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to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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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수 만명이 실종되고 있다

주민등록이 없으니 신분 세탁도 충분히 가능하겠죠. 돈만 있으면...
이걸 21세기식 할복이라고 부른다니
한 두명도 아니고 수 만명이라니
정말 신기한 세상ㄷㄷ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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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종자들이야...
책임감이 없는 거 아닌가? 가족은?
영화 분노 보니까 그게 실화라던데 . 뜬금 신원불명의 사람이 이웃이됨.
남은 가족보다 내 명예와 자존심이 더 중요한가?
일본, 중국발 소식은 믿고 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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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와 괴담 유튭에서 쓰나미 생존자 이야기 듣는데 존나 무서워;;
오늘은 괴담은 아니지만 괴담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이 글 보고 나서 원본 영상 보는데 어휴.....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군요....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댕주작 = 강아지, 펄럭 = 한국, 여창조주 = 엄마 1n년 전 쓰나미 직격으로 피해입은 쪽본 지역에 살고 계셨던 펄럭 분 사연인데 당시에 슈퍼에서 장 보고 있었는데 건물이 흔들렸다고 함 근데 이분은 지진을 못 느끼고 걍 서서 어 왜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지? 이러고 있는데 점원들이 계속 얼른 가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지름 그래서 일단 얼떨떨한 상태로 바깥에 나왔는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더라는 거 그때가 3월이었는데 날씨가 존나 이상하게 급변한 거… 그래서 이상하다; 왜 이러지? 무슨 일이지? 이러면서 정신없이 주차해둔 차로 갔는데 차 근처에서 웬 여자 목소리가 들림 저 좀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제 손 좀 잡아주세요 누가 막 이렇게 애원하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고 목소리만 들리더라는 거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보이질 않아서 일단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켜니까 앞이 보임 근데 앞으로 나갈 땅이 없는 거; 정신 차리고 보니 차 바로 앞에 씽크홀처럼 구멍이 푹 패여 꺼져 있었음 그래서 내려서 들여다보니까 그 틈에 웬 아주머니가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음 아까 들었던 목소리가 이 아주머니 목소리였던 거.. 끌어 올려서 구해드리고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옴 집이 걍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창문이 다 깨지고 현관문도 찌그러져서 반쯤 열려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함 동네 주민들은 다 나와서 웅성거리고 있고.. 근데 문득 집에 댕주작을 혼자 두고 나왔던 게 생각나서 찌그러진 현관문을 비틀어서 열고 댕주작을 꺼내서 차에 넣으심 그리고 웅성거리는 동네 주민들 사이에 껴서 무슨 일인지 얘기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ㅇㅇ엄마, ㅇㅇ이는 학교에서 왔어? 라고 묻더라는 거 그제서야 야, 나 아들이 있었지? 생각이 나더라고 함 그래서 정신없이 아들 다니는 학교로 가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음 그래서 일단 공터에 대충 주차를 해놓고 뛰어서 학교까지 가서 애를 만나고, 음식이랑 옷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돌아옴 근데 아까도 그러고 있었던 동네 주민들이 여전히 거기 서서 우왕좌왕하고 있더라는 거 그때 누가 뛰어오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쓰나미 오니까 ㅃㄹ 높은 지대로 피신하라고 소리소리를 지름 근데 그분들은 (노년층이었대) 어쩌지, 대피를 해야 하나? 이러고 머뭇대고 있는데 사연자는 쓰나미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단 직감이 들더래 그래서 일단 차를 몰고 동네에 있는 큰 쇼핑센터로 가야겠다, 거기가 지대가 높으니까 거기 가야겠어 이러고 나감 그래서 운전을 해서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차들이 안 움직임 이분이 타고 있던 차가 suv처럼 높이가 좀 있는 차여가지고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서 보니까 차들 앞으로 웬 새까만 벽이 밀려오고 있더라는 거 무슨 말도 안 되게 커다랗고 까만 구름처럼.. 근데 다시 보니까 그 벽 위에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뭐가 떠밀려 오는 모습이더래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들면서 저게 쓰나미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앞뒤에 있는 차들을 들이받아서 밀고 방향을 틀어서 길 반대편에 있던 오토바이 대리점으로 감 그게 좀 큰 대리점이라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 차를 대고 내리는데 그 대리점 안에서 직원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나오더니 비상구를 열어주면서 이 문 통해 나가면 논이 있는데 그대로 뛰어가면 학교니까 학교로 피신하라고 도와줌 그래서 거기를 지나려는데 논에 아무것도 없고.. ㄹㅇ 발이 푹푹 빠지는 뻘이었다는 거 댕주작은 복조리처럼 생겨서 끈 잡아당기면 입구를 조일 수 있는 가방에 넣어서 손에 들고, 아들이랑 손 붙잡고 그 뻘을 건너는데 애가 눈에 미끄러져서 넘어져서 무릎이 푹 꺾임 아들 손을 잡아끌면서 일어나, 일어나 이러고 있는데 그 순간 애가 뒤를 슥 돌아보고는 갑자기 엄마!!! 이렇게 비명을 지르더니 그때부터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더라는 거 사연자는 너무 초조해가지고 일어나, 일어나, 가야지 이러는데 애가 멍한 목소리로 어, 어 이렇게 대꾸만 하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질 않더래 그래서 사연자도 뒤를 돌아봤더니 방금 지나온 큰길로 차들이 막 떠내려가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창을 막 두드리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더라고 함.. 애가 그걸 보고 넋이 나가서 몸이 굳어버린 거 그리고 쓰나미는 계속 몰려와서 논으로도 들어오려 하고..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음 근데 그런 상황에 처라면 인간이 자기 목숨을 포기해버리는 게 말도 안 되고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더니 쉽게 포기가 되더라고 함 그래서 아들 앞에 같이 앉아서 아들 머리를 자기 무릎에 묻고 댕주작 넣어놓은 가방끈으로 아들이랑 자기 손을 묶은 다음에 (시신이라도 흩어지지 않고 같이 발견되길 바라서) ㅇㅇ아, 이제부터 몸이 엄청나게 아파지고 추워질 거 같아 근데 절대 고개 들지 마, 엄마랑 약속해 이렇게 얘기하는데도 아들은 넋이 나가서 그냥 어, 어 이렇게 기계적으로 대답만 하더라고 함 그래서 아들이랑 같이 앉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게 사연자가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ㅈㄴ 못했대 근데 아들도 이분 닮아서 달리기를 진짜 못하더라는 거 그게 생각나서 ㅇㅇ아,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진짜 닮았어 엄마도 달리기를 너무 못해서 펄럭에 사시는 니네 할머니 소원이 운동회에서 엄마가 공책 타오는 거였어 이런 얘기를 해주는데 애가 갑자기 엄마, 그럼 뛰어! 이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뛰더래 그래서 아까 묶은 끈을 어떻게 끊어서 아들 먼저 앞으로 보낸 다음에 쫓아가는데 이제는 이분이 힘이 다 풀려가지고 제대로 속도가 안 나더라는 거 발이 안 떨어지더래 근데 애는 계속 도망치게 해야겠으니까 ㅇㅇ아, 누가 먼저 학교 도착하는지 내기하자 근데 뒤돌아보면 반칙이야 이러면서 자기는 서 있고 애는 먼저 보내는데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니까 애가 뒤를 돌아보게 된 거 그러더니 엄마, 쓰나미가 오고 있어! 이러면서 다시 사연자 쪽으로 되돌아오더래; 그래서 어? 여기로 오면 안 돼! 이렇게 소리를 지르려는데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들 쪽으로 뛰고 있더라고 함 아까는 그렇게 발이 안 떨어지더니…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학교로 대피를 했는데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도 사람들이랑 차랑 막 범벅이 돼서 쓸려가더래 속수무책으로.. 근데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겠지만 당시에는 그걸 보면서 아무 감정이 안 들었다고 함 그냥 어, 사람들이 떠밀려가네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런 생각만 무상하게 들고.. 심지어 아까 아들 데리러 학교로 달려가던 중에 만나서 잠깐 대화 나눴던 아들 친구네 여창조주랑 아들 친구가 떠밀려서 실종? 사실상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아 그랬구나.. 이런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고 함 그리고 그제서야 알게 된 건데 처음으로 쓰나미를 목격했을 때 까만 벽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고 했잖음 그게 막연히 쓰나미 하면 물이 떠밀려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1차로는 물이 밀려들어 오고 2차로는 뻘이 밀려오는 거라 함; 사연자가 본 건 2차로 온 쓰나미였고 그래서 물이 아닌 그 흙이랑 뻘같은데 8, 물은 2 정도로 섞여서 뻘이 사람이며 차며 다 쓸고 내려갔던 거.. 이거 뒤로도 오싹한 얘기 많았는데 다 옮기진 못하겠고 걍 저 앞부분이 진짜 존나 현실 무서움이었음.. ㅠㅠ 그리고 저 사연자가 쓸려 죽어가는 사람들 보면서도 아무 감정이 안 들었다는 부분에서 생각난 게 저런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뇌가 생존을 위해 전두엽의 활동을 멈춰버리는데 (공포 반응이라고 한다고 함) 그러면 당장 직면한 사건이랑 관계없는 일에 대한 생각은 전면차단된다고 함 그래서 저 사연자도 초반 부분에서 순간 자기한테 자식이 있었는지조차 잊었던 것 같음..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싸우거나 도망가야 생존 확률이 올라가니까 근육은 바짝 긴장되고 허기 같은 기본적인 감각도 잊혀진다는데 사연자도 그때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고립돼 있으면서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고 함.. 근데 그러면서도 기이하게 느껴졌던 게 그 학교에 본인 아들 포함해서 어린애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많은 애들 중에 한 명도 배고프다고 보채질 않더라는 거 심지어 댕주작까지도;.. 이 부분 들으면서 ㄹㅇ 생존본능이라는 게 진짜 동물적이고 본능에 새겨진 감각이구나 싶었음 새삼.. 출처 : 해연갤 + 영상으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ㄷㄷ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쏘우 돋는 은행강도 사건 (초스압 주의)
2003년 8월28일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시에 있는 한 은행에 40대 남자가 짤막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이마 위의 머리가 빠져 없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이 남자는 창구로 다가가서 직원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행 금고를 열 수 있는 직원을 불러 신속히 이 가방에 25만 달러를 채우시오. 허용된 시간은 단 15분이오." 은행 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무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쪽지를 내밀며 창구 직원에게 한 행동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 남자의 목 밑 옷 속에는 무언가 두툼한 것이 달려 있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나타난 것은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였다. 그는 이것이 폭탄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은 지금 당장은 금고를 열 수 없다고 말하고, 수납대에 있던 현금을 모아 남자가 갖고 있던 가방에 8,702달러를 채워 돌려주었다. 남자는 가방을 받아들고, 창구 앞에 있던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은행을 나갔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지오 메트로 자동차에 올라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는 그다지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그가 은행을 떠난 지 20여 분 가량 지나서였다. 도주하는 차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의아스럽게도 그는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이리떼처럼 몰려든 경찰은 그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길에 주저앉혔다. 즉시 연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목에 달린 폭탄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게 진짜 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고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당시 46세로 '마마 미아 피자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브라이언 웰스였다. 그는 같은 가게에서 30년 가까이 배달원으로 근무해 온 성실한 종업원이었다. 과거 10년 동안 그가 업무 시간을 어긴 일은 단 한 번인데,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였다.  웰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은행 강도가 아니라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설명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을 받고 피자 배달을 갔다가 흑인 세 명에게 인질이 되었다는 것, 그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자신의 목에 폭탄을 부착했다는 것, 그 상태로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돈을 가져오고 지시에 따르면 폭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지시를 어길 경우 언제든지 목 밑의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 "이건 진짜에요! 