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다.
책의 속지에 느닷없이 세 개의 회화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이 이 소설에 필요했을 터다.
•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1793

•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1>, 1901
... 이 작품의 금색 테두리 부분은 잘려있다. 잘려진 부분에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글자가 적혀 있다.

•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
... 책에는 <'사르다나팔의 죽음>, 1828'이라 되어 있다. 착오인지 의도인지?

p8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 예술가의 지상 덕목, 건조하고 냉정함.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냉철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p8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자코뱅당의 거두였던 마라는 지롱드 청년 당원 샤를로트 코르테에게 살해되고 후에 공포 정치를 한 로베스피에르는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단다. '기요틴'? 프랑스 혁명 당시 목을 자르는 기구라는데 많이 들어 본듯. 아마도 '기요틴 파일'?...ㅋㅋ
p16 소설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양식이다.
... 화자인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왜? 허구의 이야기라서? 아직 소설의 초반이라 화자에 대해 자료가 부족하다. 판단은 뒤로 미룬다.
p104 원시인이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폈다. 그것은 인간 내붕0 잠재해 있는 백색 공포 때문이라고.
... 백색이 공포스러워 사람들은 채운단다. 텅 빈 것에 공포를 느낀단다. 공포보다는 결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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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자살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삶에 지친, 삶이 무의마한 사람에겐 죽음은 의미롭고 삶을 주는 일일까?
화자는 의뢰인을 물색하고 그에게 접근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다 고객으로 만든다. 고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화자는 자살 방식을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의뢰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는다. 출판을 하지만 원고료도 인쇄도 받지 않는다. 그저 원고를 뿌릴 뿐이다. 화자는 유디트의 의뢰를 처리하고 그녀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유디트라 별명지은 세연. K와 C는 형제였고 총알 택시 기사인 K가 세연을 술집에서 빼냈다. 그리고 엄마의 장례식 다음날 C와 세연이 관계를 맺는다. 세연은 C와 폭설이 내리는 날에 주문진으로 가다가 고립되고 잠든 C를 놔두고 제설차를 타고 폭설지를 벗어나 혼자 마로니에에 왔다가 화자를 만났다. 그렇게 유디트는 욕조에서 잠들었다.
K는 세연이 떠난 것에 분노하며 질주하기 마음 먹는다. 반면 형인 C는 담담하다. C는 큐레이터인 친구의 소개로 행위예술가 유미미를 만났다. 미미는 C의 비디오 작업에 참여하기로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미는 화자의 소개로 꺼려왔던 마지막 작업을 C와 해보기로 결정했던 것. 자신의 모습이 복제되어 다른 사람에게 소장되길 바라지 않았던 미미는 자신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고는 참을 수 없는 격정을 느꼈다. 그리고 잠적했다가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여 퍼포먼스를 하고는 화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집 욕조에서 생을 마감한다. 화자에게 고마웠노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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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현신인가. 화자는 아파트에서 조화를 키운다. 그 꽃들에게 물도 준다. 먼지를 씻어내는 것은 아닐 터. 죽어있음에 생명을 부리는 일. 섬뜩하다. 화첩으로 서재를 꾸미고자하는 화자는 한 화첩을 꺼내 성도 함락 직전에 바빌로니아 왕 사르나다팔루스의 최후의 결단을 바라본다. 자신의 아내와 첩, 가족들을 죽이라 병사들에게 명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이다. 화자는 스스로를 사르나다팔루스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클림트의 유디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화자 의뢰인일 가능성이 크다. 화자가 찾는 유디트들은 공포로부터 도망친다. 무료함, 무의미, 비어짐, 쓸모 없음, 그리고 하얀 것, 텅 빈 것으로부터. 화자는 공포를 단죄한다. 사르나다팔루스의 심정으로. 공포를 단죄하고 여행을 떠나는 화자는 생각한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