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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고 미스테리 중 하나, 우랄산맥 디아틀로프 실종사건.jpg

미스터리의 시작



1959년 1월 27일, 북부 우랄 산맥 탐험의 일환으로 Otorten 산을 등반하기 위해 Igor Dyatlov를 리더로 한

당시 소련의 우랄 종합 기술 연구소(Ural Polytechnical Institute, 현재는 우랄 주립 기술 대학) 소속의

풍부한 산악 경험자들로 구성된 남성 8명, 여성 2명으로 이루어진 탐험대가 Vizhai 마을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다


1월 28일, 질병으로 인해 불참하게 되는 Yuri Yudin을 제외한 나머지

탐사대는 계획대로 Otorten 산을 등반하기 위해 이날 우랄 산맥으로 향한다


1월 31일, 탐사대는 고원 지역의 가장자리에 도착해 Woody 계곡에서 남은 탐사를 위해 재정비를 한다


2월 1일, 기상 조건 악화(Snowstorms)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은 탐사대는

경로를 이탈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Kholat Syakhl 산에 임시캠프를 설치한다


2월 12일, 베이스 캠프인 Vizhai 마을로 돌아오기로 한 날짜임에도 탐사대는 소식이 없다


2월 20일, 자원봉사 학생들과 교사로 구성된 최초의 구조 그룹이 그들을 찾기 시작


2월 21-25일, 군경 합동으로 비행기와 헬기까지 동원되어 탐사대를 찾기 시작


2월 26일, 탐사대가 임시캠프를 설치했던 Kholat Syakhl 산에서 심하게 손상된

텐트를 찾아냄과 함께 1.5km가량 떨어진 주변의 화재를 입은 소나무 아래에서

속옷만 입고 있는 Georgyi Krivonischenko와 Yuri Doroshenko의 시신을 발견


그리고 해당 장소에서 텐트로 향하는 길목에서(300m가량) 탐사대의 리더 Igor Dyatlov의 시신을 발견


Igor Dyatlov의 시신에서 약 180m, 33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추가로 Rustem Slobodin과 Zinaida Kolmogorova의 시신을 발견


Rustem Slobodin의 시신에서 17cm가량의 두개골 골절이 발견됨


Zinaida Kolmogorova의 시신 근처에서 혈액의 흔적이 발견됨


5월 4일, 수색 두 달여 만에 계곡에서 4m가량의 눈에 묻혀 있던 두 번째 그룹 4명의 시신을 발견


그 중 Nicolas Thibeaux-Brignollel의 시신 두개골에 심각한 충격이 있었음을 발견


또, Alexander Zolotarev의 시신에서 다수의 갈비뼈 골절이 발견되었으며 Ludmila Dubinina

역시 다수의 갈비뼈 골절이 발견되었고 특히 Ludmila Dubinina의 혀가 반듯하게 잘려나가 있음을 발견




우랄 산맥 실종 사건의 미스터리




· 탐사대가 머물렀던 임시 캠프의 텐트들이 모두 내부에서 찢겨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한 듯이 근처엔 각종 장비와 도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2월 26일 발견되었던 첫 번째 그룹의 탐사대원들은 모두 최고 영하 20-30도에

달하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오직 속옷만 입은 차림새로 공포에 질려 죽어 있었다



· 5월 4일 발견되었던 두 번째 그룹의 탐사대원들에게서 마치 교통사고라도 난 듯한 물리적 충격의 흔적과

함께 Ludmila Dubinina의 혀가 반듯하게 잘려나간 것을 보고 근처 원주민 Mansi의 소행으로 보기도 했으나

높은 압력으로 생긴 상처임에도 외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과 다툼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부정된다



· 당시 해당 산에는 탐사대원을 제외한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 시신 근처의 대형 소나무에서 불에 탄 흔적이 발견되었고 시신들의 피부가

모두 오렌지 색으로 변색하여 있었으며 그들의 모발 또한 백발화 되어 있었다




그들의 옷에서 놀랍게도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 그들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2월 2일 밤, 탐사대로부터 약 5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또 다른 등산객 그룹이 탐사대원들이 있는 위치의 하늘에서 오렌지빛을 띤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목격





· 사건 현장 근처에서 로켓 부품으로 사용된 금속 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 이러한 미증유의 사건에 대해 당시 소련정부는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문들을 묵살한 채

탐사대원들의 사인을 저체온사로 황급히 결론지은 뒤 사건 주변 일대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했으며 해당 사건에 대한 문서를 기밀로 분류시킴은 물론 사본 또한 파기하였다




이상과 같이 괴승 라스푸틴, 퉁구스카 대폭발과 함께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히는 우랄 산맥 실종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당시 비밀무기시험을 하던 소련정부의 소행일까요, 아니면 UFO에 탑승한 외계인의 소행일까요?



