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94
1,000+ Views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4화

서윤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어, 꽁꽁 얼어붙은 눈이 햇볕에 서서히 녹아들 듯
점차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둘만이 느낄 수 있는 고요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은 왠지 모르게 아늑했습니다.

마치 그리운 서로가,
그간 잘 지냈냐는 안부를 대신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그저 서로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홍감독: "뭘 그리 뻔히 보고있어. 둘이 아는 사이인가?"


홍감독의 물음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서윤이가 보입니다.


나: "그럴리가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윤: "안녕하세요..."


파도가 몰아쳐도 서윤이를 지켜줄 방파제가 되고 싶고,

온갖 비바람과 오물이 튀어도
대신 맞아줄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홍감독: "그래? 아님 됐고. 슬슬 시작하지."


떨떠름한 분위기 속,
초점없는 눈으로 생각에 잠긴 서윤이가 보입니다.

불청객의 난입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두꺼운 콘티가 하나씩 앞에 놓여지고,
홍감독님의 주관으로 회의가 진행됩니다.

다들 콘티와 시나리오를 유심히 읽고 있네요.
시계 초침 소리와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원래 회의가 이렇게 진행되는 건가?

5분여간 지났을까요.

제작부로 보이는 관계자가 입을 엽니다.


"몇번을 봐도 이 시나라오는 참.."


그러자 옆에 있던 분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순간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앞에서..


"뭐가 이리 세세해. 덕분에 장소 섭외 고민은 할 필요도 없겠네."


좋은 의미인가?

어리둥절 할 찰나에 홍감독님이 정곡을 찌릅니다.


홍감독: "김작가, 이거 본인 이야기 맞지?"


달아오른 열기가 서서히 얼굴 전체를 덮어옵니다.

안돼, 티내지마 얼굴아.


나: "아.. 아닌데요?"


홍감독: "아니긴 무슨. 본인 이야기 아니고서야 이렇게 글이 나오겠어?"


나: "아.. 아닌데.."


홍감독: "그나저나 진득하게 좋아했나봐. 궁금하네 그 여자."


눈을 마주치면 혹여 들킬까,
붉어진 얼굴로 저 아래까지 시선을 떨굽니다.

데칼코마니처럼 나와 같은 자세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서윤이.

오직 둘만 아는 진실이 우리를 작아지게 만듭니다.

열띤 회의가 진행되지만, 공황이라도 온 듯
단 한 음절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서윤이도 콘티에 시선을 두고있지만,
페이지가 멈춰있는 것을 보아 나와 같은 상태인 것 같네요.


그렇게 제3자에 의해서 우리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이어 우리의 첫만남이 이루어진 씬에 대해 논하기 시작합니다.

멍하니 얘기를 흘려보내다,
따끔한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안돼!

홍감독: "다시 봐도 강렬하네 첫만남이. 그럼 이것도 김작가 이야기?"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습니다.

나체로 거리에 내놓인다면 지금 딱 이 느낌일 것 같습니다.


나: "아, 아, 아닌데요, 정말 아니에요. 진짜로."


이유인 즉슨,

우리는 첫만남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선을 넘었습니다.

단연코 가벼운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날은 마치 판타지 세상에 빠진 듯 했어요.


강원도 속초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조용한 안식을 얻고 마음의 여유를 주기위한 곳이었죠.

복잡해진 머리를 풀 겸 방문했고,

서윤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리러 온 것을.

우연치 않게 창을 마주하는 긴 테이블에, 두칸 정도 띄고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5월의 햇살은 따듯했고, 그 빛줄기는 서윤이의
얼굴을 더욱 하얗게 애태웠습니다.

빛을 받은 눈동자는 연푸른 갈색을 띄웠고,
그 선명한 눈동자는 나를 끌어들였습니다.

명암 진 콧대는 그녀의 이목을 더욱 부각시켰고,

아른하게 빛나는 그녀의 은은한 연분홍빛 입술은
어떠한 채도로, 명도로도 표현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한 채로, 훔쳐보기를 한 두시간 지났을까요.

따스한 햇살은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나 봅니다.

하늘은 빛을 닫고, 가랑비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녀는 만지고 싶은 듯
손가락을 맞대었죠.

마치 그녀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빗줄기에 위안을 받는 걸까요.

숙연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니,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어떠한 언행도 용납해줄 것 같았습니다.

따스하게 손을 건냈고,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니지, 더 정확히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볼 때 부터죠.


그렇게 우리는 복잡한 '성인'이라는 겉옷을 벗고,
어린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우산 하나를 챙기고 비를 맞으러 밖으로 향했습니다.

토닥토닥 우산 위로 빗소리가 떨어지고,
우산이라는 작은 그늘 아래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무턱대고 걷다보니 속초 앞바다에 도착했고,
인적없는 아주 고요한 바다였죠.

우리는 그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나봅니다.

찰나의 고민도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우산까지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모든 근심을 싹둑 잘라내었죠.

차갑게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마음에 젖어든 불순물을 씻겨내렸습니다.

발가락 틈사이로 헤집고 들어오는 질퍽한 모래 마저
간질간질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내가 알고있던 행복이란 것은 모두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6살 짜리 해맑은 웃음으로 얼마나 뛰어다녔을까요.

하늘은 적막해졌고,
해변가 끄트머리에 있는 큰 바위더미들 앞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바위 틈에 잠시 몸을 숨겨 앉았고,
바다에 비친 푸른 달빛이 보일 듯 말듯 서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쁜 숨소리가 진정되고, 남아있던 웃음도 달아났습니다.

묘한 정적이 이어졌고,

그녀는 마치 첫사랑의 두근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내 목젖은 가만있질 못하고 자꾸만 침을 삼켜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젖어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죠.

하얀 티를 입고 있었던 그녀의 검정색 속옷이 천 조각 위로
너무나 적나라게 보였어요.

퍼래진 입술로 떨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가여웠고

그녀를 품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습니다.


"......"


고요한 파도 선율에 홀린 듯,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았고,

낯선 손길에 잔뜩 경직된 채로,
가만히 멈춰있는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그녀의 코를 맞대었고,
이어 천천히 고개를 틀어 내려왔습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아슬아슬한 거리.

그녀의 차가운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개었습니다.

마주한 입술 사이로 미끌어져 내려오는 빗방울이,

투명한 맛과 함께 서로의 입안을 더욱 촉촉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주었어요.

서로의 혀는 부드럽게 뒤엉켰고, 다시금 가쁜 숨소리를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하얀 티 안으로 흐르는 물방울.

물방울을 따라 시선은 하얀 티 안으로 향했고,

검은색 속옷 가운데 하얗게 옹골진 그녀의 가슴이 보였습니다.

마치 속옷을 벗어도 지금 보이는 예쁜 형태 그대로일 것 같은.


심장과 머리가 일렁일 정도의 자극이 이어졌습니다.

나란히 앉아있던 나는, 무릎을 꾼 채 상체를 일으켰고,

앉아있던 그녀의 고개를 뒤로 휙 져쳐 입맞춤을 이어갔어요.

그리고 물방울을 따라,
아주 천천히 그녀의 티 안으로 손이 홀려들어갔습니다.

내 손길은 그녀의 속옷 안까지 침범했고,

속옷에 닿을 그녀의 가슴이 고스란히 내 손아귀로 대신해서
촉감이 전해졌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숨소리와 함께 나를 꼭 껴안았고,

이어 그녀의 허리춤을 받쳐들었고,
헐렁이는 플리츠 스커트 속으로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허벅지를 시작으로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깊은 곳에 가까워질수록 살결은 점점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선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골반.
그 근처에 위태로이 걸쳐있는 실크 느낌의 속옷.

갈고리 처럼 걸친 내 손가락을 따라,
서서히 말려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벗겨져 내려올수록 점점 더 나를 꽉 껴앉는 그녀.

잔뜩 겁을 먹은 듯한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소중했고,

윤활제 처럼 나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품을 준비를 끝마쳤어요.

그렇게 그녀는 어두운 모래사장의 적막 속에
나에게 몸을 맡겼고,

차갑게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더욱 본연적인
아름다운 육체의 선을 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생생할 만큼,

가히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판타지 세상에 있다온 듯 합니다.


그녀를 하얗게 애태웠던 따스한 햇살.

그녀의 사연을 물고 온, 창에 맺힌 물방울.

우리를 씻겨 내려준 가랑비.

우리를 간지럽히던 질퍽이는 모래사장.

우리의 안위를 보살펴준 바위더미.

우리의 내면을 들춰준 적막한 파도 선율.

모든 게 완벽했죠.


물론, 시나리오엔 이렇게 세밀하게 쓰여지진 않았지만요.

음, 나도 모르게 회상이 깊어져 버렸네요.


여튼!


지금은 참아주십쇼.

아니, 마음껏 꺼내도 되니
제발 서윤이 앞에서는 꺼내지 말아주세요.

어디 개구멍이라도 없을까요. 아니 쥐구멍이라도.


홍감독: "한 번 읽었을 때 느꼈던건데 말이야, 정말 서윤씨 캐스팅 잘했어."


서윤: "네, 네?"


홍감독 : "김작가가 묘사한 거나, 분위기나 서윤씨라 해도 믿겠어."

물컵을 들고 홀짝이던 서윤이가 놀랐는지,

콜록 콜록!

연달아 헛기침을 합니다.


홍감독: "김작가, 안그래? 아주 찰떡이야."


기침에 전염이라도 된 듯, 급작스럽게 나도 목이 턱 막힙니다.

이런, 컥 컥.


서윤: "자, 잠시 화장실 좀..."


붉어진 귀를 한 서윤이가 자리를 비우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홍감독의 부름에 담배를 태우러 테라스로 향합니다.


홍감독: "내일 잘 부탁해. 꼭 맞는 배우를 찾아야 영화가 산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네요. 그 꼭 맞는 사람 여기 있는데...


나: "네네."


휴식 시간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가 끝이 납니다.

인사가 오가고, 미팅실을 빠져 나옵니다.

다 같이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서윤이는 보이지 않네요.

지금은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요. 낯부끄러워서리...

엘레베이터가 도착하고, 꾸깃 꾸깃 다 같이 탑승합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삐삐삐!

이런, 인원 초과로 닫히지가 않네요.

눈치껏 재빠르게 내리고,
감독님들께 먼저 내려가시라 인사를 드립니다.

곧이어 옆 엘레베이터가 도착하고,
1층을 누른 뒤 구석에 기대어 섭니다.

숨 막히는 분위기가 끝이 나고,
회의 동안 뱉지 못했던 깊은 숨을 뱉어냅니다.

스읍 후~


엘레베이터 문이 닫힙니다.

별 생각없이 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거의 다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네요.

......


문이 열리며 서서히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


아...

서윤아...


놀란 듯한 서윤이는,
제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동동거립니다.

괜한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탑승하지 않을 사유를 찾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있을리가요.


나: "타, 서윤아."


결국 함께 탑승한 채, 문이 닫힙니다.

서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 벽에 바싹 붙어 같은 곳을 응시합니다.

일정한 템포로 내려가는 층수.


9층..  8층..


부디 이 정막을...


서윤: "......"

