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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1화

금요일 밤 11시50분 이태원.


친구놈과 가볍게 1차를 마치고 붉어진 얼굴로
이태원 라운지 바 '포레스트'의 긴 줄에 서있습니다.

친구: "야 오늘 느낌 좋아."

설레발치는 친구의 말에 속내를 감추고  무심한 척 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엔 이름 모를 하얀 그녀와
은밀한 접촉을 하고있었죠.

입장할 순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시선엔, 창가쪽에 앉아있는 하얀 탑을 입고
좋은 향이 날것만 같은 여자가 앉아있었습니다.

제발 둘이어라.. 제발.. 둘..


이어서 반대쪽 빈 의자에 금발을 한 여성이 착석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연일지라도 기필코 인연으로 만들겠나이다.

옆에 친구놈에게 독화술로 긴급한 내마음을 전합니다.

나: "오른쪽 위. 오른쪽 위. 아니 병신아. 반대쪽."

자연스레 스캔을 한 친구는, 츄르를 본 고양이의 눈처럼 동공이 확장되더군요.

우리는 어떤 대화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피차 목적은 다를 수 없으니까요.


드디어 입성!

합이 이루어지는 술집 특성상, 새로운 손님이 들어올 때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여기서 그 시선들을 느껴버리곤 두리번 두리번
이 집, 저 집 테이블을 훑는 것은 나의 격을 추락시키죠.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않고 정해진 나의 길을,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빠르게와 느리게의
그 어딘가의 템포로 걸어갑니다.

제발.. 제발.. 나이스!

인연을 피어낼 여자의 뒷 대각선 테이블.

자연스레 눈이 마주칠수 밖에 없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알바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술 다 먹고 테이블까지
정리해드리고 나갈게요. 꾸벅.

좁은 테이블에 메뉴판과 기본 안주가 세팅됩니다.

컵을 나누어 물을 따르고, 곧바로 컵을 집어듭니다.

네, 사실 목이 전혀 마르지 않습니다.

밍밍한 물을, 무슨 에스프레소를 마시 듯
컵을 얼굴에 바짝대고 입술만 적시며
술집 안을 스캔합니다.

우리의 레벨을, 우리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견적 끝. 뭘 해도 되는 날이다.



친구 : "뭐 먹을래?."

나 : "너 먹고 싶은거. "

주문한 안주와 술이 나옵니다.

아주 조용하고 예의 바른, 또 꾸며지지 않은 진심을
담아 알바생에게 건냅니다.

"고맙습니다."

이것의 서브텍스트는, 친구놈의 어깨 옆으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귀가 쩡쩡거리게 떠드는, 또 육두문자를 서슴없이 뱉는 예의없는 저 테이블의 미물들과는 달라.

난 기본 예의와 매너를 갖춘 남자야.

사실,  다 집어치우고 친구놈이 정말로 정말로
잘생겼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친구놈의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흘려보내고,
횟수를 늘리며 그쪽을 응시하죠.

엇! 잠깐 그쪽 테이블에 등을 보이던 여자2도 갑자기
몸을 틀며, 둘이 함께 이쪽을 바라봅니다.

그러곤 또 다시 둘이 속닥입니다.

뭐지..?

저는 다급하게 친구를 툭툭 치고 고갯짓으로
여자 테이블을 가르킵니다.

자! 친구야! 어서 네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그 얼굴을
비추거라.
친구놈은 훈훈한 미소로 민들레 홀씨를 날려보냅니다.


1차전 종료.

다시 각자 테이블의 상대를 마주보며
무미건조한 담소를 이어갑니다.

모든 신경은 상대 테이블에 세운 채로요.
마치 스키점프 출발 직전의 마음으로.


친구놈은 본인의 상태를 정비하고 온다며
화장실로 향합니다.

볼 것도 없는 폰을 의미없이 만지작 거립니다.
하도 많이 봐서 같은 게시물만 올라오는 SNS.

아 이 친구놈 언제오지.

나올 기미가 없어보입니다.
다시 고개를 내려 만지작 만지작 폰을 보려는데,

두근거리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선이 느껴진 곳은 역시나 그 여자 테이블.

이 날  이 시간에 여기서 눈을 맞추기로 한 것처럼,
부끄럽지만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뻗은 서로의 눈맞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지긋이 보겠습니다.

'피식'

어? 웃은 건가? 나보고 웃는 건가?
아 렌즈 끼고 올 걸..
근데 나는 왜 웃고있지?

그렇게 3분같은 3초 정도를, 30%정도의 미소만을
띤 채 서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가 봤는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오기도 전에 여자 테이블로
향합니다.

잘은 안들리는데..

친구: "이제 같이 먹을 때 됐다. 이리로 오세요."

여자2: "네!?"

끝내 못이기는 척 이쪽 테이블로 넘어옵니다.

이 어색한 기류. 누군가 날려줘야 하는데..
이건 내 담당이 아니다.  친구야 도와줘.

간단하게 서로에 대해 소개를 이어갑니다.


여자: "그냥 필라테스 가르치고 있어요."


아 필라테스 강사였구나.

어쩐지 흰 탑 위로도 보이는 깊은 곡선들의 균형이
완벽하더라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불과 20센치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여자.

거침없이 휙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벙긋 물어봅니다.

여자: "뭐해요 오빤? 그냥 오빠라고 할게요."

오빠? 아직 나이도 공개안했는데 오빠라고?.

나: "아 네네."

그건 그렇고 나더러 뭐하냐고 물었지.
뭐라고 대답하지.

'시나리오 작가예요.' 아니야.
'어떤 거 썼어요?' 등의 꼬리 물기 질문으로 곤란에 쳐할 수도 있어.

나: "그냥 어, 글써요."


여자: "우와 근데 막 야설 같은 거 쓸 것 같아."

10명 중 9명에게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

그놈의 '야설'
정말 야설이라도 써야하나 후.

덕분에 풀린 분위기.

벽이 허물고 이젠 더 과감히 숨김없이 웃으며
술잔을 비웁니다.

슬슬 취끼가 올라오는 자리.

떨어져 있기엔 썰렁한 초가을 날씨가
남녀 한쌍을 더 가까이 밀어줍니다.

어느새 서로 손에 깍지를 끼고있는
친구놈과 여자2.

너넨 어렸을 때, 서유럽에서 자랐니?

****

새벽 3시, 술집을 나옵니다.

알콜에 새벽 이슬이 더해져 흐느적거리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친구놈은 이미 알콜 만땅이 되었습니다.

옆에 꼭 붙어있는 여자2도 더 이상 술집은 갈 수
없다는 듯이 친구놈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있습니다.

고요 속에 이미 형성된 분홍빛 무드.

하지만 빠질 수 없는 여자들의 우정이 빛을 바랍니다.

여자: "야 정신차려. 이리와."

친구놈은 여자2의 어깨를 부여 잡고선
다른 한 손으로 볼을 어루만집니다.

여자2는 친구놈의 부드러운 촉감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붉어진 얼굴로 베시시 아이의 웃음를 짓습니다.

저 멀리서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소리도 없이 낮은 포복으로
택시 한대가 스윽 다가옵니다.


아니 기사님? 저희 손도 흔들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님: "안 탈 거예요?"

이태원 바닥에서 십수년 이상의 짬을 먹은
베테랑 기사님의 눈칫밥이겠지요.


친구놈은 자연스레 여자2를 택시 안쪽에 태웁니다.

곧바로 이어서 탑승하는 친구놈.

택시 안으로 머리를 구겨 넣기 직전 저를 쳐다보네요.

국정원 요원이 작전에 투입되기 전
서로를 바라보고 비장한 고갯짓과 함께
작전을 개시하는 것처럼.

'끄덕' 하더니 문을 닫습니다.

문틈사이로 삐져나온 말이 들려옵니다.

'신촌으로 가주..'

잘가라 친구야. 네 몫의 우정은 다했으니
멀리 멀리 영영 떠나가라.


덩그러니 남겨진 여자와 나는
처음 합석할 때처럼 또 다시 어색한 기류가 흐릅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이는 것 조차 어색한 게
내 자신에게도 느껴집니다.

어서 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머리야, 어서 이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단어를 생각해!

나: "카페 갈래?"

아, 이 병신아. 이 시간에 남녀 한쌍이 갈 수 있는
목적지는 단 하나 뿐이잖아.

난 그곳에서 오늘의 종지부를 찍고싶다고.

내가 뱉은 빵점짜리 질문에 여자의 얼굴에
잠시동안 물음표가 만개했습니다.

이어 4살 연하의 남자를 보는 듯한
모성애 담긴 눈빛을 하더군요.


여자: "오빠는 진짜 착한가보다. 난 착한 사람이 좋아."


멍청하다는 걸 돌려 말한건가?
아니야. 난 착하지 않다고.

