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kkeb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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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출연자 인생을구한 여배우.jpg


그저 갓ㅇㅇ...
방송국놈들은 사람을 걍 소품취급하네 씨앙넘들 ㅁㅊ

인벤펌
1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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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네요 . 인성이 참 아름다워요.💕그래서 더 빛이 났던거구나~👍
이런 글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흉은 안졌을지,,,
지민씨 여기 팬 하나추가요~😍😍😍
흉터 다 없어졋으려나
ㅜㅜ그와중에왜이리예뻐..!˃̵͈̑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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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 사례로 보는 미세먼지의 위험성.jpg
중국 威海(웨이하이)에 살고 있는 36세의 자우타우. 자우타우는 지난해 베이징을 떠나서 고향인 웨이하이로 돌아왔습니다. 베이징은 대기오염으로 인해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 평균 미세먼지농도는 100마이크로그램을 넘나듭니다. 고향에 온 자우타우는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고 다닙니다. 베이징에 비해 웨이하이의 미세먼지농도가 절반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늘 잊지 않습니다. 폐에 좋다는 약을 음료수처럼 마십니다. 챙겨온 약들도 가득입니다. 왜 이렇게 자우타우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오른쪽 폐는 정상이지만, 왼쪽 폐가 1/6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년 전에 폐암말기를 진단 받고 폐의 대부분을 수술로 잘라내야 했거든요. 그는 촉망받는 소아과의사였습니다. 건강했고, 운동을 즐겼죠. 신부와 결혼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암에 대한 가족력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폐암에 걸렸습니다. 자우타우는 미세먼지가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자신이 수술했던 어린아이들의 폐에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베이난, 산시처럼 공기오염이 심한 곳에서 온 아이들은 폐가 검은색이나 회색이었다는데요. 공기가 맑은 곳에서 온 아이들의 폐는 선홍빛으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문의들도 "미세먼지가 유발하는 질병은 폐암이다. 미세먼지를 들이마셨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곳이 폐이기에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기침, 가래, 재채기 등 호흡기 증상으로 시작해 폐암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세먼지가 '매우나쁨'일 때 1시간 외출한다면 밀폐공간에서 담배연기를 1시간 24분 흡입하거나 2000cc 디젤차에서 나오는 매연을 3시간 40분 들이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 엽혹진 중국이 정말 우리의 모든 자유를 뺏어가는 기분이네요.... 코로나도 그렇고 숨 쉴 권리도 그렇고......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시대 궁궐 모습.jpg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유리에 감광유제(感光乳劑)를 칠한 사진용 감광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건춘문 동쪽으로 이건되기 전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으로 이를 확대하면 '光化門'이란 현액 글씨가 뚜렷하다. 나아가 그 전면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열린 우협문 안으로 보이는 흰색 가건물 지붕 일부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건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경복궁 자경전. 이곳은 이후 두 차례 화재를 만났다가 1888년(고종 15) 재건됐다. 꽃담으로 유명한 이곳 서측 담장에는 꽃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다. 윗쪽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며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경복궁 자경전 꽃문양 앙부일구는 조선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로 창덕궁 소장품으로 현재 여주영릉전시관과 창덕궁에 전시 중이다. 현재 이 앙부일구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몸체가 감입돼 앉힌 모습이다.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왼쪽과 가운데) 앙부일구 원래 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사진이다. 창덕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을 당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만 남아 있으며 부표는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한다.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존품은 1536년(중종 31)에 제작품으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조선국왕 용상 뒤에 설치한 그림병풍인 일월오봉병으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이에는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 있으나 현재의 일월오봉병(아래쪽)에는 이 금속판이 없다. 1935년 경복궁 건청궁 터에 조선총독부종합박물관을 짓기 위한 지진제를 지내고 있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이 절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가 이를 모두 철거하고 종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가 전시체제가 확산됨에 따라 총독부미술관을 짓는 데 그쳤다. 1929년 지금의 경복궁 건춘문 일대로 옮긴 광화문 문루에서 본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동편에는 민가들이 밀집해 있다. 1929년 박람회로 궁성이 파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이 붕괴사고는 1926년 4월27일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며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고 매일신문 4월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된다. 동경에 거주하던 이왕세자와 그 왕비 등 일행이 19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희정당에 도착하는 장면.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인은 이왕세자비 이방자 여사 1922년에 고국을 방문한 이왕세자 일행이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날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첫줄 왼쪽부터 정무총감 부인, 사이토 총독 부인, 의친왕비, 이방자 여사, 순정효황후, 순종, 이왕세자, 의친왕,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등의 순서다. 1922년 이왕세자 내외의 창덕궁 체류 중 후원 나들이를 촬영한 장면으로 보인다. 건물은 영화당이며,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의 박석을 없애고 화초를 심고있다. 조선의 문무고관들이 왕에게 하례하던 상장적인 공간을 일제가 훼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02년의 경복궁 경복궁은 그 창건 초기부터 조선조 멸망까지 (1394~1910년) 조선의 정궁으로서 제 구실을 못한 불운의 궁이었으며, 조선조 500년동안에 사람이 산 기간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긴 세월 동안 폐허로 방치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궁이다. 경복궁은 1592년 부터 1868년 까지 276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폐궁이었다. 또한 순종을 심심하지 않게 위로한다는 구실로 1908년 일본은 창경궁에 동물을 끌어들여 동물원을 만들어서 조선의 오대왕궁중에 하나인 창경궁을 하루아침에 동물원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출처 그대로 남았다면 얼마나 더 멋졌을까요.. 사진으로 보니 위용이 더 실감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