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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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에 드는 습관을 들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퇴근하고 귀가하자마자 잠자리에 든 뒤 새벽 두 시쯤 깨어 하루를 시작하면 정말 근사할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어쩌면 생각보다 꽤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런 이가 있으니까. 올빼미는 올빼민데 올빼미가 아닌 거지. 밤인데 밤이 아닌 거지. 아침인데 아침이 아닌 거지. 기상 시각인 새벽 두 시부터 출근하기 전까지 내내 멍 때리기만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텐데. 아, 그럴 바엔 자는 게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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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 살리기]1-83 마닐마닐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83 마닐마닐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마닐마닐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월로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음식상을 들여다보았다. 입에 마닐마닐한 것은 밤에 다 먹고 남은 것으로 요기될 말한 것이 겉밤 여남은 개와 흰무리 부스러기뿐이었다."를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럽다.'라고 풀이를 해 놓고 "마닐마닐한 군고구마는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다."는 보기월을 들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가 비슷한데 둘을 더해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마닐마닐하다: 먹거리가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러우며 말랑말랑하다. 이 말은 저처럼 이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가 좋지 않다고 마닐마닐한 것만 찾으면 이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너무 단단한 것을 많이 드시면 이를 다칠 수도 있으니 알맞게 단단한 것들을 꼭꼭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닐마닐하다'에서 '하다'를 뺀 '마닐마닐'은 '먹거리가 먹기 알맞게 무르고 부드러운 됨새(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목구멍으로 마닐마닐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벌써 다 먹었고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보리죽 쑤어 먹을 것밖에 남지 않았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저는 마닐마닐한 것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달걀'이 떠오르는데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열달 스무엿새 두날(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마닐마닐하다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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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CGV 신촌아트레온에서 홍상수의 신작을 봤다. 당신얼굴 앞에서. 관객 수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열여섯 명이었다. 다 세어봤다. 관객 수 같은 걸 왜 세어본 거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 다만 홍상수 영화는, 그걸 보러오는 관객들이 어떤 이들인지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홍상수와 배우 이혜영의 케미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저 배우가 있었지. 생각해보니 뭔가 어울려, 그런 생각을. 오랜만에 썩 괜찮게, 재밌게 봤다. 바로 전작인 <인트로덕션>은 국제적인 수상을 했음에도 내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날의 기분도 감상평을 많이 좌우하긴 했지만. 유수의 영화상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기분이다. 오늘의 기분도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전과 다르게 내 안의 뭔가를 건드리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지만. 홍상수의 여정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뭐 다 떠나서 창작자는 역시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어떤 흐름이 생기는 것 같다. 플로우. 더러 태작들이 섞인대도 그건 말 그대로 오히려 하나의 굴곡을 만들어내서 더 근사한 큰 그림을 가능케 하는 것 같다. 홍상수의 작품들은 점점 공백이 짧아지는 탓에 자연스레 연속성이 생기는데, 그 전부터도 사실 어떠한 맥락으로든 작품들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고, 이건 마치 정황과 정황들이, 혹은 그의 생각과 생각들이, 좀 더 나아가서 그의 삶과 삶들이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끝없는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국자의 씨국물을 가지고 끝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세트장을 짓거나 CG를 쓰는 게 아니라면 사실 영화 속 공간들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여러 공간들 중 하나인데, 때로 좋은 영화는 그걸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건 미술의 힘일 수도 있고, 촬영의 힘일 수도 있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는 미술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촬영기법이 돋보이지도 않는다. 더구나 촬영지는 정말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적 공간들은 특별해 보인다. 그 힘은 배우들에 있는 것 같다. 그의 영화적 정황들은 묘하게 연극적으로 보이는 과장스러움들이 있는데, 바로 홍상수 식의 연극성과 그걸 소화하는 배우들이 공간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느낌이다. 홍상수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이제는 지쳐서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더러 봤는데,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더 따라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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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 후 카페를 갔다. 코로나 관련 산문 두 편과 단편소설 두 편을 읽었다. 산문은 뭐 그럭저럭. 소설은 두 편 다 문제가 많았는데, 한 편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졌다. 처음 보는 소설가였고, 이름을 검색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등단한 사람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출간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어떤 경로로 갑자기 잡지에 소설을 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토록 가독성 떨어지는 소설, 그것도 등단 소설가의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아까웠다는 소리다. 