뭐에요 진짜..
소름돋잖아요ㅠㅠ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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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외계인소행?
진짜 궁금.
대답해라 슈퍼맨!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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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피쩍대
뭘 했다고 벌써 11월인지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네요... 어이없기도 하고.... 21년은 아주 쏜살같습니다.. 무튼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핳핳 가끔씩 괴담들고 올때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참 감사합니다 ^^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1. 빨간 숲이 굽이치고 있다. 바람에 일렁이고 있어 빤히 보고 있노라면 깨닫는다. '피쩍대'가 다시 들판을 덮었다. 피 묻은 팔이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힘껏 펼친 듯한 그 형상이 모여 마치 빨간 숲처럼 보인다. 불길한 계절이다. 마을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베고 또 베어 없앤지 또 하루이틀만에 온 들판이 새빨갛게 젖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로, 피쩍대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나간 땅 위에서만 자라난다고 했다. " 할배. 흙까지 빨간데요. 저래 놔뚸도 되는 겁니꺼? " " 야임마. 중학생이 들어가서 공부나 하지 어딜 따라오노? 퍼뜩 안 들어가나? " " 할매가 할배 이거 놔뚜고 가셨다고 갖다드리고 오라 카시던데요. " " 뭐를? 아이고. 전대를 안 차고 와뿟네. 알긋다. 이리 주고 들어가거라 퍼뜩. " " 예. "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저녁 노을까지 더해져 세상이 온통 붉다. 핏물을 머금은 소나기가 내린다면 그 세상이 딱 이런 모습일까. 이러한 요지경이 피쩍대를 벤 자리에 또 피쩍대가 자라나다 보면 흔한 일상이 된다. " 야야! 너거 할배 피쩍대 베러 나오셨나? " 피쩍대가 자기 밭에도 자랄까봐 담 쌓는데 열중이던 동네 아재의 부름이다. " 예! 저~앞에서 베고 계신데예! " " 맞나! 알긋다! 집에 할매 계시나? " " 와예? " " 와예는 무슨 와예? 어른이 묻는데. " " 계신데예 " " 그라믄 풀약 좀 빌리자. 이 놈의 피쩍대 베도 베도 또 자라는데 콱 약을 치야 죽지 안 그러면 죽도 밥도 안 되긋다. " " 피쩍대에 풀약 치는 거 아니라던데예 " 그랬다. 제초제라도 확 퍼부어버리면 덜 심할 것을 동네 사람들이 일일히 농기구로 손수 베는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풀약을 쳐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람이 떼로 죽은 땅 위에만 나는 피쩍대는 '망자의 한이 담긴 들풀'이라나. 그런 피쩍대를 태워버리면 그 마을이 통째로 망하거나 심한 악재가 덮친다는 식의 믿음이 있었다. " 가져오기 싫어가 별 핑계를 다 대네. 야, 요즘 세상에 그런게 어디있노? 귀찮다고 니나 내나 내비두니 이따위 잡초가 나는거지. 집에 가서 피쩍대에 친다고 얘기하지 말고 풀약 좀 받아오거라. " " 아이... 안 됩니더. " " 김씨! 얼라가 안 된다 안 카나, 김씨 집에 풀약 없으면 못 치는기지 길 가던 얼라를 붙잡고 뭐하는 짓이고? 어이 니! 가던 길 가라! " " ... 에이~ 약 한 번만 치면 끝인데. " " 지 가볼게예. 안녕히 계이소! " 2. 하도 붉은 땅, 붉은 하늘을 보다 집에 들어왔더니 김치가 아닌 반찬까지도 빨갛게 보일 지경이다. 그 놈의 피쩍대 때문에 동네 어귀에서부터 빨간 색안경을 끼고 온 듯 어질어질하다. " 밥을 깨작깨작 묵노? 묵기 싫나? " " 예? 아니예. 묵고 있는데요. 근데... 할매. " " 으응? " " 들판에 피쩍대가 만다꼬 자라는 건데예? " " 만다 자라기는? 들이 있으면 당연히 풀도 나는거지. 어데 이유가 있어서 풀이 난다 카더나. " " 아니, 그런 거 말고예. 사람들이 그라는데 피쩍대 이거는 사람 피를 먹어야 싹이 난다고 하데예? 우리 동네도 무슨 일이 있었나해서예. " " ... 니도 중학생이면 역사를 배울 나이니까 듣기만 들어놓거라. " 할머니께서는 지청구만 잔뜩 먹이셨던 어릴 때와는 달리 내가 중학생이 되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셨다. " 이십년도 더 전에 북한 놈들이 새벽에 기습침공을 해가 나라가 온통 빨갱이한테 넘어갈 뻔 한 거는 알고 있제? " " 6.25 얘기 아닙니꺼. 모르면 간첩... 아니 간첩도 그건 알죠. 야매로 알아서 그렇지. " "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미처 낙동강 아래로 가는 피난길에 오르기도 전에 고립이 되가 산으로, 동굴로, 숨어들었던기라. 그걸 빨갱이에 넘어간 놈들이 다 봤던 모양이지. 동네 사람들 어디로 가면 있을 거라고 밀고를 해가 죄다 잡혀내려왔다 아이가. 다행히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서 곧 국군이 수복을 했는데 그때 빨갱이들 잡아죽인 땅이 지금 피쩍대 자라는 들판이다. 너희 고모할머니 되시는 분도 그 당시에 빨갱이들한테 잡혀가가 돌아가시고 동네가 난리도 아니었다. 알긋나. " " 아... " 밥숟갈 입에 넣는 법을 까먹은 사람 마냥 멍해진 내 앞으로 새 머슴밥 하나가 턱하니 올라왔다. 이런. 피쩍대 얘기를 듣느라 할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신 줄도 몰랐다. " 할아버지. 다녀오셨습니꺼. " " 이제 알았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 가서 일하고 장가가고 우짜든가 이 동네 떠나서 훌륭한 인물이 될 생각하그라. 알긋제. " " 할아버지, 고모할머니 얘기는 전혀 몰랐어요. 괜히 얘기해가 속상하신 거 아입니꺼. 죄송합니더. " " ... 밥이나 묵자. 당신은 밥 묵읏고? 그래 알았다. 행주 있으면 좀 주소. 피쩍대 베고 왔드만 손톱이 다 뻘겋다. 이것 봐라. 얄궂다. 허허. " 전설... 미신... 그 중간 어디라고 생각했던 피쩍대가 정말로 사람들의 핏물 위에 자라났다니. 묵묵히 식사하시는 할아버지의 붉게 번진 손톱이 그 옛날 동족 상잔의 비극에서부터 비롯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3. " 에이씨, 이거 또 지랄이네. 잊을만 하면 게거품 물게 만드네. 뭣이 이딴 풀이 다있노. 시뻘개가지고. " 피쩍대를 향한 동네 청년들의 불평이 합창처럼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아침에 등교 할 적만 해도 스믈스믈 빨간 고개를 내미는 정도였는데 하교 길에는 어느새 무릎에 닿을락 말락했다. 염소조차도 피쩍대 줄기는 안 씹는 터라 처치곤란 그 자체인데 금기 때문에 풀약도 한 번을 못 치니 결국 또 날을 잡아 마을 사람 전체가 한 번에 베어야 할 판국이었다. 어제 빨갱이 얘기를 듣고 나니 오늘따라 그 붉은 손바닥들이 께름칙해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 안녕. " " ...? " " 안녕? 학교 마쳤나? " 누구지. 처음 보는 여학생이다. 내 또래쯤 될. " 니 눈데. " " 보면 모르나. 학생이지. 학교 마쳤나보네? " " 어. " " 좋겠다. " " 뭐가. " " 내도 학교 다니고 싶다. " " 교복 입었구만. " " 군복 입으면 다 군인이가? " " 땡땡이 치지말고 학교 다녀라.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졸업장 없으면 구직도 제대로 못 할걸. " " 너, 집은 어딘데. " " 아... 니 이사 왔는갑네? 조만간 학교 다니겠네 그럼. 나는 저기 뱀골짝에 산다. 여기 들판에서 좀 가야 된다. " " 어머. 진짜가? 그라모 니 내랑 이웃일 수도 있겠다. " ㅡ 이 주위는 미리 숱을 치놓으모 나중에 다같이 할 때 편할기다 ! ㅡ 맞다, 오늘 해뿌자. 낫하고 다 들고 왔나? 소녀는 동네 청년들 다가오는 소리에 언제 자랐는지 어깨쯤 올 법한 피쩍대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ㅡ 야 여기는 베다가 안 벴나 무슨 피쩍대가 이만창 자랐노 ㅡ 빼묵읏는갑지 자, 다 같이 짤라보자 ' ... 그리 당돌하게 말 걸더니 행님들 오니까 도둑고양이 맹키로 튀샀네. 이상한 가스나 아이가. ' 뱀골짝 너머 우리집에 올 때까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누가 이사 온 듯한 경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짝 반짝 광이 날 정도로 상태가 좋은 승용차 하나가 뜬금없이 우리 집 앞에 서있는 게 아닌가. 이정도 차를 타고 올 사람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고장 전체를 통틀어 몇 명 안 된다. 조심스레 집안을 들여다보니 양복 입은 사람들도 여럿이고 오토바이나 트럭도 마당까지 몇 대나 들어와있다. 익숙한 얼굴이 반, 생소한 얼굴이 반... 양복은 당연히 생소한 쪽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 좋습니다! 그리 하입시다! " " 그럼 얘기가 그리 된 걸로 알겠습니다! 자, 만장일치 표결을 박수로 대신합시다! " 가운데 앉은 아저씨의 호탕한 'OK' 사인에 그 자리에 있던 동네사람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그나마 나이가 가장 나와 가까운 아재에게 가서 '누군데예' 물었고 대답에 앞서 꿀밤 한 방이 날아들었다. ' 아야 와 때리는데예 ' ' 얌마, 니는 느그 동네 군수님도 몰라뵙나? 저 분이 우리 고장 대빵이다. 사또. 얼굴 잘 봐놔라. ' 군수님이라는 사람은 박수가 잦아들 때까지 인사와 악수로 화답을 한 다음 입을 다시 열었다. " 도청 산하에 농업기술원 협조를 얻어가 풀약을 쳐보입시다. 제가 농정국에 있던 동안에 알아놓은 연구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친 김에 10일 뒤에 딱 하는 걸로 날짜까지 못을 박읍시다! " ㅡ 와, 군수님 만세! ㅡ 역시 군수가 나서니까 일이 이래 쉽게 풀리네, 우리는 농사꾼이 되가 그 미신 때문에 여지껏 못한 걸 단박에 뿌리 뽑아삐네. ㅡ 10일 지나서 피쩍대 풀약 싹 치고나서 그 땅에 나락이라도 심구면 우리 동네도 이제 먹고 살만 하긋다! " 자, 이럴 게 아니고 우리 부락에서 돼지 한 마리 내놓겠심더! 오늘 군수님 어려운 걸음 하신 김에 돼지고기 삶아다가 소주 한 짝 안 하시면 군청 못 돌아가십니더. 