나: "......"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5화
"......" 어색함. 들숨 날숨의 소리마저 들려오는 정적.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으로 오디오를 채워봅니다. "크흠, 흐읍 큼" 하지만, 영양가 없는 헛기침 몇번으로 풀릴 리 없었죠. 내 옅은 수를 알아챘는지, 엘베는 내 예측보다 반 템포씩 느리게 내려갑니다. 이제 고작 7층. 이대로 1층까지 견디기엔, 4.7km 해저 수압과도 같은 어색한 기류에 뭉개질 판입니다. 지금은 이겨낼 때다.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서윤: ".....해줄래?" 아, 내가 먼저 꺼내려고 했는데.. 그와중에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정확히 듣지도 못했습니다. 나: "응? 뭐라고 했어?" 서윤: "......" 서윤이가 다시 말해주길 기다려보지만,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나: "아직 그 동네 살아?" 서윤: "으응." 나: "아, 그렇구나." 애써 붙인 말이 맥없이 툭툭 끊깁니다. 이러다 없던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아요. 하필 또 사면이 거울로 되어있어서, 작은 손짓 하나까지 다 보입니다. 이제 2층이다. 조금만 더. 문이 열리기도 전에 문앞에 바짝 서있다, 재빨리 발을 내딛습니다. 그나저나 아까 서윤이가 뭐라고 한 걸까. 다시 물어볼까.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 하는데, 뒤에서 살포시 내 소매자락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혹시 서윤이도? 서윤이의 돌발 행동에 조마조마한 기대를 가지고 뒤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헛된 기대라는 것을 알아차렸죠. 고개를 숙인 채, 표정을 감추는 서윤이. 혹시나 낯부끄러운 말이라 쉽게 꺼내지 못하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소매를 잡은 서윤이의 가녀린 손 끝에서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밖으로 낼 수 없는 그녀의 속앓이가 얼마나 깊은지. 나: "괜찮아 서윤아, 말해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머뭇거리다,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서윤: "비밀로 해줄래..?" 되묻고 싶었습니다. '비밀'이라는 의미를. 하지만 서윤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나를 심연에 빠뜨렸고, 모든 상황을 되짚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전 회의에서, 또 엘레베이터 안에서. 같은 공간에 같은 고민을 겪는 줄 알았는데, 서윤이의 고뇌는, 우리의 재회가 아닌 내가 있음으로 일어날 앞으로의 상황들이었나 봅니다. 아, 아까 엘레베이터 안에서 못 들었던 말이 이거구나. 듣지 말 걸. 나: "다,당연하지. 그리고 시나리오에 큰 의미 두지마. 소재가 필요했을 뿐이야." 초라하다. 나 혼자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서윤: "미안해." 나: "서윤아, 미안할 게 뭐있어. 그나저나 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가봐야겠다." 죄책감에 휩쌓인 서윤이의 모습. 그녀가 풀 죽은 모습을 보일수록, 애써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는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집니다. 서윤: "정말 미안해, 오빠." 그만. 더이상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서윤이의 마지막 말에 귀를 닫은 채, 억지로 걸음을 떼어냅니다. 머리가 고장난 채, 상가를 빠져나와 얼마나 걸었을까요. 무엇이 내 발을 붙잡는지, 걸음을 멈추고 괜시리 뒤돌아 봅니다. ...... 저만치 멀어진 곳에 보이는 서윤이. 한 남자의 마중을 받으며 상가를 빠져나옵니다. 서윤이가 소중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 남자의 표정과 다정한 손길. 남자의 아늑한 품 아래, 평온해 보이는 그녀. 잠시동안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품에 있는 그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현실 같지가 않았어요. 따스한 노을빛 아래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그 남자와 서윤이. 아득해질 때쯤이었을까요. 나도 뒤돌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목적과 이상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걷다 근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부지런히 지나쳐가는 사람들. 경적을 울리며 급히 지나치는 버스. 복잡한 세상과 달리 내 눈과 귀는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딜 가야할지, 모든 사고가 멈춰있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늪에 빠져들던 찰나에, 지나가던 어린 아이가 실수로 손을 툭 건드렸어요. "아, 죄송합니다!" "......." 아, 내가 왜이러지. 가슴이 일렁입니다. 어린 아이의 사과 한마디가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시발 고작 그게 뭐라고 진짜. 기다렸다는 듯, 쉴 새 없는 울음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슬픔인지, 그 끝이 어디인지. 차라리 날이라도 울적하지, 이렇게 평온한 노을빛 아래 왜 나 혼자만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걸까. 내게 닥쳐오는 슬픔을 부정하고자 발버둥 칠 수록, 되려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헤집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멎을 것만 같아요. 목놓아 울부짖지 않고서야, 가슴이 맺힌 이 응어리를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스물아홉'을 기다려 온 걸까요. 혹여 서윤이가 내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한 선으로 짙게 칠해왔는데, 나는 선이 되기엔 너무 작은 점이었을까요. 잔잔해야 할 저녁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고 나서야, 내게 오는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또 한번, 혼자만의 초라한 이별을 겪고, 눈물 젖은 걸음으로 제자리에 돌아갑니다. ****** 날이 저물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청승이라도 떠는 듯, 집 근처 포장마차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안주로 시킨 잔치국수가 잔뜩 불어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시간이 흘렀나 보네요. 둔해진 혀가 현재 내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아, 집에 어떻게 가지. ♬♪♬♪♬ 전화가 울립니다. 취기 때문에 흐려진 시야를 다잡고, 찡긋 구부린 눈으로 확인합니다. '은비♡' 얘는 이 시간에 잠도 안자나. 나: [여보세요.] 은비: [술 마셨어? 오빠 너, 어디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은비가 온다는 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누가 됐든 옆에 있어주길 바랬거든요. 떨어지는 빗줄기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냅니다. '토닥 토닥' 술기운에 귀가 이상해졌는지, 나를 위로 해주는 소리로 들리네요. 주책맞게 이게 뭐 하는 건지 참.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젖은 우산을 접으며 은비가 들어옵니다. 늦은 시간 급하게 나왔는지, 끈나시에 살이 비치는 얇은 흰색 가디건을 걸치고 왔네요. 나를 확인하곤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은비: "얼마나 마신 거야! 으휴 술냄새." 나: "은비, 안녕." 뭐가 그리 반가운지, 헤벌레 웃음이 피어납니다. 맞은 편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는 서윤이. 은비: "혼자 청승맞게 뭐하고 있어. 무슨 일 있니?" 나: "일은 무슨. 그냥, 빗소리가 좋잖냐." 괜스레 웃어보입니다. 한참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뭔가 짐작 한 듯. 은비: "괜찮아, 괜찮아." 애써 미소를 띤 내 표정이 구슬퍼 보였는지, 연민 섞인 눈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네요. 또 멋대로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가 가슴에 닿을 듯 파묻습니다. 은비: "괜찮아, 이리와." 소리없는 울먹임에 사정없이 몸이 떨려왔습니다. 쓰다듬던 은비의 손은, 점차 빈틈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은비의 포근한 온기가 만신창이가 된 내 심신을 뒤덮어주었고, 그제서야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가슴에 파묻힌 채 점점 안정을 되찾았고, 여전히 내가 안쓰러운지,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내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포근했습니다. 술기운 때문인지 이대로 조금만 더, 은비의 품에 머무르고 싶었어요. ...... 이후론 과음을 한 탓인지, 기억이 없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있긴 있었는데, 음... ****** 다음 날 아침. 숙취가 없는 편이라, 생각보다 개운하게 눈을 떴습니다. 분명 듣기 좋은 물소리에 깬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그나저나 어제 집에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은비는 집에 잘 들어갔을까. 갈증을 풀기위해, 냉장고로 향하려는데... 화장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급히 신발장을 확인하니, 29년 인생, 단 한번도 소유해본 적 없는 신발입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사이즈, 230? 화장실 문 앞에는 내 집에 존재할 수 없는 끈나시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날 법한 짧은 트레이닝 바지가 놓여있습니다. 기억의 퍼즐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미 영멸한지 오래입니다. '덜컥' 화장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활짝 열리기 까지 1.5초정도의 시간이 있다. 이대로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황을 모면할까. 만약 힘조절 실패로, 침대로 던진 내몸의 무게로 인해 '덜컹'하는 소리가 난다면 어떡하지. 1.5초 안에 임무를 수행하기엔, 몸도 마음도 역부족. ...... 화장실 문이 활짝 열립니다. 뜨거운 수증기가 문밖으로 피어오르고, 나체로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고개를 반대 쪽으로 휙 돌립니다. 문밖으로 완전히 나온듯 한 마루바닥 소리. 그리고 나를 발견한 듯 놀란 의성어가 들립니다. 익숙한 목소리. 은비: "일어났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나: "야! 빨리 옷 안입어?" 왜 내가 더 다급한거지. 오히려 은비는 태연해 보입니다. 은비: "자고있을 줄 알았지, 바보야." 일시정지 한 채, 은비가 옷을 입기만 기다립니다. 하지만 동공만은 일시정지에 실패. 은비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엔 냉장고가 있습니다. 무광을 띤 냉장고지만, 손잡이 만큼은 손거울과 맞먹는 반사율을 자랑하죠. 가만있어 동공아. ...... 호흡을 멈춘 채, 빛의 속도로 냉장고 손잡이를 훑어보고 다시 정면을 응시합니다. 슥슥. 다행히 타올을 걸치고 있네요. 근데, 우리 집엔 몸에 휘감을 샤워타올이 없는데? 긴장감과 궁금증이 증폭됩니다. 하지만 난 이성적인 남자.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꼭 감습니다. 따듯한 수증기를 타고 풍겨오는 내음. 그 어떤 냄새보다 깨끗하고 싱그러운 향이 전해집니다. 꼭 감은 두눈으로, 풍겨오는 내음을 막을 도리가 없죠. 정말 좋은 향이 전해질 때, 기억이 번뜩 깨면서 눈이 휘둥그레 질 때 있잖아요? 샤워를 막 끝내고 나온 은비의 향은 내 눈을 멋대로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조금 더 노골적으로 손잡이를 보게했죠. 짧디 짧은 하얀 수건을 가로 방향으로,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쪽을 모두 휘감아 놓았네요. 충분한 볼륨을 뽐내면서, 얼마나 체구가 가녀리면 수건 하나로 몸이 둘러질까요. 1cm만 위 아래로 이동되어도 적나라게 보일 것만 같은. 옷을 입을 채비가 끝났는지, 감아 놨던 수건을 망설임 없이 풀어냅니다. 은비: "나 이제 옷 입는다. 볼려면 봐라." 이 자식 자꾸 쓸데없는 말을.. 나: "까,까불지마라." 최소한의 이성의 끈을 붙잡고, 냉장고 손잡이에 미련을 버립니다. 남자로서 참기힘든 갈망을 이겨내고, 의미없는 장식용 피규어를 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피규어는 아주 당당하게 은비쪽을 바라보고 있네요. 젠장. 잠시 후, 수건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냅니다. 그녀의 물기를 다 흡수했는지, 제법 둔탁하게. '툭'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6화
