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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만 내도 좋은 것

옛날 어느 마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 어느 작은 초가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어머니. 아, 하세요. 밥 한 숟가락 드립니다.
다시 아 하세요. 이번엔 나물 반찬 드립니다.
어머니.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네요.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조금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 이번에는 생선 반찬 드립니다.”
원님이 그 초가집을 몰래 들여다보니
한 청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생선의 가시도 정성스럽게 발라 어머니의 식사 수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명을 받은 원님은 효자 청년에게
큰상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또 다른 청년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불편한 어머니를 홀대하는 불효자였지만
자신도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거짓 효도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효자의 소문을 들은 원님은
다시 정체를 숨기고 그의 집을 조심히
들여다봤습니다.
하지만, 원님의 방문을 눈치챈 불효자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아들아. 예전의 너는 앞이 안 보이는
어미를 보살피지 않고 살더니 지금은 이렇게 어미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되었으니 이제 내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청년은 원님을 속였다는 생각에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원님은 그 청년에게도 다른 효자 청년과 같이
상을 내리면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것이다.
비록 거짓이었다고 해도 부모를 행복하게 해드렸다면
그 또한 훌륭한 효도이니라.”
원님에 말에 이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뒤에는 진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효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받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효도가 큰지, 작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부모님이 어떻게 느끼고 기뻐하실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인 효도,
미루지 말고 이번 한가위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전해보세요.
# 오늘의 명언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서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다.
– 율곡 이이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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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라 생각하지 말고 가족에게 더 친절하고 애를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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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약속
어느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한 일화를 들려주면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한 쌍의 부부가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하다가 큰 폭풍으로 재난을 당했는데 그 배의 구조정에는 자리가 딱 하나만 남았습니다. ​ 이때 남편은 부인을 유람선에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랐고, 부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그 상황에서 부인이 남편에게 뭐라고 외쳤을까요?” ​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가 바보지!” “어디 얼마나 먹고 잘 사나 봐라.” ​ 이때 한 학생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조용해질 때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 땐 아마 부인은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라고 했을 것 같아요.” ​ 교수는 학생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너 이 얘기 어디서 들어봤니?” ​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저희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 교수는 감격해서 말했습니다. “그래 정답이다.” ​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들을 잘 키웠고, 모두가 출가한 뒤 남편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 이후 자녀들이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부모님이 배를 타고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가 적혀있었습니다. ​ 그때 어머니는 중병에 걸려 있어서 그 여행은 부모님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그때 큰 폭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했고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아버지의 일기장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여보 미안합니다. 그때 당신이 등을 떠밀지만 않았다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닷속에 빠져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던 나를 미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남아있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당신과의 약속으로 아이들을 잘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이젠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합니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 평생 살면서도 자녀들을 잘 키우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꿋꿋이 지켜낸 남편의 사랑… 이처럼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은 어떠한 절망도 고난도 슬픔도 넉넉히 이기게 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사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조선의 법을 어겼다