또 다른 소설은 여성 서사였는데, 가독성은 좋았지만 시의성이 몇 박자 늦는 감이 있었다. 한국 문단에서 현재 여성 서사는 아주 급진적인 속도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중인데 5, 6년 전에나 나왔으면 겨우 봐줄 만했을까 싶은 초보적인 담론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 소설로 인해 오히려 여성 서사의 현재, 문단의 중심에서 앞다퉈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다른 젊은 작가들의 힘을 새삼 느꼈다. 페미니즘 소설이 여전히 강세이지만 단순히 주제가 그것이라고 해서 박수받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성 서사의 첨단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윤리의 발굴이 한창이다. 작가라면 이 바닥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말하고 보니 찔리네.)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외 3권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외 3권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책은 꾸준히 읽고 있었으나 너무 바빠 그간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읽은 지 시일이 꽤 지난 책도 있고 해서 자세한 리뷰를 쓰기는 힘들 것 같아 책마다 간단한 한 단락 정도의 리뷰를 써 보려고 한다. 읽을 책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저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 <그 후>는 부잣집의 둘째 아들 다이스케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이스케는 부잣집의 자제로 딱히 하는 일 없이 예술과 풍류를 즐기며 사는 사내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며 문학과 예술을 알고 즐기는 자신을 정신적이고 고양된 차원의 존재로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돈을 버는 일, 생계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을 문학과 예술이 속한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세계에 비해 낮고 세속적인 일로 얕잡아본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책임져야 하는 선택의 길에 내몰린 순간, 자신의 고상한 정신 세계는 그녀를 책임지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자신에게는 낮고 세속적인 돈을 버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자신의 존재가 집안의 돈 위에 세워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다이스케가 그것을 깨닫는 과정과 그 속에서 흔들리는 그의 내면을 따라간다. 잔잔하고 어찌 보면 평화로워보이기까지 하는 문장과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일, 예술과 세속, 돈과 자유, 개인과 사회의 윤리를 침착하고 담담하게 내보인다. 나쓰메 소세키는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책 속 한 문장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2.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변화를 싫어하는 주인공, 조나단은 몇 십년간 같은 집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집을 사기로 했다. 마지막 잔금을 치를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의 앞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존재가 나타난다. 비둘기. 하얀 똥을 싸고,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롭게 울어대는 존재가 그의 집 문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필 집을 사기로 결심했을 때, 더 이상 무를 수 없을 때 비둘기는 악몽처럼 나타났다. 그의 삶은 변수의 집합체인 비둘기 앞에서 송두리째 무너지기 시작한다. <향수>로 잘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짧은 중편이다. 인간에게 들이닥친 변화 앞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고 심도 깊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구가 엿보인다. 사르트르의 <구토>,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 한 문장 [비둘기는 흔적도 없었다.] 3.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저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좀 힘든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을 떠난 프란츠라는 남성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수없이 회상하고 떠올리고 기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단순히 프란츠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는 힘들고 생각한다. 모니카 마론은 독일의 작가인데 소설 속에서 독일의 분단과 통일, 사상과 전쟁, 당시의 여성성과 남성상 등이 프란츠와 주인공의 이야기에 마구 섞여 튀어나온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인가 생각하다가 초중반을 지나면서 짧은 소설인데도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텍스트 하나하나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읽었다. 오래전 소설이지만 지금도 시의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것들을 건질 수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생각, 사상과 전쟁이 아이와 어른에게 미치는 각각 다른 영향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이 가져온 혼란과 불안 등. 분량이 짧지만 생각보다 시점과 시간, 주인공의 기억 등 불확실하고 이해가 힘든 부분이 많기에 그 점에 유의하며 읽으면 좋을 듯하다. 책 속 한 문장 [단지 내가 잊어버린 것은 그가 떠나간 이유와 이름뿐이다.] 4. <비행운> 김애란 저 역시 김애란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0, 30대의 독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의 소설은 20, 30대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가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보통의 존재에 도달하기 위한 보통이 아닌 노력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이전에 <젊은 작가상 10주년 특별판>에서 리뷰했던 <물 속 골리앗>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좋았지만 그 중에서 좋았던 소설을 꼽으라면 <물 속 골리앗>, <하루의 축>, <서른>을 꼽겠다. 사실 <물 속 골리앗>이 너무 좋아서 그것보다 좋은 소설이 이 책에 실려 있을까 생각했는데 있었다. <서른>은 좋았던 <물 속 골리앗>보다 더 좋았다. 정말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절망의 시간을 겪는 사람의 이야기를 감정적이지 않고 묵묵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무거워서 앞으로 엎어져버릴 것만 같은 짐을 등에 지고 견디는 사람의 이야기, 벗어버리고 편해져도 되지만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결국 영원히 짐을 진 채로 버텨내며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프고 시린 지점이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문득 내가 내년에 서른이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책 속 한 문장 ['어찌해야 하나.']