곧 터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경찰은 웰스를 길 위에 앉혀둔 채, 폭발물 처리반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911로 '폭탄으로 무장한 은행 강도'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자신들은 거리를 둔 경찰차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웰스는 "사장님에게 연락했나요?" 하고 소리쳐 묻기도 했다. 근무 이탈을 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25분이 지나갔다. 주저앉아 있던 웰스의 목 밑에 달린 금속 상자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웰스는 무의식적으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폭탄은 그의 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진짜였던 것이다.  웰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하기 3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 --- 경찰은 웰스의 차를 수색하여 증거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할 때 짚고 있었던 지팡이가 나왔다. 이 지팡이는 정밀하게 개조된 샷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차 안에서 발견된 범행 지시서였다. 손으로 공들여 쓴 이 지시서는 폭탄에 묶인 웰스가 스스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쏘우>의 게임 지시문 같은 이 지시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 XXXX 거리에 있는 OOO 은행으로 갈 것. 은행 안내원이나 창구 직원에게 요구 조건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넬 것. 경보를 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지시된 장소로 서둘러 와서 다음 지시서를 찾을 것. 각각의 장소에는 다음 장소를 알려 주는 지시서가 있으므로 이를 찾아야 함.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열쇠 몇 개와 자물쇠 번호를 하나씩 구하게 되며, 이것들이 모두 있어야 목에 달린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음. 당신은 단순히 인질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중에 처벌을 받지 않을 것임. 가장 중요한 사항: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전화하지 말 것. 당신의 회사, 경찰,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알리면 바로 죽게 됨. 우리가 경찰차나 경찰 헬리콥터를 목격하게 되면 당신을 죽일 것임. 당신의 목에 채워진 강력한 폭탄은 오로지 우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를 때에만 제거될 수 있음. 스스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지시를 따르기 위해 허용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임. 꾸물거리지 말 것. 폭탄은 55분 뒤에 폭발함. 은행에서 20분 이상 지체하지 말 것. 다음 지시 장소로 오는 데 25분 걸릴 것임. 따라서 여유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없음. 이 시간은 다음 지시서를 찾는 데 써야 함. 첫 번째 열쇠를 찾으면 폭발 시간이 연장될 것임. 우리의 지시 사항을 잘 따른다면 열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며, 돈이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된 뒤 마지막 열쇠와 자물쇠 번호를 받을 수 있음. ... (하략) 지팡이 샷건에 대한 지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갖고 조용히 은행 안으로 들어갈 것. ... 협조하지 않거나 은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것. 무기 사용 설명서는 방아쇠 근처에 달려 있음." 지시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쏘우>의 지시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에게 각 단계별로 시간 제한을 두고 'mission'을 수행하게 한 것이나, "It is your choice to live or bring death" 같은 문구가 있다거나 하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이 첫 번째 지시서의 맨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ACT NOW, THINK LATER OR YOU WILL DIE!" 무엇보다, 웰스의 목에 부착된 폭탄이 존 크레이머가 희생자들에게 덧씌운 기기묘묘한 장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쏘우> 1편은 2004년에 개봉되었으므로 2003년에 벌어진 이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다.) (복원한 폭탄) 경찰 조사 결과 이 폭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수갑과 같은 형태로 채워지는 강철 고리로 목에 걸리도록 되어 있고, 그 아래 금속 상자에 6인치짜리 파이프 폭탄 두 개를 삽입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두 개의 작은 주방용 아날로그 시계와 한 개의 디지털 시계로 이루어진 시한 장치가 복잡한 잠금 장치와 함께 장착되어 있었다.  전기선도 얽혀 있었는데, 이 전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해체하는 사람을 혼동시키기 위해 부착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공작 기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공들여 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 ** --- ** --- 경찰은 단서를 찾기 위해, 웰스에게 내려진 지시 사항대로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시서는 은행에서 돈을 확보한 뒤 차를 타고 인근의 맥도널드 식당으로 오도록 하고 있었다. 식당 입간판 밑 화단의 굵직한 돌 하나에 다음 지시서가 테이프로 붙어 있고, 이 지시서는 다음 장소를 다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의 나무 밑 상자에서 찾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웰스가 경찰의 제지를 받은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이 상자를 찾는 도중이었다.  사건 직후 경찰은 근처에서 문제의 상자를 발견했으며, 그 안의 지시에 따라 다시 2마일 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다음 지시서가 들어 있어야 할 병을 찾았다. 병은 발견되었지만,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이 '목숨을 건 보물찾기'는 범인들이 웰스를 지켜보며 단계별로 그에 한 발씩 앞서 예정된 장소로 가서 지시서와 열쇠들을 숨겨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웰스가 죽고 경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안 범인들이 지시서를 계속 묻어 둘 이유는 없었다. 다시 말해 웰스가 죽은 현장 부근에서 범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보물찾기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웰스가 일하던 피자집을 조사했다. 그 결과 특이한 사실이 두 가지 밝혀졌다. 첫째, 사건 당시 웰스가 입고 있던 옷은 그가 피자 배달을 나갈 때 입은 옷이 아니었다. 웰스는 사망 당시 위에 티셔츠 두 개를 입고 있었다. 속의 티셔츠는 그의 것이었지만, 그 위에 낯선 티셔츠를 하나 더 입고 있었던 것이다. 웰스의 친지들은 모두 이 티셔츠가 웰스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범인들이 웰스에게 폭탄을 부착할 때 입힌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의문의 티셔츠는 '게스(GUESS)' 로고가 크게 새겨진 것이었다. 마치 'Guess who we are!" 하고 도발적으로 소리치는 듯한 모양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사실은 그가 피자 배달을 하러 나간 마지막 주문자의 주소였다. 소시지와 페페로니 피자 두 개를 주문한 주문서에 기록된 주소를 따라가 보니, 나타난 것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라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 등성이의 텔레비전 방송 중계탑이었다. 비포장 도로로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범인들이 피자를 주문하면서 주소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중계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웰스가 신고 있던 신발의 족적과 그의 차 타이어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과는 별도로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조용한 도시 이리 시의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피자 배달을 나갔다가 괴한들에게 위협을 받고 폭탄(collar bomb)을 목에 차게 된다. 시한 장치가 된 이 폭탄은 웰스가 괴한들의 지시를 정확히 따라 은행 강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제거할 수 있다. 웰스는 은행 강도를 수행한 뒤 단계별로 제공된 지시서에 따라 열쇠를 찾는 도중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 폭발물 처리반이 오는 도중 웰스의 목에 달린 폭탄이 폭발하였으며, 웰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흥미로운 사항들이 밝혀졌으나,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웰스의 사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폭발물 처리반) (웰스에게 부착되어 있던 실제 목 폭탄 장치의 일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의 은행 강도 및 폭발 사망 사건은 조용한 이 도시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에, 그리고 그 다음 날의 조간 신문에 크게 보도되며 지역 사회를 흔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지역 신문의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 한 팀이 문제의 피자 배달지인 야산 텔레비전 중계탑 현장을 취재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중계탑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노란 색 줄이 둘러쳐 있었다. 증거 유지를 위해 경찰이 봉쇄를 해 둔 것이었다. 낙심하여 주변을 둘러보던 두 사람의 눈에 인근에 있는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중계탑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 집 뒤꼍을 통해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중계탑 주변을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외딴 집 마당에서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멜빵 청바지를 입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두 기자가 인사를 하자 남자는 자신을 빌 로드스타인이라고 소개했다. 로드스타인은 바로 전날 자기 집 뒷산을 경찰이 수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중계탑 현장을 확인하는 데 안달이 났던 취재진은 현장으로 가기 위해 로드스타인의 집 뒤꼍을 이용해도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앞서서 길을 인도했다.  세 사람은 빽빽히 자란 풀숲을 헤치고 중계탑 방향으로 15분 가량 나아갔으나, 현장을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데 실패했다. 두 기자는 취재를 포기하고 로드스타인의 집을 떠났다.  당시 59세였던 빌 로드스타인은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아 온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마치 영문학과 교수처럼 아주 유식한 단어를 써서 우아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말(영어)뿐 아니라 불어와 헤브루어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로드스타인이 아주 잠깐이나마 언론과 조우하게 된 것은 우연히도 자기 집 뒷산의 중계탑이 웰스 사건과 관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연한 사실을 빼면, 그는 들판의 외딴 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조용한 삶을 사는 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 사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과는 관련 없는 자기 나름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비밀은 웰스 사건이 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그가 911로 긴급 전화를 하면서 양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OOOO 거리 XXX 번지의 집 차고에 냉동된 시체가 있소! 냉동고 안에 시체가 있단 말입니다!"  로드스타인은 911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신고를 했다. 그가 말한 주소는 다름 아닌 자기 집 주소였다. 경찰이 달려가서 확인해 보니 꽁꽁 언 한 남자의 시체가 로드스타인의 차고 안 냉동고에 들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다.  경찰에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그동안 이 시체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아 왔으며,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서까지 써 두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의 집 책상 서랍에서 그가 썼다는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서 그는 이 얼어붙은 시체가 제임스 로든이며, 자신이 로든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그의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웰스 사건과 관련이 없다." 로드스타인이 제임스 로든을 죽이지 않았다면, 로든의 시체는 어떻게 해서 로드스타인의 집 냉동고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인 8월 중순, 로드스타인은 과거에 여자친구로 사귀었던 매조리 암스트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암스트롱은 당시 함께 살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과 돈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레밍턴 엽총으로 로든을 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체를 숨겨 둘 장소가 필요하다며 로드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로드스타인은 과거의 애인을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10마일 정도 떨어진 암스트롱의 집에 가서 로든의 시체와 살해에 사용된 총을 가져 왔다. 