'툭'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건. 고작 수건 따위가 내는 소리일 뿐인데 그 짧은 순간, 샤워실 안의 정경이 멋대로 그려집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내맡기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며 씻어내리는 모습부터, 샤워를 끝내고 상체가 훤히 비치는 거울을 마주한 채, 매혹적으로 물기를 닦는 모습까지. 야릇한 망상이 활개를 핍니다. 이 쓰레기 머리야, 그만좀 해. 정신이 채 들기도 전에, 속옷을 입는 듯 살갗과 란제리 원단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스윽, 스윽'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현악기보다 아름답고도 위태로운 연주 소리로 들리네요. 은비: "옳지, 잘 참는다." 아, 몸의 모든 성근육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움찔거립니다. 나: "다,다 입었냐?" 은비: "아니, 아직 위에는 안입었어." '꿀꺽' 팬티를 입는 것 보다 다소 격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내 시야에 보이지 않던 은비의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요. 소리없이 침을 삼키며, 시야를 왼쪽 아래로 조금 내려봅니다. ...... 노란빛 스탠드 조명을 배경으로, 속옷을 입는 은비의 그림자가 행위 예술을 하듯,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요염하게 움직입니다. 그 어떤 무용도 이토록 위태롭고 치명적인 선은 없을텐데. 애간장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해요. 고작 거뭇한 그림자지만, 상상만으로 이미 은비를 낱낱이 느낀 것 같습니다. 마저 속옷을 다 입은 듯, 손을 뒤로 하여 속옷을 채웁니다. '뚝' 은비: "다 입었다." 나: "마,마저 다 입어라.." 어제 입었던 끈나시와 허벅지가 훤히 들어나는 짧은 트레이닝 하의를 마저 입는 은비. 은비: "이제 뒤돌아도 돼." 여자와 한 공간에 있어본 적 없는 숫총각처럼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나: "어,어. 분명 옷을 다 입고 있는데, 왜 시선을 못 맞추겠지. 괜찮아, 진정하자. 난 은비에게 어떠한 사심도 없잖아. 은비: "부끄러워하는 거봐, 귀엽게." 나: "부,부끄럽긴 뭘."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조롱하듯 초밀착하여 희롱하는 은비. 손사래 치며, 외면할수록 더 바짝 붙어 이리저리 품속으로 들어옵니다. 은비: "왜 못봐? 왜애? 응?" 가릴 것 없이 모든 신체 부위가 맞닿습니다. 나: "뭐,뭐가. 아,아무렇지 않은데." 은비: "오, 진짜?" 물러터진 경계가 허물자,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내 발위에 자신의 발을 올리며 대롱대롱 내 걸음을 따라합니다. 은비: "우와, 오빠 복근 장난없다!" 물기 덜마른 촉촉한 머리칼이 뜨거워진 내 몸을 살금살금 건드리며, 손으론 내 복부를 더듬습니다. 아,위험하다. 나: "아, 뭐해, 저리가." 그녀의 골반 근처와 내 하체의 어딘가가 선명하게 맞닿았습니다. 분명 서로가 자세히 느껴질만큼 생생한 촉감으로.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내 몸에 꽉 붙어 이리저리 흔들며 장난치는 은비. 정말 이 이상은 안돼. 내 몸의 추태를 들킬 거 같다. 나: "아, 그만해. 너 진짜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이럴래?" 은비를 뿌리치고, 성급하게 어디든 앉을 곳을 찾습니다. 동선 상 가장 가까운 곳인 침대에 앉아, 자연스레 양 허벅지 위에 베개를 올려놓습니다. 휴. 은비: "우리 사이에 위험할 일이 남았나?"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답이 정해진 듯한 질문을 날립니다. 나: "그,그게 무슨 말이야. 장난치면 혼난다." 은비: "어제 기억 안나? 오빠가 어제 침대에서 나한테 했던 거?" 머리가 지난 기억의 흔적을 짜내려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 모함이다. 이성적인 내가 그럴 리 없어. 반사적으로 팬티 안의 감촉을 확인합니다. 일종의 습도라던지, 농축이라던지. ...... 까마득한 기억은, 거짓과 사실을 뒤바꿀 만큼, 사실도 거짓으로 혼돈할 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으깨버립니다. ... 정말 내가? 나: "미,미안하다. 진짜 기억이 안나." 침대 옆에 나란히 앉은 은비가, 참다 못해 터진 듯 호탕하게 웃어버립니다. 은비: "아, 웃겨. 진짜 놀릴 맛 난다, 오빠. 너무 좋아." 쪼그만한 게 몇번씩이나 날 가지고 놀아? 나: "너 진짜 죽을래? 나 진짜 화났어. 빨리 나가 너." 은비: "어제 얼마나 힘들게 오빠 집까지 데려왔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내쫓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저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왔을라나. 내가 주사가 없어서 망정이지, 휴. 나: "대신 앞으로 그런 장난치지마. 그럼 별일 없던 거 맞지?" 은비는 골똘히 눈을 굴리며 지난 밤을 생각하네요. 은비: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 나: "뭐? 그럼?" 은비: "글쎄, 말해주기 싫은데. 내 소원 들어주면 말해주지롱." 내가 또 이런 허수에 당할 듯 싶으냐. 어림없지. 음... 나: "알겠으니까, 빨리 말해." 은비: "아싸! 안지키기만 해, 죽어 아주. 어제 잠들기 전까지 서윤인가 뭔가 하는 여자애만 종일 불렀어. 그리고 나한테 '서윤아' 하면서 막 안기고 보듬고 그랬어 오빠가. 나: "또 거짓말이지 너." 은비: "오빠, 너 마음대로 생각해라." 잔뜩 심통이 나있는 듯한 은비의 표정. 은비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요.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며 본인에게 그랬다니, 은비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미안해지네요. 나: "미안해. 그냥 잠꼬대 였을텐데. 너한테 함부로 행동해서 미안하다." 한동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있습니다. 화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렵기만 해요.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구나! 나: "이거 먹고 화 풀어주라. 서윤... 아, 아니 은비야.."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망했다. 숨도 쉬지 않는 듯, 미동없는 은비의 뒷모습에서 전쟁의 서막이 피부로 와닿습니다. 나를 휙 돌아보는 은비. 금방이라도 분노에 찬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눈망울. 아랫 입술을 잔뜩 모은 채,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은비: "나 신은비라고! 서윤인가 뭔가 하는 애가 아니라고 나는! 진짜 자존심 상해." 분노와 서러움이 뒤섞인 은비의 표정. 나: "아, 미안하다. 내가 아직..." 은비: "왜 오빠 너는 서윤인가 뭔가 걔만 생각하고 걔만 부르냐고! 아, 울기 싫은데 진짜." 나: "......" 여기저기 놓인 짐을 휙휙 급하게 낚아채고, 현관으로 나서는 은비. 설움이 멈추지 않는지, 입고 왔던 가디건을 얼굴에 품고 훌쩍이며 집 밖으로 나갑니다. 다급하게 엉거주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뒤따라 갑니다. 얼마나 빨리 내려갔는지, 주택 계단을 벗어나 골목을 내려가고 있는 은비가 보입니다. 두손을 입가에 대고 힘차게 은비를 부르려다, 목에서 턱 하고 막혔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이게 맞는 걸까. 괜한 행동으로 불을 지피는 건 아닐까. 곁에 둘수록 은비의 상실감은 더욱 커질테고, 그것에 비례하게 나 또한 미안함에 편치 못할텐데. 모았던 두손은 맥없이 툭 떨어지고, 깊은 한숨과 함께 복잡한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올라갑니다. 왜 유독 은비를 향한 행동은 갖가지 이유와 근거가 필요할까요. 아직은 이 불편함을 정의할 수가 없네요. ****** 오디션 심사 2시간 전. 무거운 마음으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원래라면 기대에 부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게 채비했겠지만, 어제 하루 사이에 각기 다른 두 여자의 파동으로, 여파가 극심한 탓에 차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오디션 당일인데, 컨디션도 의욕도 반토막입니다. 어제 공원에서 얼마나 울어 재꼈으면, 목이 칼칼한 게 쉰 목소리가 나오네요. 그래도 오늘이 영화에 일조하는 것도 마지막이고, 더이상... 서윤이를 볼 일도 없을 테고. 미련없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일거양득이겠죠. 억지 화이팅을 가득 불어넣고 오디션장에 들어갑니다. 홍감독: "어, 김작가 왔네." 나: "안녕하십니까." 홍감독: "아직 캐스팅 디렉터랑 안왔으니까, 미리 배우 프로필 보고 참고해." 두터운 파일을 건내받고, 품에 꼭 쥔 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생각보다 조촐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스테이지를 생각했는데, 대학로 소극장 느낌에 가깝네요. 빈의자에 앉아 받은 프로필을 열어봅니다. 우와, 오늘 이 배우 실물 영접하는 거야?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하드캐리한 배우잖아. 미쳤다, 미쳤어. 로코물의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배우도 있네요. 나이가 조금 있어서 걸맞진 않아보이는데..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배우도 있어요. SNS에서 벨런스 게임에 항상 등장하던데, 빚이 30억이어도 다 갚아주고 만날 수 있다는 그 배우. 헛웃음이 나오네요. 내가 이런 배우들 앞에 앉아 심사를 하는 꼴이라니. 정작 월세 살이에 확연한 미래도 없는 나하고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 텐데. '철컥' 문이 열리더니 홍감독과 함께 캐스팅 디렉터와 기타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이 들어옵니다. 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안녕하세요. 홍감독님께 말씀 들었어요." 홍감독: "자자, 슬슬 시작하지. 시간 다 됐지?" 스텝으로 보이는 분이, 심사 테이블 바로 옆에 두 대의 카메라를 거치해줍니다. 아마 영상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거겠죠. 한마디로 카메라 빨. 우와 '알렉사 미니LF' 엄청 비싼 카메라로 아는데, 역시.. 홍감독의 손짓에 오디션이 시작되고, 첫번째 배우가 들어옵니다. 티끌도 놓치지 않기 위해 초집중 상태로 배우를 탐색합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역시 베테랑인 걸까요. 정돈 안된 거뭇한 수염 곳곳에 나있는 허연 수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연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카메를 휙 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듯 배우에게 시선을 끊고 다음 프로필을 봅니다. 다음으로 들어온 배우. 이번엔 두 분 다 유심히 보는 듯 했지만, 대사를 뱉기 전, 호흡에서 이미 아웃입니다. 모든 감정의 시작은 호흡이라고 하죠. 어느새 30명가량의 배우들이 속전속결로 나가떨어집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배우가 들어옵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남자사용설명서'의 그 배우죠. 두 분 다 눈을 떼지 못하고, 배우의 연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흡족한 웃음을 짓는 두 감독. 홍감독: "잘 봤고요. 다음 거 해보시죠." 다음은 '지정 연기' 입니다. 한마디로 직접 지정해준 연기를 선보여야 하죠. 사실 '지정 연기'는 연극 영화과 대학 입시에서나 보는 것인데 이번엔 홍감독이 특별히 지시했다고 합니다. 홍감독의 애착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죠. 바로 '스물아홉의 우린'에서 중요 장면 중 하나인 서윤이와 나의 이별 씬. ...... 눈을 지긋이 감으며 감정에 몰입하는 배우. 심호흡을 크게 내쉬더니, 준비가 끝난 듯 보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2화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는, 제가 쓴 시나리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자 전 애인입니다. 물론 제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줄은 모를 거예요. 근데 이상하다? 현재 쉴틈없이 촬영이 이어질텐데 왜 여기에 있지? 그나저나 이 향기..  정말 오랜만이다. 서윤: "안녕, 오빠.." 여전히 눈이 예쁘다.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눈망울. 나: "안녕, 서윤아.." 서윤: "오랜만이다.. 잘지내?" 하얗다. 작은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안될 것 같은 연한 살결. 나: "나야 잘 지내지 뭐. 얘기 들었어 영화 들어갔다며?" 서윤: "응. 진짜 운이 좋았나봐. 아직도 안믿겨." 미소 짓는다. 나를 녹여냈던 수줍은 미소. 너는 모든 게 여전하구나. 나: "축하해 진심으로." 서윤: "고마워. 근데 있잖아.. 내가 들어간 영화 시나리오 말이야." 나: "어? 어어.." 서윤: "혹시..." 아 곤란한데.. '60초 후 공개됩니다!'  뭐 같은 타이밍으로 창가쪽 테이블에서 그녀를 부르며 손짓 합니다. 친구: "서윤아 뭐해? 이제 나가자." 서윤: "으응.." 뜸들이던 그녀의 몸은 나를 지나쳐가지만, 서로의 눈은 N극과 S극을 억지로 떼어놓는 것처럼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시나리오는, 서윤이와 저의 첫만남 부터 이별까지 사랑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이별하는 순간 등 모든 순간을 어여쁘게 담은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서윤이도 어렴풋이 알겠지요. 데자뷰와 같은 시나리오를요. 남자 주인공 배역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와 서윤이의 애틋한 이야기를 내가 아닌 다른 놈이 대신하다니...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애써 덮어두었던 과거의 향기를 느끼던 찰나, 누군가 내 팔짱을 끼며 팔에 뭉클한 감촉을 전달해줍니다. 