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100+ Views

115

<D.P.>를 다 봤다. 시즌제인가? 이렇게 끝은 아니겠지? 군대 서사라고 해서 흥미가 안 갔었는데, 보길 잘했네요. 하긴 서사가 무슨 죄가 있나.

내일은 1차 백신을 맞는다. 장소 선택을 잘못해서 한참 가야 한다. 아, 떨려. 입대하던 날 같군. 그럴 리가. 물론 농담이다.

마지막 발표 시까지 제출했다. 이제 진짜 시를. 지금부터 연말까지 무조건 소설도 한 편, 희곡도 한 편, 시는 일곱 편. 가자 가자. 우울할 시간도 없다.
realrappy
2 Likes
0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토박이말 살리기]1-95 매시근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95 매시근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매시근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운이 없고 나른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몸살이 나서 온몸이 매시근했다. 의사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쇠 꼬치를 그의 입에 넣었다 꺼냈다 하였다. 철호는 매시근하게 잠이 왔다.(이범선, 오발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몸에 기운이 없고 나른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만 보기월은 없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를 보니 밑에 것이 좀 더 뜻을 알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운'이라는 말이 '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매시근하다: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하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렇게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낮밥을 먹고 바로 앉아서 일을 할 때도 그럴 수가 있지요. 또 일을 많이 하고 난 뒤에도 이러기 쉽습니다. 위에 있는 보기월에도 나온 것처럼 몸살이 나거나 고뿔에 걸렸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곤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를 미리 막으려고 주사를 맞고 나서 이렇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싶습니다. 그럴 때 '매시근하다'는 말을 알고 있었더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썼을 것입니다. 둘레 사람들이 많이 쓰는 '무기력하다'가 '힘이 없다'는 뜻이니 '매시근하다'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무기력하다'는 말을 써야 할 때 '매시근하다'를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겨울달 이레 두날(2021년 12월 7일 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매시근하다 #무기력하다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사회생활, 인간관계 조언 18가지
1. 사과만 잘해도 90%는 먹고 들어간다. 실수나 잘못은 빠르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2. 누구에게나 착하게 굴지 마라. 착함과 현명함은 다르다. 나를 보호할 수 있게 때에 따라 거절도,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3. 쓰레기장에서 쓰레기와 어울리면 나도 쓰레기가 된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자. 4. 한 번쯤은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해 봐야 한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5. 거창하지 않아도 단기, 장기 목표를 세우자. 열심히 달리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때 이 목표들이 표지판이 되어줄 것이다. 6. 인사는 기본이다. 인사는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첫걸음이다. 7. 눈치가 좋은 사람들은 눈치가 없는 척한다. 적당히 모른척해야 사회생활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8. 버렸던 쓰레기는 다시 주워오지 말자. 나에게 상처 주고 손절한 사람들을 용서할 필요 없다. 결국 다시 배신할 테니. 9.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결국 나를 공격한다. 미워하는 대신 잊자. 10. 이기려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자. 살다 보면 때론 실패하고 질 수도 있다. 이기려 하지 말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 하자. 11. 가끔 관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내 옆에서 힘이 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만 남겨둬도 충분하다. 12. 꾸준히 운동해라 13.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무례한 사람은 영원히 무례하고 좋은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다. 바꾸려고 해봤자 내 힘만 빠진다. 14.입 밖에 꺼낸 순간 그건 비밀이 아니다. 나를 믿고 말해준 사람을 배신하지 말자. 15. 사람의 본성은 그 사람이 화낼 때 나타난다. 화낼 때 바닥을 보여주는 사람은 피하자. 16. 행복은 생각보다 작은 곳에 숨어있다. 큰 성공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17.안 하고 후회할 바엔 하고 후회하기.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이 남는 게 아니라 경험과 성공이 남는다. 18. 가장 중요한 건 ‘내 인생’이다. 인생에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다. 출처ㅣ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요즘 배움책에서 살려 쓸 토박이말]8-홀소리
