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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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 아파트가 가리는 김포 장릉의 뷰가 중요한 이유



조선시대부터 파주장릉 - 김포장릉 - 계양산의 뷰가 되도록 분묘를 선정한 것이었고
이런 위치 선정과 경관을 포함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건데
이번 검단 아파트로 이 구조가 깨져버림

ㅊㅊ 뽐뿌


모야 철거해야지; 선례 남기면 안됨

아무리 손해라도 철거하는데 맞지뭘 ㅇㅇ
애초에 제대로 승인허가받고 지은것도아니고 일부승인받아놓고 모르쇠 지어놓으면 봐줘야함?
금전적 손익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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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하고 문화유산 길이보전하세 돈만 보니까 망하는겨 건설사들아 사람쫌 보자 쌍팔년도도 아니고 아직도 그냐
처음에 누가 승인을 내준건가여..... 이런건 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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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세계 문화유산 탈락으로 조선왕릉40기 전체가 취소될수있다함ㄷㄷ.jpg
이어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지정돼 있어서 장릉이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한다면 다른 39기의 왕릉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이에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다른 왕릉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일괄 취소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냥 하는말이겠지? 같지만 당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할때 이미 몇몇능에서는 경관을 훼손되어 심사에서 안좋은 영향이 갈수 있었지만 능 꼭대기에 올라갔을때만 도시화의 피해가 보이고 앞으로는 강력한 법률로 완충지역에 개발행위를 금지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약속하고 이를 강력하게 어필해서 올A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됨 근데 이번엔 대놓고 장릉 경관을 훼손시켜버림. 조선왕조의 무덤중 왕과왕비가 잠들어있는 왕릉은 42기로 개성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전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음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풍수지리와 건축양식등 죽어서 왕이사는 궁궐이라고 불릴정도로  최고의 명당에 지어진 최화적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최고의 문화유산임. 근데 '문화유산'이라고 불리는 이말이 애초에 우리가 그냥 왕의무덤이고 수려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니 '문화유산'이라고 부르자!가 아님 세종실록에 따르면 산릉도감에는 당대와 후대에 남겨질 소중한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언급하며 후대를 위해서 왕릉을 짓도록 엄격하게 제도화시키고 관리해왔다고함. 즉 단순한 왕의 무덤이 아니라 후대에 남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그시절부터 생각하고있었던 문화유산이라는거 단순히 한두개의 업적을 남긴 왕릉이 그 가치를 인정받은게 아니라  왕릉 전체와 우리의 역사가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현대에와서 누군가의 욕심때문에 왕릉 40기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 등재에 취소되게 생김ㅇㅇ 무려 한 국가의 역사를 이어온 문화유산 자체가 전부 더쿠펌 강력한 법률로 개발 막겠다고 해놓고 왜 이때까지 손 놓고 있었지? 이해가 안되네 ㅇㅇ 뭐하냐 박살 레쓰고