시체는 냉동고에 넣었으며, 엽총은 그 뒤 며칠에 걸쳐 모두 녹여서 작은 금속 조각들로 만든 뒤, 인근 마을 이곳 저곳에 뿌려 흔적을 없앴다. 시체 역시 잘게 갈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로든의 시체는 그냥 그렇게 로드스타인의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다섯 주 동안이나 그의 차고에 들어 있는 시체가 무섭기도 했으며, 자신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암스트롱이 어떤 해꼬지를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가 911로 자진해서 신고를 한 것은 그런 정신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이 신고를 한 바로 다음 날 매조리 암스트롱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제임스 로든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사건은 깨끗하게 끝난 듯 보였다. 로든 살해 사건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잡혔으니까. 동거남을 살해한 암스트롱은 재판 끝에, 1년 4개월 뒤인 2005년 1월에 선고 판결을 받았다. 암스트롱측은 살해를 시인했으나,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걸고 넘어지려 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년형을 선고했다. 암스트롱은 주립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 ** --- ** --- 한편,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은 사건 당시 남은 여러 가지 물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 즈음 웰스 사건은 미제 사건인데다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FBI가 담당하고 있었다.  2005년 4월 어느 날, 웰스 사건을 담당한 FBI 수사관에게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 속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독립된 살인 사건으로 처리되었던 암스트롱의 제임스 로든 살해 사건이, 사실은 웰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알려졌을까. 얼마 전에 주 경찰관은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를 찾아가 암스트롱을 참고인으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시체 처리를 도와주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로드스타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유서에 쓴 내용은 모두 자신과 치밀하게 논의한 끝에 작성한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연락을 받은 FBI 수사관들은 즉시 주립 교도소로 달려가 암스트롱을 면담했다. 암스트롱은 사실을 털어 놓는 대가로 조건을 달았다. 그녀가 수감되어 있는 주립 교도소로부터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리 시에 가까운 작은 교도소로 옮겨 준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주립 교도소 중 일부는 중범죄자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이른바 maximum security 수감 시설이다. 이에 비해 소규모 지역 교도소는 훨씬 통제가 덜하므로 지내기가 편하다.) --- ** --- ** --- 암스트롱은 무서운 여자였다.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에,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당시 남자친구에게 총을 여섯 발이나 쏘아 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며, 어쨌든 배심원이 이를 인정함에 따라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번에는 암스트롱의 남편이 병원에 실려 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뇌출혈로 자연사한 것으로 소견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특별한 부검 조사 없이 자연사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암스트롱의 고등학교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는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 박사로 평판이 자자했으며, 특히 문학, 역사, 법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편집증과 자기애도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의 집을 수색하던 경찰이 온 집안에 널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려 180kg의 버터와 320kg의 치즈가 썩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20년 전의 남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될 때, 심리학자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7번이나 밝혔다. 법원에 의해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암스트롱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목 폭탄 사건에 관련되었다면 그런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되었다. 스스로 똑똑한 데 자부심이 있고 자기과시적이며 정서가 불안한 그녀가 그런 엄청나고도 자랑스러운 비밀을 오래 간직할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웰스 사건과 관련한 FBI와의 면담에서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그녀가 목 폭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 모의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방용 시계들은 자기가 주었다는 것, 그리고 웰스가 은행 강도를 벌일 때 자신이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담하고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은행 강도 계획은 대체 누구에 의해 계획되었단 말인가. 암스트롱은 텔레비전 중계탑 부근에 사는 로드스타인이 바로 그 주모자라고 지목했다. 모든 일은 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냉동 시체를 신고한 것도 웰스 사건을 서둘러 덮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암스트롱의 진술에서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질이 되어 목에 폭탄을 차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은행 강도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불쌍한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사실 인질이 아니라 범행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 ** --- ** --- 2005년 5월, 미궁에 빠졌던 웰스 사건의 미스터리는 암스트롱의 돌연한 자백으로 인해 일순간에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빌 로드스타인을 불러다가 자백만 받으면 모든 일이 종결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이미 10개월 전, 그러니까 웰스 사건이 발생한 2003년 8월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에 림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목 폭탄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것도 완전 범죄라면 완전 범죄일 것이다. --- ** --- ** --- 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 ** --- ** --- 2005년 말,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피자 배달원 웰스(사망), 중계탑 옆집 로드스타인(사망), 무서운 여자 암스트롱, 그녀의 동거남인 냉동 시체 제임스 로든(사망, 실제 가담 여부는 불명확)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이 사건 모의에 가담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비전 수리공이었다가 마약 판매상으로 변신한 케네스 반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였다.) 그는 암스트롱의 또다른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남자 관계도 상당히 복잡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반스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사람은 그의 처남이었다. 반스는 암스트롱이 자백한 사건 진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웰스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반스를 데려다 놓고, 웰스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면 형기가 대폭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하여 압박했다. 반스는 형기 연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데 동의했다. 반스의 진술은 암스트롱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반스는 사건의 모든 계획이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이 범행을 계획하고 주변의 남자들을 총동원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암스트롱은 자기 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탓에, 집이고 뭐고 다 날리고 자기에게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일을 막는 방법은 유산을 바로 상속받는 길밖에 없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가 빨리 죽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마약상인 반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은행 강도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반스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수사관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황과 잘 맞았다. 웰스 사건은 2년 반 만에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해인 2006년 2월, FBI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그녀의 변호사를 접견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므로 그녀를 웰스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하겠다고 통지했다. 암스트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으나, 특이하게도 수사에 협조하는 데에 동의했다. 현장 검증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리 시 여러 곳에서 벌어진 현장 검증에서 암스트롱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이 있던 곳과 사건 관련 장소들을 정확히 지목했다. 범행 장소를 차량으로 이동하던 도중, 암스트롱은 형을 경감해 주겠다는 증서를 써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도 그녀를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 ** --- ** --- 웰스 사건이 벌어진 지 4년 만인 2007년 7월, 연방 검찰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지부의 검사는 마침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암스트롱과 반스가 사건 관련자로 처벌되리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모자로 확인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로드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 배달원 웰스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4년 동안 수천 회의 면담과 조사를 통해, 그 동안 불쌍한 희생자로 알려진 웰스가 범행 모의의 초기부터 가담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웰스는 은행 강도 계획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인질 역할을 하기로 하는 데 스스로 동의했다고 한다. 범행 지시서를 들고 보물찾기 흉내를 내다가 돈을 다른 공범에게 전해주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보물찾기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장치였다. 범행이 끝난 뒤 웰스는 인질로 간주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었다.  그러나 웰스는 범행 계획이 진행되면서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으며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고 한다. 그가 손을 떼고 싶어 한 결정적인 계기는 목 폭탄이었다. 맨 처음 웰스가 인질 역할에 동의한 것은 목 폭탄을 가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이 폭탄은 진짜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보였던 보물찾기는 실제로 웰스의 목숨이 걸린 죽음의 레이스로 변질되었다. 웰스는 이러한 계획 변경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자기 목에 진짜 폭탄을 달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은행 강도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의 기자회견장에는 웰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검찰이 발표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고함을 치며 항의했다. 웰스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발표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 발표에는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여럿 있었다. 웰스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목숨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 당일 태연히 범행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주모자로 지목된 암스트롱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그녀가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범행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추가 사항을 발표할 때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추가 발표에서, 웰스의 보물찾기가 모조리 가짜였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폭탄을 제거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어떤 열쇠나 번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폭탄은 일단 장치된 이상 무조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웰스는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던 셈이다.  --- ** --- ** --- 2008년 9월, 마약상 반스는 웰스 사건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범행 공모와 불법 무기 혐의로 기소되어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발표에서 남았던 의문점은 함께 진행되던 암스트롱의 재판 과정에서 깨끗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밀고 당기는 씨름 끝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재판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암(腺癌) 진단이 나왔다. 법원은 그녀가 정확한 의학적 진단을 받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작년인 2010년 8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스트롱의 병세에 대한 의사의 최종 진단이 법원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3~7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검찰은 재판을 서둘렀으며, 2010년 10월에 재판이 속개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암스트롱을 기소하는 검찰의 최대이자 유일한 증인은 공모자인 마약상 반스였다. 반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반스는, 은행 강도 계획의 총지휘자가 암스트롱이며, 그녀가 로드스타인과 웰스를 끌어들여 계획에 참여시켰다고 증언했다.  로드스타인과 반스는 암스트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전 애인과 오랜 친구). 피자 배달원 웰스는? 그는 반스의 친구였다. 웰스는 사건 당시 한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반스로부터 마약을 사서 매춘부에게 주면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웰스는 반스에게 마약 대금 빚을 지고 있었다. 그도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웰스는 폭탄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범행 모의에 참가했다. 그가 폭탄이 진짜임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당일 피자 배달을 핑계로 하여 중계탑에 나가 다른 공범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공범들과 싸우며 달아나려 했으나, 누군가가 총을 겨누어 그를 제지하고 결국 목에 폭탄을 채워 버렸다.  반스가 이런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석에 있던 암스트롱은 몇 번이나 "거짓말 마라!" 하고 소리쳤다. 재판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피고 암스트롱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이틀 동안 5시간 30분에 걸친 발언을 하면서 검찰을 비웃고 조롱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장광설이 튀어나왔으며, 울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판사는 50회 이상 그녀의 발언을 제지해야 했다. 암스트롱의 주장은 자신이 주모자가 아닌 단순 협조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계속 된 그녀의 긴 발언 동안 피자 배달원 웰스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웰스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어요. 사건 당일 주변에 있었지만 누가 강도를 벌이는지는 몰랐어요. 나는 그 이름을 그가 죽던 날 뉴스에서 처음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11명과 남성 5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11시간의 장고 끝에, 은행 무장 강도, 범죄 공모, 범죄에 폭발 장치의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영화 같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몇 년 동안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암스트롱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그렇게 생각한다. --- ** --- ** --- 사건은 끝났다. 수사도 끝났고 재판도 형량이 확정된 최종 선고만 남겨 놓고 있으므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FBI의 범죄 수사 요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뒤 대학에서 범죄학을 가르치는 짐 피셔가 그다. 그는 피자 배달원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목 밑의 폭탄이 터져 길 위에서 죽었다는 엽기적인 소식을 들은 이래,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보도된 모든 기사를 분석하고 FBI가 발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왔다. 그 결과 피셔는,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매조리 암스트롱이 이 범죄의 총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셔가 주목한 것은 사건 직후 FBI의 행동분석팀에서 목 폭탄 계획을 설계한 범인에 대해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은행 강도 사건과 전혀 다르며, 여러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범인은 여럿의 범행 동기를 가졌음에 틀림없고, 그 중에서 돈은 주요 동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은행 강도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은 웰스가 실제로 돈을 가지고 나오는지,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은행 강도짓은 그저 경찰이 웰스가 소지한 지시서에 제시된 대로 허겁지겁 장소를 옮겨 가며 '보물찾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역할만을 했으리라고 분석됐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아버지를 죽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으로 단정한 검찰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FBI의 분석 보고서는 범인이 기계를 다루는 데 능하고 과학 지식이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검소한 성향의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셔가 보기에 중계탑 옆에 살던 빌 로드스타인은 이런 묘사에 정확히 맞았다. 그는 폭탄을 만들 만큼의 지식이 있었으며 (검찰도 폭탄의 실제 제조자는 로드스타인이라고 인정한다), 범행 지시서에 묘사된 것과 같은 번듯한 고급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 --- ** --- 피셔 교수에 따르면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경찰을 가지고 놀았다. 웰스에게 넘겨 준 범행 지시서를 통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추적한 끝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냉동된 시체를 신고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자기과시형 떠벌이 공범자 암스트롱을 교도소에 처넣음으로써 웰스 사건이 쉽게 누설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암스트롱 재판의 최후 신문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공들여 수행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실패하고 만 범죄극"이라고 규정했다. 만일 이 범죄의 동기가 돈을 강탈해 내는 것이었다면 검찰의 규정이 맞다. 그러나 다른 동기가 있다면? 피셔 교수는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명민함을 과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으나 인생에서 실패하고 은둔하여 사는 사람으로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드라마가 방송의 톱 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꿈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 공범을 구성했으며, 그들에게도 범죄의 일부 측면만을 알려주어 전체 구도를 모르도록 했다. 피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으로 수사도 받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완벽하게 경찰과 세상을 속인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작자입니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범죄 전문가 피셔 교수의 추정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암스트롱의 주장도 피셔의 추론에 가깝지만, 적어도 검찰과 배심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실패한 천재 로드스타인이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을까.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암스트롱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일까. 로드스타인이 죽어 버렸으므로 사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한 암스트롱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은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인 2011년 2월28일에 이리 시 지역 법원에서 열리게 된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한편 범행의 공모자이면서, 한편 피해자다. 사건 직후, 웰스의 건너집에 사는 니버 벨은 그가 은행 강도를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이웃이 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그는 천성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물질적인 데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이것은 그가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나온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며 이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 왔다. 그가 목에 폭탄을 매단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는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문 하나를 여전히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ㅊㅊ 이종 모야 ㅈㄴ 흥미진진하게 읽었네 결국 미제사건이네 대체 정답이 뭘까? 이거 넷플에 다큐도 있음 읽기 귀찮은 사람들은 다큐 틀어놓고 봐도 될듯 ㅇㅇ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실화)일본에서 싼집에 들어가면 생기는 일
지긋지긋하게 덥군요 그래도 습하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하계 올림픽 다들 보고 계신가요? 저는 꼭 제가 보면 결과가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궁금증을 최대한 참고 뉴스로 결과를 접하고 있습니다 ㅠ 더운 날씨에 모든 선수들 부상없이 돌아오시길..!!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이건 저 사람이 글쓰기 2주전에 쓴걸로 추정하는 댓글 싼집은 들어가면 안되나 봄 출처 : 디미토리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집에 혼자 있었을때 겪은 무서운 상황들
"밤에 기타 치는데 분위기 내려고 초 2개를 붙였어. 난 다른 방향을 보고 기타 치면서 창문 밖을 보고 있었고 좀 있다 뒤를 돌아봐서 초를 향해 갔는데 그 중 하나가 아예 사라진거야. 받침대는 여전히 있었는데, 녹은 촛농도 없고, 그냥 받침대 하나 덜렁 있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불 붙인지 얼마 안돼서 녹은 만큼만 있고 여전히 불이 붙어있었어. 거의 새벽 3시였는데 난 너무 무서워서 차에 타고 바로 아빠네 집으로 달려갔어." "집에서 혼자 잠들었어. 침대에서 뒤척이다, 평범하게 눈을 뜨고 바로 눈을 감았어. 그 짧은 순간에, 맹세코 누군가 내 침대 아래에 있는걸 봤거든. 난 그대로 누웠어. 눈을 감은채 깨있었지. 잠든척 하고선 방에서 숨소리나 인기척을 들으려고 했지. 너무 무서워서 눈뜨고 보질 못하겠더라, 창문 열리는 소리도 없이 누가 들어오진 못했을거라고 위안하면서 다시 잤어. 아침에 일어나니까 정문이 열려있더라. 그들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아무런 흔적도 안남겼어. 아직도 진짜 소름끼쳐." "어느 오후에 누가 우리집 문을 두들기더라. 난 계량기 측정하러 온 사람이라 생각하고, 문을 열었어. 그 뒤로 기억나는건, 두 덩치 큰 남자가 날 집으로 밀어붙이곤, 그 중 한명이 날 벽에 내다던졌어. 그러곤 날 소파에 밀치더라. 그들은 자기네들이 Hell's Angels (미국의 바이크 갱단)이라고 하곤, 내 남자친구가 마약을 너무 많이 팔아서 자기네 수익이 적어진다고 화가났다 했어. 계속 날 이웃집 사람 이름으로 부르더라. 이웃집이 마약을 판다는건 알긴 했는데. 거기 들른 사람들이 5분도 안되서 나가는걸 보고 확신했지. 난 계속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한명은 우리 집을 뒤지고, 나머지 한명은 날 소파에 박혀있게 했지.  걔네는 자기네가 잘못 찾아온걸 알았나봐, 자기네가 말한 것들이 집에서 안나왔거든. 이웃집은 단층집에 지하실이 있고, 우리집은 방 4개에 뒤에 분할된 집이거든. 난 내 메일을 보여줬지, 거기에 내 이름이 뜨니까, 그러니까 걔네는 자기네가 좆박은걸 알아차리더라.  걔네는 자기네가 이웃집 남친을 쫓아온거라 말했어, 걔가 자기 사촌을 강간해서 그랬다고. 개소린건 알았는데, 신경 안썼어. 내 돈을 털어가곤, 걔네는 나갔어. 이젠 내 현관문에 새 잠금장치를 달았어." "난 그때 21살인가 22이었고 혼자 살았어, 그리고 쾌적한 밤이면 창문을 열어뒀지. 땅에 가깝게 낮은 창문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넘어올 수 있었지, 근데 창살이 떼기 어렵고 꽤 안전한 동네에서 살아서 깊게 생각은 안했어. 담배냄새가 나서 밤에 일어났고, 불을 켜려고 팔을 뻗으니 누가봐도 사람인 것에 손이 닿았어. 그때 정신이 확 들곤, 내 안방에서 웃통을 벗은 사람이 있단걸 알았지, 담배피면서 날 쳐다보고 있었어. 그 사람한테 나가라고 소리친게 기억나, 그리고 그 사람이 날 놀라게 한 것 처럼 내가 그 사람을 놀래켰나봐,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도망치더라. 창문을 쾅 닫고 그 앞에 책장을 옮겨놨어, 그리고 아침에 나가보니 창살이 우리집에 걸쳐져있더라. 그 날 밤에는 자질 못했어, 그 뒤로 창문에 금가기라도 하면 잠을 못자. 그리고 건물 1층에 사는것도 절대 안해. 그 사람이 강도인지 강간하려 온건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진짜 소름이 끼치고 내가 일어나지 못한 새에 몇번이나 그런건지 의문하게 만들었어." (레딧 펌) 휴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죠
