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다...
김영하의 소설책들을 읽고 있다.
(p17 에서...) 김영하의 소설은 거침없다. 짧은 문장들의 속도감, 공격적 직설적 표현들. 초반부터 급박하다. 화장실에서 출산하는 애된 여인. 그리고 분위기를 급전환하며 꽃에 대한 문장들. 거기에 '줄기 잘린 식물의 성기'라는 '꽃'의 은유. 대유인가?
...은유-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
...환유-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 표현하는 수사법
...제유-사물의 한 부분으로 그 사물의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
...대유-환유와 제유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포함하는 상위 개념
(p43 에서...) 대머리를 '대머리독수리'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단지 외모로?
2장에서 제이의 일상을 살벌하고 거침없이 묘사하는 작가의 문체가 무섭기까지하다. 겪지 않고 저렇게 쓸 수 있는 힘은 뭘까? 소설 <검은 꽃>에서 느꼈던 실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어떤 준비를 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에게 느꼈던 자신감이 문체에 배어 있다. 그건 아마도 잘 준비된 플롯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책의 반을 읽었는데 이야기의 어느 지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첫 장부터 계속 내달리는 이야기. 이야기의 속도감이 예측을 불허한다. 놓친 것인지 몰라도 제이가 남자 아이였다는 것을 2장에서야 알았다. 제이라는 이름처럼 글도 중성적으로 끌어간다. 등장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놓지 못하게끔.
2장에서 보육원에 있는 제이는 스스로가 열네 살이라고 했는데(p71), 3장에서 동규는 제이가 떠난 때가 열다섯 때란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나 지금 열일곱(p128). 현재의 나이는 같은데 제이가 시설에 보내진 과거의 나이가 다르다. 이야기의 오류일까? 아님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3장의 양상은 다르다. 1장은 제이와 동규의 관계의 시작이라면, 2장은 제이의 성장, 3장은 동규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제이와 동규의 관계 재정립?
4장 밀미에 작가의 말처럼 덧붙여진 글에서 이 소설의 진위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버무려 쓴 것일지가 궁금한 것일 게다. 소설 속 장면들이 예사롭지 않아 어찌 이렇게 썼을까 싶었다. 소설 속 자아로 등장한 작가로 인해 퍼즐은 마췄다. 폭주 청소년 상담 장원봉사저들의 도움으로 쓰여진 소설이었음을 알겠다. 글의 전개가 독특했던 이유도 알겠다. 기나긴 취재의 산물이었음을 알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과정이 심적으로도 많이 어렵고 힘들었겠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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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이는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영아 살해 현장이 될 곳에서 제이를 구출한 사람은 돼지엄마이다. 돼지엄마는 버스터미널 화훼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다 강남의 룸살롱으로 직장을 옮겼고, 증축한 동규네집 빌라 2층으로 이사왔다. 그 후로 제이와 나 동규는 같이 놀았는데 제이에겐 어깨죽지 근처에 혹이 있었고, 동규는 선택적 함구증에 걸려 있었다. 제이는 일반 초등학교에, 동규는 특수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다 동규의 말이 트이고 동규는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가고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혼.
2002년에 사학년이 된 제이와 나. 재개발로 이사를 가면서 관계가 멀어지고, 같은 중학교에 다녔지만 제이는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폐허같은 옛집 지하방에서 제이가 혼자 산다. 돼지엄마는 동거남과 사라졌다. 제이에게 음식도 싸다 주는데 제이는 뒤를 밟는 경찰에게 붙들려 시설로 들어간다. 동규는 크리스마스 카드로 미안함을 전허고 싶지만 전하지 못한다. 굳이 쓰지 않아도 제이가 알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2장
제이는 열네 살이었고 보육원에 있었다. 보육원 근처에서 불이 났고 불이 난 근처 개 사육장에서 불 속에 갇힌 개들을 제이가 화염을 뚫고 풀어 준다. 야산을 떠돌던 이 개들을 무단으로 잡아가려던 개장사들의 트럭 바퀴를 칼로 찢었다. 그 벌로 보육원 독방에 갇히는데 거기서 빙의를 경험한다. 개가 되고, 불이 나던 야산에 목졸려 죽은 여자의 스쿠터가 되기도 한다.
제이는 열여섯에 보육원을 나와 서울로 왔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염목란을 만났다. 목란의 휴대폰으로 동규에게 전화를 했지만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 목란과 헤어진 제이는 잘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발을 들이게 된 곳이 미성년들의 난교 현장과 그들의 성매매, 그리고 정신 장애우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착취하는 십대들의 비행현장이었다. 결국 제이는 그들을 해하고 탈출한다. 그리고 길에서 일 년. 열일곱이 되었다.
3장
제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동규에겐 네가 우주의 중심이라든가, 목란에겐 넌 소중하다든가. 마음을 열고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제이는 어디를 가든 구루 대접을 받는다. 그 덕에 집을 나온 동규는 몸 붙일 곳이 있었다. 가출과 아빠에게 잡혀가는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아빠는 더이상 동규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와 목란과 폭주족 무리에 들고 거기에서도 제이의 추종자들이 생겨나고 그럴수록 동규와 목란은 소외되었다. 그리고 동규는 자신의 욕망을 발견한다. 살인이라는. 제이를 살해하는 환상을.
4장
중학교 3학년 때, 동성애를 경험한 박승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인한 후, 경찰이 된다. 은근히 십대에게 끌리는 것을 느끼지만 그건 성을 떠나 제압하는 쾌감으로 이어지고 폭주족을 굴복시키는 어른 남자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지다. 그에겐 목란의 전 남친 오태주의 파일이 있고 제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승태는 폭주족 사건의 TF에 차출되어 사건을 주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제이를 만난다. 광복절의 폭주 퍼레이드를 주도하는 제이를 제압하기 위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철침을 설치하고 성수대교에서 맞닥뜨린다. 제이는 자신의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도로 위를 달려가 사라진다. 이후 사건은 제이의 승천으로 회자된다. 동규는 사물 어딘가에 제이의 영혼이 스며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인 나는 옛 여친 Y로부터 폭주족의 얘길 듣고 소설을 기획하며 Y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한다. 동규, 목란, 박승태의 인터뷰 후에 '진'이라는 여자로부터 제이의 일 년의 거리 생활 중 일부에 관련된 메일을 받게 된다. 진의 집에 잠시 제이가 머물렀던 때의 이야기다. 후에 Y가 진이었음을 깨닫는다. 동규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자살하고 목란은 벤쿠버로 유학을 떠난다. 소설가인 나는 동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