 그가 구멍에 끼인 위치이며, 사진에서처럼 그의 몸은 꼼짝할 수 없는 좁은 틈에 완전히 고정되어 버렸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꽤나 깊고 좁은 동굴이기에 중장비를 동원하지도 못 할 뿐더러, 동굴이라는 특성상 진동으로 붕괴될 위험성도 있었기에 폭발물을 사용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동료가 그의 발에 줄을 묶고 당기자 몸이 잠시 끌어올려 졌고, 그 빈틈으로 물과 식량과 무전기를 주었다. 하지만 줄이 풀리면서 더욱 깊이 몸이 박히고 말았다. 그후 26시간 동안 137명의 구조대원이 구조를 시도했다 수색 팀과 구조대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26시간을 일했지만 John이 갇혀 있던 틈의 모양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되었다. 좁은 균열은 거의 일직선으로 갈라지고, 그래서 구조대들이 John을 끌어내려고 할 때, 그의 발은 터널의 낮은 천장에 부딪혔다. 그를 뒤로 당기면 다리가 부러질 수 있고, John이 거꾸로 뒤집어 진 결과로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부러뜨린다고 하더라도 구조상 거꾸로 꺼내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 다른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구조를 포기하였다. 이후 그는 호흡 곤란으로 그대로 사망하였으며 시신 역시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사고 이후 해당 동굴은 입구를 막은 채 폐쇄 상태이다. (출처) 아....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네......
레딧) 세상에서 제일 가는 학교 심리상담가
오늘은 중복! 다들 닭 한 마리 잡수셨나요? 미친듯이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부디 모두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더위 조심.. 코로나 조심...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내가 열두 살이었을 때, 나는 내 가족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한 번도 문제아였던 적이 없었지만, 부모님은 분명 날 문제아처럼 대했다. 예를 들어, 나는 오후 다섯 시까지 집에 들어가야만 했었다. 밖에서 노는 시간을 제한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친구를 데려와서도 안 됐고, 다른 친구의 집에 가서도 안 되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숙제를 끝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진 상관없이 말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비디오 게임을 사주는 것을 반대했고 책을 읽도록 강요했으며 그 증거로 독후감을 쓰라고 시켰다. 이런 규칙들이 어렸던 나에게 아주 실망스러운 것들이긴 했지만, 그것들은 날 제일 화나게 했던 건 아니었다. 날 정말 상처받게 했던 것은 부모로서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저지른 실수나 사고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혹독한 여자셨고, 아버지는 ‘실망’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밖에 몰랐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하는 유일한 때는 내가 시험 점수를 낮게 받았다고 소리 지를 때나 내가 잘못했다고 때릴 때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학교의 심리상담가 선생님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자. 그의 신원 보호를 위해, 여기선 태너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다른 여느 중학교들처럼, 심리상담가 한 명이 학교가 끝날 때까지 항상 감정적, 학업적, 사회적, 행동적 등등의 문제에 대해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한 번도 학생들이 태너 선생님과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매일 나는 식당에 가면서 그의 사무실에 달린 작은 창문을 흘깃 보곤 했다. 그는 항상 서류작업을 하면서 혼자 그 안에 있었다. 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실상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들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일 거라고 추측했다. 이 이유 때문에, 내가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용기를 내는 데에 3주의 시간이 걸렸다. 1993년 3월 2일, 그날이 내가 태너 선생님에게 내 문제를 이야기하기로 결정한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그의 사무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통해, 난 그가 머리를 들고,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들어갔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태너 선생님은 친절함을 사방에 풍기며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고 나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는지에 대해 쉬지 않고 말했다. 조금 후, 내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난 말하는 것을 멈췄다. 심리상담가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연설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다. 나는 그가 이제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을 사실이 아니며 우리 부모님은 날 아주 사랑하고 어쩌고저쩌고 말하기 시작할 거라고 반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태너 선생님은 씩 웃으며 날 향해 가까이 기대앉더니 “있잖니..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학교 심리상담사야.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약속할게.” 난 눈을 굴렸다. “좋아요, 하지만 어떻게 할 거죠?” 내가 물었다. “나에게 다 방법이 있단다!” 그가 대답했다. “난 내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란다. 딱 한 달 이내에, 너와 너의 부모님 사이의 관계는 좋게 바뀔 거라고 약속하마. 영원히.” 잠깐 말하는 걸 멈추다가, 그가 계속했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약속을 하나 해야 하긴 한단다.” “내일 학교가 끝나면 내 사무실로 다시 찾아오고, 앞으로 아무에게도 우리가 오늘 이 대화를 했다는 걸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 우리만의 작은 비밀이 되는 거야.” 나는 약속했다. 다음날, 나는 방과 후 태너 선생님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던 게 오후 4시쯤이었다. 따뜻하게 날 맞아주며, 그는 그의 책상 앞에 다시 앉아보라고 부탁했다. 앉으면서, 나는 태너 선생님이 문에 달린 작은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를 닫는 걸 봤다. “됐다.” 그가 웃었다. “이제 우리가 방해받지 않을 수 있겠구나!”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흥미 있어 하는 것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들 같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얘기하고 나자, 태너 선생님은 나에게 탄산음료를 권했다. 나는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 내가 탄산음료를 마시는 걸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너 선생님은 소형 냉장고에 다가가 조금 만지작거리더니 책상에 탄산음료 캔 두 개를 딴 채로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내 인생에 대해 계속 얘기했지만 내가 태너 선생님이 음료에 탄 무언가를 먹고 기절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어나면서 흐려진 시야를 적응시키는 데에 1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시야가 적응되자, 나는 대체 뭘 생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내 입은 강력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수갑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잡아당겼지만, 곧 포기해버렸다. 내 눈은 믿을 수 없는 방의 광경을 보고 커다래졌다. 