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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 박완서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언젠가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해 왔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 중 읽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살짝 미뤄놓은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민음사 패밀리데이 때 쏜살 문고 시리즈 중 박완서의 단편집이 있는 걸 발견해서 바로 구매했다. 다른 책들을 읽는 사이 하루 정도 짬을 내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저번 주말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는 말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말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보고 나니 충분히 현실성 있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 잘 쓴다 하고. 읽는 도중에 그런 말을 한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두 시간 만에 앉은자리에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전부 읽어버렸다. 박완서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조금 과장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깨지는 데는 처음 몇 페이지면 충분했다.

이 책에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차례로 <이별의 김포공항>, <지렁이 울음소리>, <카메라와 워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인데 네 편 모두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그중에 더 좋았던 걸 고르라면 <이별의 김포공항>과 <지렁이 울음소리>를 꼽겠다.

<이별의 김포공항>은 미국에 있는 막내딸의 집으로 가게 된 할머니가 손녀와 나들이를 다녀온 뒤 한국을 떠나는 내용이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온갖 것들이 담겨있다. 사대주의, 그로부터 기인한 한국에 대한 멸시와 연민과 동정, 한국을 떠난 이들과 한국에 남은 이들 간의 관계, 문화의 우열, 노인과 젊은이의 심리에 대한 묘사 등등. 이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서 이 단편을 몇 줄로 요약하는 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소설의 초반부에 손녀가 삼촌과 할머니와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는 해외로 나가려는 삼촌이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있다고 구박하는 아빠와 엄마를 향해 소리치고 아빠는 삼촌의 미국에 가겠다는 헛짓거리에 대해 화를 내며 엄마는 아빠를 거들어 할머니와 삼촌을 향해 비아냥대고 삼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분노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연극 무대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이어서 이것이 박완서의 소설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마지막에 노인이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자신이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연극과도 같은 네 인물의 대사와 행동,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손녀의 시선이었다.

<지렁이 울음소리>는 세상이 정해놓은 행복의 틀에 딱 맞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분명히 행복한 상황이 맞는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 자신의 국어 선생님이었던 남자를 만나 과거의 그의 모습(체제에 반항하고 자유를 부르짖는)을 찾아 대리 만족을 느끼려 하지만 그가 이미 그때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것만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자신이 과거의 국어 선생과 불륜이 아니었음에도 불륜으로 알려져 자신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내쳐지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이 남편의 귀에 들어갔다고 착각한 순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물밀듯이 몰려들게 될 자유를 두려워한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깊게 스며들어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사회가 정해준 삶을 의문 없이 살아가다가 문득 그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고, 정처 없이 그 속을 방황하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또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무한한 자유가 두려워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카뮈와 사르트르가 생각나게 한다.

이 단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첫 시작이었다. 주인공은 남편이 군것질하는 모습, 단 것을 맛있어하는 모습을 연속극을 보는 모습에 빗대어 남편이 연속극을 맛있어하더라고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단 맛에, 연속극의 자극에 몸을 맡기는 것은 두뇌나 심장이 전연 가담하지 않은 즐거움이기에 둘에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온 부빌의 시민들이 딱 그렇다. 자신이 이런 삶을 사는 이유, 자신이 단 것과 연속극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즐거움만 느낄 뿐인 인간은 생의 부조리에 걸려 넘어질 일이 없다. 당연함이라는 허상을 뛰어넘어 이것이 왜 맛있는가, 이것이 왜 즐거운가를 생각할 수 있는 인간만이 부조리라는 돌조각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 단편이 해외의 명단편들과도 견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아직 박완서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110 페이지 가량 되는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고 실린 단편들의 수준도 매우 높다. 본격적인 박완서의 장편들로 들어가기 전에 읽으면 좋은 완벽한 입문서다.

소설 속 한 문장

그는 그냥 맛있어하고, 맛있음을 그냥 즐겼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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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땡깁니다!😳😀
@assgor900 11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책이라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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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조금 예민하고 크게 슬프다 [5분영화겉핥기]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시험기간이 무려 3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막학기라 그런지 별로 의욕도 없는데 고역입니다. 시간이 남길래 과제를 하려 했으나발길은 역시나 영화관을 향하더군요. 왜냐하면 오늘은 화제작이 개봉을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영화는 소설원작 '82년생 김지영'입니다. 모두가 사실 리뷰를 쓰기 꺼려하더군요. 특히 저같이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나 후기를 주로 작성하는 분들은요. 그 이유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현상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니까요. 저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영화만 보고솔직하게 느낀점을 남겨보려 합니다. *본 글은 개인의 솔직한 견해와 의견일 뿐입니다. 영화는 영화로만 일단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는 그냥 작품 자체로서 감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현상황도 때론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지만 배우가 어쨌다, 이 부분이 어쨌다 미시적인 부분을 크게 부풀리는 해석은 확실히 지양했으면 합니다. 실제로 지금 영화 개봉 1일차임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평가글들은 폭발적입니다. 아직 10만명도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응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합니다. 영화도 마치 지금 현 상태를 반영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들의 생각을 말하고 떠드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 하며, 행여나 상처를 줄 말들은 들리지 않게 해야죠. 모두의 이야기 영화는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본 영화가 어떠한 갈등의 촉매제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이래서 그랬구나, 역시 누구는 이렇구나 하는 무분별한 일반화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싸우려고 영화를 보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집안일을 여성인 김지영이 하고 있습니다. 일을 포기한 것도 김지영입니다. 육아를 대부분 맡아하는 것도 김지영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성일 수도 있고 남편인 대현의 일상일 수도 있는 얘기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입니다.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못 쓰게 하는 직장과 아내에게 일을 편중시키는 가족문화, 남아를 선호하는 전통사고의 잔존은 '성'이라는 문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차이는 있지만 가지고 있는 마음의 고통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조금 예민하고 공격적이다 소설에 비해서는 덜 자극적이라는 평이 많더군요. 원작을 경험하지 못해 비교는 안 됩니다만 저에게는 영화도 날카로웠습니다. 굳이 이런 사건을 보여줬어야 했나? 굳이 저런 멘트까지 나왔어야 했나? 싶더군요. 이렇게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스스로에게도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 전체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상처가 주를 이루며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은 대부분은 생각이 없고 무례합니다. 반면에 여성은 대부분 피해자고 희생적입니다. 여성들끼리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시어머니와 관련한 고부갈등이 전부고 남성의 고통이 나오는 부분은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부분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여성이 남성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감동적이나 전반적으로 깔린 의식은 조금 예민하고 남성에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묵직하게 슬프다 눈물이 안 날수가 없더군요. 분명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생을 바친 미숙이라는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힘듭니다. 그런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 삶이기에 헤아리기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느꼈을 고통과 딸에게는 전해주고 싶지 않은 아픔, 그리고 잘 살았으면 하는 걱정이 하나가 되어 커다란 슬픔이 됩니다. 미숙을 연기한 김미경 배우님은 종합적인 감정을 표정 하나에 다 실었습니다. 응축된 감정에 동요하지 않기란 매우 힘듭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눈물 닦느라요) 개인의 잘못은 올바르게 돌아가길 전체적인 주제는 김지영의 대사에서 나옵니다. "절 아세요?" 이 한 마디입니다. 우리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나 쉽게 모르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오히려 친하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꾸만 과하게 알려고 파고들죠.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챙길 사람들만 신경쓰고 살기에도 바쁘고 힘든데 왜 굳이 남들까지 신경쓰고 살아야할까요? 그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나요, 아니면 그럴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본인의 삶을 남들이 알기 힘든 것처럼, 남들의 삶도 본인이 알기 힘듦을 아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누군가의 잘못된 언행이 있다면 그 본인에게 올바르게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오발탄처럼 아무에게나 흩날리지 말고 말이죠. 당당하게 맞서다 어딘가에 구속되고 억압받는 삶을 산 김지영은 마침내 온몸을 내리쬐는 태양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영화는 듣고만 있지 말고, 능동적으로 헤쳐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맞서라고 얘기합니다. 기죽지 말고 슬퍼하지만 말고 화내고 당차게 할 말은 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의외로 후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질지 모릅니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게 당연한 반응이니까요. 단, 본인 당사자의 억울함에 한해서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대변인도 아닐뿐더러 세상물정을 다 아는 도사도 아니고 사람의 감정을 통달한 독심술사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가 경험한 것에 한해 마음껏 대답합시다. 한 마디로 모두에게 용기를 주고 모두의 슬픔을 이해하는 영화였습니다. 쿠키영상은 없구요, 관객수는 100~200만 예상합니다! 이상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솔직한 후기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숲(번역판 제목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최근 일이 바빠 초반부 빼고는 얼마 읽지 못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오늘 도서관에 찾아가 세 시간을 투자해 모두 읽어버렸다. 생각보다 우울하고 생각보다 기묘했으며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럽고 아슬아슬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는 늘 셋이 함께 다니곤 했다. 