3년 동안 강화한 왕권이 끝까지 강했던 조선의 왕
정조 -  할아버지 영조대왕께 왕좌를 물려 받은지 4년, 할아버지 3년 상이 끝나서 그런지  슬슬 대신들이 신경 긁네... 대신들 - 전하! 오늘 올라온 상소문 입니다! 어서 살펴보시고 명을 내려 주십시오! 이 상소는 무엇이오? 내 분명 이 안건에 관한 결정을 이미 하였거늘! 임금의 잘못이 있다면 쓴 소리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 부디 통촉하여 주시어... 쓴소리? 잘못? 좋소! 그럼 다시 써 오시게 네? 아니, 거기 이미 상소문이 있는데 왜 다시 써오라는 말씀 이신지... 문장이 다 틀렸어 네? 문장이 다 틀려요? 푸흡! ㅋㅋ 이거 누가 적은 상소문임?? 시경에서 취했다는 부분의 글은 여기 쓰는게 아닌데? 주자의 뜻 위에 만들어진 나라에서 경전의 말을 틀리다니ㅋㅋ 누구임?? ㅋㅋ ..... ㅋㅋㅋ 경전을 공부하여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자들의 수준이 이러니 뭘 하겠냐? 오늘은 공부나 하자 정승들 밑으로 점심 시간 지나고 경연이나 참여하도록! (하씨...  개 쪽팔리네) (경연 중) 정조 - 아니지! 해화만맥 이라 함은 만가지 복을 받을 좋은일 한가지를 말하는데 만가지 일이라니! 경복궁 이름 지을 때도 취한 경전 구절 아닌가! 대신들은 유학자란 자들이 이것도 모르나? 대신들 - ..... 아니 왜들 벙어리 처럼 있으시오ㅋㅋ 임금이 가르침을 받는 자리인 경연인데 말이 없으시면 어쩌란 말이오ㅋㅋ (....이 새키 티베깅 쩌네) ㅋㅋㅋ 거참! 말들 없으시니 점심 경연은 여기까지 하고 4시간 뒤 저녁 경연에서 봅시다. (또 한다고??) 전하! 공부의 뜻이 있으신건 좋으시지만 건강을 해칠까 두려워.... 아냐 아냐 나 건강해 대신들이 공부해서 올 동안 활쏘기랑 무예나 연습하고 있을께 임금이 무예를 중시 하시다니! 무예는 잡기에 해당하는..... 경연과는 다르신 언변이시구만. 아까 경연에서도 말을 그리 잘하지 그랬어? ..... (~~~~~얼마 후~~~~~) 이번 안건은 통과하면 안되는데 혹시 반대 상소문 올리실분? (눈치 게임 시작) 진짜 이거 통과되면 안돼요! 상소 적으실분 없어요? (나이 들었다고 경연 덜 끌려가는 정승들) 적었다가 문장이라도 하나 틀리면 개쪽 당하고 경연가서 갈굼 당하는데 누가 나서겠나.... 그냥 포기하고 편해 지게나 .... 우리 신진 사대부! 자존심이 있지 그리는 못한다! 다들 모여 봐! 개 쩌는 상소문 간다!!! ㅋㅋㅋㅋㅋㅋ 야, 이 상소문 적은 사람 누구냐ㅋㅋㅋ 이 놈 주자학 경전을 공부한거 맞냐ㅋㅋㅋ (....ㅈ됐네) 점심 시간 까지 정승 밑으로 경연장에 모여 있어라 주자학 참교육 간다! (ㅠㅠ 무서워서 뭘 하질 못하겠네) ㅋㅋㅋ (출처) 아 상소 올리고 싶으면 공부하고 오라구
해외에서 영화 찍고 한국 들어올 때 문제
이 사건은 영화 베를린을 제작하던 중 생긴 일이다. 베를린 제작진은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 님들.. 세금 내셔야죠 ? 갑자기 뭔 세금을 내요? 그.. 님들 해외에서 영화 촬영하는데 30억 들었는데, 그 중에 한국인 스탭들 비용 8억 빼면 해외 비용만 순수하게 22억이 들었잖아요? 그걸 하드디스크에 담아오셨으니 하드디스크가 22억의 가치를 지니게 됐죠? 22억의 부가가치세인 2억 2천만원, 거기다가 자진신고 안 한거니까 30% 추가 가산으로 2억 8천 600만원 세금 내셔야죠 ...? 뭔 개썁소리야 이게 우리는 ATA carnet을 이용해서 예술 목적으로 다녀온 건데 그래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까르네는 예술 전시품일 경우 쓰이는거구여 여튼 ㅅㅂ 님들 하드디스크가 깡통에서 22억짜리가 됐으니 그거 세금을 내시라구요 야 그럼 ㅅㅂ 예술가가 외국나가서 외국에서 그린 그림이 수십억이 되면 그것도 세금 내야함? 예술품은 관부가세 면제입니다 그럼 ㅅㅂ 영화는요? 영화는 해당 안됩니다. 걍 닥치고 돈 내라고 ㅅㅂ아 못내! 시발 이의제기한다! 응 기각ㅋㅋㅋㅋㅋ 시발 재판 청구한다! 어.. 원칙상은 돈 내는게 맞아여 법적으로는 문제 없어여 돈 내세요 2억 8천 600만원 ㅆㅂ 야 잠깐 그럼 하드디스크 실물이 세관을 통과하는 게 문제라면 클라우드로 올린 건 세금을 안내도 된다는 소리 아녀 네 맞아용 ....? 시발? 실제로 관세대상은 실체가 있는 유체물해 한정되고 무체물 같은 전자적 매게물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관세청은 법대로 한 것 뿐이다. 이후 한국 영화사들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한 걸 하드디스크에 담아오지 않고 죄다 클라우드에 올려버림 ㅊㅊ 인티 모야 이렇게 하나 또 알아가네 근데 쟤네 잘못이라고 함 ㅇㅇ 수입신고 안함. 신고했음 저런 일 없었고 다른 업체는 다 신고하고 들어왔음 신기한 법 해석의 세계..