내면엔 누구보다 진한 핑크빛 욕망이 있다고!

아 이게 아닌데..

카페로 향하는 걸음엔 후회와 자책이 가득 실려
벌어지는 보폭은 불과 20cm 남짓.

터벅 터벅.

잠깐 멈춰 세우고 싶은데, 도무지 어려운 한글은
아무런 단어도 던져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등 떠밀려 온 것처럼,
카페 건물 1층에 도착합니다.

먼저 올라가는 여자.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나풀거리는 흰 테니스 치마.

올라가는 리듬에 맞춰 살랑살랑 보이는 속살이
나를 간지럽힙니다.

아 두 계단만 아래서 갈까.

카페 자동문이 열립니다.

새벽 3시를 훌쩍 넘었지만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인지
빈자리가 많진 않습니다.

나: "뭐 마실래?"

여자: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라메리카노 2잔을 시킨 뒤, 착석합니다.

여자는 먹지도 않는 커피를 들고 괜한 빨대만
콕콕 씹어댑니다.

빨대를 문 채, 입을 씰룩거리는 게 분명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여자: "오빠 술 다 깼어?"


나: "응 갑자기 멀쩡해졌어."


저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혹시 나와 같은 미래를 생각하고
우리의 남은 새벽을 야릇하게 이끌어줄 취기가
남아있냐는 뜻일까.

아니면 술도 다 깼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걸까.

여자: "괜찮으면 우리집 가서 한 잔 더 먹을래?"

나: "어?"

순간 모든 신경다발이 멈췄습니다.

모든 신경물질들이 급속도로 하체의 한 곳으로
몰집합니다.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현관에 들어설 때 부터의 동선을 미리 생각합니다.

여기서 허리를 감싸안고..

여자의 목덜미 옆으로 내 얼굴을 닿을 듯 말 듯
아찔하게 포개고..


절제된 호흡으로 여자의 귓가에 야릇한 호르몬을
보내고..

갓난 아이를 보듬듯, 조심스레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마디마디 천천히 올라가 후크를..

뚝.


나: "좋아. 지금 갈까?"

여자: "남은 것만 마시고 가자."


여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박동수가 오르내립니다.

어서 당장 쪽쪽 다 빨아먹어.

술집부터 화장실을 한번도 안간 탓인지 급해집니다.
내 상태도 정비가 필요한 타이밍.

화장실로 향합니다.


정성스레 만든 반 깐 머리를 방해하는 잔머리를
정리하고, 옷 매무새를 다듬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눈에만 보이는 잘생겨보이는 각도로 
거울에 비친 나를 체크합니다.

Ok.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갑니다.

어라? 맞은편 여화장실에서도 문이 열리네요?

시선을 낮춰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의 바디라인.

그리고 특유의 향수와 샴푸냄새의 섞임.
에이 설마 아니겠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 나온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을 본 순간,

식물인간이 된 듯 모든 사고가 불가능했어요.

