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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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문화를 포멧한 나라.jpg


분서갱유 (진나라, 기원전 212년)

의약 점술 농업 의학에 관련된 책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경서)와 시문, 진나라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를 불태움

그래서 고대 중국 역사책은 거의 다 불에 타서 사라지고 몇 안되는 남은게 공자의 <춘추>를 비롯한 저서들임. 이건 당대 유학자들이 책을 통으로 암기해서 살아남음.
우리가 알고있는 유학의 사서오경도 주역 빼면(점치는 책이라고 살아남음) 다 나중에 암송해서 새로 쓴거임.


문자의 옥 (청나라, 17세기 후반~18세기 초)

대륙을 지배한 만주족이 한족의 반청의식을 꺾어버리기 위해 벌인 사건.
청나라 강희제~건륭제 시기 대대적으로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박탈하고, 글자 하나하나 트집잡아서 지도때도 없이 팔족까지 죽여버림.

이러니까 무서워서 아무도 현실비판이나 연구를 안함. 그래서 지금은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이 서양에 결정적으로 뒤쳐지게 되었다는게 정설임.


문화대혁명 (중화인민공화국, 1966~1976)

“의심할 여지 없이,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중에 무산계급 신사조, 신문화, 신풍속, 신습관이 반드시 지주들과 기타 착취 계급의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 이런 부패한 것들을 대체할 것이가.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하여 떨쳐 일어선 중국 인민은 반드시 온갖 잡귀신을 쓸어버릴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조직적 국가적 문화파괴 사례.
4천년 이상의 중국 문화가 최소한 수백년 수준으로 리셋된 사례. 더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역사는 늘 그렇듯 반복된다.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그게 지금일지도
출처 : 이토렌트

