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결문공개 #제도화시급
□ 내 판결문을 탐하지 말라
법원의 판결문 미공개도 있다. 한국사회에선 사실상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율이 0.3%쯤 된다.
일제 강점기는 더 말할 것이 없고, 그후로도 한참동안을 ‘보여줘봐야 까막눈’이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그러니까 보여주나 안보여주나 별 차이가 없던 때다. 그때 정립된 관행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쉽게 전달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검색엔진이 굉장히 발전했다. 아무리 많은 판결도 순식간에 찾아낸다. 공공데이터로 공개를 한다면 굉장히 멋진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의 모든 판결에 대해 온갖 통계를 뽑아볼 수 있다.
수십년간 한국사회의 법감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판례들간의 모순이 얼마나 있는지, 징벌의 형평성이 깨진건 없는지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영어로 된 인공지능 판결쪽은 상당히 발전이 돼 있지만 한글분야는 아예 없다.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판사들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다. 판결간의 모순을 없애고, 양형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어 사법부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예비 법조인들이 공부를 하는데도 아주 좋다. 분야별로 최고의 판결들을 뽑아서 공부를 할 수 있고, 비슷한 판결을 할 때 참고로 삼기에도 아주 좋다. 판결을 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몇 년 전에 변호사 1,586명에게 조사한 결과는 93.7%가 판결문 공개를 지지한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 조사에서는 응답한 판사 1,117명 중 미확정 형사사건 판결문 공개에 대해 찬성한 건 20.6%에 불과하다. 변호사들의 상당수가 전직 판사다. 법복을 벗자마자 의견이 바뀐다면 논리외의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선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판사들은 대부분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에 반대하는데, 이런 주장은 ‘지구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해가 서쪽에서 떠’라는 말처럼 들린다. 미국, 영국과 같은 나라는 불문법이다. 명문화된 법이 있는게 아니라 과거의 판결 즉 판례를 따라 판결을 하는 나라다. 당연히 ‘미확정 실명 판결문’을 전면 공개한다.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문을 당연히 공개한다는 논리다. 미국은 판결 이후 24시간 내에 온라인 사이트에 미확정 판결문을 게재한다. 영국, 네덜란드는 미확정 판결문을 1주일 내에 공개한다. 영국과 미국이 프라이버시 보호가 우리보다 몇배나 엄격하면 엄격하지, 못할 리가 있나. 미국 영국이 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는데.
다행히 좋은 소식도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월 18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된 임시회의에서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요구 등 4가지 의안을 의결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우선 국민 알 권리와 재판 투명성 높이기 위해 판결문 공개 범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소송관계인의 사생활과 개인정보 침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도 함께 요청했다.
사실은 판결을 모두 공개하면 ‘전관 비리’에 관한 통계도 함께 드러난다. 변호사가 사시 기수가 같거나, 근무처가 같거나, 동창/동향인 경우의 판결의 결과가 다른 사건과 견주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성의하게 작성했던 판결들도 다 공개가 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보여준 용기와 신념에 진심으로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박태웅 | 눈떠보니선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