네가 왜 여기있어?
지금 여기서 만나면 안되는 거잖아.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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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빠져든다..
야설? 어디가요? 제가 이해력이 많이 떨어지나봐요 ...
야설작가 맞구먼 그래서....
이해가 ... 빠져서보다 마무리에서 이해가 설명좀..
@shank9933 2화 올려드릴까요?
@khs94 아.. 2화가 있군요 네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올려놨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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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2화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는, 제가 쓴 시나리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자 전 애인입니다. 물론 제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줄은 모를 거예요. 근데 이상하다? 현재 쉴틈없이 촬영이 이어질텐데 왜 여기에 있지? 그나저나 이 향기..  정말 오랜만이다. 서윤: "안녕, 오빠.." 여전히 눈이 예쁘다.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눈망울. 나: "안녕, 서윤아.." 서윤: "오랜만이다.. 잘지내?" 하얗다. 작은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안될 것 같은 연한 살결. 나: "나야 잘 지내지 뭐. 얘기 들었어 영화 들어갔다며?" 서윤: "응. 진짜 운이 좋았나봐. 아직도 안믿겨." 미소 짓는다. 나를 녹여냈던 수줍은 미소. 너는 모든 게 여전하구나. 나: "축하해 진심으로." 서윤: "고마워. 근데 있잖아.. 내가 들어간 영화 시나리오 말이야." 나: "어? 어어.." 서윤: "혹시..." 아 곤란한데.. '60초 후 공개됩니다!'  뭐 같은 타이밍으로 창가쪽 테이블에서 그녀를 부르며 손짓 합니다. 친구: "서윤아 뭐해? 이제 나가자." 서윤: "으응.." 뜸들이던 그녀의 몸은 나를 지나쳐가지만, 서로의 눈은 N극과 S극을 억지로 떼어놓는 것처럼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시나리오는, 서윤이와 저의 첫만남 부터 이별까지 사랑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이별하는 순간 등 모든 순간을 어여쁘게 담은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서윤이도 어렴풋이 알겠지요. 데자뷰와 같은 시나리오를요. 남자 주인공 배역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와 서윤이의 애틋한 이야기를 내가 아닌 다른 놈이 대신하다니...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애써 덮어두었던 과거의 향기를 느끼던 찰나, 누군가 내 팔짱을 끼며 팔에 뭉클한 감촉을 전달해줍니다. 여자: "오빠 혼자 서서 뭐해? 나 커피 다먹었어.           이제 집으로 가자." 대답도 없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간 뒤, 얼떨결에 함께 택시에 탔습니다. 여자: "신림역으로 가주세요." ***** 추억에 잠기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택시에 내려, 함께 주택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우리 둘의 발걸음 소리뿐. 그리고 여자는 내 새끼손가락에 끝마디만 걸친 채, 묘한 분위기 속, 터벅 터벅 천천히 걸음을 뗍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이 여자의 시선. '여기까지 내가 했으니 이젠 뭐라도 좀 해봐 네가.' 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겠죠? 알아 나도! 이쯤이면 남자된 도리로써 너의 몸과 마음을 적셔줘야겠지. 그치만 지금의 나는 너무 복잡하다고! 카페에서 예기치 못한 만남이 인간의 3대욕구중 하나를 자꾸만 잠재웁니다. 그렇게 고요 속에 도착한 여자의 집. 집 앞에 나를 멈춰세우고 십여분간의 침묵을 깨줍니다. 여자: "오빠, 오늘 나랑 같이 있기 싫으면 편하게 말 해도 돼. 나 상처 안받아." 띵!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몹쓸짓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루의 일탈쯤이야 괜찮아! 나: "아니, 오늘 너랑 같이 자고 싶어."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허리와 목을 감싸쥡니다. 숙여진 나의 상체와 뒷쪽으로 휘어진 그녀의 허리는 야릇한 키스의 접점으로 가장 완벽한 요소였죠. 금방이라도 찬 물로 샤워한 것처럼 차갑고 부드러운 그녀의 속살은, 나를 혼미하게 만듭니다. 닭살이 돋아 있는 그녀의 은밀한 속살들이 몽환적인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여자: "올라가자 빨리." '삐 삐 삐 삐'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100M 달리기 출발 직전의 소리처럼 짜릿한 자극을 줍니다. 낯선 아이의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섭니다. ...... 차분하면서도 매혹적인 냄새. 매일 밤, 그녀의 하루를 벗겨내는 포근한 침대. 그녀를 보듬어 주는 하얀 이불.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을 더 부드럽고 애태우게 만드는 러그. 마지막으로 우리의 본능을 더 낱낱이 아름답게 비춰줄 스탠드 조명. 조금 전과 너무도 다른 나지만, 어쩌겠어요 본능을. 그녀의 허벅지를 받쳐 들고 경직된 숨소리로 침대로 향했어요. 그녀는 다리로 나를 꽉 애워싸고, 내 뒷머리를 질끈 집어들어요. 이어 내 목덜미에 달콤한 시럽이라도 발린 듯 뜨겁고 아찔한 촉감이 느껴져요. 마침내 우리를 하나로 포개어 줄 곳에 도착하죠. '퍽..'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탓인지 다소 난폭하게 그녀를 침대에 퍽 내려놓았습니다. 충격 탓인지 품 아래서 나를 골똘히 바라보는 그녀. 어? 내가 너무 세게 내려놓았나?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릅니다. ...... 여자: "만약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어떨까?" 나: "그게 무슨 말이야?" 여자 : "내일이 와도 오빠가 내 옆에 있을까?" ......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또 해야하는지 잘 알고있습니다. 그치만 왜그랬을까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자: "대답 안 해줄 거야?" ♬♪♬♪♬♪♬ 정적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옵니다. 늦은 새벽에 오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의 전화. 사연깊은 누군가와의 뜻밖의 마주침.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이런게 직감이라는 것이겠죠. 아마도 서윤이의 전화일 것 같습니다. 여자: "전화 안받아?" 나 : "어어... 괜찮아." 머리까지 심장 박동수가 느껴집니다. 왜 전화가 왔을까. 그것도 2년만에. 서윤이는 여전히 내 본능마저 잠재울 정도로 깊게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나: "미안해. 대답 못하겠어." 사탕발린 말로 오늘 하루의 환심을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이 여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자격은 없지만 서윤이에게도요. 한참의 정적이 흐릅니다. 자세를 고쳐 잡고싶지만, 여자는 내품 아래서 다리로 나를 애워싼 채, 풀어주질 않아요. 그리곤 별을 품은 듯한 눈을 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이어 내 목을 둘러잡고 상체를 일으키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틀어 입을 맞춥니다. 쪽. 응? 뭐지? 조금 전 내 대답을 못 들은건가? 나: "아니 저기.." 이번엔 포근한 미소를 동반해서 나를 바라봅니다. 아니 이 여자, 술 다 깼다면서 갑자기 술기운이 올라왔나? 또 다시 상체가 올라오고 고개가 틀어집니다. 쪽. 아니.. 이봐요..? 여자: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방금 그 표정은 꼭 껴안아 주고 싶었어." 나: "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여자: "몰라도 돼, 그런 게 있어! 조금 다른 거 같아 오빠는." 나: "저기.. 알아듣게 좀..." 여자: "그건 그렇고, 아까 카페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여자, 전 여자친구지? 방금 전화 온 사람도 그 사람일 거고." 헉 어떻게 알았지? 다 보고있었구나. 나: "응.. 맞아." 여자: "표정보니까 아직도 못 잊은 모양이고, 헤어진지 얼마나 됐어?" 나: "2년 정도 됐나.. 잘 모르겠다." 나를 밀어 일으켜 세우더니, 덩그러니 마주보고 앉아있습니다. 여자: "좋아, 이제 집에서 나가 오빠. 그리고 휴대폰 좀 줘봐." 그래 이게 맞는 상황이지. 이렇게 박대당할 만 했어. 첫 만남에 전 애인을 잊지 못한 찌질한 과거까지 들켰으니. 나: "여기, 근데 휴대폰은 왜?" 열심히 내 휴대폰을 두들기더니, 자기 휴대폰에 온 전화를 확인합니다. 여자: "내 이름도 모르지? 신은비야. 저장해뒀어." 나: "어? 어 그래.." 여자: "내일도 연락할 거고 모레도 연락할 거야. 오늘은 머릿속에 전 애인만 빙빙 돌거니까 내보내는 거야. 연락 안받으면 두고봐 아주." 오늘은 정말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네요. 전 애인을 생각하는 표정에 동정을 느낀건가? 도라이? 내가 다르긴 뭐가 다르다고.. ****** 그렇게 '신은비' 라는 독특한 여자와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뒤로 집 밖을 나왔습니다. 저장된 신은비의 번호. 은비♡ 뒤에 하트를 붙여 놨네요. 참 당돌한 여자인 것 같죠. 분명 나에게 호감을 표한 거 같은데.. 왜 때문일까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 아래 보이는 등록되지 않은 번호의 부재중 전화. 은비의 집에 있을 때만 해도 헐레벌떡 전화를 받고 싶었는데 집밖에 나오니, 수신 버튼 위에 손가락을 두고 수억번의 미세한 떨림이 일어납니다. 다시 걸어볼까,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혹시 아까 하려던 시나리오 얘기인가, 최종 임원 면접을 앞둔 것 처럼 긴장이 늦춰지질 않습니다. 굳게 결심하고 서윤이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발신 버튼을 누르기 직전! 어? 어? 다시 걸려온 서윤이의 전화.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술이 깰 때쯤 오는 두통과 합해져 머리가 질끈 거리기 시작합니다. 스읍 하.. 나: [여보세요..?] 대답없는 수화기. 그녀도 나와 같을까요? 나: [서윤아.]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7화