그러던 중 셋의 중심이었던 기즈키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와타나베는 그 이후 도망치듯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도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와타나베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다시 나오코를 만나게 되고 나오코에 대해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나오코는 기즈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결국 그녀는 치료를 위해 와타나베와 연락을 끊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나오코가 뒤늦게 보낸 편지로 그녀가 "아미 사"라는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와타나베는 그녀를 찾아가 묻어두었던 기즈키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는 기즈키의 죽음 이후 모두와 벽을 치고 지내던 와타나베의 삶 속에 뛰어 들어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생기 넘치고 당당한 미도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던 와타나베는 그녀의 환한 모습 이면에 있는 아픔을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며 점점 더 미도리와 깊은 관계가 되어간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나오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두 여성 사이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스무살을 보낸다. 큰 줄거리의 진행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키워드를 말하자면 죽음, 사랑, 섹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이렇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네 키워드를 가지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죽음 와타나베와 나오코 두 사람 모두 과거 자신들의 중심이었던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는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와타나베에게 기즈키와 나오코는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기즈키와 나오코가 자신의 친구이자 곧 세계인 것이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와타나베에게는 세계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 와타나베는 죽음이 이미 자신의 삶의 일부에 스며들어 있다고 느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고 느끼게 된 그 순간이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이 뒤바뀌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나오코 또한 영원히 기즈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 뒤틀린 상태로 불안한 삶을 살다 이른 나이에 자살로 숨을 거둔다. 그만큼 죽음이란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2. 섹스와 사랑 위에서 말했든 와타나베는 죽음이 언제 고개를 쳐들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그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나가사와라는 같은 기숙사 상급생과 함께 신주쿠 거리를 거닐며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와 섹스를 함으로써 사람의 온기를 느끼려 한다. 그러나 늘 다음날 아침이면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 필자에게 그러한 와타나베의 행동은 죽음이 스며들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삶에 무언가 의미를 남기기 위해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육체적인 관계 중 가장 깊은 관계인 섹스를 갈구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와타나베는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 그녀의 삶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수 밖에. 그렇게 성욕과 섹스, 고독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결국 나오코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그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있어 그녀가, 그녀의 삶에 있어 자신이 이미 그 무엇보다 커다란 의미로 남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대상인 나오코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와타나베가 단 한번도 여성과 관계를 갖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와타나베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짧은 삶의 진정한 의미는 섹스(육체적 쾌락)가 아닌 사랑(정신적 가치)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3.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개인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라는 키워드가 이 소설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오코가 치료를 받는 요양원은 무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벗삼아 생활하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와타나베는 그 곳에서 머무는 3일 동안 스태프와 환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사인 미야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연설을 맥락도 없이 늘어놓는 등 사회성이 부족하고 전에 있던 기노시타라는 경리는 노이로제로 자살을 시도했었으며 도쿠시마라는 전 간호사는 알코올 중독이 심해서 잘렸다. 와타나베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환자와 스태프를 전부 바꿔도 될 정도네요." 그러한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던 레이코씨는"우리에게도 아주 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그건 우리는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거지." 라는 말을 던진다. 가만히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 나가사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술집에서 만난 여성들과 원나잇을 즐기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하나 없고 스스로 금욕주의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여자친구인 하쓰미는 돈 많은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인 좋은 집안의 고상한 성품을 가진 아가씨이면서 남자친구인 나가사와가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다니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인한다. 와타나베의 룸메이트였던 특공대는 행동 하나만 봐도 흔히 말하는 정상은 아니고 등장하는 다른 단역들도 마찬가지로 극히 평범한 정상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 세계와 요양원 속 세계를 비교하던 와타나베는 요양원에서 돌아온 날 저녁, 신주쿠의 레코드 가게에 알바를 하러 간다. 그는 가게 밖으로 비치는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광경에 혼란스러워 한다. 스스로가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요양원 속 세계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풍요에 힘입어 방탕한 생활과 육체적 쾌락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바깥 세계. 필자는 작가가 이 둘의 극명한 비교를 통해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이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이 급속화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당시의 일본 사회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꼭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인 듯 싶어 씁쓸하다. 4. 결론 많은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냥 가볍게 읽으면 뛰어난 문장력과 묘사(상당히 특이한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를 바탕으로 술술 읽히는 청춘 연애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던지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당시의 일본 사회는 정상인가" 라는 물음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청춘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주관적인 별점 : 4.5개 (사람은 누구나 비정상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그러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
데드 하트
'데드 하트' / 더글라스 케네디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빅픽쳐는 물론이고 템테이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리5구의 여인, 비트레이얼까지 늘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 읽은 데드 하트도 흥미진진했다.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의 특징은 술술 읽히는 가독성과 빠른 스토리 진행, 그로 인해 지루할 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인데(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특징이다.) 데드 하트도 고스란히 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개성의 주인공들과 스토리 전개가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서 늘 재미있는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데드 하트의 주인공인 닉은 지방 신문사를 전전하며 먹고사는 기자다. 특이한 점은 10년이 넘는 기자 경력에도 대형 신문사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고 소규모 지역 신문사들, 그것도 한 신문사당 2~3년 간격으로 옮겨가며 취직을 한다는 것이다. 보스턴의 신문사로 직장을 옮기려던 닉은 우연히 호주의 지도를 보고 아무것도 없는 야생의 땅, 호주로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호주의 최북단 다윈에서부터 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닉은 앤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살던 마을로 납치당한다. 앤지가 약을 투여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강제 결혼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감금생활을 하게 되는 닉. 앤지가 사는 울라누프라는 마을은 호주 지도에도 없는, 네 가족이 마을 구성원의 전부인 마을이고 그곳에서 앤지의 아빠인 대디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황무지 한가운데, 마을을 가장한 감옥에 갇힌 닉은 그 구성원 안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크리스탈과 함께 마을을 탈출하기로 한다. 처음 황무지를 횡단하는 닉의 모습은 힘들고 피곤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롭다. 그런 스토리는 앤지를 만나 납치당해 울라누프라는 마을에 당도하게 되면서 스릴러로 바뀐다. 그때부터 급격하게 진행되는 닉의 탈출을 위한 처절한 노력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항상 느끼지만 이 작가는 빠른 서사 진행으로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이 그리 얇지도 않은데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되는대로, 자신이 편한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던 닉은 울라누프에서 탈출을 시도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낭비해왔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하루하루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이 감시당하며 사는 울라누프에서의 시간이 닉에게 탈출과 삶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불태우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이란 참 미련하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모든 자유와 의지를 박탈당한 그때에야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카뮈의 이방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뫼르소가 죽기 직전에서야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한껏 터트린 가까스로 울라누프를 탈출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닉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드 하트를 한 줄로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빠져 정신없이 읽고 나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마침내 나는 나의 고독, 나의 뿌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세상이 외면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5
