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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Frank, 2014) ::: 괴짜라고? 이게 너야!
"I love you all 그리고 더 나아가 I love you wall" *영어사전(네이버) frank 1. (때로는 남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의) 솔직한 [노골적인] 1.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쉽게 '비정상' 이라고 단정지으며 꺼린 적이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런 부류가 되었다. 내가 한거라고는 혼자 잘 돌아다닌 것. 국내여행을 하고, 영화제 자원활동가와 스태프 활동을 하고, 영화를 보러다니고, 맛있는 걸 먹으러다니며 전시를 감상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뿐인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데 이런 날 부러워하면서도 비정상인 취급을 한다. 2. 영화 속 프랭크(마이클 파스밴더 역)는 내게 지극히 정상적이고 흥겨운 사람이었다. 존(돔놀 글리슨 역)에게 프랭크는 아주 특별한 천재였지만. 그 시선에 프랭크는 결국 표정을 보이고 말았는 지도 모른다. 그 아픈 표정을. 3. 이상한 탈을 쓴 프랭크 옆에서 존이 아무리 멋진 척을 해도 멋지지 않은 건 프랭크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밴더의 몸 때문이다. (두번째 이미지) 4. 영화는 코미디언이자 뮤지션이었던 Chris Sievey(http://en.wikipedia.org/wiki/Chris_Sievey)의 뉴스들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Chris Sievey는 락 가수로 변신할 때면 가면을 쓰고 Frank Sidebottom이란 가명을 사용했다. 당시 밴드의 키보드를 맡았던 Jon Ronson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걸 듣고, 영화 속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진짜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세번째 이미지) 5. 프랭크가 독보적인 매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내 마음에 치고 들어온 캐릭터는 항상 프랭크를 다독이는 '클라라'다. 이 영화 속에서 한결같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만 부른다. 마지막 부분에서 누구보다 먼저 프랭크를 알아본 순간의 클라라가 정말 맘에 든다. (네번째 이미지) 추천. 스스로를 너무 평범하거나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한쪽으로든 단정짓지말고 그냥 그런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난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짠함과 신남이 동시에 느껴져서 꿀잼! 존잼!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면 미친놈이라 단정짓고 미친 티를 내며 사는 것도 추천. 참조 및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958 http://www.imdb.com/title/tt1605717/ http://boombini.blog.me/220141593845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리뷰 후에 남은 것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우왕! 이러고 봤다가 큰 코 다친 영화이기에 부스러기가 많았다. 그래서 쓰는 비하인드 스토리. 우선, 아래 내용은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기 좋지만 혹시 이런 것도 스포일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를 보고나서 읽어도 좋다. CGV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들은 내용이며, 이 영화와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다면 추가할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각색상, 작품상을 거머쥐었으며, 아카데미 최초 흑인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록 또한 세웠다. 영화 <노예 12년>의 감독인 스티브 맥퀸은 이전에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했으며, 그는 첫 영화 <헝거>로 주목받았으며 뒤이어 <셰임>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영국인이긴 하지만 자신의 부모가 뿌리를 둔 곳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노예제도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한다. 노예제는 백인이 만들어낸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인식하여 언젠가는 관련 영화를 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구상에 돌입했다. 이 구상은 아내가 추천한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을 각색하는 것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배우 : 마이클 패스벤더는 스티브 맥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연기를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감독이 원하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하니, 최상의 콤비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배경 : 1840년대 노예제금지로 노예제가 허용되던 미국 남부에서, 북부에 있는 자유인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허다했다. 노예로 분류되는 흑인은 백인의 재산으로 인식되어 같이 일하는 이들도 그 '재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기법 : 롱테이크, 롱쇼트의 빈도가 높다. 편집없는 긴 흐름을 관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해서 이 기법들을 여러 장면에서 사용했다. 노섭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중에 주위 사람들을 비롯한 풍경을 길게 비추어, 이것을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 속 노예들이 겪은 고통을 가감없이 공유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상충되는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냈다. 영화 초반, 노섭이 납치되어 감금당한 노예수용소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데 그 뒤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그리고 포드가 읽어주는 성경구절과 노예들을 세워두고 부르는 위협적인 노래가 동시에 나오는 등 의아함을 자아내는 두 이미지가 동시에 담겼다. 이는 영화 속 상황들이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남은 이야기 ! - 영화의 바탕이 된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 <노예 12년>은 1984년 미국에서 <솔로몬 노섭의 오딧세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 감독은 당시에도 대세였고 지금 대세인 영국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알지 못하였고,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영국드라마 <셜록>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 마이클 패스벤더는 팻시(루피타 니옹)를 강간하는 장면을 찍고나서 기절을 했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모든 배우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수하느라 진심이 담긴 연기가 나왔다는 말도 있을 정도. - 브래드피트가 제작자로 참여한 세번째 영화.(타란티노, 카운슬러에 이어 세번째) 사진은 네이버 영화 영화에 담긴 내용은 CGV큐레이터
노예12년(12 Years a Slave) ::: 우리의 자유는 어디에