우리의 이별씬. 서윤이와 헤어지던 날. 애석하게도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들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그녀의 매마른 가슴에 단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결국, 등 뒤에 꽃을 숨긴 채 차마 건내주지 못했지만요. 그날은 유독 방 안에 서린 침묵이 두려웠습니다. 꽤나 오래 전부터 암묵적인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마침표가 오늘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눈치 없는 척 그녀를 맞이했고, 묘하게 지쳐보이는 서윤이의 눈동자는 자꾸만 우리의 끝을 앞당기는 것만 같아, 초조한 마음에 괜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지막이 나를 불렀어요.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는 듯 애처롭게. 불안을 예기한 듯 매초마다 감기는 눈꺼풀로 서윤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서윤이의 어깨 너머로 선반 위에 있는 투명한 꽃병이 보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 외로이 시들어 버린 꽃.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 너무 늦었구나, 내가. ...... 처음 서윤이이게 저 꽃을 선물했던 날이 생생해요. 무뚝뚝 하기만 했던 나에게 받은 꽃이라며 조심스레 유리병에 옮겨 담고, 뭐가 그리 애중한지 웃음꽃이 만개 했었는데.. 시들어 버린 꽃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알게되었죠. 우리에게 남은 생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때 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번져왔습니다. 더 시들기 전에 더 예쁜 꽃을 가져다 줄 걸. 그 꽃에 담긴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속으로 삼키지 말 걸. ...... 그렇게 둘은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숨죽였습니다. 암담한 침묵이 우리를 집어 삼킬 때 쯤, 이슬진 눈을 뒤로 하고, 밝게 웃으며 서윤이에게 말을 건냈어요. '이제 저 시든 꽃 좀 버려. 남은 향도 없겠다, 바보야.'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아는지, 서윤이의 연민 섞인 눈에서 닦을 새도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럼에도 난 웃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가득 차있는 서윤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으니까요. 그간 우리의 추억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정말 어찌나 소중했는지, 어찌나 사랑했는지. 끝이구나, 정말로. '그만 좀 울어, 자꾸 우니까 못 가겠잖아. 웃는 얼굴 좀 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등 뒤에 숨긴 작은 꽃송이는 전달되지 못한 채,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큰 심호흡을 내뱉고, 곧이어 배우의 연기가 시작됩니다. 지정해준 대사엔 별다른 지문이 없기 때문에 배우 스스로의 분석이 필요했을 겁니다. 서서히 붉어지는 눈가와 코끝. 숨죽인 가운데 첫 음을 뗍니다. "......" 숨죽여 속으로 삼키고 싶은 말을 억지로 토해내듯, 대사 마디마다 아픔이 느껴집니다. 슬픔을 딛고, 애써 침착하게 안녕을 고하는 듯 하지만 그 속에 애절한 포효가 들려옵니다. 끝끝내 터져버린 울음.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과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모든 대사가 뭉개집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사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의 감정이 모든 걸 대변했으니까요.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웃어야만 했죠. 속은 갈기 갈기 찢겨도, 그래야만 했어요.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여운이 살아있는 듯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한동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 이후로 또 다시 속전속결로 배우들이 떨어져 나가고, 고작 서너 명의 '지정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읊조리듯 애써 덤덤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 시린 한기가 가슴을 도려낸 듯, 울부 짖으며 표현하는 배우. 온전한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전하듯 표현하는 배우. 정말이지 모든 배우가 감명깊은 연기를 선보였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우리를 고스란히 그려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 생각보다 긴 시간 끝에 오디션이 끝났습니다. 얼추 추린 듯, 해당 배우들의 프로필을 단상에 올려놓습니다. 홍감독: "이렇게 셋 정도." 캐스팅 디렉터: " 저는 얘 말고, 마지막으로 했던 얘로 해서 셋이요." 홍감독: "김작가는 어때." 나: "예 뭐, 워낙 연기가 다들 훌륭하셔서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열띤 토론을 하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저 불난 장에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이네요. 언제쯤 결정나려나, A4 용지 빈 곳에 의미없는 동그라미와 네모를 홀린 듯 그리고 있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웅얼웅얼 뭉개져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한 2,3여분 지난 거 같은데... "......." "저기, 김작가님?"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습니다. 잠시만 방금 날 부른 거 같은데. 홍감독: "김작가, 어이 김작가!!!" 나: "아, 네!" 홍감독: "장난하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 "아, 죄송합니다." 홍감독: "어때, 김작가는. 느낌 오는 얘 있어?" 나: "......" 원래 내가 자격지심이 있었나.. 이분들과 나의 격차를 알기에 작은 의견 하나 뱉는 것 조차 괜한 눈치가 보입니다. 홍감독: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봐." 그래, 시원하게 뱉자. 나: "어, 같은 이별이라도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통증은 다 다르잖아요. 오로지 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텐데, 그 고유의 색이 너무 연하지 않나.. 유심히 눈동자를 굴리며 되짚어 보는 두 감독. "글쎄,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봐요." 나: "마지막 그 순간에도 웃지..않았을까요. 피눈물이 흐를 만큼 괴로움과 비통함이 솟구치지만, 제가 만약 극 중 남자라면 그 위에 밝게 덧칠한 웃음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홍감독: "이유는?" 나: "글쎄요.. 두렵다고 할까요. 만남의 끝이 눈물에 젖어있다면 그간 남녀가 쌓아온 추억과 이야기 마저 슬픈 기억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아요. 실은 엄청나게 행복했으면서도요. 깊게 생각에 잠긴 듯한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멍하니 극 중 상황에 본인들을 대입하는 듯 합니다. '피식' 홍감독의 입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홍감독: "그래, 슬픔 위에 웃음을 덧칠한다라.." 나: "자신의 가엾음은 뒤로 할만큼, 온전하게 좋아한 여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기도 하고..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유심히 듣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립니다. '허허~' 홍감독: "너 왜 이제와서 이런 말하는 거야? 초장부터 말을 하던가, 사람 민망하게 말이야. 콱!" 나: "예? 아, 죄송합니다." 급작스레 성을 내시니 영문 모를 사과를 했지만, 곧 알게되었죠. 내 말이 비수가 되어, 그들이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따끔하게 찔렀다는 걸. 히히 통쾌해라. "......" 너무 크게 한방을 먹였나..? 갑자기 무거워진 오디션장.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기류. 머쓱함에 고개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홍감독은 어떤 고뇌를 하는지 팬을 휘리릭 휘리릭 돌리기만 반복합니다. 그러다 나를 휙 보고, 다시 고뇌에 빠집니다. 또 다시 나를 휙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뭐,뭐야? 왜 자꾸 날 쳐다보는 거지. 홍감독: "저기, 기,김작가. 저 단단한 사람이 왜 더듬으며 날 부르는 거지? 징조가 좋지않다. 나: "네?" 홍감독: "잠깐만 저 앞에 나가봐. 뭐, 의자랑 정리도 해야되니까.. 올라간 김에 저기 기준선에 한 번 서봐." 갑자기 왜요? 정말 왜요? 캐스팅 디렉터 역시 물음표가 만개한 표정으로 홍감독을 봅니다. 나: "예? 저긴 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손짓으로 휙휙 무대를 가르키며 대신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경직된 팔 다리로 벨런스를 잃은 채, 무대에 오릅니다. 무대에 선 나를 힐끔 힐끔 보더니 ,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귓속말로 대화를 나눕니다. 아니, 이 사람들 무슨 작당을 벌이려고. 홍감독: "저기 카메라 좀 한 번 봐봐." 나: "아니, 감독님 카메라는 또 왜..?" '똑똑' 반대편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끼이익'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이리저리 확인 후, 들어오는 조감독이 보입니다. 홍감독의 지시가 있었는 듯, 얇은 용지 몇장을 건내줍니다. 그리고 자리에 내가 없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무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조감독: "엥 김작가님, 왜 거기 계세요?" 홍감독: "조용히 혀라." 눈치 없는 철부지 조감독은, 홍감독의 암묵적인 협박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억양을 보아 저 말은 곧 '입 닥치고 나가' 일텐데. 조감독: "아, 알겠다. 김작가님이 직접 보여주려는 거구나! 역시 작가님,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건가." 뭐야, 내가 연극영화과 전공인 걸 어떻게 알지? 대학 졸업하고 어디 말해본 적이 없는데. 나: "예? 보여주긴 뭘..." 차마 말을 다 하기 전에 불쑥 홍감독이 튀어나옵니다. 홍감독: "뭐? 김작가, 연기 전공이라고? 맞아?"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리 듯,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 듯한 홍감독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나: "아,네. 맞긴 한데.." 조감독: "나무 엔터에 아는 후배가 있는데, 김작가님 대학 동기라고 하더라고요. 소문이 자자하셨다는데, 중대에 햄릿이라고." 대학 동기들은 졸업 후에 담 쌓고 지냈는데, 누구지. 그나저나 저 눈치없는 조감독은 실실 웃고 있네요. 내 흑역사를 감히.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 "감독님? 잘못된 정보인 것 같습니다. 절대 아니에요." 홍감독: "김작가, 머리 좀 까볼래?" 나: "머리는 또 왜.." 저 앞에 내 행동을 숨죽여 기다리는 조감독, 홍감독, 디렉터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 하, 끝내 소심하게 살짝 앞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 뭐야 저 알 수 없는 표정들은. 아, 집가고 싶다. 멍한 정적이 이어지다 눈칫밥 없는 조감독이 먼저 입을 엽니다. 조감독: "부럽다, 작가님." 캐스팅 디렉터: "잘 생겼네, 우리 작가님. 맑으면서도 울적한 묘한 분위기도 좋고" 조감독: "왜 연영과 졸업하고 배우 쪽으로 안가셨어요? 한자리는 꿰차셨을텐데. 아, 글재주가 더 좋았나?" 부끄럽다. 숨고싶다. 학창 시절에 아주 가끔 저런 말을 들으면, 호다닥 자리를 피하거나 주제를 돌리곤 했었는데. 여기서 도망갈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나: "아닙니다.. 저 이제 내려가도 되죠..?" 할 말이 남은 듯이 연달아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내는 홍감독. 홍감독: "음, 보여줘." 나: "뭘요?" 홍감독: "보여달라고, 딱 한번만." 엄청난 결의를 다진 듯 한 홍감독의 눈빛이 날 쏘아붙입니다. 나: "아니, 감독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홍감독: "그 이별 장면. 거두절미하고 딱 한 번만." 나: "아니요 감독님. 저 졸업하고 한 번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감도 다 잃었고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감독: "김작가, 내가 지금 골이 막 흔들려. 어떤 배우가 와도 이 영화의 감성을 못 담을 거 같아." 나: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홍감독과 나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집니다. 홍감독: "알겠어.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볼테니까, 참고 정도만 하게. 부탁 좀 하자. 혹시 또 모르지, 제작 참여 기회가 올 수도." 제법 달콤한 발언이지만.. 서윤이도 마음에 걸리고.. 모두가 나를 기다리는 이 압박감.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저들에게 사형 집행을 당한다. 나: "하.. 진짜 아닌데 이거." 홍감독: "30분 후에 보자고. 부담갖지 말고 준비 하고 있어." 자리를 비워주는 하이애나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멍하니 상황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을 떠올리자..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6화
