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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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이 모든 곳에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늘 하던 대로 나는 카드를 긁을 뿐인데 재난지원금에서 차감되는 경우도 있고, 평소처럼 내 돈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내가 정부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엔 내가 살게, 이번엔 네가? 정부와의 더치페이. 나 지금 뭐라니.

연말이 다가오면 다음 해의 계획들을 세우곤 한다. 새로운 종목들을 계획하기도 하고, 늘 하던 것들의 테마를 정하기도 한다. 일단 많이는 아니어도 꾸준히 하고 있는 독서의 내년 테마는 고전 읽기다. 내년은 독서에 한해서 ‘고전 읽기의 해’로 정했다. 고전, 그리고 세계문학을 중심으로 읽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예외사항을 두자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책은 별개다. 한마디로 내년 독서 테마는 정확히 ‘고전 읽기와 책장 파먹기’다. 이를테면 냉장고 파먹기 같은 거다. 일단 있는 거 읽자, 이런 거다. 갖고 있는 책들을 읽어버리고 빨리 좀 치워버리고 싶은데, 그러니까 책장에 딱 이번 달에 읽을 책 정도만 놓고 싶은데 당최 그게 안 되네. 책장과 책상에 책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이게 다 호기심 탓이다. 아니 이런 책이 나왔네? 뒤적뒤적. 아니 이런 책도? 뒤적뒤적. 자자, 이제 그런 건 당분간 그만. 사실 지금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 읽고 있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후로는 ‘고전 읽기와 책장 파먹기’ 돌입이다.

운동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종목인데, 코로나 4단계로 인해 중간에 pt가 어중간하게 끝나고 다소 게을러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재 일주일에 적어도 이삼일은 센터에 가려고 하고 있고,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자전거는 꾸준히 타고 있다. 또 홈트도 적게나마 하는 중이고.
올해 운동을 시작했으니 이제 내년 운동의 테마를 정할 건데, 사실 유도를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크로스핏에도 관심이 간다. 나는 크로스핏이라는 것이 그냥 조금 변형된 헬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무지가 무서운 거다. 우연히 지인과 안부를 묻다가 그녀가 요즘 크로스핏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해서 이것저것 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그룹 운동이다 보니 요즘 운동 메이트가 필요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좋은 운동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종합적으로 체력을 기를 수 있으니 운동을 편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관심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일단 내년 운동은 크로스핏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물론 변수는 늘 염두에 두고.