소설은 허구입니다. 작가가 상상한 세계, 꾸며낸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죠. 하지만 이 허구, 상상의 세계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어떤 소설은 소설보다 더 현실적으로, 바로 보지 못했던 부조리와 참상을 일깨우기도 하죠. 세상이 외면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소외된 세상 이야기와 마주하게 합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소개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미의 기준은 시대와 지역마다 다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죠. 이런 물음이 있었습니다. “이 기준이란 건 자연스럽게 생겨난 걸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왜 유독 한 쪽을 구속하는 형태로, 제약을 가하는 모습이 그렇게 많은 걸까?   이 소설은 중국 1000년을 지배한 미의 기준, 전족을 소재로 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강요된 미적 기준이 만든 갈등과 비극을 이야기 합니다. 전족을 하지 않으면 순탄한 삶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  오랜 세월 남성들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여성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자율성을 빼앗고, 소유하는 것으로 권력을 과시해 왔습니다. 자유를 찾으려는 여성들을 또 다른 구속과 제약에 빠지게 만드는 일도 쉬지 않았죠. 과연 이 소설 속 이야기를 옛 이야기, 중국이라는 다른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전족 자세히보기>> https://goo.gl/XPpmDB 제국주의 일본은 자신들이 미개했던 조선을 개화하고 발전하게 해주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주장이 계속되고 한국에서도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죠. 식민지란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군사력의 강대함으로 세계를 바라본 결과의 하나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자유인가요.  이 소설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낙오자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오지. 원주민은 동등한 인간이기보다 가축에 가깝습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은 갈등합니다. 백인의 세계와 원주민의 세계,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루지 못할 사랑을 꿈꾸죠.  세상에 정말 더 우월한 인종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판단은 어느 인종, 어떤 나라, 하나의 세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나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죠. 인간은 자신의 지배, 군림을 정당화 하기 위해 약자와 패배자를 규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닙니다. 다름을 우월함으로 규정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버마시절 자세히보기>> https://goo.gl/XPpmDB 미국은 가장 부유한 나라, 가장 강대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인권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차별이 심한 나라, 빈부 격차가 큰 나라, 경직된 나라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죠. 가장 적극적으로 노예를 사고 팔았던 나라 역시 미국입니다. 그리고 그 미국의 흑인들이 자유와 권리를 얻은 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1960년 대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아이와 가정은 내버려둔 채 백인 가정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흑인과 그러한 차별과 부조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조용하지만 격렬한 혁명 이야기를 담고 있죠.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의 인권이 혁신적으로 향상되기를 기대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했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그 기세를 되찾았습니다. 평등과 자유를 위한 혁명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는 아니기에, 우리도 함께 해야만 합니다. 헬프1 자세히보기>> https://goo.gl/XPpmDB 전쟁과 갈등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피어납니다. 가난이나 신분의 차이도 우정이 싹트는 걸 막지는 못하죠. 그러나 그렇게 힘겹게 싹튼 우정은 때로 간단히 짓밟히기도 합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서로의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가기도 하죠.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전쟁과 갈등, 상처와 치유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 우정을 맺지만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년과 전쟁으로 나라를 떠나야 했던 설움, 오래 전 지켜내지 못했던 친구와의 우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최후의 시도까지 감동적으로 그려내죠.  아무리 전쟁과 갈등이 좋은 소설,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전쟁이 없는 세상의 평화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소설이 주는 작은 감동에 비해 전쟁이 만드는 슬픔은 너무나 압도적으로 거대하니까요. 안심하고 우정과 사랑을 키워나갈 세상을 꿈꿉니다. 연을 쫓는 아이 자세히보기>> https://goo.gl/XPpmDB 지구 위의 생명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며 적응하고 발전하며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을 해치기도 하고, 공존의 길을 찾기도 하면서요. 영화 <혹성탈출>은 진화한 영장류와 인간의 생존 경쟁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시대에 진화한 신 인류가 출현한다면 인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이 소설은 신 인류의 출현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합니다. 다른 인류가 가져올 지 모르는 위협, 반복되어온 생존 경쟁에서의 도태를 두려워하며 신 인류를 말살하고자 하죠. 다른 한 쪽에서는 신 인류를 지켜내고자 합니다. 현재의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신 인류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판단에서요.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진화한 생명,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혜로운 인간이 어떤 문제 앞에서는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기도 하죠. 역사 속 수 많은 전쟁이 두려움에서 시작되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것인가. 지금도 유효한 물음 아닐까요. 제노사이드 자세히보기>> https://goo.gl/XPpmDB 역사 속에서 다름은 차별과 억압, 지배와 살해의 정당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열등하기에 짐승을 죽이듯 죽여도 되고, 미개하기에 짓밟고 빼앗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성별의 차이에 필연적 차별의 근거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앎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 아닐까요. 무료다운로드 >> https://goo.gl/XPpmDB
소설)부자(父子)
안녕하세요! 나른한 오후에 인사드리는 optimic입니다. 어제 저녁에 앉아서 제가 지금까지 빙글에 쓴 글들을 하나 하나씩 다 모아봤는데.. 세상에 벌써 a4용지로 90페이지나 나오더라구요! 이만큼이나 글을 쓴 건 모두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분입니다. 헤헤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오늘도 짤막한 이야기 하나를 써왔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병원 1인실. 왜소한 체격의 노인 남성이 누워있다. 몸이 굳은 듯 미동도 없이 부릅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노인의 침대 옆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 손에는 예리하게 빛나는 칼을 들고 있다. 남자 : 아버지... 노인의 발치로 걸어가는 남자. 노인의 눈은 공포를 담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천장만 보고 있다. 노인 : 으..으어어..으으... 남자는 칼로 정성스럽게 노인의 발가락 끝부터 발 뒤꿈치까지 얇게 깎기 시작한다. 사각 사각 노인 : 흡!! 노인은 밀려오는 고통에 굳은 몸을 부르르 떨다 핏발 선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발끝. 남자가 고개를 들어 노인을 본다. 남자는 기괴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부자(父子) 병실에는 노인이 누워 있고 창 밖으로는 햇살이 따사롭게 병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뻣뻣하게 굳은 노인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는 지난밤의 그 중년 남자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따뜻하게 웃으며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남자 : 아버지. 노인 : 으..으어어... 노인은 여전히 굳어 있는 눈이지만, 핏발 선 동공을 부르르 떨며 신음한다. 할머니 : 아이구, 여전히 느이 아빠는 너도 못 알아본다. 남자 : 아니에요 엄마. 아버지 지금 눈인사 했어. 못 봤어요? 남자는 노인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따뜻한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뒤에서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엔 흐뭇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똑똑 간호사 : 어머님. 약 받아가세요. 할머니 : 아이구 예.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무릎을 쥐며 일어나 병실 문으로 향했다. 여전히 남자는 따뜻한 눈으로 노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둘만 남은 병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간호사와 할머니의 말소리. 간호사 : 아드님이 정말 효자에요. 밤낮으로 저렇게 아버지도 돌봐드리고. 할머니 : 맞아. 영감이 자식 복은 있어. 아이구 착한 내 새끼... 따사로운 병실. 남자는 문을 힐끗 바라본 후, 둘만 남은 병실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는 별안간 공포스럽고 기괴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노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남자 : 그럼 이따 저녁에 봐요. 아버지. 남자는 공포스럽게 웃으며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잠시 혼자 남게 된 노인. 남자가 나간 후 닫힌 문을 겁에 질린 눈으로 노려봤다. 움찔 노인의 손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덧 따사로운 햇살은 자취를 감추고, 서늘한 달빛만이 병실을 옅게 비추고 있었다.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노인은,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낮의 효심 가득한 모습이 아닌, 광기에 물든 표정이었다. 한 손에 칼을 쥔 채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노인은 어금니를 세게 마주쳤다. 남자 : 아버지. 오늘은 어디부터 해드릴까? 남자는 기괴한 웃음을 짓고 아버지의 팔뚝에 칼을 댔다. 슥슥 하는 소리와 피로 인해 젖어가는 환자복처럼 노인의 몸뚱이도 공포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노인 : 으, 으아아아!!! 순간, 노인이 일어나며 남자의 손을 거세게 물어뜯었다. 남자 : 아악!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치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상체를 일으킨 노인의 모습은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 피가 흐르는 모습이었다. 노인 : 니놈이 날 죽이려 들어!? 남자 :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절박한 남자의 외침과는 다르게,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기괴하게 일그러진 채 웃음을 띄고 있었다. 노인 : 이놈!!! 퍽! 노인은 침대에 떨어진 칼을 들고 일어나 남자의 얼굴에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는 듯 했다. 남자 : 으악! 아버지! 제발! 남자는 칼에 얼굴 옆면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정확히 칼을 휘둘렀으나, 베이지 않고 둔기에 맞은 것처럼 퍽 소리를 내며 넘어진 아들의 모습이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퍽 퍽 퍽! 피범벅이 된 몸으로 쓰러진 남자 위에 올라탄 노인은 남자의 칼로 계속 아들의 얼굴을 내리쳤다. 남자 : 아..아버지... 정신...차리... 노인의 밑에 깔려 꿈틀거리던 남자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고, 남자의 몸은 이내 축 늘어졌다. 노인 : 하아... 이 호로새끼. 애비를 죽이려고? 노인은 남자 위에 걸터앉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탁! 이 때 병실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간호사1 : 빨리 선생님 데려와! 간호사2 : 보호자분. 정신 차리세요! 간호사들 너뎃 명이 와서 남자와 노인을 떼어냈다. 남자 간호사들에게 붙들려 남자와 멀어지는 노인. 이상하게 끌려가는 노인의 몸은 멀쩡했다. 노인의 손엔 둥글게 말린 채로 얼어 있는 얼음찜질용 팩이 들려 있었고, 애초에 그 곳에 칼은 없었다. 얼굴이 피떡이 된 채로 쓰러져 있는 남자. 초점 잃은 눈으로 끌려 나가는 노인과 노인의 침대에 붙은 진료기록부. 이름 김 상 수 병명 복합부위통증 증후군 복합부위통증 증후군 : 외상 후 신체에 극심한 작열통(灼熱痛)과 칼에 베이는 듯한 아픔을 동반하는 신경병성 통증.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심리적 불안정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어서 인터넷에서 찾고 찾아서 글을 쓰긴 했는데... 꼭 이런 주제를 써 보고 싶긴 했는데... 미흡한 점이 많을 거 같네요. 그래도 소설은 소설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항상 감사드리고 이 시국에 몸 관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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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하면돼지] 책덕후의 책추천