슈퍼히어로 포스터들이 방 벽에 붙어 있었고 유명한 운동선수들의 사진이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방 가운데에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슈퍼 닌텐도, 그리고 그 옆에 쌓인 게임 카트리지들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죽도록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들로 가득 찬 방에 있었다. 내가 침대 프레임에 수갑이 채워진 채가 아니었다면 아마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태너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한 번 더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침대 끝에 앉았다. “잘 들으렴” 그가 말했다. “난 너를 돕기 위해 여기 있는 거고 절대 널 해치지 않을 거란다. 알겠니?” 태너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내 입에서 테이프를 뜯어내고 손에서 수갑을 풀어주었다. 내 첫 번째 본능은 울기 시작하는 거였지만 태너 선생님이 주는 어떤 느낌이 날 안전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는 날 보며 웃었다. “넌 여기서 잠시 지내게 될 거야.” 그는 계속했다. “그리고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이 방에 있는 어떤 장난감을 갖고 놀아도 돼.” “하지만 내가 집을 나가면, 난 네 손 하나를 다시 침대에 묶어야 한단다. 넌 티비는 계속 볼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없을 땐 꼭 뉴스 채널만 봐야 한단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그가 내게 알려준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애썼다. “자, 그럼!” 태너 선생님이 내 무릎을 찰싹 치며 말했다. “가서 재밌게 놀고 있으렴. 나는 저녁 시간이 되면 돌아오마.”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텔레비전을 켜고 문을 잠그고 나갔다. 몇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난 태너 선생님이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 남겨진 할 일은 밤이 될 때까지 닌텐도로 마리오를 플레이하는 것이었다. 오후 7시쯤, 태너 선생님이 으깬 감자와 치킨이 담긴 접시 두 개를 들고 방에 돌아왔다.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 그에게 내가 얼마 동안이나 여기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음, 한 달쯤.” 그가 대답했다. “몇 주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단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태너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깨어났다. “안녕 친구,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이걸 다시 채워야 할 거야.” 그가 속삭였다. 차가운 금속 수갑을 내 손목에 채우면서.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카라가 달린 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그의 어깨에 코트를 두른 채 서류 가방을 옆에 두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항상 보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떠나기 전, 그는 티비 리모컨을 내 옆에 두고는 티비를 켜고 뉴스를 보라고 말했다. 내가 티비를 켜고 맨 처음 본 것은 “특종 뉴스” 부분이었다. 중요하게 보이는 경찰관이 연단 앞에 서서 마이크를 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중간쯤부터 보게 되었다. “오늘 아침 전체 주에 어린이 납치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우리는 다수의 수사관으로 하여금 납치범 용의자들을 가려내도록 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많은 증거가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교직원들은 그 남자아이를 오후 4-5시쯤 마지막으로 본 것을 밝혔으ㅁ-“ 나는 내 사진이 화면에 나타나자마자 구역질이 났다. 그건 작년 학교 앨범에 넣은 내 사진이었다. 사진에 깔린 자막엔 내 이름과 나이, 학교, 사는 마을이 나왔다. 내 사진 위에는 제목이 교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FBI가 아이를 찾기 시작하다] 그리고 [납치범 용의자 알 수 없음] 그리고 [도주 가능성 존재] 라이브 영상이 다시 나왔고 두 사람이 나왔는데 곧 우리 부모님이 연단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둘 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마이크를 잡으며 어머니의 얼굴 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어머니가 라이브 뉴스에서 울기 전엔 어머니께서 그렇게 많은 감정을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더듬거리면서 “제발 내 아기를 내게 돌려주세요.” 라던가 “내가 미안하다” 라던가 “제발 우리에게로 돌아와 주렴”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었을 땐, 난 그의 태도가 차가울 것이라고 거의 예상했지만, 그 역시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세상에게 그의 아들을 돌려 달라고 애원했고 마지막으로 내 용서를 구하며 빌었다! “내가 최고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거 알고 있단다, 하지만 젠장, 이제서야 내가 그랬더라면 하고 바란다. 제발 내 아들을 돌려주세요.” 나는 그 후 빨리 전원을 꺼버렸다. 전엔 아버지가 우는 걸 한 번도 못 봤다는 것에 나는 섞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저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드디어 우리 부모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거의 4주가 지났고, 태너 선생님은 그동안 날 극도의 존중으로 대해 주었다. 그는 아침에 날 침대에 수갑으로 채우고 나갔지만, 오후에 돌아와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같이 게임을 하며 놀아주었다. 나는 태너 선생님이 모노폴리와 스크래블을 그렇게 잘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아침 태너 선생님이 일하러 가기 전 날 깨웠을 때, 나는 그의 얼굴에서 단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땐 선생님이 날 보통 깨우던 시간보다 3시간은 이른 시간인 것도 깨달았다. “오늘은 무조건 뉴스를 봐야 한단다. 예외는 없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두고 집중해서 보렴.” 그가 엄격하게 말했다. 나는, 당연히, 그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했고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2시간쯤 지난 후, 특종 뉴스가 내가 보던 치약 광고를 멈추고 나왔다. 제목은 [인간 유해 발견] 신뢰감 있게 생긴 두 남자가 수트를 입고 나란히 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이번 달 초에 있었던 어린이 실종 사건에 대해 이런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남자 한 명이 종이들을 넘기며 말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계속했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시체의 잔해가 고가도로 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는 어린이의 것으로 보입니다만, 많은 부분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시체는 목이 베여 얼굴이 없고 거의 다 타서 재와 뼈로 남아있습니다.” 화면은 헬리콥터 카메라가 찍는 고속도로 화면으로 바뀌었고, 열 대가 넘는 경찰차들이 높은 고가도로 밑에 모여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봉투 안에서 경찰은 이렇게 쓰인 중학교 학생증을 발견했습니다.” 화면은 내가 내 가방에 항상 갖고 다녔던 학생증을 보여 주었다. 플라스틱은 약간 녹아버렸지만 내 사진과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두 남자가 퇴장하고 나자, 카메라는 내 부모님 쪽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기자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뒤틀려 있었고 아버지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난 TV를 껐다. 태너 선생님은 아주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그는 방으로 급하게 들어와 수갑을 풀어주고는, 탄산 거품이 올라오는 물 한 병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그의 손을 내 어깨에 얹고는 웃었다. “내가 너와 약속했었잖아, 안 그러니?” 