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wg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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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食傷)하다.

음식이 상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꾸 먹어 물리다 또는 어떤 일이 반복되어 질리다는 뜻이네요.
서울사람들은 이상도 하지, 진짜 음식이 못 먹을 상태가 '식상하다'인데 '음식이 상했다'로 쓰네요.
'물리다'는 '다시 대하기 싫을 만큼 몹시 싫증이 나다.' 이고 '질리다'는 '어떤 일이나 음식 따위에 싫증이 나다.' 로 동의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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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이유는?
예전부터 ‘설’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더 민족 최대의 명절인지 궁금했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나요? 전혀, 네버, 안 궁금하셨다고요?^^ 우선 추석이 설날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건 가짜 오리지날, 즉 ‘가리지날’입니다.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관청에선 휴일 규정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음력 1, 8, 15, 23일이 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죠.  당시 동양엔 요일 개념이 없었는데도 7일 간격으로 놀았습니다. 하늘에서 붙박이로 있는 별(항성)을 제외하고 태양 - 달, 5개 행성(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 등 7개 천체만 움직이기 때문에 7을 신성시 여겨 날짜 간격 단위를 7로 했기에 서양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 서양식 요일 개념이 적용되면서 기독교 세계처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게 되었지요. 당시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구식 요일 제도를 받아들임에 따라 일본이 번역한 대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순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이름으로 요일명을 정했는데요.  중국은 이와 달리 평일 5일을 1 - 2 - 3 - 4 - 5 요일로 달리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선시대 휴일이 현재보다 적어 보이지만, 항상 예외가 있는 법.  춘분, 동지 등 24절기에 해당 하는 날도 놀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 외에도 임금님 생일, 선대왕 기일 등 별도의 임시공휴일도 있었기에 한 달에 최소 6~7일 이상 휴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연간 100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 5일제 시행 전 대한민국 직장인보다 더 많이 쉬셨습니다. 대신 노는 날과 절기일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는 거였지요.  대체휴일 제도가 생기기 전엔 일요일과 명절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던 것과 동일하지요. 특히 세종 당시엔 당직 개념이 있어서 궁인들이 휴일에 근무하면 평일 대체 휴무가 가능했고, 아이 출산 시 관노이더라도 출산 여성에겐 90일, 남편도 15일 의무 휴일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만,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은 매달 8, 23일 이틀만 휴일이었다네요.(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요. ) 그 외에 조선시대 당시 휴일로 지정된 명절은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설(1월 1일), 정월대보름(1월 15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흔히 정월대보름 대신 한식이라고 알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5대 명절 운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나마도 고려시대 9대 명절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명절마다 쉬는 기간이 달랐으니, 설날은 7일 연휴(오~. 스케일 크신 조상님들. ), 정월대보름과 단오는 각 3일간 쉬었지만, 추석은 딱 하루만 쉬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 > 정월대보름 = 단오 > 추석 순으로 그 비중이 달랐던 겁니다. 이는 당시 상황상 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의 시기는 겨울이거나 여름이어서 날도 궂으니 집에서 쉬라는 따뜻한 배려인 반면(특히 1월의 경우엔 거의 절반 가까이 휴일이었어요.) 한창 수확을 하는 가을철인 추석은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겁니다.  실제로 일부 영남지역에선 음력 8월 15일엔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아 음력 9월 9일인 중구에 차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 타 명절은 그냥 넘어가는데 왜 추석은 갑자기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2 TOP’으로 격상되었을까요? 이는 구한말 서양 문명과의 만남이 원인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 : “우리 미국엔 조상과 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있다. 조선에도 이 같은 명절이 있는가?” 우리 조상님 : “이 넘들이……. 우릴 뭘로 보고~. 너넨 겨우 1620년부터 그거 했냐? 우리는 1800년 전 신라 유리왕 때부터 한가위란 추수 명절이 있는 뼈대 있는 나라이니라. 에헴~!” 이러면서 추석 자랑을 한 거죠.  이처럼 서구 문명과 접한 동양 3국 모두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중국 중추절(仲秋節), 일본 오봉(お盆) 등 자기네 가을 명절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감사를 표시하는 민족의 대표 명절로 격상시킨 겁니다.(가끔 추석을 중추절이라 부르시는데, 그건 중국 명절 이름이에요.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은 춘절(春節), 음력 8월 보름을 중추철이라고 해 두 명절 이름을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유이하게 설날과 추석이 민족 고유의 명절로서 3일 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도 글로벌 경쟁에 따라 그 위상이 바뀌었다는 거, 재밌는 현상이죠?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과학 경제 편-
우리가 알고 있는 삼고초려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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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 살리기]1-77 따따부따