그동안 읽었던 책으로 [덕질하면돼지] 이벤트에 참여합니다!!! 대학온 이후로 책이랑은 정말 담을쌓고 살았었지만 이대로는 스맡폰만 보는 멍청이가 될것 같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당. 작년 새해 목표를 책 많이 읽기로 세웠었는데, 혼자서는 흐지부지가 될 것 같아서 sns에 읽은 책 기록을 꾸준히 했어요. 나름대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책모임까진 아니지만 같이 책읽은 계정들 팔로우 해서 책추천도 받고 댓글도 다니까 동기부여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작년 한해는 책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작년엔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책에 둘러쌓인 환경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책을 읽게 되더라구요. 역시 환경이 중요해...! 근데 요즘은 도서관일 그만두면서 다시 책이랑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흑 ㅠㅠㅠ 다시 책이랑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으면서 작년에 읽은 책 중 몇권 소개해드릴게요. 1.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오늘같이 눈오는 날씨에 잘어울리는 책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인데요.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에요. 김애란 작가의 담담한 문체 때문에 더 아리게 느껴진달까요? '바깥은 여름' 이라는 제목이 참 잘어울리는 소설인게,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마지막편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바깥은 뜨거운 여름인데, 나만 스노우볼처럼 시린 겨울 속에 있다고요. 전반적으로 '죽음'과 가까운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어요. 그 누군가가 죽었어도 세상은 너무 정상적으로 평화롭게 돌아가잖아요. 처음엔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바깥은 여름'인지 했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깊이 공감이 됐었어요. 먹먹한 겨울에 조용한 곳에 앉아서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2. [아무래도 싫은 사람] / 마스다 미리 / 이봄 도서관에 마스다 미리 작가 전권이 있어서 자주 봤었는데 정말 쉽고 재밌게 호로록~~~ 읽을 수 있는 만화에요 특별할거 없는 그림체랑 내용인데, 그게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웃겨서 사진 찍어둔거 하나 올릴게요ㅋㅋㅋㅋㅋ 요런 간단한 그림체로 누구나 공감할만한 소소한 얘기를 담고 있는데 이거 보다보면 '사람 사는거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뙇 ㅋㅋㅋㅋㅋㅋ 같은 작가 시리즈 중에 [수짱의 연애], [내 누나], [느긋한 나의 작가생활] 등 많지만 전 그중에서 이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젤 좋아해요. 마스다씨가 살아오면서 만난 싫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대처들을 담았는데, 그게 참 공감이 되거든요. 결국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사람을 열렬히 미워하거나 좋아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그냥 사람을 싫어할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구나 ㅋㅋㅋㅋ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물론 그게 어렵지만요 ㅎㅎ 그래도 마음에 작은 힐링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3. [너의 목소리가 들려] / 김영하 / 문학동네 이걸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봤는데 제가 상상했던 문체랑은 너무 달라서 놀랐던 기억이..!! 예능에서 나온 이미지 때문인지 부드럽고 서정적인 문체를 상상했었거든요!! 근데 템포가 빠르고 직설적인? 좀 과장하면 뼈때리는 문체더라구요 신기....!!! 암튼 이책은 이종석 나온 그 드라마랑 동명이죠 하지만 같은 작품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줄 알고 집었는데 찾아보니 아니더라구요. 읽는 내내 누가 이종석 캐릭터인가 고민했는데 아니었네요 헤헿 (드라마는 안봤어요)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에서 태어난, 역시 고아였을 십대 소녀로부터 잉태된 제이.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야생의 길에서 생존해야 하는 제이는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줄거리는 이러해요! 서정적인 제목에 비해서 내용은 너무 현실적이고 때론 비참하거든요. 비행청소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책이었어요. 워낙 흡입력이 강하고 빨라서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라는 책도 재밌어요. 한 남자가 출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발견하는데요. 구하려고 하지만 예기치못한 불행이 계속되는...!! 그런 희안한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묘하게 현실적인게 인상깊어요 4. 가볍게 재밌게 볼 수 있는 시리즈 (1)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요 고구마툰을 그린 '도대체' 작가가 쓴 책인데요! 이 책도 같은 맥락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짧은 그림이랑 같이 공감 100% 이야기를 넣어놨는데, 에를 들면 이런거에요. 도서관에서 읽는데 너무 웃겨서 웃음 참았어요 휴 (2) 있으려나 서점 너무 귀여운 그림책이에요. 요약하자면 '책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서점에 관한 그림책' 입니다. 책에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이 담긴 책... (3)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건 많이 보였을것 같은데 베스트셀러로 한참 올라왔었거든요. 원래 이런 자기계발서 싫어하는데 이건 평소에 자기계발서에서 느꼈던 그런게 없었어요. 가르치려한다거나, 다 잘될거야~ 라는 식으로 근거없이 희망적인 얘기만 한다거나 이런거 없이 소소한 힐링이 되는 책이었습니당. 제 책추천은 여기까지고용!! 꼭 3등 안에 들어서!! 상품을 받고싶네용~~~ @VingleKorean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 감사합니당
칼의 노래
'칼의 노래' / 김훈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 소설은 글 전체가 칼의 노래다. 사실 필자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문장 공부를 위해서였다. 필자도 글을 쓰는 만큼(사실은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맞겠지만) 스스로 문장력을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장이 뛰어난 소설을 찾다 보니 거의 모든 곳에서 김훈 작가님의 책이 언급되었다. 그렇게 문장에 주의를 기울이며 읽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집어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문장에 주의하기는 무슨,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만을 극한으로 압축한 깔끔한 문장으로 쓰여진 책이어서 한번 눈이 지나치기만 해도 이해가 되는 문장들이다보니 오히려 너무 술술 읽혀서 문장에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책에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읽히는 소설이라니. 이 소설은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베는 기능만에 한없이 집중한 칼과 같은 문장으로 쓰여졌다. 문장 하나하나에 쓸데없는 것들을 다 쳐내고 문장 자체의 기능에 집중했다. 의미를 전달하는 것. 그렇다고 지루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의미를 전달한다는 문장 본연의 의미에 집중한 이 소설은 내가 문장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문장을 눈으로 읽고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장을 읽는 순간 그대로 머릿속에 장면이, 감정이 펼쳐지는 것이었다.(사실 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글쓰기가 이렇다. 문장은 뜻을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읽고나면 문장이 아니라 글 속의 이야기만이 남아있는 글.) 그렇기에 이 소설은 전체가 칼의 노래였다. 아무 장식도 없이, 날에서 베겠다는 한기만이 뿜어져 나오는 칼이 부르는 노래. 그렇듯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으로 이 소설은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여과 없이 필자에게 드러내었다. 이순신 스스로가 난중일기를 소설로 다시 쓴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과 꺾이지 않는 충 아래 묻혀져 있던 내면의 고뇌와 슬픔, 위태로움이 고스란히 짧은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전해졌다. 절제되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졌기에 인간 이순신의 나약함은 더 깊숙한 곳에 와닿았다. 영웅이자 장수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그 전에 인간이었던 이순신의 모습을 잘 벼려진 칼과 같은 문장으로 써내려 간 것은 더 없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순신이 충을 바친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왜구가 쳐들어와 백성들을 도살하고 포로로 끌고 가는 상황에서 왕은 수도를 떠나 저 멀리 도피했고 대륙의 천자가 보낸 천병들은 조선 백성들을 구하고 왜구를 물리칠 생각은 없고 그저 천자에게 바쳐 자신의 공을 인정받을 적의 수급만을 원한다. 그 수급이 실제로 왜적의 수급인지, 억울하게 죽어 나간 조선 백성들의 수급인지는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듯 어디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묵묵히 장수로서의 일을 할 뿐이었다. 적과 교전하고 적의 격군 포로 7명을 생포해 온 송여종이 이번 전투에서 자신의 부하 셋이 죽었다며 포로들의 처분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말한다. 포로 7명은 왜구에게 끌려 갔던 조선 백성들이었고 그들은 왜구의 밑에서 조선의 수군을 향해 총을 겨눴다. 조선인 포로들을 베어 목을 걸겠다는 송여종. 그런 송여종에게 이순신은 말한다. ㅡ 송여종, 베어져야 할 자는 너다. 송여종이 눈을 부릅떴다. ㅡ그리고 나다. 네가 백성을 온전히 지켰더라면, 어찌 백성이 너에게 총을 쏘았겠느냐? 이순신은 선조도, 명도 아닌 조선과 조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충을 바친 사람이었다고 필자는 이 대화를 읽으며 느꼈다. 인간 이순신의 모습 또한 소설 속 많은 부분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순신의 셋째 아들 면이 죽은 장면이었다. 이순신의 아들의 목이라도 가져가겠다는 이유로 왜구는 특공대를 이순신의 고향 아산으로 보냈고 그 곳에 있던 이순신의 아들, 면을 죽인다. 그 소식을 전하러 온 종 치수에게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순신은 별다른 말도 묻지 않은 채 종을 돌려보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혼자 갯가 염전으로 가 소금 창고 안, 가마니 위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순신이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고 싶다면 '칼의 노래'를 읽어보기를. 주관적인 별점 : 4.5개 (뛰어난 문장력과 상당한 수준의 고증. 그와 더불어 흥미진진한 묘사와 서사까지.)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처음 읽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언젠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늘 다른 소설들에 밀려 읽지 못하던 중 엉뚱하게 수필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다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유리문 안에서>는 썩 마음에 들었다. 잔잔하고 차분한 문체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장들, 담담하게 쓰인 나쓰메 소세키의 생활과 생각들, 중간중간 터지는 어설픈 유머까지. 민음사 쏜살문고에서 나온 <유리문 안에서>는 1915년 1월 13일부터 2월 23일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엮은 책이다. 그에 더해 뒤편에는 서비스(??) 같은 느낌으로 <입사의 말>과 <작가의 생활>, <이상한 소리>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입사의 말>은 나쓰메 소세키가 대학을 떠나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며 쓴 글이고 <작가의 생활>은 소세키가 작가로서 자신의 생활을 쓴 글이다. <이상한 소리>는 소세키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 병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네 편의 글은 모두 나쓰메 소세키 스스로의 이야기를 쓴 수필이다. 소세키의 소설만 읽어본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 가려져 있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어떤 사람인가를 엿볼 수 있다. <유리문 안에서>를 읽으며 그가 관계와 죽음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느꼈다. 이 수필 속에서는 소세키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민을 볼 수 있으며 다른 이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잡지에 실릴 사진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찍는 부분이나 모든 인간은 매일매일 창피를 당하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생각한다는 문장, 전혀 모르는 자들의 부탁과 그에 대한 자신의 불편함과 수고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인간관계에 서툰 면을, 글쓰기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여인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만 차리거나 불리한 부분을 감춰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목과 상상도 못 한 사연과 고통을 가지고 있는 여자에게 건네는 "그렇다면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라는 말에서는 그가 다른 사람과의 서툰 관계에 얼마나 진심을 담고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글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또 하나의 단어는 죽음이다. 소세키는 주변인의 끊임없는 죽음, 존재의 사라짐을 실감하며 자신의 죽지 않음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라는 것, 당연하게도 세우고 있는 내일의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삽시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 깨닫는다. 전쟁터에 나간 경험이 있는 남자와 소세키의 대화에서 소세키가 묻는다. "그렇게 부대원이 잇달아 쓰러지는 걸 보면서도 자신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라고. 남자는 대답한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요." 이 문답에서 나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느꼈다.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언제나 미래가 존재할 것이라고 태연하게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점을. 누구나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토막글의 말미에서 소세키는 말한다. '이따금 생각하면, 나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부자연스러운 듯한 기분도 든다. 그리고 운명이 일부러 나를 우롱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싶어 진다.' 소세키는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 온갖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치는 외부와 격리된 유리문 안에서 자신의 내부로 침잠한다. 인간,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의 삶, 과거의 기억과 알 수 없는 미래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시끄러운 외부와 단절된 유리문 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툇마루에 앉아 있는 소세키가 쓴 글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리문 밖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과 이권다툼에서 벗어난 유리문 안의 소세키가 쓰는 시시하고 한가로운 문장을 하염없이 읽고 싶어 진다. 돈과 이권과 폭력과 권력이 한심하다며 혀를 차는 그 문장들을. 책 속 한 문장 : 결국 우리는 스스로 꿈결에 제조한 폭탄을 제각기 품에 안은 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하면서 걸어가는 건 아닐까.