나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약속을 해줘야 한단다.” 그가 속삭였다. 그는 나보고 병에 든 물을 전부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내가 잠드는 걸 도와줄 거라며) 그리고 그 후엔, 난 그를 만난 적이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나는 약속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학교 심리상담사라고 말했잖아, 그렇지?” 그리고 그는 옳았다. 나는 그날 밤 조금 후에,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공원 한가운데 누워 있는 채 깨어났다. 나는 그 공원이 어디인지 알아보았다. 그곳은 우리 학교와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길을 1~2km쯤 내려가다 보니, 우리 집이 보였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아버지가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는 계단에 앉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주저하며 그를 불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그것이 나인 걸 알아채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뛰어올라 일어서 팔을 벌린 채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어머니는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태너 선생님은 옳았다. 우리 가족과 나 사이는 변했다. 우리 부모님은 더 자주 웃었고 나를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더이상 완벽한 결말은 없을 것이다. 가끔 나는 태너 선생님이 학교에서 대화를 하고 있거나 사무실에 있는 것을 본다. 우린 눈을 마주친다던가 말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가끔 그는 내게 윙크나 웃음을 던진다. 나는 언제나 태너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그를 만난 적이 없는 척할 테지만, 언제나 한 가지 궁금증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태너 선생님이 목을 베고 고가도로에서 던져버린 시체는 누구였을까? 원출처 : 번역 :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실화)일본에서 싼집에 들어가면 생기는 일
지긋지긋하게 덥군요 그래도 습하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하계 올림픽 다들 보고 계신가요? 저는 꼭 제가 보면 결과가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궁금증을 최대한 참고 뉴스로 결과를 접하고 있습니다 ㅠ 더운 날씨에 모든 선수들 부상없이 돌아오시길..!!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이건 저 사람이 글쓰기 2주전에 쓴걸로 추정하는 댓글 싼집은 들어가면 안되나 봄 출처 : 디미토리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쏘우 돋는 은행강도 사건 (초스압 주의)
2003년 8월28일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시에 있는 한 은행에 40대 남자가 짤막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이마 위의 머리가 빠져 없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이 남자는 창구로 다가가서 직원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행 금고를 열 수 있는 직원을 불러 신속히 이 가방에 25만 달러를 채우시오. 허용된 시간은 단 15분이오." 은행 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무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쪽지를 내밀며 창구 직원에게 한 행동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 남자의 목 밑 옷 속에는 무언가 두툼한 것이 달려 있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나타난 것은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였다. 그는 이것이 폭탄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은 지금 당장은 금고를 열 수 없다고 말하고, 수납대에 있던 현금을 모아 남자가 갖고 있던 가방에 8,702달러를 채워 돌려주었다. 남자는 가방을 받아들고, 창구 앞에 있던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은행을 나갔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지오 메트로 자동차에 올라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는 그다지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그가 은행을 떠난 지 20여 분 가량 지나서였다. 도주하는 차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의아스럽게도 그는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이리떼처럼 몰려든 경찰은 그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길에 주저앉혔다. 즉시 연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목에 달린 폭탄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게 진짜 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고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당시 46세로 '마마 미아 피자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브라이언 웰스였다. 그는 같은 가게에서 30년 가까이 배달원으로 근무해 온 성실한 종업원이었다. 과거 10년 동안 그가 업무 시간을 어긴 일은 단 한 번인데,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였다.  웰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은행 강도가 아니라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설명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을 받고 피자 배달을 갔다가 흑인 세 명에게 인질이 되었다는 것, 그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자신의 목에 폭탄을 부착했다는 것, 그 상태로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돈을 가져오고 지시에 따르면 폭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지시를 어길 경우 언제든지 목 밑의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 "이건 진짜에요! 곧 터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경찰은 웰스를 길 위에 앉혀둔 채, 폭발물 처리반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911로 '폭탄으로 무장한 은행 강도'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자신들은 거리를 둔 경찰차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웰스는 "사장님에게 연락했나요?" 하고 소리쳐 묻기도 했다. 근무 이탈을 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25분이 지나갔다. 주저앉아 있던 웰스의 목 밑에 달린 금속 상자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웰스는 무의식적으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폭탄은 그의 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진짜였던 것이다.  웰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하기 3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 --- 경찰은 웰스의 차를 수색하여 증거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할 때 짚고 있었던 지팡이가 나왔다. 이 지팡이는 정밀하게 개조된 샷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차 안에서 발견된 범행 지시서였다. 손으로 공들여 쓴 이 지시서는 폭탄에 묶인 웰스가 스스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쏘우>의 게임 지시문 같은 이 지시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 XXXX 거리에 있는 OOO 은행으로 갈 것. 은행 안내원이나 창구 직원에게 요구 조건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넬 것. 