'툭'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건. 고작 수건 따위가 내는 소리일 뿐인데 그 짧은 순간, 샤워실 안의 정경이 멋대로 그려집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내맡기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며 씻어내리는 모습부터, 샤워를 끝내고 상체가 훤히 비치는 거울을 마주한 채, 매혹적으로 물기를 닦는 모습까지. 야릇한 망상이 활개를 핍니다. 이 쓰레기 머리야, 그만좀 해. 정신이 채 들기도 전에, 속옷을 입는 듯 살갗과 란제리 원단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스윽, 스윽'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현악기보다 아름답고도 위태로운 연주 소리로 들리네요. 은비: "옳지, 잘 참는다." 아, 몸의 모든 성근육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움찔거립니다. 나: "다,다 입었냐?" 은비: "아니, 아직 위에는 안입었어." '꿀꺽' 팬티를 입는 것 보다 다소 격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내 시야에 보이지 않던 은비의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요. 소리없이 침을 삼키며, 시야를 왼쪽 아래로 조금 내려봅니다. ...... 노란빛 스탠드 조명을 배경으로, 속옷을 입는 은비의 그림자가 행위 예술을 하듯,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요염하게 움직입니다. 그 어떤 무용도 이토록 위태롭고 치명적인 선은 없을텐데. 애간장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해요. 고작 거뭇한 그림자지만, 상상만으로 이미 은비를 낱낱이 느낀 것 같습니다. 마저 속옷을 다 입은 듯, 손을 뒤로 하여 속옷을 채웁니다. '뚝' 은비: "다 입었다." 나: "마,마저 다 입어라.." 어제 입었던 끈나시와 허벅지가 훤히 들어나는 짧은 트레이닝 하의를 마저 입는 은비. 은비: "이제 뒤돌아도 돼." 여자와 한 공간에 있어본 적 없는 숫총각처럼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나: "어,어. 분명 옷을 다 입고 있는데, 왜 시선을 못 맞추겠지. 괜찮아, 진정하자. 난 은비에게 어떠한 사심도 없잖아. 은비: "부끄러워하는 거봐, 귀엽게." 나: "부,부끄럽긴 뭘."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조롱하듯 초밀착하여 희롱하는 은비. 손사래 치며, 외면할수록 더 바짝 붙어 이리저리 품속으로 들어옵니다. 은비: "왜 못봐? 왜애? 응?" 가릴 것 없이 모든 신체 부위가 맞닿습니다. 나: "뭐,뭐가. 아,아무렇지 않은데." 은비: "오, 진짜?" 물러터진 경계가 허물자,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내 발위에 자신의 발을 올리며 대롱대롱 내 걸음을 따라합니다. 은비: "우와, 오빠 복근 장난없다!" 물기 덜마른 촉촉한 머리칼이 뜨거워진 내 몸을 살금살금 건드리며, 손으론 내 복부를 더듬습니다. 아,위험하다. 나: "아, 뭐해, 저리가." 그녀의 골반 근처와 내 하체의 어딘가가 선명하게 맞닿았습니다. 분명 서로가 자세히 느껴질만큼 생생한 촉감으로.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내 몸에 꽉 붙어 이리저리 흔들며 장난치는 은비. 정말 이 이상은 안돼. 내 몸의 추태를 들킬 거 같다. 나: "아, 그만해. 너 진짜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이럴래?" 은비를 뿌리치고, 성급하게 어디든 앉을 곳을 찾습니다. 동선 상 가장 가까운 곳인 침대에 앉아, 자연스레 양 허벅지 위에 베개를 올려놓습니다. 휴. 은비: "우리 사이에 위험할 일이 남았나?"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답이 정해진 듯한 질문을 날립니다. 나: "그,그게 무슨 말이야. 장난치면 혼난다." 은비: "어제 기억 안나? 오빠가 어제 침대에서 나한테 했던 거?" 머리가 지난 기억의 흔적을 짜내려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 모함이다. 이성적인 내가 그럴 리 없어. 반사적으로 팬티 안의 감촉을 확인합니다. 일종의 습도라던지, 농축이라던지. ...... 까마득한 기억은, 거짓과 사실을 뒤바꿀 만큼, 사실도 거짓으로 혼돈할 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으깨버립니다. ... 정말 내가? 나: "미,미안하다. 진짜 기억이 안나." 침대 옆에 나란히 앉은 은비가, 참다 못해 터진 듯 호탕하게 웃어버립니다. 은비: "아, 웃겨. 진짜 놀릴 맛 난다, 오빠. 너무 좋아." 쪼그만한 게 몇번씩이나 날 가지고 놀아? 나: "너 진짜 죽을래? 나 진짜 화났어. 빨리 나가 너." 은비: "어제 얼마나 힘들게 오빠 집까지 데려왔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내쫓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저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왔을라나. 내가 주사가 없어서 망정이지, 휴. 나: "대신 앞으로 그런 장난치지마. 그럼 별일 없던 거 맞지?" 은비는 골똘히 눈을 굴리며 지난 밤을 생각하네요. 은비: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 나: "뭐? 그럼?" 은비: "글쎄, 말해주기 싫은데. 내 소원 들어주면 말해주지롱." 내가 또 이런 허수에 당할 듯 싶으냐. 어림없지. 음... 나: "알겠으니까, 빨리 말해." 은비: "아싸! 안지키기만 해, 죽어 아주. 어제 잠들기 전까지 서윤인가 뭔가 하는 여자애만 종일 불렀어. 그리고 나한테 '서윤아' 하면서 막 안기고 보듬고 그랬어 오빠가. 나: "또 거짓말이지 너." 은비: "오빠, 너 마음대로 생각해라." 잔뜩 심통이 나있는 듯한 은비의 표정. 은비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요.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며 본인에게 그랬다니, 은비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미안해지네요. 나: "미안해. 그냥 잠꼬대 였을텐데. 너한테 함부로 행동해서 미안하다." 한동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있습니다. 화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렵기만 해요.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구나! 나: "이거 먹고 화 풀어주라. 서윤... 아, 아니 은비야.."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망했다. 숨도 쉬지 않는 듯, 미동없는 은비의 뒷모습에서 전쟁의 서막이 피부로 와닿습니다. 나를 휙 돌아보는 은비. 금방이라도 분노에 찬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눈망울. 아랫 입술을 잔뜩 모은 채,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은비: "나 신은비라고! 서윤인가 뭔가 하는 애가 아니라고 나는! 진짜 자존심 상해." 분노와 서러움이 뒤섞인 은비의 표정. 나: "아, 미안하다. 내가 아직..." 은비: "왜 오빠 너는 서윤인가 뭔가 걔만 생각하고 걔만 부르냐고! 아, 울기 싫은데 진짜." 나: "......" 여기저기 놓인 짐을 휙휙 급하게 낚아채고, 현관으로 나서는 은비. 설움이 멈추지 않는지, 입고 왔던 가디건을 얼굴에 품고 훌쩍이며 집 밖으로 나갑니다. 다급하게 엉거주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뒤따라 갑니다. 얼마나 빨리 내려갔는지, 주택 계단을 벗어나 골목을 내려가고 있는 은비가 보입니다. 두손을 입가에 대고 힘차게 은비를 부르려다, 목에서 턱 하고 막혔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이게 맞는 걸까. 괜한 행동으로 불을 지피는 건 아닐까. 곁에 둘수록 은비의 상실감은 더욱 커질테고, 그것에 비례하게 나 또한 미안함에 편치 못할텐데. 모았던 두손은 맥없이 툭 떨어지고, 깊은 한숨과 함께 복잡한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올라갑니다. 왜 유독 은비를 향한 행동은 갖가지 이유와 근거가 필요할까요. 아직은 이 불편함을 정의할 수가 없네요. ****** 오디션 심사 2시간 전. 무거운 마음으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원래라면 기대에 부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게 채비했겠지만, 어제 하루 사이에 각기 다른 두 여자의 파동으로, 여파가 극심한 탓에 차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오디션 당일인데, 컨디션도 의욕도 반토막입니다. 어제 공원에서 얼마나 울어 재꼈으면, 목이 칼칼한 게 쉰 목소리가 나오네요. 그래도 오늘이 영화에 일조하는 것도 마지막이고, 더이상... 서윤이를 볼 일도 없을 테고. 미련없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일거양득이겠죠. 억지 화이팅을 가득 불어넣고 오디션장에 들어갑니다. 홍감독: "어, 김작가 왔네." 나: "안녕하십니까." 홍감독: "아직 캐스팅 디렉터랑 안왔으니까, 미리 배우 프로필 보고 참고해." 두터운 파일을 건내받고, 품에 꼭 쥔 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생각보다 조촐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스테이지를 생각했는데, 대학로 소극장 느낌에 가깝네요. 빈의자에 앉아 받은 프로필을 열어봅니다. 우와, 오늘 이 배우 실물 영접하는 거야?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하드캐리한 배우잖아. 미쳤다, 미쳤어. 로코물의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배우도 있네요. 나이가 조금 있어서 걸맞진 않아보이는데..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배우도 있어요. SNS에서 벨런스 게임에 항상 등장하던데, 빚이 30억이어도 다 갚아주고 만날 수 있다는 그 배우. 헛웃음이 나오네요. 내가 이런 배우들 앞에 앉아 심사를 하는 꼴이라니. 정작 월세 살이에 확연한 미래도 없는 나하고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 텐데. '철컥' 문이 열리더니 홍감독과 함께 캐스팅 디렉터와 기타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이 들어옵니다. 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안녕하세요. 홍감독님께 말씀 들었어요." 홍감독: "자자, 슬슬 시작하지. 시간 다 됐지?" 스텝으로 보이는 분이, 심사 테이블 바로 옆에 두 대의 카메라를 거치해줍니다. 아마 영상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거겠죠. 한마디로 카메라 빨. 우와 '알렉사 미니LF' 엄청 비싼 카메라로 아는데, 역시.. 홍감독의 손짓에 오디션이 시작되고, 첫번째 배우가 들어옵니다. 티끌도 놓치지 않기 위해 초집중 상태로 배우를 탐색합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역시 베테랑인 걸까요. 정돈 안된 거뭇한 수염 곳곳에 나있는 허연 수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연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카메를 휙 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듯 배우에게 시선을 끊고 다음 프로필을 봅니다. 다음으로 들어온 배우. 이번엔 두 분 다 유심히 보는 듯 했지만, 대사를 뱉기 전, 호흡에서 이미 아웃입니다. 모든 감정의 시작은 호흡이라고 하죠. 어느새 30명가량의 배우들이 속전속결로 나가떨어집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배우가 들어옵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남자사용설명서'의 그 배우죠. 두 분 다 눈을 떼지 못하고, 배우의 연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흡족한 웃음을 짓는 두 감독. 홍감독: "잘 봤고요. 다음 거 해보시죠." 다음은 '지정 연기' 입니다. 한마디로 직접 지정해준 연기를 선보여야 하죠. 사실 '지정 연기'는 연극 영화과 대학 입시에서나 보는 것인데 이번엔 홍감독이 특별히 지시했다고 합니다. 홍감독의 애착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죠. 바로 '스물아홉의 우린'에서 중요 장면 중 하나인 서윤이와 나의 이별 씬. ...... 눈을 지긋이 감으며 감정에 몰입하는 배우. 심호흡을 크게 내쉬더니, 준비가 끝난 듯 보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네이트판] 잘 때도 브라 벗지 말라는 예비신랑