여자: "오빠 혼자 서서 뭐해? 나 커피 다먹었어.           이제 집으로 가자." 대답도 없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간 뒤, 얼떨결에 함께 택시에 탔습니다. 여자: "신림역으로 가주세요." ***** 추억에 잠기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택시에 내려, 함께 주택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우리 둘의 발걸음 소리뿐. 그리고 여자는 내 새끼손가락에 끝마디만 걸친 채, 묘한 분위기 속, 터벅 터벅 천천히 걸음을 뗍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이 여자의 시선. '여기까지 내가 했으니 이젠 뭐라도 좀 해봐 네가.' 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겠죠? 알아 나도! 이쯤이면 남자된 도리로써 너의 몸과 마음을 적셔줘야겠지. 그치만 지금의 나는 너무 복잡하다고! 카페에서 예기치 못한 만남이 인간의 3대욕구중 하나를 자꾸만 잠재웁니다. 그렇게 고요 속에 도착한 여자의 집. 집 앞에 나를 멈춰세우고 십여분간의 침묵을 깨줍니다. 여자: "오빠, 오늘 나랑 같이 있기 싫으면 편하게 말 해도 돼. 나 상처 안받아." 띵!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몹쓸짓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루의 일탈쯤이야 괜찮아! 나: "아니, 오늘 너랑 같이 자고 싶어."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허리와 목을 감싸쥡니다. 숙여진 나의 상체와 뒷쪽으로 휘어진 그녀의 허리는 야릇한 키스의 접점으로 가장 완벽한 요소였죠. 금방이라도 찬 물로 샤워한 것처럼 차갑고 부드러운 그녀의 속살은, 나를 혼미하게 만듭니다. 닭살이 돋아 있는 그녀의 은밀한 속살들이 몽환적인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여자: "올라가자 빨리." '삐 삐 삐 삐'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100M 달리기 출발 직전의 소리처럼 짜릿한 자극을 줍니다. 낯선 아이의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섭니다. ...... 차분하면서도 매혹적인 냄새. 매일 밤, 그녀의 하루를 벗겨내는 포근한 침대. 그녀를 보듬어 주는 하얀 이불.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을 더 부드럽고 애태우게 만드는 러그. 마지막으로 우리의 본능을 더 낱낱이 아름답게 비춰줄 스탠드 조명. 조금 전과 너무도 다른 나지만, 어쩌겠어요 본능을. 그녀의 허벅지를 받쳐 들고 경직된 숨소리로 침대로 향했어요. 그녀는 다리로 나를 꽉 애워싸고, 내 뒷머리를 질끈 집어들어요. 이어 내 목덜미에 달콤한 시럽이라도 발린 듯 뜨겁고 아찔한 촉감이 느껴져요. 마침내 우리를 하나로 포개어 줄 곳에 도착하죠. '퍽..'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탓인지 다소 난폭하게 그녀를 침대에 퍽 내려놓았습니다. 충격 탓인지 품 아래서 나를 골똘히 바라보는 그녀. 어? 내가 너무 세게 내려놓았나?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릅니다. ...... 여자: "만약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어떨까?" 나: "그게 무슨 말이야?" 여자 : "내일이 와도 오빠가 내 옆에 있을까?" ......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또 해야하는지 잘 알고있습니다. 그치만 왜그랬을까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자: "대답 안 해줄 거야?" ♬♪♬♪♬♪♬ 정적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옵니다. 늦은 새벽에 오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의 전화. 사연깊은 누군가와의 뜻밖의 마주침.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이런게 직감이라는 것이겠죠. 아마도 서윤이의 전화일 것 같습니다. 여자: "전화 안받아?" 나 : "어어... 괜찮아." 머리까지 심장 박동수가 느껴집니다. 왜 전화가 왔을까. 그것도 2년만에. 서윤이는 여전히 내 본능마저 잠재울 정도로 깊게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나: "미안해. 대답 못하겠어." 사탕발린 말로 오늘 하루의 환심을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이 여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자격은 없지만 서윤이에게도요. 한참의 정적이 흐릅니다. 자세를 고쳐 잡고싶지만, 여자는 내품 아래서 다리로 나를 애워싼 채, 풀어주질 않아요. 그리곤 별을 품은 듯한 눈을 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이어 내 목을 둘러잡고 상체를 일으키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틀어 입을 맞춥니다. 쪽. 응? 뭐지? 조금 전 내 대답을 못 들은건가? 나: "아니 저기.." 이번엔 포근한 미소를 동반해서 나를 바라봅니다. 아니 이 여자, 술 다 깼다면서 갑자기 술기운이 올라왔나? 또 다시 상체가 올라오고 고개가 틀어집니다. 쪽. 아니.. 이봐요..? 여자: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방금 그 표정은 꼭 껴안아 주고 싶었어." 나: "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여자: "몰라도 돼, 그런 게 있어! 조금 다른 거 같아 오빠는." 나: "저기.. 알아듣게 좀..." 여자: "그건 그렇고, 아까 카페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여자, 전 여자친구지? 방금 전화 온 사람도 그 사람일 거고." 헉 어떻게 알았지? 다 보고있었구나. 나: "응.. 맞아." 여자: "표정보니까 아직도 못 잊은 모양이고, 헤어진지 얼마나 됐어?" 나: "2년 정도 됐나.. 잘 모르겠다." 나를 밀어 일으켜 세우더니, 덩그러니 마주보고 앉아있습니다. 여자: "좋아, 이제 집에서 나가 오빠. 그리고 휴대폰 좀 줘봐." 그래 이게 맞는 상황이지. 이렇게 박대당할 만 했어. 첫 만남에 전 애인을 잊지 못한 찌질한 과거까지 들켰으니. 나: "여기, 근데 휴대폰은 왜?" 열심히 내 휴대폰을 두들기더니, 자기 휴대폰에 온 전화를 확인합니다. 여자: "내 이름도 모르지? 신은비야. 저장해뒀어." 나: "어? 어 그래.." 여자: "내일도 연락할 거고 모레도 연락할 거야. 오늘은 머릿속에 전 애인만 빙빙 돌거니까 내보내는 거야. 연락 안받으면 두고봐 아주." 오늘은 정말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네요. 전 애인을 생각하는 표정에 동정을 느낀건가? 도라이? 내가 다르긴 뭐가 다르다고.. ****** 그렇게 '신은비' 라는 독특한 여자와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뒤로 집 밖을 나왔습니다. 저장된 신은비의 번호. 은비♡ 뒤에 하트를 붙여 놨네요. 참 당돌한 여자인 것 같죠. 분명 나에게 호감을 표한 거 같은데.. 왜 때문일까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 아래 보이는 등록되지 않은 번호의 부재중 전화. 은비의 집에 있을 때만 해도 헐레벌떡 전화를 받고 싶었는데 집밖에 나오니, 수신 버튼 위에 손가락을 두고 수억번의 미세한 떨림이 일어납니다. 다시 걸어볼까,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혹시 아까 하려던 시나리오 얘기인가, 최종 임원 면접을 앞둔 것 처럼 긴장이 늦춰지질 않습니다. 굳게 결심하고 서윤이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발신 버튼을 누르기 직전! 어? 어? 다시 걸려온 서윤이의 전화.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술이 깰 때쯤 오는 두통과 합해져 머리가 질끈 거리기 시작합니다. 스읍 하.. 나: [여보세요..?] 대답없는 수화기. 그녀도 나와 같을까요? 나: [서윤아.]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1화
금요일 밤 11시50분 이태원. 친구놈과 가볍게 1차를 마치고 붉어진 얼굴로 이태원 라운지 바 '포레스트'의 긴 줄에 서있습니다. 친구: "야 오늘 느낌 좋아." 설레발치는 친구의 말에 속내를 감추고  무심한 척 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엔 이름 모를 하얀 그녀와 은밀한 접촉을 하고있었죠. 입장할 순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시선엔, 창가쪽에 앉아있는 하얀 탑을 입고 좋은 향이 날것만 같은 여자가 앉아있었습니다. 제발 둘이어라.. 제발.. 둘.. 이어서 반대쪽 빈 의자에 금발을 한 여성이 착석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연일지라도 기필코 인연으로 만들겠나이다. 옆에 친구놈에게 독화술로 긴급한 내마음을 전합니다. 나: "오른쪽 위. 오른쪽 위. 아니 병신아. 반대쪽." 자연스레 스캔을 한 친구는, 츄르를 본 고양이의 눈처럼 동공이 확장되더군요. 우리는 어떤 대화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피차 목적은 다를 수 없으니까요. 드디어 입성! 합이 이루어지는 술집 특성상, 새로운 손님이 들어올 때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여기서 그 시선들을 느껴버리곤 두리번 두리번 이 집, 저 집 테이블을 훑는 것은 나의 격을 추락시키죠.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않고 정해진 나의 길을,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빠르게와 느리게의 그 어딘가의 템포로 걸어갑니다. 제발.. 제발.. 나이스! 인연을 피어낼 여자의 뒷 대각선 테이블. 자연스레 눈이 마주칠수 밖에 없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알바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술 다 먹고 테이블까지 정리해드리고 나갈게요. 꾸벅. 좁은 테이블에 메뉴판과 기본 안주가 세팅됩니다. 컵을 나누어 물을 따르고, 곧바로 컵을 집어듭니다. 네, 사실 목이 전혀 마르지 않습니다. 밍밍한 물을, 무슨 에스프레소를 마시 듯 컵을 얼굴에 바짝대고 입술만 적시며 술집 안을 스캔합니다. 우리의 레벨을, 우리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견적 끝. 뭘 해도 되는 날이다. 친구 : "뭐 먹을래?." 나 : "너 먹고 싶은거. " 주문한 안주와 술이 나옵니다. 아주 조용하고 예의 바른, 또 꾸며지지 않은 진심을 담아 알바생에게 건냅니다. "고맙습니다." 이것의 서브텍스트는, 친구놈의 어깨 옆으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귀가 쩡쩡거리게 떠드는, 또 육두문자를 서슴없이 뱉는 예의없는 저 테이블의 미물들과는 달라. 난 기본 예의와 매너를 갖춘 남자야. 사실,  다 집어치우고 친구놈이 정말로 정말로 잘생겼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친구놈의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흘려보내고, 횟수를 늘리며 그쪽을 응시하죠. 엇! 잠깐 그쪽 테이블에 등을 보이던 여자2도 갑자기 몸을 틀며, 둘이 함께 이쪽을 바라봅니다. 그러곤 또 다시 둘이 속닥입니다. 뭐지..? 저는 다급하게 친구를 툭툭 치고 고갯짓으로 여자 테이블을 가르킵니다. 자! 친구야! 어서 네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그 얼굴을 비추거라. 친구놈은 훈훈한 미소로 민들레 홀씨를 날려보냅니다. 1차전 종료. 다시 각자 테이블의 상대를 마주보며 무미건조한 담소를 이어갑니다. 모든 신경은 상대 테이블에 세운 채로요. 마치 스키점프 출발 직전의 마음으로. 친구놈은 본인의 상태를 정비하고 온다며 화장실로 향합니다. 볼 것도 없는 폰을 의미없이 만지작 거립니다. 하도 많이 봐서 같은 게시물만 올라오는 SNS. 아 이 친구놈 언제오지. 나올 기미가 없어보입니다. 다시 고개를 내려 만지작 만지작 폰을 보려는데, 두근거리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선이 느껴진 곳은 역시나 그 여자 테이블. 이 날  이 시간에 여기서 눈을 맞추기로 한 것처럼, 부끄럽지만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뻗은 서로의 눈맞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지긋이 보겠습니다. '피식' 어? 웃은 건가? 나보고 웃는 건가? 아 렌즈 끼고 올 걸.. 근데 나는 왜 웃고있지? 그렇게 3분같은 3초 정도를, 30%정도의 미소만을 띤 채 서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가 봤는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오기도 전에 여자 테이블로 향합니다. 잘은 안들리는데.. 친구: "이제 같이 먹을 때 됐다. 이리로 오세요." 여자2: "네!?" 끝내 못이기는 척 이쪽 테이블로 넘어옵니다. 이 어색한 기류. 누군가 날려줘야 하는데.. 이건 내 담당이 아니다.  친구야 도와줘. 간단하게 서로에 대해 소개를 이어갑니다. 여자: "그냥 필라테스 가르치고 있어요." 아 필라테스 강사였구나. 어쩐지 흰 탑 위로도 보이는 깊은 곡선들의 균형이 완벽하더라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불과 20센치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여자. 거침없이 휙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벙긋 물어봅니다. 여자: "뭐해요 오빤? 그냥 오빠라고 할게요." 오빠? 아직 나이도 공개안했는데 오빠라고?. 나: "아 네네." 그건 그렇고 나더러 뭐하냐고 물었지. 뭐라고 대답하지. '시나리오 작가예요.' 아니야. '어떤 거 썼어요?' 등의 꼬리 물기 질문으로 곤란에 쳐할 수도 있어. 나: "그냥 어, 글써요." 여자: "우와 근데 막 야설 같은 거 쓸 것 같아." 10명 중 9명에게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 그놈의 '야설' 정말 야설이라도 써야하나 후. 덕분에 풀린 분위기. 벽이 허물고 이젠 더 과감히 숨김없이 웃으며 술잔을 비웁니다. 슬슬 취끼가 올라오는 자리. 떨어져 있기엔 썰렁한 초가을 날씨가 남녀 한쌍을 더 가까이 밀어줍니다. 어느새 서로 손에 깍지를 끼고있는 친구놈과 여자2. 너넨 어렸을 때, 서유럽에서 자랐니? **** 새벽 3시, 술집을 나옵니다. 