경보를 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지시된 장소로 서둘러 와서 다음 지시서를 찾을 것. 각각의 장소에는 다음 장소를 알려 주는 지시서가 있으므로 이를 찾아야 함.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열쇠 몇 개와 자물쇠 번호를 하나씩 구하게 되며, 이것들이 모두 있어야 목에 달린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음. 당신은 단순히 인질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중에 처벌을 받지 않을 것임. 가장 중요한 사항: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전화하지 말 것. 당신의 회사, 경찰,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알리면 바로 죽게 됨. 우리가 경찰차나 경찰 헬리콥터를 목격하게 되면 당신을 죽일 것임. 당신의 목에 채워진 강력한 폭탄은 오로지 우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를 때에만 제거될 수 있음. 스스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지시를 따르기 위해 허용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임. 꾸물거리지 말 것. 폭탄은 55분 뒤에 폭발함. 은행에서 20분 이상 지체하지 말 것. 다음 지시 장소로 오는 데 25분 걸릴 것임. 따라서 여유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없음. 이 시간은 다음 지시서를 찾는 데 써야 함. 첫 번째 열쇠를 찾으면 폭발 시간이 연장될 것임. 우리의 지시 사항을 잘 따른다면 열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며, 돈이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된 뒤 마지막 열쇠와 자물쇠 번호를 받을 수 있음. ... (하략) 지팡이 샷건에 대한 지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갖고 조용히 은행 안으로 들어갈 것. ... 협조하지 않거나 은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것. 무기 사용 설명서는 방아쇠 근처에 달려 있음." 지시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쏘우>의 지시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에게 각 단계별로 시간 제한을 두고 'mission'을 수행하게 한 것이나, "It is your choice to live or bring death" 같은 문구가 있다거나 하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이 첫 번째 지시서의 맨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ACT NOW, THINK LATER OR YOU WILL DIE!" 무엇보다, 웰스의 목에 부착된 폭탄이 존 크레이머가 희생자들에게 덧씌운 기기묘묘한 장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쏘우> 1편은 2004년에 개봉되었으므로 2003년에 벌어진 이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다.) (복원한 폭탄) 경찰 조사 결과 이 폭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수갑과 같은 형태로 채워지는 강철 고리로 목에 걸리도록 되어 있고, 그 아래 금속 상자에 6인치짜리 파이프 폭탄 두 개를 삽입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두 개의 작은 주방용 아날로그 시계와 한 개의 디지털 시계로 이루어진 시한 장치가 복잡한 잠금 장치와 함께 장착되어 있었다.  전기선도 얽혀 있었는데, 이 전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해체하는 사람을 혼동시키기 위해 부착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공작 기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공들여 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 ** --- ** --- 경찰은 단서를 찾기 위해, 웰스에게 내려진 지시 사항대로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시서는 은행에서 돈을 확보한 뒤 차를 타고 인근의 맥도널드 식당으로 오도록 하고 있었다. 식당 입간판 밑 화단의 굵직한 돌 하나에 다음 지시서가 테이프로 붙어 있고, 이 지시서는 다음 장소를 다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의 나무 밑 상자에서 찾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웰스가 경찰의 제지를 받은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이 상자를 찾는 도중이었다.  사건 직후 경찰은 근처에서 문제의 상자를 발견했으며, 그 안의 지시에 따라 다시 2마일 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다음 지시서가 들어 있어야 할 병을 찾았다. 병은 발견되었지만,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이 '목숨을 건 보물찾기'는 범인들이 웰스를 지켜보며 단계별로 그에 한 발씩 앞서 예정된 장소로 가서 지시서와 열쇠들을 숨겨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웰스가 죽고 경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안 범인들이 지시서를 계속 묻어 둘 이유는 없었다. 다시 말해 웰스가 죽은 현장 부근에서 범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보물찾기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웰스가 일하던 피자집을 조사했다. 그 결과 특이한 사실이 두 가지 밝혀졌다. 첫째, 사건 당시 웰스가 입고 있던 옷은 그가 피자 배달을 나갈 때 입은 옷이 아니었다. 웰스는 사망 당시 위에 티셔츠 두 개를 입고 있었다. 속의 티셔츠는 그의 것이었지만, 그 위에 낯선 티셔츠를 하나 더 입고 있었던 것이다. 웰스의 친지들은 모두 이 티셔츠가 웰스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범인들이 웰스에게 폭탄을 부착할 때 입힌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의문의 티셔츠는 '게스(GUESS)' 로고가 크게 새겨진 것이었다. 마치 'Guess who we are!" 하고 도발적으로 소리치는 듯한 모양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사실은 그가 피자 배달을 하러 나간 마지막 주문자의 주소였다. 소시지와 페페로니 피자 두 개를 주문한 주문서에 기록된 주소를 따라가 보니, 나타난 것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라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 등성이의 텔레비전 방송 중계탑이었다. 비포장 도로로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범인들이 피자를 주문하면서 주소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중계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웰스가 신고 있던 신발의 족적과 그의 차 타이어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과는 별도로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조용한 도시 이리 시의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피자 배달을 나갔다가 괴한들에게 위협을 받고 폭탄(collar bomb)을 목에 차게 된다. 시한 장치가 된 이 폭탄은 웰스가 괴한들의 지시를 정확히 따라 은행 강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제거할 수 있다. 웰스는 은행 강도를 수행한 뒤 단계별로 제공된 지시서에 따라 열쇠를 찾는 도중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 폭발물 처리반이 오는 도중 웰스의 목에 달린 폭탄이 폭발하였으며, 웰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흥미로운 사항들이 밝혀졌으나,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웰스의 사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폭발물 처리반) (웰스에게 부착되어 있던 실제 목 폭탄 장치의 일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의 은행 강도 및 폭발 사망 사건은 조용한 이 도시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에, 그리고 그 다음 날의 조간 신문에 크게 보도되며 지역 사회를 흔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지역 신문의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 한 팀이 문제의 피자 배달지인 야산 텔레비전 중계탑 현장을 취재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중계탑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노란 색 줄이 둘러쳐 있었다. 