강간당한 딸의 복수를 감행한 어느 럭비선수 이야기.txt
2년 전 은퇴한 럭비 스타 출신의 요셉은 지금껏 살아온 필드를 떠나 보다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의 결심에 팬들은 따듯한 격려와 함께 그를 배웅해주죠. 그렇게 럭비를 떠나 가정에 충실하던 요셉에게 어느 날 거대한 비극이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지난달, 자신의 10살짜리 딸이 7명의 남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더욱이 비극적인 것은, 딸 아이가 그렇게 강간을 당한 것도 모자라 그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것이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수는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2/3에 달합니다. 남아공 역시도 예외는 아니라 전 인구의 1/10이 넘는 숫자가 에이즈 환자이며 임산부의 1/3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는 실정이지요. 게다가 민간에 퍼진 ‘처녀와 성관계를 가지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미신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오히려 강간과 에이즈의 타깃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심지어 생후 3개월 된 아이가 에이즈 환자에게 강간당한 사례조차 있으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요셉에게 내려진 이러한 비극은,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딸아이를 강간한 7명의 신원을 심지어 피해자 가족인 자신조차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알려졌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갱들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남아공의 불안정한 치안으로 인해 경찰조차 갱들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들은 갱들과 연관된 사건은 대개 흐지부지 넘어가려 들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죠. 누가 자신의 딸을 유린했는지도 알고, 당장 그놈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그 뒤에 있는 갱들이 무서워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경찰의 모습을 보고 요셉은 절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법으로 그들을 심판할 수 없다면 스스로 심판하기로 결심한 것이죠. 결국 스스로 복수에 나선 요셉은 지난 한 주동안 자신의 딸을 강간한 7명 중 3명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맙니다. 딸이 받은 고통에 분노한 부정(父情)의 표출은 엄청나서 살해당한 3명은 모두 머리가 잘린 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어처구니없는 것은 요셉의 딸의 강간 사건에는 미적대던 경찰이 이러한 요셉의 복수가 알려지자 즉각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 결국 요셉은 체포되어 버립니다. 남아있는 강간범 4명 중 한 명을 발견한 요셉이 차를 타고 가던 그를 쫓아가 도끼로 살해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이죠. 27살의 그 강간 용의자는 요셉의 도끼질에 의해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도망을 쳐서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마자 바로 출동하여 집에 돌아와 쉬고 있던 요셉을 체포하기에 이릅니다. “법이 그들을 심판하지 못했기에 내가 스스로 심판하고자 했다”는 요셉의 외침에 남아공 언론과 시민들은 일제히 동정을 표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비록 강간범이라고는 하나 3명의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한 명을 죽이려다 실패한 사실이 워낙 명백한지라 정상참작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예상되고 있더군요. 가슴 아픈 부정과 불합리에 대한 분노. 요셉의 사건은 비단 남아공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 . . . . 그러나 추후에 발표된 남아공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요셉에게는 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모든 것은 정신병을 앓고 있던 요셉의 망상이 빚어낸 참극이었다는 것. (*법정에 선 그의 아버지도 요셉은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았으며 그 부분을 정상참작해달라고 호소함) ㅊㅊ 이종 모야 반전 도랏네;;;;;;; 심지어 지가 여자 납치 강간ㅇㅇ........ 미식축구나 럭비 하던 사람 중에 경기중에 뇌에 충격 많이 받아서 정신질환 생기는 사람 많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진짜 읽다가 육성으로 헉했음
총에 맞은 아들을 안고 절규하는 아버지
희생자는 12살 미얀마 어린이로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었는데  미얀마 군경의 무차별 발포에 총탄을 맞게됨  그래서 아이 아버지가 총에 맞은 아들을 안고  급히 병원에 갔지만 결국 사망함 미얀마 군경의 경우 시민들의 저항의지를 꺾고자  일반 주택가를 향해 발포하고 있으며  특히 시민들의 공포감을 극대화 하기위해  일부러 어린 아이들만 골라 총살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모가 보는 앞에서 사살하는 경우도 발생  이 아이는 올해 7살이 된 킨 묘 칫이란 여자 아이로  집에 들이닥친 미얀마 군경들에 놀라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사살당하고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혼절함 조 묘 텟이라는 14살 소년은 찻집에서 일하며  어머니와 살아가고 있었는데  출근 직후 미얀마 군경의 총탄세례에 결국 사망함  어머니 말에 따르면 매달 월급 받으면  바로바로 어머니께 갖다드리면서  집안살림에 보탬을 주던 효자고 착한 아이였다고함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어린아이를 사살하는 자체도 미친 짓이지만  이런 행위가 시민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나 조부모들을 자극하며  미얀마 군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 맹비난중  실제로 자녀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는 부모들도 많으며  기존 미얀마 군부의 지지기반인 지역에서조차 군부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확산되는 상황이며  기존 군부 지지층조차도 등돌리고 있음  자녀를 지키는건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명체의 본능이고  말못하는 짐승도 지 새끼 건들면 눈 뒤집어져서 달려드는데  그걸 정면으로 자극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지금 미얀마 군부란 집단 자체도 뇌가 없는 새끼들인게 분명함  아무튼 이런 잔혹한 미얀마 군부에 대해  미국, 유럽등 서방세계는 제재하고 압박을 가하려하지만  중국, 러시아등이 싸고도는 통에 여의치않음  - 왕 저 번갯불에 구워 먹어도 시원찮을 잡놈 웃는 얼굴 꼴도 보기 싫구려. 일부러 아이를 골라 죽이는 일은 오히려 안팎으로 적만 더 만드는 일일텐데 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사망사고로 인해 폐쇄된 미국의 좁은 동굴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Nutty putty' 동굴은 험난한 온수 동굴로써 매우 비좁고 깊으나 많은 탐험가들이 찾던 동굴이었다. 동굴의 크기는 성인 남성이 간신히 통과가 가능할 만큼 비좁은데 (▲ 사고 전 John Jones의 사진) 사건은 2009년 버지니아대 의과대학에 재학중이었던 'John Jones'가 일행과 함께 해당 동굴의 탐험 중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갈만한 좁은 구멍에 몸이 거꾸로 끼이면서 벌어졌다. 위로 나 있는 좁은 구멍을 타고 오르는 순간, 그의 몸이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가 사고를 당한 곳의 구조는 낙타의 혹처럼, 불룩한 지점을 넘으면 곧바로 지하로 곤두박질 치는 구조였던 것이다. (구조 작전 당시 지하로 내려간 구조대원이 촬영한 사진) 위의 지도는 동굴내에서 그가 구멍에 끼인 위치이며, 사진에서처럼 그의 몸은 꼼짝할 수 없는 좁은 틈에 완전히 고정되어 버렸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꽤나 깊고 좁은 동굴이기에 중장비를 동원하지도 못 할 뿐더러, 동굴이라는 특성상 진동으로 붕괴될 위험성도 있었기에 폭발물을 사용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동료가 그의 발에 줄을 묶고 당기자 몸이 잠시 끌어올려 졌고, 그 빈틈으로 물과 식량과 무전기를 주었다. 하지만 줄이 풀리면서 더욱 깊이 몸이 박히고 말았다. 그후 26시간 동안 137명의 구조대원이 구조를 시도했다 수색 팀과 구조대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26시간을 일했지만 John이 갇혀 있던 틈의 모양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되었다. 좁은 균열은 거의 일직선으로 갈라지고, 그래서 구조대들이 John을 끌어내려고 할 때, 그의 발은 터널의 낮은 천장에 부딪혔다. 그를 뒤로 당기면 다리가 부러질 수 있고, John이 거꾸로 뒤집어 진 결과로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부러뜨린다고 하더라도 구조상 거꾸로 꺼내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 다른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구조를 포기하였다. 이후 그는 호흡 곤란으로 그대로 사망하였으며 시신 역시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사고 이후 해당 동굴은 입구를 막은 채 폐쇄 상태이다. (출처) 아....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네......
흥미롭고 무서운 안동 귀신나무 이야기.jpg
회화나무, 당산나무 또는 선비 나무라고 (양반들이나 학자 집안에서 많이 키웠다고 함) 불리는 이 안동나무는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인 임청각 앞에 심어진 나무였음 (고려 시절부터 존재했단 말도 있음) 이곳은 도박으로 탕진해가는 척하며 뒤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파락호 김용환 선생과 민족시인 이육사 시인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지역이었음 독립운동가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서 결의도 맺고 그랬다고 함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임청각을 허물고,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기 위해 대부분의 건물을 허물고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음 그런데 인부가 나무를 도끼로 내려 찍으려 하자,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인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에도 그 나무를 베려고 했던 인부들이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꺼려하였고 일본놈들도 지들이 나무를 직접 베기에는 찝찝한 거임 그래서 당시 나무를 베면 5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내걸고 또 다른 인부가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했음 근데 이 인부도 나무를 베던 중 집으로 잠시 쉬러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 사람들은 또다시 술렁거리고 금액은 100만 원까지 오르고 한 남자가 또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나섬 근데 이 남자가 나무를 베다가 나머지는 내일 하려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날 출근을 안 하는 거임 그래서 집을 찾아가 봤더니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죽어있음 이유는 알 수 없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나무는 베야겠고 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함 굿하다가 무당이 작두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함 소문은 더 안 좋아짐 결국 일본놈들은 금액을 200만 원까지 올려보았지만 역시나 베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족족 죽어 나가고 일본놈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함 이후 마을에서는 이 나무는 영령이 깃든 나무로 숭배받게 됨 또한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철도를 마치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철도가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함 (임청각의 건물과 귀신 나무는 철도를 감싸는 듯한 형태로 일본이 만든 철도를 옥죄는 형태) 이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이육사의 생터가 있던 마을 및 수많은 자연마을이 수몰당하게 됨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났던 수많은 마을이 수몰되는 사건이 생김 그리고 안동댐 건설과 경제개발 계획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또 나무를 베려는 시도가 있게 됨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나무를 베려 하자 근처 안동댐에서 건설을 하던 인부들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고, 나무를 밀어버리려던 불도저의 삽이 갑자기 빠지는 등 괴이한 사건이 발생함 결국 현장 관계자들 역시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함 그리고 이 나무를 구경하러 안동에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함 이후 안동나무는 도로를 조금 침범한 위치에 오래 유지되는데 이 나무 위치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고 함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오토바이 사망 사건도 나고..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밑동만 남겨두고 잘려버림 밤새 시청에서 작업했단 말도 있고 나무에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하러 할아버지가 새벽에 나무를 잘라버린 후 무서워서 굿을 했다는 말도 있고 기독교 측에서 잘라버렸단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많음 근데 밑동만 남은 나무에서 새싹이 남 여기서 안동 사람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림 교통에 방해가 되는 나무를 베어야 한다 vs 역사가 있는 나무인데 놔둬라 그렇게 나무에 펜스를 쳐두고 대립하던 중 다음 날 보니까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완전히 죽어버린 거임 알고 보니 한 대학생들이 나무를 못 보고 차로 치어서 사고가 났다고 함 그 후로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나무가 있던 자리에 아예 시멘트를 깔아서 안동나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대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별 탈 없이 지냈다고 들은 듯..) 1차ㅊㅊ 루리웹 / 사진 내가 더 추가함 ㅇㅇ 근데 저렇게 오래되고 썰도 많은 나무면 도로 저쪽으로 깔지 말지; 관광명소로 만들거나 옮겨서 오래 보존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저런 고목들은 고사지내고 어명이요~~~ 하면서 베어야된다고 하던디 예의 좀 지키지 그랬냐 글구 저 큰 나무를 대체 왜 못보고 사고가 나는 거지 저렇게 큰데 ㅇㅇ