어마어마하게 뒤끝 쩔어줬던 미군 장교.history
1905년 상반기  일본, 요코스카시 장갑순양함 USS 신시내티가 일본에 잠시 정박해 있는 동안 승조원들이 일본 관광을 하고 있었고, 그 중 한 소위가 가마쿠라 불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 불상 꽤나 멋있네."  "이 지갑은 이제 제 겁니다!"  그런데 불상에 정신이 팔린 그의 지갑을 어느 소매치기가 훔쳐갔다.  "야, 야 이 새끼야 내 지갑 내놔, 어이 거기 순사님 저 새끼 좀 잡아봐요!"  "귀찮은데스" "이 시발년이" 그렇게 그 소위는 경찰을 포함해 다수의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협조해주지 않았고 결국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두 번 다시 일본은 쳐다보지도 않기로 결심한다.  애석하게도 일본인들이 그렇게 좆같이 취급한 소위는 바로 어니스트 킹 (Ernest J. King)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총사령관이자 동시에(!) 해군참모총장이 되시는 리히, 니미츠, 홀시와 함께 유일한 미 해군 원수가 되실 몸이었다. 킹은 이 사건 이후로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품고 내내 일본 욕을 해댔으며, 미 해군이 일본 본토 공격에 찬성하자 태평양함대 최고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제 40년 전에 잃어버린 지갑의 복수를 하러 가시겠군" 이라고 농담을 날렸다고 한다. 출처 뒤끝 쩌네 ㅋㅋㅋ 하지만 적이 같으므로 나는 참 싱글벙글 ㅋㅋㅋㅋ 이거 보니까 또 생각나는 현대인 내한했을 때 공항에서 어떤 팬이 싸인받으려고 가져온 매직으로 노엘이 아끼는 자켓에 그만... 하지만 노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하지 싱글벙글
올해 있었던 전세계적 범죄조직 소탕작전 "트로이의 방패"
사건은 2008년으로 되돌아간다. 2008년, 캐나다의 청년 빈센트 라모스는 "누군가는 절대 들키지 않는 사생활을 원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블랙베리 핸드폰에서 카메라, 마이크, GPS를 제거하고 전용 메신저를 탑재한 단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2010년대 북미를 떠들썩하게 만든 "팬텀 시큐어" 의 시작이었다. 빈센트 라모스는 개인사생활 보호를 위해 팬텀 시큐어를 운동선수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제공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암호화 메신저를 노리는 것은 범죄조직이었고, 빈센트는 대놓고 범죄조직에게 팬텀 시큐어를 판매해 수백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2018년, 결국 빈센트 라모스는 범죄단체로 묶여 체포당했고 FBI는 팬텀 시큐어에 백도어를 설치해달라는 조건으로 사법거래를 제안했으나 라모스는 해당 거래를 거절했고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팬텀 시큐어는 서비스를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범죄단체들은 수사기관에게 걸리지 않는 새로운 암호화 메신저를 찾아다녔다. 그게 바로 안드로이드 기반 커스텀 OS인 "아케인OS" 와 전용 메신저 "AN0M" 이 설치된 스마트폰이었다. 휴대전화 본체만 200만원, 연간 사용료만 150만원 지하세계에서 입소문과 추천인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AN0M 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AN0M 자체가 FBI의 함정이었다. 팬텀 시큐어의 대표 라모스는 FBI에 협력하지 않았으나 그 부하직원들이 사법거래에 응하면서 약 2억원의 원조를 받아 AN0M 단말기를 만든 것이었다. 사실 만드는 것보다 AN0M 을 퍼트리는 것이 더 중요했는데 호주의 가장 거대한 마약상인 Hakan AYIK 가 우연히 AN0M 을 사용하면서 그와 연계된 다른 범죄자와 범죄조직들이 AN0M 을 세계 곳곳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마약 거래라면 증거를 한번에 모아 일망타진하면 좋겠지만 AN0M 에는 살인 모의 등의 사건도 지속해서 올라왔고 결국 18개월간 21개의 사건에서는 직접 개입했는데 이는 AN0M 감시가 드러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일망타진, 일명 "빅뱅" 예정일은 절대적 보안이 지켜졌고 2021년 6월 7일 "빅뱅" 작전이 실행. 전세계에서 800명 이상의 범죄자가 검거 톤단위가 넘어가는 마약, 수백개의 총기, 엄청난 양의 현금과 최소 수백억원 규모의 암호화폐가 압수되었다. FBI, 유럽연합, 호주경찰의 주도로 전세계 각국의 경찰이 참여한 이 계획이 바로 "트로이의 방패" 였다. (출처) 존멋이네 영화 한 편 벌써 뚝딱
싱가포르가 잘사는 북한 소리를 듣는 이유
요약 :  싱가포르 초대 지도자 리콴유는 식민정부의 탄압과 빈부격차에 맞서면서 강성해진 좌익과 동맹을 맺음. 당시 `영국 명문대 유학을 다녀온 인권,노동 변호사`였던 리콴유는 인민행동당을 결성하여 집권한후, 정당을 완벽하게 장악함. 그 과정에서 연합 했던 당내 좌익 세력을 재판없이 무기한 수감(...)시켜서 숙청함. 이후 국가를 사유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자기 맘대로 탄압함. 자기 자식에게 정권을 물려줌. 리콴유-리셴룽의 일가가 국가 주요 산업을 장악하고 있음.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의 아들이자, (2대 바지총리에게 넘겨받은 ) 3대 총리인 리셴룽의 경력. 김정은 보다는 소박함. (33세 공군 준장 전역. 35세 국방담당 국무장관)  이제 3대 세습 준비중이라고.  * 집회 시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  여성 폭력 근절, 동성애 관련, 노동절 행진 뭐든 체포, 구금. 몇주간 감옥에 넣어버림.  87년에 정부가 반정부 음모를 꾸민다고 22명을 체포함. (가톨릭 노동자로 빈민을 돕고, 외국인 가사 노동자 학대를 도와준 변호사들도 포함)  이들은  구속동안 고문,폭행으로 자백을 강요당함. 석방되어서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정부가 다시 구속후 `잘 타이름`  이들은 자신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공개 성명서를 발표해야만했음.  국민들이 정부 비판을 하는 순간, 정부에서 `니들 시민단체하지 말고 정치해라`라고  함.  * 선거  정부에서 대놓고 선거규칙을 조작해댐. 97년엔 정부에서 선거 하루 전에 선거구를 확정함. 01년엔 정부에게 투표자에게 투표 전날에 현금화가능한 주식을 줌.  