마지막으로 이건 장기 프로젝트 느낌으로 생각 중인데, 크게 색다른 건 아니다. 내년부터는 영어를 좀 공부해보려고 한다. 사실 영어 공부는 2017년에도 시도하다 실패했고, 작년에도 시도하다 실패했다. 방법은 모두 달랐었다. 영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방법 중 나에게 맞는 것은 무엇일지 참 여러모로 고민했다. 기초 회화책 한 권을 우선 다 외워보려고도 했었고, 미드를 통해 해보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다 지쳐서 떨어져 나갔다. 물론 의지의 문제이지만.
우선은 영어를 배우려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영어를 통해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거나 스펙을 쌓으려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좋지만 그 자체가 최종 목표라면 더 쉽게 지칠 듯하다.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영어를 공부한다면, 혹시나 결국 좋은 직업을 갖지 못했을 때는 얼마나 좌절감이 클 것이며, 또 요즘 세상에 영어 하나 좀 잘한다고 갑자기 인생에 대반전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나는 그냥 영어를 취미 삼아 하고 싶다.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더 쉽게 지치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은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어쨌거나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외국어에 순수한 호기심이 이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모국어, 그러니까 한국어를 의사전달의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어가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를 쓰지만 그것을 똑같이 연주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표현하면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우스운 일이 아니다. 분명히 유창한 사람들이 있다. 모국어를 몇십 년 연주해본 경력으로 새로운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은 거다. 실제로 영어 공부에 대한 학습법 중 문법보다 발음에 치중하여 무작정 따라 해 보는 식이 종종 눈에 띄는데 내가 모국어를 습득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게 맞기는 하다. 우리가 문법을 따져가며 말을 배웠던가? 그저 주변의 한국어를 쓰는 많은 사람을 흉내 내며 여기까지 온 거다.
물론 여기에 맹점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미 완전히 모국어에 익숙해진 선입견으로 가득 찬 나의 뇌가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외롭게 영어를 시작한다는 것은 백지의 상태인 유아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자연스레 언어를 흉내 내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며,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뇌가 이제는 너무 언어에 대한 선입견으로 굳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사실 기초 회화책 한 권을 우선 외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면 일단 기본적인 데이터는 가지고 있어야 응용의 가능성이 생기니까.
나는 여기서 또 엉뚱하게 얼마 전부터 인공지능이 떠올랐는데 가령 인공지능과 사람은 동물인 개의 사진을 보고 둘 다 개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의 경로는 좀 다르다. 인공지능의 현재가 다시 어디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본 기사에서 인공지능이 개를 판단하는 경로를 설명하기를, 우선 아주 다양한 개의 사진을 인공지능에 주입한다. 인공지능은 판단하기 시작한다. 눈이 두 개 있고, 여기쯤에 코가 있고, 귀가 있고, 색은 어떠한지 등등. 인공지능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의 평균을 내서 이것은 개라고 인식하는 과정에 이른다. 그러니까 개의 사진 자료가 인공지능에 계속 쌓일수록 개를 판단하는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다만,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인공지능이 실수하도록 의도적으로 개와 아주 비슷한, 초콜릿이 박힌 비스킷 사진을 가져다 두면 인공지능은 그 오묘한 비스킷을 두고 개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가 쌓이면 그러한 오류는 줄어들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사람은 사진을 보고 개를 판단할 때, 보자마자 이건 동물인 개구나, 라고 하지 눈이 이렇게 있고 귀와 코가 여기 있고 그러니까 이건 개구나, 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와 얼핏 비슷한 비스킷을 보고 개라고 착각하지도 않는다. 따져볼 필요도 없는 거다. 보면 바로 아는 거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는 나도 그 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인공지능일 뿐이며, 심지어는 속도도 느리고 학습을 방해하는 방대한 데이터까지 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차피 내가 지금부터 외국어를 배운들, 오늘 태어난 그 나라 아이와 속도가 같을 수는 없을 거라는 거다. 나는 이것을 인정하고, 우선은 인공지능이 개의 수많은 사진을 학습하듯 일단은 기초 회화의 암기를 다시 한번 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볼 때, 그들이 아무리 한국인처럼 말해도 이상하게 한국인 같지는 않다. 특유의 목소리 문제인지, 이미 굳어버린 그들만의 억양의 문제인지 어쨌든 아무리 유창해도 외국인 같기는 한 거다. 언젠가 한 한국 드라마에서는 일본말을 하는 배우가 나왔는데,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한국인이 일본어 연기를 한 것인가 싶다가도 이상하게 느낌이 왔다. 저건 한국인의 일본어 연기가 아니라 일본 배우인 것 같다는 느낌. 찾아보니 정말 일본 배우였다. 그러니까 사실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완벽한 습득에서만 오는 게 아니고, 아주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문화나 그로 인해 정착된 느낌에서도 오는 거라는 생각.
내가 아무리 영어를 완벽하게 습득해도 결코 미국인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내 목적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외국인이 거문고나 아쟁을 연주한다는 느낌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한 번 연주해본다는 느낌으로 모국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도 한번 연주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하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성능이 떨어지는 인공지능처럼 굴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는 있겠지만.

내년 계획을 다 세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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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 후 카페를 갔다. 코로나 관련 산문 두 편과 단편소설 두 편을 읽었다. 산문은 뭐 그럭저럭. 소설은 두 편 다 문제가 많았는데, 한 편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졌다. 처음 보는 소설가였고, 이름을 검색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등단한 사람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출간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어떤 경로로 갑자기 잡지에 소설을 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토록 가독성 떨어지는 소설, 그것도 등단 소설가의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아까웠다는 소리다. 또 다른 소설은 여성 서사였는데, 가독성은 좋았지만 시의성이 몇 박자 늦는 감이 있었다. 한국 문단에서 현재 여성 서사는 아주 급진적인 속도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중인데 5, 6년 전에나 나왔으면 겨우 봐줄 만했을까 싶은 초보적인 담론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 소설로 인해 오히려 여성 서사의 현재, 문단의 중심에서 앞다퉈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다른 젊은 작가들의 힘을 새삼 느꼈다. 페미니즘 소설이 여전히 강세이지만 단순히 주제가 그것이라고 해서 박수받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성 서사의 첨단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윤리의 발굴이 한창이다. 작가라면 이 바닥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말하고 보니 찔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