알콜에 새벽 이슬이 더해져 흐느적거리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친구놈은 이미 알콜 만땅이 되었습니다. 옆에 꼭 붙어있는 여자2도 더 이상 술집은 갈 수 없다는 듯이 친구놈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있습니다. 고요 속에 이미 형성된 분홍빛 무드. 하지만 빠질 수 없는 여자들의 우정이 빛을 바랍니다. 여자: "야 정신차려. 이리와." 친구놈은 여자2의 어깨를 부여 잡고선 다른 한 손으로 볼을 어루만집니다. 여자2는 친구놈의 부드러운 촉감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붉어진 얼굴로 베시시 아이의 웃음를 짓습니다. 저 멀리서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소리도 없이 낮은 포복으로 택시 한대가 스윽 다가옵니다. 아니 기사님? 저희 손도 흔들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님: "안 탈 거예요?" 이태원 바닥에서 십수년 이상의 짬을 먹은 베테랑 기사님의 눈칫밥이겠지요. 친구놈은 자연스레 여자2를 택시 안쪽에 태웁니다. 곧바로 이어서 탑승하는 친구놈. 택시 안으로 머리를 구겨 넣기 직전 저를 쳐다보네요. 국정원 요원이 작전에 투입되기 전 서로를 바라보고 비장한 고갯짓과 함께 작전을 개시하는 것처럼. '끄덕' 하더니 문을 닫습니다. 문틈사이로 삐져나온 말이 들려옵니다. '신촌으로 가주..' 잘가라 친구야. 네 몫의 우정은 다했으니 멀리 멀리 영영 떠나가라. 덩그러니 남겨진 여자와 나는 처음 합석할 때처럼 또 다시 어색한 기류가 흐릅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이는 것 조차 어색한 게 내 자신에게도 느껴집니다. 어서 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머리야, 어서 이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단어를 생각해! 나: "카페 갈래?" 아, 이 병신아. 이 시간에 남녀 한쌍이 갈 수 있는 목적지는 단 하나 뿐이잖아. 난 그곳에서 오늘의 종지부를 찍고싶다고. 내가 뱉은 빵점짜리 질문에 여자의 얼굴에 잠시동안 물음표가 만개했습니다. 이어 4살 연하의 남자를 보는 듯한 모성애 담긴 눈빛을 하더군요. 여자: "오빠는 진짜 착한가보다. 난 착한 사람이 좋아." 멍청하다는 걸 돌려 말한건가? 아니야. 난 착하지 않다고. 내면엔 누구보다 진한 핑크빛 욕망이 있다고! 아 이게 아닌데.. 카페로 향하는 걸음엔 후회와 자책이 가득 실려 벌어지는 보폭은 불과 20cm 남짓. 터벅 터벅. 잠깐 멈춰 세우고 싶은데, 도무지 어려운 한글은 아무런 단어도 던져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등 떠밀려 온 것처럼, 카페 건물 1층에 도착합니다. 먼저 올라가는 여자.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나풀거리는 흰 테니스 치마. 올라가는 리듬에 맞춰 살랑살랑 보이는 속살이 나를 간지럽힙니다. 아 두 계단만 아래서 갈까. 카페 자동문이 열립니다. 새벽 3시를 훌쩍 넘었지만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인지 빈자리가 많진 않습니다. 나: "뭐 마실래?" 여자: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라메리카노 2잔을 시킨 뒤, 착석합니다. 여자는 먹지도 않는 커피를 들고 괜한 빨대만 콕콕 씹어댑니다. 빨대를 문 채, 입을 씰룩거리는 게 분명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여자: "오빠 술 다 깼어?" 나: "응 갑자기 멀쩡해졌어." 저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혹시 나와 같은 미래를 생각하고 우리의 남은 새벽을 야릇하게 이끌어줄 취기가 남아있냐는 뜻일까. 아니면 술도 다 깼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걸까. 여자: "괜찮으면 우리집 가서 한 잔 더 먹을래?" 나: "어?" 순간 모든 신경다발이 멈췄습니다. 모든 신경물질들이 급속도로 하체의 한 곳으로 몰집합니다.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현관에 들어설 때 부터의 동선을 미리 생각합니다. 여기서 허리를 감싸안고.. 여자의 목덜미 옆으로 내 얼굴을 닿을 듯 말 듯 아찔하게 포개고.. 절제된 호흡으로 여자의 귓가에 야릇한 호르몬을 보내고.. 갓난 아이를 보듬듯, 조심스레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마디마디 천천히 올라가 후크를.. 뚝. 나: "좋아. 지금 갈까?" 여자: "남은 것만 마시고 가자." 여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박동수가 오르내립니다. 어서 당장 쪽쪽 다 빨아먹어. 술집부터 화장실을 한번도 안간 탓인지 급해집니다. 내 상태도 정비가 필요한 타이밍. 화장실로 향합니다. 정성스레 만든 반 깐 머리를 방해하는 잔머리를 정리하고, 옷 매무새를 다듬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눈에만 보이는 잘생겨보이는 각도로  거울에 비친 나를 체크합니다. Ok.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갑니다. 어라? 맞은편 여화장실에서도 문이 열리네요? 시선을 낮춰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의 바디라인. 그리고 특유의 향수와 샴푸냄새의 섞임. 에이 설마 아니겠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 나온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을 본 순간, 식물인간이 된 듯 모든 사고가 불가능했어요. 네가 왜 여기있어? 지금 여기서 만나면 안되는 거잖아.
외로움을 달래드립니다. 7화
우리의 이별씬. 서윤이와 헤어지던 날. 애석하게도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들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그녀의 매마른 가슴에 단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결국, 등 뒤에 꽃을 숨긴 채 차마 건내주지 못했지만요. 그날은 유독 방 안에 서린 침묵이 두려웠습니다. 꽤나 오래 전부터 암묵적인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마침표가 오늘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눈치 없는 척 그녀를 맞이했고, 묘하게 지쳐보이는 서윤이의 눈동자는 자꾸만 우리의 끝을 앞당기는 것만 같아, 초조한 마음에 괜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지막이 나를 불렀어요.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는 듯 애처롭게. 불안을 예기한 듯 매초마다 감기는 눈꺼풀로 서윤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서윤이의 어깨 너머로 선반 위에 있는 투명한 꽃병이 보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 외로이 시들어 버린 꽃.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 너무 늦었구나, 내가. ...... 처음 서윤이이게 저 꽃을 선물했던 날이 생생해요. 무뚝뚝 하기만 했던 나에게 받은 꽃이라며 조심스레 유리병에 옮겨 담고, 뭐가 그리 애중한지 웃음꽃이 만개 했었는데.. 시들어 버린 꽃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알게되었죠. 우리에게 남은 생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때 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번져왔습니다. 더 시들기 전에 더 예쁜 꽃을 가져다 줄 걸. 그 꽃에 담긴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속으로 삼키지 말 걸. ...... 그렇게 둘은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숨죽였습니다. 암담한 침묵이 우리를 집어 삼킬 때 쯤, 이슬진 눈을 뒤로 하고, 밝게 웃으며 서윤이에게 말을 건냈어요. '이제 저 시든 꽃 좀 버려. 남은 향도 없겠다, 바보야.'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아는지, 서윤이의 연민 섞인 눈에서 닦을 새도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럼에도 난 웃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가득 차있는 서윤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으니까요. 그간 우리의 추억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정말 어찌나 소중했는지, 어찌나 사랑했는지. 끝이구나, 정말로. '그만 좀 울어, 자꾸 우니까 못 가겠잖아. 웃는 얼굴 좀 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등 뒤에 숨긴 작은 꽃송이는 전달되지 못한 채,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 부디 그때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그려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큰 심호흡을 내뱉고, 곧이어 배우의 연기가 시작됩니다. 지정해준 대사엔 별다른 지문이 없기 때문에 배우 스스로의 분석이 필요했을 겁니다. 서서히 붉어지는 눈가와 코끝. 숨죽인 가운데 첫 음을 뗍니다. "......" 숨죽여 속으로 삼키고 싶은 말을 억지로 토해내듯, 대사 마디마다 아픔이 느껴집니다. 슬픔을 딛고, 애써 침착하게 안녕을 고하는 듯 하지만 그 속에 애절한 포효가 들려옵니다. 끝끝내 터져버린 울음.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과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모든 대사가 뭉개집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사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의 감정이 모든 걸 대변했으니까요.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웃어야만 했죠. 속은 갈기 갈기 찢겨도, 그래야만 했어요.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여운이 살아있는 듯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한동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 이후로 또 다시 속전속결로 배우들이 떨어져 나가고, 고작 서너 명의 '지정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읊조리듯 애써 덤덤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 시린 한기가 가슴을 도려낸 듯, 울부 짖으며 표현하는 배우. 온전한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전하듯 표현하는 배우. 정말이지 모든 배우가 감명깊은 연기를 선보였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우리를 고스란히 그려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 생각보다 긴 시간 끝에 오디션이 끝났습니다. 얼추 추린 듯, 해당 배우들의 프로필을 단상에 올려놓습니다. 홍감독: "이렇게 셋 정도." 캐스팅 디렉터: " 저는 얘 말고, 마지막으로 했던 얘로 해서 셋이요." 홍감독: "김작가는 어때." 나: "예 뭐, 워낙 연기가 다들 훌륭하셔서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열띤 토론을 하는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저 불난 장에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이네요. 언제쯤 결정나려나, A4 용지 빈 곳에 의미없는 동그라미와 네모를 홀린 듯 그리고 있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웅얼웅얼 뭉개져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한 2,3여분 지난 거 같은데... "......." "저기, 김작가님?"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습니다. 잠시만 방금 날 부른 거 같은데. 홍감독: "김작가, 어이 김작가!!!" 나: "아, 네!" 홍감독: "장난하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 "아, 죄송합니다." 홍감독: "어때, 김작가는. 느낌 오는 얘 있어?" 나: "......" 원래 내가 자격지심이 있었나.. 이분들과 나의 격차를 알기에 작은 의견 하나 뱉는 것 조차 괜한 눈치가 보입니다. 홍감독: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봐." 그래, 시원하게 뱉자. 나: "어, 같은 이별이라도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통증은 다 다르잖아요. 오로지 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텐데, 그 고유의 색이 너무 연하지 않나.. 유심히 눈동자를 굴리며 되짚어 보는 두 감독. "글쎄,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봐요." 나: "마지막 그 순간에도 웃지..않았을까요. 피눈물이 흐를 만큼 괴로움과 비통함이 솟구치지만, 제가 만약 극 중 남자라면 그 위에 밝게 덧칠한 웃음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홍감독: "이유는?" 나: "글쎄요.. 두렵다고 할까요. 만남의 끝이 눈물에 젖어있다면 그간 남녀가 쌓아온 추억과 이야기 마저 슬픈 기억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아요. 실은 엄청나게 행복했으면서도요. 깊게 생각에 잠긴 듯한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멍하니 극 중 상황에 본인들을 대입하는 듯 합니다. '피식' 홍감독의 입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홍감독: "그래, 슬픔 위에 웃음을 덧칠한다라.." 나: "자신의 가엾음은 뒤로 할만큼, 온전하게 좋아한 여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기도 하고..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유심히 듣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립니다. '허허~' 홍감독: "너 왜 이제와서 이런 말하는 거야? 