아시겠지예? " " 아이고, 제가 군수한 뒤로 이렇게 어려운 민원은 처음 받아봅니더. 하하하. " " 이 민원은 반드시 해결해주고 가이소. 돼지 벌써 멱 땄다고 하니까 퍼뜩 굽고 삶으면 됩니다. 오래 안 붙잡을테니 드시고 가이소. 거쳐간 군수님 전부 피쩍대 해결을 해준다 해준다 해놓고 다들 못 하고 도망간거를 현 군수님이 오시가 이래 시원하게 해결 해주신다카니 저희가 드릴 거라곤 작은 정성뿐입니다. " 정말 돼지를 잡았는지 꽥, 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 군수님의 결정 덕에 지나가던 똥개도 수육 몇 점을 입에 물고 다닐 정도로 푸짐한 잔치가 열렸고 양복 입은 사람이든 농사꾼이든 죄다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얻어마셨다. 정작 아무리 둘러봐도 마을 이장이자 집을 회의장소로 내어주신 할아버지께서는 보이지 않으셨다. 잔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실 분께서 이런 잔치를 놓치신 건 의외였다. 막상 나는 그 야단법석 안에 섞여 중학생 주제에 고기며 술을 왕창 먹고 마신 뒤 치우는 건 다음으로 미룬 채 방에 들어와 헤롱헤롱 잠을 자는데, " 일어나봐라, 일어나가 요강 좀 비우고 오거라. 아까 사람들이 얼마나 싸질러놨는지 무거버가 할매는 들도 몬하긋다. " " 으에? 할매... 몇 신데요 지금... " " 할매 오줌보 터지긋다 빨리 좀 비우고 온나 퍼뜩. " " 아... 진짜... " " 이눔새끼 어데 할매할배 앞에서 짜증이고, 그럼 나이 많은 할매가 니 똥오줌까지 버리고 올까? 우는 소리 하지말고 댕겨온나! " " 예. 할아버지. " 어느새 들어와 주무시던 할아버지까지 계셨던지라 할머니께 어리광 섞인 투정도 못 부린 채 무거운 요강을 비우러 집 밖으로 나와야했다. " ... 으와, 뭐가 이렇노? " 풀약 맞을 날이 머지 않은 피쩍대들이 그 새벽을 틈타 사람 머리 위로 한참이나 솟아있어 도랑 가는 길을 못 찾게 만들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여 피쩍대 사이로 도랑이 보일까 씰룩거리고 있으려니, " 안녕? 마을 시끄럽던데 뭐 했나? 니 들고 있는 건 뭐고? " 갑작스레 피쩍대 사이에서 얼굴만 튀어나온 건 그때의 그 촐랑대는 소녀였다. " 왁! 뭐이고! " " 어? 요강이네? 니 똥 버리러 왔나? 아하하하! 남사스럽게. " " 비켜라. 누가 너랑 놀러 왔나. 이 시간에 튀어나와있노. " " 좀 놀면 어때서? 잠이 안 오는데 어쩌라고. " " 야. 니는 친하지도 않고 통성명도 안 한 머스마한테 막 놀자고 하는 거 보니까 완전 막나가는갑네. " " 막나가긴? 막나가는 건 내가 보니 그 요강 무게가 막 나가는구만. 아하하. 머스마 손이 벌벌 떨리네. 그리 무겁나. " " 동네 사람들이 집에서 아주 잔치를 해가 요강이 꽉 찬 걸 어떡하라고? 나와봐라 좀, 밤이니까 도랑에 그냥 버려야겠다. " " 잔치? 무슨 잔치? " " 니가 방금 헤치고 나온 이거 이거, 이 징글징글한 피쩍대를 풀약 치준다고 안 하나. 싹 없애준다니까 기분 좋아서 잔치 해야지. " " 뭐?! 풀약을 친다고?! " 꽥 소리를 지르는 통에 깜짝 놀라 요강을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길에 인분이 잔뜩 흘렀으니 누가 밟아도 밟게 생겼다. " 야! 장난하나! 니 때문에 다 조짓다!... 어? " 왜 저러지. 피쩍대에 풀약을 친다고 했을 뿐인데 달밤임에도 피쩍대만큼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안색을 눈치챌 수 있었다. " 피쩍대는... 풀약 치면 안 되는 거 모르나! " "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근데 그딴 거 다 미신이다. 문지방 밟고 서있는다고 복 나가드나. " " 그렇게 생겨먹은 땅이면 생긴 대로 놔둬야지, 뭐하러 없앤다고 쌩지랄 병을 떠는데? " " 쌩지랄병? 너희 어머니 아버지는 피쩍대 놔두라 카시더나? " " 뭐?! " " 너희 어머니 아버지는 피쩍대 치우지 말라고 하시냐고. 너희 집도 뱀골짝이라매. " " ... 몰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 " 와, 니 진짜 웃기네. 니 엄마 아빠랑 같이 안 사나. " " 응. " " 어? " " 어. 같이 안 산다. " " 왜.. 왜? " " 그냥 그런 줄 알아라! 니가 알 필요 있나? " " 아니, 뭐...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근데 마을 사람 입장에서 피쩍대가 거기 계속 자라면 작물도 못 심고 시뻘개가 보기도 안 좋은 건 맞다. " " ... 뭐가. " " 맞다이가. " " ... 몰라. " " 뭘 몰라. " " 진짜 모르겠어가지구 그러는데 어쩌라고... " " 어어어. 갑자기 질질 짜노. 왜 우는데. " " 야, 멍청아. 니가 뭘 아는데? 니도 밉고 다 밉다. 이 마을 사람 다 밉다. " " 어디 가는데! 야! 뱀골짝 그쪽 아니다! 야아!... 아~씨... 뭐 저딴게 다 있노. 요강 어짜지... 조짓네... 욕먹겠는데. " 소녀가 뱀골짝 대신 피쩍대 사이로 달려간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주위엔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널브러진 요강 사이로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왈가닥 소녀 걱정보다 할아버지께 안 들키기 위한 내 안위 걱정이 더 급했다. 4. 아침이 밝았다. 피쩍대는 더욱 자라 밑으로 그늘이 질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도 베지 않았다. 관공서에서 곧 직접 나와서 풀약을 칠테니까. 할머니께 듣기론 할아버지 혼자 새벽부터 이리저리 베고 다니시다 지치셨는지 아침께 그까짓 풀약 한 번 쳐보자며 돌아오셨다고 했다. 나는 간밤의 일이 신경 쓰여 뱀골짝 이웃 중 여학생이 사는 집이 있냐고 수소문해보았으나 대답이 돌아온 집은 전부 아는 이름이지 그녀로 짐작가는 여학생을 찾을 순 없었다. 허풍쟁이일게 뻔하다. 학교도 안 다녀, 집도 뱀골짝이라면서 안 살아, 엄마 아빠 이야기도 슬쩍 피하는 걸 보니 가출한 여학생이겠지. 피쩍대 그늘이 걷혔다 싶더니 어느새 학교 앞 게시판에 당도했다. [피쩍대 제초작업 실시 알림] 이라는 공문이 붙어있었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의 약을 살포할 예정이니 해당 날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들판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 고개를 돌려 지나온 피쩍대 숲을 슬쩍 바라보니 그새 더 우거져 있었다. 바람에 출렁대는 그 모습은 마치 핏빛 파도가 치는 듯 했다. 그 날의 하교길. 있다. 소녀가. " 야, 쟤다. 쟤. 혹시 너희 쟤 모르나? " " 누구. 누구말이고. " 나와 일행으로부터 멀긴 해도 분명 그녀가 서있다. " 저기 쟤. 저 교복 입고 딱 서있잖아, 저걸 못 보노. 느그 애꾸가. " " 애꾸는 니가 애꾸지. 니야말로 정신줄 놨나. 아무도 안 서있구만. " " 뭐라카노? " " 야, 공 찰 사람들 뱀골짝 쪽으로 가자. 도랑 지나서 누가 똥 싸놨다니까 조심해라. 무슨 요강 쏟은 거 같다던데. " " 사람 무시하네 이것들이, 가지말고 좀 봐봐! 쟤라니까? " 어어 하는 사이 일행은 피쩍대 그림자 사이로 들어가버리고, 나는 그때처럼 혼자가 되었다. 파사삭, 파사삭, 친구들이 피쩍대 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멀어진다. 심통이 났다. 날 바보 취급 받게 만든 그녀에게. " 야. 니. 명찰 달아라. 아니면 이름 나이 주소 불러봐. " " 목소리 깔기는... 누가 니 같은 거 무서울 줄 아나. 알아서 뭐하게? " " 이 동네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야지. 아무도 니 모르던데. 수상하다이가. " " 수상하다고? " " 간첩일수도 있잖아. " " 야! " " 아앗, 깜짝아. " " 이 새끼가, 뭐? 간첩? 무슨 간첩. 빨갱이? 내가 빨갱이라고? " " 왜,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데. 그냥 이름 말해주면 되는걸. " " 하... 빨갱이... 니 같은 놈들이 제일 싫다. 꺼지라. " " 어디 가냐고! 니 진짜 빨갱이가. 어? 왜 자꾸 도망만 다니냐고! 니 누구냐니까! " " ... 빨갱이라서 도망간다, 와? 니도 신고할래? 해라. 금마들이랑 똑같이 어디 해봐! 얘기 해볼까 하고 말 붙인 나도 병신 빨갱이년이지. 이런 꼬라지 될 줄 알면서... 이름? 궁금하나? 어차피 줄 그인 이름인데 알면 또 어때. 말숙이다. " " 뭐? 뭐라고? 왈숙이? 숙희? 야! 얘기 좀 하자! 빨갱이라고 한 거 사과할테니까! 얘기 좀 하자고! " 멀어진다. 또 그녀를 놓치고야 말았다. 넋이 나간 듯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소 풀을 주는 둥 마는 둥 하려니 할아버지께서 작대기로 어깨를 짝 때리셨다. " 이놈아, 정신을 어디 빼놓고 있노? 여물을 줄거면 제대로 줘라, 소가 먹고 싶어서 눈깔 돌아가는 거 안 보이나. 학교에서 뭐했노? " " 죄송합니더. 할배. 근데 있잖아예, 뱀골짝 산다카는데... 요즘 자꾸 어떤 가스나가 피쩍대 근처만 가면 마주치거든요. " " 허허~ 이 놈이 이실직고를 다 하네. 그래가? 뭐 연애편지라도 구상 중이가? " " 아뇨. 연애편지는 무슨. 물론 예쁘장하게는 생겼는데, 그런 감정이 아니고... 낯선데 말 섞다보니까 뭔가 남 같지가 않고요. 아무튼 뱀골짝 산다면서 집도 안 들어가고, 엄마 아빠 얘기도 안 하고, 이름은 들었는데... 뭐라더라... 왈숙인지 말숙인지... " " 누구? " " 할아버지도 모르실걸요. " " 방금 누구라캤노? 이름이 뭐라고? " " 말숙이? 아마도. " " 야임마! 니 지금 뭐라캐샀노! 말숙이가 무슨 뱀골짝에 있단 말이고! 니 돌았나! 으이! " " 예? 와예? " " 아이고. 이거 큰일이다. 이게 무슨 소리고... " 할아버지께서는 내 손을 꽉 쥐시더니 집 안으로 데려와 할머니께도 내가 말숙이를 만났다더라 얘기를 하셨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나를 메주 익히던 창고에 밀어넣으시곤 나오라고 할 때까지 숨어있으라시는게 아닌가. 나는 피쩍대에 얽힌 이야기도 십년을 질질 끌다 중학생이 되서야 말해주시던 두 분이 또 뭔가 숨기고 계시다는 생각에 그만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할아버지께서는 비죽비죽 아이처럼 울고 계시다가 나를 보곤 평소같이 호랑이 고함을 지르시기는 커녕 생쥐 마냥 밖으로 도망치셨다. 할머니는 씩씩대는 나를 달래시면서 '피쩍대 이야기를 해주시던 그때'처럼 천천히 입을 여셨다. " 니가 말한 말숙이라는 이름은 너한테는 고모 할머니, 그러니까 할배 동생 이름이 '말숙이'다. 그 이름을 할배가 잊고 산다고 잊고 산다고 하는데 오늘 니 입으로 그 이름을 들으니 저리 발작을 하는기라... " " 빨갱이들 때문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고모할머니 생각이 나서예? " "야야... 