선관위는 수상 직속 조직.  그래서 집권당 소속이 아니게 출마한다? 소송 크리(명예훼손, 세무조사)로 인생을 파탄내버림.  집권당을 안찍은 지역은 인프라 공사를 무기한 지연시켜버림. 개발호재는 커녕 슬럼이 되가도 손하나 까닥 안함.  국민의 80%가 공공아파트에 거주해서 주거문제를 해결했다는데. 그 지역에서 야당 찍었다고 아파트 수리를 안해준다면? * 노동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를 자치했다 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이 없음. 노동운동하면 반정부 분자 취급받음.  싱가포르 육체노동자는 세계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음.  현재 하위 10만 가구(인구의 약 10퍼센트)의 월가계 소득은 약 100만원.  어용 노조만 존재함. 파업은 불법.  * 언론  - 주요매체 주인이 정부. 매체에 정보기관원들이 상주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직원으로 일하면서 검열중.  - 정부가 원하지 않는 기사를 내면 무조건 명예훼손으로 소송함. 돈을 쉽게 징수하기 위해 아예 언론 설립 조건이 예치금.  외신도 예외없음. 다들 닥치게 됨.  " ‘국경없는 기자들(Reporters Without Borders)’은 싱가포르를 167국 에서 147 번째로 순위를 매겼다. 이것은 미얀마보다 18위가 높고, 이라크보다 한 단 계가 높은 수치" "국경없는 기자들’은 전 수상, 고촉통(Goh Chok Tong)에게 ‘언론자유 약탈 자상’을 주었다. 이 상은 정부의 계속되는 언론 억압에서 그의 역할 때문에 주어진 것 으로서, 무아마르 가다피, 로버트 무가베, 김정일, 피델 카스트로도 함께 수상되었다." * 요약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268779?sid=104 정문태  "정치학자들은 그 리콴유-리셴룽의 인민당이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세습 전체주의 사회로 규정해 왔다. 그 리셴룽이 총리 자리를 차지하고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총리의 아내 호칭은 싱가포르 경제를 주무른다는 테마섹의 최고경영자 노릇을 해왔다. 리셴룽의 동생 리셴양은 최대 통신사 싱텔(SingTel)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창이국제공항을 관리하는 민간항공국 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렇게 리패밀리가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경제학자들은 족벌자본주의라 불러왔다. 좋든 싫든 그 전체주의 족벌자본을 이끄는 자들을 역사에서는 독재자라 불러왔다." 참고한 자료들.  #1. http://todayboda.net/article/6707 저항이 사라진 역사적 배경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건국 당시 리콴유는 대대적인 좌익 소탕 작전으로 통치의 기틀을 마련했다. 앞서 언급한 싱가포르 청년의 이야기를 다시 인용하면, 그는 자신과는 다르게 자기 아버지 세대는 리콴유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다고 했다.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웠던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그의 잔인한 탄압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역사를 돌아보자. 본래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좌익 성향이 강한 섬이었다. 영국이 제2의 쿠바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좌익의 주축은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계였다. 중국계 중에는 가난한 노동계급이 많았고, 이들은 1942~45년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겪으며 급진화되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자 민족주의적 열기를 타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식민 정부가 중국계 중고등학교를 차별하는 것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이 활발해졌다. 좌익은 노동조합과 중국계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파업과 동맹휴업을 전개했다.  하지만 대중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자, 좌익은 55년 본격적인 총선거를 앞두고 리콴유 분파와 손을 잡았다. 리콴유는 중국계이긴 했지만 영어로 교육 받은 엘리트로 영국 캠브리지 출신 변호사였다. 귀국 후 그는 인권·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명망을 쌓고 있었다. 그의 그룹은 주로 영국 유학 시절 정치써클에서 뜻을 함께 했던 온건 사회주의 계열의 엘리트들이었다. 중국어도 못하고, 대중적 지지기반도 없었던 리콴유 그룹은 좌익의 대중 조직을 필요로 했고, 좌익은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리콴유 그룹을 필요로 했다. 일종의 통일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1954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정당이 지금까지도 집권하고 있는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이다. 그러나 좌익의 대중동원력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리콴유는 당내 좌익분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감행한다. 싱가포르판 국가보안법으로 많은 좌익 지도자들이 재판도 없이 무기한 수감되었으며, 대부분 20년 가까이 복역한 후에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앞서 말한 청년의 아버지 세대에게 리콴유는 쓰라린 상처를 입혔지만, 사실 그 덕에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은 비판세력이 깨끗이 제거된 상태에서 마음껏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장기 집권의 물질적 토대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구축된 체제는 과연 살만한 체제인가? 