초장부터 말을 하던가, 사람 민망하게 말이야. 콱!" 나: "예? 아, 죄송합니다." 급작스레 성을 내시니 영문 모를 사과를 했지만, 곧 알게되었죠. 내 말이 비수가 되어, 그들이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따끔하게 찔렀다는 걸. 히히 통쾌해라. "......" 너무 크게 한방을 먹였나..? 갑자기 무거워진 오디션장.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기류. 머쓱함에 고개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홍감독은 어떤 고뇌를 하는지 팬을 휘리릭 휘리릭 돌리기만 반복합니다. 그러다 나를 휙 보고, 다시 고뇌에 빠집니다. 또 다시 나를 휙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뭐,뭐야? 왜 자꾸 날 쳐다보는 거지. 홍감독: "저기, 기,김작가. 저 단단한 사람이 왜 더듬으며 날 부르는 거지? 징조가 좋지않다. 나: "네?" 홍감독: "잠깐만 저 앞에 나가봐. 뭐, 의자랑 정리도 해야되니까.. 올라간 김에 저기 기준선에 한 번 서봐." 갑자기 왜요? 정말 왜요? 캐스팅 디렉터 역시 물음표가 만개한 표정으로 홍감독을 봅니다. 나: "예? 저긴 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손짓으로 휙휙 무대를 가르키며 대신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경직된 팔 다리로 벨런스를 잃은 채, 무대에 오릅니다. 무대에 선 나를 힐끔 힐끔 보더니 , 홍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는 귓속말로 대화를 나눕니다. 아니, 이 사람들 무슨 작당을 벌이려고. 홍감독: "저기 카메라 좀 한 번 봐봐." 나: "아니, 감독님 카메라는 또 왜..?" '똑똑' 반대편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끼이익'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이리저리 확인 후, 들어오는 조감독이 보입니다. 홍감독의 지시가 있었는 듯, 얇은 용지 몇장을 건내줍니다. 그리고 자리에 내가 없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무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조감독: "엥 김작가님, 왜 거기 계세요?" 홍감독: "조용히 혀라." 눈치 없는 철부지 조감독은, 홍감독의 암묵적인 협박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억양을 보아 저 말은 곧 '입 닥치고 나가' 일텐데. 조감독: "아, 알겠다. 김작가님이 직접 보여주려는 거구나! 역시 작가님,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건가." 뭐야, 내가 연극영화과 전공인 걸 어떻게 알지? 대학 졸업하고 어디 말해본 적이 없는데. 나: "예? 보여주긴 뭘..." 차마 말을 다 하기 전에 불쑥 홍감독이 튀어나옵니다. 홍감독: "뭐? 김작가, 연기 전공이라고? 맞아?"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리 듯,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 듯한 홍감독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나: "아,네. 맞긴 한데.." 조감독: "나무 엔터에 아는 후배가 있는데, 김작가님 대학 동기라고 하더라고요. 소문이 자자하셨다는데, 중대에 햄릿이라고." 대학 동기들은 졸업 후에 담 쌓고 지냈는데, 누구지. 그나저나 저 눈치없는 조감독은 실실 웃고 있네요. 내 흑역사를 감히.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 "감독님? 잘못된 정보인 것 같습니다. 절대 아니에요." 홍감독: "김작가, 머리 좀 까볼래?" 나: "머리는 또 왜.." 저 앞에 내 행동을 숨죽여 기다리는 조감독, 홍감독, 디렉터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 하, 끝내 소심하게 살짝 앞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 뭐야 저 알 수 없는 표정들은. 아, 집가고 싶다. 멍한 정적이 이어지다 눈칫밥 없는 조감독이 먼저 입을 엽니다. 조감독: "부럽다, 작가님." 캐스팅 디렉터: "잘 생겼네, 우리 작가님. 맑으면서도 울적한 묘한 분위기도 좋고" 조감독: "왜 연영과 졸업하고 배우 쪽으로 안가셨어요? 한자리는 꿰차셨을텐데. 아, 글재주가 더 좋았나?" 부끄럽다. 숨고싶다. 학창 시절에 아주 가끔 저런 말을 들으면, 호다닥 자리를 피하거나 주제를 돌리곤 했었는데. 여기서 도망갈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나: "아닙니다.. 저 이제 내려가도 되죠..?" 할 말이 남은 듯이 연달아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내는 홍감독. 홍감독: "음, 보여줘." 나: "뭘요?" 홍감독: "보여달라고, 딱 한번만." 엄청난 결의를 다진 듯 한 홍감독의 눈빛이 날 쏘아붙입니다. 나: "아니, 감독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홍감독: "그 이별 장면. 거두절미하고 딱 한 번만." 나: "아니요 감독님. 저 졸업하고 한 번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감도 다 잃었고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감독: "김작가, 내가 지금 골이 막 흔들려. 어떤 배우가 와도 이 영화의 감성을 못 담을 거 같아." 나: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홍감독과 나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집니다. 홍감독: "알겠어. 그럼 오디션 한 번 더 볼테니까, 참고 정도만 하게. 부탁 좀 하자. 혹시 또 모르지, 제작 참여 기회가 올 수도." 제법 달콤한 발언이지만.. 서윤이도 마음에 걸리고.. 모두가 나를 기다리는 이 압박감.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저들에게 사형 집행을 당한다. 나: "하.. 진짜 아닌데 이거." 홍감독: "30분 후에 보자고. 부담갖지 말고 준비 하고 있어." 자리를 비워주는 하이애나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멍하니 상황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을 떠올리자..
새마음 요양원 13 [제목없음 13편]
안녕하세요 빙글러님 ^^ 이번편은 좀 지루해질수 있는 내용 입니다. 기다려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새마음 요양원 13 [제목없음 13] “수정이를 만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 수연은 입술과 손이 떨리는 것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지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파리하게 질린 지현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 내 꿈에 사실… 오래전부터 수정이가 나왔어….. “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지현의 꿈에 오래전부터 수정이 등장했다니? “ 그게 무슨…. 무슨… 말이야? “ “ 수정이가 꿈에 나와서 살려달라고 했어!! 맨날 흙묻은 원피스 입고 나와서 죽은 사람처럼 내이름을 불렀어…. “ 그녀의 입에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엉엉 대며 울기 시작한 지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소리를 질렀다. “ 왜… 언제부터 … 도대체 … 왜 나한테 말을 안한거야 ? 언제부터야 ? “ 어깨를 거칠게 흔들고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차마 하지 못한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 수정이가 뭐라고 그랬어? 어떤 모습이였어? 자세하게 말 좀 해봐. 그만 울고!!! 울고싶은건 난데 왜 자꾸 니가 울어!!! “ 결국 지현을 흔들던 그녀의 가녀린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녀의 손은 마치 희망을 잃은것처럼 처연하게 길을 잃었다. 죄책감에서 시작한 고백이였는지. 아니면 꿈에서 깬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서 뱉어낸 잠꼬대같은 것이었는지 모른겠다. 다만 지현은 자꾸만 꿈에 나오는 수정이 아마도 자신을 찾아달라 하는것 같아 그 모습이 너무 무섭고 미안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두사람은 오랫동안 껴안았다. 처음엔 원망과 후회로 뒤섞인 울음 소리가 점점 서로를 위로하는 토닥임으로 바뀌었고 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결국 금연이라는 방 문구와 맞지않게 지현은 가방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에 불을 붙여 쓴 연기를 들이마시자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는 수연의 어깨를 토닥거리던 지현은 연기 사이로 조금씩 기억을 꺼내 들었다. “ 처음엔 수정인 줄 몰랐어. 그냥 어디서 본 사람인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더라고. 며칠째 꿈에서 나를 부르는 걸로 시작했지. 나는 모르는 길을 걷고 있었고 추웠어. 주위를 둘러보면 깜깜한 암흑 뿐이였고 오르막길같은 길을 걸었어. 이따금 이상한 생각이 들려고 할때 쯤 길 끝에 수정이가 나타났어. 처음 꿈을 꿀때는 그저 내 이름만 불렀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정이가 나를 잡으려고 했고 그때마다 나에게 살려달라고 했던거같아…. 그때는 니가 나에게 연락이 오기전이라 대수롭지 않았어. 그게 수정일거란 생각도 못했고 단순히 가위를 눌렸다고 생각했지. 이상하게 꿈에서 깨고나면 아침에는 항상 잊어버렸고 그러다 보니 널 만나도 그 꿈이 떠오르지 조차 않았던 거야. 그런데 최근에 수정이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꿈 내용이 더 선명해졌고 ….항상 반복되던 꿈이었는데 ……. 아까는 그 내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어. “ 조곤조곤하게 설명 하는 지현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수연은 그녀의 이야기를 자르지 않은채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 꿈 내용이 바뀌었다는 말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지현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 어떻게 바뀌었는데 ? “ “………. 말하면….. 니가 울지도 몰라 “ “ 이미 충분히…. 각오하고 있어. 더 숨기지말고 나한테 말해줘 “ “ …………….. 영민씨가 아까 운전을 할때 난 잠이 든거 같애. 조수석에서 잠깐 졸았다 생각하고 눈을 떴는데 운전석에는 영민씨가 아닌 왠 모르는 남자가 운전을 하고 있는거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모르게 그 남자가 몰고있는 운전대를 잡아 끌었어. 사고를 내서라도 차를 멈추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와중에 뒷좌석에 있던 놈이 내 목을 찔렀고 내 머리채를 잡아다 차문 쪽으로 던졌어. 차 유리에 부딪쳐서 고통스러워하고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데 ……. 유리에 비춰진 내모습이 ….. 내가 아니라 수정이였어……. “ “ 뭐???? “ “ 말했다시피 그전 꿈들은 그냥 단순히 나타나기만 했어.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나오지도 않았다구. 그런데 이번 꿈은 너무 생생해서 목에 찔러지는 느낌과 고통까지 생생했어. 내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 혹시 내가 수정이가 정말 … 죽는 순간을 본거라면……… 그런거라면………… “ “ 정말 그런거라면…………..넌 범인 얼굴도 봤다는 거잖아. “ “ !!!!! “ 무서움과 두려움때문에 미쳐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수정이 정말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자신이 본거라면 지현은 틀림없이 범인을 본 것이었다. “ 뒷좌석에도 있었다는 건…. 한놈이 아니라는 뜻인거지 ?” “ 맞아!!!! 뒷 좌석을 확인은 못했지만 한놈은 아니였어. “ “ 그 개새끼가…. 내 동생을 …… 해친거라는 거지 . 죽여버릴거야 …. “ “ 내가 진짜 본게 수정이가 죽는 순간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남자들을 보여준 이유는 분명히 있을거야. 수정이는 아마 나에게 뭘 말해주려고 했던거 같아. 그전에는 못 느꼈는데 분명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려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거 같아. “ 손끝으로 타오르는 담배재가 필터까지 다다르자 그녀의 발끝으로 떨어졌다. 순간적인 뜨거움에 지현이 발을 떼자 방바닥에 힘없이 그것이 흩어졌다. 수연의 눈은 더이상 애절함으로 가득차지 않았다. 초점없이 흐려져있었지만 그녀는 몇번이고 입술을 깨물며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 내일 다시 가보자 . 오늘은 못찾았지만 비가 그치고 다시 뒤져보면 단서가 나올거야. “ “ 응…. 꼭 찾아내고 말거야. 언니 노릇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꼭 찾아서 그 자식들 내손으로 진짜 죽여버릴거야. “ . 다음날이 되자 결국 수연은 일어나지 못했다. 비를 잔뜩 맞아서 그런것인지 그 전날 들었던 얘기가 충격적이여서 그런것인지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비가 조금 그쳐 조사를 나가려 했지만 수연은 밤새 고열에 시달려 결국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같이 비를 맞았던 지현도 미열이 조금 있었지만 같이 누워있을 수 없었다. 지난 밤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소리를 애써 참으며 밤새 눈물을 흘리던 수연의 통곡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지현은 수정의 실종이 본인의 탓인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게스트 하우스의 아침은 여행객들의 조식으로 1층이 다소 분주했다. 