잘 듣거라. 사실 동네 사람들을 밀고했다는 빨갱이는 너희 증조 할배 되는 사람이다. " " 예? " " 너거 증조 할배가 대학 물 먹은 사람인데... 독립운동도 했지만 그 안에서 김일성 이런 사람들하고도 형님 동생했던기야. 그러니 그때 생각하고 북한에서 공산당이 치고 내려오니 협조한다고 위치를 불렀겠지, 근데 지가 책으로 배운 그런 공산당이가 어데. 마을 사람들 심문하고, 물자는 뺏어가고, 일제 30년간이 공산당 3달보다 나을 지경이었다 안 하나. " " ... 할매? " " 증조 할배는 그 바람에 차마 마을 사람들 얼굴 들고 볼 수가 없다고 뱀골짝 어데서 나무에 목 매달아 죽어뿟다. 그러고 얼마 안 가서 국군이 마을로 들어오니 공산당한테 교육 듣고 쌀 주고 했다고 마을사람들을 빨갱이 보듯이 보는데... 이적 행위니 뭐니 윽박을 질러삿코... 이적이 뭔지도 모르는 까막눈들이 대부분인데 다 죽게 생겨놓으니 사는게 사는기 아인기라. 특히 증조 할배 가족은 취급이 영락없이 빨갱이 취급을 안 받았겠나. 그게 증조 할매랑 너거 할배, 말숙이인기야... " " 할매. 지금 할매 눈물 콧물 흘러가 말이 제대로 안 되는 거 같은데 일단 좀 쉬세요. 예? " " 아이다. 괜찮다. 듣거라. 증조 할매는 새벽에 할배 혼자 들판 사이로 기어보내서 어디 멀리 보냈다. 따라가는 척 하다가 지는 돌아와가 말숙이한테는 유엔군이 데리러 온다고 속이고 할배 옷을 입혔다. 그래놓고 가만히 있다가 국군한테 끌려갔다카대. " " 할매. 됐으니까 좀 쉬세요. 내 나가서 할배 찾아오게. " " 누가 책임을 져도 져야 하는데 말숙이는 아무리 심문을 해도 가족들이 빨갱이 아니라캤다. 그걸 증조 할매는 못 이기고 증조 할배가 빨갱이고 김일성이랑 붙어먹었고 본인도 말숙이도 당의 지시대로 움직였다고 국군 쪽에서 씨불기는대로 자복을 해버렸다. " " ... 그러믄. " " 김일성 끄나풀들이 장악한 마을로 낙인을 찍어가 마을 사람은 거진 죽였다. 그러니 빨갱이 피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피다. 너거 증조할배가 빨갱이들한테 위치 불고, 증조할매가 멋대로 씨불기가 마을 사람들 빨갱이 만들어가 국군이 쏴죽인 피다. 그 피 마시고 들판 위에 피쩍대가 저리 자랐다. 알긋나. 이걸 보고 자란 내가 내 입으로 우째 내 손주한테 말해준단말이고... " " 할매. 할매. 정신 차리세요. " " 너거 할배가 전쟁 끝나고 돌아와보니 마을에 알던 사람이 거의 없더라안카나. 애비, 애미, 누이, 친지, 이웃, 친구, 죄다 빨갱이로 몰려서 대가리에 총알 빵꾸 나서 죽어간 마을에 혼자 돌아와서 그 피쩍대 베어가면서 한 명 한 명 굴러들어오는 사람들 정착 시켜가면서 여지껏 일궈놓은게 이 마을이야. 특히 뱀골짝은 더 그렇고. 그걸 네 입에서 말숙이 소리가 나오니 할아버지가 어찌 맨정신일 수 있겠노? " 절규하다시피 털어놓는 할머니를 부축한 채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아찔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소화하려 애썼다. 그러나 곧이어 할아버지를 챙기기 위해 나가려하자 내 앞에 정작 나타난 쪽은 '말숙이'였다. " 할배 찾지마라. 아가. " " 어...! " " 아, 아이고..! 시누...! " 내 이름조차 모르던 말숙이는 나를 '아가'라고 불렀으며 우리 집에 없는 쪽이 '할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같은 피로 지은 죄를 그래 쉽게 거두기 있나.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고. " " 시누! 용서해주이소. " 할머니가 바닥에 바짝 엎드려 절을 했지만 말숙이는 동요하지 않았다. " 왜 쟤가 나를 쳐다볼 수 있었는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지, 왜 낯설지가 않았는지... 알았다. 그 씹어서 핏물을 빨아마셔버리고 싶은 핏줄, 빨갱이 핏줄, 그 핏줄 속이 똑같으니까 그런기다. " " 고모할머니. 제가 할매 손주인 줄 이제 알았습니다. 할배를 그만 용서해주세요. " " 아가 네가 하라마라 할 일이 아니다. 피쩍대 베어도 자라듯 지은 죄는 씻어도 지지 않는다. " " 저희 할아버지십니더. " " 내 오라비다. 가족들, 마을사람들 새빨간 선지가 울컥울컥 쌓이고 그 아래 코를 쳐박고 신음할 적에, 자기는 혼자 살자고 꽁무니 쏙 내뺐다가, 그 피쩍대 한 가득한 땅에 돌아와 뻔뻔하게 농사 지으며 연명해온 인두겁 쓴 짐승 새끼다! " " 고모할매, 약속할게요, 이제 그런 일 없어요. 뱀골짝에 잔치하는 사람들 싸움 한 번 안 하고 잔치 끝나는 거 멀리서 보셨잖아요. " " 아가. 나는 죽어서는 약속을 안 믿는다. 있제. 나는 공산주의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며 마을사람들 불러와도 된다던 우리 아버지 약속에 한 번 속았고, 공산주의로부터 우리 해방시키러 왔다던 내 뼈와 살의 고향인 조국의 약속에 두 번 속았고, 순순히 협조해서 조금만 기다리면 오라버니가 유엔군 설득해서 국군 막으러 올 거라는 친어미의 약속에 세 번 속았다! " " 시누... 어떻게... 어떻게 여기 알고 오셨습니까, 아니, 왜, 왜... 이제 와서 이러십니꺼... " " 오라비가 피쩍대를 모른 척 베어버릴 때마다 새어나온 핏물로 밀물 썰물이 생길 지경이 되면 나는 언제부턴가 또렷한 정신이 들면서 붉은 들 어딘가 누워있었다. 알겠나.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동안에 혓바닥을 짓이기며 핏물로 새기던 복수의 맹세도 흐려지고 내 안에 그리움이라는 개새끼가 코를 벌름거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도 듣지도 못 하는데 나 혼자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다 어느 날 나랑 말이 통하는 놈을 만났다. 그게... 저 놈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왜 나랑 통했던건지! " 할매와 내가 금방이라도 떠나갈 듯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 와중에 다시 나타난 쪽은 할아버지였다. " 말숙이 이것아! 지나간 얘기는 나하고만 하면 되지 누구랑 지금 말을 섞노 섞기는! " " 이 개애애새끼!! " " 그래, 직이라! 어디 죽여봐! 나도 네 손에 혼백이 된 들 할 말 없다! 죽여봐라 어서! " " 내가... 니를... 곱게 죽이고 싶겠나? " " 하고싶은 대로 해봐! 죄 없는 저것들은 만다 불러가지고 헛짓거리고! 퍼뜩 안 보내나! " " 뭐... 죄 없는 것들을 뭐하러 불러...? 그럼 내는. 마을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길래 니 대신 피칠갑을 하고 죽어야했나? " " 그러니까 내 목숨도 거둬가라고 안 하나! 니처럼 억울한 경우 더 만들지 말란 말이다! " " 네 죗값이 네 육신이랑 똑같은 무게라고 생각하나. 그게 그리 갚아질 것 같나?... 으응? " " 시끄럽다 고마! 진작에 피쩍대 벨 적에 와서 직이던가 안 하고 지금껏 뜸들이다 인자 와서 지랄이고! " " 니가... 니 스스로도 보기 힘든지 꼬박꼬박 피쩍대 베더만? 그 덕에 내가 못 했을 뿐이다... 웬일로 피쩍대가 하늘을 가릴 듯 자랐더라. 그 그림자가 뱀골짝까지 닿길래 오늘에서야 겨우 왔다. 오냐. 네가 말하는 그 날이 오늘이라 온 것 뿐이니까 이러다 봐주겠지 하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그냥 제발 살려달라고 울면서 빌어라, 그래야 피쩍대가 눈물을 그친다...! " " 크아아악! " " 할아버지! " 5. " 어버버 " 할머니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간신히 눈을 떴다. 벌써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날이 몇 번째다. 그 날 눈 앞에 벌어졌던 참혹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또 그 날의 꿈을 꿨다. 식은 땀 흐르는 내 몸을 물수건으로 계속해서 닦으셨는지 할머니 당신께서 오히려 땀에 잔뜩 젖으셨다. " 우우 " 함께 그 자리에 계셨던 뒤로 할머니께서는 말을 아주 잃으셨다. " 괜찮아요. 일어났어요. 할매나 땀 좀 닦으세요. 수건 이리 주이소. " " 아바바. " " 아야...! " 손이 욱씬거린다. 그 날 이후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악몽으로 가득한 열병은 사흘간 나를 가둔 채 괴롭혔다. 정신을 겨우 차렸을 땐 이상하게도 손발톱이 다 빠지고 몸 곳곳에 피쩍대 마냥 갈라진 손 모양의 빨간 흉터가 생겨있었다. " 할매. 요강 비우고 올게요. " 집을 나오자 도랑이 흐르고 흘러 마을 아래까지 가는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도랑이 곳곳의 물길을 타고 흘러 온 들판에 나락 심을 논을 새로 일구려하고 있다. 군청에서 풀약을 마침내 뿌린 까닭일까. 피쩍대가 다시 나지 않는 건. 마을 사람들은 '피쩍대 그거 다 미신이었다', 라며 진작에 풀약을 쳐야했다고 수군거렸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지금 이 경치는 풀약의 효과가 아니라 피로 지은 죄를 피로 갚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텃밭 한 켠 구덩이에 요강을 비우고 뱀골짝으로 돌아가던 길, 아이들이 쌓아놓은 돌탑에 돌 하나를 더 얹는다. ' 다시는 이 땅 어디에도 피쩍대가 자라지 않게 해주세요. ' 그 씨앗은 내 몸에 선명히 남은 흉터가 되어, 내 몸 속을 돌고 도는 '그 핏줄'에 실려 이어지겠지만, '피쩍대'가 자라면 누군가 외롭게 눈을 뜨고 자라면 또 누군가 그 피쩍대를 베어버리며 계속되어 왔던 붉은 비극은 더 이상 없을게다. 선명한 아침이다. 피쩍대는 밤새 단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 출처 : by 환상괴담, 피쩍대(2021), 끝. / 공포문학의 연구 &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대한민국에서 사람 제일많이 죽인사람.jpg
◆ 박인근(부산) 부산 형제복지원사건 1987년 3월 22일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은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시신은 3백~5백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 검·경은 수사 한 달 만에 형제복지원 원장을 특수감금,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을 받는데 그쳤다. ------ 방송 중 내가 가장 기가 막히게 봤던 것은 뉴스타파가 박인근과 박인근 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내용이다. 뉴스타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묻자, 박인근 아들이 폭력을 행사하며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묻는다. “우리 아버지는 인권이 없냐” -------- 3줄 요약 1. 길거리에서 고아, 장애인 납치함 2. 감금해서 존나 패고 노동시키고 죽으면 해부실험용으로 돈 받고 팖 3. 530명 이상 죽이고 징역 2년 지금도 잘 살음 펨코펌 고아 장애인만 납치한거 아니고 멀쩡한 사람 부랑인으로 몰아서 납치함 ㅇㅇ 다른 죄로 처벌 안 받고 오직 횡령죄로만 2년6개월 선고 그 뒤로 또 복지원 차리고 심지어 학교도 차렸다가 16년인가 뇌출혈로 뒤짐 그리고 형제복지원은 부랑자들이 거리 미관 해친다며 따로 수용하라고 그당시에 법까지 만든 정부개입 사건임 꼬꼬무에서 보고 진짜 대가리 터지는 느낌이였음 ㅅㅂ
