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다...
2017년 설경구 주연의 동명 영화 원작.
(p14 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문장이라는데, 이 문장도 언제인가 채집해 놓았던 메모이겠지? 김영하는 소설가를 단어를 채집하는 사람이라 했다.
(p17 에서...) '카그라스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단다. 친밀감을 관장하는 뇌의 한 부위가 이상이 생겨 생긴는 병인데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낯설게 느껴진단다. 낯선 세계에 유배된 기분으로 모두가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하니 고립감이 들겠지?
(p35 에서...) '치매는 늙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p38 에서...)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 공허하다는 뜻일까? 비밀스럽다는 뜻일까?
(p52 에서...)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 글과 비유가 좋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
p98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 시간이라는 감옥, 벽이 좁혀지는 단절된 방. 흠...
(p100 에서...) 그놈은 '푸른 수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희는 교양이 부족하다고. 나도 교양이 부족한가 보다. 푸른 수염을 몰랐으니... '푸른 수염'은 연쇄살인범을 지칭한다. 프랑스 작가 사를르 페로의 동화 <푸른수염>을 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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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가 진행 중인 칠십 줄의 한 노인이 있다. 노인은 수의사이고 은희라는 딸은 스물 여덟이고 농대를 나와 식물 연구원이다. 그녀의 엄마를 죽이고 입양을 했단다. 자신의 소유 임야에 대숲이 있는데 살인을 해서 그곳에 묻었다고. 살인을 끊었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요즘의 연쇄 살인 사건이 혹시 자신이 그런 건 아닐까 의심한다. 자신은 일흔 살의 김병수라고 적는다. 딸 은희의 사진으로 팬던트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닌다. 알츠하이머 때문에.
노인은 열여섯에 폭행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마흔다섯까지 살인을 계속했다. 아버지기 죽던 해 나이가 마흔다섯.
노인은 근저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박주태를 주시하며 은희를 보호하고자 한다.
치매에 걸리 이 노인 김병수는 생각한다. 은희를 죽일 거라 생각했던 박주태는 경찰이고 연쇄살인범인 노인을 계속 찾아 헤매고 있다던 안형사는 실존하지 않고 자신은 은희의 살인범이라니.
김은희란 사람은 딸이 아니라 요양보호사라고 형사들은 얘기하고 노인이 부탁해서 알아본 바로는 아버지와 함께 은희라는 아이가 살해되고나서 엄마도 노인에게 살해되었단다. 우연으로 입양했다고 생각한 아이와 요양보호사는 이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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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권희철의 해설 중에...
김영하는 말했단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데,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고. 시점은 <빛의 제국> 출간 직후라고. <빛의 제국>을 나는 어떻게 읽었던가? 다시 읽어봐야 하니 싶었다. 권희철은 그 말을 이 소설의 발표 직후로 아껴두었어도 좋았겠다고 한다. 이 말에 나도 동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쉽게 읽힌다. 책장도 빨리 넘어간다. 하지만 소설의 상황을 곱씹어야 한다. 주인공 김병수의 생각이라 것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톺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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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유난히 진도 나가지 않았던 글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주인공의 페이스였다. 소설가는 첫 문장을 쓰고는 기다린다.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세계로의 안내를. 단지 받아적을 뿐이다. 그것이 소설가의 일이라는 것에 실감한다. 누구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