[요즘 배움책에서 살려 쓸 토박이말]8-홀소리 1학년 학기 국어 배움책(교과서) 셋째 마당 ‘다 함께 아야어여’에서는 “모음자를 알아봅시다.”라는 말을 앞세우고 모음자 모양 알기-모음자의 이름 알기-모음자 찾기-모음자 읽기-모음자 쓰기-모음자 놀이하기의 차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습니다. 앞서 ‘자음자’ 이야기를 할 때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교과서에 ‘모음자’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선생님도 배우는 아이도 ‘모음자’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왜 ‘ㅏ,ㅑ,ㅓ,ㅕ...’같은 것을 왜 모음이라고 하는지 궁금해 물어도 ‘어미 모’, ‘소리 음’이라는 한자 풀이를 넘어 더 쉽게 풀이해 줄 수 있는 선생님도 많지 않은 게 참일입니다. 제가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어 본 바에 따르면 ‘모음’보다 ‘홀소리’라는 말을 더 쉽게 알아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ㅏ’부터 ‘ㅣ’까지 열 가지 소리를 다 내어 보라고 한 다음 앞서 ‘닿소리’가 우리 입술이나 입안 어디엔가 닿아서 나는 소리였다는 것과 견주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닿소리와 달리 아무데도 닿지 않고 소리가 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립니다. 이처럼 ‘ㅏ,ㅑ,ㅓ,ㅕ...’같은 소리는 우리 입술이나 입안 어디엔가 닿지 않고 제 홀로 나는 소리이기 때문에 ‘홀소리’라고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바로 알겠다고 했습니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1학년 아이들에게는 ‘모음’보다 ‘홀소리’라는 말이 훨씬 쉬운 말입니다. 온 나라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모음’, ‘모음자’가 아닌 ‘홀소리’, ‘홀소리 글자’라는 말로 한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나아가 이 홀소리는 세종 임금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실 때 ‘하늘’, ‘땅’,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우리 삶을 나타낸 것이라는 것까지 똑똑하게 알려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겨울달 엿새 한날(2021년 12월 6일 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모음 #홀소리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교과서 #국어 #1-1 *이 글은 아이좋아 경남교육 매거진에 실은 글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32
직장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특성상 매달 두 명 이상의 시인이나 평론가가 사무실을 방문하는데, 그중 많은 이들이 빈손으로 오기가 그래서인지 뭘 꼭 사 들고 온다. 문제는 대개 처치 곤란의 빵이라는 것이다. 사 들고 오는 것이 대개 처치 곤란의 빵인 이유는 사무실에 오는 길목에 빵집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은 너무나 당연히, “손님이라면 빵 정도는 사 가야지, 이봐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이 근처 어디를 둘러봐도 여기서 빵을 사 가는 것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을 거야, 그러하니 어서 여기서 빵을 사도록 하라구.”라는 말을 상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히 적당한 곳에 위치한 빵집이며, 설령 내가 내 직장에 방문하는 손님의 입장이라고 해도 그 빵집에서 빵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빵집이다. 우리 사무실은 그 빵집의 점주가 상상도 못 할 홍보력을 제공하고 있고, 그러므로 약소한 지분을 요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저 그런 빵집 체인점에서 선물용으로 거래되는 빵들은 대개 그저 그렇고, 정말이지 이상하리만치 손이 안 가며, 선물 받으면 고맙기는 하나 전혀 설렘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 오는 사람 또한 요령부득으로 골랐을 뿐, 예의는 갖췄으니 난 이제 몰라요, 알아서들 하시오, 라는 태도여서, 사실상 거의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대표는 이제 빵이라면 넌덜머리라도 나는지, 당혹스러움을 대신하여 쓰디쓴 웃음을 짓거나 어떨 때는 조용히 읊조리곤 한다. “차라리 박카스를… 박카스를…….” 홈페이지에 빵 금지 공지사항이라도 띄워야 할 판이다. <빵 대동 시 당사 입장 불가, No bread zone> 넘버링 32. 그렇다면 내일은 31. 내일은 12월 첫날. 12월은 31일까지 있다. 고로 정확한 넘버링. 전에도 언급했지만 혹시나 올해 마지막 날 일기의 넘버링이 1이 아니라 그보다 많은 숫자거나 그 반대면 어쩌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12월 동안 착오가 없다면. 뭐가 됐든 이제껏 모래시계 역할은 톡톡히 해온 듯하다. 그거면 됐잖아.
28
다섯 시간 반 동안 어제 쓰던 소설을 이어서 썼다. 오늘은 이십오 매 정도 썼다. 어제의 분량을 더하면 전체 분량에서 절반에 조금 못 미치게 쓴 셈이다. 소설을 쓰면서 정식 소설가가 되는 것은 좀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더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소설가가 되는 것은 좀 다른 얘기다. 다만 소설가가 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것은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거다. 힘들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재미있다. 그러나 소설가가 되는 것은 정말이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설령 된다고 해도 어차피 이름을 얻기는 어렵지만, 천신만고 끝에 이름을 얻는다 해도, 나는 너무 위험한 소설가가 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결국 자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생각은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내 결정적 한계와 관련이 있다. 적성이다 재능이다 하는 것도 다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작가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은 윤리관이다. 내 윤리관은 보편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기교만을 맹신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습작기에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윤리의식이 전부라는 생각마저 든다. 왜 그렇게 안이하고 무지했을까. 윤리라는 따분한 개념은 그저 내 안에 이미 장착된 것이라고, 철없이 생각해왔던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내가 시로 등단할 당시에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저명한 평론가 선생님께서 내게 시민사회의 보편윤리에 관한 지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 이제야 겨우 나를 섬뜩하게 한다. 선생님의 지적이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다름 아닌 이것이 요즘 내가 글 쓰는 자로서 느끼는 심각한 결핍이고 열등감이다.