펌) 무당에게 신점 볼 때 조심해야 할 것
다음주부터는 완전 겨울날씨가 된다고 하네요.. 위드 코로나라고 밖에 놀러다니지 마시고 집에서.... 따뜻한 침대에서.... 빙글합시다.... 공포썰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결혼도 하신 분들이 점을 많이들 보실 거 같아 여기에 올립니다 저는 현재 무당이고요 최근에 올라온 글을 손님분들이 보시고 저에게 보여주시기도 하고 정말 맞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분들이 신년도 되었고 해서 신년운세 많이들 보실 거 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무당은 영가와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빌어주는 직업입니다 점을 봐주긴 하지만 점만 보는 게 무당이 아니라는 점 꼭 기억해주세요 ㅎㅎ 첫째로 점을 보러 가실 때 명심하셔야 할 게 있어요 무당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고 그랬었죠 그래서 딱 무당을 봤는데 무섭다 라는 느낌이 드신다면 그분께 절대 점을 보시지 않으며 합니다 어떠한 신령님이 계셔도 옳은 신령님은 온화하시고 너그러우신 분들이세요 뭔가 무섭다고 생각이 드는 건 신령님의 월력이 강하고 무당이 영험한 게 아니고요 허주라고 신이 아닌 신인 척 행세를 하는 영가나 조상신을 모시는 분들을 보면 일반인 분들은 그렇게 느끼십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 신당엔 영가도 많구요 그런 곳에서 점보고 오신 분들 영가 달고 오셔서 떼어드린 적도 많아요 ㅜㅜ 또 티비에 나오고 손님 많고 유명하다는 곳은 특히나 피하세요 종교령이라고 일컫는 영가가 있는데 일반 귀신도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을 받고 짬이 파면 어느 정도 힘이 생기고 힘을 쓰는 영가로 되어버려요 이런 종교령이 붙은 특징이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아요 그리고 그 사람 주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잘 되다가 폭삭 망하거나 건강이 악화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그런 상황이 옵니다 그리고 티비 출연하셨다는 무당분들 직접 본 적도 있는데 그런 영가가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있고요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두 번째로는 점을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는 보자마자 초를 켜야 한다 굿을 해야 한다 이러는 무당들이 계시다면 복채 돌려받으시고 나오세요 초를 켜드리는 건 과정이 더 나아지고 그를 통해 소원 성취하게 도와드리는 것인데 조상이나 어떠한 이유로 먼저 대고 말고 초를 켜고 굿을 하라고 한다면 100% 사기입니다. 집에 군웅(조상 가족 영가 분들 중 안 좋게 돌아가신 분들이 집안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초를 키고 굿을 한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무당은 함부로 굿을 하지 않았습니다 천도제 지낸다고 영가들 다 좋은 곳 가는 것도 아니고요 굿은 정말 해야 되는 상황이란 게 있어요 기우제라던가 전염병이 돌 때의 병굿이라던가 악한 귀신이 들려 퇴마 굿을 한다던가 또는 신내림 굿이 있죠 요새는 별의별 굿을 만들어내서 상술을 많이들 부리시는데 절대 하지 마셔요!!!!!!! 무슨 사업굿? 이라고 하나요 세상에 그런 굿이 어디 있나요 허허 세 번째 혹여 점을 보고 오셨는데 찜찜하다 하시는 분들 계실 거에요 이런 분들은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가셔서 기도 잠깐이라도 하고 오세요 (집에선 절대 금물X, 집에서 초키지 마세요, 집에서 향 피우지 마세요, 집에서 합장하고 기도하지 마세요 귀신 붙어요..) 무당들이 흔히 말하는 상술 중 하나가 귀신이 붙으면 집을 짓고 절대로 누가 떼어내기 전까지 몸에서 나가지 않는다 이러는데!!!!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가 자아가 또렷하고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면 영쪽으로 타지 않아요 귀신은 몸에 들어와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데 위에 말씀드린 거처럼 정말 스스로가 단단하신 분들은 귀신이 조정하질 못해요 그래서 영가가 붙은 분들은 어느 종료든 믿으시면서 본인 스스로를 강하게 하시면 되어요 네 번째는 신령님들은 점을 봐주실 때 가장 강조하시는 게 조심해야 할 것들을 강조하시는데 점을 보러 간 곳에서 일러주는 점사들을 다 기억하시긴 힘들 테니 항상 이건 조심해라 하시는 건 마음속에 새겨두셨으면 합니다 당장 닥칠 일이 아니더라도 평생에 걸쳐 나올 수 있는 부분이고요 그렇게 힘든 거 좋게나마 지나가게끔 도움 주시는 게 신령님이십니다. 이렇게 간단히 일러 드렸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추가로 영혼결혼식 이건 정말 알려드리고 싶은데 영혼결혼식이라는 건 절대 이행할 수도 없고요 말로만 내려오는 거지 실제로 영가를 불러서 결혼시키거나 산 사람을 불러서 결혼시키는 그런 건 할 수 없습니다 또 사주나 그런 걸 누가 안다고 해서 남용하거나 그러지 못해요 +추가 명절, 제사에 향 피우는 거 질문해주셨는데 그날에는 상관없습니다. 조상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느 영가들이 달라붙을까요 ㅎㅎ 그리고 상을 차리면 조상님만 와서 드시는 게 아니라 주변 객귀들도 와서 드세여 요새는 제사를 안 지내는 곳들이 많아서 명절만 되면 길가나 골목에 그냥 서 있는 영가들도 있더라구요 이렇게 객귀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가서 안 좋은 건 없어요 서로서로 나눠 먹고 또 그렇게 드시고 가신 객귀분들이 재수도 주시기도 합니다 또 캔들이나 아로마 향처럼 향의 색이 강할수록 영가가 꼬여요 그래서 향은 되도록 피우지 마시고 캔들은 워머를 쓰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출처 : 네이트판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gjdj
19세기 프랑스의 시체 관람
1886년 8월, 프랑스 파리 한적한 외곽에서 호화로운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시체가 발견됐다. 프랑스 신문사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호기심 가득한 파리 시민들은 소녀의 시체를 보기 위해 시체 안치소로 몰려 들었다. 무려 1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시에 시체 안치소로 몰려들면서 인근 교통이 전부 마비되었다. 자신이 먼저 보려고 주위 사람들을 밀치는 바람에 이곳에서 저곳에서 드잡이질이 벌어졌고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옷이 찢어지거나 기절하는 사람하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소녀 시체에 대한 관심은 이상할 정도로 고조된 편이지만, 사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시체 안치소에서 시체 관람을 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리 벽으로 만들어진 시체 관람소는 파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 명소였다. 시체 안치소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도배한 용도는, 신원 불명 시체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시체를 확인할 수 있게 돕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 그런 식으로 시체를 찾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었다. 관광 명소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왕창 몰려 들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대부분 한가지, 죽은 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기 위한 것이었다.  죽은 자의 사인이 극적이거나 수수께끼일수록 더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언론사들은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대서특필하며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틀 뒤 세느강 가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 시체가 발견되자 어떤 프랑스 일간지는 두 소녀를 엮어서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자매'라는 소설을 기사로 내보기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가고 소녀들의 시체를 보려는 구경꾼은 한층 더 늘었다. 1885년, 미국인 기자가 묘사한 파리 시체 안치소의 정경을 쓰자면,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치켜세운 신사들은 시체를 구경하며 히히덕거렸다. 노인들은 장터에서 물건을 흥정하듯 큰소리로 시체의 사연을 떠들었다. 창백한 안색의 귀부인이 동정어린 어투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었으나 시체 구경을 그만두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체가 옮겨질 때마다 양팔을 휘두르며 환성을 내질렀다. 오로지 시체 구경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자, 파리 시청은 시체 안치소의 관람 구역을 확장했다. 