증거 유지를 위해 경찰이 봉쇄를 해 둔 것이었다. 낙심하여 주변을 둘러보던 두 사람의 눈에 인근에 있는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중계탑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 집 뒤꼍을 통해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중계탑 주변을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외딴 집 마당에서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멜빵 청바지를 입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두 기자가 인사를 하자 남자는 자신을 빌 로드스타인이라고 소개했다. 로드스타인은 바로 전날 자기 집 뒷산을 경찰이 수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중계탑 현장을 확인하는 데 안달이 났던 취재진은 현장으로 가기 위해 로드스타인의 집 뒤꼍을 이용해도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앞서서 길을 인도했다.  세 사람은 빽빽히 자란 풀숲을 헤치고 중계탑 방향으로 15분 가량 나아갔으나, 현장을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데 실패했다. 두 기자는 취재를 포기하고 로드스타인의 집을 떠났다.  당시 59세였던 빌 로드스타인은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아 온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마치 영문학과 교수처럼 아주 유식한 단어를 써서 우아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말(영어)뿐 아니라 불어와 헤브루어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로드스타인이 아주 잠깐이나마 언론과 조우하게 된 것은 우연히도 자기 집 뒷산의 중계탑이 웰스 사건과 관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연한 사실을 빼면, 그는 들판의 외딴 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조용한 삶을 사는 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 사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과는 관련 없는 자기 나름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비밀은 웰스 사건이 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그가 911로 긴급 전화를 하면서 양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OOOO 거리 XXX 번지의 집 차고에 냉동된 시체가 있소! 냉동고 안에 시체가 있단 말입니다!"  로드스타인은 911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신고를 했다. 그가 말한 주소는 다름 아닌 자기 집 주소였다. 경찰이 달려가서 확인해 보니 꽁꽁 언 한 남자의 시체가 로드스타인의 차고 안 냉동고에 들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다.  경찰에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그동안 이 시체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아 왔으며,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서까지 써 두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의 집 책상 서랍에서 그가 썼다는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서 그는 이 얼어붙은 시체가 제임스 로든이며, 자신이 로든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그의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웰스 사건과 관련이 없다." 로드스타인이 제임스 로든을 죽이지 않았다면, 로든의 시체는 어떻게 해서 로드스타인의 집 냉동고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인 8월 중순, 로드스타인은 과거에 여자친구로 사귀었던 매조리 암스트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암스트롱은 당시 함께 살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과 돈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레밍턴 엽총으로 로든을 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체를 숨겨 둘 장소가 필요하다며 로드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로드스타인은 과거의 애인을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10마일 정도 떨어진 암스트롱의 집에 가서 로든의 시체와 살해에 사용된 총을 가져 왔다. 시체는 냉동고에 넣었으며, 엽총은 그 뒤 며칠에 걸쳐 모두 녹여서 작은 금속 조각들로 만든 뒤, 인근 마을 이곳 저곳에 뿌려 흔적을 없앴다. 시체 역시 잘게 갈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로든의 시체는 그냥 그렇게 로드스타인의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다섯 주 동안이나 그의 차고에 들어 있는 시체가 무섭기도 했으며, 자신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암스트롱이 어떤 해꼬지를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가 911로 자진해서 신고를 한 것은 그런 정신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이 신고를 한 바로 다음 날 매조리 암스트롱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제임스 로든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사건은 깨끗하게 끝난 듯 보였다. 로든 살해 사건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잡혔으니까. 동거남을 살해한 암스트롱은 재판 끝에, 1년 4개월 뒤인 2005년 1월에 선고 판결을 받았다. 암스트롱측은 살해를 시인했으나,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걸고 넘어지려 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년형을 선고했다. 암스트롱은 주립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 ** --- ** --- 한편,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은 사건 당시 남은 여러 가지 물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 즈음 웰스 사건은 미제 사건인데다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FBI가 담당하고 있었다.  2005년 4월 어느 날, 웰스 사건을 담당한 FBI 수사관에게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 속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독립된 살인 사건으로 처리되었던 암스트롱의 제임스 로든 살해 사건이, 사실은 웰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알려졌을까. 얼마 전에 주 경찰관은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를 찾아가 암스트롱을 참고인으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시체 처리를 도와주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로드스타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유서에 쓴 내용은 모두 자신과 치밀하게 논의한 끝에 작성한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연락을 받은 FBI 수사관들은 즉시 주립 교도소로 달려가 암스트롱을 면담했다. 암스트롱은 사실을 털어 놓는 대가로 조건을 달았다. 그녀가 수감되어 있는 주립 교도소로부터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리 시에 가까운 작은 교도소로 옮겨 준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주립 교도소 중 일부는 중범죄자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이른바 maximum security 수감 시설이다. 이에 비해 소규모 지역 교도소는 훨씬 통제가 덜하므로 지내기가 편하다.) --- ** --- ** --- 암스트롱은 무서운 여자였다.