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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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하도 어지러워 먼저 읽을 책들을 한쪽으로 빼서 쌓아보았다. 돌 쌓기처럼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나태의 타파를 기원하는 것인가. 보름달을 보고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따져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고, 고만고만한 소원들은 딱히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에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내내 그러할 텐데 그 문장인즉슨,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은 죽은 어떤 가수의 노랫말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가사를 보며 그거 하나 모르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자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쥐고 오랫동안 으쓱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릴 땐,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뭔가 멋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다. 나는 정말로 꿈이 있다거나, 일종의 드림워커로서 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멋에 취해, 아니 그런 게 당최 뭐가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한 일을 하나 선택해 이게 내 꿈이라 믿고 젠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생과 면담을 하며 자꾸 꿈을 강조한다. 학생은 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딱히 문제아인 것도 아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면 맥주나 한 캔하고 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방식 아닌가.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모두가 야심 찬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닌가, 그런 생각. 사실 영화 속 학생도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이 꿈일 뿐. 그런 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다.
사실 요즘 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는 것. 그러나 인생이 지루해서, 이렇게라도 꿈이라는 최면을 걸어놓고 살지 않으면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완전히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뱉는 것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인생은 매번 넘고 넘어야 하는 산들뿐이라 다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역시 요즘은 그 부질없음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태껏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사실은 없어서일지도. 아니,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서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고, 가능 범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기 때문일지도.

너무 비관적인 생각으로 들리려나. 그러나 사실 꿈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삶이다.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보며 사는 것이라서 현실을 지나가기가 어쩌면 수월할 것이며 그 자체가 기쁨일 테고, 꿈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큰 불만이 없으므로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둘 다 삶의 비중을 미래에 놓느냐, 현재에 놓느냐의 차이일 거다. 꿈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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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 옥수수
친구 말구가 자신의 논 옆 자투리 밭에 그루 옥수수를 심는다고 할 때 사실 '그루'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들어 본 기억은 있기에 옛 어른들이 쓰던 일종의 홍천 지역의 방언 정도로만 알았다. 게다가 말구가 좀 애 늙은이 같은 언어를 자주 구사한다. 그럴 때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김석희씨(말구 아버지)'와 닮았다. 그분도 그랬다. 어린 나이에 있어 보였다. 그런데 말구가 그러는 걸 들으면 애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늙은이 맞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루'가 어떤 뜻일까 공부해 봤다. 사전적 의미로 3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 명사다. 표준말이 맞다. 1. 나무나 곡식 등의 줄기의 아래 부분. "나무 ∼" 2. 식물, 특히 나무를 세는 단위. 주(株). "감나무 세 ∼" 3. 한 해에 같은 땅에 농사짓는 횟수. "두 ∼ 심는 논농사" 여기서는 3 번째 의미가 해당된다. 즉 이모작을 그루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옥수수를 한창 따서 판매 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그루 옥수수를 심는 다며 옥수수를 심고 있는게 아닌가? 난 반신반의해서 "그거 먹을 수나 있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걱정 말라며 일축했다. 집 앞이라 지나칠 때마다 자라지를 않는 걸 보고 "말구야 저 옥수수는 먹기는 어렵겠다" 며 비웃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른들도 "글렀어" 하며 나를 지지했다. 그런데 말구의 자신감처럼 어느새 실하게 여물었다. 어제 한자루를 따서 먹어보라고 가져왔다. 더 필요하면 밭에가서 얼마든지 따가란다. 나이 들수록 옆에 있는 친구가 고맙고 소중해진다. 최한봉씨 아들 동현이는 김장 배추 50 포기를 주겠다며 열심히 키우고 있다. 학교 아저씨 딸 명순이는 고구마 농사가 없는 나에게 고구마 한 박스를 줬다. 그 아버지들이 짓던 농사를 이제 자식들이 이어간다. 우린 그래도 아버지 어깨너머로 보고 익혔는데 지금은 그러는 자식들이 없다. 아마 우리 세대가 두촌의 마지막 농사꾼이리라. 그루 옥수수는 적은 농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치의 땅도 놀리지 않겠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억척과 근면의 연장선이다. 그런 그분들의 일생의 애정이 스며있는 땅이기에 돈도 안데는데 ...라는 비난을 들으며 내가 다시 씨를 뿌리는 이유다.