[토박이말 살리기]1-77 따따부따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따따부따'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왜 따따부따 남의 일에 참견이냐?"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시비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또는 그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를 했습니다. 보기월로 "운전사는 그에게 시비를 걸듯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따따부따 따지는 것이었다."를 들었습니다. 두 곳의 풀이를 보면 '딱딱한 말씨로 따지는'이 같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다투는 소리'라고 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시비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비하다'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다툼을 하다'는 뜻이니까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따따부따: 딱딱한 말씨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는 소리. 또는 그런 모습. 부드러운 말씨로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엄청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토론'이라는 것을 할 때 서로 옳다는 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절로 딱딱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따부따'라는 말에 '따'가 세 셈이나 나오는 것 '딱딱한' 말씨와 옳고 그름을 '따지다'의 '딱딱과 따'가 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때로는 이렇게 따따부따 잘 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둘레에 따따부따를 잘하는 또는 즐겨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딱딱한 말씨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다'는 뜻으로 '따따부따하다'는 말도 쓸 수 있으니 알아 두시면 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가을달 스무이레 한날(2021년 9월 27일 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따따부따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 <여성부가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 ㅋㅋㅋㅋㅋ> 한국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한 영국의 '마이클 브린'이 쓴 "한국인을 말한다"...에서 한국인은 부패, 조급성, 당파성 등 문제가 많으면서도 ...또한 훌륭한 점이 정말 많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아직도 휴전 중인 나라. 여성부가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 노약자 보호석이 있는 5개국 중 하나인 나라. 지하철 평가 세계1위로 청결함과 편리함 최고인 나라. 문자 없는 나라들에게 UN이 제공한 문자는 한글이다. (현재 세계 3개 국가가 국어로 삼고 있음.) 유럽 통계 세계 여자 미모순위 1위인 대한민국. 미국 여자 프로골프 상위100명 중 30명이나 들어간 나라. 인터넷,TV, 초고속 통신망이 세계에서 최고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기가 센민족. 한국인은 강한 사람에게 꼭 "놈"자를 붙인다. '미국놈, 왜놈, 떼놈, 러시아놈'....등 무의식적으로 "놈"자를 붙여 깔보는게 습관이 됐다. 세계 각국 우수대학의 우등생 자리를 휩쓸고 있는 나라.(2위 이스라엘. 3위 독일)약소국에겐 관대. '아프리카 사람, 인도네시아사람, 베트남 사람' 등 이런 나라엔"놈"자 붙이지 않는다. 한국의 산야는 음양이 강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강할 수 밖에없다. 강한 기는 강한 종자를 생산한다. 한국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기가 강한 민족이다. #대한민국국민은위대하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젊었을 때는 인생이 무척 긴 것으로 생각하나 늙은 뒤에는 살아온 젊은 날이 얼마나 짧았던가를 깨닫는다.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며 세월은 그대를 기다려주지 아니한다.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모은 재물을 지니고 저승까지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삼계의 윤회하는 고통 바다의 대 죄인은 보잘 것 없는 이 몸뚱이 다만 먹고 입는 세상사에 항상 분주하여 구원을 찾지 않네 그대여 일체 세상사 모든 애착을 놓으라. ​ ​세상일 즐거워 한가롭더니 고운 얼굴 남 몰래 주름 잡혔네 서산에 해 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같음을 깨달았느냐? ​​하룻밤 꿈 하나로 어찌 하늘에 이르리요. 몸이 있다하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아 허물어지고 정신이 떠나 모두 흙으로 돌아가리니 잠깐 머무는 것 무엇을 탐하랴. ​ ​오늘은 오직 한 번 뿐이요 다시는 오지 않으리니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몸이 늙고 병들어 떠나기 전에 오늘을 보람 있게 살자. ​ ​사람은 남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데는 무척 총명하지만 자기 비판에 있어서는 어둡기 마련인 것 남의 잘못은 꾸짖고 자기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되는 것 느끼기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나니 즐거운 시간은 천년도 짧을 것이며 괴로운 시간은 하루도 천년 같은 것 ​ ​그러므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것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사람이 어찌 행복하다 하리요. - 마음에 등불 중에서 -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왔다빈손으로가는인생
국제 알 권리의 날
국제기념일 국제 알 권리의 날 (International Right to Know Day) 9월 28일은 ‘국제 알 권리의 날’(The International Right to Know Day)이다. 2002년 불가리아에서 알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되었다. 당시 미국, 멕시코, 루마니아 등 15개국이 동참했다. 불가리아에서는 해마다 각 분야에서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기여한 대상을 선발해 시상식을 갖는다. 수상자에게는 투명하게 열린 정보를 뜻하는 황금열쇠 트로피를 수여한다. 반대로, 알 권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대상에게는 언론 통제의 의미를 가진 자물쇠 상을 건넨다. 알 권리는 개개인이 정치·사회 등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 용어는 1956년 미국 AP통신사의 쿠퍼(Kent Cooper)가 저서 ‘알 권리’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인 사회의 필수 요소로 강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1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여기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 접근이 가능해야 비로소 자유로운 의사 형성이 가능하다. 즉,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관 등의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1998년부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사회의 각종 정보를 전달하고, 부조리한 사회 문제를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국제기념일 #국제알권리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