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에,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당시 남자친구에게 총을 여섯 발이나 쏘아 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며, 어쨌든 배심원이 이를 인정함에 따라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번에는 암스트롱의 남편이 병원에 실려 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뇌출혈로 자연사한 것으로 소견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특별한 부검 조사 없이 자연사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암스트롱의 고등학교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는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 박사로 평판이 자자했으며, 특히 문학, 역사, 법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편집증과 자기애도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의 집을 수색하던 경찰이 온 집안에 널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려 180kg의 버터와 320kg의 치즈가 썩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20년 전의 남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될 때, 심리학자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7번이나 밝혔다. 법원에 의해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암스트롱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목 폭탄 사건에 관련되었다면 그런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되었다. 스스로 똑똑한 데 자부심이 있고 자기과시적이며 정서가 불안한 그녀가 그런 엄청나고도 자랑스러운 비밀을 오래 간직할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웰스 사건과 관련한 FBI와의 면담에서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그녀가 목 폭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 모의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방용 시계들은 자기가 주었다는 것, 그리고 웰스가 은행 강도를 벌일 때 자신이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담하고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은행 강도 계획은 대체 누구에 의해 계획되었단 말인가. 암스트롱은 텔레비전 중계탑 부근에 사는 로드스타인이 바로 그 주모자라고 지목했다. 모든 일은 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냉동 시체를 신고한 것도 웰스 사건을 서둘러 덮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암스트롱의 진술에서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질이 되어 목에 폭탄을 차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은행 강도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불쌍한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사실 인질이 아니라 범행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 ** --- ** --- 2005년 5월, 미궁에 빠졌던 웰스 사건의 미스터리는 암스트롱의 돌연한 자백으로 인해 일순간에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빌 로드스타인을 불러다가 자백만 받으면 모든 일이 종결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이미 10개월 전, 그러니까 웰스 사건이 발생한 2003년 8월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에 림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목 폭탄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것도 완전 범죄라면 완전 범죄일 것이다. --- ** --- ** --- 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 ** --- ** --- 2005년 말,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피자 배달원 웰스(사망), 중계탑 옆집 로드스타인(사망), 무서운 여자 암스트롱, 그녀의 동거남인 냉동 시체 제임스 로든(사망, 실제 가담 여부는 불명확)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이 사건 모의에 가담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비전 수리공이었다가 마약 판매상으로 변신한 케네스 반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였다.) 그는 암스트롱의 또다른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남자 관계도 상당히 복잡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반스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사람은 그의 처남이었다. 반스는 암스트롱이 자백한 사건 진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웰스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반스를 데려다 놓고, 웰스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면 형기가 대폭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하여 압박했다. 반스는 형기 연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데 동의했다. 반스의 진술은 암스트롱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반스는 사건의 모든 계획이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이 범행을 계획하고 주변의 남자들을 총동원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암스트롱은 자기 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탓에, 집이고 뭐고 다 날리고 자기에게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일을 막는 방법은 유산을 바로 상속받는 길밖에 없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가 빨리 죽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마약상인 반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은행 강도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반스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수사관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황과 잘 맞았다. 웰스 사건은 2년 반 만에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해인 2006년 2월, FBI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그녀의 변호사를 접견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므로 그녀를 웰스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하겠다고 통지했다. 암스트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으나, 특이하게도 수사에 협조하는 데에 동의했다. 현장 검증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리 시 여러 곳에서 벌어진 현장 검증에서 암스트롱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이 있던 곳과 사건 관련 장소들을 정확히 지목했다. 범행 장소를 차량으로 이동하던 도중, 암스트롱은 형을 경감해 주겠다는 증서를 써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도 그녀를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 ** --- ** --- 웰스 사건이 벌어진 지 4년 만인 2007년 7월, 연방 검찰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지부의 검사는 마침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암스트롱과 반스가 사건 관련자로 처벌되리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모자로 확인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로드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 배달원 웰스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4년 동안 수천 회의 면담과 조사를 통해, 그 동안 불쌍한 희생자로 알려진 웰스가 범행 모의의 초기부터 가담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웰스는 은행 강도 계획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인질 역할을 하기로 하는 데 스스로 동의했다고 한다. 