[토박이말 살리기]1-80 뚝심
[토박이말 살리기]1-80 뚝심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뚝심'입니다. 오늘 토박이말은 다들 잘 아시는 말이라서 반가워 하실 분들이 많지 싶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것과 다른 뜻도 있으니 그것까지 알고 쓰시면 좋겠다 싶어 알려드립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뜻을 두 가지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이라고 하며 "둑심이 세다.", "뚝심으로 버티어 나가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제가끔 제 수하들을 거느리는 만큼 힘들도 좋고 뚝심도 있었다."와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둘째 뜻은 '좀 미련하게 불쑥 내는 힘'이라고 풀이를 하고 "뚝심을 부리다."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양효석의 주먹도 정작 현오봉의 기운과 맞붙고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그의 뚝심은 대단했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도 뜻을 두 가지로 나누어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굳세게 버티어 내는 힘'이라고 하며 "둑심이 세다.", "뚝심 있는 사람.", "그는 오직 뚝심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왔다.", "신참은 뚝심 좋은 이미지로 여사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둘째 뜻은 '좀 미련하게 불쑥 내는 힘'이라고 풀이를 하고 "뚝심을 부리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가 거의 비슷한데 표준국어대사전에 '감당하여 내다'는 뜻이 더 있어서 '맡아서 잘 해내다'는 뜻을 보태서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뚝심: 1)굳세게 버티거나 견디어 내는 힘. 또는 그렇게 잘 해내는 힘. 2)좀 미련하게 불쑥 내는 힘 '뚝심'에서 '심'은 '힘'이 바뀐 말인데 '밥힘'이 '밥심'이 된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다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여러분 둘레에 첫째 뜻으로서의 '뚝심'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과 함께 일을 하면 든든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좀 지나치면 미련해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둘째 뜻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 쓰면 다른 말맛과 글맛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열달 열닷새 닷날(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뚝심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엄마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재 발굴단 40회 '산골 소년 정여민' 무려 8000 : 1 을 한 대상수상자가 있음 '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 이라는 온도라 생각이 든다. '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라는 제목에 눈길이 사로 잡혔다고 하는 심사위원 대상 받은 친구 물어보는 제작진 하지만 사진에 없음. 대상 수상자가 빠진 시상식 그래서 영재발굴단이 아이를 찾아나섬 네비도 안 먹을 정도로 깊은시골 가다말고 할머니에게 물어보는 제작진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알려 주시는 할머니 제일 시골 끝자락에  혼자 위치해 있는 집 발견 제작진이 물어 봄 그런 제작진을 발견한 아들 둘을 부름 주섬주섬 둘 중 누가 글을 쓴 여민이냐고 물어보는 중 저요 패널들 : 이야- 탤런트 아닌가요. 잘생겼다 자기가 여민이란 걸 알려주고 말 없이 장작 패는 여민이 보일러가 없어서 장작으로 불을 피워서 지냄. 불 피우자 마자 들어와서는 책 부터 꺼내는 여민이 제작진 '민망' 그런 여민이를 보고 한마디 하는 엄마 하지만 여민이 책 읽는거에 집중 당황한 제작진이  엄마한테 여민이 사춘기냐고 물어 봄 끄덕끄덕 원래도 과묵한데 사춘기 까지 와서 더 말이 없어짐 상장 보여달라고 말하는 제작진 역시나 말 없이 가져 옴 이게 바로 8000:1 을 뚫고 받은 상장 시상식에 오지 못 한 이유를 묻는 제작진 눈이 많이 와서 못 왔던 거 였음 안 간게 아니라 폭설 때문에 길이 막혀 시상식에 늦게 도착한 거 였음. 모두 다 글짓기 관련 상장 배운 적 없음. 패널들 : 이야- 얼굴이 ' 세상의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것 같았다 ' 몸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가족들이 시골로 내려옴 제작진의 질문에 바로 슬펐다고  말하는 여민이 동생 지민이 하지만 여민이는 아무 말도 없음. 힘든 생각을 안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하는 여민이 고구마 야무지게 호일에 쌓는 중 고구마 기다리다 말고 갑자기 노트 꺼내드는 여민이 소리가 있는 겨울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앉는다. 아궁이의 새빨건 장작불 속에 고구마를 안겨주고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소리 하얀 눈이 소리없이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올 때 추억이 만들어지는 소리 지붕 처마 끝에 달린 뾰족뾰족 고드름이 겨울 햇살을 만나는 소리 얼음물 내려오는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봄 냄새를 맡는 소리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있어 행복하다 화기애애한 여민이네 만약에라는 생각에 영상을 기록해 추억을 남기기로 생각했다는 엄마 고구마를 다 먹은 여민이네 가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는 중 별똥별이 예쁘게 내리는 중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엄마의 건강 회복을 위해 아침마다 가족들이 매일 운동을 하러 산으로 나옴 이렇게 주운 솔들을 던지면서 노는 중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 표정이 좋지 않음.