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100+ Views

139

<2021 서울연극제 희곡집>에서 장막극 두 편과 단막극 두 편을 읽었다. 올 초반에 읽었던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들의 작품을 비교군으로 둔 채, 신인과 현장 경력이 있는 기성 극작가들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감상했다.
이제 막 등단한 신인과 기성작가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그 갭을 통해 어떤 것이 신인들의 공통적인 결점인지 나름대로 파악해보고자 했다. 물론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지 희곡에는 문외한일 뿐이다. 단순히 독자로서 감상평을 몇 자 적어본다.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이자 장막극인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와 <생활풍경>, 그리고 단막극 <구멍>과 <악셀>을 읽었다. 우선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은 단막극이기에 기성작가들의 작품도 단막극과 비교하기가 수월했다. 김지선 作의 <구멍>은 우선 그 깊이가 남달랐다. 적어도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과 비교해볼 때는 확실히 그 결을 달리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생의 고통을 철학적인 수준까지 밀고 나간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물론 이 영화도 원작 소설이 있지만, <환상의 빛>이 보여준 어떤 질문 같은 것들이 이 희곡에서도 느껴졌다. 상연을 목적으로 한 작품일 것인 만큼 무대 위에서 연출이 채웠을 절반은 또 어떤 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대본 자체로도 아주 훌륭했다. 김희연 作의 <악셀>은 대본 자체로는 신인들보다 월등하다 할 만한 것은 없다. 어떤 전형성들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 작가가 신인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대를 활용할 줄 안다는 거다. 적어도 무대에 대한 이해와 연극 현장에 대한 경력을 가진 사람만이 구성할 수 있는 희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현장 경력 있는 작가들과 신인 작가의 결정적 차이는 무대에 대한 이해다.
장막극인 손기호 作의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말 그대로 장막극인 만큼 비교하기가 다소 무리다. 사실 이 희곡은 특별히 훌륭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너무 전형적인 드라마로 보이기도 하고. 뭔가 철학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잘 와 닿지는 않는다. 나의 한계일 수도 있다. 상연되는 무대로 경험한 것은 아니기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겠다.
김수정·원아영의 <생활풍경>은 사실 서울연극제 진행 당시 관람할 작품을 고르던 중에 시놉시스를 보고 패스했던 기억이 있다. 이 희곡은 우선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주민들끼리 찬반 토론을 하는 설정이다. 나는 당시 창작극에 다소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다룬 극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을 읽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일단 주민 토론회가 설정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관객이 아니라 독자로서는 대사 분량의 압박도 상당하다. 일단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지역 이기주의 문제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사회 문제이고, 이것이 연극으로 상연될 때 관객들이 생생하게 직시하게 될 하나의 질문거리로서 아주 훌륭했다. 설정 자체가 어떤 공간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다 보니 관객들은 아마도 실제 토론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연극으로서 아주 훌륭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영화도 아마 그렇게까지는 불가능할 거다. 우리가 기사로만 접하는 사회 문제의 현장을 직접 두 눈과 귀로 체험 가능한 것이다. 그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아마도, 독서가 아니라 관람의 문제라면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작품은 찬성 측의 주민들과 반대 측의 주민들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또 작품은 당연하게도 스스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팽팽한 대립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 스스로가 섣불리 대답하기 힘든 질문 거리를 하나 얻게 된다. 이걸 연극으로 실제 관람했다면 얼마나 날것의 현장을 보는 느낌이었을까 싶은 아쉬움마저 든다.

연극제 당시 내가 관람한 연극은 <노인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이 작품과 나머지 <허길동전>이라는 작품은 나중에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realrappy
2 Likes
0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토박이말 살리기]1-82 뜸베질
[토박이말 살리기]1-82 뜸베질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뜸베질'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가 뿔로 물건을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짓'이라고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무영의 '농민'에 나온 "사실 그것은 그대로 황소 싸움이었다. 씨름이 아니라 사뭇 뜸베질이다. 하나가 넘어갈 때는 그대로 땅이 꺼지는 소리가 난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소가 뿔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들이받는 짓'이라고 풀이를 하고 "소가 사람을 받으려고 머리를 숙이며 뜸베질을 한다."를 보기월로 들어 놓았습니다. 두 풀이를 보고 둘 다를 아우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뜸베질: 소가 뿔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마구 들이받는 짓 풀이와 보기월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흔히 '난동'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말을 갈음해 쓰면 딱 좋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과 소가 싸우는 것이 있는데 그 때 소가 구경하는 사람들한테 달려 들어 마구 들이받는 것은 더러 보셨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로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소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기별이 있는데 지난해 울산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가 뜸베질을 하는 바람에 사람까지 다쳤는다는 기별에는 '뜸베질'이라는 말은 안 나오고 '소동', '난동' 같은 말만 나와서 아쉬웠습니다. 요즘 나날살이에서는 소를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가 하는 뜸베질을 보기는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보기월처럼 꼭 소가 하는 뜸베질에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성난 다른 짐승이나 사람이 마구 던지거나 부수는 것을 빗대어 나타낼 때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얌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소가 뜸베질을 하듯 그렇게 하니 무서웠습니다."처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동'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뜸베질'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토박이말을 알고 있으면 말맛과 글맛을 잘 살려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말글살이를 좀 더 넉넉하게 해 줄 토박이말을 자주 많이 보고 배워서 부려 쓰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열달 스무하루 낫날(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뜸베질 #난동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72
퇴근 후 CGV 신촌아트레온에서 홍상수의 신작을 봤다. 당신얼굴 앞에서. 관객 수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열여섯 명이었다. 다 세어봤다. 관객 수 같은 걸 왜 세어본 거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 다만 홍상수 영화는, 그걸 보러오는 관객들이 어떤 이들인지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홍상수와 배우 이혜영의 케미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저 배우가 있었지. 생각해보니 뭔가 어울려, 그런 생각을. 오랜만에 썩 괜찮게, 재밌게 봤다. 바로 전작인 <인트로덕션>은 국제적인 수상을 했음에도 내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날의 기분도 감상평을 많이 좌우하긴 했지만. 유수의 영화상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기분이다. 오늘의 기분도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전과 다르게 내 안의 뭔가를 건드리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지만. 홍상수의 여정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뭐 다 떠나서 창작자는 역시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어떤 흐름이 생기는 것 같다. 플로우. 더러 태작들이 섞인대도 그건 말 그대로 오히려 하나의 굴곡을 만들어내서 더 근사한 큰 그림을 가능케 하는 것 같다. 홍상수의 작품들은 점점 공백이 짧아지는 탓에 자연스레 연속성이 생기는데, 그 전부터도 사실 어떠한 맥락으로든 작품들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고, 이건 마치 정황과 정황들이, 혹은 그의 생각과 생각들이, 좀 더 나아가서 그의 삶과 삶들이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끝없는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국자의 씨국물을 가지고 끝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세트장을 짓거나 CG를 쓰는 게 아니라면 사실 영화 속 공간들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여러 공간들 중 하나인데, 때로 좋은 영화는 그걸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건 미술의 힘일 수도 있고, 촬영의 힘일 수도 있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는 미술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촬영기법이 돋보이지도 않는다. 더구나 촬영지는 정말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적 공간들은 특별해 보인다. 그 힘은 배우들에 있는 것 같다. 그의 영화적 정황들은 묘하게 연극적으로 보이는 과장스러움들이 있는데, 바로 홍상수 식의 연극성과 그걸 소화하는 배우들이 공간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느낌이다. 홍상수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이제는 지쳐서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더러 봤는데,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더 따라가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