범행 지시서를 들고 보물찾기 흉내를 내다가 돈을 다른 공범에게 전해주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보물찾기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장치였다. 범행이 끝난 뒤 웰스는 인질로 간주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었다.  그러나 웰스는 범행 계획이 진행되면서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으며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고 한다. 그가 손을 떼고 싶어 한 결정적인 계기는 목 폭탄이었다. 맨 처음 웰스가 인질 역할에 동의한 것은 목 폭탄을 가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이 폭탄은 진짜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보였던 보물찾기는 실제로 웰스의 목숨이 걸린 죽음의 레이스로 변질되었다. 웰스는 이러한 계획 변경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자기 목에 진짜 폭탄을 달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은행 강도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의 기자회견장에는 웰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검찰이 발표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고함을 치며 항의했다. 웰스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발표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 발표에는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여럿 있었다. 웰스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목숨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 당일 태연히 범행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주모자로 지목된 암스트롱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그녀가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범행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추가 사항을 발표할 때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추가 발표에서, 웰스의 보물찾기가 모조리 가짜였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폭탄을 제거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어떤 열쇠나 번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폭탄은 일단 장치된 이상 무조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웰스는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던 셈이다.  --- ** --- ** --- 2008년 9월, 마약상 반스는 웰스 사건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범행 공모와 불법 무기 혐의로 기소되어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발표에서 남았던 의문점은 함께 진행되던 암스트롱의 재판 과정에서 깨끗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밀고 당기는 씨름 끝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재판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암(腺癌) 진단이 나왔다. 법원은 그녀가 정확한 의학적 진단을 받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작년인 2010년 8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스트롱의 병세에 대한 의사의 최종 진단이 법원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3~7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검찰은 재판을 서둘렀으며, 2010년 10월에 재판이 속개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암스트롱을 기소하는 검찰의 최대이자 유일한 증인은 공모자인 마약상 반스였다. 반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반스는, 은행 강도 계획의 총지휘자가 암스트롱이며, 그녀가 로드스타인과 웰스를 끌어들여 계획에 참여시켰다고 증언했다.  로드스타인과 반스는 암스트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전 애인과 오랜 친구). 피자 배달원 웰스는? 그는 반스의 친구였다. 웰스는 사건 당시 한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반스로부터 마약을 사서 매춘부에게 주면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웰스는 반스에게 마약 대금 빚을 지고 있었다. 그도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웰스는 폭탄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범행 모의에 참가했다. 그가 폭탄이 진짜임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당일 피자 배달을 핑계로 하여 중계탑에 나가 다른 공범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공범들과 싸우며 달아나려 했으나, 누군가가 총을 겨누어 그를 제지하고 결국 목에 폭탄을 채워 버렸다.  반스가 이런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석에 있던 암스트롱은 몇 번이나 "거짓말 마라!" 하고 소리쳤다. 재판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피고 암스트롱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이틀 동안 5시간 30분에 걸친 발언을 하면서 검찰을 비웃고 조롱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장광설이 튀어나왔으며, 울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판사는 50회 이상 그녀의 발언을 제지해야 했다. 암스트롱의 주장은 자신이 주모자가 아닌 단순 협조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계속 된 그녀의 긴 발언 동안 피자 배달원 웰스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웰스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어요. 사건 당일 주변에 있었지만 누가 강도를 벌이는지는 몰랐어요. 나는 그 이름을 그가 죽던 날 뉴스에서 처음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11명과 남성 5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11시간의 장고 끝에, 은행 무장 강도, 범죄 공모, 범죄에 폭발 장치의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영화 같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몇 년 동안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암스트롱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그렇게 생각한다. --- ** --- ** --- 사건은 끝났다. 수사도 끝났고 재판도 형량이 확정된 최종 선고만 남겨 놓고 있으므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FBI의 범죄 수사 요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뒤 대학에서 범죄학을 가르치는 짐 피셔가 그다. 그는 피자 배달원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목 밑의 폭탄이 터져 길 위에서 죽었다는 엽기적인 소식을 들은 이래,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보도된 모든 기사를 분석하고 FBI가 발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왔다. 