왜 지들 문화는 자꾸 리셋시키면서
다른 나라 문화는 자기꺼라고 우기는지..
참 알 수 없는 민족입니다.....
(문화는 리셋되는데 왜 저 인간은 리셋이 안 될까요)
Voyou
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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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짱깨는 배울게 없군요
지들껀 다 때려 뿌사놓고 남에꺼 좋은건 다 자기꺼라고 개소리를 짖어싸니 원
근본없는 버러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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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목욕 문화 존나 발달한거 신기하고 재밌음
로마시대땐 목욕하는걸 중요시해서 저렇게 대욕탕 존나 흔했다고함 현대식 구조의 사우나도 있어서 사우나도 많이 했는데 서유럽 중유럽은 명맥이 끊겼지만 북유럽에서는 이어져서 여전히 사우나 많이 함 로마시대 대욕탕 이렇게 큰 욕탕의 물을 채우고 끓여서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선 노동력이 엄청 필요했는데 로마는 노예를 이용해 충당했으나 해체 이후엔 그럴 노동력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대욕탕은 사라졌다고함 그래도 소규모 목욕탕은 많이 생기고 14세기까지만해도 여전히 잘 씻던 편이었는데 목욕탕에서 매춘이 공공연하게 이뤄져 타락의 소굴로 여겨지고 페스트의 확산에 목욕탕이 큰 영향을 끼치면서 결국 유럽의 목욕 문화는 사라지게됨 그럼 유럽사람들은 집집마다 목욕탕을 놓고 씻었나? ㄴㄴ 걍 안씻음ㅋㅋㅋㅋㅋㅋ 목욕탕은 위험하다 = 목욕은 위험하다! = 목욕은 나쁘다가 되어버려서 목욕을하면 균을 막는 보호막이 물에 씻겨져나가 병에 걸린다고 믿었음 결국 중세/근대 유럽은 질병의 온상이 됨 그럼 이슬람이 주 종교인 아랍은 어땠냐 물이 부족했으니 오히려 더 목욕 안했겠다 싶지만 실상은 반대로 목욕을 안 하고 모스크에 가면 불경하다고 욕먹었기 때문에 목욕 문화가 엄청 발달함 거기서 나온게 하맘 페르시아(이란)이나 오스만(터키)는 이런 하맘이 매우 흔했는데 증기탕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미는 풍경이 흔했음 청결에는 남녀 구분도 없어서 여자들이 히잡을 안쓰거나 신체가 많이 드러난 모습을 보이면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하맘 안에서는 오히려 와; 알라를 뵙기위해 몸을 씻는 현숙한 여자를 뭐라하네 미친새끼;;가 돼서 역으로 욕먹었다캄 이런 목욕 문화는 50년대 이후 쪽본으로 넘어가 터키탕이 되었는데 원래는 세신사가 때를 밀어주는 깨끗하고 호화로운 목욕 시설이었으나 점점 퇴폐 업소로 변질되고 아예 성매매의 온상이 되어 처벌의 대상이 됨 그리고 이후에 쪽본을 방문한 터키 대사가 터키탕이 이런 성매매 시설이 되었다는걸 알고 외교적으로 항의해서 현재 이런류의 시설은 이름이 전부 소프란도로 바뀜 남의 나라 문화 매음굴로 변질시키는 상상도 못할 빻음 한국은 그럼 목욕이 어땠냐 고려시대까지는 많이 씻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의 영향으로 목욕을 자주 하지 못했다고함 왜냐면 이때는 절에 목욕탕이 있었고 거기서 많이들 씻었기 때문임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매일 씻는 경우가 많았고 제례를 위해서 하루에 몇번이나 목욕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드물어졌고 온돌이 들어오면서 데워놓은 물로 굳이 목욕해 몸을 덥힐 이유가 사라져 말기에는 거의 목욕 문화가 사라짐 근데 목욕 잘 안한건 서민들이지 사대부나 고위 계층은 제례를 이유로 목욕 여전히 많이했다고함 그러다 현대식 대중목욕탕이 들어오고 정책으로 위생을 강조하면서 점점 목욕 문화가 돌아오기 시작 지금은 또 집집마다 목욕 시설이 있어서 잘 씻는 편임 사실 한국인들이 잘 안 씻었던 때는 조선시대 중기-말기였고 그때도 겨울 빼면 잘 씻었음 한국 기후 특성상 겨울에 씻으면 얼어 죽었거든 역으로 한국에 비해 기후가 따뜻한 편이고 여름에 고온다습한 쪽본은 목욕 문화가 크게 발달함 화산섬이라 온수가 비교적 흔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음 그래서 여름엔 고온다습하니 땀 많이 흘려서 씻자 + 겨울엔 춥고 집은 난방도 안되니 온수로 몸을 뎁히고 자자 해서 목욕 문화가 발달하게 됨 사실 쪽본뿐만 아니라 화산 섬같이 온수가 제법 흔한 지역들은 목욕 문화가 많이 발달했음 터키랑 이란도 세계에서 꼽히게 온천이 많은 지역 이런 목욕 문화는 대만에 넘어가서 대만이 중화권에서 유일하게 잘 씻는 곳이 된데도 한 몫함 대만이 물이 흔한 동네인 것도 있고.. 출처 : 해연갤 이 글 보니까 목욕탕 가고싶어지네요..ㅋㅋㅋ 코로나 빨리 끝났으면...... 제일 먼저 목욕탕으로 뛰어가 세신받고 찜질하고 나와서 코노갈겁니다..
백린탄을 끌어안아 훈장 받은 남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2 폭격 대대 소속 B-29 로스엔젤레스호에서 무전사로 근무하던 헨리 E. 어윈 선임부사관(staff sergeant)의 사연. (표현방법 등을 수정했습니다.) 1945년 4월 12일 사건 당일 선두기체로서 표적용 백린탄을 떨어뜨리기 위해 핀을 뽑고 발사대에 넣는 순간 결함으로 일찍 터져 기체안으로 튕김. 백린탄이 튕기면서 어윈의 얼굴을 강타해 눈과 코를 잃음 백린탄 연기가 기체 안에 차면서 조종사가 시야를 잃고 B-29는 급강하 그 순간 어윈은 손으로 백린탄을 더듬어서 위치를 찾은 후 팔로 백린탄을 가슴팍에 안고 기체 앞쪽으로 기어서 감 중간에 항해사 책상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그것도 자기손으로 치운 후에 창문 열라고 소리치며 부조종석 창문까지 감 그리고 녹아버린 손으로 창문을 더듬어서 찾은 후에 창문 밖으로 백린탄을 던짐 (백린으로 불타오르는 어윈 보고 멘붕한 부조종사 장교한테 경어로 "excuse me sir"하고 캐니스터를 내던졌다고...) 그 후에야 어윈은 바닥에 쓰러졌고, 동료들이 불붙은 어윈의 몸을 소화기로 꺼줌 수직강하하던 로스엔젤레스호는 불과 300피트에서 급상승해서 구사일생했고 어윈의 치료가 기능한 이오지마에 착륙함 의사들이 4시간동안 눈에 묻은 백린들을 제거하는 수술 등을 했는데 놀랍게도 어윈은 계속 의식이 있었다고 함 백린은 산소만 만나면 타는데 4시간동안 눈이 타는 고통을 당한것. 이 사실을 보고받은 르메이 커티스(석기시대 매니아 맞습니다.)는 새벽 5시에 워싱턴에다가 명예 훈장(Medal of Honor)추천을 했고, 부관을 진주만에 파견해서 '이 용감한 군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명예 훈장을 가져오도록' 라고 명령함. 태평양에 있는 명예 훈장이 하와이 호놀룰루의 진열대에 딱 하나 있었기 때문에 호놀룰루로 특별 수송기가 파견되어 훈장을 가져옴. 가져올 당시 임무에 충실했던 부관은 훈장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듣고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던 훈장을 케이스를 박살내고 탈취해 옴. (새벽 비행기로 도착해서 사람도 없고 정식절차도 밟을 시간도 없었기에 처음부터 훔쳐올 생각이었다고) 그동안 이오지마에서 괌으로 후송된 어윈은 4월 19일 훈장을 수여 받게 됨 그래서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내로 명예훈장이 수여됨. 수여식은 병실에서 바로 진행됨. 어윈은 47년에 제대할때까지 43번의 수술을 받았고 제대 후엔 VA에서 화상환자들을 돕는 일을 했다 함 그리고 2002년 1월 16일에 영면 요약 : 재팬 핫을 위해 폭격기 승무원으로서 비행중 표적 지시용으로 투하할 백린탄이 기내에서 기폭. 모두가 이제 다 뒤졌구나 싶었을 때 헨리 선임부사관이 활활 타오르는 백린탄을 안아들고 뱅기 창문있는 곳 까지 들고감. 