조선 중기, 가장 존경받는 대학자 퇴계 이황에게는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가 된 둘째 며느리 류 씨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결혼 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던 터라, 이황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갈 며느리가 걱정스러웠지만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는 유교적 규범에 얽매여 남은 인생을 쓸쓸히 보내야 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안을 돌아보던 이황은 며느리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란도란 분명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였습니다. ​ 순간 이황은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방안을 살펴보니, 며느리는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인형 앞에 술상을 차려 놓고는 그 인형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 “여보, 한 잔 드세요.” ​ 그리고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 그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던 이황은 평생 한 지아비만 섬겨야 한다는 조선의 법을 어기고 며느리를 재혼시켜주고자 며느리 류 씨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귀가가 늦어진다는 억지 트집을 잡아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 쫓겨난 며느리 류 씨는 친정으로 가는 도중 자결을 하려다 친정아버지에게 건네라는 시아버지의 서찰이 생각나서 읽어 보게 되었고 서찰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 ‘이것을 전하면 친정에서 너를 재가시켜 줄 것이다. 행복을 바란다’는 내용으로 며느리의 장래를 위해 걱정하는 시아버지의 간절한 사랑과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 여러 해가 흐른 뒤, 어느 날 이황은 한양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저녁상도 아침상도 모두 이황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식사가 차려졌고, 간이 입에 아주 딱 맞아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 그리고 길 떠날 준비를 하는 이황에게 집주인은 한양 가는 길에 신으라며 잘 만들어진 버선 두 켤레를 건네어서 신어보니 이황의 발에 꼭 맞았습니다. ​ 이황은 그제야 둘째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잘 정돈된 집안과 주인의 사람됨을 보니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황은 며느리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재가해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며 행복한 마음에 길을 떠났고, 며느리 류 씨는 떠나는 시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더욱더 어두운 곳에서 그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뭉쳐 있는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으면 그것들은 한이 되고 아픔이 됩니다. ​ 시아버지의 배려 깊은 사랑은 며느리에게 남아있던 응어리진 한과 슬픔을 눈 녹듯이 녹아내리게 만들었습니다. ​ 아무리 힘들고, 슬프고, 괴로워도 자기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치유제다. – 파블로 피카소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배려#사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선생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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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 타게된 썰
친구와 술먹고 다음날 병원을 가기로했었어. 친구와 새벽 4시까지 진탕마시고 8시에 바로 병원을갔엏지. 구미에서 대구까지 갔었는데 대구의 그동네는 처음와보는 생소한곳이었지 하지만 알아주는병원이었던터라 어영부영 조심히 조심히 운전해서 병원을갔었어 병원을도착했는데 주차할곳이없더라?! 투덜투덜대며 큰길을돌아 골목으로 차를 세우고 걸어서 지도를 보며 찾아가고있었어. 가던중 굴식당이 있더라? .해장으로 굴국밥은 정말이지 넘사벽이거든, 맛있겠다하면서. 난 곧장 정신을차리고 다시병원을향해 휴대폰지도를 보며 가고있었지. 허나 술이 해독이 덜됬는지 정신이 온전치는 못했어 그러나주변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주파수를찾은다음 병윈진료를 잘 볼수있었지 이때부터가 큰난관이었어, 정신도 온전치 않앗는데 돌아온길이 제대로 기억안나는거지.. 어찌저찌 기억나는건 내눈을 사로잡던 굴식당!! 그거하나였어. 그렇게 기억을 되짚으며 걸어걸어서 30분을 찾아헤메었던가?! 이건답이없다는 판단을내렸지 아주현명했어. 19세기엔 말을 탔다면 지금의 21세기는 전동킥보드란 현대의 길거리를 지배하는 아주 날쌘 놈이 있지, 난 시간을 아주소중히여기는 타입이야, 그래서 전동키보드를 타고 공격적으로 나의 봉봉이를 향해 왔던길을 되돌아가고었지 하지만 찾을수없었어. 처음와보는 동네기도했고 거기가거기같았거든, 상가라고해도 요즘의상가들은 이름이 다비슷해 그래서 내가살던동네와의 기억이 섞이며.머릿속은 아주 혼돈 그자체였지. 내가할수있는건 하나였어, 되돌아온길이아닌 주변의 굴식당을 이잡듯이 찾는것.. 20분은 타고찾아본거같애.. 그병원 방면의 굴식당은 죄다 찾아갔었지. 전문맛집 블로거도 못할여정아닐까싶어 결국엔 찾을수없었어.... 멘붕이 찾아왔었지. 주변에 연락을해봐도 다들 하나같이 어떡하냐는 말밖에 다른해답이 없었지.. 하지만, 나와같은 사람은 분명 있었을것이라고생각했지 그래서 지식인에 검색을 시작했어 아주현명했지. 지식인의 답변은ㅇㅏ주 명로하고 간단했어 차를 잃어버렸어요 어떻게할까요? 112에 전화를 하세요... 112... 보기만헤도 다소 긴장되는,불편한 번호.. 뭐어쩌겠어,집은가야겠고 차는못찾겠고 112에전화를했지.