그 결과 피셔는,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매조리 암스트롱이 이 범죄의 총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셔가 주목한 것은 사건 직후 FBI의 행동분석팀에서 목 폭탄 계획을 설계한 범인에 대해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은행 강도 사건과 전혀 다르며, 여러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범인은 여럿의 범행 동기를 가졌음에 틀림없고, 그 중에서 돈은 주요 동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은행 강도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은 웰스가 실제로 돈을 가지고 나오는지,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은행 강도짓은 그저 경찰이 웰스가 소지한 지시서에 제시된 대로 허겁지겁 장소를 옮겨 가며 '보물찾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역할만을 했으리라고 분석됐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아버지를 죽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으로 단정한 검찰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FBI의 분석 보고서는 범인이 기계를 다루는 데 능하고 과학 지식이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검소한 성향의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셔가 보기에 중계탑 옆에 살던 빌 로드스타인은 이런 묘사에 정확히 맞았다. 그는 폭탄을 만들 만큼의 지식이 있었으며 (검찰도 폭탄의 실제 제조자는 로드스타인이라고 인정한다), 범행 지시서에 묘사된 것과 같은 번듯한 고급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 --- ** --- 피셔 교수에 따르면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경찰을 가지고 놀았다. 웰스에게 넘겨 준 범행 지시서를 통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추적한 끝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냉동된 시체를 신고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자기과시형 떠벌이 공범자 암스트롱을 교도소에 처넣음으로써 웰스 사건이 쉽게 누설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암스트롱 재판의 최후 신문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공들여 수행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실패하고 만 범죄극"이라고 규정했다. 만일 이 범죄의 동기가 돈을 강탈해 내는 것이었다면 검찰의 규정이 맞다. 그러나 다른 동기가 있다면? 피셔 교수는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명민함을 과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으나 인생에서 실패하고 은둔하여 사는 사람으로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드라마가 방송의 톱 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꿈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 공범을 구성했으며, 그들에게도 범죄의 일부 측면만을 알려주어 전체 구도를 모르도록 했다. 피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으로 수사도 받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완벽하게 경찰과 세상을 속인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작자입니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범죄 전문가 피셔 교수의 추정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암스트롱의 주장도 피셔의 추론에 가깝지만, 적어도 검찰과 배심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실패한 천재 로드스타인이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을까.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암스트롱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일까. 로드스타인이 죽어 버렸으므로 사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한 암스트롱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은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인 2011년 2월28일에 이리 시 지역 법원에서 열리게 된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한편 범행의 공모자이면서, 한편 피해자다. 사건 직후, 웰스의 건너집에 사는 니버 벨은 그가 은행 강도를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이웃이 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그는 천성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물질적인 데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이것은 그가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나온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며 이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 왔다. 그가 목에 폭탄을 매단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는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문 하나를 여전히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ㅊㅊ 이종 모야 ㅈㄴ 흥미진진하게 읽었네 결국 미제사건이네 대체 정답이 뭘까? 이거 넷플에 다큐도 있음 읽기 귀찮은 사람들은 다큐 틀어놓고 봐도 될듯 ㅇㅇ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조두순 때문에 묻힌 희대의 쓰레기
06년 미성년자 연쇄성폭행범 김근식 2000년 당시 전과 19범으로 미성년자 성폭행 후 징역 5년 6개월 선고 2006년 출소 후 16일 만에 경기, 인천 일대를 돌며 미성년자만 골라 유인, 납치 후 무자비하게 폭행, 성폭행을 벌임 당시 피해자의 나이는 주로 10~13살의 초등학생이었으며 두 달반 동안 무려 11명의 미성년자 성폭행 피해자가 발생함 당시 법원에서는 죄질이 나빠 엄벌해야 하지만 경찰의 공개수배이후 도주가 어렵자 자수하고 검거된 이후 수사에 협조하는 등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 징역 15년 선고함 이 쓰레기는 15년이면 절해도 모자를 판에 이후 항소했지만 응 기각. 15년 확정됐으며, 내년 9월 출소 조두순 사건의 잔혹함 때문에 묻혔지만 10대 피해자를 납치해 무자비하게 때리고 성폭행한 점, 피해자의 수가 많은 점을 보면 이 쓰레기도 조두순과 용호상박인 놈임 아니 전과 19범에 출소 후 16일 만에 계속 저지랄을 하고 다닌 인간인데..... 죄질이 나쁘지만 자수, 수사 협조로 정상참작이요...? 무기징역도 저 쓰레기를 못 조져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15년이라니... 이번 9월에 출소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쓰레기를 다시 사회에 풀어놓는지... 답답하군요........ 출처 : 뽐뿌
배급사들이 배급을 꺼려 했다는 한국 독립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2010) 선을 넘는 수위와 소재로 배급사들이 배급을 꺼려했던 예산 7억짜리 영화 개봉 자체가 힘들어 보였으나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후 16만명을 동원하며 독립 영화계에서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남 배우 서영희는 이 작품으로만 11개의 상을 수상 개봉 당시에는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평가받던 영화였으나, 섬노예 사건들을 비롯해 영화와 흡사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재조명된 작품 (특히 2016년 흑산도 집단 성폭행 사건이 큰 화제가 되면서 한번 더 주목받음) 시놉시스 아름다운 섬 ‘무도’, 그 작은 섬마을의 여섯 가구, 아홉 명이 살해되는 사건을 다룬 잔혹 스릴러. 오랜만에 고향인 무도를 찾아간 해원. 시종일관 순박한 섬사람들과, 남자 동창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친구 복남. 그러나 평화로운 풍경 속에 숨겨진 진실은 끔찍하기만 한데… 가해자와 방관자가 뒤섞이는 가운데, 김복남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상영시간 내내 너무 힘들었던 작품입니다 T_T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적 학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담아 여러모로 굉장히 불편할 수 있어 만약 이 영화를 처음 도전하신다면 주의하시길 바라요 ! 감정소모도 심하고 피로도도 어마어마 하지만 한번쯤은 감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 고어적인 장면도 많은데 사실 이 영화에서 제일 공포이자 끔찍한 부분은 여주인공 '복남'의 인생인 것 같아요 . . 두 번 볼 자신은 없어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있는 영화 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