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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의 어느 백수가 쓴 글

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
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12월 19일 미명, 동경서)
이상 - 권태


하루종일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 돌고 먹고 놀고 백수 생활하다가 밤이 되니 현타가 와서 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내일 아침이 오는 걸 두려워하는 글

을 쓴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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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아빠랑 통화하고서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다. 우리 아빠는 고등학교를 중퇴하셨다. 집안형편이 도저히 안돼서 자퇴하시고 돈을 벌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학력이랑 별개로 성품은 좋으셔서 집은 가난했지만 나도 삐뚤어지지 않고 자랐다.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학교에 큐브를 가져왔다. 정육면체 색깔 맞추는 그 큐브 다들 알지? 그런 장난감을 처음 본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빌려달라하고 호기심에 맞춰보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못맞추겠다면서 나보고 그냥 가지라고 줬다. 그 친구 생각엔 또래들 중에서 조금 똑똑했던 내가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나도 잘 못맞추겠더라. 한면 정도 맞춘 다음 잘 모르겠다하고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갔는데 우리집엔 아직 컴퓨터가 없어서 집에 있으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난 나가서 노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집에 몇권 있는 책이나 읽으면서 만화 할 때까지 시간을 떼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지고 온 큐브가 생각나서 다시 만지작거렸다. 근데 그 때 집에 아빠도 있었거든? 낮이었지만 그 날은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쉬고 계셨는데 내가 큐브를 가지고 노는걸 보더니 나한테 오셨다. 그러더니 "이거 어디서 난거니?"하고 물어보셨지. 아빠 생각엔 사준 적도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까 내가 혹시 훔치기라도 했나 걱정되셨었나본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니까 "그렇구나"하셨다. 그러면서 아빠도 호기심이 동하셨는지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어보셨다. 난 설명해줬지 이리저리 돌릴 수 있는데 모든 면이 각각 같은 색깔로 맞춰지면 된다... 설명하면서 나는 계속 맞춰보는데 역시 잘 안됐고, 아빠는 그걸 계속 옆에서 구경하고 계셨어.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 "아빠가 해봐도 될까?"라고 큐브가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봤자 못맞출 것 같아서 그러세요하고 드렸다. 그리고 아빠가 이리저리 슥슥 돌리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맞춰지더라. 너무 신기해서 다 맞춘 큐브를 다시 섞은 다음 또 드렸는데 계속 잘맞추시는거야. 근데 그때는 그냥 너무 어려서 그냥 감탄만 하고 끝났다. 내가 운 일은 한참 뒤였다. 난 보드게임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 체스를 잘했다. 본격적으로 파고들면서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똑똑한 애들만 온다는 고등학교랑 대학교를 거치면서 나보다 체스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어. 전역 후엔 흥미가 떨어져서 안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엔 자신이 있었다. 내가 27살 때, 집에서 독립을 하려고 내 방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구석에 있던 물건들 꺼내면서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분류하는데 마지막으로 체스판이 하나 나오더라. 어차피 잘 두지도 않는데 버릴까하다가 아까워서 가져가기로 했다. 정리를 다하고 내 방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아빠가 오시더니 정리 다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응 방금 다했어"하고 대답했다. 그 날은 아빠가 좋아하는 야구 경기도 없어서 심심하신 눈치셨다. 아빠는 내가 정리한 물건들을 살펴보시다가 체스판을 보고 꺼내시면서 "이거 체스 아빠 알려주면 안돼?" 하셨다. 난 별로 심심한건 아니었지만 아빠가 심심해보이셔서 알겠다고 했다. 장기를 알고계셔서 룩은 차랑 같다. 나이트는 마랑 비슷한데 약간 다르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체스를 몇판 뒀는데 당연히 내가 이겼다. 아빠는 지셨지만 재밌었는지 더 연습할테니 또 두자고 하셨다. 대충 두 달 정도 뒤에 부모님이 내가 혼자 사는게 궁금하셔서 자취방에 오셨다. 그날은 야구장 가서 같이 야구를 보고, 저녁도 사드렸는데 부모님이 하루 자고가면 안되냐고 하셔서 집에 같이 왔다. 자기 전에 내 방에 있는 작은 tv로 드라마를 보는데 아빠는 재미가 없으셨는지 갑자기 체스를 두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체스판을 가져와서 뒀는데 정말 쪽도 못쓰고 졌다. 이젠 나보다 압도적으로 잘하시더라. 어디서 그렇게 연습했냐고 물어보니까 스마트폰 어플로 연습했다고 말씀하셨다. 계속 둘수록 실력차가 너무 현격해서 도저히 못두겠더라고. 그래서 세판 두고 "아 못이겨~"하고 기권했다. 그걸 보고 아빠가 "아빠 잘두니?"하고 물어보는데, 그 때 진짜 뜬금없이 눈물이 나더라. 어릴 때 큐브 맞추시던 일도 생각나면서, 진짜 똑똑하신 분이고, 누구보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으셨을텐데... 집안이 어려워서 어릴 때부터 막노동하시고, 나 낳은 뒤엔 내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그런거 하나하나 다 생각나니까 아빠가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기도하고.. 도저히 눈물이 안멈추더라. 엄마랑 아빠 두 분 다 내가 우는 이유를 아셨는 지 엄마는 "이제부터 너가 효도하면 돼~"하시고 아빠는 그냥 허허 웃으셨지.. 그냥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다. 출처