드럼통 귀신 1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 오늘은 간만에 군대 실화로 가져와 봤습니다! 그냥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라 별로 무섭지는 않을 거에요! 재밌게 읽어 주세요! 항상 제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많은 각색과 양념이 들어갔다는 점! 알아주세요! -------------------------- 지난 번부터 쭉 내 글을 봐 오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화천의 모 부대에서 군 생활을 보냈다. 국내 유일 경례 구호가 세 글자인 그 곳. 살면서 '이기자'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그 곳... 그 부대 중에서도, 우리 부대는 구석에 덩그러니 대대 하나만 있는, 어찌 보면 독립되어 하나의 단체를 이루고 있는 대대였다. 우리 대대 안에는 이름 모를 무덤이 하나 있었다. 누가 와서 벌초를 해 주지도 않고, 흔한 비석도 하나 없는. 대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이었기에, 대대에서 진지공사 및 제초작업을 할 때 병사들이나 간부들이 가서 벌초를 해주곤 하는 무덤이었다. 궁금증이 도진 우리는 간부들이나 누군가에게 이 무덤의 주인이나 사연에 대해 물어보곤 했는데. -아 저 무덤? 주인 있어. 예전에 우리 대대가 만들어질 때 사유지였는데, 거기서 미처 이장을 못 해서 남아있는 거야. 가족들도 와서 성묘도 하고 그래. 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우리는 그게 거짓말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군생활 내내 밤낮으로 위병소에서 근무를 서는 동안, 명절에도 단 한 번도 가족들이 성묘를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는 저 무덤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 훈련받다가 죽은 병사 혹은 간부 아닐까? - 븅신아. 가족들이 다 수습해 가겠지. - 아니, 고아였을 수도 있잖아. - 고아여도 군대에서 죽으면 현충원 간다던데? 국가 유공자. - 아 그래? 아 그럼 뭐지 진짜? - 혹시 막 누가 살인하고 몰래 묻은 거 아냐? - 에이. 군대에서 누가 살인을 해. 해도 걸렸겠지. 븅신이냐? - 말이 심하네... 실없는 소리와 함께 그 무덤은 우리에게서 잊혀져갔고, 대대 내에서 하는 훈련 집중 주가 다가왔다. 화기를 다루던 우리 중대는 대대 안에서 훈련을 하게 됐고, 다른 중대원들은 전부 대대 주변 산으로 훈련을 나갔다. 늘 그렇듯, 우리는 커다란 박격포를 짊어지고 대대 구석으로 향했고, 지정된 위치에 포를 설치했다. 어느 정도 다른 대대원들이 저 멀리 산으로 사라지고, 커다란 대대에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정도 날이 추워지고 스산한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들만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을 무렵. -퉁....둥...둥...-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 북 같은 걸 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뭔 소리야? -어떤 소리 말씀이십니까? 내 옆에 있던 준서가 내게 물었다. -방금 뭔 소리 안들렸냐? -못 들었습니다. -개 단호하네. 너무한 거 아니냐? -강병장님이 말씀하시면 무서워서 그냥 안듣고 싶습니다. -아냐. 들어. 안 들을 거면 포 청소 다 니가 해. -.... 그렇게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그 때. -퉁.... 둥... 둥...-- -야. 들었지. 이번엔 진짜 확실히 들었지. -드...들었습니다... 근데 이거 그냥 뭐 부딪히는 소리 아님까? -약간 드럼통 같은 거에 뭐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다... 무섭다기보단 뭔가 흥미거리였다. 졸음과 추위를 견디며 무작정 앉아서 대기만 해야하는 우리에게,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그 소리는 온갖 상상을 하게 해 주었고, 우리는 결국 산짐승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채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직후 우리가 훈련을 했던 그 장소 옆에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지만, 우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얼마 후. 당직을 서고 있던 내게 탄약고 근무자들이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 아이고 고생하십니다. - 아이고 이 새벽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 특이사항이나 보고할 건? - 아, 강뱀.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 뭔 소리가 나? - 막 자꾸 퉁퉁퉁 하는 소리가 납니다. 뭔가를 막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한데... - ...드럼통? - 맞다! 딱 그겁니다. 드럼통 두드리는 소리.. - 진짜 어디 덫에 걸린 동물이라도 있나?? - 아님 막 간첩들이 지들끼리 신호라도 보내는 거 아님까? - 말년에 간첩이라고...? 그 날 새벽,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온 후임들마저 퉁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내게 보고했고, 퉁-퉁-거리는 소리를 내는, 일명 '드럼통 귀신' 은 온 중대에 퍼져나갔고, 며칠 뒤, 당직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퇴근 준비를 한 중대장이 다가왔다. - 너 오늘 새벽에 탄약고, 위병소 쭉 한바퀴 돌고 와라. - 잘모싼?(잘못들었습니다의 병장 버전) - 드럼통 귀신인지 지랄인지, 뭔 군인들이 통통거리는 소리를 듣고 벌벌 떨어. 니가 가서 싹 확인하고, 원인이 뭔지 알아 와. - 아....알게씀다... 그렇게 중대장은 내게 똥을 투척하고 퇴근을 했고, 그렇게 새벽이 다가왔다. 나는 한껏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밖으로 나왔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초겨울 산길을 순찰한다는 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였다. 그렇게 손전등 하나를 손에 쥔 채, 칠흑같은 어둠을 겨우 걷어내며 탄약고로 가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 퉁--- 아주 작게 또 누군가가 드럼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애써 아닐거라 생각하면서 서서히 올라갔다. - 퉁---퉁---퉁 조금 더 커진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온 중대가 들은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정말 간첩인가, 아니면 동물일까... 여러 가지 생각들로 뒤엉킨 머리를 들고 나는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 분량조절 실패로 2화로 이어집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을 의미하기도 하고 슬픔이라는 존재가 슬픔에 대해 공부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두 가지 의미는 하나로 합치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를 읽어갈 때쯤이면 그 가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신형철 평론가가 시, 소설, 에세이, 영화, 음악, 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 등에 대해 써 내려간 글이다. 우리가 문학 평론가에게 기대하는 시와 소설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한 움큼, 사회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의견 한 움큼,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 음악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한 움큼,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슬픔에 대한 애도 한 움큼. 에세이 같기도 하고 평론집 같기도 한 이 한 권의 책으로 신형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평론가 중 한 명인만큼 기대했던 대로, 아니 그보다 더 글을 잘 쓴다. 시나 소설에 대한 평론, 묵직한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담론을 다루면서도 글이 딱딱하지 않고 맛이 산다. 문학동네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문학이야기에서 조곤조곤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치 그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가 내 옆에서 책의 내용을 읽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시해놓은 인상적인 부분을 되짚어보니 무려 스무 곳이 넘었다. 평소 책에 잘 표시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과도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숫자다. 그만큼 이 책에는 내게 인상적인 문장과 사유가 많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줄곧 슬픔에 대해 다룬다. 책에 나오는 슬픔에 대한 여러 문장들 중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이 책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여기서 공부되는 슬픔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슬픔이다. 자신의 슬픔에는 누구나 민감하고 예민하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에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것은,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애도하는 것은 공부해야만 하고 또 공부되어야만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이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계속해서 슬픔을 들쑤신다. 세월호나 용산 참사, 천안함 사건과 같은 슬픔이라는 단어와 동치 될 법한 일들, 누군가 깊은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 슬픔을 논하는 시와 소설과 영화와 음악들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슬픔을 읽고 목격하고 듣는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통해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고 또 연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될까. 타인의 슬픔이 없는 세상에는 사랑도, 배려도, 공감도 없다.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슬프지 않게 하는 것에서, 배려는 다른 이들이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감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그것들은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 위에 세워져 있다. 슬픔을 공부해야만 비로소 인간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두 가지 뜻이 하나로 합치되도록 만드는 가정은 이것이다. [인간 = 슬픔]. 사실 인간이 곧 슬픔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으나 그 답을 알지 못한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답을 갈구하는 존재란 얼마나 슬픈가. 책 속 한 문장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설(창작 단편)
