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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강의 준비 중

난 무엇에 심장이 뛰는가?

서영란의 수다스런 미술이야기 강의준비중

조금있다가 있을 미술이야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몇년전에 우연히 하게 된 미술이야기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어설프고 얇 팍한 지식을 숨기고자

열심히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서 겨우겨우 한 강의.

그래도 그게 힘이 되었는지 미술이야기로 칼럼도 제법

오랜 시간 써서 기고 된 적도 있었다.

오늘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숨을 고르는 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늘 열정과 최선을..

마티스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잘 전달되어 듣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싶다.

#Alice_in_Wonderland #PERSONA_LIFE #Passion #Persona #Seo_Young_Ran #beautiful_today #북아티스트서영란 #서양화가서영란 #열정적인일상 #마티스 #앙리마티스 #이카루스야수파 #다락방불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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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칸딘스키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2월에 하는 전시 리스트를 보다 이 곳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번주에 다녀왔으나 한 번 날리고 이제서야 포스팅을 재개합니다. 기간: ~2020. 3. 9. 월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요금: 성인 15,000 / 청소년 12,000 / 어린이 9,000 칸딘스키는 미술사에서 최초로 완전추상에 도달한 화가입니다. 완전추상이란 사물을 유추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고 요약, 응축한 형태를 주제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화면에 존재하도록 한 것을 말합니다. 칸딘스키가 활용했던 점, 선, 면의 기본 요소가 우주공간에서 표현된다는 상상을 전제로 한 3D미디어아트 입니다. 초반에 느끼는 생동감은 꽤 좋습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전 생애를 집약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원형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말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 경우지만 원형이 말보다 더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이는 원형이 수용하고 있는 강한 내면의 에너지와 가능성 때문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자의 작품은 단시간내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작품들도 디지털화 되어 있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음악으로부터 받은 감명과 청각적 체험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던 칸딘스키의 작품이 살아 움직입니다. 김소장실험실 <무대2020> 는 칸딘스키가 구상한 무대 디자인을 재해석했다고 합니다. 앞에 놓여져있는 화면 내 진한 테두리의 도형을 클릭하면 음악과 함께 해당 도형이 움직입니다. 우측엔 피아노 건반 모양이 있는데 빛도 들어옵니다. 눈과 귀의 움직임이 동일해져갑니다. 오순미 <봉인된 시간_과거> 는 이 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였습니다. 유리로 이루어진 사면 가득 칸딘스키의 컬러가 시시각각 변해가고 오묘한 기분과 함께 다채롭게 물들어가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아 이 공간 너무 좋았습니다. GECC <Beauty of line> 미디어아트 혹은 프로젝션 맵핑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번 전시 만족도가 낮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 부분적인 시각화로 형상화 되었으며, 음악의 울림이 가슴속으로 밀려와 내 영혼을 통해 각기 화려한 빛으로 변해 눈앞에 나타났다 요약 혹은 응축은 시적이고 음악적이며 낭만적이었기 때문에 이지적 또는 분석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보다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의도가 드러나게 된다는 문장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현악 4중주 클래식 연주와 함께 Impression 3-Concert의 조각 이미지들이 디지털 영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이 영상을 보냈더니 'olafur Arnalds, Nils Frahm- 20:17, 21:05도 들어보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하루의 끝에 들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이 작품을 보고나면 나오는 공간으로서 이 곳에서 칸딘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전시해설을 원하시는 분은 11시와 16시를 노려주세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라 당신은 예술을 통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적이 있는가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두터운 터치가 돋보이는 정상윤님의 작품입니다. 