유명 대학교가 이름을 갑자기 바꾼 사건
때는 1986년 8월 14날 벌어진 사건 유명했던 대학교의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울목포파 12명이 같은 룸사롱에서 출소파티를 벌이고 있던 맘보파 조직원들을 회칼과 도끼로 난도질한 사건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이다. 원래 서진 룸살롱은 서울목포파 애들이 관리하던 곳으로 사실 서울목포파라는 이름은 경찰들이 수사과정에서 생긴 이름이고 원래는 유도대학교 출신 젊은 20대 청년들이 논두렁 무리식으로 어울리던 무리들이였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하필 서진룸살롱 17호실에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한 맘보파 조직원 고용수를 축하하는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총 7명의 맘보파 조직원들이 있었음) 하필 꼬일 운명이였는지 바로 옆 16호실에서는 당시 서울목포파 조직원 12명이 같은 시간에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어이가 없게도 웨이터가 맘보파가 있는 17호실에서 얻어맞게 되고 울면서 나오는것을 서울목포파 일행이 보게 되면서 시작됐다. 자기들이 아끼던 동생같은 웨이터가 얼굴이 부은채 울면서 나오는걸 보고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왜그러냐고 따져 묻자 17호실에 있던 맘보파 행동대장이자 전라도에서 싸움꾼으로 널리 알려진 조원섭에게 얻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고 깔봐왔던 조원섭이 자신들이 봐주는 가게에서 그랬다는 사실을 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은 분노했다. 때마침 화장실로 가려던 조원섭이 나오게 되고, 앞에서 웨이터와 같이 있는 서울목포파를 마주치게 된다. 당시 서울목포파 고참격이던 김승길은 조원섭을 마주치자 넉살 좋게 인사를 건냈다. (김승길은 조원섭의 고향후배) 허나 김승길 옆에 있던 고금석은 달랐다. 이미 열이 받을대로 받은 고금석은 조원섭을 노려 보았고 조원섭은 그게 마음에 안들었다. 한참 어린 고금석이 노려보자 열이 받은 조원섭은 사정없이 고금석을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당시 유도대 선출로 은메달까지 딴 실력자 였던 고금석이였지만 실전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조원섭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일이 벌어지자  김승길은 급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을 불렀고 밖에서 소란이 나자 룸에있던 맘보파 조직원들도 쏟아져 나왔다. 허나 서진룸살롱은 서울목포파가 상주하던 곳으로 전부다 회칼과 도끼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그에 비해 맘보파 조직원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 서울목포파가 전부 무장한걸 본 조원섭은 열이 받을대로 받아 덤빌테면 덤벼 보라고 소리쳐댔다.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조원섭의 싸움실력을 익히 들어온 목포파 조직원들은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조원섭은 비웃으며 말했다 "근본도 없는 유도대 양아치 새끼들." 자신들이 숫자도 많고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무시를 당하자 열이 받은 서울목포파 조직원 김동술이 도끼로 조원섭을 내려찍으며 공격이 시작됐다. 이때 공격으로 팔이 잘린 조원섭은 급히 자신들 방으로 후퇴하고 맘보파 조직원들은 문을 가로 막으며 필사적으로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을 막았다. 허나 칼과 도끼로 무장한 유도대 출신들을 숫자가 적었던 맘보파 조직원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였고, 결국 문이 뚫리며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이 방으로 들이 닥치게 되었으며 룸을 피로 적시며 맘보파 조직원들과 조원섭을 칼과 도끼로 난도질 하게 된다. 때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광경을 목격한 맘보파 조직원 한 명과 문이 뚫리면서 운좋게 도망간 2명을 제외한 조원섭과 맘보파 조직원 3명은 무참히 살해된다. 일을 벌린 목포파 조직원들은 시체들을 인근 병원에 던져놓고 뿔뿔히 흩어져 도주 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전부 검거하게 된다. 가뜩이나 유도대 출신 조폭들이 많았던 터라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유도대학교는 서진 룸살롱으로 학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기존 용인 유도대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용인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끝 출처
한국 역사속 9대 미스테리
1. 고대 왕국 가야와 아유타국의 미스테리 삼국유사에서는 아유타국을 인도의 고대왕국이라고 밝히고 있고 아유타는 인도 이름으로는 아요디아(Ayodhya)이다. 아유타국은 주위가 5천여 리, 나라의 왕도는 20여 리의 성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고 풀과 꽃들이 우거져 무성하였다. 그리고 기후가 화창하고 사람들의 풍습이 착하고 온순해 학예에 부지런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영향력이 한 때는 인도 전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먼 곳에서 가락국까지 올 수 있었을까? 서기 1세기 무렵에 바다는 그렇게 두렵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륙의 연안을 따라 바닷길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허황옥이 인도를 출발하던 음력 5월에는 인도와 한반도를 잇는 해로는 바람과 해류가 북으로 올라가는 기간이다. 즉 그 바람은 계절풍이고 해류는 리만해류이다. 그래서 어떤 큰 이상기류를 가진 태풍만 만나지 않는다면 배가 무사해 항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허왕후가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무작정 가락국에 와서 곧바로 왕후가 될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아무런 사전교섭없이 바로 왕후가 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뭔가 그 전부터 이 두 나라간에 수많은 교섭이나 왕래가 있었기에 두 왕실의 합의에 의해 결혼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김수로왕이 죽고 난 후 가락국과 아유타국과의 교류가 갑자기 끊기게 된 점이다. 가락태조왕릉 중수비에 있는 이수는 우리나라 그 어느 비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을 수놓고 있는데 태양빛 같기도 한 것이 중앙에 있고 그 주위에는 이상한 형체의 동물같은 것들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인도 아요디아의 태양왕조를 상징하는 붉은 바탕에 흰색의 깃발에 그려진 문양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수로왕릉 납릉 정문에 있는 신어상인데 이 상은 인도 아요디아의 관공서와 성문 그리고 저택 등에 조각된 것과 똑같은 모양이다. 이러한 일련의 흔적들은 황하문명권의 일부로만 인식되어 오던 우리의 역사가 실제로는 인도의 문명까지 흡수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첨성대 경주시 인왕동에 자리잡은 국보 제 31호 첨성대(瞻星臺).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632-647, 신라 27대 왕) 때 건립된 것이라 한다. 높이 9.17m에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첨성대의 용도에 대한 여러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현재는 천문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첨성대에서 어떤 방법으로 별을 관측하였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첨성대가 해 그림자 길이를 재기 위한 규표(圭表)로서의 용도였다는 주장도 있었고,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로부터 수학적인 비례 등을 나타내기 위한 수학적 상징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선덕여왕이 은밀하게 신하들을 만나던 장소라는 주장과 외계인이 남겨놓은 기념비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첨성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나 아직 어떠한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다만 원래 제단이 있었던 자리에 첨성대가 있었다는 점이나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보아 첨성대는 천문관측 외에도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천문대와는 다른 성격의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그 자리를 지켜온 첨성대는 역학적 안정성, 미학적 곡선미 등을 두루 갖춘 온 세계의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써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첨성대를 보존하기 위한 정밀조사와 첨성대의 건립배경을 규명하기 위한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3. 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운주사하면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과 석불을 합쳐 100여개 남짓밖에 안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11세기 초반 운주사 창건 이후 수많은 전란과 재난에 의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만 해도 이 운주사 돌탑과 돌부처 바로 앞까지 논밭이 있어서 이곳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인근의 노인들에 의하면 인근 마을 사람들 중에 자기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 이곳 돌부처와 돌탑을 가져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옛기록이 그저 허황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석불좌상의 높이는 12.73m이고 석불입상의 높이는 10.30m인데 이 두 석불은 대체로 북쪽 다리 부분이 남쪽 머리 부분보다 약 5도 높고 입상쪽이 좌상쪽보다 약 5도 높게 경사져 있다. 이 와불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 이곳에 옮긴 것이 아니라 산 정상에 있는 암반에 그대로 조각한 것이다. 문제는 고려 초기 당시에 어떻게 이 무거운 불상을 일으킬 생각을 했었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이곳의 다른 불상들처럼 파격적인 모습을 구상하여 처음부터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불상을 조각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가 열반할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와불은 인도나 스리랑카 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운주사의 와불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인도나 스리랑카의 측와불은 석가모니가 누워서 손으로 턱을 괴거나 받친 상태인데 운주사의 와불은 그저 정면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또 좌상과 입상의 다리 부분에는 떼어 내려고 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틈이 있다. 암반에 불상을 조각하고 떼어 내는 공정을 마치지 못한 미완성 불상으로 일부에서는 추측하기도 하지만 처음 불상을 조각한 후 생긴 흔적인지, 아니면 후대에 사람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두면서 세워 보려고 만든 흔적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다. 운주사에는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석탑은 모양을 제대로 갖춘 것이 18기 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다. 운주사 입구에 보이는 구층석탑, 칠층석탑, 특이하게 생긴 원형다층석탑(연화탑), 원형석탑(실패탑), 오층석탑(거지탑), 원구형석탑(항아리탑) 등이 있다. 이 석탑들은 몇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먼저 전형적인 우리나라 석탑형식으로 탑신과 옥개석이 네모 반듯한 모양을 이룬 것과 탑신이나 옥개석이 원형을 이룬 것, 벽돌로 쌓아서 만들어진 전탑 형식, 지대석 위에 기둥 형태의 거친 석재를 얹어 놓은 형식 등이 있다. 운주사의 이 탑들이 이렇게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운주사는 창건에서 폐사까지 3~4차례의 중수가 있었는데 이 시기마다 새로운 석탑들이 세워지면서 모습이 서로 달라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운주사에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칠성석(七星石)이다. 운주사 입구에서 바라보면 운주사 서편 산 중턱에 놓여져 있는 칠성석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곱 개의 자연석을 원형으로 다듬어 배치했는데 그 모양은 북두칠성의 형태와 똑같다. 그래서 운주사는 일반 불교사찰이 아니라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찰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 칠성석의 직경, 원반끼리의 중심각, 각 원반 중심간의 거리, 돌의 위치와 두께 등이 현재 북두칠성의 밝기나 위치와 똑같은 비례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칠성석의 이러한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누가, 왜, 하필 운주사 서편 산 중턱에 만들었는지, 또 천불천탑과의 관계 등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4. 팔만대장경 16년의 제작 기간 중에 판각기간은 약 12년 정도이다. 연도에 따라 판각량은 달랐지만 이 12년 동안에 81,340여판, 글자는 5200만 자 가량을 어떻게 판각하였는지 의문이다. 아주 숙달된 각수로 하여금 옛날 방식으로 대장경판을 판각시켜 보았더니 하루에 20여자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 판각에 참여한 각수를 추정해 보면 약 593명이 된다. 