일단 고속성장 덕에 일자리 구하는게 어렵지는 않다. 대졸자의 90퍼센트가 졸업 후 6개월 이내에 취직이 된다고 하니 한국 현실을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다. 세계에서 6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이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고가의 물건은 할부로 살 수 있다. 밥도 싱가포르 서민들이 애용하는 호커센터에서 먹으면 3000~5000원에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의 주택 정책 덕에 주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건국 초 정부는 만성적인 주택난을 해결하고, 좌익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공공아파트(HDB)를 구축했다. 시중보다는 싼 가격에 현대식 아파트를 제공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국민적 지지가 높았고, 지금은 국민의 80퍼센트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오랜 기간 노동을 해야 하지만, 월세로 살거나 민영주택을 사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일자리, 밥, 집이라는 최소한을 해결해준 집권당에게 국민들은 항상 60~70퍼센트의 지지로 화답해 왔다. 초국적 자본을 위한 전방위적 통제 하지만 물질적 안정에는 대가가 따랐다. 싱가포르의 발전전략은 초국적 자본의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건은 엄격히 통제됐다. 정부는 좌파계열 노조는 모두 해산시키고 어용노총(NTUC)을 세웠다. 파업은 불법화 되었고, 노동조건도 후퇴했다. 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다. 일자리는 많아졌지만, 여타 선진국에 비하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다. 소수의 골드칼라가 초호화 생활을 누리게 된 사이, 서민층의 삶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을 방불케 한다. 현재 하위 10만 가구(인구의 약 10퍼센트)의 월가계 소득은 약 100만 원에 불과하다. 1인당 GDP 5만 2000달러의 신화는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리콴유 분향소에 헌화하려 길게 줄을 선 싱가포르 시민들 이런 극심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정부의 논리는 능력주의다. 정부는 인종이나 배경에 관계 없이 누구나 공부 잘하고, 능력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능력에 따른 신분상승의 기회를 약속함으로써 정부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교육시스템은 철저한 경쟁 체제로 재편됐다. 중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부터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서열화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어린 나이부터 사람들에게 경쟁을 내면화시켰다. 흔히 싱가포르의 국민성이라고들 말하는 ‘키아수(kiasu, 驚輸)’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의미한다. 국민들이 치르는 또 다른 댓가는 정치의 제약이다. 투표는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권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정부가 지정한 공원 한 곳을 제외하고는 집회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방송국도 정부가 운영한다. 시민단체에게는 시혜성 구호 사업만 허용되고, 정부 비판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싱가포르 관료들은 정부 비판을 할 거라면 차라리 직접 정치를 하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정치의 링에 들어서는 순간, 반대파들은 각종 법정소송(주로 명예훼손)이나 세무조사에 치여 파산에 이르게 되거나, 망명을 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한다. 사태가 이러하니 야당이 몇 개 존재하긴 하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역량이 취약하다.  눈에 보이는 탄압 외에 삶의 전반에 걸쳐 이뤄지는 통제도 만만치 않다. 공공아파트를 매개로 한 통제가 대표적이다. 더 빠른 순번으로 더 좋은 아파트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1980년대 들어 경제가 휘청이고, 민심 이반이 감지되자 정부는 아파트 개보수를 담보로 국민들의 충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건국 이래 최초로 야당 의원이 탄생하자, 정부는 공공아파트 개보수 작업에 대한 우선순위를 집권당 지지 지역에 주기로 했다. 야당 의원을 배출한 지역은 개보수 작업을 기약 없이 지연시켜버렸다. 주거 환경 개선을 원한다면 집권당을 찍으라는 회유이자 무언의 협박이었던 것이다. 전 국민의 80퍼센트를 수용하고 있는 싱가포르 공공아파트 저항을 꿈꿀 수 있는 조건 이렇듯 싱가포르 집권당의 장기 집권 비결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억압에만 있지 않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열심히 공부하고 묵묵히 일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공공아파트 정책은 정부의 주민 통제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줬다. 정부는 작은 섬나라에서 이 길뿐이라고 외쳤고, 다른 정치경제적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국가-집권당-개인의 운명은 하나로 통합되었다.(중략)" #2. 싱가포르의 인권 침해 지 순 후안  싱가포르민주당 사무총장 "싱가포르에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들은 외국인들의 대부분의 반응은 “나는 상황이 그렇게 나쁜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외국인으로부터 듣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억압, 공포는 외국인이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이미지이다. 