2014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 제대로 보여주고, 제대로 파고든다. 1840년대 미국, 노예제금지로인해 북부의 자유주 흑인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유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음악가 생활을 하던 솔로몬 노섭에게도 이런 비극이 닥쳤다. 무려 12년이란 세월동안 노예제가 농장을 운영하는 과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루이지애나에서 '플랫'이란 이름으로 갖은 고초를 겪는다.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라는 각각 다른 성향의 주인을 만나게 되고, 다른 환경을 마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노예를 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이 착하든 못됐든 솔로몬 노섭이 자유인이라는 건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노예의 주인이고, 노예는 주인의 재산일 뿐. 무엇보다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해서 당시 흑인 노예들이 겪은 비인간적 비현실적 상황을 기교없이 보여준다. 주인에게 위협을 받거나, 채찍을 받는 모습, 뜨거운 햇볓아래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오랜 시간 고통받는 모습을 롱테이크와 롱샷으로 잡아 길게 보여준다. 보여준다기 보다는 관객에게 던져놓고 고통을 같이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공포와 고통을 주는 그들의 모습, 모든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눈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울음이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당시 성행했던 노예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물음이 던져진다. 지금 각자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얼마나 제대로 발휘해내고 있는가에 대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더 놀라웠던 건 무엇보다 100여년 전의 일이고, 어떻게 들어도 그들의 고통을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생생하게 그들이 느껴졌다는 것.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걱정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사실로 영화를 보는 내 눈에 필터하나가 장착되지는 않을지.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미세먼지같이 날아갔... 이런 걱정을 했었는지도 잊었을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서 후유증이 대단했다. 어느 때보다 극장 분위기도 착 가라앉아서 사람들이 말없이 나갔다. 그래도 추천하고 그렇기에 추천하는 이 영화. 감독인 스티브 맥퀸의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제대로 보여주는 연출력과 촬영 중 압박감을 받았을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력에 찬사를! -동영상은 영화 공식예고편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는 다시 잘 모아서 다음 카드에 :^)
셰임(Shame)(2011)
수치심(羞恥心, Shame) :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처음장면부터 잠에서 깨어난 브랜든의 전라와 성기가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나온다. 브랜든을 연기하는 마이클 패스벤더나,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수치심을 느끼는 장면일 것이다. 심지어 브랜든이 여러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이나, 그가 오줌을 누는 장면, 심지어 화장실에서 자위하는 장면까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이것이 잘나가는 뉴요커의 브랜든의 일상이자, 현대인들 또한 여기서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브랜든의 섹스에 찌든 삶은, 그의 여동생인 씨씨가 예고없이 그의 집에 쳐들어오면서부터 별 문제 없었던(?) 브랜든의 일상생활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영화 <셰임>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다. <셰임>을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분이 이 영화의 코드가 "근친관계" 에 맞춰져 있냐는 점이다. 브랜든과 씨씨 남매의 관계와 둘 사이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결코 이상한게 아닌 것은 사실이다. 전라상태로 샤워하고 있는 씨씨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는 브랜든이나, 브랜든의 전화메시지에 단순 남매이상의 메시지를 남기는 씨씨나, 데이비드와 씨씨가 자신의 방에서 속닥거림에 안절부절 못해 뛰쳐나가는 브랜든, 침대에 자고 있는 브랜든 옆에 조용히 살갗을 맡대며 파고들어온 씨씨, 영화 후반부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는 데 절정으로 치닫는다 봐도 무방했다. 씨씨 : "난 항상 오빠를 화나게 하고 그 이유가 뭔지 몰라." 브랜든 : "아니 네가 나를 옭아 매는 거야. 넌 나를 궁지로 몰아놓고 꼼짝도 못하게 해." 누가 봐도 충분히 이 두 사람이 단순히 나이 차 많이 나는 남매로 보는 게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며, 이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이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셰임>을 '근친' 코드에 맞춰 영화 전체를 끼워맞추는 데에는 다소 아쉽다고 생각된다. 나는 브랜든이나, 씨씨, 이 두 사람이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본 중 하나로 보이며, 우리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대안거리를 찾아나서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랜든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택한 것이 바로 '섹스' 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섹스 중독자' 가 되어있었다. 그 '섹스' 는 브랜든의 삶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 아닌 언제부턴가 브랜드의 삶을 갉아먹기 시작해버린 좀벌레로 변모했다. 그렇다보니 지하철 건너편에 타고 있는 유부녀를 유혹해서 어떻게 한 번 해보려는 욕구까지 생겨나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도 나왔다. 그러다가, 자위하는 장면을 씨씨에게 들키고, 회사 상사로부터 사내 컴퓨터에 있는 야동을 정리하라는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면서 브랜든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모든 야동과 야한 잡지를 버렸다. 현자타임이 온 것이다. 자신이 진지하게 생각했던 마리안과 관계를 가지려다가도 현자타임이 와버렸다(※ 현자타임 : 보통 남성들이 사정한 후에 겪는 시간인데, 이 때가 가장 이성적으로 바뀌는 시기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용어). 외간 남성과 유사 성행위를 하고, 창녀 두 명과 무려 2대1 섹스를 하는 데도 브랜든의 표정은 쾌락을 즐기기 보단, 더욱 더 환멸과 수치심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브랜든의 여동생인 씨씨, 가수이면서 상당한 애정결핍을 지닌 여성이다. 말그대로 사랑에 목말라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가 샤워를 하면서 틀었던 노래 중 계속 울려퍼지는 "I want your love" 나 사랑받지 못해 손목에 수없이 그어진 자해자국이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으로 브랜든이 있는 뉴욕으로 무작정 올라섰으나, 그녀가 부른 <New York, New York>처럼 슬프게도 자신의 애정결핍을 채워주기엔 뉴욕 또한 너무나도 차갑고 건조했다. 그녀는 단지 사랑받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또 한 번 극단적으로 행동을 취하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씨씨의 행동 덕분에(?) 브랜든은 공허하고 현자타임이 만연한 그의 삶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그 사건 이후로, 브랜든은 그간 섹스 중독자로서의 살았던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그것을 암시했다. 우리는 사회과목을 배우면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이며,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지, 혼자 살 수는 없다는 답을 항상 얻는다. <셰임>을 통해서 하나 깨달을 수 있는 점 하나도 이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결핍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 일시적인 관계로는 영원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밀은 지켜지기란 참 어렵고,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What a shame..." 원문 : http://syrano63.blog.me/22057348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