그러니까 593명의 각수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12년동안 판각만 했다는 이야기다. 593명의 아주 능숙한 각수가 존재했었는지에 대해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고르게 판각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해에는 약 1,500명 이상의 각수가 참여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흔히 강화도에서 제작되어 그 곳의 선원사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어째서 현재의 해인사로 오게 되었는가? 거기에 대한 자료가 많지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것들을 살펴보자. 강화도가 아닌 남해나 거제도 등에서 새겨서 해인사로 가져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조금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대장경판이 원래 두 벌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한 벌은 남해나 거제도에서 나무를 가져와 해안사에서 새겼고 또 하나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나무를 실어다가 강화도에서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판각 위치나 옮겨온 경로에 대한 문헌의 기록과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벌을 새기는데도 많은 국력이 동원되었는데 두 벌이나 만들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있다.  5. 거북선 거북선이 과연 철갑선이었는지는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말은 일본 기록에 많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수군장이 된 구끼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전함은 거북선 이외에도 모두 철로 감싼 전함이 많이 있다고 했다. 이외에 많은 일본 기록에서 거북선이 철갑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록에 거북선이 철로 장갑되어 있다는 기록은 없다. 이순신의 장계나 난중일기에도 칼 송곳을 꽂았다고는 되어 있으나 철로 덮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조카 이분의 '충무공행록'에도 나무로 뚜껑을 씌우고 칼을 꽂아 적이 뛰어들 수 없게 했다고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거북선이 철갑선은 아닐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각종 모형에 제시된 바와 같이 거북선의 용머리가 길게 위로 솟아 올라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용머리에서 대포를 쏘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조 때 발간된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용머리의 크기(길이 133cm, 폭 93cm)로는 포를 설치하기에는 좀 작아 보인다. 이순신의 장계나 난중일기에는 용의 입으로 현자포를 치켜 쏜다고 되어 있으며 왜장을 사살한 전공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임진란 당시 거북선의 용머리는 현재 모형보다 크고 거북선 선수부에 밀착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충무공전서에는 거북머리에서 유황연기를 뿜어 적을 혼미케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용머리의 기능이 포탑에서 연기 방출용 굴뚝으로 바뀐 것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내부의 밀폐된 공간에서 수십개의 포를 발사하여 발생한 엄청난 양의 연기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도 의문이다.  6. 조화의 극치, 석굴암 깊이 14.8m, 높이 9.3m의 석굴 안에 본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석불은 1.58m의 좌대 위에 3.26m의 거대한 불상으로 굽타 양식으로 만들어 졌다. 석굴암의 제작에 사용된 화강암은 무려 3000여톤에 이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세워진 이 석굴이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석굴의 평면은 반지름 12척(3.3m)으로 정확한 원을 이루고 있으며, 입구의 너비나 본존 석불의 높이 역시 반지름이 12척으로 되어 있다.  옛날엔 하루의 길이를 12시간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하루의 길이와 일치한다. 그리고 원은 1년 365일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석굴암이 뛰어난 것은 천연 동굴이 아닌 인공굴 안에 만들어 졌으며, 구형, 삼각형, 사각형, 팔각형 등의 기하학적 구성에 의해 완벽한 조화와 통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본존불의 좌대 방향은 방위각 117도(동으로부터 남으로 27도 방향)라고 하고 본존불은 좌대를 기준으로 동에서 남으로 4도가 틀어져 있다고 한다. 즉, 현재 본존불은 방위각 121도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일제가 수리공사를 할 때 본존불을 들어올리다가 잘못해서 그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본존불과 좌대를 만들 때 애시당초 그 방향이 틀렸을 리 없고 본존불을 들어올리다가 뒷부분에 금이 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의 일출 방위각을 보면 동지 때는 119도, 춘·추분 때는 약 90도, 하지 때는 약 60도로 나타나는데 석굴암의 본존불에는 사시사철 햇빛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석굴암 아래에는 토함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서 마시는 감로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물은 석굴암 내의 본존불상 바로 밑부분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라고 한다. 그 물줄기는 인조 석굴을 떠받치는 암반 사이를 흘러 석굴암 내의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석굴암을 완전히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하면서 석굴암의 외벽과 밑을 시멘트로 짓이겨 놓고 물줄기도 석굴암의 바깥쪽으로 돌려 놓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와 광복 후 후손들의 손에 의해 석굴암은 그 원형을 상실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우리는 아직도 예전 석굴암의 건축 원리를 알지 못한다. 1000여 년이나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옛 선조들의 석굴암 건축 비법이 신기하기만 하다.  7. 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에는 가공하지 않는 천연석으로 쌓여진 탑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높이 15m, 둘레 20m의 거대한 탑들도 즐비하다.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0여년동안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은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채 뽑히지만 이 곳의 돌탑은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마이산 탑사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신비는 바로 역고드름이다. 겨울에 정한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에서 고드름이 거꾸로 뻗쳐 오른다. 기도의 정성이 깊으면 그릇 속에는 이처사가 쓴 신서가 박힌다. 이 역고드름 현상은 요즘도 매년 한겨울에 몇 차례씩 일어나고 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탑사 오른쪽에서 천지탑을 지나 암마이봉 절벽으로 돌아 올라가는 바람에 의해 역고드름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탑의 단 위에서만 고드름이 생기고 그 바로 아래의 바닥에서는 고드름이 생기지 않는 현상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8. 한반도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낙원?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화석 수는 실로 엄청나다.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50여개 지역에서 6천5백여개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다. 이곳에 공룡 발자국이 밀집된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완전한 골격화석은 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공룡 화석에 담긴 1억년 전 한반도의 비밀은….  82년 이후 한반도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매년 새로운 공룡 발자국 산지가 보고되고 있다. 이제는 발자국 산지의 발견은 더이상 뉴스 가치가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 돼버렸다. 특히 고성 덕명리에서는 공룡의 종류가 적어도 사족보행(四足步行)의 용각류(龍脚類)가 3종, 이족보행(二足步行)의 조각류(鳥脚類)가 10여종, 이족보행의 수각류(獸脚類)가 2종이나 확인됐다.  경북 의성군 일대에서도 광범하게 공룡 화석들이 발견됐다. 86년에는 금성면 청로리 야산에서 공룡의 골격 부분화석이 발견된 이래 90년에는 금성면 제오리에서 공룡 발자국(천연기념물 지정)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봉양면 구미리에서 공룡 어깨뼈와 대퇴뼈가 발견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남지역 이외에서는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일대에서 공룡 발자국화석이 다수 발견됐다. 이곳 9개 층준에서는 2백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특히 익룡 발자국화석과 물갈퀴발 새 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돼 주목을 끌었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발자국화석이 1백개 이상 집단발견된 곳은 20여곳에 달할 정도다. 지역별로는 경상도 지역이 50여군데, 전남지역이 1군데, 북한 황해도 평산군 용궁리가 1군데 등 발자국화석은 6천개를 넘을 정도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이토록 많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과연 한반도는 중생대 백악기에 공룡들의 천국이었는가. 사실 발견된 발자국화석만을 고려한다면 한반도가 공룡의 천국이라는 말은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출처 :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etc/327/read?articleId=18733071&bbsId=G005&itemId=145&pageIndex=1 모야 0.0 이런거 넘 잼뜸 공룡 천국이면 뭐해 ㅠ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따흑 고인돌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아쉽네영 ㅇㅇ 우리나라에 전세계 고인돌의 70%가 있다는데 🤔
[퍼오는 귀신썰] 한밤중의 노랫소리
안녕!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워서 버티기 힘든 나날 오늘도 같이 시원하게 귀신썰이나 보자구! 시작시작한닷 _______________ 이 얘기는 아는 동생 이야기야. 이 친구는 밴드를 나랑 비슷한 시기에 하다가 그만 두고, 지금은 적성을 잘 살려서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 나름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지. 이 친구는 밴드를 하던 시기에 우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 천재 소리를 듣던 친구였어. 일단 음감이나 재능이나 도전정신 같은 게 장난 아니었거든.  이야기는 이 친구가 아직 밴드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음악을 하던 당시에는 크로스오버, 특히 오리엔탈리즘이나 전통 국악과의 크로스오버가 언더그라운드의 대세였어. 요즘 클럽 음악이나 힙합, 버스킹이 친구들 사이에서 대세이듯이 말이야. 도전정신이 남 달랐던 이 동생은, 정말로 국악과 언더그라운드 록과의 크로스오버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했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국악을 듣고,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국악쪽 인맥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한 결과, 친구 -> 친구 과동기 -> 그의 지도교수 등의 루트를 타게 돼.  그 결과, 명창 같은 유명인들은 돈도 들고, 만나기도 힘들어서 알선해주기 힘들지만 충북쪽에 지금으로 치면 동호회 같은 판소리 장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돼.  마침 다음 달 무슨 날에 그들이 오래 전부터 모임 장소로 사용하던 곳에서 세미나 같은 걸 열게 되니, 그 친구가 정말 가고자 하는 열의가 있음 모임의 한 자리를 만들어주겠단 약속을 받게 되지. 친구는 말할 것도 없이 일터에 휴가를 내고, 레코더 같은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에 몸을 싣게 돼. 모임 장소는 굉장히 유서 깊어 보이는 한옥집이었고(지금 와서는 단순 리모델링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거 치곤 굉장히 낡고 옛날 느낌이 많이 났다네),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그리고 꼬마애들 몇 명이 편육 같은 걸 먹고,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고 했다고 해.  친구는 그 노래하는 순간마다 레코더를 틀어서 음악들을 녹음했고. 나중에 샘플링으로라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네. 그 한옥집에서 회원들이랄까... 그 분들이 다 잠을 청하지는 않고 이 동생과 회원 몇 분만 숙박을 하게 됐대. 다른 분들은 주변에 사셔서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하시거나 그냥 그대로 집에 가시거나.  내 동생도 방 하나를 배정받아 거기서 멀뚱멀뚱 누워있었대. 사실 음악하는 애들은 보통 아침에 자고 밤에 활동을 하거든. 얘도 마찬가지였지. 핸드폰을 꺼내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레코더에 녹음된걸 듣기도 하면서 잠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데 문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더래.  그 친구 말을 빌리면, 보통 판소리는 걸걸하거나 뻣뻣한 음색으로 들리는데, 그것과는 다른 청아하고 맑은 음색이, 자기 기준에선 완벽한 꺾기를 구사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대(ㅋㅋㅋ) 거기다가 그 날 모인 분들은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거나 꼬마애들이었는데, 문밖의 목소리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는 거야. 처녀 귀신 아니야? 무섭지 않나? 하는 우리들의 물음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어. 