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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1000미터의 아름다운 수도교가 인상적인, 스페인 세고비야

세고비아는 스페인 카스티야레온 지방 세고비아 주의 주도이다.
면적은 163.59 km²이며, 평균고도는 1,000m이다. 인구는 5만명 가량이다.

마드리드 북서쪽 60 km 지점에 있는 과달라마 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있다.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였으며 기원전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하였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이루어진다.
도시 곳곳에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와 성채 알카사르,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고비아 주에 있는 역사유적.
로마 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출처 : 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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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야 멜로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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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을 시조로 여기는 베두인 부족
6세기, 벨리사리우스가 시간과 병력을 쬐에끔만 더 주시면 이탈리아 되찾겠다고 아드득까드득하고 있을 무렵, 팔레스티나 테르티아 속주의 리메스 후방이 너무 휑하니 비어서 불안한데, 여기 남쪽 중간쯤에 요새 하나 알박아 두면 방어에 도움되겠다! 란 생각을 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시나이 산기슭에 요새를 세우라고 지시함. 그렇게 전쟁도 잘하고 도로도 잘 깔고 공사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는 로마군 200여명이 시나이 반도에 파견, 산기슭에 요새를 뚝딱뚝딱 짓게 되는데... 폐하 다 지었습니다!! 이제 집에 어떻게 옵니까? ??? ??? 니네가 집에 왜 와? 잘 모씀다? 요새만 만들면 군생활 끝나냐? 그거 누가 지킬지는 생각 안해봤어? (씨발...) 하는김에 거기에 뿌리내리고 잘 살아봐라. 아들들 낳으면 걔네도 대대로 수도원 지키라고 하고! (씨발...) 그렇게 말뚝을 박은 병사들은 시나이 남부에 뿌리를 내렸고, 황무지에 유일하게 지나다니는 아랍 베두인 부족들이랑 피가 섞이게 됨. 이들의 후손은 갈수록 시나이 베두인족의 피가 더 짙어지다가, 마침내 아예 자기들만의 전통을 간직한 새로운 부족, '자발리야' 부족이 됨. '제벨' = 아랍어로 '산'이니까 '자발리야' = '산에 사는 사람들'. 부족 이름부터가 시나이 산기슭에 지은 요새에서 유래하는 셈임 이런 베두인 부족들은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4세기부터 아일라에 주둔하던 제10 프레텐시스 군단을 주축으로 형성된 팔레스티나 방어선(limes Palaestinae)의 리미타네이 부대들에도 대거 보조병으로 복무함. 무함마드가 팔레스티나 속주를 슬쩍 찔러본 '무타 원정' 때에도 로마 장군 테오도로스 아래에서 종군했고. 하지만 이후엔 로마 정부가 베두인족한테 돈을 안 주자, 실망한 부족들은 갈수록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칼리파 편에 붙으면서 이슬람으로 단체 개종함. 그렇게 시간이 흘러 7세기,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가 로마군 썰고 다닐 때, 고립된 기독교 수도원들은 차례차례 무너졌지만,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만은... ??? : 아 ㅋㅋ 저거 건드려봤자 이득도 없는데 그냥 지나가죠? 정통 칼리파 시대에 칼리프 우마르의 세력권 안에 들어오면서 수도원 자체의 수도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자발리야 부족민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했지만 여전히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과는 공생 관계를 유지했고, 기독교적 색채도 현대까지 쭈욱 잔존함 그래서 성 가타리나 축일에 교회도 나가고, 무덤 묘비로 십자가를 세우기도 하고, 심지어 부활절 축제도 참가할 정도로 괴상한 스까종교를 믿는 부족임. 1차 십자군 때에도 그래서 성지순례왔다가 들린 프랑크인들이 신기해했고, 19세기 유럽인들도 신기해함 그리고 지금은 얘네가 뭐하냐면... '관광 가이드' 출처 아아 저희는 로마의 후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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