몇몇 사람들은 토스트를 입에 문 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고 몇몇은 모닝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 일어나셨어요? 친구분은 좀 어때요? “ 머리가 희끗하고 안경을 낀 다부진 체격의 사내는 누가 봐도 영민의 아버지였다. 그의 청남방 사이로 끼워진 명찰에는 host 권상혁 이라고 적혀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상대적으로 영민과 차이나 보였지만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누가봐도 부자의 모습이였다. “ 아 어제 제대로 인사를 못드렸네요. 수연이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취재를 갈거라서 혹시 중간에 수연이 좀 들여다봐주실수 있을까여? “ “ 물론 그럴려고 했어요. 오늘 오후에도 잠 못깨시면 응급실이라도 데려가봐야할거같아요. 몸살 같기는 한데 혹시 모르잖아요 “ “ 네… 혹시 그때 까지도 못깨어나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 “ 그럴게요. 아 영민이는 벌써 챙겨서 밖에 있을거에요. 그리고 영민이한테 토스트랑 커피 챙겨 보냈으니 가는길에 좀 드세요. 아침도 못드시고 나가시는거 같아서 미리 챙겼습니다. “ “ 정말 감사해요. 이렇게 챙겨주시고… “ “ 뭘요. 우리 아들놈 잘 좀 부탁드립니다. “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선 지현은 차를 타기 전에 담배 한대를 태워야 겠다고 생각하고 냄새가 풍기지않게 건물 밖으로 나갔다. 외국인 몇명은 담배를 피고 벌써 일어나고 있었고 지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순간 가방에서 들어보지 못한 진동이 울리고 있어 한참을 뒤져 꺼내보니 윤기자가 준 대포폰이 울리고 있었다. “ 어. 윤기자. 별일없냐? “ “ 야. 넌 가놓고 전화한통 없냐 “ “ 아 어제 비좀 맞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제주도 날씨가 왜이렇게 오락가락 하냐 . 넌 뭐좀 알아낸거 있냐? 우리집 뒤집인놈은 찾았어? “ “ 정체는 못찾았지만 내가 누구냐. cctv다 뒤져서 단서는 찾았지. 일단 듣고 놀라지마라. 너네집 뒤진놈 우리집 뒤진놈 한놈이 아니였어. 우리집 뒤진놈은 아직 못찾았는데 너네집 뒤진놈은 내가 찾았다 이거 아니냐. “ “ 뭐???? 어떤놈인데 ? “ “ 다행히 너네 복도 cctv가 있어서 찾았어. 놀라지마라… 그놈 너 옆집 사는 놈이였어 “ “ 뭐라고?????? 내 옆집 사람이라고 ????????? “ “ 어…. 너 옆집사람 누군지 만난적 있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 봤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옆집이라니.... “ 아….아니……. 그게 무슨소리야......... 우리집 옆집…….. 빈집이야….. “ 다음편 이어집니다. [새마음 요양원 14편] https://www.vingle.net/posts/2679869
제목미정
1.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불빛 마저 희미해지는 곳을 걷고 있다. 지금 몇시쯤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계를 들여다 보니 아날로그 싸구려 가죽시계가 깨져 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고 아버지께서 사주신 낡은 가죽 시계였다. 이제는 단종이 되서 건전지를 갈아끼우는일 조차 쉽지 않은데 시계 유리가 깨져 있다. ‘ 시계유리만 교체해주는 곳이 있었던가?’ 결국 정확하게 몇시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길을 걷는다. 와본 기억이 없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낯이 익다. 창문에 붙여진 찢어진 창호지, 철로 된 대문위에 붙여진 껌 씹고 나서 붙이는 스티커까지... 어디서 보았던가? 여름이 다가왔는데도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워 대충 걸치고 왔던 자켓을 여미어 본다. 길을 걷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그래. 분명 그녀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시계를 보려고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저 여자는 없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서있다.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람이 길 끝에 서 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도 그 사람의 얼굴은 확인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 없는 것 같았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자리에 서있던 사람은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슬픈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처연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확인해야한다. 머리가 지끈거려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매일 온 것 같았던 이곳은 매일 밤 그녀를 괴롭히던 꿈속이었다는 것을. 지금 꿈속에서 괴롭히는 이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또 다시 손을 뻗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기필고. ‘ 너 대체 누구니? ’ 짜증섞인 말투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는 순간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언니.... ” 땀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해보니 매일 그렇 듯 시간은 새벽 4시 26분이었다.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술을 깨지 못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시계 옆에 놓여진 두통약 한 개와 물을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임을 깨달았다. 벌써 일주일째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고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꿈에서 깬다. 이상하게 그여자는 지현과 스친 적이 있는것처럼 낯이 익었고 막상 생각을 해보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를 정리했다. “ 다시 자기는 틀렸네 ” 언제나처럼 자켓 하나를 두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개와 라이터를 챙기고 베란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무신하게 불을 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처음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유일한 낭만이라며 구매했던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맥주 한잔 대신 수북히 쌓인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에 불을 부치며 쓰게 뱉는 담배연기가 하얗게 번진다. 그 때 손이 시려워 넣은 왼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어제 충전해야지 하면서 챙기지 못했던 핸드폰이었다. “ 아,,, 충전해야 했는데 배터리가 남았던가 ? ” 눈을 찌푸리며 켜본 핸드폰 액정에는 배터리 12% 절전모드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알림표시. 부재중 3통, 메시지 1통 막상 이런 부재중 연락이 요즘 들어 무서울법도 한데 일단 확인해 보았다.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모두 고등학교 동창 수연의 번호였다. 혹시나 하고 확인 한 메시지에도 역시 그녀의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지현아 일어나면 전화좀 줘 - 낯선 그녀의 연락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 억지로 끌려간 고등학교 동창모임때 번호를 교환했었지만, 지현과 수연은 친한편이 아니였다.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연락하는 사이는 더욱 아니였다. 다만 으레 그렇듯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공간의 훈훈한 분위기를 채워보고자 멋쩍게 교환한 번호였다. 동창회 이후로 잘 들어갔냐는 흔한 안부인사도 없었던 사이에 갑자기 전화라니. 더군다나 일어나면 전화를 달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잘못보냈나 생각하는 의심조차 들수 없게 했다. 낯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신을 기다리게 한다면, 떠나보내라
관계나 감정은 미루어질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자신의 욕망에 당신을 끼워 맞추려 한다면, 허락하지 말아라.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애정과 감사를 구하고 기다리며 사랑을 구걸해야 한다면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누군가 당신을 기다리게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떠나 보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한다면, 떠나보내라 왜 그럴까? 왜냐하면 사랑은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미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기심이 조만간 감사와 애정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에 빠진다면, 당신은 어떤 날은 사랑하고 어떤 날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불행의 게임에서 자신의 감정적인 행복을 걸어 버리고, 다른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서 그 행복을 기다리게 만든다. 당연히 가끔은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우선 순위를 돌아보고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우선 순위가 되기를 선택하고,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자기 자신을 우선 순위에 두기로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내면의 세계가 자신의 열망과 다른 사람의 기대 사이에서 싸우는 전쟁터로 변한다면, 당신은 깊은 감정적인 구멍에 빠지고 말 것이다. 당신은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고 당신의 목소리도 들려질 자격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그 영화는 언제나 자기애의 배경을 깔고 있어야 한다. 이는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부터 떨어트려 생각한 결과다. 당신이 “아니” 라고 말하고 싶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충분해” 라고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열망이 타협되기 때문에 그 관계 내에서 더 이상 맞추고 싶지 않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 당신 자신을 스스로로부터 구해라. 당신을 기다리게 하는 거짓된 약속에 속지 말아라. 당신의 열망과 권리가 위험하다면, 그 어떤 것도 그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당신은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당신 자신의 선택이다. 최고의 모험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선택하는 것은 당신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결정이다. 당신을 돕기 위해, 우리는 이 과정을 항상 기억해야 할 다양한 요점으로 정리해 보았다. 아래에 몇 가지 주요점이 있다. 주변에 당신의 삶을 빈약하지 않고 풍족하게 하는 사람을 두어라. 당신에게 빛을 주고, 당신을 움직이고,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시간과 행복을 쏟을 가치가 있는 이들이다. 모든 사람은 고통을 더 늘리는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감정적인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사람들 = 진정한 관계 우리는 한 관계를 다른 관계에 복사해서 붙여 넣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불안정함과 감정적인 공허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단조로운 관계를 따른다. 그러나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나 우리의 필요에 딱 들어맞지는 않고,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들어맞지 않는다. 두려움의 영향에 안녕을 고하는 것은 의미 있는 관계를 찾을 당신의 권리를 되찾도록 돕는다. 자신의 장점을 강화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도록 돕는다 행복해지려면 당신은 자신의 안으로 여행을 떠나 기본적인 성격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누군가나 무언가가 당신을 조종하고 발전을 막게 내버려 둔다면, 당신은 자신의 장점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자신을 깊은 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며, 스스로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것의 균형을 맞춘다면, 변화는 좀 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단지 필요하거나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좋다. 눈을 뜨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이 이를 이룰 수 있는 열쇠이다. # 관계 # 선택 # 애정