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인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누워버림 그런 엄마를 걱정하는 남편 여민이는 그런 엄마를 말 없이 지켜봄 말 없이 엄마를 지켜보다 결국 밖으로 나가는 여민이 밖에서 추운바람 맞아가며 또 다시 책을 읽음 숲의 하루 어둠이 내려오면 햇살은 더 놀고가겠다 칭얼대고 숲은 무엇이 내것인지 내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마음도 흐릿해지는 시간이 된다 새벽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는 여민이아빠 엄마의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지만 엄마는 같이 안감. 하루에 3번 지나가는 버스를 타는 여민이 아빠 학교 수업중인 여민이 엄마 검사결과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됨 기다리다 결국 여민이아빠한테 전화를 하는 엄마 엄마에게 결과 물어보는 제작진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가는 여민이 엄마의 괜찮다는 말에 표정이 풀어진 듯 한 여민이 공책들고 밖으로 나옴 돌 어디에서든지 깨지지 말아라 아무 곳에서나 구르지 말아라 다시 만날 조각돌 햇살을 위해 비를 참아내며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억새보다 바람을 참아내어 그냥 작은 꽃 옆에서 같이 비를 맞아주고 같이 바람을 맞이하는 돌이 되어라. 새해 아침 삼부자가 엄마를 위해  새해맞이 떡국 준비 중 물과 현미떡과 달걀과  굴만 들어간 특별한 떡국 엄마 맛있다고 엄지 척 여민이한테 물어보는 제작진 끄덕끄덕 떡국먹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여민이 노트를 들고 왔음 아빠가 읽어 본다니까  부끄러워진 여민이 숨는 중 별빛 꿈을 꾸며 많은 사람들이 반달 눈으로 앞을 보고 걸을 때 나는 일자 눈으로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의 아픔은 나의 눈에 눈물의 커튼 자국을 남겨두었고 내마음에 가시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시들이 숲에서 녹을 때쯤 매일매일 여행을 하듯 자연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별들도 바람에 흔들리고 반딧불의 불빛에 별빛도 숨을 죽이는 이곳 나는 별빛 꿈을 꾸며 가족의 손을 잡고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저 높은 밤하늘 별들에게도 들리도록 말이다. 엄마한테 뽀뽀 행복해 보이는 여민이네 여민이가 제작진에게 써준 시 손님 손님이 햇살을 피해 구름을 따라 찾아왔다. 새 손님 새로운 손님 반가운 손님 쏟아지는 별빛을 마음속에 안겨주고 별길따라 멀어져 갔다. 바람도 머물지 못하게 마음을 채워주고 겨울길 따라 멀어져 갔다. 별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을 아주 가끔은 생각나게 되겠지요. 여민이네 집에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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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산을 쓰고 점심을 먹으러 가며 생각했다. 올해는 비만 오는구나. 이쯤 되면 레이니 데이가 아니라 레이니 이어(이얼?)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퇴근이 세 시간 반 남짓 남았군. 연말을 앞두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업무량 속 이 태풍의 눈 같은 시간. 앞 문장까지 쓰고 다시 글을 쓰려고 보니 이젠 퇴근 시간이 두 시간 반 남짓 남았군. 이왕 이럴 거 오전부터 한 시간마다 한 문장씩 적어볼 걸 그랬나. 만약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한 문장씩 적는다면 그 글은 혼자 쓴 게 아니라 열 명의 내가 공동으로 쓴 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공저 나 1, 나 2, 나 3…….” 물론 시간을 아주 미세하게 쪼갠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미 나는 무수한 겹의 내가 바통을 이어가며 글을 쓰는 거겠지만. 그러니까 어떤 와인은 마시는 와중에도 공기와의 접촉으로 인해 수시로 맛과 향이 변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인 이십대 초반에, 글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뭔가를 끼적여 놓은 것들을 본 적이 있는데,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녹음해서 들으면 대부분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듯이 그 역시, 아니 그 이상으로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나는 이제 ‘나’가 아니면서 여전히 ‘나’이므로. 지금 쓰는 글들도 훗날 보면 그런 느낌일까. 그런데 두 가지 경우 모두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내가 쓴 글을 볼 때 다시 얼굴이 화끈거린다면 한 번 더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고통일 테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다면 나는 그다지 성장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비관적인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또 장점이다. 수치스럽다면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 것이고, 수치스럽지 않다면 나보다 어린 내가 철모르던 시절에 크게 삽질(?)한 것은 아닐 테니까. 수치스럽다면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나보다 훨씬 어린 나를 연민하는 기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기분으로. 수치스럽지 않다면 나는 어린 나를 여전히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기분으로. 개인적으로는 사실 올해 쓴 일기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전부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게든 많게든 각자의 사진첩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텐데, 나는 내 사진첩을 보면 잘 나온 사진들만 남기고 모조리 불태우고 싶다는 욕망도 들고, 그렇다고 못 나온 사진들을 다 버리자니 그냥 그 시간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것 같아서 망설여지기도 한다. 카프카는 죽을 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는 그 유언을 어기고, 카프카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았다. 카프카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의 전설적인 원고들을 경험하지 못했겠지만, 과연 저 사후세계에서 당사자인 카프카가 이 현장을 모두 목격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막스 브로트 너 이 새끼……, 정도? 