얼룩진 손수건
19세기 유명한 사상가이자 화가였던 존 러스킨이 어느 파티에서 손수건을 바라보며 울상으로 앉아있는 한 귀부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부인은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 버렸어요. 손수건에 얼룩무늬가 생겨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 존 러스킨이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귀부인에게 손수건을 며칠만 자신한테 맡겨 달라고 했습니다. ​ 미술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 손수건은 그 이전보다 훨씬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 귀부인은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을 다시 받고는 너무도 감격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실패를 인생의 오점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점 없는 인생은 없고, 오점이 있더라도 그 삶은 여전히 귀한 생명이자 순간입니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오점을 가지고 있지만 명심해야 될 건 오점이 영원히 오점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손수건의 얼룩이 작품이 된 것 처럼 어떻게 가꾸고, 바꾸느냐에 따라 인생이란 큰 백지 속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허물이 있다면, 버리기를 두려워 말라. – 공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오점#얼룩#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강도를 네 번이나 만나다
198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윌리엄 리바인(William Levine)은 한 달 동안 무려 4번이나 강도를 만나 결국 빈털터리가 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리바인이 운영하는 정육점을 포함해 다른 상점들도 이미 강도들의 타깃이 된 상태였기에 강도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 그러다 리바인은 자신이 연구한 방탄조끼를 만들었고 직접 방탄조끼를 입고서 장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강도들의 침입도 줄어들었습니다. ​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주변 상인들에게도 금방 소문이 났고, 그들은 모두 그에게 방탄조끼를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 입소문을 타며 점점 많아지는 주문에 정육점을 병행하며 감당하기 어려웠던 리바인은 일생의 큰 선택을 합니다. ​ 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정육점을 정리하고, “Body Armor, International”이라는 방탄조끼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 이 회사는 이후 크게 성장하여 전 세계 도시에 지사를 세우고 일약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 정육점 주인에서 세계적인 방탄조끼 회사의 회장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인생에서 표현할 때 흔히 ‘굴곡지다’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위기, 역전 등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내려갈 때가 있다면 반드시 올라올 때가 있는 것처럼 도약의 기회는 때론 위기 속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성공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문제를 대면하는 데 따르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다. – M. 스캇 팩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위기#인생역전#오르막과내리막#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비극을 막은 소신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습니다. 다행히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한 과학자로 인해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학자는 바로 당시 미국 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공무원 프랜시스 올덤 켈시입니다. ​ 1960년 9월, 켈시 박사는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임산부 입덧 방지제의 신청서를 받았습니다. 이 약은 효능이 좋아 이미 유럽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승인도 쉽게 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켈시 박사는 제출된 문서를 검토하면서 동물 실험은 물론 임상 연구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진 중 일부는 미국 의학협회에서 거부된 논문을 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약의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 하지만, 엄청난 이윤이 걸린 제약회사에서는 켈시 박사에 대한 집요한 로비와 협박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켈시 박사는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이후 탈리도마이드는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이 약의 영향으로 12,000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후였습니다. ​ 이 일로 인해 켈시 박사는 소신을 지킨 강직한 공무원의 표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주는 최고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허술했던 미국의 의약품 허가 제도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 그러나 켈시 박사 본인은 ‘나는 그저 서류를 깔아뭉갠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라고 말하며 겸양을 표했을 뿐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쉽게 넘기는 일들로 인해 수많은 사고와 때로는 인명의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많이 발생합니다.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소신 있게 항상 충실하게 행한다는 건 참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 지금 자기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그런 여러분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소신은 중대하고 갈 길은 멀다. 그것을 각오하고 사명감에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논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소신#사명감#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돈의 철학