들고 가다가 얼굴에 튀고 눈에 튀고 앞을 볼 수가 없어서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걸어감 겨우겨우 뱅기 창문 위치에 다다르자 창문 열고 집어던짐. 어떻게든 죽진 않고 살아남아서 병원에 입원. 폭격도 무사히 폭격성공. 관련영상 그리고..이 글에 달린 댓글 하나 한국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1. 기체 결함을 은폐 축소하는 과정에서 병사 운송 늦어짐 2.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병사에 대해 국방부, "전례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지정 및 훈장 수여 거절 3. 해당 병사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수술비가 청구, 국가 지원은 불과 수백만원에 그침 4.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 사망. 병원 측은 "평소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진단 5. 유가족 및 시민들에 의한 촛불시위 현장에 국정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방해 공작 6. 당시 군 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인턴, "환자의 회복을 방해하라는 압박 있었다"고 언론에 밝힘 7. 사고 발생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기상악화가 원인이라고 발표했으나, 군납 비리에 의한 기체 오작동으로 드러남 8.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 군 법원에 의해 당시 지휘관 및 관계자들 가벼운 징계에 그침 9. 6개월 뒤 같은 부대에서 똑같은 사고 재발 1차 출처 : 디시 기갑갤러리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1028121&page=2&exception_mode=recommend 2차 출처 : 클리앙 대단하신 분이군.... 하고 읽다가 마지막 댓글에 한숨만 깊게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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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문사 가족들이 진행하는 뮤지컬.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하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故 고필주 일병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2017년 7월 19일 국군수도병원에서 한 병사가 투신자살한다. 왜 고필주 일병은 자살을 선택했을까? 군대에서 걸려온 전화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수첩에는 군대에서 일어난 수많은 가혹행위가 기록돼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유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군대는 유서를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상당히 끔찍한 사실은.. 군대가 뺏어간 아들의 마지막 유서를 유가족은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고필주 일병의 유서 전문 그러나 고필주 일병의 극단적인 선택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고필주 일병이 수십차례 피해를 호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이 커지자 그제야 군대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유서에 적힌 단서 이외에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여론 통제에만 급급했던 군대의 방침이 내부 문건에서 드러나게 됐다. 2017년 어느 병사가 죽었다. 우리가 모르는 무관심 속에서 3줄 요약) 1. 2017년 국군수도병원에서 투신 자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2. 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유가족은 아들의 유서까지 빼앗기게 된다. 3. 아직도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출처 : 오유 가해병사를 관심병사로 지정하고 분리해야지 어차피 사회에 나와도 똑같이 사고칠 놈들인데.... 군대가 바뀌는 날이 오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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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평소에 신분을 가린 채 궁궐 바깥에 나가 민심을 살피는 것을 즐겨 했는데 그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숙종은 밤에 미행으로 남산골을 순시하였다.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쫓아가 보니 어느 오막살이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창 사이로 안을 엿보니 젊은 남편은 글을 읽고 새댁은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선비 내외의 모습은 비록 가난하지만 귀엽고 흐뭇해 보였다. 얼마쯤 지나 젊은 남편은 책을 덮으며 속이 출출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새댁이 조용히 일어나 벽장 속에서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꺼내 놓으며 드시라고 한다. 남편은 반가워하며 얼른 한 개를 집어먹더니 두 개째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임금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하기는 마찬가지 일 텐데 어찌 혼자서 두 개를 다 먹나?'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송편 하나를 입에 물고 새댁의 입에 넣어주는데 서로 사양하며 즐기는 것이었다. 숙종은 부부의 애정에 감동하며 부러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하자 수라간이 온통 난리를 치르며 큰 수라상이 들어오고 큰 푼주에 송편을 높다랗게 괴어 전후좌우 옹위를 받으며 요란스럽게 들고 오지 않는가... 눈앞에 아른거리던 어젯밤의 아름다운 광경은 깨어져 버리고 울컥 화가 치민 왕은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 하면서 송편 그릇을 뒤집어엎으며 내동댕이 쳤다. 모두 왕의 심정을 알리 없어 의아해 할 뿐이었지만 그 후 내막을 알게 되고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의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근데 이런데다 담아주니 나라도 씅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야 성질머리 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사이즈면 ㅅㅂ 마을잔치 아니냨ㅋㅋㅋ 내가 수라간 궁녀였어도 주상전하께 송편을 대령하라~~~~~~~~~~~~~~ 해서 허겁지겁 다들 모여앉아 500개정도 만들고 그중에 제일 예쁜놈 2~30개만 올린건데 그걸 걷어차시네 ㅇㅇ 현타 오지게 올듯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