아, 물론 독일어로 욕했겠지만, 사실 그의 성정으로 보아서는 그럴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사후이기는 하지만 유명세와 명예 상관없이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그의 작품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할 수 있기에 그는 카프카다. 시간이 많이 흐른다면 그때도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치스럽든 그렇지 않든, 어린 나를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고 싶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기도 가장 늙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내게 어린 시절의 내가 깃들어 있듯, 아직 도래하지 않는 내가 이미 내게 깃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자, 이제 퇴근이 한 시간 반 남짓 남았다. 오늘의 일기는 두 시간 전의 나와 한 시간 전의 나와 현 시각의 ‘나’가 함께 썼다. 그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겹의 나는 세 명의 나를 보조한 서브 작가 정도로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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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마트에서 이것저것 생필품을 사서 계산대에 갔더니 중년의 남자가 본인의 물건을 계산원에게 넘기고 지갑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던지 어라, 지갑이 어디 갔지. 그런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가방을 계속해서 뒤적였고,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지갑이 진짜 어디로 갔지. 나와 계산원은 그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어리둥절해 하며 지갑을 찾았다. 그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어 갈 무렵, 나는 계산대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지갑 하나가 종량제 봉투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았다. 미리 지갑을 빼놓고 깜빡 잊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가방에서 지갑을 흘렸던 것인지 뭐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그 지갑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애꿎은 빈 가방에만 골몰했다. 나는 계산대 한구석에서 자신의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지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저기 있는 지갑 아니에요? 그는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어 맞아요, 했다. 그리고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주워든 자신의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어 계산원에게 건넨 뒤 다시 한번 내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한번 웃어주고 말았다. 그는 잔돈을 건네받아 주머니에 넣었고, 나는 내가 골라온 물건의 계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모든 짐을 정리해 들고, 발걸음을 옮기기 직전에 또다시 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인과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뷔페식 식당이었는데, 식사 전에 물을 한잔하고 싶어 음수대로 갔다. 덩치가 큰 남자 한 명이 음수기 앞에서 컵을 받쳐 든 채로 있었고, 컵 안으로 얼음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음수기를 살펴보니 얼음, 얼음물, 정수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기능이 갖춰져 있었는데, 기계는 ‘얼음’이 선택되어 있었다. 당연히 컵에는 얼음만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가 얼음을 먼저 받은 뒤 물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얼음만 받고 있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는 컵 안으로 물이 아닌 얼음만 떨어지는 것을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컵을 이렇게 대보다가 저렇게 대보다가 하는 식으로 무언가를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 기능을 보지 못한 것 같았고, 또한 물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이걸 눌러주셔야 할 것 같다고, 무심히 말하며 정수를 눌러주었다. 그러자 가만히 보고만 있던 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다시 얼음을 누르더니 조금 있다가 자리를 떠났다. 물론 남자는 애초에 얼음만을 원했던 것이 맞을 수도 있고, 순전히 내가 그를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는 물을 원한 것이 맞는데, 어쩐지 바보짓을 들킨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것일 수도 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떤 선의는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오지랖이 되기도 한다. 나의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모두 선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게 바로 선의의 맹점이다. 내 의도가 선했으니 상대가 감사해야 함이 응당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선의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얘기한 나의 행동들은 필요 이상으로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것도, 상대의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에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니다. 놓치지 말자. 애초에 나의 두 행위는 사실 선의라기보다, 내 편의를 위해 상대를 재촉한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