거상 임상옥은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가세가 기울었고, 아버지는 많은 빚을 진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임상옥은 의주 지역에서 청나라를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는 상인 밑에서 허드렛일부터 하면서 장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 임상옥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항상 들어왔던 말이 있었습니다. ​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고,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 어느 날 청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청나라와의 주된 무역 품목이 인삼이었는데, 임상옥은 가져간 인삼을 다 팔아 첫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듯했습니다. ​ 장사를 마친 임상옥은 일행과 술집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이곳으로 팔려 온 상태였습니다. ​ 임상옥은 돈 때문에 사람을 이런 곳에 팔 수 있냐며 자신의 돈 500냥을 내어주고 ‘장미령’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구해 주었습니다. ​ 그런데 그 500냥은 모시는 상인의 인삼을 대신 판 돈으로, 그중 250냥이 자신의 몫이라 장사 밑천으로 삼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 임상옥이 그렇게 한 데에는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가 아니라는 자신의 아버지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선으로 돌아온 임상옥은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 훗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미령이 후에 고관대작의 첩이 되어 임상옥이 장사하는 데 많은 인맥을 만들어주었고, 이를 기반으로 임상옥이 거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상인으로서 독립한 이후로도 청나라와의 인삼 전매로 임상옥은 벌써 30대에 엄청난 거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임상옥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 그는 항상 자신이 번 돈의 80%만 갖고, 나머지 20%는 인삼 경작 농가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습니다. ​ 현종 때에는 수재가 발생하자 임상옥이 거액의 의연금을 내어 ‘평안도 귀성 부사’라는 벼슬을 받기도 했습니다. ​ 이렇듯 임상옥이 욕심을 경계할 수 있었던 것은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라’는 ‘계영배’ 덕분이었는데 이 술잔은 잔 안에 술이 70% 이상 차면 술이 없어져 버립니다. ​ 그 원리는 술잔 속에 작은 관을 만들어 그 관의 높이까지 액체를 채우면 새지 않으나 관의 높이보다 높게 액체를 채우면 관 속과 물의 압력이 같아져 수압 차에 의해 액체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상옥은 돈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장의 이익을 좇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욕심이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이 번 돈의 5분의 1은 항상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회 고위층의 탐욕과 그로 인한 불공정과 불법이 만행하고 있는 요즘, 거상 임상옥의 ‘돈의 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 유일한 박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돈#명예#사람#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휴식 없는 38년의 사랑
1970년, 당시 16세 소녀 ‘에드워드 오바라’는 인슐린 부작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더니 안타깝게도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의식을 잃기 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 엄마는 딸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엄마는 절대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 의사는 에드워드가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고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엄마는 종기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마다 딸의 몸을 뒤집어 주었습니다. 네 시간마다 딸의 혈액을 채취해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을 주사했습니다. ​ 그리고 매일 12번에 걸쳐 음식을 튜브로 주입해 주고 대소변을 처리해야 했으며 한 번에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고 쪽잠을 자며 딸을 돌봤습니다. ​ 무려 38년 동안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 딸을 그렇게 돌보며 약속을 지켰습니다. ​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너무도 무정했습니다. 에드워드를 38년 동안 쉬지 않고 지키던 엄마는 몸이 늙어 쇠약해졌고, 2008년 팔순을 넘긴 엄마는 딸 곁에서 손을 꼭 잡은 채 에드워드의 여동생 콜린에게 언니를 부탁한 후 숨을 거뒀습니다. ​ 영원히 네 곁에 있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이렇게 동생 콜린에게 이어졌습니다. ​ 콜린은 엄마의 약속을 이어받아 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봤고, 에드워드는 그 후 4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절대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휴식 없는 사랑으로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완전하며, 가히 희생적이고 영원하고 숭고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신은 곳곳에 가 있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들을 만들었다. – 