노점상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체 안치소 주위에 몰려들었다. 시체 안치소는 일주일 내내 아침 9시부터 새벽까지 개장했으며, 시체를 보기 위한 관광객은 더욱더 늘어났다. 어떤 시기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시체 안치소를 구경하려는 사람 숫자가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시체 안치소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면서 시체의 유류품 역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이에 따라 시체 안치소는 마치 백화점 쇼윈도 같은 형태로 재개장되었다. 초기에는 시체의 부패를 늦추기 위해 천장에 달린 수도 꼭지에서 차가운 물을 시체 위에 방울져 떨어지게 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1882년, 본격적인 냉장 시스템의 도입으로 시체 안치소의 시체들은 좀 더 오랫동안 구경거리가 되었다. 파리 경찰은 시체 관람을 범죄 수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1888년, 살인 용의자를 시체 안치소에 데려가서 희생자와 대면시키는 행위를 공식 절차에 추가 시켰다. 제 아무리 완고하게 무죄를 주장하던 용의자도 밝은 빛 아래에서 희생자의 유해를 마주하고 나면 금방 죄를 자백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시체 관람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점차 인기가 사그라들다 1940년대를 전후해서 완전히 금지되었다. 출처:한류열풍 사랑
인류가 태양을 없애버린 이유.jpg
엄청나게 발전된 근 미래 시대,  인간들은 너무 발전한 나머지 허영과 타락에 빠져듦 그들의 허영은 삶과 일조차 분리했기에 모든 고된 일들을 처리할 기계를 자신들의 모양을 본 따 만듦 온갖 고된 일들은 기계가 다 처리하며 인간 사회는 더 급 성장함 그러던 어느 날,  B1-66ER 이라는 기계가  처음으로 자신의 주인이었던 사람을 죽임 이유는 멸시와 학대, 고문 등으로 기계를 해쳤기 때문에 일어난 일 하지만 B1-66ER은 재판에서 정당방위라며 죽고 싶지 않다 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당한 재판 또한 없었음 인간들은 것도 모자라 같은 종을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함 기계 뿐만 아니라 몸의 일부를 기계로 바꾼 인조인간들,  순수 몇몇 자유옹호자들 모여 시위를 했지만.. 비폭력 시위대였던 몇백만의 무리를 모두 사살해버림 그리고 그 일은 인간들의 기계 압살 전쟁으로 이어짐 인간들에게 추방당해 살아남은 기계들은 새로운 땅인 '약속의 땅'에 정착해 스스로 인공지능을 만들고 종을 생산하며 이윽고 세월이 지나 '01'이라는 나라를 만듦 기계들의 나라 01에서 만든 모든 제품들이 인간 나라에서 만든 제품보다 뛰어나자 점차 인간들은 생활 전면의 모든 제품을  01 나라 것에 의존하게 됨 그러자 01 국가의 신뢰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반대로 인간 사회는 돈, 신뢰도, 발전도 역시 추락하게 되는 일이 벌어짐 그러자 인간들은 01 국가를 견제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나라끼리 모여 협약을 맺고 01국가의 모든 제품들의 배제하려고 함 그런 UN에 01 특사들이 나타나  사과와 인간들의 정복인 정장을 갖춰입고 서로 이해가 되는 교류를 정하길 원한다고 요청했지만 인간들은 그 모습에서 오히려 모멸감을 느꼈고 과거 기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기억을 가진 인간들은 01국가에 선공격을 날리게 됨 하지만 예전의 기계들이 아니었고, 기계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에 대항해 반격에 나섬 결국 기계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됨 절박해진 인간들은 기계의 에너지원인 태양열을 차단하면 기계들을 이길 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태양을 없애버리기로 함 태양을 볼 수 없도록 하늘에 검은 물질을 뿌려버리는 것 인류는 '검은 물질은 우리가 뿌린 물질이니  이기고 나서 다시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님?'이라 생각했음 그렇게 전쟁에서 이기고자 인간들은 스스로 하늘을 덮어버리게 된다 인간에게는 자비를 기계에게는 죗값을 치루길 바라며.. 이 작전은 실제로 초반에 효과가 있어서 인간들은 에너지원이 떨어진 기계들을 처리해 나가며 다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거라 가능성을 봄 하지만 그들이 너무나 간과할 것이 있었으니 기계들은 스스로 국가를 건설하고 성장하면서 인간의 몸을 연구해왔음 바로 인간의 몸은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 인간의 몸은 안에서 계속해서 생체전기와  열,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생물체였음 그리고 인간의 저런 요소가 기계들의 충분한 대체 에너지원이 되어 너무나 잘 돌아가게 한다는 사실 결국 전쟁은 기계들의 승리로 끝났고, 기계들은 정복자가 되었음 인류가 스스로 하늘을 박살냈기 때문에 그나마 살아 남은 생존자들 역시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림 이제 인간과 기계는 새로운 공생관계가 수립됨 살아남은 인간들에게 기계들은 한 가지 제안을 함 그것은 육신을 바치면, 인간들은 그 사실조차 까먹는 신세계를 선사하겠다는 것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행복한 가정 ......을 꿈꾸고 있는 자원 에너지 소스가 되어버린 인간 ...인간들 ...인류 그렇게 인류는 자신들이 기계 에너지원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꿈 같은 현실 세계를 '꿈 꾸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음 후에 네오라고 불릴 사람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Matrix> 1999년作 출처ㅣ더쿠
너무 그럴듯해서 더 무서운 미국 공항 음모론.jpg
혹시 덴버공항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미국의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덴버의 국제공항입니다. 이 아름다운 덴버공항 곳곳에 있는 조형물 등이 뭔가 음산하면서의 미스테리함이 사람들의 이목과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덴버공항에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먼저 이 사진을 보면 푸른색의 야생마가 있는데, 공항 출입로에 이 동상이 세워져있다고 합니다. 뭔가 섬뜩하고 기괴해 보이죠. 심지어 밤에는 이 눈이 붉게 빛납니다. 밤에 비행기를 타고 착륙하는 승객들은 이동상을 보고 살기까지 느껴진다고 한데요; 동상은 1992년 루이스 히메네스(Luis jimenez)라는 건축가에 의해 무려 16년간 제작이 되었고, 높이는 약 10미터, 무게는 4톤에 육박한다네요. 제작자는 2006년 5월에 크레인으로 옮기던 조각상이 다리에 떨어져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유가족들이 이 동상의 나머지 작업을 완료했기에 비로소 이 푸른 말을 덴버공항에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동상의 모습과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푸른 말 철거를 원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람들이 이 동상을 꺼리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계 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성경에서도 보다시피 청황색 말은 죽음을 의미하다고 해서 덴버 지역 주민들은 아주 불경하다, 이상하다 하는데 제작자인 히메네스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에 거센 저항은 하지못한다고도 하네요. 이외에도 아누비스 상이 있어요. 아누비스가 죽음의 신이잖아요. 이건 뭐 안전하게 착륙하고 이륙해야 하는 공항에 죽음의 신 동상을 세워논건 무슨 조합이죠. 하지만 다른 건물들과 지하철등 많은 시설들이 점점 들어서게 되면서 현재는 이 아누비스상은 철거되었어요. 이것은 가고일 동상인데 가고일은 형상은 갖가지이지만 대개는 인간과 새를 합성해놓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부리와 날개가 있는 움직이지 않는 석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원래 이 가고일은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에서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제작이 된 것으로 알려져서 교회를 수호하는... 요괴? 정도로 아시면 될텐데 구태여 이 동상이 왜 덴버 공항에 있는 걸까요. 악마라도 존재하는 걸까? 다음 보여드리는 사진 부터는 덴버공항에 그려져있는 벽화입니다. 우선 그림을 살펴 보면 아래 세분의 여성이 관에 누워있는 것 같아요. 또, 동물들이 많이 지치거나 죽어있는 것 같고 어떤 유리상자로 갇혀있어요. 배경은 뒤에 나무들이 불타고 있네요? 하나하나 보면 먼저 그림의 중심에는 표범이 죽어있습니다. 사자도 호랑이가 아닌 표범은 흰 바탕에 검은 점을 가졌으므로 백인 나라의 혼혈이라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왕은 왕이나 진짜 왕이 아닌 대리 권력 수준의 왕 또는 지도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벽화 상단 우측에 있는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새의 이름은 '케찰(QUETZAL)'이구요. 이 새는 과테말라의 국조이며 '왕의 임재',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왕권이 갇혀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됩니다. 아래 그림을 확대시키면 왼쪽은 아프리카여인 중간은 인디언 여인 오른쪽은 유태인 어린이로 보는데, 여기서 인디언 여인은 인형을 품에 안고 있어요. 근데 그인형을 자세히 보면 방독면을 쓰고 있네요. 