29
소설을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아홉 장 정도를 썼다. A4 용지로 치면 한 장 정도. 그런데 절망스럽게도 이 분량을 쓰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한 단락을 써놓고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고치다 보니. 이래서는 안 되는데. 문제는 소설을 쓰는 동안 내가 신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나조차도 재미없는 소설이 누구에겐들 재미있을까. 어쨌든 계속 써 본다. 다음 주면 신춘문예 마감이어서 이번 주말에는 어떻게든 끝내보고 싶은데 과연 분량을 맞출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당선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는 데 의의가 있다지만. 애초 희곡을 응모하기로 했던 계획은 소설로 변경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마감을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설령 신춘문예 응모를 못 한다고 해도, 빙글에는 꼭 올리도록 하겠다.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써서인지, 혹은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인지, 소설 쓰기가 이토록 더뎌진 것은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이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플롯을 짜놓고도 끙끙 앓고 있는 꼴이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재능에 대한 확신. 예감. 예감으로부터의 배신. 다시 확신. 다시 배신. 이 얼마나 혹독한 담금질인가. 나는 얼마나 단단해지려고 이러나.
33
유튜브에 자우림의 신보가 떠서 재생을 눌렀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김윤아에게 예전만큼은 감흥이 없구나. (사실 자우림보다는 김윤아의 솔로 작업물을 좋아하고, 그마저도 2집까지만 좋아한다.) 음악이 그닥이어서라기보다 그냥 이유 없이 그랬다. 모르겠다. 월요일이고 하니 피곤해서 그런 건지도. 공교롭게도 자우림의 이번 앨범 이름은 <영원한 사랑>인가 보다. 김영민 교수의 신간이 나와서 읽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틈틈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고 있다. 당시에 띄엄띄엄 봐서 제대로 정주행하고 싶었다. 벌써 십여 년 전 작품이라니.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는데, 하도 유명했던 작품이라 비극적 결말 또한 이미 알고는 있지만, 이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한 유머들을 보면서도 왜 미리 슬프다 못해 다소 공포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걸까. 김병욱의 작품들이 그런 측면이 있어서 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예정된 비극을 지켜보는 것은 조금 고통스럽다. 설령 허구일지라도. 또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인이 된 극 중 배우 한 명이 멀쩡하게 희극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그동안 지나쳐 온 내 시간들이 떠올라서, 또 언제라도 비극이 될지 모르는 하루하루가 조금 잔인해서. 따뜻했던 만큼, 꼭 그만큼 더 슬퍼지는 질서는 너무 자명하고 정연해서.
36
어제 사촌 형과의 통화 중 스쳐 들었던 임사체험 비슷한 얘기들이 내내 뇌리에 남는다. 형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고모와 형수님은 의료진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심장이 멈춘 곳은 수영장이었고, 진행요원의 발 빠른 대처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었으며,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다시 처치가 이어졌다. 사실 이것만 해도, 그러니까 CPR에 능숙한 전문 인력이 주변에 있는 상황이었던 것은 굉장한 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어찌 형은 의식을 찾아 병상에 누운 채로 오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특유의 사교성으로 병원 관계자들과 여러 날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냈다고 한다. 특히나 전문 간병인이었던 한 중년 여성분으로부터 끝없이 ×× 씨 얼른 일어나셔야죠, 이런 응원의 말들을 듣고 화답하기도 하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던 한 인턴분의 정성이 감사해서 퇴원하고 나면 밥을 사겠다고 하는 등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는데, 사실 그 인턴과 중년의 간병인이 병원 어디에도 없는 인물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형은 사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에크모 치료까지 동원하며 겨우 의식을 찾고 나서 그들이 실재 인물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형의 무의식 안에서 등장한 가상의 인물들인 셈이다. 형은 겉으로는 잠들어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자신의 무의식 안에서는 나름대로 굉장히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생시이고 어디까지가 무의식이나 꿈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글쎄, 모르겠다. 그것이 말 그대로 그냥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들이었을지, 아니면 이쪽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의 한 실재였을지. 형은 원체 성격이 쾌활한 탓도 있겠지만, 안심을 시키기 위해서인지 시종일관 농담을 섞어 무용담을 늘어놓듯 얘기했다. 그러나 본인도 그 임사체험 비슷한 것에 관해서는 은근히 격앙돼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세계는 정말이지 얼마나 불가해한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