한 노인이 툇마루에 앉아 털신에 발을 집어넣는다. 오래되어 겉이 반질반질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두 발을 신에 집어넣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에 선 노인은 무릎이 시린지 손을 무릎에 대고는 가만히 서 있다. 입에서는 오메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에 한 손을 대고 걸음을 옮긴다. 산책을 나가는 건가 싶어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마당의 하얀 똥개 한 마리가 결국 웡웡 짖어 대기 시작한다. 노인이 다가가니 똥개가 배를 드러내고 드러눕는다. 노인이 헥헥대며 꼬리를 흔드는 개의 배를 긁는다. “복실아. 오늘은 이 할미가 무릎이 아픈께 산책은 나중에 가자잉.” 노인이 손을 떼고 일어나 대문으로 향한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복실이는 짖는 걸 멈추고 조용히 낑낑댄다. 노인이 나가고 파란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닫힌다. 철문을 나선 노인이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중간중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쉬어가며 2~30분쯤 걸었을까, 저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 노인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파란색 페인트가 다 벗겨진 의자에 앉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귀가 빨갛다. 의자에 앉아서도 노인은 연신 무릎을 두드린다. 한참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추위를 견디던 노인의 귀에 버스 엔진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목도리를 고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목 같은 손을 흔든다. 버스가 노인의 앞에 멈추고 문을 열자 노인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노인이 올라서기 무섭게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시장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노인이 천천히 내려선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버스를 뒤로 하고 노인은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근처에 생긴 마트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노인이 한 옷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뽀글거리는 파마를 한 아줌마가 노인을 맞는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떤 거 사러 오셨어?” 노인이 가게를 휘휘 둘러보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쩌그 있네. 내복 사러 왔는디 요즘 애기들은 어떤 걸 좋아한당가?” “애기가 몇살인디?” 아줌마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가 번진다. “손주가 7살이고 손녀가 5살이여. 지 애비랑 애미 똑 닮아가지고 을매나 잘생기고 이쁜디. 게다가 우리 변호사 아들 내미 머리를 물려받아갖고 머리들이 비상혀.” “오메, 아들이 변호사여? 부러워 죽겄네. 우리 아들은 스물 여덟이나 먹었는디 아직도 백수여, 백수.” 한숨을 내쉬며 내복들을 뒤적거리던 아줌마의 손에 파란색과 분홍색 내복이 들려 올라온다. “요즘 애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려진 내복이여. 5살, 7살이면 이게 좋을 것 같은디?” “박스 열어봐도 된당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박스를 열고 꼼꼼하게 내복을 살핀다. 바느질이 성긴지, 천은 좋은 걸 썼는지, 색은 빠지지 않을지. 한참 내복을 만지작거리던 노인이 박스를 닫고 건넨다. “이걸로 줘. 얼마여?” 아줌마가 능숙하게 박스를 포장한다. “원래 이만원씩인디 그냥 두 개에 삼만 오천원만 줘요. 포장도 해줄게.” 노인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만원 짜리 세 장을 꺼낸다. “삼만원 밖에 없는디 좀만 깎아줘. 다음에 또 팔아줄텐께.” “아이고, 안돼요 어머니. 삼만 오천원도 엄청 깎은 거에요. 남는 것도 없어.”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결국 삼만 이천원에 합의를 본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천원 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낸 노인이 삼만원과 합쳐 지폐 다섯장을 건넨다. “어머니 다음에 꼭 오셔서 더 팔아줘야 돼요. 진짜 내가 손해 보면서 드린거야.” 노인이 내복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며 말한다. “걱정하덜 말어. 이번 설에 아들 내미랑 손주들 오면 꼭 데리고 올텐께.” 노인이 두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든 채 파란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엎드려 있던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노인의 뒤를 따른다. 툇마루에 비닐 봉지 두 개를 올려놓은 노인이 오메오메 소리를 내며 허리와 무릎을 연신 두드린다. 얼핏 보이는 비닐 봉지 안에는 곶감과 과자, 내복 등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 허리와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이 비닐 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주방으로 들어간 노인은 과일과 과자, 곶감들을 냉장고와 찬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빈 비닐 봉지를 주방 한 구석 비닐 봉지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 안에 구겨 넣는다. 정리를 끝낸 노인의 귓가에 따르릉 거리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내복 두 개를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노인은 들고 온 내복 두 개를 펴져 있는 이부자리 위에 조심히 올려 놓고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노인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오메, 둘째냐. 잘 있냐잉?” 수화기 너머로 “잘 지내시죠 어머니”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잘 있제. 너가 이번 설에 손주들이랑 며느리랑 내려온다고 해서 니 좋아하는 곶감이랑 애기들 선물도 다 사놨다. 니 형은 이번에 일이 바빠서 못 오고. 근디 언제쯤 내려오냐? 미리 방도 좀 뎁혀 놓고 해야된께.”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꽤 길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대뜸 말한다. “괜찮은께 걱정 말어. 못 올수도 있제. 변호사가 오죽 바쁘겄냐. 다음에 보면 된께 엄마 걱정은 하덜 말고 일 열심히 혀. 니가 잘되는 것이 엄마한테 효도하는 것이여.” 노인이 입을 다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려. 일 잘하고 항시 몸 건강하고. 다음에 시간 되면 내려오그라잉.” 노인의 얼굴에 피어났던 꽃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시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노인은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 위에 있는 내복 두 개를 집어 든다. 자개로 된 옷장 문을 열자 한 구석에 무언가 쌓여있다. 어린이들이 입을 법한, 캐릭터들이 그려진 내복 박스 여러 개가 먼지가 쌓인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위에 쌓인 먼지를 슥슥 쓸어내고 그 위에 새로 산 내복 두 개를 올려놓는다. 노인은 옷장 문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내복들을 바라본다. 늙은 고목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쌓인 내복들을 응시하던 노인이 천천히 옷장 문을 닫는다. 노인이 툇마루에 나와 앉는다. 앉아 있는 노인의 옆으로 복실이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풀쩍 뛰어올라 노인에게 몸을 기대고 눕는다. 노인은 마디가 불거진 마른 손을 들어 복실이의 하얀 털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실화) 고문관
안녕하세요! 반나절도 되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온 optimic입니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글을 올리게 된 건. 제가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전에 연습용으로 썼던 단편 시나리오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같이 훈련소에 있었던 옆 생활관 동기가 들려 준 이야기를, 제가 시나리오 형식으로 옮겨 적었던 건데요. 노트북에서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 여기에도 올리면 나름 신선하지 않을까 해서 올려봐요! 평소 제가 쓰던 방식이 아닌, 드라마, 영화 등의 대본과도 같은 방식이기 때문에,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고문관 -나레이션 : 이 이야기는 군 복무 시절 겪었던 이야기다. 점심시간.) ‘정병 육성’이라고 씌어진 빨갛고 검은 모자를 눌러 쓴 머리가 보인다. 조교 : 빨리 빨리 안 움직이나! -나레이션 : 당시 나는 훈련병이었고... 훈련병들. 급하게 생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성열. 그 무리 중간에서 미처 다 신지 못한 한쪽 전투화를 구겨신고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점심시간.) 생활관 현관 앞. 약 20여명의 훈련병들. 오와 열을 맞춰 2열종대로 집합해 있다. 맨 뒤에 서 있는 성열. 성열의 옆자리만 비어 있다. 그 앞에서 허리춤에 두 팔을 올린 채 훈련병들을 마주보고 화난 표정으로 서 있는 조교. -나레이션 : 내 전우조는 고문관이었다. 지환. 엉거주춤한 자세로 헥헥거리며 훈련병들을 향해 뛰어오는 뒷모습. 전투복 윗단추는 풀려 있고, 고무링도 미처 채우지 못한 모습이다. 지환. 성열의 옆에 서서 헥헥거리며 눈치를 본다. 조교. 지환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조교 : 김지환. 김지환 : 62번 훈련병 김 지 환! 조교. 한숨을 내쉬며 지환에게 삿대질을 한다. 조교 : 야. 구라치고 뺑끼 칠거면 적어도 열심히는 해라. 지환. 빳빳하게 차렷한 자세. 조금 분한 듯한 표정이다. 지환 :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조교. 빠른 걸음으로 훈련병들을 지나쳐 걸어간다. 2열종대로 서 있는 훈련병들. 여전히 굳은 자세로 차렷. 조교 : (훈련병들을 지나쳐 가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밥 먹으러 가라. 조교. 지환의 옆을 지나갈 때 지환을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한 마디 한다. 조교 : 씨발. 구라쟁이 새끼. 취사장.) 훈련병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식판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할 때도 경직된 채 한 손으로만 포크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 모습. 그 사이에서 나란히 식판을 두고 앉아있는 성열과 지환. 맛있게 밥을 먹는 성열과는 달리, 지환은 여전히 분한 표정으로 힘없이 밥을 푼 숟가락을 들고 있다. -나레이션 : 지환이가 처음부터 고문관이었던 건 아니었다. 오후 2시. 신병교육대 행정반. ) 소대장이 다리를 꼬고 의자에 몸을 약간 뉘인 채로 앉아 있다. 무언가 거슬리는지, 짜증이 올라온 표정. 한 손에는 생활기록부를 들고, 한 손은 찌푸려진 미간을 누르고 있다. 