게다가 프리메이슨 상징인 컴퍼스 모양의 목걸이도 목에 걸고, 손에는 종도 쥐고 있어요. '종'은 대부분 아시는 것처럼 '때를 알리는' 도구이죠. 종말, 죽음의 시기를 알린다고 해석이 돼요. 거북이는 그물에 걸려 괴로워하고 고래는 피를 흘립니다. 유리 박스 안에 있는 것은 멸종된 동물들입니다. 신세계를 맞은 아이들이랍니다. 방독면을 쓴 남자 한 손엔 총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데 밑으로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칼로 찌르고 있네요. 뭔 가 독가스로 대량학살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옆쪽까지 이어진 뉴에이지 사상을 상징하는 무지개 그림이 그려져있어요. 여기서 뉴에이지란 전 세계 종교를 통합하고 세계를 통합한 정부를 수립하여 새로운 세계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이들의 일종의 단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도 편지 같은 게 보이시죠? 사진을 확대시키면 "나는 옛날에 한 어린아이였다. 다른 세상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나는 공포를 알았기 때문에 증오하는 것을 배웠다 얼마나 처참한지, 그때, 적들과 함께, 교수대의 로프들과 함께 사는 나의 젊은 시절. 아직, 난 여전히 믿는다. 난 단지 오늘 잠을 자고 있다는걸. 난 부활할 것이다. 한 아이로 다시, 그리고 웃고 즐기기 위해 시작할 것이다." - 아누스 해치 버그 14세에 1943년 12월 18일에 아우슈비츠 에서. 라고 아우슈비츠에서 감금되었던 한 소년의 편지가 쓰여있어요. 결국에는 저 그림은 나치의 만행을 의미하는 그림이 아닐까요. 이 그림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교체가 되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세 번째 벽화입니다. 신성한 기운의 무지개가 아이들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고, 센터의 남자아이가 들고 있는 망치로 칼을 부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네요. 그리고 각 나라의 국기로 무기를 봉인시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모습 같아요. (왼쪽 중간에 한복 입은 우리나라 아이들도 보이네요!) 뭔가 기분이 조금 나쁘고 공항이랑은 안 어울리는 이미지들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벽화들이 공항 내부 터미널에 그려져있어요. 화가는 단순히 사람들의 탐욕, 폭력 등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경고를 하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많은 음모론이 있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터미널 바닥에 석판이 세워져있는데 신세계 공항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프리메이슨의 심벌마크가 새겨져있어요. 또 석판 밑에는 타임캡슐이 있어 100년 후인 2094년에 열어서 메시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네요. 또 하늘에서 바라본 덴버공항의 모습이 마치 나치의 심벌마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기괴한 이유 덕에 덴버공항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이 신세계 질서라는 음모론의 본거지라고 추측하기 시작하죠. 신세계 질서 즉 지구상 각 나라의 엘리트들이 각 나라의 정부를 타도하고 국가의 장벽을 부셔 하나의 정부로 통합하자는 개소리입니다. 그들은 인구 감축을 목표로 하고 적은 군사와 산업 기술의 제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썰은 공항 건설 초기에 극비리로 지진 규모 8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 지하 도시가 있어서 이후 신세계 질서 사람들의 본거지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는 일루미나티의 본부가 있다는 썰도 있어요. 왜 예전에 아무런 소식도 없이 오바마 대통령이 갑자기 이 덴버공항으로 왔었던 적도 있다고 하네요. 피신인가? 출처 미국 음모론중에는 사실인게 많다던데,... 소름
펌) 산제물
벌써 2월이라니 가끔은 세상이 날 속이고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신지요.. 새해에 다짐한 것들은 잘 지키고 계시나요? 저는 목표 중 하나는 2023년도 꾸준히 괴담을 퍼오는 것입니다 핳핳 댓글로 저에게 힘을 주십쇼 여러분~~~! “우리 집안의 식구로서, 네 책임을 다할 준비가 되었느냐.” 아버지의 말에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절름발이 병신이라며 이름 한번 다정히 불러준적 없던 아버지건만 이제와서 자식된 도리, 집안의 도리를 찾으니 그럼요 아버지 소리가 간단히 나올리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표정은 내 대답을 독촉했다. “예.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대답이 내 목을 졸라 죽일 것이란걸 모르진 않았으나 나에겐 거절할 용기도 그럴만한 자격도 없었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우리 집안은 힘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 가여운 마을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가겠지. 무슨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 가문이 대대로 지켜오던 이 고을을 위해 네가 필요하다.” ‘자식놈 제물로 바치겠다는 말을 참 쉽게도 하십니다!’ 마음 같아선 그리 역정이라도 내보고 싶었으나, 속절없이 목구멍 속으로만 되새길 뿐 밖으로 내보내지는 못했다. 제물이라니. 마을을 살리기 위해 괴물에게 바쳐지라니. 죽는것도 서러운데 이리 기괴하고 허망하게 가다니 기가차서 화도 안날 지경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죽으라 하시는 것은 몇 달째 계속된 기근 때문이었다. 땅이 힘을 잃었는지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짐승들은 갈수록 말라가 마을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기근을 해결하겠다 나서셨다. 할아버지 대에서 돈으로 사온 양반 이름 덕에 손바닥만한 고을 하나 덜렁 던져진 주제에 무슨 책임감에 정의감이 있으신 것인지 가진 재산 다 풀어가며 백방으로 손을 쓰더니만 어디선가 찾아온 기이한 장사치의 꾀임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구름 한점 없는 날이건만 도롱이 같은 거적떼기를 걸치고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찾아온 그는 담담한 어투로 산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뒷산에 괴물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앉아 기운을 빨아먹고 있습니다. 이 일대의 기운을 다 먹고 나면 이제 마을을 덮쳐 오겠지요. 그걸 막으려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어디서 굴러먹던 사기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에 씌였는지 아버님은 그 터무니없는 말을 굳게 믿으셨다. 그럼 이제 제물될 자를 골라야 하는데 자리가 있으니 엄한 마을사람 끌고 오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생때같은 친족들을 사지로 내 모는건 어림없으니 만만한 것이 눈엣가시 같던 나였을 것이다. 다리 병신인 나 대신 후계자로 배다른 동생놈을 점찍어 둔지 오래였고, 그걸 위해서는 거슬리는 내가 없어져 마땅했다. “내 그간 무심하기도 했으니 너만 마음이 선다면 네 어미를 극진히 보살피마.” 여우 같은 노친네 같으니... 본처임에도 제대로된 사내조차 낳지 못한다며 첩에게 자리를 빼았기고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어머님. 어머님만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으면 죽었지 있지도 않은 괴물에게 바쳐질 제물이 되겠다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괴물이 제물을 받고 만족하여 떠난다면 보름도 되지 않아 땅의 기운을 되찾을 것입니다.” 도롱이 놈은 내 속도 모르는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연신 내 신경을 거슬렸다. 그 덕에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린 아버지가 더욱더 미워 보였다. 막상 죽으려 하니 도저히 내키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겉으론 숭고한 사람인 척. 당당한 척 연기를 하며 도롱이의 통솔하에 죽으러 가는 길의 첫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뒤로 식솔들과 마을 사람들이 따라주었다. 마침내 모두의 위로 섞인, 안타까움이 섞인 배웅 끝에 마을을 벗어나 뒷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당당히 떠나리란 다짐이 무색하도록 지팡이를 짚고 채 세 걸음을 걷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나를 붙잡아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미련 때문이었다. 그저 멀리 공부하러 가는 줄로만 아는 어머니는 역시나 나와 계시지 않았다. 혹여나 눈치채고 일을 망칠까 싶어 가족들이 못나오게 한게 분명했다. 익숙한 얼굴들은 많이 보였음에도 누구하나 날 잡아 세우는 이가 없었다. 늘 상 내게 차가웠던 아버님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간 병신같은 내게 잘해주던 가족들. 싫은 내색 없이 수발을 들어주던 하인들. 그리고 늘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주던 마을 사람들 까지. “대의를 위해 용기를 내준 내 아들을 힘들게 붙잡아 두면 안되오. 다들 돌아갑시다.” 