섬 위의 깨끗하고 효율적인 모든 것을 보여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항을 둘러본 기쁨을 가진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의 권위주의적 통제의 범위를 믿기 어렵다.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 군도와 북쪽으로는 말레이시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도시국가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도전을 받는 국가 중의 하나이다. 집권당인 국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 : PAP)의 통제와 위협의 방법이 이 글에서 다룰 토론의 주제이다. 반대를 제거하기 국내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 : ISA)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식민지 지배기에 영국에 의해서 도입된 ISA 또는 과거에는 Preservation of Public Security Ordinance라고 불렸던 법은 정부가 공적인 안전에 위험을 끼칠 것으로 의심되어지는 시민에 대하여 일방적인 구속과 무제한의 억류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한 막대한 힘을 가진 정부는 그것을 반대세력에 적용할 유혹에 빠지게 한다. PAP는 물론, 그 유혹을 저항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1963년 2월에 의회의 야당 의원, 신문의 편집자, 노동지도자, 다른 정치적인 지도자 등 150여명에 대한 구속을 명령했다. 구속된 사람들 중 대부분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역해야 했고, 일부는 20년까지 지속되었다. 가장 최장으로 억류되어 있던 사람은 치아 티에 포(Chia Thye Poh)였다. 1966년 숙명적인 날에 안전요원이 치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국내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고 말했다. 이 야당의 의원은 이후 23년 동안 수감되었고, 석방된 후에도 그는 싱가포르 섬 남쪽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단지 낮 시간에만 본토에 오는 것이 허용되었다. 국내보안법 적용은 60년대와 70년대 내내 계속되었다. 1963년에 구속된 포 수 카이(Poh Soo Kai)는 그가 ISA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캠페인을 시작한 때인 1972년에 석방되었다. 결과적으로 PAP가 회원조직으로 가입하고 있었던 국제사회주의자(Socialist International)는 PAP를 회원 대열에서 탈퇴시키려 발의했다. 그러자 이를 간파한 PAP는 1976년에 스스로 조직화 작업을 멈췄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 후에 포는 재구속되었다. 그는 6년 후에 석방되었는데, 독방에서 2년을 지낸 후였다. 1987년에 싱가포르 정부는,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고 맑시스트 국가를 건설하려고 모의한 22명의 개인을 구속, 억류했다고 발표했다. 구속된 일부인사는 야당에 협력했었고, 일부는 가톨릭 노동자들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다른 사람들은 학대를 받은 해외의 가사노동자들을 도운 변호사들이었다. 1년 동안 구속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주먹으로 구타를 당하고, 뺨을 맞고, 잠을 자지 못하는 등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아야했다. 수감자들은 그들의 의사와 반대되는 것을 강제적으로 자백해야 했다. 그들은 석방이 되자마자 일부는 함께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의 무죄를 알리고, 그들이 고문과 학대를 받지 않았다는 정부의 주장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재구속되었고, 그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그들이 성명서를 부인하는 제정법상의 선언을 하여야 했다. 향후 그들이 정부를 다시 부인한다면, 그들은 잘못된 법정선언을 한 것에 대해서 법정에서 판결을 또 받게 될 것이다. 9.11의 비극 이후에 최근에는 37명의 사람들이 국내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에 연결되었다는 혐의와 싱가포르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려고 모의를 했다는 혐의였다. 몇 명은 석방되었으나 대다수는 재판도 받지 않은 채 감금되어 있다. 언론의 문제 물론, 위에 말한 것 중 어떤 것도 언론의 종속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PAP가 1959년에 집권한 이후에 싱가포르에서 언론의 자유를 없애는 작업을 시작했다. 신문사에 의해서 국제담당 컬럼니스트로 고용된 미국시민은 신문사에서 해고된 때인 2004년에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다 :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싱가포르에서 경쟁력이 없다. 싱가포르 프레스 회사(Singapore Press Holdings)라고 불리는 기업이 전체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주식은 공개적으로 상장되었으나, 신문의 업무는 수상인 리 시엔 룽(Lee Hsien Loong)에 의해서 철저하게 감독된다. 리 시엔 룽은 싱가포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리 콴유(Lee Kuan Yew)의 아들이다. 이 신문은 저널리즘에 대한 경력이 없는 편집장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직속 편집장은 30대 중반의 여성인 추아 리 훙(Ms Chua Lee Hoong)이었는데, 그녀는 정보기관원이었다. 그리고 다른 주요한 편집장도 싱가포르의 관료체계와 국가의 보안담당 관련 기관의 출신이다. 그들은 모두 국가의 정보기관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추적한다. 