대통령이 우리반 참관수업에 왔는데 중간부터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플로리다주 새러소타 엠마 E. 부커 초등학교는 새러소타에서 제일 최하위 학교였음 학생들 대다수가 가정사정이 좋지 않아서  학생들 다수가 입학당시 글을 읽을줄 모르는 상태였음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읽기 수업을 추진 학생들 대부분이 글 읽는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됨 그리고 때마침 정부에서 읽기관련 정책을 밀려고 읽기 관련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학교를 찾게 됨 교장선생님은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라 저희학교!!!!!!오세요!!!!외침 백악관에서 엠마 E. 부커 초등학교를 선택하자 교사들도 믿지 못함 그렇게 대통령이 수업에 참관하게 됨 수업은 화기애애하게 시작함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귓속말을 하고  대통령은 당황하기 시작함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공격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때 앞에 앉아있던 16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2020 다큐멘터리  9/11 키드 (9/11 Kids)  ㅊㅊ 더쿠 모야 ㅈㄴ 흥미진진 부시 저 표정 짤로 유명했잖아 근데 다큐 한 장면이였군 저때 7분 공백인가로 평생 대통령 자질 의심받았잖아 박근혜는 7시간 이거 보고싶은데 넷플에도 왓챠에도 없네 아쉽.... 대신 넷플에 터닝포인트라는 다큐 많이 추천들 하더라 흥미있으면 감상 ㄱㄱ
아이를 16년동안 시골에 버려둔 부모.pann
아이를 16년 동안 시골에 맡겼는데요.. 첫째는 21살이고 둘째는 현재 16살인데요. 둘째 같은 경우는 100일 때 시골로 보내가지고 지금까지 거기서 살고 있어요 제가 일을 하고 싶은데 따로 맡길 곳이 없어서 100일 때 시골에 보냈고 첫째는 유치원 다니고 있고 혼자 집에 잘 있어서 첫째는 저희가 키웠고요 둘째는 대신 일주일이나 두 주일에 한 번씩 시골에 내려가서 애 보고 오고 그래요 원래 8살에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애기가 유치원 때만 해도 집에 가고 싶다고 따라가고 싶다고 울고 그랬는데 나이 먹으니까 안 그래서.. 그냥 더 뒀어요 잘 지내는 거 같고 굳이 데려올 필요를 못 느껴서요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중1 되면 데려올까? 하고 남편이랑 얘기하다가 어떻게 얼버무려져서 지금까지 시골에서 살고 있거든요 근데 이제 곧 고등학생이고 정말 데려와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이미 거기서 오래 살았는데 대학생까지는 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거기서 농어촌전형으로 대학도 더 잘 갈 수 있고 그런데 주위에선 그게 니 자식이 맞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길래 일주일마다 내려가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걸로 끝이냐는 둥 말을 굉장히 비꼬는 거예요 애도 거기서 잘 지내고 있고 매주 내려가서 별문제도 없는 데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다니게 하는 건 좀 그럴까요? 주위에서 꼭 저희 부부를 정 없는 사람처럼 보길래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있는 김에 농어촌전형까지 받아서 인서울하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시골 학교 애들이 공부도 좀 못하고 그러니깐요. 저희 막내가 전교 2-3등 하고 있거든요 데려오는 게 맞는 건가요?? 진지해요 아이가 시골에서 산다고 상처받고 그러진 않아서요 + 아이 16년 동안 시골에 맡겼다는 엄만데요 아이를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니가 부모냐 등등.. 정말 수도 없는 악플을 보고 너무 놀라서 손이 떨렸습니다. 일주일 이 주일마다 아이를 보러 내려갔고 시골에 사는 애가 심심할까 봐 장난감도 사주고 시골집에 컴퓨터도 사주고 그랬어요. 아이를 맡긴 이유는 제가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맡긴 게 좀 길어졌어요. 아이를 데려올까 하다가도 이미 오래 시골에서 산 애가 갑자기 도시로 오면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더 맡긴 게 16년이 지난 거고요 첫째는 당시 6살이였는데. 유치원을 한창 다니고 있었고 워낙 조용하고 참한 아이라 그런지 집에 혼자 잘 있었고요 당시에 아파트에 친구들이 많아서 재밌게 놀다가 제가 일이 6시나 7시 정도에 끝났는데 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만나기도 했고 정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어요 둘째도 16년 정도 시골에서 자란 것 뿐이지 시골에서 자란 거에 상처도 안 받았고 저에게 불평 한마디 한 적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땐 집에 가겠다고 울었지만 둘째까지 감당하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초등학생이 되곤 그런 것도 없었고요 이왕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산 이상 농어촌전형 받아서 좋은 학교 쉽게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해서 여러 가지 조언을 받기 위해 글 쓴 건데 수많은 악플들이 달릴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ㅊㅊ 인티 모야 눈을 의심하게 되네 둘째에게 부모는 시골에서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