책상을 두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지환.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를 편 채 앉아있다. 소대장 : 김지환. 이거 사실대로 쓴 거 맞아? 지환. 허리를 꼿꼿하게 피며 대답한다. 지환 : 네! 그렇습니다! 소대장. 더욱 찌푸려진 미간을 쓰다듬으며 지환에게 말한다. 지환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생활기록부만 보고 있다. 소대장 : 엄마가 무당이고, 너는 귀신을 본다고? 지환 : 네! 맞습니다! 소대장. 생활기록부를 소리 나게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지환을 노려본다. 소대장 : 야. 씨발 내가 너 같은 놈들 한두 명 보는 줄 알아? 지환. 움찔 하며 놀란 표정으로 소대장을 똑바로 쳐다본다. 소대장. 눈을 부라리며 지환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혐오감이 섞인 표정과 위압적인 행동. 소대장 : 군대는 존나게 가기 싫고, 뺑끼 칠 만한 건 없고, 만만한게 귀신이지. 존나 지랄하고 있네. 지환 : 아닙니다! 전 진짜..! 소대장. 지환의 말을 자르며 소리친다. 소대장 : 아가리 안 닥쳐!? 소대장. 지환의 앞으로 마주보며 선다. 앉아있는 지환을 앞에서 서서 내려다보는 소대장. 팔을 허리에 얹고, 위협적인 기세를 풍긴다. 소대장 : 너 이새끼야. 넌 나한테 찍혔어. 어디 한번 보자. -나레이션 : 그 때부터 지환이는 모든 조교들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지환. 앉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억울하고 분한 표정으로 몸을 살짝 떤다. -나레이션 : 나는 그 때 알았다. 저녁. 점호시간.) 훈련병 생활관. 20여명의 훈련병들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있다. 성열과 지환. 다른 훈련병들과 마찬가지로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레이션 : 군대에서도, 아니 군대가 사회보다 남의 시선이 훨씬 무섭다는 것을. 지환을 제외한 모든 훈련병들이 까맣게 변한다. 암흑천지의 사방에 박힌 수 많은 눈들만 커다랗게 뜨인 채로, 모든 눈동자가 지환을 노려보고 있다. 저녁 점호시간. 생활관. ) 당직사관 완장을 팔에 찬 소대장이 문 앞에 짝다리를 짚고 서 있고, 훈련병들은 부동자세로 앉아 있다. 소대장 : 아픈 사람 없지? 훈련병들 : 없습니다! 소대장. 앉아 있는 재환을 힐끔 쳐다보며 말한다.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비웃고 멸시하는 표정. 소대장 : 귀신 보이는 사람 없지? 훈련병들. 재환을 쳐다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비웃는 듯한 표정들과 피식거리며 웃는 훈련병들. 그 사이에서 걱정스러운 듯 재환을 곁눈질하는 성열의 모습도 보인다. 훈련병들 : 없습니다! 소대장. 여전히 비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로 몸을 돌린다. 등 뒤로 나지막히 들리는 지환의 목소리. 소대장 : 그럼 이상. 지환 : ...보여드리겠습니다. 소대장. 나가려다 멈칫하고 고개만 까딱 돌려 지환을 쳐다본다. 소대원들. 어이없다는 듯 지환을 쳐다본다. 소대장 : 뭐라고? 지환. 눈에 독기가 가득 찬 얼굴로 앉은 자세 그대로 소대장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잘근잘근 씹어뱉는 듯한 느낌으로 말한다. 지환 : 소대장님께서 못 믿으시는 그거...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소대장. 지환의 눈을 본다. (지환의 얼굴 클로즈업. 마치 귀신같이 한기가 서린 눈.) 흠칫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빠르게 나간다. 소대장 : 미X놈. 늦은 밤. 불 꺼진 생활관.) 훈련병들. 모포를 덮고 단잠에 빠져 있다. 생활관 문 앞에 단독군장을 한 채 불침번 근무를 서는 성열. 생활관 맨 안쪽에는 굳은 표정의 지환이 단독군장을 하고 서 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환을 바라보는 성열. 굳은 표정으로 자꾸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지환. 성열 : (혼자 생각한다) 지환이.. 괜찮을까... 여전히 지환은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두리번거리고, 성열은 지환을 바라보며 눈이 살짝 풀린 채로 서 있다. 성열 : (혼자 생각) 아... 졸리다... 눕고 싶다... 순간. 반쯤 감긴 성열의 눈에 보이는 생활관 모습.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상체만 남아 생활관 공중을 떠도는 귀신 몇몇이 지환의 주변을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정면에는 아까와 똑같이. 그러나 시야에 지환이 없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자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귀를 막고 있는 지환의 모습이 보인다.. 성열. 오싹한 느낌에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다. 그 때. 생활관에서 들리는 소대장의 비명에 고개를 돌린다. 소대장 : 으..으아! 뭐야! 생활관에서 보이는 행정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소대장이 놀란 표정으로 허겁지겁 성열을 향해 뛰어온다. 소대장. 생활관 앞으로 와 놀란 표정으로 성열을 향해 소리친다. 소대장 : 방금 뭐야! 누가 소리 질렀어! 성열 : (당황한 듯한 표정) 어떤 소리 말씀이십니까? 소대장. 인상을 찌푸리고 성열을 다그친다. 소대장 : 행정반까지 그렇게 크게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못 들었다고? 성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굳은 채 소대장을 향해 되묻는다. 성열 : ...‘여자’ 비명 말씀이십니까..? 소대장. 성열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은 채, 겁에 질린 듯 몸을 살짝 떤다. 그리고 뭐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서서히 돌려 생활관 안을 쳐다본다. 소대장의 눈에 보이는 생활관. 곤하게 자고 있는 훈련병들. 그 가운데 복도에서 어느 새 일어선 채로 묘하게 미소를 지은 채 서 있는 지환. 지환. 서서히 귀를 막았던 양 손을 내린다. 비명이 들렸다기엔 너무나 적막한 생활관. 소대장 : (넋이 나간 듯 생활관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렇게 큰 비명이 들렸는데, 아무도 안 깼다고...? 겁에 질린 소대장의 얼굴. 혼자 서 있는 지환과 눈이 마주친다. 서 있는 채 오싹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환의 주변으로, 아까 성열이 본 귀신들이 소대장의 눈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생활관 전체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귀신들. 머리가 반쯤 깨진 채 군복을 입은 남자, 눈코입에서 피를 흘리며 웃는 여자, 온 몸에 포탄이 박혀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여자... 모두가 잠들어 있는 훈련병의 귀를 막은 채. “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는 소대장의 뒤엔, 주저앉은 채 떨고 있는 성열의 모습. 소대장 :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이게 대체 무슨... 공포에 질린 채 서 있는 소대장의 어깨를 뒤에서 감싸는 창백하고 마른 손. 오싹한 느낌에 서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소대장. 피범벅이 된 채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만 있는 여자 귀신이 입을 찢어져라 크게 벌리며 “끼야아아악” 소리를 지른다. 소대장 : 끄아아아악!! 소대장.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넘어간다. 바닥에 쓰러지는 소대장. 성열. 덜덜 떨면서 구석에서 겨우 고개를 든다. 소대장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지환. 지환. 소대장 앞에 싸늘한 표정과 점호시간에 보였던 독기어린 눈을 하고 서 있다. 지환 : (소대장을 보면서 표정의 변화 없이, 나지막하게) 내가 보여준다고 했잖아. -나레이션 : 며칠 후, 소대장은 국군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대장. 공포에 떨며 미친 사람처럼 휴지를 찢고 뭉쳐서 귀에 쑤셔넣는다. 귀 주변은 상처투성이. 소대장의 자리에는 피가 묻은 채 뭉쳐진, 귀에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휴지뭉치들이 사방에 버려져 있다. -나레이션 : 소대장이 이송된 후, 지환이도 훈련소에서 나갔다. 지환. 군용 더블백을 맨 채로 생활관 문 앞을 나가는 뒷모습. 지환. 나가려다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생활관 내부를 바라본다. 소대원들은 살짝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지환의 시선을 회피한다. 성열. 어색한 표정으로 지환의 눈을 피한다. -나레이션 : 그 후로 소대장과 지환의 소식은 알 수 없었고, 나는 별 일 없이 군생활을 마친 후 전역을 했다. 성열. 자리에 앉아 있다 책상 위의 노트북을 덮으며 일어난다. -나레이션 : 이젠 지난 일이지만... 다시 없을 기이한 경험이었다. 성열. 불이 꺼져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잠이 든 성열의 바스트 샷 클로즈업. 잠이 든 성열의 두 귀를 어둠 속에서 창백하고 마른 두 손이 나타나 감싼다. ---------------------- 실제로 저희 훈련소에서 한 명이 저렇게 나갔었고, 그 친구와 같은 생활관이었던 저희 동기가 해준 이야기여서 저는 막상 쓸 때는 정말 재밌게 썼고, 오싹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글을 올리기 전에 다시 읽어볼 때는 뭔가 재미가 부족한 거 같고, 별로 안 무서운 거 같고 그러네요...하하..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 감사합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다음 편을 더 빨리 불러옵니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SF 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한국 SF 소설들의 힘 덕분일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유행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쁠 따름이다.(어린아이들에게 SF 소설은 과학자의 꿈을 길러주기 마련이니까.) 점점 발전해가는 한국 SF 소설계의 흐름에 발맞춰 오랜만에 SF 소설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집어 든 책이 바로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이었다. 이 소설의 저자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이 소설의 가장 뒷부분에 나오는 작품 해설 및 역자 후기 부분을 보면 아시모프는 SF를 통해 박학다식과 위트를, 클라크는 SF에 과학적 엄밀성과 철학적 깊이를 더했고 하인라인은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SF의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한다.(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이란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박학다식은 몰라도 위트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인라인의 대표작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을 읽고 가장 먼저 남은 감상은 아쉬움이었다. 그것도 과학적 깊이나 오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SF의 '재미' 부분에서 다가오는 아쉬움이라 안타까웠다. 소설의 주인공은 킵이라는 남학생이다. 