여러 작품들 중 쇤베르크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그저 눈길이 계속 간다고 답하겠습니다. 잔나비 앨범 커버 디자인으로 더 유명해지시게 된 콰야님의 작품입니다. 위 작품은 수많은 시선을 신경쓰지 않은 채 연주하고 있는 여인이라고 하는데 눈의 각도 때문일까요, 강단보다는 슬픔이 떠오릅니다. 스팍스에디션(다수의 앨범 브랜딩을 기획) 아카이빙룸입니다. kokooma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띕니다. 서 있는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키네틱아트 <댄싱블루> 로서 푸른색의 염료가 돋보이는 파티클 작품들도 배치되어 있고 조각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방식으로 협업한 레이어라는 이름의 작품이 있습니다. 코발트블루 계열의 상 속의 상이 되어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인테리어적 요소로도 원과 선을 표현하신것 같아 센스있다고 느꼈습니다. 한 작품이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재창조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색연필, 오일 크레파스가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좋아해서 헤밍웨이와 그의 고양이, 꽃과 책 앞에 서있다 왔습니다. (LG U+와 협업하여 U+AR앱으로 비추면 작품들이 움직이는 것도 있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신기한 세상입니다.) 미디어콘서트 <빛의 멜로디>를 통해 미술과 음악이 분리될 수 없이 완연하게 어우러진 장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촬영불가인 김에 가운데 자리잡고 앉아 이 작품을 온 몸으로 느끼다왔습니다. 작품과 하나가 되고 모든것이 삼켜지는듯했습니다. 진짜 좋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빛을 잃어갑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탓하고 피하며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짧지만 이 게시글을 보시는 동안만은 색을 띄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아프지 말아주세요.
제3제국을 묘사한 예기치 못한 출판물
https://www.faz.net/-in2-9mo4g 엘리자베트 뵈데커(Elisabeth Boedeker)라는 사서이자 여성운동 역사가가 있다. 1893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한 인물로서 그녀의 저서 중에, "25 Jahre Frauenstudium in Deutschland. Verzeichnis der Doktorarbeiten von Frauen 1908 - 1933 / 독일 여성 학문 25년, 여성 박사논문 목록(1908-1933)"이 있다. 1935년에 나온 책이다. 하필이면 왜 1933년에서 끊었을까? 독일과 1933년을 아신다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1933년 3월 총선을 통해 나치가 집권했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지 않지만) 독일 대학교에서 여학생 입학이 일반적으로 허용된 것은 1908년부터였다. 그래서 입학 허용 이전인 1902년 남녀 대학생 비율 36,000명 vs. 70명이었던 것이 1931년부터는 115,000명 vs. 22,000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그러니까 1908년부터 25주년 기념이기 때문에 1933년에서 끊었다는 이유도 있기는 하다. 뵈데커의 책에는 총 5,949편의 논문이 실려 있으며, 의학(참조 1)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망라하고 있다. 이중에 눈여겨 볼 전공은 다름 아닌 미술사학이었다. 히틀러가 제일 먼저 추진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퇴폐예술(Entartete Kunst)" 추방이었기 때문이다. 이 퇴폐예술은 다름 아닌, 모더니즘을 가리켰고, 그때문에 바우하우스는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폐교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참조 2). 따라서 이 책에 있는 미술사학 논문의 저자들(여성 박사들)은 모두 1933년까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일하던 이들이었고, 대부분 1933년에 쫓겨난다. 1. Margaret (Grete) Ring(1887 베를린 - 1952 취리히): 그녀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막스 리베르만의 처제. 