탈무드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약속#사랑#희생#부모#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도전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을 23번 올랐으며 수많은 등산길을 확장해서 오른 ‘휘트니 할머니’라고도 불리는 ‘훌다 크룩스’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녀가 66세 때, 그동안 시도해 보지 못했던 삶의 영역에 도전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바로 등산이었습니다. ​ 그래서 휘트니 산을 시작으로 91살 때까지 무려 97개 봉우리의 등정에 성공합니다. ​ 이러한 그녀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1991년 휘트니 산에서 가장 험하고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의 이름을 ‘크룩스 봉’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 게다가 그녀의 나이 91세에 해발 3,776m가 되는 일본의 후지산 정상에도 깃발을 꽂았습니다. ​ 그녀는 자서전에 이런 문구를 적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힘을 받지 않는 뼈는 미네랄을 잃게 되어 약해지게 됩니다. 둔해졌다는 것은 그대의 몸이 민첩한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모습이 고난과 기쁨이 공존하는 인생을 닮았습니다. 그 때문에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꿈과 도전에는 나이의 한계가 없습니다. 백발의 노인도, 젊은 청년도 그 누가 되었든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젊은 청년이라도 스스로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백발의 노인이라도 도전하고 꿈을 꾼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도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단 하나,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 디어도어 로빈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나이#젊음#도전#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삶의 지표가 된 칭찬 한마디
시인 박목월의 아들 박동규 교수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정신적 멘토가 바로,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박목월 시인은 먼저 남쪽으로 떠났고 그는 다섯 살짜리 여동생, 젖먹이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 결국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 그렇게 피난길에 오른 뒤 평택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됐지만 흉흉한 민심에 며칠 후 그의 가족은 쫓겨나 다시 서울로 가야 했습니다. ​ 다음날 새벽 그의 어머니는 아끼던 재봉틀을 쌀로 바꿔온 후 끈을 매어서 그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젊은 청년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 “너무 무겁지? 같이 가는 길까지 내가 좀 져 줄게.” ​ 순진했던 그는 고맙다며 쌀자루를 맡겼지만 장성한 청년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따라가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뒤에 있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초조해진 그는 청년에게 이제 그만 쌀자루를 달라고 했지만, 청년은 이를 무시한 채 더 빠르게 걸었고 결국 갈림길에서 어머니를 놓칠 수 없던 그는 쌀자루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도착했고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터진 그는 울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 그러자 어머니는 가족의 생명과 같은 쌀자루를 잃어버린 아들을 가만히 껴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런 상황에서도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았구나.” ​ 자신조차 스스로 바보 같다 생각됐지만 똑똑한 아이라며 보듬어 준 어머니의 한 마디에 앞으로는 똑똑한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 훗날 그는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칭찬에 대해 어색해하지 마세요. 칭찬에 대해 인색하지도 마세요. ‘잘하고 있어.’ ‘재능이 있네!’ 이 한마디의 격려와 칭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지표가 되는 칭찬, 나에게도 자녀에게도 아끼지 마세요. ​ ​ # 오늘의 명언 칭찬 속에서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 도로시로 놀트 –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칭찬#격려#긍정#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소년의 꽃다발
백혈병에 걸려 작은 몸으로 병마와 싸우던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소년은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겨질 엄마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한 꽃집 앞을 지나다 꽃집 주인에게 가서 한 가지 요청했습니다. ​ “앞으로 60년간 매년 엄마 생일날에 드릴 꽃다발을 미리 주문하고 싶어요.” ​ 이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30달러를 건넸습니다. 꽃집 주인은 소년의 사연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해주겠다며 약속했습니다. ​ 소년은 나가기 전까지도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엄마에게 예쁜 꽃을 배달해줄 것을 꽃집 주인에게 당부했습니다. ​ 두 달 후 소년이 말한 날짜가 되자 꽃집 주인은 약속대로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소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 “아드님이 당신을 위해 주문한 꽃입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 축하와 함께 꽃을 건네자 소년의 엄마는 깜짝 놀라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 사실 소년은 투병 끝에 결국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이 함께 축하해주지 못할 앞으로의 엄마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던 소년이 애틋하고도 대견한 마음에 꽃집 주인과 소년의 어머니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누구나 시간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사랑한 사람이 떠난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메꿔지지 않는 허전함이 남습니다. 