현재 싱가포르의 현지 프린트물 언론은 싱가포르 프레스사(Singapore Press Holdings)와 MediaCorp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 두 회사는 직접적으로 국가의 통제하에 있다. 방송언론의 역사는 평온한데, 그것은 확고하게 처음부터 정부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호된 훈육과정을 통하여 싱가포르 국내의 언론을 성공적으로 길들인 후에 싱가포르 정부는 해외언론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하나씩 PAP와 그 정치에 대해서 비우호적인 논평을 하는 지역과 국제적인 신문을 값비싼 명예훼손 소송 또는 형사사건으로 법정에 세우고 있다. Asiaweek, Far Eastern Economic Review(이 둘은 기능이 정지되었다), Asian Wall Street Journal, Tim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The Economist, Newsweek 등은 그러한 운명을 맞았다. 공격적인 출판물에 대해서 취해진 다른 규제조치는 싱가포르에서의 배포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다. 1999년에 나는 CNBC, CNN과 로이터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이후에 정부는 이들 방송국에게 싱가포르로부터 방영되는 해외TV방송국은 싱가포르 방송을 통제하는 기준과 규칙을 똑같이 지켜야 한다는 경고를 줬다. 이것은 물론 정부의 승인 없이 공개적으로 행한 내 발언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아래에서 상세하게 말할 문제이다. 직후에, 싱가포르의 국내정치에 관련되는 부문에 대해서는 국제신문에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해외 방송사를 기소할 수 있도록 싱가포르 방송법을 개정하였다. 그때 이후로, 싱가포르의 민주화운동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나 또는 해외방송국으로부터 싱가포르의 정치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싱가포르 정부의 언론탄압은 미디어의 계속되는 억압에 대해서 PAP를 비난하는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그룹을 낳았다.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각국 정부를 순위로 평가하는 조사에서 ‘국경없는 기자들(Reporters Without Borders)’은 싱가포르를 167국에서 147 번째로 순위를 매겼다. 이것은 미얀마보다 18위가 높고, 이라크보다 한 단계가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낮은 것이다. 사실상, ‘국경없는 기자들’은 전 수상, 고촉통(Goh Chok Tong)에게 ‘언론자유 약탈자상’을 주었다. 이 상은 정부의 계속되는 언론 억압에서 그의 역할 때문에 주어진 것으로서, 무아마르 가다피, 로버트 무가베, 김정일, 피델 카스트로도 함께 수상되었다. 또 다른 미디어 그룹인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는 다음과 같이 썼다: 싱가포르에서의 미디어에 대한 국가통제는 완벽해서 그 체계를 감히 도전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구속하거나 언론인을 학대할 필요가 없다. 해외의 통신원들은 싱가포르에서 보고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정부가 종종 국제 언론을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명예훼손 소송을 직면하게 하여 그 활동을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독재권에 대한 투표? PAP는 1959년 처음 집권한 이후로 선거에서 매번 이겼다. 야당은 1968년에 의회를 거부했다. 정부가 1년 이상 의회 회기를 주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기회를 잡고 교묘하게 선거를 조작해서 1970년대의 전체 의원 중 야당의원은 한명이 없었다. 현재 84명의 하원에서 단지 2명의 야당 의원이 있다. 독립적인 선거위원회가 없다; 선거담당 부서는 수상의 직속에 속한다. 캠페인 기간은 9일 동안 지속된다. 1997년 선거가 선언되기 하루 전에 선거구의 확정을 공고했다. 2001년에는 정부가 투표자에게 투표 전날에 현금화할 수 있는 주식을 주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야당은 의석의 반 이상을 차지할 후보자를 내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 PAP가 첫 번째 투표가 있기도 전에 권력에 재집권하는 셈이 되었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가장 극명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싱가포르 시민은 그들의 정부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싱가포르인들이 선거에 참가하는 것에 그렇게 공포스럽게 만드는 한 요소는 PAP에 의한 명예훼손법이다. 사법권은 집권당의 일부분이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들이 PAP 지도자에 의해서 제기된 명예훼손 소송에 따르는 손해로 인한 돈을 지불할 수 없었을 때에는 몇몇의 반대당 지도자들은 파산상태가 되었다. 고참 야당인사인 조수아 B. 제야르트남(Joshua B. Jeyaretnam)은 리 콴유와 다른 PAP 소송 제기자에게 수백만달러를 지불했다. 전 판사 제야르트남은 그의 집과 거의 모든 재산을 팔아야 했다. 2001년 1월에 그는 파산선고을 당했다. 왜냐하면 그가 여전히 그의 반대자에게 지불해야 될 수십만 달러를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환경에서는 그는 의회에서 의원직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선거에의 참여가 금지당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통 정부가 국내보안법(ISA)을 노동활동가를 구속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로 PAP는 노동조합에 대한 무자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저임금과 해고된 노동자에 대한 실업보험을 규정한 법이 없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임금을 받는 층에 상대적으로 속한다. 사무실 청소부나 운전사의 중간급 정도의 임금은 生産性에 조정되어서 세계 가장 낮은 59개국 그룹에 속한다. 