네덜란드 회화를 전공했으며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영국 갤러리도 1940년 독일 공군에게 폭격을 당했... 2. Lotte Eisner(1896 베를린 - 1983 파리): 그리스 화병 그림을 전공했으며, 독일 영화 비평으로 유명했지만... 3. Agnes Waldstein: 1929년 Folkwang-Museum zu Essen 최초의 카탈로그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 카탈로그 제목이 "Moderne Kunst/모던 아트"... 4. Annie Mainz, Elisabeth Henschel-Simon: 각각 함부르크, 베를린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쫓겨난 다음, 아예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다. 5. Lilli Fischel(1891 브룩샬 - 1978 카를스루에): "14세기 라인강 중류 지역의 조각"으로 박사 논문을 받았다. 그녀는 카를스루에 주립미술관 관장 역할을 맡으면서 모더니즘 화가들(대표적으로 반 고흐와 인상파) 전시를 추진했었고, 그때문에 쫓겨난다. (게다가 아버지가 유대인!) 6. Hanna Stirnemann(1899 바이스엔펠스 - 1996 베를린): 중세 독일 후기고딕 스타일로 박사를 받았으며, 나이 서른에 독일 최초의 정식 여자 관장이 됐다(예나 시립미술관/Jenaer Stadtmuseum). 그러나 6년뒤 관장 자리에서 축출되고, 해방 후에는 동독에서 다시 한 번 축출... 소위 "퇴폐 예술" 때문에 나치 정권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예술 관련자들은 매우 많다. 그래서 별도의 책(참조 3)이 있을 정도인데, 2010년에 나온 이 책보다는 당시 생상한 기록으로 남긴 뵈데커의 책이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이 바로 이 기사다. 유대인 혹은 유대계라서, 게다가 모더니즘 전문가라서 쫓겨난 그녀들의 일대기는 박사로 승승장구하다가 몰락하는 여성 지식인들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기사의 표현처럼, 제3제국을 묘사한 예기치 못한 출판물이기도 하다. -------------- 참조 1. 의학의 경우 1908년 입학이 허용되자마자 공식적으로 5천 명이 졸업했었다(여자 의사의 수요는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학위를 안 줬을 뿐이지). 그래서 논문이 워낙/이미 많은지라 제외. 2. 바우하우스 100년(2019년 1월 8일): https://www.vingle.net/posts/2553277 3. Biographischen Handbuch deutschsprachiger Kunsthistoriker im Exil / 유배당한 독일 미술사학자들 약사(略史): https://www.amazon.de/dp/3598113390/ref=cm_sw_r_tw_dp_U_x_rqp2CbWQP0MJP 4. 참고로 짤방 그림은 Thomas Theodor Heine (1867-1948)의 만평이다. "수험생, 환자에 대해 뭘 알아보시겠습니까?" "실크 속치마를 입고 있군요."
진짜 진짜 멋있는 예술가
올 봄에 떠들썩했던 이 사진, 기억하시나요? 미술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위에 초등학생이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아이 아빠가 말리지 않고 오히려 사진을 찍어 공분을 샀죠. 해당 작품은 보험 평가액만 1억이 넘는 작품이었구요. 사건이 일어난 후, 작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 아래는 기사 내용을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미술관에 왔다. 이들은 전시관 한가운데 있는 박 화백 작품 위에 눕기도 하고, 거꾸로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오며 무릎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작품 속 일부 글자가 뭉개지고 훼손됐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 시대 최고 명필로 꼽혔던 김생의 글씨를 박 화백이 모필한 것으로, 가로 39㎝ 세로 19.8m에 이르는 대작이다. 액자에 넣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미술관에서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 전시했다. 보험 평가액만 1억원이 넘는다. 작품이 훼손된 사실을 안 미술관 측은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화면을 통해 아이들 부모를 찾았다. 아이들 아버지가 이를 제지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준 사실도 알게 됐다. 정작 이 소식을 들은 박 화백은 미술관에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고 했다. 박대성은 훼손된 작품에 대해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그 정도 발자국은 남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껄껄 웃었다. –봉황이라니, 무슨 뜻인가. “작품이 훼손됐다는 뉴스가 유튜브에서 218만회 재생됐다고 한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내 작품을 그렇게 많이 봤겠나. 그러니 고놈이 봉황이지. 전시관에 다시 가서 보니 아이들 눈에는 미끄럼틀같이도 보이겠더라.” –그래도 애써 그린 작품이 훼손됐는데. “내가 보상을 요구하면, 그 아이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원망하겠나. 아이도 위축될 테고. 