모바일로 쓰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스물 중반이구요 제 예랑이는 30살입니다. 올 해 말 결혼 예정중이예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오늘 통화하던 도중 잘 때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자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애초에 브래지어 착용할때 밖에 외출시나 손님이 왔을때만 착용하고 집에서 있을땐 벗고 있고 당연히 잘땐 벗고 자거든요. 그런데 그걸 알고 있는 예랑이가 저번부터 자꾸 하고 자라는 겁니다. 저는 소화능력이 안좋아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소화가 더 안되고 갑갑해서 왠만하면 집에 있을때 만이라도 벗고 있고 싶거든요. 그런데 예랑이는 그거 안 입으면 가슴 쳐진다, 그건 가슴 쳐지지 말라고 만든거 아니냐 이러면서 24시간 내내 입으라고 하네요. 그래서 예랑이한테 내 생각엔 브래지어를 만든 이유는 옷을 입을때 브래지어를 착용함으로 인해 옷태가 살아나기 때문이고 그런 미용 면이나 평소 생활때 충격을 좀 덜 받게 하려고 만든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sbs에서 브래지어에 대한 다큐를 방영한적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논 블로그를 찾아 읽어주기 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생각이 잘못된거고 오히려 좋을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주면서요. 그랬더니 그렇게 안좋은걸 왜 다들 하고 다니냐 그럼 너도 평소에도 벗고 다녀라 이런 막말을 하는겁니다... 예랑이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게 좋다고 말하는 의사를 봤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자긴 안해봐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잖아? 이랬더니 자기는 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고집 세다고 그러고 여러분 정말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그리고 예랑이 말로는 안하고 자는 사람보다 하고 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하고 주무시나요..? 제가 이상하고 무지한 건가요? 아 참고로 그래, 하고 잘게라고 거짓말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게 결혼하면 같이 자야 하잖아요 매일 밤... 절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요...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ㅠㅠ 헉...댓이 이렇게 많이 달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댓글에서 다 저의 입장을 알아주시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사실 저도 알고 있어요 예랑이가 고집이 세다는거.. 저런 경우가 몇개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본인이 싫어하는 음식을 제가 먹으면 싫어 한다던가(피자, 떡볶이) 자기가 sns 안한다고 저 하는것도 싫어 한다던가... 오래 만났고 또 아빠처럼 기댈 수 있다는 느낌에 헤어짐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실천하지 못했네요. 한번 더 얘기해보고 저희 둘의 미래를 결정 해야 겠어요. 많은 조언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 뭔 아빠처럼 기댈수 있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지금이야 브라정도지 나중에 어디까지 간섭할 줄 알고 저런 사람하고도 한번 더 얘기해본다고 하는 게 신기함 ㅇㅇ 판펌
Chapter 51. 그놈을 뺏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로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눈물도 멈추질 않았다. “사랑…이라.” 사랑은 이렇게 헤플 수도, 아플 수도, 가벼울 수도,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한데?” 도헌이 담배를 비벼 끄고 옆에 섰다. 로라의 표정을 살폈다. 흔들린 것인 가,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도헌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랑…한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로라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도헌은 막막해져 왔다. 이제 선택은 로라의 몫이었다. 로라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도헌은 존중해주기로 했다. “누나.” 로라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자. 모기 밥…되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지만. “누나.” 로라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가냘픈 어깨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헌은 가까이 다가가 로라의 어깨를 감쌌다. “동정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로라의 목소리도 떨렸다. 도헌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동정이 아니라…” “내일…그 여자…만나서 물어보려고.” 로라는 뒤돌아선 채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섰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뭐라고…물어볼 건데.” “남자…친구랑…잘 되어 가고 있느냐고.” “두 사람이…사귄다는 건…확신하는 거냐.” "……" "그래서, 그 대답을 듣고나선 어쩔건데." 도헌의 물음에 로라는 스르륵, 주저앉았다. 두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더 묻지…말아줄래….” “…아.” “나…도 지금 뭘.…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그렇게 주저앉은 채, 로라는 하염없이 고개만 숙이고 눈물을 흘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문이 열렸지만 로라는 오르지 못했다. 도헌 역시, 그런 로라의 뒤에서 로라를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 문이 더 열렸고, 닫혔고를 반복했다. 몇몇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지만 둘은, 움직일 수 없었다. 도헌은 자신의 셔츠를 벗어 로라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뭐…야…흐읍.” “콧물은…닦지 마요…” * * * “헐. 오로라, 눈 왜 저래.” 로준은 아침밥을 먹다 말고 방에서 나오는 로라를 바라보았다. 얻어맞은 듯,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로라. 로준은 경악하며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 역시, 묵묵부답인 채 로라의 밥을 펐다. “누나, 밥 안 먹어요?” “…….” 대답도 않은 채, 현관을 나서는 로라였다. 도헌은 한숨을 내쉬며 로라의 뒤를 쫓았다. “누나.” “안 먹어.” 그러곤 신발을 신고 그대로 집을 나서버렸다. “너희 싸웠냐?” 싸웠냔 로준의 말에도 도헌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채 힘없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린 로라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 거렸다. * * * 로라는 평소보다 한 시간 더 빨리 가게 문을 열었다. 불도 미처 켜지 못한 채, 로라는 어둑한 가게 안에 우두커니 섰다. “하…뭘 어디서부터…시작해야 할지를…모르겠다.” 얼이 빠진 얼굴로 로라는 카운터 앞에 앉았다. 밤새 얼마나 울었던 지, 퉁퉁 부은 눈은 떠지지가 않았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마음 한 편엔, 그래도, 라는 끈질긴 미련이 남아 있긴 했다. 그런 자신이 미워졌다. “…….” 로라는 어둑한 매장 안에서 노트북을 켜, 제일 먼저 그 여자의 SNS를 켰다. 밤새, 그 여자의 SNS를 달달 외울 정도로 살피고 또 살폈다. 그녀의 친구 목록은 기태의 친구 목록의 사람들과 겹치기까지 했다. “비참…하다, 오로라.” 남자 친구의 바람 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첫 번 째 여자의 SNS나 뒤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여자와 기태의 SNS를 뒤지면 뒤질수록 둘 사이가 연인 사이임이 확실해졌고, 또한 자신의 처지 역시 그의 ‘세컨드’임이 확실해졌다. 로라는 다시금 멈춘 듯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아…흡.”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렇지 않을 거란. 강한 믿음의 배신이라 그럴 까. 로라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원망해서도 안 되었지만, 그 여자가. 수정이란 그 여자가 너무도 밉고, 싫어졌다. “…아.” 그때. 그 여자의 SNS의 커버사진이 바뀌었다. “…….” 바뀐 여자의 커버 사진을 발견하곤 로라는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버렸다. 더는…그 여자에게…물어볼 필요조차 없어졌다. * * * “정리할 생각…없죠.” 바닷가에 나란히 선 기태와 수정. 어젯 밤의 사랑한단, 기태의 말을 수정은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렇거든요.” “…….” “오빠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 “그렇다고 놓을 생각도 없어.” 수정은 단호했다. 나란히 바닷가에 서서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나, 오빨 정리할 마음도, 그럴 생각도,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거든.” “…….” “그 여자를 정리하든, 아님 그 여자도 안고 가든.” 수정의 말에, 기태는 그제야 수정을 돌아보았다. “난 너에게. 헤어지자고 몇 번을 얘기했다.” “…….” “그런데, 싫다고 한 건…너다.” 그게 중요한 것이냐, 되묻고 싶었지만 수정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은 못 놓아요, 어쨌든. 