아버님은 그리 말하며 그대로 돌아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를 살피던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슬슬 아버님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 순간 보이는 광경이 내게 등을 돌린 채 멀리 사라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라니. 찬양받아 마땅하건만 다들 날 떠나가다니. 서러움에 속이 뒤틀려왔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모든건 어머님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문을 위해서다. 산길은 절름발이가 걷기에는 너무 길고 험했으나 죽으러 가는 길로는 너무도 짧았다. 도롱이가 일꾼들 너댓명이 끌고 온 곳은 돌탑이 쌓여있는 공터였다. 일꾼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돌탑 앞에 멍석을 깔고 날 거기에 앉혔다. 착잡하게 꿇어앉은 내 앞에 하얀 사발 하나가 놓여졌다. “한번에 쭉 들이키시게. 머리가 맑아지고 몸에 기운이 돌 것이니.” 도롱이의 말에 사발을 내려다 보았다. 시커멓게 일렁이는 모습이 아무래도 사약 같았으나 죽으러 왔으니 그리 놀라울 건 없었다. 오히려 제물이랍시고 칼에 베여 피칠갑이 되거나 몇 날 며칠 굶다가 아사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속으로 어머니를 목놓아 불러본 뒤, 주저 없이 사발을 들어 올려 한번에 들이켰다. 쌉싸름한 약제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자 불길 같은 것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높은 곳을 떠다니는 듯 몽롱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 그리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늘을 마지막으로 온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죽었나 싶었더니만 온몸이 쑤시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팔다리가 다 저리는 통에 신음을 뱉어내며 눈을 떴다. 이미 날은 어두웠고 도롱이도, 일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돌탑 앞에 홀로 쓰러져있을 뿐. 돌팔이 장사치가 만든 약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두고 먼저 가는 것이 내심 마뜩찮아 돌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난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리도 당혹스러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대로 도망쳐 버릴까 하는 생각이 안드는건 아니었지만 아무런 도움 없이 절뚝이는 다리로 산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꼼짝않고 누워서 죽음을 기다려야 할까? 새삼 비참한 기분이 들어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짐승 소리, 바람 소리, 스산하게 우는 밤새소리에 스멀스멀 겁이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얌전히 죽으면 좋았을걸 이리도 추잡하게 살아남다니. 무서움을 떨쳐내려 몸을 웅크리고는 머릿속으로 온갖 잡념을 떠올렸다. 좋았던 것만 떠올려보자. 마음이 화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이라곤 내게서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래. 어서 가서 죽어라. 절름발이 병신이니 그렇게라도 써먹어야지.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사니 기쁘게 죽어라.’ 그들의 등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러움이 사무쳐 들어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 못해 이를 악물고 눈을 떴다. 이대로는 죽을 수는 없다.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이들과 떠나는 대신 내게 달려와 가지 말라 붙잡아 줄게 분명한 어머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검고 뜨거운 것이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릿한 팔다리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기 쓰러져 비참하게 죽느니 이를 악물고 돌아가리라. 다시 제물로 바쳐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의 얼굴만은 보고 가리라.’ 비틀거리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걷는건 문제가 없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힘이 붙어가고 있었다. 걸을 수 있다. 돌아갈 수 있다. 오늘 처음으로 느껴보는 희망이었다. 난 후들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점차 속도를 더했다. 늘상 절뚝거리는 다리도 오늘만큼은 놀라우리 만치 가벼웠다. 오히려 움직일 때마다 몸에 기운이 들어오는 듯 신명나게 발을 놀릴 수 있었다. 올때는 비틀거리며 죽어라 오른 산길이건만 지금에 와서는 비호처럼 뛰어내려 갔다.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마을로 내려오는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제일 먼저 어머님을 뵐 것이다. 멀쩡해진 이 두 다리로 어머님을 업어드리고 곧바로 아버님을 찾아가 당당히 정신을 차리셔야 한다 말할 것이야. 괴물 따위는 없으니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라 말씀드리겠다.’ 마음속이 자신감과 용기로 가득했다. 그간 터무니 없음에도 거절도 못하고 죽으러 온 어제의 내가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너무 기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경으로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마을로 들어선 그 순간, “괴물이다!!!” 어디선가 들려온 고함소리와 함께 낫과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날 에워쌌다. 그 중심에는 아버님이 있었다. “네놈이 땅의 기운을 전부 빼먹던 괴물 놈이구나. 그래. 제물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게야.” 괴물이란 말에 혼란스러워 하며 내 몸을 내려다 보았다. 기괴하게 뒤틀리고 검게 변색된 다리. 통나무처럼 두텁고 단단한 몸. 다급히 내려다본 손 역시 꼭 숯을 뒤집어 쓴 것 마냥 새카맣게 변해 있었고 돌로 마구 으깨놓은 것 마냥 뒤틀려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 장사치의 약은 이를 위한 약인 듯 했다. “심장을 도려내는 기분으로 내 피붙이까지 바쳤건만 끝내 욕심을 부려 우리 마을사람들 마저 해하려 하니 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내 기필코 네놈을 도륙내어 아들의 원수를 갚고 이 땅의 기운을 돌려놓겠다.” 아버님은 기합을 내지르며 내게 창을 내질렀다. 다른 이들 역시 저마다 소리를 쳐대며 내게 날붙이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아버지! 접니다. 전 괴물이 아닙니다. 살려주십시오.’ 목이 터져라 소리쳐 봤지만 나오는 소리라고는 그릉 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뿐이었다. 살기 위해 휘두른 팔에 몇몇 장정들이 쓰러졌지만, 그 때문에 흥분한 이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어 졌다. 낫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칼에 베이길 수 차례. 수십의 성난 장정들을 나 따위가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버님이 내지른 창에 가슴이 꿰뚫린 채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모두 물러나라. 내가 직접 끝장내겠다.” 사람들을 물린 아버님은 칼을 빼 들고 내 목을 겨누었다. 칼을 높이 들어 올린 아버지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역시 마을을 위한 일이다. 용서하거라.” 힘겹게 고개를 돌려 아버님을 올려다 보았다. 편치 않은 표정의 아버님을 보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버님은 장사치에게 속은게 아니다. 그저 미리 입을 맞추었을 뿐. 기근은 막을 방법이 없으니 면피를 위해,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은 과격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기운을 주려 한 것이다. 그에 따라 희생이 필요하니 가장 쓸모없는 것을 버린다. 아버지답게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날 향해 칼을 내리쳤다. 출처 : 웃긴대학, neptunuse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WindyBlue @lucy1116 @greentea6905 @lkb606403 @jiwonjeong123 @hyun81082988 @oldamn @kimsang87 @bagopa @pshyeon0411 공포 소설, 괴담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남겨주십쇼 괴담 업로드 시 아이디를 태그해드립니다. 오늘도 즐감하셨다면 댓글 하나 부탁드립니다 ^^
조선은 어떻게 500년이나 갔을까? (길지만 재밌는 글)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에 일부분인데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대략 우리가 좀 비루하게 인식하기도 하는 조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하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 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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