그리고 못 해준 것들이 남아 후회가 됩니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후회나 자책보다는 느껴지는 빈자리의 크기만큼의 사랑일 것입니다. ​ 사랑한다면 늦었을 때란 없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여전히 사랑, 사랑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사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기회는 찾는 자의 것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1937년 퓰리처상을 받고 1939년에는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분을 휩쓸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거릿 미첼은 원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행하던 신문의 기자였습니다. ​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쳐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회복 기간엔 집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 자기 일에 큰 자부심이 있던 그녀는 이 사실에 낙심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걸려 책이 나왔지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선뜻 무명 작가의 책을 내겠다는 곳이 없었습니다. ​ 우연히 신문을 보다 뉴욕에서 제일 큰 맥밀런 출판사의 사장 레이슨이 애틀랜타에 온다는 소식에 무작정 기차역으로 찾아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 “사장님, 제가 쓴 소설 원고예요. 꼭 좀 읽어봐 주세요.” ​ 레이슨은 원고를 받았지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미첼은 자신의 원고를 읽어 달라며 레이슨에게 계속 전보를 보냈습니다. ​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청년들은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 미첼의 계속된 끈질김에 레이슨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고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 그렇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책은 출판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으며 책에는 그녀의 의지가 보이는 문장이 있습니다. ​ ‘모진 운명은 그들의 목을 부러뜨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꺾어 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싸웠다.’ 기회란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기회입니다. 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까지 필요합니다. ​ 스스로 찾고 노력하고 개척하는 사람에게 붙잡히는 것이 바로 기회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열정이 없는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바람을 기다리는 배와 같다. – 아르센 우세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기회#노력#간절함#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우리가 알고 있는 삼고초려는 허구다!
정사 삼국지가 나오기 전 위나라 어환(魚豢)이란 역사학자가 쓴 《위략(偉略)》이라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정사《삼국지》를 쓴 진수는 제갈공명이 죽기 2년 전에 태어난 자이지만, 어환은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리했는데, 위나라 역사가였던 만큼 본인이 모시던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꺾은 제갈공명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했을 겁니다. 또한 수십 년 뒤 진나라 시절 사마표가 쓴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위략》에서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그 내용은~ 두두두둥……! 제갈공명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형주에 있던 귀족들은 곧 북쪽에서 조조가 쳐들어올 것이라고 근심하던 중 황제로부터 숙부로 인정받은 명망가, 유비 장군이 왔다는 소식에 단체로 만나러 갔다네요. 이에 유비가 이들과 이런 저런 정세 이야기를 했는데, 제갈공명도 질문을 했다지만 유비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하지요. 우리가 흔히 게임이나 만화에서 여리여리한 꽃미남 스타일로 제갈공명을 묘사하지만, 《위략》엔 “투박한 생김새여서 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적혀 있답니다. 원래 제갈 가문은 서주에서 이름을 날리던 집안이었는데 서주가 유비, 여포, 조조로 주인이 계속 바뀌며 대학살을 당하던 전란을 맞아 그나마 안전한 형주로 이사 온 상황이었죠. 그래서 피난 와중에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제갈 가문 자제들이 각자 다른 주군을 모시게 된 겁니다. 당시 형주 양양 땅에 이사 온 제갈공명은 방덕공, 황승언 등 여러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양양 귀족 자제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으니 농사나 짓던 평민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이 멤버들이 지역 대표로서 유비를 만나러 갈 때 같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유비 와의 모임에서 별다른 계책을 못 들은 다른 유지들은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좀더 어필하려고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비는 이들이 돌아가자 아직 제갈공명이 남아 있는 줄 모르고는 심심하면 하던 취미 활동을 했더랍니다. 요즘 같으면 휴대폰 게임 같은 것을 했겠지만, 당시 유비가 한 소일거리는 바로~, 소 털로 새끼 꼬기. 청년 시절 돗자리 장사를 하던 때부터 즐기던 시간 때우기 버릇이었다지요. 그 장면을 본 제갈공명은 크게 실망했나 봅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한소리 했답니다. 이에 유비가 제갈공명의 진가를 알아보고 정중히 사과한 후 책사로 모셨다고 합니다.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최초 최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