그 여자…오빠 여자 친구 있다는 거, 알고 만나는 거예요?” 수정의 물음에 기태는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나란 존재를 알고도…그 여자가 오빠 곁에 머물려고 할까요?” “머문다고 해서…그걸 사랑이라고 치부하는 너는…도대체, 무슨 꿍꿍이 인거냐.” “내가 말 할까요?” “나서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해.” “나란 존재를 알게 된다면 아마, 떠날 거야.” “…지금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너가 아니라 그 여자다.” 기태의 말에 수정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휴대폰 카메라를 켜 나란히 서 있는 자신과 기태의 발 사진을 찍었다. “뭐해.” “여전히 우린.” “…….” “행복하다는 걸” “…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곧 다정한, 다정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발 사진을 수정은 자신의 SNS 커버 사진에 업로드 했다. 기태는 그런 수정의 SNS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나 그런 거 싫어 한다고 했다.” “오빠 얼굴 나온 것도 없고, 이름 한 글자도 언급된 것 없으니 안심해.” 기태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곤 돌아섰다. “어디가요!” “돌아가자, 이제.” * * * “누나…오호라 누나.” 도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을 덮고서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오픈도 하지 않은 채 엎드려만 있던 로라. “들어…가도 돼요?” 입구에서 도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가도 되냔 도헌의 말에 로라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 “헐…누나. 괜찮아?” 두 눈두덩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열난다. 안 되겠다. 문 닫고 병원부터 가자.” 도헌은 싸온 죽을 카운터 앞에 놓곤 로라의 이마를 짚었다. 불 덩이었다. “언젠간…이렇게 앓고 지나가야 할…거니까. 놔둬, 그냥.” “…누나.” “병원 가서 약 먹고 주사 맞는 다고해서…나아질 것 아니잖아.” “그래도…너무 힘들어 보여요.” “응…힘들어…너무.” “…….” “내 살점들을 다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아.” “…누나.” “차라리…내 머릿 속을 다 도려내주었음 좋겠어. 이 마음도.” “…….” “그 사람에 대한…모든 기억을…다…도려내 주었음 좋겠어.” “…….” “그래 준다면…그럴 수만 있다면…어떤 고통도…감내 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라의 말에 도헌은 살며시 로라를 끌어안아 주었다. 너무도 아파하는 로라를 보니, 도헌의 마음도 아파오는 듯했다. “미안…해요, 누나…내가 끝까지…말렸어야 했는데.” 결국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고, 역시나 로라는 너무도 아파했다. 모든 걸 예상했던 도헌이었기에 이렇게 아파하는 로라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미안…은 무슨…. 왜 네가 미안하냐. 됐다.” 하고서 로라는 도헌을 밀어냈다. “그…여자한텐…물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어떻게 할 건데요. 나도 알아야겠어. 알고 있어야겠어." “…….” “하…. 누나. 누나가 많이 힘들고 어려울 거라는 거 아는데.” “…구 여친이든 어쨌든 간에. 그 새끼는. 아니다, 누나" "알아. 아니라는 것,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 " ……" "보채지 마." 로라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꿈만 같고 믿기지않았다. 갑작스레 그에게 이별통보를 받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사랑했던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진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우선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으니, 문닫고 집으로 …" 그때였다.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기태였다. "누나." 로라는 기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대로 휴대폰을 엎어두곤 다시금 고개를 숙여버렸다. 곧, 벨소리는 끊겼다. 괴로워하는 로라를 바라보며 도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못할 것 같음, 내가 얘기해 줄게." " ……" "내가 대신 전화 받아서 다 알아버렸다고, 다 알게 되어버렸다고 …" 그때, 다시금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고 로라는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착, 가라앉은 로라의 목소리. "네, 선생님." "로라씨, 어디 아파요? 어제보다 목소리가 더 안좋아요." 이 순간에도, 기태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는 이 순간에도 로라는 이 남자가 그 여자와 함께 있을거란 생각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전화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네. 몸살이 걸린 것 같아서." "어떡해요 그럼. 나 지금 올라가고 있으니 병원이라도 가 있을래요?" 밤새, 그 여자와 뒹굴었을 그다. 로라는 자꾸만 이 남자가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마음이 미어져왔다. 자신을, 여전히, 농락하고 있는 그였다. 로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네, 그럼 그렇게 할테니 얼른 오세요, 선생님." "바로 병원으로 갈테니 병원 이름만 알려줘요." "네 …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고서 로라는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따지기는 커녕, 기다리겠단 말을 한 로라에게 순간적으로 화가난 도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호라, 너 진짜! 그 자식이랑 갈때까지 가보겠다, 이거냐?" 그러자, 로라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금 질끈 묶으며 파우치를 꺼냈다. "나라고 못할건 없잖아." "뭐?" "내 사랑을, 이 마음을 우습게 보고 짓밟은 대가." " …… " "나도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나 이렇게 아픈 거, 내 아픈 거에 반의 반만이라도 돌려줘야겠어." "누나. 내가 그 놈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세컨드로 남을거야. 원하는게 그거라면." "누나." "뺏을 거다, 그리고 아프게 짓밟을 거야." 로라는 결심한듯 붉은색 립스틱을 꺼내 발랐다. "세상에서 애인있는 사람 건드리는 년, 놈들이 제일 쓰레기라는 거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이젠 내가 그 쓰레기가 되어야겠다." * * * 로라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인가요.
Chapter 50. 나는 그의 세컨드였다.
‘양수정.’ 그에게서 들었던 ‘수정’이란 이름이었다. 저번에 팔을 다쳐 병원에 잠깐 입원했을 때도 기태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수정’이란 이름을 내뱉었다. 그리고 수정이란, 그 여자 역시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때, 남자친구와 헤어질 뻔 하였다고, 그런데 헤어지지 않고 잘 풀었단 그 얘기를 한 적 있었다. 모든 것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아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정리되지 못한 그 느낌, 흩어져 있는 것만 같았던, 마치 퍼즐 조각 같은 것들이 이제야 하나 둘, 자리를 찾은 듯했다. “오호라…왜 울어, 갑자기.” 도헌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로라의 어깨를 감쌌다. 로라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문 채 괴로운 듯 이마를 짚었다. “내가…내가 잘 못 한 것 같아…” 자신이 잘 못한 것 같다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꾹꾹 참으며 괴로워하는 로라였다. 도헌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 지, 어리둥절한 채로 로라의 어깨를 감싸다, 이내 자신이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로라와 눈을 맞추었다. “누나…무슨 일인데, 말해 봐.” “구도…발.” 로라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헌을 바라보았다. “니 말대로…” “…어?” “차 선생님….” “……?” “여자 친구가…있었나 봐.” * * * “일단 물어 봐, 누나.” 여전히 진정하지 못한 채, 몸을 파르르 떨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라를 부축한 채 도헌은 힘겹게 그 말을 내뱉었다. 집 근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둘. 로라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도헌은 그런 로라가 안쓰러워 한숨만 푹, 푹 내쉬었다. “뭐라고…뭘…어떻게 물어봐야…하는데.” “당장 정리할 수 있어? 여자 친구가 있는 것 같단, 그 누나의 추측 하나로.” “…….” “그렇게 좋아하는 벤츠남을 다 정리하고 빠이빠이, 할 수 있느냐고.” 현실적인 도헌의 말에, 로라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콱, 막히는 듯했다. “그 여자의 연애중이란, 그 세 글자에 그 남자의 모든 걸 정리할 수 있느냐고.” “…….” “대답해 봐.” 도헌의 물음에…, 로라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가슴이…찢기는 듯한 격한 고통이 밀려왔다. 로라는 다시금 얼굴을 감싸고 엉엉, 목 놓아 울어버렸다. “뭘…어떻게 하라는…거야, 대체…흐윽…나더러…나더러 어쩌란 거야…” “어쩌라는 게 아니라!” “…흐윽” “바보 같이 울기만 하지 말고! 당장 그 자식한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라고.” “…뭐라고 물어봐! 그러니까! 내가 세컨드냐고?! 여자 친구 있었느냐고?! 그렇게 내가! 우스웠느냐고?!” “오호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냐고?! 그만큼 내가! 만만했냐고?!” 그렇게 소리치며 로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닦아내며 휘적휘적 앞서 걸었다. “누나!” “따라 오지 마.” “…어디 가는데요!” “따라 오지 말라고!” 애꿎은 도헌에게 그렇게 화를 내고서 로라는 휘적휘적 정처 없이 앞서 걸어 나갔다. 도헌은 한숨을 푹 내쉬며 정신도 없이 두고 간 로라의 가방을 챙겨 들곤 터덜터덜 로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로라는 자신의 뒤를 도헌이 따르는 지도 모른 체, 연신 손등으로 눈물만 벅벅 닦아내며 하염없이 걸었다. “하…내가 이럴 줄 알고…그렇게 말렸던 건데…하…진짜.” 도헌은 한숨만 푹, 푹, 내쉬며 로라의 뒤를 말없이 따르기만 했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도헌은 비틀거리며 걷기만 하는 로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이건 아니다 싶어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는 로라를 잡아 세웠다. “오호라.” “…헤어져야하는 게 맞잖아.” “…네?” “이제 난…선생님하고 헤어져야 하는 게…맞잖아.” “…누나.” “그런데 진짜…나도…이런 내가 싫은데…” “…….” “이 마음이…왜…그런 나쁜 새끼인 걸…알면서도…알아버렸으면서도…” “……” “말처럼 쉽게…돌아서질 않는 거냐. 어떡하냐, 나.” 로라는 눈물로 화장이 번진 얼굴로,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도헌은 그런 로라를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 와락, 로라를 끌어안고 말았다. “오호라…그만 울어라.” “흐윽…그래야…하잖아…흐윽…끝내야 하잖아…” “…….” “근데…왜…나는…아프기만 해…? 