제목없음 11
안녕하세요 빙글러님들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적ㅇㅓ보이지만 많은걸로.. ㅎㅎ) 다음편을 가져왔습니다. 곧 추석이라서 빠르게 업로드 해야겠습니다. 추석때 해야할 노동이 많으므로...또르르..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ㄴㅣ다. ====================================================== 제목없음 11 “ 일단 차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근처를 뒤지는건 무리에요 “ 그들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져갔다. 구름이 어느새 내려앉아 주변은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워졌고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곳에서 차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 이 주변 지리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서 차를 찾는게 쉬울거같아요. 저도 지금 네비로 여기를 처음와봐서 주변지리를 모르거든요. 사실 두분이 말씀하기 전까지 이쪽에 요양원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습니다. “ 그나마 제주도에 사는 권기자에게 기대를 걸어보려 했지만 주변 지리를 모르는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인듯 했다. “ 혹시 두분 아까 오다가 봤던 야영장에다가 한번 물어보는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 맞아. 그쪽밖에 들어오는 길이 없다면 그쪽에서 애들을 봤던 차를 봤던 하지 않았을까요? “ “ 맞아요. 야영장 주인을 한번 만나보는게 좋겠어요. “ “ 건물내부를 찾아보는건 비가 그치면 다시 오는걸로 하죠. 시야가 너무 어두워져서 밝을때 들어오는게 좋을거 같아요. “ 지현은 일단 잔뜩 젖어서 머리가 엉겨붙은 수연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 수연아 일단 비도 너무 많이 오니까 야영장으로 가보자 . 거기 한번 물어보면 뭔가 얘기해주실지도 몰라. “ “ 그러자. “ 건물 한 귀퉁이에 놓여진 새마음요양원 표지판을 뒤로 한 채 그들은 다시 풀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차를 찾을수 있을 거 같진 않았지만 일단 수연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야영장 주인과 대화를 해보는것이 좋을 듯 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랜턴 하나에 의지한채 길지 않은 길을 빠져나왔다. 벌써 세사람은 쓰고온 우산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잔뜩 젖었고 한여름의 장마라도 시작된 듯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야영장 관리소 : 부재시 연락바람 010******** 정진규] 허술하게 세워진 표지판에 야영장이라고 적힌걸 보니 이곳이 맞는 듯 했다. 관리소는 간이로 만들어진 곳 같았고 그 뒤에는 좀 더 커다란 가정집이 있었다. “ 불이 꺼져있는거 같은데 전화를 해봐야 할까요? “ 지현은 우산을 잡은 손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불이꺼진 곳의 문을 함부로 열수도 없었다. ‘똑똑똑’ “ 저기요 !!! 사람 없어요 ? “ 머뭇거리던 틈 사이로 수연은 관리소의 문을 두드렸다. ‘ 쾅쾅쾅 ‘ “ 저기요!!! 누구 없어요? !!!! “ 문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힘차게 내리는 빗소리만 들려올뿐. 우산에 의지한채 셋은 갈피를 잡지 못해 그저 멍하게 서있었다. 대꾸도 없는 문안이 짜증이 났는지 기어이 지현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발로 관리소 문을 차버렸다. ‘퍽 ! ‘ “ 사람 없냐구요 !!! “ “ 누구요 . 누군데 남의 집 문을 발로 참수꽈 “ 빗소리에 시끄러워진 그 공기를 깨며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는 매우 키가 컸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다. 까칠하게 올라온 수염은 며칠 씻지 않은것 처럼 꾀죄죄해 보였고 그의 손에는 비에 흠뻑하게 젖은 뗄깜이 묶여있었다. 머리는 빡빡하게 스포츠 머리를 했고 눈은 부리부리해서 첫인상 치고는 쎄다는 느낌을 받았다. 움푹 패인 눈에 위압감이 느껴진 그들은 누가 먼저 말을 건네야할지 각자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제일 다급했던 수연이 말을 걸었다. “ 저기요. 여기 관리소장님 되세요? “ “ 내가 여기 관리소장 이우다. 무슨 일이꽈 “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에 관리소장이라고 하는 부분은 알아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의 표정을 보고 수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몇가지 질문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 “ 비가 쏟아졈시난 일단 들어오십서 “ 무뚝뚝한 말투로 들어오라며 거구의 남자는 문을 열쇠로 열어주었다. 내부는 좁을 거라 생각한것과 달리 그곳은 그 가정집으로 이어지는 입구 같은 곳이었다. 아마 사무실 겸 입구로 사용하시는것 같았다. 가정집 문까지 열자 그 안에서 넓직하고 커다란 내부가 펼쳐졌다. 값비싸 보이는 가죽 쇼파가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영화에서나 보던 벽난로를 보고 지현은 신기해했다. “ 여기 앉으십서. “ “ 감사합니다. “ “ 딱보난 육지사람 닮은디. 무슨 일인지 … “ “ 아 안녕하세요. 제주 향기 권영민 기자입니다. “ 갑자기 말을 끊고 권영민이 끼어들어 대답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지현이 영민을 쳐다보자 영민은 눈을 찡긋하며 빠져있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 했다. “ 아… 제주도 사람이구나. 육지사람인줄 알아신디 … “ “ 취재중에는 저희도 사투리 많이 안씁니다. 어르신 . “ “ 지역신문이면 도와줘사쥬. 무슨 일이꽈 “. “ 실종된 사람들을 찾고있는데요. 혹시 여기 차세워서 위로 올라가거나 뭐 돌아다니는 아이들 본적 있으세요? “ “ 아이들은 여기 오질 못하쥬게. “ “ 아니 그정도 어린애들 말고 대학생 또래 정도 되보이는 아이들 마씸 ….” “ 흠….. 애들은 못본거 닮은디…. …. “ “ 혹시 그러면 낯선 차를 보신 적은 없으세요 ? 아마 렌트카였을텐데 “ 내용을 바꿔서 질문을 하자 관리소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뭔가 생각이 날듯 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 했다. “ 여기는 죄다 렌트카인디 내 차 찾는게 빨라지 아 그런데 예전에 우리 손님 차 아닌 차는 봤던거 닮은디…… “ “ 손님 차 아닌건 어떻게 아셨어요 ? “ “ 우리 야영장 쓰는 사람들은 다 들어올때 차남바를 적게 되있어요. 그래야 내가 주차장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그런데 가끔 야영장 주차장 옆이나 바깥에 세우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바깥까지 한번 돌아보는데 우리 주차장 입구옆에 누가 차를 세웠더라고. 내가 목록을 보면서 체크를 하는데 그 목록에는 그 차번호가 없었어요. 그래서 딴 놈이 우리 주차장 근처에 차를 세웠네 하면서 욕을 한번했지. 거기다가 세워버리면 우리 손님들이 차를 빼기가 힘들다고 “ “아,,, 혹시 번호는 기억하세요 ?” “ 내가 차 남바를 적긴 해신디.. 나중에 안 치우면 불법주차로 신고전화하잰 남바 적어놓긴 했수다. 잠깐 기다려봅서. “ 관리소장은 일어나 어딘가 서랍을 뒤지더니 주차목록 이라고 커다란 견출지가 붙은 철 한개를 가져와 앉았다. 목에 걸린 돋보기를 쓰며 여기저기 넘기던 관리소장은 표시해둔 곳을 찾아 그들에게 건네 보였다. “ 여기있네요. 6월 22일 토요일에 . 허. 4018 검정색 그랜저 차. 이때가 어린애들 데리고온 손님이 많아서 우리가 주차장이 꽉찼었거든요. 그래서 꼭 전화할라고 했었는데 너무 바빠서 나중에 있는지 확인을 못했어. “ “ 렌트카 어디 였는지는 모르시져? “ “ 나가 거기까지 어떵알아. 그냥 남바만 적어놔신디 “ 옆을 살짝 보자 지현은 몰래 대화내용을 녹음 중인걸로 보였고 수연은 수첩에다가 차 번호를 적어놓았다. 투덜거리던 관리소장은 바깥에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흠칫하며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였다. “ 비가 영 하영 내리는데 다시 어떵 갈거라 . 좀 그치면 가던가. 여기 커피 이시난 알앙 타마시고. 난 건물에 물새는데 이신디 봐야하니까 뭐 물어볼거 이시믄 아까 거기 번호로 전화하던가 합서. “ 무뚝뚝하게 내뱉던 관리소장은 비가 새는 곳을 찾아야 한다며 고무 대야를 들고 사라졌다. 아마 알아서 가던가 말던가 하라는 뜻 같았다. “ 뭐라고 하시는거에요 ? “ 지현은 사투리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말에 당황해했지만 이내 영민이 그 뜻을 설명해주었다 . “ 커피 마시고 비 그치면 가라하시네요. 소장님은 비새는데 있나 보러 가셔야한대요. 혹시 물어볼거 있으면 문에 붙어진 번호로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 “ 혹시모르니 저장해놔야겠네요. 관리소장 이름이 정진규씨 맞죠? “ “아깐 말잘라서 미안해요. 제주도 분들이 육지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면 대답을 잘 안해주시거든요… 좀 폐쇄적인 곳이라… “ “ 이해해요. 다른 지역도 그러는걸요 . 영민씨 덕분에 그래도 수월하게 대화 했어요.“ 관리소장의 말을 듣고 나니 더 의문투성이가 되었다. 사라진 유심. 차로 이곳을 왔는데 지금은 어디있는지 알수가 없다. 아마 야영장 곁에 차를 세우고 요양원까지 올라간건 맞는거 같은데 그 뒤에 행방이 묘연하니… 어디에 있는거니 수정아… 12편 이어집ㄴ니다 https://vin.gl/p/2672350?asrc=copylink
[네이트판] 잘 때도 브라 벗지 말라는 예비신랑
모바일로 쓰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스물 중반이구요 제 예랑이는 30살입니다. 올 해 말 결혼 예정중이예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오늘 통화하던 도중 잘 때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자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애초에 브래지어 착용할때 밖에 외출시나 손님이 왔을때만 착용하고 집에서 있을땐 벗고 있고 당연히 잘땐 벗고 자거든요. 그런데 그걸 알고 있는 예랑이가 저번부터 자꾸 하고 자라는 겁니다. 저는 소화능력이 안좋아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소화가 더 안되고 갑갑해서 왠만하면 집에 있을때 만이라도 벗고 있고 싶거든요. 그런데 예랑이는 그거 안 입으면 가슴 쳐진다, 그건 가슴 쳐지지 말라고 만든거 아니냐 이러면서 24시간 내내 입으라고 하네요. 그래서 예랑이한테 내 생각엔 브래지어를 만든 이유는 옷을 입을때 브래지어를 착용함으로 인해 옷태가 살아나기 때문이고 그런 미용 면이나 평소 생활때 충격을 좀 덜 받게 하려고 만든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sbs에서 브래지어에 대한 다큐를 방영한적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논 블로그를 찾아 읽어주기 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생각이 잘못된거고 오히려 좋을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주면서요. 그랬더니 그렇게 안좋은걸 왜 다들 하고 다니냐 그럼 너도 평소에도 벗고 다녀라 이런 막말을 하는겁니다... 예랑이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게 좋다고 말하는 의사를 봤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자긴 안해봐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잖아? 이랬더니 자기는 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고집 세다고 그러고 여러분 정말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그리고 예랑이 말로는 안하고 자는 사람보다 하고 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하고 주무시나요..? 제가 이상하고 무지한 건가요? 아 참고로 그래, 하고 잘게라고 거짓말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게 결혼하면 같이 자야 하잖아요 매일 밤... 절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요...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ㅠㅠ 헉...댓이 이렇게 많이 달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댓글에서 다 저의 입장을 알아주시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사실 저도 알고 있어요 예랑이가 고집이 세다는거.. 저런 경우가 몇개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본인이 싫어하는 음식을 제가 먹으면 싫어 한다던가(피자, 떡볶이) 자기가 sns 안한다고 저 하는것도 싫어 한다던가... 오래 만났고 또 아빠처럼 기댈 수 있다는 느낌에 헤어짐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실천하지 못했네요. 한번 더 얘기해보고 저희 둘의 미래를 결정 해야 겠어요. 많은 조언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 뭔 아빠처럼 기댈수 있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지금이야 브라정도지 나중에 어디까지 간섭할 줄 알고 저런 사람하고도 한번 더 얘기해본다고 하는 게 신기함 ㅇㅇ 판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