아이가 미술관에서 가져가는 기억이 그래서는 안 된다. 인간이 서로 원수지고 살 필요가 없다. 왜 이렇게 다들 ‘네 편 내 편’ 하며 비싼 에너지를 값싸게 소진하나. 물론 관람 문화가 좀 더 개선될 필요는 있다. 이번에 여러 기사가 나가면서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 본다.” 기사 전문 너무 멋있는 화백님 아니신가요 :) 아이가 미술관에서 가져가는 기억까지 배려하시다니. 어릴적 빨치산의 낫에 부모님과ㅠㅠㅠ 한쪽 팔을 잃으시고 남은 팔로만 그림을 그리신다고 합니다. 멋있다...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만남 🙆‍♂️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건축 재료! 지금 당신이 실내에 있다면 십중팔구 만날 수 밖에 없는 재료~ 철근콘크리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현대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준 철근과 콘크리트가 서로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콘크리트는 물과 시멘트, 모래, 자갈을 잘 섞어서 만든 혼합 재료입니다. 역사적으로 넘어간다면 굉장히 전통 있는 재료인데, 기원전부터 고대 이집트인과 고대 로마인들이 발견하여 사용했던 재료에요. 철골은 철제로 만든, 구조물의 뼈대 용도로 쓰이는 재료입니다. 콘크리트 안에 철골이 들어간 것을 철근콘크리트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철골과 콘크리트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요?? <철골과 콘크리트의 역사적 만남> 프랑스의 정원사 모니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진 화질 죄송합니다..ㅜ) 도자기나 돌을 이용하여 화분을 사용하던 그는 화분을 어떻게 하면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해서, 콘크리트로 화분을 한 번 만들어 봅니다.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은 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콘크리트로는 아직 잘 깨지는 듯해 다른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죠. 100여가지가 넘는 재료를 실험하며, 2년 동안 자신의 화분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 와중에 철사그물로 모양을 잡은다음 시멘트를 붙이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의 단단한 화분은 입소문을 타고 날아가, 그에게 큰 돈을 안겨주었습니다. 1854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기도 하며, 이듬해에 특허를 받았지요. 그의 도전정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분을 넘어 계단이나 다리, 파이프 등에 자신의 발명품을 활용합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탄생한 순간이죠. 이후 여러 건축가들이 철근 콘크리트에 대해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결과, 1920년대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건축공법이 되었습니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같이 쓰면 대체 어떤 점이 좋길래 오랫동안 대체 불가한 건축 재료로 평가받을까요? 이후부터는 그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철근 콘크리트가 왜 환상의 짝궁인지> 대표적인 세 가지만 뽑아서 소개하겠습니다! 원리가 좀 복잡하기 때문에, []안에 표시할게요. 궁금하신 분들은 []안을 읽어보세요! (1) 콘크리트는 압축을 버티는 힘(압축력)에 강하고, 철근은 늘어남을 방지하는 힘(인장력)에 강하다. [콘크리트의 압축력은 인장력의 10배가 넘고, 철근은 인장력이 압축력의 10배가 넘기 때문에, 서로의 장단점을 커버하는 건축 재료가 됩니다.] (2) 콘크리트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철근의 부식을 막는 성분이 나온다. (오타입니다.. 칼륨 아니라 칼슘이에요오...) [콘크리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산화칼슘 발생. 철이 부식 되는 이유는, 가지고 있던 전자를 잃어버리기 때문인데, 칼슘이 철보다 전자를 더 잘 잃어버려서 같이 있으면 철이 상대적으로 부식이 덜 됩니다.] (칼카나마 알아철니 주납수구 수은백금~) (3) 열을 받았을 때 늘어나는 정도가 콘크리트와 철근이 비슷합니다. [콘크리트와 철근의 선팽장계수(온도가 1℃ 변화할 때 단위길이당 길이의 변화)는 1.25 x 10-5℃ 내외입니다. 화재 등 온도 변화로 인한 팽창정도가 비슷하죠.] 이런 요인들이 철근과 콘크리트의 조합이 단점(무겁고 두껍다)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 못 잃는 이유입니다~~ < 마치며 > 철근콘크리트에 대해 수업을 듣던 기억이 떠오르며 우리가 주목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벗어난 적은 없는 건축재료. 여러분께 그 필연적인 만남과,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개해드리면 어떨까 해서 만든 컨텐츠입니다.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라며, 더 좋은 컨텐츠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