절대 그렇게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돌발 디너쇼가 열려서 목소리가 죽이는 재즈가수의 노래를 듣는 듯한 그런 벅차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고 하네. 거기다가 지역과 한옥집의 운치가 더해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여튼 호기심이 동한 친구는, 사람들이 잘 시간이기도 하고 타지에서의 경계심도 완전히 풀지는 못했기에, 문을 아주 살짝 열어봤대. 그리고 거기에는... 문을 살짝 열자 그 집의 마당에 피부가 정말 하얀 여자가 고운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대.  근데 그게 정말이지 이 세상의 느낌이 아닌 것 같았다는 거야. 막 세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뻐서 그런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좀 진하고 강해보이는 인상의 화장이 유행이었는데, 그 여자는 화장을 정말 하나도 안 한 거 같은데 피부가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고 자태가 너무 고왔대.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흥에 따라 어깨를 슬몃슬몃 튕기는데 그 모습도 너무 예쁘더라는 거야. 물론 얼굴은 자세히 안보였지만 그 선 자체가 정말 예쁘다는 느낌을 줬대. 그렇게 넋을 놓고 보던 중에 내 친구는 문득 그 여자도 자기가 있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대. 말이라도 걸고 연락처라도 교환하려고(ㅋㅋㅋ).  그래서 너무 크게 말하지는 않되 마당에 들릴 정도로 "우와!" / "잘한다...!" 같은 감탄사를 남발했대. 근데 반응이 없더래. 못 들은 척 하고, 무시하고 그러는게 아니라 마치 티비를 보는 것처럼. 왜 우리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티비 속의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잖아. 그런것처럼, 완전히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이었대. 미동도 없이 자기 할 일만 했다 하더라고. 동생도 애틋한 마음에 그걸 계속 보고 있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래서 동생은 '아 몰라 ㅅㅂ... 내일 어르신들한테 고 여자애 누구냐고 물어보고 번호 따면 되지' 한 후에 잠이 들어버렸다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이 별로 없으신 어르신들은 다들 이미 일어나서 왁자하게 수다를 떨고 계시고 동생은 뒤늦게 일어나서 자리에 합류했대. 그리고 앉자마자 어제 그 여자애 얘기를 꺼냈다고 해. 으잉? 여자애? 여기는 우리 같은 늙은이들밖에 안 오는데...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저보다 한 2-3살 많은 누나가 노래 부르더만. 노래를 불러? 가요 같은 거? 아아뇨~ 어르신들 부르던 판소리 기가 맥히게 부르던데요. 갸가 창을 했다고?  오히려 동생보다 어르신들이 더 그 애한테 관심이 많은 눈치였대(ㅋㅋㅋ) 근데 앞전에 말했지. 그 친구는 음감이 좋다고.  워낙 그날의 기억이 강렬했는지, 친구는 가사는 모르지만 그 노래의 싸비에 해당하는 것 같은 부분을 허밍으로 불러드렸대. 이런 노래 부르던데요~ 하면서.  처음에는 어르신들도 갸웃갸웃 하시다가, 친구가 멜로디를 한 3번쯤 반복하자 그 중에서 제일 대장 같아보이는, 갓 쓰고 수염 기른 어르신 표정이 정말 이상하게 변하면서 몸을 부들부들 떠시더래. 그러더니 동생 어깨를 콱 쥐어잡았다고 해. 동생은 이 경험담 중에 이때가 제일 무서웠다네 너무 무서웠다고.  좀비 영화 주인공 된 줄 알았대. 너 그거 참말이야!! 예? 참말로 그 여자애 그런 걸 불렀어! 어어...네 좀 다를 순 있는데 대충 형식은 이런 거...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정말 애처럼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더래.  아이고, 옥주가 아직도 구천에 있나보구나 가여운 것이... 상황파악이 안되던 동생은 그때까지만 해도 실실 웃으면서  옥주? 이름 되게 촌스럽다ㅎㅎ  구천을 떠돈다니 뭐 무당 같은 앤가 하고 있었다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그 시골에 있는 지붕없는 정자 뭐라고 하지... 거기 양반다리를 하고 딱 앉더니 막걸리를 들이키고는 동생을 향해 일갈을 하더래. 너 여기 앉아서 내 얘기 좀 들어보거라. 동생은 무슨 대단한 얘기를 하려고 막걸리를 원샷하시나 싶어서 흥미진진하게 자리에 앉았대. 어르신은 동생에게도 막걸리 1잔을 건넸고 동생 역시 호기롭게 원샷!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됐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래. 지금이야 다 늙은 어르신들 친목 모임 같지만, 그 당시에 이 모임은 지역 당대의 지식인들이 모인 나름의 민족의식 고양회 같은 곳이었대. 지금으로 치면 지역 대학생 총연합 같은 느낌. 일제, 6.25를 거쳐 폐허가 돼버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든 우리 민족 고유의 멋과 문화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전후에 모여서 발족한 단체였다는 거야.  그 중 이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보인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한의 정서가 담긴 판소리와 창가 같은 거였구.  그때는 여기 원로분들도 다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혹은 지역 지식인들이었다고 해. 얘기를 꺼내신 어르신은 그야말로 여기의 발족 멤버라고 해야할까. 리더격인 사람이었대. 그 분을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그 중에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정말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가입신청을 했다고 해. 그분이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옥주라는 분이야. 사실 그 어르신은 옥주씨가 가입할 때 꺼림칙했다고 해. 좀 의아스럽기도 하고. 옥주씨는 건반 연주자였거든. 풍금이라고 했나 그 시대에는... 여튼 그런쪽의 연주자로 지역에서 소소하게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알다시피 건반은 양악 그러니까 서양음악이잖아? 서양음악을 하는 여자가 도대체 왜 귀한 자리 마다하고 여기에 오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전통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가입을 하는 건지도 몰랐대. 헌데, 옥주씨의 노래 소리에 어르신은 그런 모든 생각을 접었다고 해.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분명히 가곡이나 양악을 부르는 것 같은데, 그 한이나 감정표현 같은건 완전히 판소리 그 자체였다는 거야.  그 당시엔 정말 파격적이었다고 하네. 요즘 우리가 전자 가야금이나 그런 걸 연주하는 사람들을 볼때의 느낌일까?  그래서 어디서 그런 걸 배워왔냐고 물었더니 노래는 풍금을 하면서 스승님께 배우고, 창가는 할머니께서 즐겨부르셔서 어려서부터 곧잘 따라했어요. 라고 했다고 해.  과연, 옥주씨네 할머니는 동네에서 소문난 구두쇠요, 터줏대감이었다네.  옥주씨에게는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남동생이 있는데, 이 남매는 일제다 전쟁통이다를 거쳐서 조실부모 했다고 해. 옥주씨의 할머니는 남매 뒷바라지를 하고자 음식과 술을 팔며 돈을 악착같이 모았고, 모은 돈은 정말 때려죽여도 쓰질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하네. 오로지 옥주 남매를 위해서만 돈을 썼고, 그런 구두쇠 할머니의 유일한 여가는 아무도 없는 가게에 혼자 앉아서 창가를 흥얼거리는 일이었다고 해. 그래서 그런지 옥주씨는 자태 고운 아가씨가 돼서 지역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별명이 서울 아가씨였고, 남동생 역시 공부를 썩 잘 해서 개천의 용이 될거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해. 할머니는 고생한만큼, 훌륭한 손자들을 두게 되신거지. 아니나 다를까, 옥주씨가 가입하고부터 협회는 미어터졌다고 해.  옥주씨에게 흑심을 품은 동네 청년부터 옥주씨를 동경하는 소학생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네. 협회 입장에선 허드렛일 시킬 사람이 하나라도 더 느니까 좋았다고 해.  비극은 멀지 않은 날 닥쳤다고 해. 옥주씨의 남동생이 정말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거야. 차라리 죽어서 시체라도 찾았으면 덜 답답할 것을,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사라져버렸다고 하네. 당시 전쟁이 끝날지 얼마 안된 시기였고 남북관계가 흉흉하던 때라, 동네 사람들은 그 당시 횡행했던 간첩들의 납북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예상했다고 해. 하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고 하네. 그 이후로 옥주씨네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하네. 가뜩이나 노쇠하던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연이어 돌아가시고, 동생을 엄마처럼, 아니 엄마보다 더 아끼고 챙기던 옥주씨는 동생의 실종과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완전히 돌아버리고 말아. 서울 아가씨라 불리던 협회의 마스코트가 실성해서, 길바닥에서 부랑자마냥 머리를 산발을 하고 길바닥에서 울다가 웃다가... 제정신일 땐 입도 못대던 막걸리를 됫박으로 푸는 옥주씨를 보며 협회사람들은 가슴이 미어졌다고 하네.  당시 정신과 치료 같은게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더욱이 시골에서 그런 치료는 꿈도 못 꾸었기에, 협회 사람들은 동생이 머물던 바로 그 한옥집에 옥주씨를 데려다 놓고 요양을 시킬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어느 정도 비극의 여파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 마을 단위의 동원령이 내려져 다들 농작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옥주씨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아. 자살은 아니고, 동원이 끝난 후 협회 사람들이 돌아와보니, 옆에 피를 한말을 토해놓고 얼굴은 피와 눈물 뒤범벅이 됐는데, 살아생전 활기넘치던 때처럼 다소곳하게 두손을 모으고 하늘을 본 채 누워있었다고 해. 협회 사람들은 옥주씨를 양지 바른 곳에 묻고 그녀를 가슴에 묻었지. 그때부터였대.  그 한옥집에서 머무는 사람들이 옥주씨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거나, 꿈에서 우는 옥주씨를 보고 기겁해서 잠에서 깨는 일이.  옥주씨가 해코지를 끼치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불안해했기에 어르신은 당시 법력이 높으신 주지스님 한 분을 초빙했대. 집을 한바퀴 빙 둘러본 주지스님은 연신 혀를 차며 가여워라, 가여워라 하시더래. 그래서 당시 청년이던 어르신이 제령의식이나 위령굿 같은 걸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고 해. 해코지를 할 아이도 아니고, 세상사 억울해서 구천에 머무는 아이다. 현생이 미련 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 자연히 떠날 것이니 매일 제삿날마다 밥이나 잘 차려주거라. 그 말을 지키고 세월이 흘러 그때의 청년들이 중장년들이 되자, 서서히 그런 현상도 없어지고, 잊혀졌대. 그래서 드디어 옥주가 성불했구나 싶었는데 웬 처음보는 새파란 청년이 옥주를 봤다고 하니 그분들 입장에선 가슴이 미어터지겠지. 그리고 내 동생이 흥얼거린 그 노래는, 유서깊은 판소리가 아니라 협회 사람들이 옥주씨의 목소리에 맞춰만든 일종의 협회가, 단가 같은 거였다는거야. 그러니까 절대 외부인이나 요즘 사람은 알 리가 없는 거고. 어르신은 새사람이 오니 옥주가 반가워서 나타났나보다. 그러니 종종 놀러오며 창도 배우고 문안인사도 하고 하거라,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대. 그렇게 어르신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동생의 이야기를 끝나지 않았어. 이 동생이 정말 터무니없게도, 귀신한테 홀딱 반해버린거야.  솔직히 말하면 진짜 어이 없는 일이잖아.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한테 그것도 사진도 아니고 착각일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고 반한다는게, 쉬이 이해가 안 가잖아? 나도 술자리에서 그걸 좀 비웃었어. 너 미.친.놈 아니야? 그게 가능하냐?ㅋㅋ 하면서. 그랬더니 동생이 한 잔 들이키더니 말하더라고. 사실 그게 진짜 이상한 감정이었다고 하더라고. 막 일반적인 연애를 할 때의 반하는게 아니고 뭔가 되게 안타깝고 짜증나는... 갈증 같은 느낌이었대. 왜 이 여자는 이 세상에 없는걸까. 왜 나는 못만날까. 왜 하필 죽어가지고... 같은 생각이 정말 하루 종일 맴돌았대. 생활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뭔가 일 갔다오면 몸에 힘도 없고 밥은 먹기 싫고... 살이 쭉쭉 빠졌다네. 나도 돌이켜보면, 이 친구가 원래 마른 체형이긴 하지만 그 친구가 말한 시기 즈음에는 진짜 스켈레톤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어. 나중에 가서는 꿈도 꾸게 되었다고 해. 꿈 속에서 그 여자가 앞에 있고 내 동생은 막 화를 냈대. 자기 자신이 뭐라 하는지는 잘 안들리지만, 왜 안 만나주냐, 왜 난 안 되냐 같은 내용으로 엄청 화를 내고, 꿈 속에서 자기도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해. 그런 꿈이 며칠째 반복되고.. 드디어 동생은 결심을 하게 돼. 아, 내가 뭐에 씌었구나. 가봐야겠다. 해서, 수소문해서 용한 무당집을 찾았대.  워낙에 동생 엄마가 이쪽 무속신앙을 좋아하셔서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네.  장비살 돈 얼마 떼서 복채로 준비하고 점집에 가니까, 가자마자 무당이 픽 하고 웃으면서 미.친.놈... 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네. 제가 이러저러 해서 이런지라 찾아왔어요. 응 알어ㅎㅎㅎ 저 씌인 거 맞죠? 놀구 있네. 네? 네가 갖다 붙여놓은 거를 왜 엄한 영가탓으로 돌려?ㅋㅋ 무당 말에 따르면 사람이 나무, 영가가 쇠붙이인지라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그 여자는 거기의 터줏신 같은 영인지라 혼자 잘 지내고 있는데, 내 동생의 강한 욕망(ㅋㅋ)이 동생을 자석으로 만들어버려서 영가(옥주씨)를 자기 몸에 철썩 달라붙게 했다는 거야. 쓰잘데기 없는 짓 하지말고 얼른 집에 보내라고 부적 하나 써주고 당분간 먹지 말아야할 음식 같은 걸 알려줬다네. 무당이 알려준대로 며칠 지내고 마지막으로 꿈을 꿨는데, 옥주씨가 설에나 입는 색동 한복을 입고 정중하게 절을 하고 손을 흔들었대. 장소는 동생이 갔던 그 한옥집이었고. 꿈에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은 자연스럽게 그 집을 나오고 꿈에서 깼다네. 그 이후로 동생은 무탈하게 잘 지냈고, 그 이후로 한국 고유의 전통에 눈을 떠버렸는지...ㅋㅋㅋ 동양무용하던 이쁜 여성분과 결혼해서 엔지니어 일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이 글의 교훈은 뭘까? 귀신에게 반하지 말자? 취향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긴다? 쨌든... 이번 글은 이걸로 끝이야 ㅋㅋ  [출처] 한밤중의 노랫소리 ___________________ 역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마음이지 정말 옥주씨는 겉도 속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나봐. 산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흔들 수 있었으니. 한 없이 사람들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이걸 보는 사람들은 나중에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한 없이 훌훌 속 시원할 수 있기를. 곧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