헤어지잔 말이…왜 억장이 무너져서 나오질 않냐?” 로라의 말에 도헌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신경질 난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누나 아닐 수도 있잖아. 연애 중, 차마 헤어지고도 못 내린 걸 수도 있잖아.” “…….” “누나 말대로 그 프로필 사진도, 벤츠남이랑 둘이 얼굴 보이게 찍은 것도 아니니, 옛 연인일 수도 있고…미처 여자 쪽에서 정리하지 못한 걸 수도 있잖아.” “…용기가 나질 않아.” “…뭐?” “물어 볼…용기가…이젠 나지가 않아…” “…….” “어차피…답은 정해져 있잖아.” 도헌은 로라를 품에서 놓아주며 걱정스런 얼굴로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로라는 여전히 아픈 얼굴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설령 있다고 해도…내게…있다고 얘기를 할 사람일까?” “…….” “있는 걸 숨기고 날 만난 사람인데…이제야 내가 알아챘다고 해서 이실직고 할까?” “…….” “이실직고 한다고 한들, 뾰족한 수는 뭐야? 결국 헤어짐이잖아?” “…….” “내가 그 남자의 세컨드로…남을 것도 아닌데.” “…….” “그럼…전 여자 친구라고 해도…내 마음이 편할까?” “…….” “여자 쪽에서 미처 정리 되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내 마음이…이 모든 걸 납득할 수가 있을까?” “…누나.” “결국 헤어짐이잖아. 결국…그것뿐이잖아.” “…….” “결국 그것뿐인데…내 마음이…그 결국을.” “…….” “못 받아들인다잖아!” 로라는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믿었던 사람,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던 사람. 모든 것은 부질없었다. 부질없다는 것을 로라는 애초에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니라고 해도 이 남자만은 다를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 미련함에 배신을 당하고도 로라는 또다시 믿어 버린 것이었다. “누나.” 자신을 두고도 양다리를 걸쳤던 자신의 구 남친, 이현우 역시 그녀에게 그렇게 큰 배신과 아픔을 주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땐 이현우가 바람피우는 것을 알아챘을 땐, 니가 감히?, 황당함과 당황함이 먼저였고 어떻게든 그 뻔뻔한 낯짝을 면전에 두고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어야 겠다, 벼르고 벼리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은…그냥 너무도. “너무…너무 아프다…도헌아….” “…….” “내가…그 사람의…세컨드…였다는 게…믿었던 그 사람의…세컨드 였다는 게…” “씁. 그런 말 하지 마. …입에 담지도 마요.” “…구도헌.” “누나 잘 못 아니야. 당연히 그 개자식 잘 못 이지. 누가 세컨드래.” “…….” “누가 누구 세컨드야. 그런 더러운 단어 입에 담지 마. 그런…생각…하지도 마요.” 도헌은 로라를 다시금 따스하게 안아 주었다. * * * “오빠 배고프지? 어디 들러서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갈까?” “피곤하다. 바로 어머님 별장으로 가자.” 기태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곤 눈을 감았다. 운전을 하며 슬쩍 기태의 표정을 살피던 수정은 한숨을 내쉬며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기태는 온통 로라의 생각뿐이었다. 낮에 잠깐 보았을 때,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 전화도, 문자도 한 통 없는 그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태는 눈을 떠,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여전히 그녀에게선 연락 한 통 없었다. “하…” “뭐 기다리는 연락이라도 있는 거야?” “알 거 없잖아.” 기태는 신경질적으로 그렇게 말을 내뱉으며 대체 왜 연락이 한 통 없는 것인 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 지, 평소와 같지 않는 로라의 행동에 걱정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기태는 창문을 열어젖히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오빠, 옛날엔 내 앞에서 담배 꺼내지도 않더니…요샌 아무렇지 않게 핀다?” 수정의 말에 대꾸도 않은 채, 기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이 먼저 문자라도 보내볼까, 메시지 창만 수십 번도 더 열었다, 닫았다 반복한 그였다. 그런 낯선 기태의 모습에 수정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입술만 꾹 깨문 채,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에게 여자 생겼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태는 지금 그 여자에게 단단히 빠져 있다는 것을. 지금껏 기태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이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 띵동. 그때, 잠잠하던 기태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한 통 도착하고 동시에 기태와 수정의 시선은 휴대폰으로 향했다. - 선생님, 통화 가능 할까요? 로라였다. 통화 가능하냔, 로라의 물음에 기태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눈두덩 이처럼 불어나던 걱정이 사르륵, 녹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기태는 피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요 앞 휴게소에 잠시 들리자.” * * * 곧, 기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로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문자를 보낸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울리는 로라의 휴대폰 벨소리에 덩달아 도헌의 심장도 철렁 내려앉았다. “뭐라고…하려구요.” 오히려 로라보다 더 사색이 된 얼굴로 도헌은 로라의 팔을 쥐었다. 로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굳은 얼굴로 말없이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입술을 한 번 꾹, 깨물곤. “선생님.” 도헌은 어쩐지 힘들어 보이는 로라를 바라보고 있기 힘들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로라씨. 무슨 일 있어요?” 한없이 다정한 사람.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자상한 사람. 로라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저…술 마신 것도 아니구요.” “네?” “맨 정신인데요…제가 원래 뭐 하나든, 마음에 못 담아 두고 있어서요. 담아두고 지내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서요. 꼭…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네? 저한테요?” 조금은 울음 때문에, 떨리는 로라의 목소리. 도헌은 심란한 마음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로라씨.” “…혹시.” “…….” “여자 친구…있으세요?” 결국, 묻고 말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그 말을 내뱉고 나자, 로라는…이내 후회가 밀려 왔다. “네…? 그게 무슨.” 황당하다는 듯, 그게 무슨, 하고 답하는 기태의 목소리도 조금은 떨렸다. 괜한 질문을 한 것인가. 무슨 대답을 들으려고…결국 이 질문을 하고 만 것일까. 마치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듯, 로라의 심장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질문 그대로예요. 선생님…여자 친구…있어요?” “하하하하.” 로라의 질문에, 기태는 그만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로라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파르르 떨리는 오른 손을 꾹, 주먹 쥐었다. “아, 웃어서 미안해요.” “…….” “너무 진지한 것 같아서요, 로라씨가.” “…….” “있죠, 당연히.” 있죠, 당연히. 란 그의 대답에 로라의 심장은 땅 끝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멀리서 도헌이 걱정스런 얼굴로 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 “있죠. 무슨 질문이 그래요.” “…선생님.” “로라씨가 제 여자 친구잖아요.” “…….” “무슨 일 있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안 좋다.” 결국…결국 이거 구나. 로라는 피식,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러곤 이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제가…선생님 여자…친구라구요.” “네?” “그것 말곤…정말…없어요?” “어디서…무슨 소리라도 들은 거예요? 왜 그래요, 갑자기.” 기태의 표정은 그제야 굳고 말았다. 혹시 로라가 수정과 자신의 관계를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저 멀리 수정이 커피를 사들고 이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기태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아뇨. 무슨 소리를…들을 게 어디 있어요. 그냥요.” “네?” “선생님하고…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 “아니, 그 전부터.” “…네.” “선생님께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한 번도 제대로 물어 본 적도.” “…….” “그리고 대답도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요.” “이제 와서…그 질문을…하기엔 좀…늦은 감…있지 않을까요?” 기태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로라에게 물었다. 전화기 너머의 로라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고, 선뜻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내뱉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무슨…일이라도 정말 있는 것일까. “네. 그렇죠.” “…….” “조금이 아니라…많이 늦었죠.” “…….” “그래도 이제라도 그 대답이 듣고 싶어서요.” “갑자…기…말입니까?” 기태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굳어지고 말았다. 어느덧 수정은 기태의 뒤에 와 서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선생님.” “…네.” “정말…그게 다예요?” 정말 그게 다냐는, 로라의 질문에 기태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수정을 한 번 바라보았다. “네. 그게 다입니다. 없습니다.” 수정은 아무것도 모른 체 사들고 온 커피를 기태에게 내밀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선생님…마지막으로 하나만 더…물어볼게요.”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자신의 왼쪽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그의 뻔뻔한 대답에, 이제 로라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듯 했다. “네. 말씀하세요.” “…절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로라의 진지한, 그리고 꽤나 무거운 그 질문에 기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진심으로. 많이.” “……?” “사랑하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