이제 곧 대학을 가야 할 나이의 킵은 달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달 여행을 상품으로 건 비누 회사의 표어 선발 이벤트에 5,000 여장의 표어를 보내지만 중복 당첨이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표어가 도착한 사람에게 달 여행 기회를 준다는 규칙에 의해 달 여행의 기회가 아니라 중고 우주복(실제로 우주인이 우주에서 입었던)을 받게 된다. 언젠가 달에 가겠다는 의지로 우주복을 고치고 닦아 새것처럼 만든 킵은 대학에 갈 돈을 벌기 위해 우주복을 팔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입어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들판에서 우주복을 입고 교신 장치를 건드리며 논다. 그때 갑자기 잡힌 신호에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응답을 보낸 킵. (이런 소설에서는 으레) 당연하게도 우주선이 착륙하고 킵은 납치당한다.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 벌레 머리에게. 끔찍하게 생긴 벌레 머리는 엄마 생물이라는 외계인(킵에게 우호적이며 엄마 생물이라는 명칭처럼 가까이 가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생명체다.)과 피위라는 여자 아이도 함께 납치한 상태였다. 킵과 피위 그리고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벌레 머리에게서 탈출하는 우주 활극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벌레 머리에게서 킵과 피위,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탈출하는 내용이 소설의 중후반까지 쭉 이어진다.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계속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에서 그리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보통 재밌다고 느끼는 장르 소설들의 경우 서사에 이끌려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야 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못 덮겠어!"가 아니라 "자야 되니까 덮고 내일 보지 뭐." 하는 느낌이랄까. SF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의 대표작이라 너무 기대를 한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설정과 묘사는 흥미로웠다. 엄마 생물이라는 생명체와 그들의 특이한 의사소통 방식, 오스카(킵이 자신의 우주복에 붙인 이름이다.)에 대한 세세한 묘사, 달과 명왕성 등 미지의 행성에 대한 실감 나는 설명 등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에서 끝이었다. 그 흥미가 서사의 재미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히, 예상 가능하게 흘러간다. 필사의 탈출, 좌절, 또 한 번의 탈출, 좌절, 다시 또 탈출, 좌절......  끝없이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이어질 뿐, 무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긴장되는 순간이 없었다. 그건 아마 이 소설이 60년도 더 된 1958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이라 그런 듯하다. 긴 시간 동안 이미 너무나 많은 SF 소설,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과거에는 너무나 흥미로웠을 서사가 지금은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60년도 더 지난 소설에 지금의 시각으로 재미를 찾는 것이 조금은 매정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앞부분은 재미없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중후반을 넘어서서 지루한 탈출 과정을 지나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외계 종족과 인류, 행성과 별의 존망, 생명의 존재 의의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갑자기 엮여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상상력과 이야기 진행, 질문을 던지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주제 의식은 하인라인이 SF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납득시켰다. 후반부가 앞의 탈출 과정에 비해 짧은 것이 엄청나게 아쉬울 정도였다. "뭐야, 이게 끝이야? 킵이랑 피위 지구로 돌려보내지 말고 더 장황하게 써 달라고!"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반부만큼은 바로 어제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SF 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부까지의 지루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60년이 넘은 소설이 이 정도의 감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이 지닌 가치와 생명력의 대단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탈출 과정도 재미없어서 덮어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충분히 읽을 만하다. 하인라인의 명성과 내 기대에 비해 아쉬운 정도라고 말하면 되려나.)  좋은 SF 소설이고 60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아주 뛰어난 SF 소설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한 문장 "... 당신은 우리에게 예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파르테논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들이 전쟁 중에 폭파했지."
[책추천]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한국 단편 소설집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플라이북 회원들과 함께 만드는 책 추천 콘텐츠! 오늘은 부담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읽을 수 있지만 긴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한국 단편 소설집 5권을 추천합니다! 01. 바깥은 여름 김애란 | 문학동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등 주요 작품들을 낸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7편이 담긴 책인데 문장들이 정말 좋아요!" - h********님의 추천 도서 02.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 문학동네 "첫 작품 <쇼코의 미소>로 독자들과 문학계의 큰 사랑을 받은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단편 소설집으로 다소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 시*님의 추천 도서 03.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 창비 "상상력이 기발한 정세랑 작가의 단편들이 담긴 소설책으로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사 등 다양한 소재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어요." - 시*님의 추천 도서 04.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달콤한 나의 도시>로 기억되는 정이현 작가의 초창기 단편집으로 가볍고 재치있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C**님의 추천 도서 05. 파인 다이닝 노희준 외 6명 | 은행나무 "7명의 작가들이 각양각색의 개성있는 음식 이야기를 다룬 테마 소설집으로 제목이 곧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책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 추천드려요." - 황**님의 추천 도서 더 많은 소설을 추천 받고 싶다면- >> http://bit.ly/2WEcqUy
차분하게 뜨겁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영화 솔직후기/리뷰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대만여행 다녀오자마자 피곤함이 가시기도 전에 바로 영화관부터 갔네요ㅋㅋ 하지만 아직 밀린 영화도 많고...볼 영화도 많고... 정말! 개강만 아니면 참 좋을텐데! 오늘의 영화는 뜻깊은 오늘을 기억하는,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건 국뽕영화가 맞아요. 한국인이라면 안 보기 힘든 내용과 주제죠. 그러나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이 정도 작품이면 보는게 좋다는 뜻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흑백영화이지만 부분적으로 색깔이 배치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흑백에서 유채색으로 색깔이 번지는데요.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 속, 자신의 선택으로 겸허히 자유를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스스로 선택한 죽음도 자신의 자유라고 여겼던 유관순 열사의 감정이 잘 드러났습니다. 그녀도 분명 그저 순수한 여고생이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어쩌면 스마트폰도 하고 SNS에 글도 올리는 사람 중 한명이었겠죠. 그만큼 지극히 평범하고도 어린 한 여학생의 얘기었기에 내용은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요즘 기성세대 분들은 젊은 세대를 보고 많은 불만을 드러내곤 합니다. 우리 때는 저러지 않았다, 요즘 애들은 열정과 끈기가 없다고들 하십니다. 설령 정말 그렇게 보이더라도 모든 젊은이들이 한심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그 난세에 태어났다면 유관순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을테니까요. 영화는, 유관순은, 모두가, 누구나, 만세를 외칠 자격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작품을 보면 정말 그 순간에는 유관순조차 겁을 먹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실을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가혹한 일제의 억압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고 유관순의 이야기를 가장 진정성있게 담았습니다. 상업적인 면모 없이 담담하게 얘기했기에 이 작품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저는 고아성이 유관순에 어울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누구나 생각은 다르기에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만, 저는 고아성의 유관순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앳되고도 강렬한, 여리고도 우직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작품을 다 보면 일본에 화가 나고 지나간 역사에 한탄하고 희생한 그녀가 안타까워집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억지스러운 설정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춘기의 고집이 일제에 저항하고픈 열정으로 변했다고만 보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기보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싸웠고 사람 취급조차 안 하는 일제의 악랄함을 버티지 못해 싸웠습니다. '만세'라는 같은 단어를 외쳤지만 각자의 염원은 다를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위인전을 읽기 어렵다면 이런 작품을 통해서라도 기억해주시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