단지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쿠아도르만이 덜 받는다. 비서들도 많이 받지 않는다. 그들의 임금은 59개국 중 50위에 속한다. 이런 모든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 일어나는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즉 장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월급을 받는 곳이다. - 내각 장관은 미국의 대통령보다 더 받는다. 그리고 수상은 미국 대통령, 영국의 수상, 프랑스의 대통령, 이태리의 수상, 독일의 총리의 월급을 합친 것보다 더 받는 곳이다. 자유 억제 "리콴유는 시민에게 자유롭게 모이고 말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수라장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집회도 금지된다 : 싱가포르에서 미국대사관 밖에서 모이려고 했던 6명이 모임 장소에 가기도 전에 구속되었다. 아시아 활동가 사이에 버마에 대한 상황을 의논하기 위한 포럼은 금지되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근절을 위한 유엔의 국제기념일을 기리기 위해서 행진을 하려던 신청은 거절되었다. 싱가포르 언론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한 Think Center라는 NGO에 의한 요청도 거절되었다. 동성애자 이슈를 의논하기 위한 포럼도 불허되었다. 1999년에 나는 점심시간에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 싱가포르의 경제심장부)의 중간에 서서 군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였다. 나는 다음 주에도 그 행사를 반복했다. 나는 두 가지 행동으로 기소되고 수감되었다. 2002년에 나는 대통령 저택과 수상의 관저가 있는 이스타나 외곽에서 노동절 행진을 하려고 시도했다. 경관들이 나를 환영하기 위하여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연설을 하기 전에 나를 멀리 끌고 갔다. 나는 다시 기소되었다. 그리고 5주 동안 수감되었다. 시민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모임을 조직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영상물을 제작하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서 공개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 없다. 정치적인 사회가 작동하는 이미 제한된 공간은 점점 더 죄어오고 있다" #3.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의 아들이자 3대 총리인 리셴룽의 경력. 김정은 보다는 소박함.  #4.  정문태 기자의 기사중.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268779?sid=104 "세계은행이 소득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를 자치했다. 중남미 엘살바도르(124위)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126위) 같은 나라들 주변을 헤매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같이 1인당 국내총생산 최상위 나라들이 소득평등 분야에서도 1~3위를 차지한 사실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경제 우등국 싱가포르의 시민 평균 월급이 미국 돈으로 따져 한 1800달러쯤 되고 10% 웃도는 시민이 월 1000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리콴유의 아들이자 총리인 리셴룽은 수당과 보너스를 뺀 공식적인 연봉만도 싱가포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의 약 32배에 이르는 180만달러(2012년 삭감된 연봉 기준)를 받고 있다. 이건 1000달러 월급쟁이 시민이 15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되는 돈이다. 20만~30만달러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총리들 연봉을 그 나라 보통 월급쟁이들이 따라잡는 데 3~5년쯤 걸리는 현실과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이건 국가수반 가운데 둘째로 많은 돈을 받아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봉 40만달러의 4.5배" "정치학자들은 그 리콴유-리셴룽의 인민당이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세습 전체주의 사회로 규정해 왔다. 그 리셴룽이 총리 자리를 차지하고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총리의 아내 호칭은 싱가포르 경제를 주무른다는 테마섹의 최고경영자 노릇을 해왔다. 리셴룽의 동생 리셴양은 최대 통신사 싱텔(SingTel)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창이국제공항을 관리하는 민간항공국 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렇게 리패밀리가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경제학자들은 족벌자본주의라 불러왔다. 좋든 싫든 그 전체주의 족벌자본을 이끄는 자들을 역사에서는 독재자라 불러왔다." "". 신문, 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의 주인이 정부인데다 검열로 쥐고 흔들 수 있으니까. 예컨대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발행자인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SPH)가 모든 일간신문의 발행자를 겸하는 식이다. 미디어코프(MediaCorp)가 발행자인 일간 <투데이>나 7개 방송 채널도 사실은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Temasek Holdings)이 주인이고 보면 예외가 없는 셈이다. 그게 <스트레이츠 타임스>에서 일했던 내 친구가 “진짜 기자를 하고 싶다”며 결국 외국으로 떠난 까닭이기도 하다. 그게 이 글에서 인용한 싱가포르 친구들이 저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까닭" (출처) 와 맵다 매워 잘 몰랐는데 들여다보니 이렇게 매운 나라가 또 없네... ㄹㅇ 잘 사는 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